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제82강(롬12:10-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3월 23일(목)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교회생활의 지침에 대하여(롬12:10-1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가 경험하고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모습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 글을 적고 있는 시점이 주후 50년대 중반이라고 본다면 그가 오래 신앙생활을 성도들과 함께한 초대교회는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교회입니다. 바울은 주후 40년대 중반에 바나바와 함께 제1차 세계선교를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말씀사역을 하던 사람입니다(행13:2-3).
당시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담임목사이고 바울은 부목사인 셈입니다(행11:26). 그리고 제1차 세계선교를 끝내고 후속사도로 불리게 된 그 두 사람은 주후 49년경에 예루살렘교회에서 개최가 된 총회에 참석을 하게 됩니다(행15:2-4).
예루살렘 총회에서 열띤 토론을 거친 후에 이방인 성도들이 많이 출석하고 있는 이방지역의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할례와 율법을 다 지키라고 강제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됩니다(행15:4-21). 그 총회기간 동안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참 모습을 직접 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초대교회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큰 유대 땅의 예루살렘교회와 시리아의 안디옥교회를 모두 경험한 사도 바울이 여기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폭발적인 생명력을 가지는 성도들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의 기본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롬12:10-13).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적고나서 7-8년의 세월이 지나게 되면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을 저술합니다. 시리아 안디옥 출신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의사 누가는 일찍이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함께 선계선교에 동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골4:14, 딤후4:11). 그래서 그는 사도들의 전도와 선교로 발생하고 있는 중동과 유럽지역의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의 활약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초대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에서의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3-47),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 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0-26),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1-3).
그와 같은 초대교회의 폭발적인 생명력이 왕성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의사 누가의 기록의 증거 그대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성도들의 형제사랑과 부지런하고 열심인 신앙생활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말하면서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도 그처럼 바람직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충만하게 누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0-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형제를 사랑하여”(롬12:10a);
1) 성도들은 서로 태어난 곳과 태어난 시간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은혜 주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성도로 타시 태어나 함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영적인 부모가 같고 함께 그리스도의 지체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롬12:10a).
2)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설명은 복음서에 기록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벌써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12:50, 막3:35, 눅8:2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실제로 한 가족이며 형제라고 여기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할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3) 사도 요한이 주후 90년경에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예수님의 ‘세족식’(洗足式,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의식, 요13:4-17)과 그때의 말씀을 기억하고 위와 같이 기록하기 전에(요13:34-35) 사도 바울이 동일한 취지의 말씀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후 55년경에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2)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b); 혹시 형제사랑을 달리 육신적인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진정한 형제사랑의 뜻을 알기 쉽게 다음 세가지로 풀이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형제사랑은 우애를 말합니다. 형제 간에 우애가 좋다고 하는 것은 형이 아우를 잘 돌보고 아우가 형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둘째, 형제사랑은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이 아우를 자신의 종이나 부속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은 인격체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형제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존경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3) 셋째, 서로 사랑과 존경을 자발적으로 먼저 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 간의 사랑은 소위 ‘give and take’라고 하는 조건부적인 것이 아닙니다. 먼저 사랑하고 자신의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사도 바울이 “서로 먼저 하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롬12:11a); 신앙공동체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 다른 성도들을 자신의 형제로 여기고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리고 신앙공동체 역시 하나의 조직이며 유기체이기 때문에 한걸음 나아가서 모든 성도는 자신의 역할과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만약 게으름을 피우고 부지런히 자신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조직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제 때에 하나의 지체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을 가진 그 유기체가 그만 불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한 성도의 게으름과 부지런하지 못함은 사랑하는 다른 형제에게 부담과 짐으로 남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4)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b); 성도는 하나의 조직이나 공동체의 구성원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 거룩한 신앙공동체의 지체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두가지 자세가 요구됩니다; ①첫째, 그리스도가 성도의 거듭난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종으로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결코 성도는 다른 세상적인 것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②둘째, 성도는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승이시며 머리이신 주님의 생각과 뜻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생각하면서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롬12:12a);
1) 성도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제5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2) 여기서 성도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 근거에 대하여 본문에서 바울이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궁극적인 소망입니다; “성도가 남은 인생 가운데 자신에게 맡겨진 이 땅에서의 지상명령을 끝내게 되면 부활의 몸을 입고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소망이 있기에 기뻐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 성도의 소망은 창조주가 약속한 것이기에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빼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소망 중에 항상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롬12:12a).
(2) “환난 중에 참으며”(롬12:12b); 세상의 핍박과 환난을 참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고난을 통과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1)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상급이 엄청난 규모로 그 환난과 비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롬8:18). 따라서 환난과 고난이 없이 성도의 삶이 그냥 평온하다고 한다면 하나님나라에서의 놀라운 상급과 기업의 상속을 크게 바랄 수가 없습니다.
2)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달란트의 비유가 그러합니다(마25:14-30). 5달란트를 맡은 종이 다시 5달란트의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겪고 있는 어려움은 2달란트를 맡은 종이 다시 2달란트의 이익을 남기는 경우와 비교하여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투자하고 운영하는 규모가 클수록 손해를 볼 규모가 커지므로 고심이 더욱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도시를 경영하는 시의회보다는 국가를 경영하는 내각이 더 많은 위험에 대처해야만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4) 따라서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환난이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게 되면 더 큰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주님께서는 큰 영광을 주시기 위하여 나 같은 성도에게 이러한 큰 환난을 주신 것이니 그 큰 상급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감사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함으로 환난을 참고서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c);
1) 아무리 소망과 상급이 하나님나라에서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성도가 죽고 난 다음에 찾아오는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가 그것만으로 온전히 환난을 극복하고 시험을 통과하기는 어렵습니다.
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더욱 막강한 조치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주시고 있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2-14). 기도의 능력으로 환난을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c)라고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롬12:13a);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 제2장에서 동일한 뜻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겉으로 보면, 마치 공산사회의 원형과 같습니다. 그러나 앞뒤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교회의 머리로 주님을 모시고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공생애를 살아가기 위하여 그러한 생활공동체와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로마교회에서도 사도 바울은 보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롬12:13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b); 성도들만 신앙공동체에서 공생애적인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성도들은 희생하고 헌신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웃들이 바로 전도의 대상이며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손 대접하기를 진심으로 힘써야 합니다(롬12:13b).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성도들이 신앙공동체 내에서 그리고 지역공동체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섬기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발생하는지 그 비결을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실제로 그가 예루살렘 초대교회와 시리아 안디옥교회에서 보고 느낀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성도들의 형제사랑과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닮은 공동체 생활이 있을 때에 복음의 전파가 활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명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따라서 본문의 뜻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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