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6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20. 07:43

로마서 강해 66(10:5-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3 7()

 

구원을 완성시키고 있는 예수님의 믿음의 대하여(10:5-9);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인위적인 방법에 의거하여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고 있는 불쌍한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원하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10:5-9). 그것도 참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모세오경을 차례나 인용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맙니다.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디로, 예수님이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어 영생의 구원을 얻는 것보다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법, 인위적인 방법으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고 그것에 기초하고 있는 종교적인 체제를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상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수용하지를 않습니다. 외식적인 눈가림용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진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오라고 하는 예수님의 외침에 대하여 귀를 닫아 버립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여버림으로써 유대교인들의 동요를 막고자 합니다. 그것은 솔직하게 영생과 구원보다는 현세적인 유대교가 주고 있는 기득권을 더욱 선호한 그들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

(1)   사도 바울은 랍비 출신입니다. 랍비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오랜 세월 히브리정경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랍비들로부터 율법을 배워서 그것을 실천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이유는 율법을 준행함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할 있는 근거가 레위기 18장에 있음을 사도 바울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구절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8: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10:5); 참고로, 모세의 글에서 법도는 율법의 정신이며 규례는 율법의 부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에 따라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목숨을 걸어 놓고 율법을 지키고자 열심입니다.

(2)   그러나 선민들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이유를 사도 바울이 자신의 체험에 기초하여 로마서 7장에서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2-25). 사도 바울의 양심선언에 따르게 되면, 사람은 육신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뜻을 따르고 싶지만 그것이 가능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랍비 사울이 자신의 육신의 죄성을 이길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교에서 방법을 찾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남으로 말미암아 방법을 발견하고 있습니다(9:1-19).

(3)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은혜로 사함과 칭의 그리고 영생구원이 주어지고 있음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1-4). 그렇다면, 선민 유대인들은 율법을 준행하여 구원을 얻기 위하여 어떠한 방식의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이 보기에는 그들은 진짜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정직하게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율법생활을 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기본적으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영이신 하나님 여호와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은 속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그렇게 어렵게 율법생활을 것이 아니라 그저 이웃이 보기에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이 보기에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비치게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선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의인이며 구원을 받은 백성이라고 인정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위적인 율법생활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있는 외식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율법행위를 용납하고 있는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의 행태에 대하여 준엄하게 질책하신 것입니다(23).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에 선민이라고 하는 표식인 할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전과 회당에서 각종 절기와 안식일을 빠짐없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면 외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받은 선민입니다. 그와 같은 선민구원사상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회개하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10:6-7);

(1)   사도 바울은 선민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므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행한다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정직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을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들의 죄성이 깃들어 있는 육신의 요구를 잠재우고 육신에 죽음을 선언할 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이 영적인 삶을 영위할 있도록 새로 태어나야만 합니다.

(2)   그와 같은 특단의 조치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선민의 사회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해주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를 하게 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 들어가셔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와 구원의 능력이 선민들 사회에서 발생할 것임을 무려 1,400 전에 모세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라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라 것도 아니라. 오직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입에 있으머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있느니라”(30:11-14).

(3)   하나님께서는 영이십니다. 그의 말씀과 생명도 영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항상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눈가림 형식으로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계신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회개하고서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다시 바로 서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으로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미 역사속에 들어와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직면하게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이치를 사도 바울이 신명기 말씀을 원용하여 본문에서와 같이 적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10:6-7);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를 박살내시고 믿는 자를 구원하고자 모든 특단의 조치를 끝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8:1-2).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으며 음부의 권세까지 깨뜨리시고 성령님 안에서 제자들에게 임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나 마음의 문을 열고 회개하고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님을 속사람속에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1:12-13).

셋째로,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8-9);

(1)   사도 바울이 로마시에 있는 성도들과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살고 있는 그의 동족들에게 힘있게 증거하고 있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사건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예루살렘과 이방 땅에 수없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사도와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유대 땅과 이방 땅에 계속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계획을 모른다고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록처럼 이제는 하나님의 복음이 많이 전해져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10:8).

(2)   그에 따라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주로 믿고 마음속으로 영접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는 일생을 살아가게 되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을 얻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의 내용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과 성령님의 오순절 강림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미 세상에 증거가 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옛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은혜가 백성들 가까이 임하게 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도들의 복음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은 자신들의 마음문을 열어야만 합니다. 이상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또는 창조주의 전능하심을 외면하고서 인간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의인이 되고 영생구원을 성취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선민 유대인들이 그러한 인위적인 율법행위를 일삼다가 외식적인 신앙생활이라고 벌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나게 질책을 받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23).

그러므로 구원을 얻을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입에 있으며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8-9); 아무쪼록 그와 같은 하나님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