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84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1. 06:40

로마서 강해 제84(12:19-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25()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에 대하여(12:19-21);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어째서 성도들은 자신을 미워하는 원수에게 보복을 해서는 안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설명은 다음 세가지 그의 깨달음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에서 심판하는 권한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속하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32:35).

(2)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심판의 주(, Lord)가 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5:27),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

(3)  셋째,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성육신과 공생애를 통하여 이 세상에 들어오셔서 영으로 함께 하고 계시기에 심판은 이제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바로 앞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인자인 자신을 몰라보고 핍박하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자신 속에 영적으로 임재하여 동행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모욕하게 되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1-32).

(4)  요컨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 대하여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수가 있지만 다같은 육신을 가진 피조물인 인간은 타인에 대하여 그렇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노력해야만 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긍휼하게 여기고 죄 사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중보의 기도를 해주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본문말씀 가운데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내 사랑하는 자들아”(12:19a);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를 두 부문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신앙공동체 내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과 같은 신앙공동체이므로 당연히 성도들은 지체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같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를 받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아버지가 같은 형제들입니다. 같은 유기체의 지체들이며 형제들이기에 서로 사랑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설명이 본문 조금 앞 대목에서 있었습니다(12:10-13).

2)    둘째, 신앙공동체를 넘어서서 성도들은 믿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만 할까요? 본문 바로 앞에서 사도 바울은 그 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12:14, 17-18).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성도들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그 깊숙한 의미를 재삼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12:19-21).  

(2)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12:19b);.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손수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 그 원수에 대한 일을 맡겨드리면 확실하게 조치를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근거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1)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모세오경 가운데 창세기에서 벌써 기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2)    이방인들의 땅 가나안에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보호하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라고 하는 장치가 발동을 하자면 아브라함이 자신을 미워하고 해치려고 하는 사람에게 손수 복수를 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조치를 취해주실 것이라는 언명입니다. 실제의 예를 살펴보면, 애굽에서와 그랄 땅에서의 사건이 있습니다;

3)    첫째, 애굽에서는 황제인 바로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그녀를 황궁으로 데려갑니다(12:14-15). 아브라함은 목숨이 아까워서 자신은 사라의 오빠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12:12-13). 아내가 바로의 후궁이 될 처지인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애타는 심정으로 간구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께서는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사라를 돌려보내게 만듭니다(12:17-19). 그 보상으로 많은 재물까지 얻게 하고 출애굽이 이루어집니다(12:16, 20).

4)    둘째,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아브라함이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이 다스리고 있는 평야 그랄 땅으로 이주를 합니다(20:1). 그곳에서 역시 애굽에서의 일이 재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주 빨리 조치를 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고이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아비멜렉 왕가의 여인들이 모두 불임이 되고 말 것이라고 하는 경고와 실제로 그러한 조치가 먼저 있게 됩니다(20:18). 아비멜렉은 많은 선물을 주어 아브라함 부부의 마음을 달랩니다(20:14-16).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받습니다(20:7). 그 결과 왕궁여인들의 태가 다시 열리고 있습니다(20:17).

(3)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c); 사도 바울이 모세오경 가운데 마지막 책인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실족할 그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32:35);

1)    모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잊지 말라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노래 가운데 들어 있는 한 대목입니다. 모세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들을 미워하지 말고 원수 갚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브라함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게 선민들이 제사장나라와 거룩한 백성의 직분을 감당할 때에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큰 복이 그들 선민들이 가는 곳마다 이방 족속들에게 흘러 넘치게 될 것입니다(12:3). 그와 같은 일이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충만하게 나타나야 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네 원수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2:20); 성도들이 자신들을 미워하는 세상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모두 여호와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이제는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1)   누가복음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님의 비유, “좋은 이웃인 사마리아 사람의 사례를 묵상해보면(10:30-37) 그 답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는 자를 구해주는 것입니다. 비록 원수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기에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도 바울은 네 원수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12:20a)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리하면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평소 성도를 미워하고 박해하던 그 사람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한 표현이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2:20b)고 절묘하게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3)   평소 미워하던 성도들에게서 이방인들이 도리어 생명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어떻게 갚으면 될까요?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그 원수의 마음을 돌려놓으십니다. 그 결과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복음은 그 이방인들의 사회까지 널리 퍼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도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6:19).

(4)   땅에서 푸는 성도의 행위가 바로 원수같이 미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주고 그들이 생존의 위기에 빠져 있으면 구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그 상급은 이 땅에서 복음이 널리 반대자들의 지경까지 퍼져 나가게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실제로 훗날 주후 313년에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주후 324년에 유일한 국교로까지 인정이 되고 있는 것이 그러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하나님은 선이시고 사탄은 악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을 자식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먼저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절대 선으로 역사하십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심판을 받아 멸망할 지경에 처해있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3:16-17).

(2)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악한 영들의 수장인 사탄은 정반대입니다. 스스로 창조주인 것처럼 가장을 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도 생명을 살리는 능력도 없지만 한가지 능력만은 사탄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해치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사탄이 지니고 있는 악입니다.

(3)   창세기 제3장에서부터 이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이 마귀가 되어 천하를 꾀고 있습니다. 마귀의 화신인 교활한 뱀이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거하고 있는 아담부부까지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3:1-5). 뱀의 거짓말에 현혹되어 하와는 그만 육신적인 탐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3:6).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악한 사탄의 유혹과 인간의 육신의 탐욕이 아담부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죄악 가운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4)   그 후로 아담부부의 후손들이 실락원에서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8:2). 이제 어떻게 하면 악을 이기고 선하신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1)    한 마디로, 그것이 성경의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유일한 구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제사와 무덤속에서 예수님을 살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이 땅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살아갈 때에는 악한 영들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그 복음의 능력으로 악한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

결론적으로, 창조주인 척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이 결코 창조주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의 선하신 생명 살리는 능력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악한 영들이 승리를 했다고 한다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기적이 이 세상에서 발생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살아가게 되면 악을 이길 수가 있게 됩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지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박해하는 원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사랑으로 돌볼 때에 원수까지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라고 바울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나아가서 선교의 현장에서 맛보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