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52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6. 17:06

로마서 강해 52(8:31-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21()

 

모든 피조물을 고통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까지 희생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를 구원하여 선하게 사용하고자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33)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바로 절의 말씀, “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대하여 깊은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구절의 의미를 보다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 해보고자 합니다;

(1)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8:30a); 흔히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함께 지내시면서 복음사역을 같이 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조치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속사정을 넉넉하게 짐작할 있도록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내게로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아버지 하나님을, 5:24)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창조주 여호와) 이를 다시 살리리라(영생의 부활의 몸을 주심, 고후5:1-5, 생명에 삼킨 바가 새로운 , 3:10-12, 예수님이 얻으신 영생의 부활의 몸을 사도 바울이 얻기 위하여 평생 이방인 사도로 달려감 ) 하시니라”(6:37-39).

2)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6:44).

3)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4복음서를 살펴보게 되면 위와 같이 옛날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해 놓으신 자를(8:29)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때를 따라 사도로 제자로 그리고 성도로 보내어 주고 계십니다. 그리하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그들을 제자로 훈련시키시고 복음의 일꾼으로 세상에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2)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8:30b); 사도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내용은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뜻을 온전히 행하고 싶지만 자신의 육신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의인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도우심에 대하여 바울은 두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그리스도로 세상에 보내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과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인이 있는 기회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7:24-8:2).

2)      둘째, 성령님을 통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을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명령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것을 탐하고 있는 육신이 자신의 영적인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3)      사실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의인으로 간주가 되고 있기에 성도들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평생동안 의인으로 살게 해주기 위하여 내주하여 역사하십니다.

4)      만약 성도들이 의인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으면 성령님께서 말할 없는 탄식으로 성도들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소리를 들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계속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있도록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기에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하면서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 입니다.

(3)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c);

1)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은 평생의 소원이 예수님께서 얻으신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자신도 얻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3:10-12). 그리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아들로 인정이 되고 그리스도처럼 영광의 상급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고 있는 영화’(靈化, glorification) 의미입니다.

2)      비록 예수님처럼 적자(嫡子, 적통을 지니고 있는 아들)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자로서 창조주 여호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동일한 상속을 받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소원이 다음과 같이 로마서의 기록에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이니라 ”(8:14-17).

이상과 같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성도들의 칭의, 성화, 영화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런즉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1)   사도 바울은 죄인인 자신이(7:18-23) 도저히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써는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 그러므로 자신이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되고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서 이방인 사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그렇게 랍비 사울이었던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러서 복음의 전파자로 삼고 계시니 일에 대하여 누가 함부로 왈가왈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운명을 정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죽을 운명을 바꾸어서 이제 영생을 누릴 있는 자로 삼으시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고 계시니 일에 대하여 반대할 있는 자가 결코 있을 수가 없다고 하는 사도 바울의 확언(確言, 확실한 언명)입니다(8:31).

둘째로,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8:32a); 아들이 아픈 것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픈 법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자신이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1)      그것이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있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동일하십니다. 비록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는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아들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찢어질 듯이 아픈 것입니다.

2)      그런데 엄청난 고통을 참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민구원과 만물구원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왜냐하면,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피조물을 구원하여 영생을 누릴 있도록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께서 죄가 없으시며 영원한 신성을 지니고 계시는 독생자 아들을 사용하여 희생제사를 드리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으로 얼룩져 있는 지금의 세상을 없이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65:17-20, 21:1-5).

(2)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b); 독생자에게 십자가 죽음의 고통까지 감내하게 하면서 얻고자 하신 것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서 세상에 파송하여 그리스도처럼 복음사역을 하게 하십니다(28:18-20). 복음을 듣는 자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복음사역의 길에 세상의 핍박과 환난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집착하고 있는 성도의 육신이 또한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간구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유를 사도 바울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8:32b) 구절로 웅변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8:33); 사도 바울이 여기서 고발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용어는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특별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랍비 사울이었던 바울이 이방인 사도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초대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사도직(使徒職, 사도의 직분)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의 전력(前歷, 옛날의 경력) 대하여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두가지 사실을 가지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유대교의 율법선생인 랍비였던 자신을 선택하여 초대교회의 이방인 사도로 발령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과 발령이 잘못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시비이며 있을 없는 행위입니다.

(2)   둘째, 죄인과 의인을 판정하는 마지막 법정은 하나님의 법정입니다. 결코 세상의 법정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랍비 사울을 불러서 회개시키시고 성도로 삼아 주시면서 의롭다고 간주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결정사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최종결정에 대하여 유대교인들이나 유대주의자들이 함부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결정을 뒤집어버리려고 하는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 자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가치는 스스로 또는 사회적으로 매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가치를 매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을 포함하여 성도의 가치가 세상의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는 놀라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시면서까지 같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의인으로 간주하여 성도로 삼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에 대하여 긍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시고 구원하여 사용하고 계시는 성도이기에 남은 인생을 헛되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떠한 고난이나 핍박에 있어서도 결코 굴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깨달음과 인식이 성도 여러분들의 것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