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7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7. 19:29

로마서 강해 제78(11:33-3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19(주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깨닫게 되면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게 되는가?(11:33-36)

 

사도 바울의 오랜 간구와 고통이 본문에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진술 그대로 그가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사도 바울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1:33). 따라서 바울이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면서 그토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기도의 제목, 곧 자신의 친척과 골육인 동족 유대인들을 부디 구원해 달라고 하는 그 요청에 대하여 벌써 큰 지혜와 계획으로써 긍정적으로 응답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바울은 제16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2)  둘째, 피조물인 사람은 여호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가 없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능히 모든 피조물의 내면까지 전부 통찰하십니다(11:34). 그러므로 피조물인 바울 자신의 마음도 이미 꿰뚫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께서는 바울의 마음속 소원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길을 열어 주시고 자신의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께 사도 바울이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11:36).

(3)  셋째, 그렇게 사도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시고 친척과 골육들까지 구원해 주시니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바울은 남은 인생을 사도의 길로 끝까지 달려가고자 합니다(11:35). 그리고 그 깨달음과 은혜를 그의 글을 읽게 되는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 대목이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5-36)이라는 글귀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 대목은 성도들의 인생관과 역사관을 잘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지식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1)  깊이는 두가지의 뜻으로 사용이 됩니다; ①하나는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②또 하나는 음부의 세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자의 뜻으로 풀이를 해봅니다. 그렇다면, 본문은 다음과 같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피조물이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며 또한 그 깊이를 측량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이 당장 자신의 간구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물리치셨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지혜와 지식의 풍성하고도 깊음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시공간적으로 모든 것을 통찰하시고 피조물 전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그 길을 모색하고 계시는 것이다”(11:33 의역).

(2)  음부는 무저갱(無底坑,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 굴속, 지옥을 말함)의 세계이며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20:3). 따라서 한번 그곳으로 끌려가게 되면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가 없는 영원한 죽음의 세계입니다(20:10);

1)    그와 같은 절망적인 죽음이 사망으로 기다리고 있기에 인생이라는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모릅니다. 죄악의 세상에서 하루를 살게 되면 그만큼 그곳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1:15). 따라서 육신적으로 사람이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음부의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히브리정경 가운데 벌써 제시를 하십니다; “흑망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2),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3)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되고 있음을 복음서가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4-29).

4)    그 유일한 구원의 대안이 벌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그리고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 가운데 담겨 있음을 사도 바울이 깊이 깨닫고서 본문을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혜와 지식이 풍성하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통하여 그 사망을 이기고 음부의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 사실을 믿고서 그곳을 탈출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각자에게 남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11:34);

(1)  일반적으로 마음은 심장으로 표현을 하고 지혜와 지식은 머리로 표현을 합니다. 그렇다면 피조물인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심장과 머리를 모두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말을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모두 짐작도 할 수가 없다는 뜻을 벌써 앞절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하나님의 마음인 심장을 피조물인 사람들이 모두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실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조치하실까요? 가능하면 그 마음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고자 하십니다. 다만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함께 돌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개인적인 마음속 소원을 전부 검토하여 한꺼번에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이면 그것을 우선적으로 실행에 옮기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합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11:34)고 말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 소원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2)    둘째, 가능하면 그 소원을 이루어 주고 싶어 하십니다.

3)    셋째, 그러나 모든 피조물을 전부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큰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합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풀이를 하자면,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데 있어서 개인의 마음속 소원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넷째, 그렇게 공의의 정신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과 맞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사역이 전개가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또다른 예화적인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13:22-23).

셋째로,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5-36);

(1)  사도 바울이 집단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을 갈라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논구한 바로는 하나님의 복음이 선민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먼저 넘어가게 됩니다. 그 다음에 이방인에게서 다시 선민에게 넘어오게 되는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연구’(group study)의 결과입니다. 개인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선민 이방인의 순서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로 먼저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되고 마침내 영생구원의 상급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초대교회 안에서는 다른 사조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은 일찍 회개하고 오랜 기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관념입니다. 어차피 회개를 하면 구원을 받게 될 터이니 남은 인생 동안 제멋대로 실컷 세상의 낙을 누리고 자아실현을 하고 살다가 늘그막에 조금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아가면 된다고 하는 아주 편리한 사고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이 이기적이고 효용성만을 따지고 있는 신앙생활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고난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하나님나라에서의 상급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되도록 많은 시간과 인생을 투자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3) 요컨대, 성도의 탄생과 복음전파의 인생 그리고 돌아갈 고향 그 모든 것들이 벌써 주님 안에서 결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따라 달려가는 것이 예수님처럼 이미 작정된 길로 가는 인생”(22:22)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처럼 제 갈 길로 신실하게 달려가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올바른 인생관을 가진 자이며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5-36).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누리고자 하는 그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은 만물 가운데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나의 인생과 재화도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분의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것을 잠시 빌려서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하는데 사용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자신의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맞게 자신의 인생도 재화도 사용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복음일꾼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만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께서 피로 사시고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해주신 자신의 인생을 복음전파에 소중한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