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8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2. 01:27

로마서 강해 제86(13:5-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27()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0:25)는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13:5-7)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도 바울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여 각 구절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상에 대하여 짐작해볼 수 있는 단어들이 사실은 본문의 앞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첫째, 각 사람(13:1) ②둘째, 다스리는 자들(13:3) ③셋째, 하나님의 사역자(13:4) 등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또 다른 대상자를 의미하고 있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진노와 양심(13:5) ②둘째, 조세와 관세(13:7) ③셋째, 하나님의 일꾼(13:6) ④넷째, 두려워할 자와 존경할 자(13:7) 등입니다.

그와 같은 단어와 용어들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대상군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서 과연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가 로마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의 지경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위에 계신 분이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13:1 의역). 사도 바울의 권면은 마치 선지자 다니엘의 지혜의 말씀을 다시 듣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2:21).

(2)  둘째가 로마시에 있는 초대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두가지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다스리는 자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권력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게 있으므로 그 뜻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권력행사를 두려워하고 그것에 함부로 반발하거나 그 명령을 거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13:1-4). ③둘째, 권선징악의 정책을 베풀고 있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와 같으므로 양심적으로 조세를 바치라는 것입니다(13:4-6).

(3)  셋째가 로마시를 벗어나 여러 속국에 살고 있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당부입니다. 물론 유대 땅에 살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들 속국의 백성들은 두가지 세금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내세로 바치고 있는 조세입니다. 또 하나는 수입품에 대하여 세관에서 부과하고 있는 관세입니다. 그 가운데 국내세인 조세는 현지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관세는 모두 로마황제에게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속국의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치지 않겠다고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넷째가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야만 하는 속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유대인이거나 헬라인이거나 로마인이거나 그 출신성분에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희생해야만 합니다.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해내는 일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국가에 조세를 바치고 제국의 황제에게 돌아가는 관세를 바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생애 당시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 그러한 측면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사도 바울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일꾼’, ‘존경할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13:5);

(1)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되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백성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반대로 정당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조세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내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제국을 허용하신 여호와의 뜻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3:1). 그와 같은 성도들의 태도는 불신자들이 세금납부를 하지 아니하였을 때에 받게 되는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납부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13:5).

(2)  사도 바울이 신앙 양심까지 언급하면서 로마제국에 대하여 기독교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순종하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해가 됩니다; ①하나는 다시는 유대인들이 로마시에서 골칫거리가 되어 쫓겨나게 되는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②또 하나는 제국의 성립과 쇠퇴가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 그 옛날 선지자 다니엘 이래의 역사관에 따른 것입니다(2:21, 4:25-27, 5:26-28).

둘째로,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13:6);

(1)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이 과연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백성들에게 선을 베풀고 있는 자들일까요?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도 바울 시대에 창조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바울이 여기서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13:6)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가지의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제국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통치자는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제국이나 국가가 백성들이 살기에 좋은 나라라고 하는 생각을 하도록 나라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지상낙원이 아닐지는 몰라도 권선징악’(勸善懲惡, 선한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은 징계를 함)의 사회질서가 확립이 되고 백성들이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정책을 실시하지 아니하는 제국이나 국가는 없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사도 바울이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13:4)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3)  둘째, 그 옛날 선지자 다니엘의 설명과 같이 훌륭한 군주는 자신 위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며 제국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겸손하게 여호와의 뜻을 따라 제국을 경영해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게 되면 권좌에서 내어 쫓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4:27). 다니엘의 역사관을 사도 바울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4)  셋째, 세상나라의 경영과 조세 이야기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은연중에 하나님나라와 성도들의 의무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이 그러한 의미를 진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역자가 슬쩍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뀌고 있습니다(13:4, 6). ‘진노양심을 분리하고 있습니다(13:5).

(5)  끝으로, 그러한 의미의 전개가 가능하다는 것은 세상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나라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나라에 있어서 좋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있어서도 좋은 일꾼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평범한 진리를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 건전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가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서도 건전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셋째로,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13:7); 먼저 조세와 관세의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 다음에 두려워할 자와 존경할 자의 차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로마제국의 시민들은 조세의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왕정국가에서 신민(臣民, 신하와 백성들)들이 부담하고 있는 전통적인 세금입니다. 그런데 제국의 속국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전통적인 세금인 조세 이외에 또다른 세금으로서 관세의 부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무역의 수입품에 대하여 부과되는 것으로서 로마황제에게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국의 백성들은 관세부과에 대하여 저항을 하게 됩니다. 변방인 가나안 땅에서 반골(反骨, 반항과 반역의 기질)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문제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20:22). 대제사장과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에게 끌고가서 거짓 고발할 때에도 세금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23:2).

(2)  예수님의 입장은 선민 유대인들이 원하고 있는 세금거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이미 정보수집을 통하여 알고 있던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무혐의로 방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민들의 독립을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의 왕가를 몰아낼 생각도 전혀 없으십니다. 한 마디로 선민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사상과 선민우월사상에 동조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방인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모두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나아가서 그러한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일에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일에 선민 유대인들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는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

(3)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13:7). 그 뜻을 간략하게 다시 풀이를 해봅니다; ①첫째, 로마시민과 속국의 백성들은 조세를 자국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위하여 국내에서 사용이 될 것입니다. ②둘째, 속국의 백성들은 수입품 통관에 부과되고 있는 관세가 로마황제에게 바쳐지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관세 때문에 자국내의 물가가 비싸지는 것을 감수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리해야만 할까요?

(4)  사도 바울의 생각으로는 만약 관세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그때 받게 되는 피해가 더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주후 70년에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이 로마황제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110만명이 살해가 되는 비참한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대신에 사도 바울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 목적이 제국이나 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의 인생도 재물도 사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자신도 그렇게 진심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13:7 의역).

결론적으로, 옳지 않은 세상권력자들에게 저항을 하고 그 비리를 밝히며 바로 잡으려고 하는 노력이 세례 요한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14:3-5).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그 노선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점이 당시 갈릴리 헤롯 안디바의 궁궐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의 의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메시아의 사역은 그러한 세상적인 정치적 사명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천국의 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선포해주고 제자들을 길러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파송하는 것입니다”(7:22 의역).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에도 바쁜데 어떻게 올바른 통치자를 세우겠다고 정치적인 투쟁을 일삼고 있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옳지 아니한 정권과 통치자들에 대해서는 성도들이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요? 한 마디로, 제국의 흥망을 좌우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김과 동시에 성도들이 올바른 통치자를 달라고 모두들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통치자 정도야 쉽게 바꾸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들은 먼저 잘못된 정권의 담당자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 구원을 위해서 한 마음으로 기도부터 해야합니다(12:19-21). 그것이 가장 근본적이고도 빠른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도의 특권을 제대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세상나라의 백성된 자로서 먼저 모범적으로 그리고 양심적으로 조세와 관세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적으로 모범된 백성과 사역자로 활동한 자들이 사실은 하나님나라의 일꾼으로서도 올바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세상적으로도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일꾼으로서도 귀감이 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