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56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10. 04:06

로마서 강해 56(9:7-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25()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축복으로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게 되는 이유를 사도 바울이 이삭의 탄생과 리브가의 자녀생산에서 찾다(9:7-10).

 

창세기 1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1:26-27).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유독 아담만을 선택하여 하나님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지낼 있는 특혜를 주고 있습니다(2:8). 그리고 직전에 여호와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2:7).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지낼 있는 아담이야말로 코로 계속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을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 부부가 에덴동산에서 내쫓기게 됩니다(3:23-24). 그러므로 실락원에서 여호와의 생명의 기운을 계속 얻지 못하게 되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결과 그들 부부의 장남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게 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4:8).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겉모양만 닮아 있는 육신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5:1-2).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담의 형상을 닮은 아들이 새로 태어납니다(5:3). 이름이 입니다(4:25).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짓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4:26).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진 연약한 사람 에노스이므로 사실을 고백하면서 셋의 가문에서 영생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상과 같은 창세기의 기록을 검토해보면, 세상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대물림하고 있는 자가 있고 그러하지 못한 자가 있음을 수가 있습니다. 아담부부의 아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는 카인의 자손이 있고 영생의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있는 셋의 자손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구분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애굽 출신으로서 아브라함의 첩이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녀입니다(9:8). 반면에 믿음의 여인 사라의 몸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탄생한 약속의 아들이 이삭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예언 그대로 아브라함 부부의 신앙을 대물림하게 됩니다(17:19, 9:7).

(2)   둘째,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믿음의 자녀를 주신다고 하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89세의 불임여성인 사라에게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9:9). 그리고 이삭이 20 동안 불임인 아내 리브가를 위하여 기도한 결과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9:10). 결국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보고 있는것입니다.

(3)   셋째, 사람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그러한 역사의 창조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창조적인 역사를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불임여성을 아내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믿음의 대를 이어갈 있는 아들을 주십니다. 현실적으로 아브라함의 가정에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의 가정에서는 야곱이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아브라함에게 3여인을 통하여 8명의 아들을 주십니다. 가운데 믿음의 여인 사라에게 주신 아들이 약속의 아들로 불리고 있는 이삭입니다. 이삭에게는 불임인 아내 리브가를 통하여 쌍둥이 아들을 주십니다. 가운데 차남인 야곱이 영적인 장자가 됩니다. 당시의 가부장 족장사회에서는 장남이 모든 권리를 상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장자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사회적인 관습을 초월하여 탄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운명의 변화가 발생할 것임을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예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하심과 그것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자라야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7-8);

(1)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아브라함을 부르고 있습니다(4:16). 그런데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씨가 모두 그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대물림하는 자와 그러하지 못한 자로 자녀가 나누어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참조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하는 자는 사라의 아들인 이삭입니다. 그리고 그러하지 못한 아들이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계획에 대하여 반대를 하십니다(17:17-18). 평생 불임이며 89세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사라를 회춘시켜서 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상속하게 되는 약속의 아들 이삭이 태어나게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17:16, 19, 18:10).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9:7)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음미하고 있습니다(9:8);

1)      첫째,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은 특징이 하나는 육신의 자녀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9:8a). 구체적으로, ‘육신의 자녀 자신의 육신적인 이익과 유익만을 도모하면서 세상적인 방법으로 물질적인 성공만을 성취하고자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자녀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뜻을 깨달아 그것을 실천하고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삶의 유형을 훗날 이삭이 보여주고 있습니다(24:63, 들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이삭, 25:21, 아내 리브가의 임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삭).

2)      둘째,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9:8b). 이유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하기 위하여 태어나는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체는 사람의 상식이나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바라보고 또한 인간의 이성으로 따져본다면 분명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약속의 성취를 믿고 있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이 세상사람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아브라함은 창조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창조의 능력으로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애용하고있는 용어 믿음의 입니다(4:13). 아브라함의 믿음의 의를 대물림하게 되는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녀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자손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고 있다고 하는 것이 구원의 요건이 아닙니다.

4)      넷째, 그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되는 자녀는 구원의 약속을 아브라함처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믿음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승계하고 있는 약속의 자녀들이며 진짜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훗날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성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1:12-13).

둘째로,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9:9-10);

(1)   사람의 말씀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할 것인가? 믿음이란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상식과 통념이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통념에서 벗어난 주장을 하게 되면 금방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2)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사회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9세의 노인인 자신의 육신을 쳐다보게 되면 다시 아들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더구나 불임여성이며 89세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조강지처 사라를 쳐다보게 되면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된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심히 우스운 이야기입니다(17:16-19, 9:9). 하지만 세상적으로 우스운 사람이 되고 미친 사람이라고 취급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약속을 주신 분이 바로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15:6).

(3)   동일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약속의 아들인 이삭의 가정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하였는데 20년간 무자식입니다. 아내 리브가가 불임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치 라헬처럼 남편에게 자녀를 생산할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 것으로 보입니다(30:1). 이삭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태를 여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20:17-18, 21:5-7). 그래서 60세가 때까지 20년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25:21, 26). 결과 아내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을 임신하게 됩니다(25:21, 9:10). 그러므로 이삭이야 말로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4)   이삭보다 그의 아내인 리브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습니다. 그녀의 태중에서 아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예언의 말씀을 얻게 됩니다. 차남이 영적인 장자가 된다는 예언입니다(25:23). 가부장 족장사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예언의 말씀을 리브가가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이 어두운 남편이 자기가 편애하고 있는 씩씩한 장남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의 기도를 몰래 해주려고 때에 리브가가 하나님의 예언을 염두에 두고서 차남 야곱을 대신 꾸며서 들여보냅니다(27:1-18). 남편을 속인 벌을 리브가가 받게 되지만 그녀의 믿음 그대로 훗날 차남 야곱이 믿음의 족장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됩니다(32:28, 35:10, 48:22).

(5)   야곱 역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25:27). 에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기꾼과 같은 야곱이지만 그러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면 자신의 운명을 거듭나게 해줄 수가 있다고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28:16-22). 믿음의 응답이 그를 인생의 위기 가운데 여러 구원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31:7-13, 24, 32:28-29, 33:16, 35:5). 그러므로 믿음이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창조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끈질기게 믿고 매어 달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인 현실타당성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옳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사람만이 자신의 거듭난 인생과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보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축복으로 받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배신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이유를 아브라함과 이삭의 가정에서 찾고 있습니다(9:7-10).

아브라함은 애굽 출신의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게 되자 그를 상속자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대하십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상속할 자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머니 하갈을 닮아 무신론적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믿음의 가문의 영적인 장자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전해야만 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계자가 도저히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전폭적으로 믿고 살아가는 약속의 아들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약속의 아들을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100세의 노인 아브라함과 90세의 불임여성인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난 약속의 아들입니다.

이삭의 가정에 아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대가 끊어질 처지입니다. 그러자 이삭이 불임인 아내 리브가를 위하여 20 동안 기도합니다. 결과 쌍둥이 아들을 얻게 됩니다. 가운데 장남인 에서는 들사람이 되고 하나님신앙을 떠나고 맙니다. 차남인 야곱만이 자신의 운명을 영적인 장자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로써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 그대로 야곱이 훗날 하나님의 족장으로 가나안 땅에 우뚝 서게 됩니다. 요컨대, 사람의 운명을 육신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어 주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혈통과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사도 요한의 명제를 재음미하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1:12-13). 이방인이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저희들이 그러합니다. 은혜를 함께 찬양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