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9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5. 03:14

로마서 강해 49(8:22-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8()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들의 탄식과 고통과 인내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가?(8:22-25)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들의 소망이 다음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21). 소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8:34-36).

위에서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육신은 죄의 종입니다. 둘째, 죄의 종으로 살게 되면 모든 육신은 썩어지는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 영생의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흙으로 만든 육신을 가진 모든 피조물들은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집에서 영생을 누릴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넷째, 구원의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찾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자신들을 구원하여 영생구원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원과 대속의 사역을 계승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기를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8:19). 생각해보면, 모든 성도들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양자의 영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영적인 삶을 구가하고 있습니다(8:15).

영적인 삶의 특징은 성도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직분을 행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8:14). 하나님 아들의 사명이 바로 예수님의 사명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어 만민을 구원하신 것처럼 이제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므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자녀가 성도들이 남은 인생 가운데 해야만 하는 일은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른 피조물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자녀들의 영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녀로서의 직분을 행함에 있어서 여전히 한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힘이 아직도 강하기 때문에 육신을 벗는 그날까지 탄식이 절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8:23).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과 같이 성도들도 완전한 하나님 아들의 자유함과 영생에 이를 때까지는 육신의 탐욕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그때마다 탄식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임재하신 성령님께서 나를 강력하게 보호하시고 세상과 육신을 넉넉하게 이기도록 만들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7:21-25).

그리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직분을 인내로써 행한 다음에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해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한편, 그러한 기도 가운데 성도들이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소욕을 아직도 체험하고 있는 성도들이기에 모든 피조물들이 썩어지는 육신과 허무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탄식하며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8:22). 마디로, 모든 피조물들의 간구와 소망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알게 되는 유익함입니다(8:24-25).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니느라”(8:22);

(1)   모든 피조물이 겪고 있는 탄식과 고통을 성도들이 익숙하게 함께 느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사람과 피조물이 모두 동일하게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육신을 입고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흙에서 발생하여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허망한 운명을 지니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볼 때에 한숨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2)   더구나 썩어질 운명을 가진 육신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마치 불멸의 존재라도 있는 듯이 욕심을 부리며 탐욕에 젖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이 육신의 허무와 썩어짐의 운명을 벗어 나서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같은 고통과 간구함이 역시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을 지니고 있는 모든 피조물에서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8:22).

둘째로, 아니라 또한 우리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23);

(1)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사함과 칭의를 받은 자들입니다. 더구나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사명을 감당할 있도록 성령님의 임재를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1:8). 따라서 성도들은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마치 그리스도처럼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지만 성도들의 영적인 삶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육신의 탐욕과 이기심을 모두 이길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육신의 연약함을 탄식하면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땅에서의 복음사역을 끝내고 고통스러운 육신을 벗고서 영생의 부활의 몸을 입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니라 또한 우리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23).

(3)   그렇지만 그러한 고통을 견디며 복음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유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동일한 육신의 고통 가운데서 벗어나기 위하여 함께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형편을 체험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니느라”(8:22).

셋째로,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8:24-25);

(1)   사도 바울은 소망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보이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며 세상의 육신적인 변화를 갈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변화이며 하나님께서 새로이 창조하시는 영생의 나라를 희구하고 있는 소망입니다.

(2)   첫번째 소망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구현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애를 쓰면 성취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러나 두번째 소망은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애초부터 사람의 능력과 지혜의 한계를 벗어나 있습니다. 오로지 창조주의 능력과 지혜로써만 건설할 있는 영생의 나라이며 모든 피조물의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피조물인 인간은 참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해야만 합니다(8:24-25).

  결론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인간적인 성질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피조물의 법도를 벗어 나서도 안됩니다. 자신의 힘과 지혜로 수가 있다고 함부로 소리를 쳐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아니했는데 먼저 뛰어나가 외쳐서도 안됩니다.

요컨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때를 인내로써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실한 종의 자세입니다. 육신을 입고서 남은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끝까지 명심해야만 하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성도들이 신앙생활의 기본을 지켜야만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인내로써 놀라운 소망을 성취하시는 성도님들의 영적인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