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7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7. 03:24

로마서 강해 제77(11:30-3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18()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게 되면 구원의 은혜는 어디로 옮겨지게 되는가?(11:30-32)

 

본문은 사도 바울의 눈이 줄곧 무엇을 쳐다보면서 무엇을 쫓고 있는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의 시선은 항상 여호와 하나님에게 향해 있으며 굉장한 주의력으로 하나님의 동선(動線, 움직임)을 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시도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떼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이 무엇을 발견하고 있을까요? 본문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엄청난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시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는 선민에게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게 되자 그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십니다(11:30b).

(2)  둘째, 하나님의 시선이 옮겨지는 그곳에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이 있습니다(11:30a). 그들을 긍휼하게 보십니다(11:30c).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천국복음으로 전하시고 회개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3)  셋째, 그러나 이방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11:31a). 그때에는 여호와의 시선이 다시 선민의 남은 자들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11:31b).

(4)  넷째,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선민에게서 이방인에게로, 그리고 이방인에게서 선민에게로 옮겨짐으로 말미암아 만민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1:32).

(5)  다섯째, 바울의 지적 가운데 시사가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의 순종자 곧 복음의 전파자를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역사 가운데 언제나 하나님 경외자를 찾아서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큰 복인 구원의 복을 전하고 싶어하셨기 때문입니다(22:12, 18).

(6)  여섯째, 그렇게 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어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새 예루살렘을 하늘에서부터 이 땅에 임하게 하십니다(65:17-20, 21:1-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이방인 성도)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11:30);

(1)  사도 바울이 당장 이 서신을 써서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대화의 상대방인 너희”(11:30a)는 로마시의 이방인 성도들입니다. 그들 이방인들은 성도가 되기 전과 후가 하나님 보시기에 다음과 같이 다르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던 백성들입니다. 그 의미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갔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던 이방인들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러나 그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들려오게 되자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살아 계심을 모르고 자기들끼리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에 대하여 불쌍하게 여기셔서 구원하여 주시기로 하셨다는 그 구원의 소식 앞에 회개하는 역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 성도의 탄생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시던 여호와(9:13), 곧 선민을 사랑하시던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을 찾아가셨는가에 대하여 그 원인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11:30b). 주원인은 선민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신정국가의 법률로 삼도록 조문화하여 율법으로 전해주자 그것을 모두 철저하게 지키고 실천하겠다고 철석같이 맹세를 했던 선민 이스라엘 백성입니다(19:4-8, 24:3-8). 그러나 그들 선민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그 맹세를 지키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말씀인 율법의 취지는 거룩한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제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인데(12:30-31) 선민들은 이방인들을 차별하며 미워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의 멸망을 면하게 해주기 위하여 아브라함처럼 중보의 기도도 드려주지를 않습니다(18:23-32, 19:4-6).

3)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거룩한 백성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 불순종의 길에서 회심을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역사 가운데 수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파송하셔서 복음사역까지 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처형하고 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은 선민의 울타리를 넘어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이와 같이 이 사람(이방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선민)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1:31);

(1)  사도 바울은 똑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이방인 사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가 되자 두가지 서로 다른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서 제멋대로 살아온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복음으로 구원을 받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②또 하나는 여전히 창조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무리들입니다.

(2)  그와 같이 옥석이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그 끝에는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될까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많이 전하였지만 여전히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완강하게 남아 있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시선을 다시 선민 유대인들에게 돌리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앞날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11:25), “이와 같이 이 사람(이방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선민)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1:31).

셋째로,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하심이로다”(11:32);

(1)  사도 바울이 주의 깊게 하나님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하나의 역설적인 명제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오해하기에 딱 알맞은 명제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하심이로다”(11:32).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 만민구원을 도모하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포석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과연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불순종을 좋아하실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불순종조차 선용하시어서 합력하여 만민구원의 선을 이루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로마서 제8장에 있는 다음 말씀을 함께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상목표가 만민을 구원하고 만물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나라의 창조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장점은 장점대로, 그리고 단점은 서로 다듬어서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사용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러한 의미가 돋보이고 있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어째서 그와 같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 출신 성도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형한 살인자들이라고 엄청 비난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가슴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복음으로 하면 그(선민)들이 너희(이방인)로 말미암아 원수 된 자요”(11:28). 따라서 바울이 동족들을 이방인 성도들 앞에서 변호해주고자 하는 심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자신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남은 평생을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지만 친척과 골육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지극한 바울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새삼 복음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성도들에게는 고향도 있고 애정의 대상인 조국과 동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바울처럼 이방인 구원뿐만 아니라 조국과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도 많이 간구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