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8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9. 05:03

로마서 강해 제81(12:6-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22()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에게 나누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의 종류에 대하여(12:6-9);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 있는 다양한 은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는 크게 보아 두가지 종류입니다; ①하나는 성도이면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은사가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필요에 따라 주어지고 있는 은사입니다.

전자에 속하고 있는 기본적인 은사의 종류에는 믿음과 지혜(12:3), 사랑(12:9), 그리고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등이 있습니다(12:6-8a). 또한 후자에 속하고 있는 은사의 종류에는 구제와 다스림, 그리고 긍휼 등이 있습니다(12:8b). 그렇게 분류가 가능한 이유를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나님나라를 건설해 나가는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라고 하면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것들을 은혜의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 지혜, 사랑, 그리고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등입니다(12:3, 6-8a, 9). 그것들이 왜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믿음이 없으면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기본적으로 주시는 은사가 믿음입니다.

2)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혜와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3)    사랑은 모든 성도들이 영생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 안에서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인생도 세상의 역사도 섭리하십니다. 그런데 그 정책과 방향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말씀을 공부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예언의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5)    섬김은 모든 성도들이 세상구원을 위하여 지녀야 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결코 군림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웃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하여 섬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6)    가르침은 지상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20).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에 나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의 은사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7)    위로는 성도들이 세상사람들에게 주어야만 하는 비전이며 소망입니다.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 가장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천국복음으로 전하여 사람들을 위로하고 영생의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주라고 성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2)  둘째,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천하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나라를 온전히 건설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그 지체로서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지체에게는 그 맡은 직무에 합당한 능력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제, 다스림, 긍휼 등입니다(12:8b). 그렇다면, 그러한 각각의 능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성도들 각자의 어떠한 자질을 먼저 보고서 나누어 주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이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면 그저 말로써만 도와주는 구두선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남을 구제할 수 있는 그러한 실제적인 역량은 어떻게 갖출 수가 있을까요? 그 비결은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감으로써 남을 구제할 수 있는 몫을 반드시 따로 남겨야만 합니다(12:8b). 만약 불성실하게 탕자처럼 살아간다고 하면 자기 구제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2)    다스림이란 치리(治理, 말씀에 의거하여 다스림)를 말하고 있습니다. 치리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자면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12:8c). 지도자가 게으르게 되면 그 공동체는 제대로 운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게으른 지도자는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며 신앙공동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영적인 지도자야 말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일과 기도와 그 실제적인 적용에 부지런해야만 합니다.

3)    긍휼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처한 환경과 처지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을 때에 그 마음이 움직이고 긍휼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직접 체험을 하시기도 하십니다(2:5-8, 4:15-16). 그러한 희생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함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19:22-25). 그것을 사도 바울은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2:8d).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12:6-7);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12:6a); 자격이 없는 자에게 자격이 있는 것으로 의제하여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    그것은 죄인이 대속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감히 용서함을 얻고자 할 때에 성도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사를 인용하여 진심으로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십니다.

2)    또한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그 은혜로 주시는 능력 가운데에는 공통적인 것도 있으며 개별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분량이 다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12:6a).

(2)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12:6b);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24:44-48). 그러나 일부 묵시적인 예언은 아직 그 실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고후3:16, 벧후3:15-16);

1)   또한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다음 이 세상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회와 복음의 세계화도 완성이 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는 수많은 예언들이 아직도 풍성합니다.

2)   특히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이 되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예언이 어떻게 자신의 삶속에서 실현이 되고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라고 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예언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합니다(고전14:1).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언을 주시고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성도들 모두에게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다만 그 예언에 대한 깨달음과 적용의 정도는 성도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말씀에 밝은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가 있듯이 예언의 경우에도 그러합니다.

4)   그러한 차이는 믿음의 분량에서 비롯된다고 사도 바울이 친절하게도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이 말씀 가운데 발견하고 있는 예언의 깨달음과 일반성도의 그것이 일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5)   그것은 믿음의 분수를 따라서 필요한 만큼 공급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6b). 그러한 이치를 모르고 억지로 예언을 풀려고 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다가는 감당할 믿음의 분량이 모자라서 낭패를 당하거나 실족을 하게 될 것입니다(벧후3:16).

(3)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12:7a);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주님께서 보내어 주시는 양들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려야만 하는 목자들입니다(6:39). 그러므로 양들을 억압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해쳐서도 안됩니다. 양으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의 꼴을 먹을 수 있도록 복음을 가르쳐주고(10:10)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형제사랑의 모범을 몸소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13:4-5, 14). 그러므로 성도들이 실천하고 있는 목양 그 자체가 섬김의 리더십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혼을 살리는 복음사역에 나서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12:7a).

(4)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12:7b); 말씀사역은 두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모인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자세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자가 주로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는 방법입니다(28:20). 그러므로 성도의 전도와 선교여행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필요한 능력을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사도와 장로들에게는 그 은사가 더욱 풍성합니다(6:4).

둘째로,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8);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12:8a);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위로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깨달음을 참조하면 분명히 그러합니다. 고뇌의 연속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성도들은 한가지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7:25-8:2). 누구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여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성도를 통하여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는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성도가 남은 인생을 천국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얻으신 그 부활과 영생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큰 위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놀라운 위로를 먼저 경험하게 하고 나아가서 온 세상 만민에게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의 은사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2)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12:8b); 구제하는 은사는 특정한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사도 바울이 그 기본소양으로 성실함을 손꼽고 있습니다. 그 말은 성도 자신의 삶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남을 구제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1)    성실하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규모 있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여주듯이 남을 구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25:14-30);

2)    예를 들면, 은 두 달란트는 평생 두 사람이 버는 돈을 의미하지만 금 두 달란트는 그 15배이므로 30명의 사람이 평생 벌어야만 하는 소득입니다(25:22-23).

3)    그 말은 애초에 금 2달란트를 맡은 성도라고 하더라도 성실하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자신의 가족을 포함하여 도합 30명을 먹여 살리는 구제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3)  다스리는 자부지런함으로”(12:8c);

1)    다스리는 자는 신앙공동체에서는 치리(治理, 말씀의 이치에 비추어서 잘 잘못을 가리고 다스리는 것)하는 자를 말합니다. 목사와 장로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또한 국가와 사회적으로는 가치를 배분하는 정치적인 권력자들을 말합니다.

2)    올바른 치리와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법과 정책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법과 정책의 적용대상이 되고 있는 성도와 백성들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그 형편과 처지를 살펴야만 합니다.

3)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공정한 공무가 수행되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공동체에서는 올바른 치리의 모습으로, 국가 사회적으로는 안정된 정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만약 지도자가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그것은 널리 공익을 증진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익만을 챙기게 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말 것입니다.

(4)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8d);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1)    근본적으로, 긍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출애굽기 제33장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시는 여호와의 행차에서 그 속성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앞서 진행하고 있는 천사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9)고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여기서 은혜는 주로 구원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이 또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자가 없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십니다(9:36).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십니다.

3)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육신을 가지고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시고 인자로 살아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자면 자신의 육신에 대못을 박고 고통 가운데 죽음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인간이 고안한 가장 극심한 그 고통의 처형방법을 몸소 경험해야만 합니다.

4)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다른 방법으로 그 대속의 희생을 맞이하려고 합니다(14:36a).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동의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처형을 당하시기 전날 밤에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자신을 맡기십니다(14:36b).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긍휼을 베풀고 타인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고 헌신한다고 하는 것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성도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5)    그리고 억지로 할 수는 더더구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진실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 주심으로 말미암아 겨우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긍휼의 끝이 엄청난 고난을 의미하고 있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희생하는 대속의 즐거움을 깨달은 자들에게만 그 일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8d).

셋째로,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을 미워하고 에 속하라”(12:9);

(1)  사도 바울은 사랑과 거짓을 선과 악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선이지만 거짓은 악입니다 사랑은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선에 담겨 있는 속성입니다(3:4, 18:19). 반면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사탄과 악한 영들은 생명을 해치고자 거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거짓의 속성을 가진 사탄이 이 세상에서는 천하만민을 꾀는 거짓의 아비 마귀로 행세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에덴동산에서부터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이 그러합니다(3:1-6). 천하 만민을 꾀는 거짓의 아비 마귀가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3)  그러한 마귀의 책동을 물리치고 이웃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웃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그것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30-31).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창조주께서 만드신 이웃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할 때에 생명을 살리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모든 성도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공통적인 은사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러가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열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에 거론하고 있는 사랑의 은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사명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만민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6:39-40, 17:17-18).

창조주께서 만든 귀한 창조물이기에 만민을 나와 똑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대접하며 함께 구원하여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25:40). 그것이 하나님사랑에 이어서 발현이 되고 있는 성도들의 이웃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12:30-31).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주신 그 귀한 은사인 사랑으로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