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8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5. 3. 04:23

로마서 강해 제88(13: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29()

 

자신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13:11-14);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①하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부활을 준비하는 성도들의 삶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그 두가지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1)  부활의 영광은 마치 자다가 깨는 것과 같습니다(13:11). 성도들이 죽음의 잠을 자다가 그리스도처럼 깨어나게 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 세상에 대한 묘사가 주로 이사야 제65장과 요한계시록 제21장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익숙한 하늘과 땅과 바다가 사라지고 없습니다(65:17, 21:1). 그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바다는 다시 있지 않습니다(21:1).

2)    둘째,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성이 땅으로 강림하고 있습니다(65:18, 21:2).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는 수도가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21:22). 성도들이 그 성으로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3)    셋째, 사람들은 죽으면 누구나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가 될 때에 부활을 맞이하게 됩니다(20:11-13).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이 된 성도들은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게 됩니다(5:29, 21:27). 그러나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영벌의 불못 속으로 던짐을 받게 됩니다(20:15).

4)    넷째,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해와 달이 없습니다(21:23). 그 대신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보다 더 밝게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그 빛을 받아 생명수가 흐르는 강의 언덕에는 생명나무의 각종 과일이 자라고 있습니다(22:1-2).

5)    다섯째,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없습니다(13:12, :25, 2122:5). 그곳에는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빛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 사명은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는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22:28-30, 5:6-14).

(2)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 태어난 성도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여전히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    구체적으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를 길러내어 파송하는 등 귀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신의 사명이 끝나게 되면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내주 역사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하나님나라에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8:11).

2)    그렇다면, 성도들은 다가올 자신의 생명의 부활과 새 예루살렘 성에서의 영광을 미리 바라보면서 남은 인생의 기간 동안에 열심히 복음사역을 하면서 어떠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할까요? 그 점에 대하여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13:11);

(1)  사람은 모태에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인생의 카운팅이 시작이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향년을 향하여 똑딱거리는 시계소리를 들으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존재가 피조세계에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음과 같이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작품이며 피조세계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가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14). 비록 사람이 시계의 침을 모두 멈추어 버린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육신 가운데 유전자로 내재가 되어 있는 그 인생의 시간이라는 카운팅은 계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인간이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끊임없이 일정한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 숙명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전혀 달리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을 자고서 깨어나게 되면 그 다음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향년을 맞이하는 날도 그리고 죽음의 잠을 자고나서 부활하여 깨어나는 시간도 그만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으니 그 부활과 영생의 날을 떳떳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루 하루를 더욱더 구원받은 자의 모습에 어울리게 살아가야 합니다”(13:11 의역). 사실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이 정도의 해석보다 더욱 강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13:11)라고 말하면서 벌써’(alread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것은 영적으로 이미 부활의 영이 그의 영을 붙들고 있다고 하는 강한 표현입니다(8:11). 어째서 사도 바울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바울이 랍비 사울이었을 때에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고 환상 가운데 그에게 임재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9:2-8). 그때 그는 적어도 다음 세가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①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부활 승천하셨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시고 있다. ②둘째, 부활 승천하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자신이 만났으니 영적으로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남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③셋째,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이방인 사도로서 살아가게 되면 바울은 벌써 영적으로 천국의 시민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이다.

(4)  요컨대, 사도 바울은 아직 육신을 입고서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자신의 향년을 맞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듭난 성도들의 일상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진실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1)    자신의 죽음과 부활도 나중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그가 죽고 난 다음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작성하고 있을 당시에는 물리적으로 아직’(not yet) 이루어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자 그에게 하나님의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로서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속사람속에 성전을 지으시고 임재하십니다(고전6:19). 그 성전에 아버지의 부활의 영과 함께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하여 사도 바울의 인생길에 함께하십니다(8:9-16).

3)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부활과 천국입성이 이미 영적으로 성취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실재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벌써’(already)의 영적인 축복이 함께하고 있기에 본문의 표현이 특이하게도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13:11).

둘째로,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2); 성도들의 일상 가운데 물리적으로는 낮과 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내주하여 계시므로 언제나 낮과 같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 성도들이 함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제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심령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이미 함께 살고 계시는데 어떻게 성도가 육신의 탐욕을 이루는 어두운 일을 계속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빛의 자녀답게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은사로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여기서 빛의 갑옷을 입는 것”(13:12)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몸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껴입을 수 있는 옷과 같다는 것입니다.

셋째로,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성도들도 육체적인 탐욕에 이끌리게 되면 영적으로 어두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 모습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방탕합니다. ②둘째, 술에 취해 있습니다. ③셋째, 음란합니다. ④넷째, 호색합니다. ⑤다섯째, 다투고 시기합니다(13:13). 그와 같은 어두운 일을 버리고 성도들은 빛의 자녀답게 단정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면 됩니다(14:12-14). 그리하면 정욕을 이기고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아니하며 그 반대로 하나님의 일을 단정히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

결론적으로, 누구나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난 인간은 물리적으로 죽음을 향하여 매일같이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육신이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욕망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들은 세상 일에 분주하며 소원성취를 위하여 세상적인 모든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다릅니다. 죽음 다음에 있는 자신의 부활과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를 선택하여 살아간 것처럼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빛된 자녀로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벌써 자신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11:20).

그러므로 아무쪼록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명심하고서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나라를 새삼 깨달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