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6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1. 15:07

로마서 강해 제68(10:14-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9()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으로서 보냄, 복음의 전파, 들음, 믿음에 대하여(10:14-15);

 

본문의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논리적인 질문에 대하여 그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라고 은근히 본문에서 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고 본문의 바로 앞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그 누구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까요? 그 특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한 마디로, “믿음의 의를 확신하고 있는 자라고 보고 있습니다(10:14a);

1)    바울은 로마서 제10장에 들어오면서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그것은 올바른 지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10:2). 올바른 지식이란 아브라함처럼 여호와를 믿고 그 창조의 능력과 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보고자 하는 신앙자세”(15:6의역)를 말하고 있습니다(4:3). 그런데 선민 유대인들은 그와 같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을 추구한 것이 아닙니다(9:30-32).

2)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준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지를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②둘째,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여호와 하나님께 고백하고 창조주의 능력으로 율법의 의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③셋째, 그 반면에 선민 유대인들이 추구한 것은 사람의 중심을 들여다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무시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면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과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는 앞에서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행하는 것으로 위장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눈을 속이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의 잘못이라고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얼마나 질타를 하셨는지 모릅니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유대교지도자들은 그 잘못을 시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4)    선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그 위선적인 행위로 능히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전통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마음속 신앙 양심으로는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종교사회적으로는 유대교의 전통과 선민들의 통념이 그렇다고 오랜 세월 말해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선민들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것이 선민들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지니고 있다고 하는 육체의 할례와 성전의 제례의식 그리고 안식일 및 여러 절기 등을 규정하고 있는 율법 조항들입니다”.

(2)  둘째,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까요?

1)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 번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알려주셨는데 사도 바울 당시에는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요? 누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일까요?

2)    그 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먼저 사람들에게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창조주의 능력과 지혜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사실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예루살렘에서 증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1-14, 7:24-25, 8:1-6, 24:44-49).

3)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님의 사도와 제자들이 온 세상에 증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의 귀에 메시아의 오심과 부활하심에 대하여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회개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10:14b). 그것이 바울이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1:2).

(3)  셋째, 사도 바울이 이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10:14c). 그 복음전파자들의 정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가 될 수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제자들이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사역을 하고 전도를 하도록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을 부여 받고 파송이 되고 있습니다(10:1-15, 10:1-16).

2)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십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소식을 알리도록 사명을 주시고 그들을 파송하십니다(28:18-20).

3)    셋째, 다메섹 도상에서 랍비 사울을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으로 만나 주십니다(9:3-9). 환상 가운데 영적으로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지니신 독생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랍비 사울이 이제는 사도 바울이 되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9:15-22, 1:1-7).

4)    넷째,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자신처럼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 주님으로 모시고 복음전파자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0:15, 고전11:1).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바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영적으로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10:14a);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사람들이 믿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선례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이 세상의 형편을 믿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의롭다고 한 경우가 아브라함의 선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주신 경우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례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그래도 여호와를 한번 더 믿어 보기로 합니다. 여호와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의로움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조금 설명을 덧붙여봅니다;

2)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아버지 데라를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남겨 두고서 남행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11:31-12:4). 몇 가지 상급을 주시겠다고 하는 여호와의 언약이 진작에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첫번째 언약이 자손의 번성입니다(12:2).

3)    그런데 10년 동안 가나안 땅 일대를 헤매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갔지만 그 약속이 성취가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무자식이므로 할 수 없이 자신의 가신인 유능한 젊은이 다메섹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상속을 하려고 작심합니다(15:3).

4)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언약을 재확인하십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자손의 번성이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15:5). 아브라함이 비로소 여호와를 믿습니다(15:6a). 세상적으로는 캄캄하지만 여호와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러한 미래를 창조하실 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형편보다는 창조주 여호와를 신뢰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보시고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십니다(15:6b).

5)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사역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신앙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아니하고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한다는 것입니다(6:38-40). ②둘째, 자신이 백성들에게 전하고 보여준 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것입니다(5:19, 30, 8:28). ③셋째, 자신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고 계십니다(8:29). ④넷째,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처형을 당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8:31, 9:31, 10:34).

6)    그것이 육신으로 태어난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있는 예수님의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 믿음을 의롭게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무덤속에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십니다. 마침내 영생의 그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승천을 하시는 것입니다(24:50-51).

(2)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10:14b); 사람들이 어떻게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를 믿으라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까요? 선민들의 경우와 이방인들의 경우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선민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유대교지도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율법생활을 믿고 있습니다. 남들 보기에 율법생활만 잘 하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유대교지도자들과 성전과 산헤드린 대 공회가 마치 여호와처럼 최고의 권위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그리고 메시아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시는 그 말씀이 그들의 귀에 들리지를 않는 것입니다(6:9, 5:40). 그것이 선민 유대인들의 비극입니다.

2)    둘째, 이방인들에게는 사도 바울과 같은 선교자들이 현지를 방문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2:11).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셨다는 것입니다(24:46-49). 그리고 이제는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받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10:13).  

(3)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c);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전달이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전파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1)    바울은 자신이 실라와 함께 유럽선교에 나선 그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서 선교를 계속하려고 하는 사도 바울의 발길을 하나님께서 막고 계십니다(16:6-7). 소아시아 서쪽 끝의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유럽 땅이 시작되고 있는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라고 하는 것입니다(16:8-10). 그렇게 사도 바울과 실라가 네압볼리 항을 거쳐서 유럽의 첫 도시 빌립보를 방문함으로써 이방인 사도에 의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체계적으로 유럽 땅에 전해지기를 시작하게 됩니다(16:11-15).

2)    물론 당시에 이미 로마시에서는 자생적인 초대교회가 설립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방인 사도나 집사들의 방문이 아직 없었기에 그들의 복음생활은 매년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독실하고도 경건한 로마시의 성도들에 의하여 근근이 유지되고 있을 따름입니다(2:10). 그와 같은 로마교회의 형편을 사도 바울이 일찍이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통하여 알게 됩니다(18:1-4, 16:3).

3)    따라서 그때부터 바울은 선교팀을 이끌고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를 방문하여 그곳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고자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10-13).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들려준다면 그들의 믿음생활은 놀랍도록 성장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전파자가 소중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0:14c).

둘째로,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10:15a);

1)    예수님 살아 생전에 3 6개월 동안 공생애를 함께 지낸 12명의 사도들은 참으로 복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지상명령을 수행하려고 사도로써 발령을 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8:18-20, 21:15-22).

2)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된 제자들이 또한 복이 있습니다. 그들 500명이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서 성령님의 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그 가운데 120명 정도가 오순절에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1:12-15, 2:1-4, 고전15:6). 그리고 성령님의 능력을 얻어서 복음의 전파자가 되고 있습니다(2:4-11).

3)    랍비 사울이 또한 복이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체포하고자 다메섹으로 가고 있던 길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서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9:1-22).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아 그의 서신서에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4:6, 고후13:13). 그리고 히브리정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다는 진리를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4)    사도 바울과 바나바 등을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는 기관이 안디옥 교회입니다(13:2-3).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교회는 수많은 선교사들을 온 세상에 파견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많은 복음의 전파자를 파송함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10:15a).

(2)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b);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1)    그는 자신의 행적이 이미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예언이 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52:7),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b).

2)    바울은 자신의 모범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따라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특히 사도 바울과 더불어 세계선교에 나서고 있는 성도님들을 동역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의 서신서 말미에 그 사실을 기록하기를 좋아합니다(16:1-16, 21-23, 고전16:15-20, 4:7-18, 딤후4:19-21).

3)    요컨대,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서 굳건한 믿음생활을 하도록 만들어주고 싶어합니다(1:11). 그리고 세계선교를 계속하고 있는 자신의 동역자로 삼고자 합니다. 특히 지중해의 서쪽 끝인 서바나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선교팀에 그들이 합류해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15:22-24).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자신의 발걸음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생명을 살리는 그 복음전파자의 발걸음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서는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바울은 그와 같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선교팀에 로마교회의 성도님들이 동참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로마서를 기록하여 그들에게 보내고 있는 실제적인 목적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인생을 함께 살아가자고 사도 바울이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이 글을 통하여 권유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남은 인생을 가장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의미가 있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