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룡전(작성자; 손진길)

소설 아룡전11(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0. 5. 18. 03:26

소설 아룡전11(작성자; 손진길)

 

아룡이 주위를 살펴보니 현장에 있던 모든 나무가 무서운 검의 기운에 수평으로 잘려지고 말았다. 그것을 다시 붙일 수는 없다. 그래서 아룡이 악선이라고 하는 자의 탈을 벗겨 본다. 중년의 잘생긴 사내이다. 그런데 그 얼굴에 언제 생긴 것인지 칼자국이 하나 끔찍하다.

그 다음에 그자의 품을 뒤진다. 엄청난 은괴와 함께 책이 한권 손에 잡힌다. ‘신검과 귀검이라고 하는 제목의 책이다. 아룡이 얼른 그 책과 은자를 자신의 품에 갈무리하고서 재빨리 현장을 벗어난다. 동료인 유장의 상태가 궁금해서이다.

현장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아룡이 안력과 청력을 극한으로 올려서 주변을 탐지한다. 다행히 사람과 짐승의 기척이 하나도 없다. 그는 안심하고서 유장이 누워있는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유장을 나름대로 진찰하면서 생각보다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단지 엄청난 충격을 받아 혼절한 것이다. 하지만 부상을 당한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아니하고 계속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다. 작은 피 흘림이라도 무조건 지혈부터 해야만 한다. 최우의 저택으로 돌아가서 의원을 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룡은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유장의 혈도를 여러 개 짚어 준다. 그것으로 급한 지혈이 끝난다. 이제는 의원의 도움만 받으면 탕제를 먹고서 회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룡은 현장을 벗어나기 전에 주변에 쓰러져 있는 암살자들의 시신을 전부 살펴본다.

구태여 그들의 복면을 벗기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품을 뒤져서 특이한 것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들 품속에 두가지를 공통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하나는, 귀면탈을 새긴 명패이다. 또 하나는, 약간의 은자들이다.

아룡은 그 귀면탈을 새긴 명패를 하나 갈무리한다. 그리고 그들의 은자들을 전부 회수한다. 그 다음에는 한 사람의 자객의 품에서 발견한 책자를 한권 급하게 수습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현장에서는 확인하지 아니하고 일단 책자이므로 자신이 간수한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그 책자가 필요하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하는 아룡이다.

그 작업이 일단 끝나자 그때서야 아룡이 유장의 우람한 몸을 등에 업는다. 보통 사람이라고 하면 그 무거운 유장을 업고서 쉽게 걸음을 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기와 외기가 하나로 융합이 되어 운행되고 있는 내공의 초 절정 고수인 아룡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최우의 저택을 향하여 달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경시내에 들어와서는 그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게 되자 아룡은 천천히 걷는다. 그리고 괜히 유장의 몸이 짐짝처럼 무거운 것으로 위장한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서 최우의 저택으로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다행히 유장이 깨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아룡은 그를 업고서 달리는 과정에서도 유장의 상태를 놀라운 청각을 사용하여 거듭 확인하고 있다. 유장이 일찍 깨어나서 아룡의 정체를 눈치채게 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세심하고도 신중한 아룡이다.  

그날 최우의 저택에서는 가마꾼들이 합숙하고 있는 방으로 최우의 전담의원이 방문한다. 여전히 졸도하고 있는 유장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를 돌보고 있는 의원이므로 그의 실력은 당연히 고려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 이름이 의선으로 불리고 있는 곽현경이다.

방으로 급히 들어서서 졸도하고 있는 유장을 진맥하고 있는 의원의 모습을 아룡이 유심히 살피고 있다. 자신이 급한 김에 현장에서 유장의 혈자리를 여러 개 지압했는데 그 수법을 눈치채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수법을 눈치챈다고 하면 그 의원이 상승무예를 익힌 자일 것이다.

아룡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다. 그 의원이 유장의 팔을 잡고 진맥하다가 갑자기 전신의 경맥을 두루 살피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주위에 앉아 있는 여러 가마꾼에게 질문한다; “누가 이 환자를 데리고 왔는가?”. 모두들 손가락으로 아룡을 가리킨다.

의선 곽현경이 21세에 불과한 젊은이 아룡을 살펴본다. 그의 눈에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그래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 참, 이상하군. 혈을 누른 솜씨가 절대고수의 것인데?... 저 젊은 가마꾼이 할 수 있는 기량이 절대로 아닌데?... 도대체 어느 고수가 행한 점혈의 수법이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비법이야  “.

그래서 의선아룡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 가마꾼을 어디에서 발견하고 이곳에 데리고 왔는가? 현장에서 즉시 데리고 온 것인가?”. 아룡은 어버버하고 입을 뗀다. 그것을 보고서 걱정스럽게 옆에 앉아 있던 장무가 대답한다; 저의 동료인 아룡은 벙어리입니다. 그렇지만 글을 알지요… ”.

장무가 얼른 사물함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어 아룡의 손에 쥐어 준다. 아룡이 그 뜻을 알고서 즉시 종이에다 글을 적는다; “제가 도망가는 자객의 뒤를 쫓다가 그만 놓쳐버렸어요. 한참 후에 현장에 돌아와보니 여전히 유장이 기절하고 있었어요. 그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지는 못했는데요… “.

그 글을 읽고서 의선 곽현경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단언하듯이 말한다; “물론 그랬을 것이야. 젊은이가 현장을 비운 사이에 누가 다녀간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절대고수가 말이지. 이 환자는 아주 행운아야. 고수를 만나 즉시 점혈을 당했기에 다행히 피가 멈추고 살아난 거야. 이자는 피가 쉽게 멈추지 않는 질병을 가진 자이거든… “.

그 말을 듣자 아룡이 유심히 의선 곽현경의 얼굴을 살핀다. 60정도가 된 사내인데 눈매가 날카롭다. 그가 하는 말을 종합하여 판단해보면 이 의원은 엄청난 무예의 고수이다. 그의 진단과 판단은 정확하기 이를 데가 없다. 딱 한가지 벙어리인 가마꾼이 그 정도의 무예를 지니고 있을 턱이 없다고 하는 매우 상식적인 선입견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사실 아룡은 고려의 무예계 절대고수와 기인들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모르고 있지만 그 의원은 보통인물이 아니다. 의원으로서 최고의 무예와 의술을 지니고 있는 마치 신선과 같은 자이다. 그래서 그 별명이 의선이다. 그가 고려의 최고권력자인 최우의 주치의인 것이다.

그날 의선 곽현경이 유장의 진찰을 끝내고 다모 새별에게 처방전을 주고 간다. 새별이 저택에 딸려 있는 약방으로 가서 탕제를 구해온다. 그리고 약탕기에 물을 붓고 탕제를 넣은 후에 정성스럽게 끓인다. 그 탕약을 이틀간 복용하더니 신기하게도 유장이 깨끗하게 낫는다.

그것을 보고서 같은 가마조인 장무와 조룡 그리고 아룡이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다모 새별도 덩달아 기뻐한다. 그녀는 이미 장무와 혼인하기로 결정되어 있기에 신랑감의 친구가 낫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그 의원의 솜씨가 대단하다. 그래서 하루는 장무가 관창에게 그 이야기를 한다. 그랬더니 장무가 관창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의원은 보통이 아니고 말고... 이곳 고려의 무예계에는 5명의 신선이 있는데 그들이 무예의 절대 강자들이지. 그들의 별명이 신선, 무선, 승선, 악선, 의선이지. 의선이 바로 그 사람 곽현경이야”.

그 말을 들은 장무가 같은 가마조원인 조룡과 아룡 그리고 유장에게 그대로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러자 조룡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그러면, 장무 형, 나머지 무예계 신선들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 살고 있지?... “.

장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한다; “안 그래도 내가 다음번에 관창에게 그것을 물어보려고 해, 한꺼번에 물어볼 것을 그랬나?... “. 다행히 조룡과 아룡 그리고 유장이 며칠 후에 그 대답을 장무로부터 듣게 된다.

그의 설명이 상당히 상세하다; “신선김경수라고 하는 자인데 그 옛날 대웅국의 장군이었다고 하더군. 그의 종적을 알 수가 없어서 신선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해. 그가 20년전에 개경에서 열린 무예경합에서 최우승을 했다고 하는데 그 다음부터 행방이 묘연한 것이야. 그리고… “.

조룡과 아룡은 전설을 듣는 기분이다. 무지하게 경청을 하자 장무가 계속 설명한다; “무선은 문무익이고 승선은 송유철인데 두사람은 사형제간이라고 해, 무선은 개경 근방에 은거하고 있고 승선은 중이 되어 전국을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또한 악선이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말이지, 그것이… “.

장무가 재미나는 이야기와 정보를 관창에게서 듣고 그대로 전해주는 것은 좋은데 꼭 중요한 대목에 가서는 뜸을 들인다. 그때마다 같은 가마꾼들이 칭찬으로나 아니면 작은 선물로 그를 대접해야 한다. 그래서 얼른 조룡이 말한다; “장무 형, 정말 재미가 있는 이야기야. 다음에 내가 한턱 낼 것이니 마저 이야기를 해 주어… “.

그 말을 듣자 장무가 조룡을 보면서 말한다; “조룡아, 너는 관창의 누이동생인 단비와 혼인할 사이가 아니냐? 내게 물을 것이 없이 손위 처남이 될 관창에게 바로 물으면 될 것인데그러니 내가 아룡유장에게만 이야기해 줄 것이야”.

그렇게 한차례 익살을 떨더니 장무가 웃으면서 설명을 계속한다; “악선이라고 하는 별명은 그자가 못된 짓을 골라가면서 하기 때문이야. 그는 일명 밤의 임금이라고 불리고 있어. 악의 제왕이라고 하는 의미이지. 돈만 주면 살인도 쉽게 해치운다고 해, 무섭지... 때로는 한밤에 귀면탈을 쓰고서 나타나기에 사람들이 악신이라고도 불러”.

그 말을 듣자 조룡이 흥미가 있는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장무 형, 그러면 악신의 이름은 무엇인데? 그리고 5선의 제자들은 또 누구 누구이지?... “. 예리한 질문이다. 그러자 장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한다; “악선의 이름은 그 옛날 임금 광종과 같아. 용서가 없다는 뜻으로 무휼이라고 해. 그런데… “.

조룡이 장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자 장무가 궁색하게 답변한다; “사실은 내가 관창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말이지. 관창도 그들의 진전을 잇고 있는 제자들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어. 그것은 무예계의 비밀인가 봐. 그러니 나도 몰라… “.

조룡이 그러면 그렇지하는 식으로 좋은 이야기를 실컷 듣고서는 미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장무는 괜히 미안해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룡이 혼자서 빙그레 웃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최우의 집무실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무활김준이 그 앞에 서서 주군과 심각한 대화를 하고 있다. 최우가 말한다; “그래, 내 딸 보령이를 습격한 놈들이 악선의 부하들이란 말이지. 그리고 귀면탈 악선도 주검이 되어서 함께 뒹굴고 있고 말이지그렇다면 나를 대신하여 악선과 그 부하들을 죽인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

그러한 질문을 받자 김준이 차제에 자신이 궁금해하고 있는 신비인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다음과 같이 주군에게 질문한다; “주군, 악선 무휼이 죽어 있는데 그 부근의 나무가 전부 가로로 절단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굉장한 내공의 소유자가 검기를 뿌린 것입니다. 이 고려에서 단숨에 검의 기운으로 귀면탈 악선을 해치울 수 있는 자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

김준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주군 최우의 안색의 변화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그러자 최우가 버럭 화를 낸다; “너희들이 그 정보를 알아서 내게 보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나도 그것이 궁금하다. 도대체 이 고려에서 나 최우가 모르는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자가 누구이며 감쪽같이 절대강자인 악선을 해치울 수가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이냐?... “.

진노하는 주군의 표정을 보자 김준이 속으로 생각한다; “주군도 모르는 자가 주군 일가를 돕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 하지만 충직한 무활은 주군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있다; “주군, 제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국왕의 심복인 상선과 왕족인 왕걸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요즘 자주 만났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악선에게 살인을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최우의 표정이 심각해 진다. 그리고 침울한 음성으로 말한다; “아직 확실한 정보가 아니니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왕을 갈아치우지 아니할 것이다. 그것은 민심을 얻지 못해. 그러니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짐작만으로 움직여서는 안되는 거야… “. 역시 신중한 최우이다.

그때부터 비밀리에 김준과 무활이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귀면탈 악선을 해치운 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자의 무예가 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비밀스러운 소문이 개경의 무예계에 은밀하게 나돌기 시작한다. 그 신비인이 주변의 나무를 모두 잘라버리는 무서운 검의 기운을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려 천지에는 그러한 무신이 없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자인가?...

또 하나의 작은 실수를 은연중에 아룡이 하고 있다. 그것은 겉으로는 의선 곽현경이 의심을 거두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날 유장의 진찰이 끝나자 처방전을 남기고 즉시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의선 곽현경은 그날 그곳에서 과연 무슨 흔적을 발견한 것일까? 그의 의심이 아룡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