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67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0. 17:43

로마서 강해 67(10:10-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8()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0-13).

 

본문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익숙한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전도를 때에 많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7 끝부분과 8 첫머리를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이 본문을 어떠한 의미에서 적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면 의미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사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먼저 말씀을 드려 두고자 합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부패한 것입니다;

1)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이란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5-6). 그와 같은 하나님의 판단은 홍수심판 전에도 또한 후에도 동일합니다.

2)      구체적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이 홍수심판이 끝난 다음에 처음으로 드린 번제물의 향기를 맡으신 여호와께서 다음과 같이 똑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향기를 맡으시고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8:21).

3)      그렇다면, 과연 그와 같이 부패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마음으로 무엇을 믿게 되면 의인이 수가 있는 것일까요?(10:10a) 점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2)   둘째, 성경에서는 사람들의 입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정직한 말을 많이 하고 있는 입일까요? 아니면 거짓말을 많이 하고 있는 입일까요?

1)      불행하게도 전자가 아니고 후자 쪽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29:13).

2)      예수님의 지적은 더욱 신랄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속에 없으므로 진리가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3)      요컨대, 거짓말을 먹듯이 하고 있는 것이 사람의 입입니다. 그런데 입으로 무엇을 시인함으로써 과연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일까요?(10:10b)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이르고 으로 시인하여 구원 이르느니라”(10:10);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이르고”(10:10a); 이미 살펴본 그대로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1)       비록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그대로 행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육신의 생각과 욕심 때문에 마음은 꺾이고 따름입니다(7:22-23). 사도 바울이 그래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육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끝내 육신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버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      자기 자신을 믿을 없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제어할 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에 꺾이고 마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소원하고 있습니다; “저의 연약한 마음을 부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저의 능력으로는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수가 없습니다. 자기부터 살고자 하는 육신의 요구에 굴복하고 있는 저의 마음의 상태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으로 저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육신도 영의 소원을 따라 의인의 삶을 살아갈 있도록 만들어 주십시오”.

3)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알고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드리는 기도가 응답을 받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적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이르고”(10:10a). 그것은 사도 바울이 진작에 설명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4:3)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무자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형편과 몰골을 보게 되면 도저히 자손의 번성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자손의 번성과 민족의 번영에 대하여 언약의 확인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형편과 인간적인 판단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한번 믿어 보기로 하고 있습니다(15:6). 여호와가 창조주이심을 믿고 언약의 성취를 맡겨드린 그것이 칭의의 은혜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4)      마찬가지로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자 스스로 희생하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성도의 속사람속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성도들은 성령님과 함께 영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패한 마음도 치유가 되고 육신적인 소욕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구원의 방법을 함축하고 있는 본문의 구절이라고 하겠습니다.

(2)   으로 시인하여 구원 이르느니라”(10:10b); 사람의 마음보다 더욱 타락한 것이 입입니다. 입으로 거짓말을 먹듯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타락한 입으로 무엇을 시인하여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요?

1)      그것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그대로 자신이 의인이라고 바리새인처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18:11-12). 자신이 하나님 앞에 눈도 마주칠 수가 없는 죄인임을 발견하고서 눈물 가운데 회개하는 것입니다(18:13).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입으로 시인하고 통회한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18:14).

2)      그와 같은 맥락에서 그래도 말할 있는 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히 하나님 앞에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겠다고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으니 오로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아가서 부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회개하는 죄인에게 부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구원으로 나아가는 조치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이미 말씀드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먼저 임합니다. 그리고 이제 의인이 성도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 바야흐로 성도에게 영적인 삶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육신을 이기게 하고 하나님자녀의 영광에 이르게 하십니다. 또한 지상명령을 수행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확장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으로 시인하여 구원 이르느니라”(10:10b) 말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의 의화와 성화 그리고 영화의 단계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있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분이신 께서 모든 사람의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1-12); 역시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10:11-12a);

1)      여기서 그를 믿는 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사도 바울이 이사야서 28장의 내용을 원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하나님께서는 선민사회에 하나의 돌을 두겠다고 하십니다. 위에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자는 화급한 심판을 면하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선민 유대인 사회에 선포가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믿고 받아 들이게 되면 성도들이 믿음의 기초가 단단해지고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      그런데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부르심이 선민들에게만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선민과 이방인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자세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그들은 창조주를 모르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제멋대로 살아갔기 때문에 죄인들입니다. 둘째, 선민 유대인들도 죄인입니다. 그들은 소위 믿음의 조상들과 언약을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간다고 하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했는데(19:6)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거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3)      그것은 선민의 의무를 철저하게 저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로 멸망만이 임하기를 원하고 있는 선민들입니다.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독점하면서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축복만을 탐하고 있는 자들이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하나님 앞에 패역한 죄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헬라인과 로마인을 위시한 모든 이방인들이나 선민 유대인들이 모두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이르고 으로 시인하여 구원 이르느니라”(10:10) 하는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분이신 께서 모든 사람의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2b);

1)      선민 유대인이거나 헬라인을 위시한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구원을 얻자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속죄의 제사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수님처럼 살아가고자 결단을 하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그렇게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듭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은혜가 주어지게 됩니다.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고 개인적으로는 성화의 과정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자녀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충만한 은혜가 능력과 권세가 많으신 부요하신 하나님과 주님으로부터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10:12b).

셋째로,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선민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표로 헬라인을 예로 들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은 바울이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수도에 있는 초대교회에서 당장 사도 바울의 서신을 받아 보게 되는 자들은 대부분이 로마인들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인까지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르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한번 강조를 해두고자 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

결론적으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치 의원이 병자를 고치시듯이 그렇게 죄인을 고쳐서 의인으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사실을 알고서 이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앞으로 죄인들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창조주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인양 제멋대로 살아온 헬라인과 로마인을 비롯한 모든 이방인들이 죄인들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도 죄인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전해주고자 선민사회에 오신 예수님을 처형해버리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유대교리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자들이 선민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달라고 예수님의 속죄의 제사를 믿고서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게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나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시는 복음의 일꾼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