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51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5. 23:32

로마서 강해 51(8:29-3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20()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하는 구원의 방법을 예정하셨다는 사도 바울의 언급에 대하여(8:29-30);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들의 형상’(形象, 영어로는 image, 헬라어로는 ειΚоνоѕ)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 용어는 창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아담의 형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엿볼 있는 것으로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영적으로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모두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미가 어떻게 연결이 되어 본문에서 사용이 되고 있는지를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세기 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십니다(1:26-27). 따라서 인류는 하나님의 내적 성품인 형상과 외적 모습인 모양을 닮도록 창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서 실패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인 형상이 바래어지고 대신에 외적인 모습만이 남게 됩니다.

(2)   둘째,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 넣자 생령으로 살아가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2:7). 그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아담이라고 개인적으로 불러주고 있으므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2:8, 19-25, 3:9).

(3)   셋째, 그러나 아담마저 아내 하와가 선악과를 받아 먹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는 죄인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3:6). 결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피하게 됩니다(3:7-10).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 그의 장남이 동생을 살해하게 되는 가정의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어두워지고 겉모양만 사람인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것입니다(4:7-8, 5:1).

(4)   넷째,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형상을 닮아 있는 또다른 아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름이 ’(Seth)입니다(4:25-26, 5:3). 아들을 낳아 이름을 에노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름의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human being with mortal body)입니다. 그리고 아들 에노스 함께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4:26).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피조물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시고 영생의 구원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4:26).

(5)   다섯째, 히브리정경에서 의인의 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셋의 집안입니다. 노아 홍수를 거치면서 장자인 셈의 집안이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아르박삿의 가계에서 하나님신앙을 보전하게 됩니다. 후손 가운데 아브라함이 나타나서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방지역에서 하나님신앙을 보여주는 선지자로 살아가게 되면 가는 곳마다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이 전해진다는 것입니다(12:1-5).

(6)   여섯째,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16). 이유는 바랄 없는 소망에 대하여 단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아브라함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15:4-6). 그것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창조의 능력을 믿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신앙의 회복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믿음의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13).

(7)   일곱째,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아브라함이 선을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가지게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십니다.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설명해주고 백성들의 모든 연역함을 치유하십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결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서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께서 내주 역사하시는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전개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이 되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8)   여덟째, 그와 같은 진리를 사도 바울이 확실하게 믿게 되는 것은 특이한 그의 영적인 체험 때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랍비 사울은 태양보다 밝은 빛으로 그를 찾아오신 여호와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게 됩니다(9:3). 그때 사울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ẟоξα) 형상(ειΚον) 가지시고 사울에게 나타나신 분이 바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그가 깨닫게 됩니다(9:4-8). 그러므로 랍비 사울은 이방인 사도인 바울로 살아가게 되면서 그의 깨달음은 로마서 1 16-1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9)   아홉째, 사도 바울이 본문에서 로마시의 성도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공생애를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8:29). 둘째,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면 성도들에게 칭의’(稱義, justification) 은혜와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은혜가 주어집니다(8:30a). 셋째,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영화’(靈化, glorification) 은혜마저 얻게 되는 것입니다(8:30b).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대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8:29a);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16). 이유는 율법의 아니라 믿음의 아브라함에게서 발견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4:13);

1)      사실 아브라함은 주전 21세기의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전 15세기 출애굽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통하여 선민사회의 율법으로 선포가 때로부터 600 전의 사람입니다. 그에 따라 아브라함은 율법에 기속(羈束, 굴레가 씌어 지는 ) 되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2)      더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이 놀라운 말씀을 얻고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범사를 하나님의 앞에서 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완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의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속이고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능력에 의지하여 일을 도모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이며 온전한 성취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모든 일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약속들, 예를 들면 자손의 번성이나 가는 곳마다 자신을 통하여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주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감으로써 언약이 실현이 되는 현장을 보고자 것입니다(15:6). 그것이 아브라함이 의인임을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입니다. 또한 히브리정경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4)      아브라함의 사례가 일종의 시험연구’(a pilot study)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연구가 끝나자 그것을 전면적으로 확대하여 시행하고자 하십니다. 방법이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보내셔서 공생애를 통하여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믿음의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부활과 영생을 얻게 되는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보고 듣게 됨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에 나서게 것입니다.

5)      그것을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또한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8:29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가지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통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계획은 아브라함의 시험연구가 있기 훨씬 전에 벌써 예정이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부활 그리고 승천 등이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어떠한 인생을 살아가야하며 장차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 없이 누구나 회개를 하고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b);

1)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하게 회복한 최초의 열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음에는 사도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전철을 따라서 복음사역의 일생을 마친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고전15:20-24, 3:9-16).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형상과 부활의 맏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8:29b, 고전15:20).

2)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많은 생명을 살려서 하나님나라에 함께 데리고 가기 위한 것입니다(6:38-39). 그들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원히 함께 있는 영생을 주고자 하십니다(6:40). 그러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서 밝히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둘째로, 미리 정하신 그들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미리 정하신 그들 또한 부르시고”(8:30a);

1)      사도 바울의 예정론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받게 하기 위하여 성도로 미리 예정하신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어디서 예정하셨는지 언뜻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인식을 가지고 활동을 그때부터 자의식(自意識, self-consciousness)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육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성도로 예정하셨다고 사도 바울이 적고 있으니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2)      그런데 그것은 두가지 차원에서 생각을 해보면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첫째, 육신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사람의 영은 벌써 하나님 안에 들어 있습니다(40:21, 42:5, 43:1, 48:16,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둘째, 피조물인 사람은 시공간에 갇힌 존재이지만 영이신 하나님은 제약을 벗어난 초월자이십니다.

3)      참고로, 사람들은 육신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은 공간적으로 여기에’(here), 그리고 시간적으로는 지금’(now) 갇힌 존재입니다.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반면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바로 영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개인적으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이곳과 저곳과 그곳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느 곳에서 필요하다면 모든 피조물과 만나실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하나이며 공간도 하나로 집약이 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태초의 예정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예정하셨다는 사실과 별로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4)      태초에 예정이 자들은 때가 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는 성령님을 통하여 반드시 성도로 부르십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소산을 내시며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42:5-6), “너희는 내게 가까이 나아와 이것을 들으라. 내가 처음부터 비밀히 말하지 아니하였나니, 그것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에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48:16). 부르신(calling out) 자들에게 복음사역의 사명을 주시고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하십니다(28:18-20, 1:8).

(2)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8:30b); 성령님을 사람들에게 내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있어야만 합니다. 죄인에게 하나님의 영을 그대로 임재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성도로 예정한 사람들을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앞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십니다(8:30b). 나아가서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데 헌신하겠다고 결단하고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을 임재하도록 조치해주시는 것입니다(2:1-4).

(3)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30c); 흔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3단계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의화(justification) 둘째가, 성화(sanctification) 셋째가, 영화(glorification) 단계입니다. 본문과 관련하여 약간의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를 백성들이 자신을 위한 속죄의 제사라고 믿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을 얻어서 성도가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인정하여 성도들에게 이제부터 죄가 없다 하시고 의인으로 간주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칭의또는 의화’(justification)입니다.

2)      의인이 성도가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심을 하고서 일을 감당할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달라고 간구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임재하십니다. 성도는 이제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땅끝까지 복음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믿음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 성화’(sanctification) 단계입니다.

3)      성도가 땅에서의 사명을 마친 다음에는 소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말에는 영생의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그것이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정론 원형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예정론은 그가 정통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에서 이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3장에서 여호와께서는 범한 아담 부부를 에덴동산에서 실락원으로 추방하시면서 훗날 그들의 죄를 가려주고 구원하시겠다는 의미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십니다(3:21). 그리고 여자의 후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탄의 머리에 해당하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박살하시겠다고 예언의 말씀도 주십니다(3:15, 8:2).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을 하신 다음 여호와께서는 다시는 홍수심판을 시행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조하십니다(9:11). 대신에 악의 뿌리를 도려내는 방법으로(8:21-22) 구원을 하시겠다는 의미로 소위 무지개 언약 세우십니다(9:11-17). 그렇게 창세기에서부터 구원이 예정되어 있기에 사도 바울이 자신 있게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시려고 태초에 계획하시고 성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때를 따라 부르고 계신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8:30).

하나 있는 사실은 사람의 육신은 시공간에 사로잡혀 있지만 영혼은 실로 태초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26-27, 5:3). 형상이 날로 어두워져 있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자녀의 형상을 회복해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8:29).

그리고 성도의 남은 인생은 성화에 이어서 영화의 단계를 걷게 됩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세상에서 날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어 있는 성도님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지상명령을 수행하시면서 하나님자녀로서 거룩한 성화도 이루시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시는 영생의 영광을 모두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