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4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4. 4. 04:50

로마서 강해 48(8:18-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2 17()

 

만민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까지 구원할 있는 하나님 자녀의 영광에 대하여(8:18-21)

 

본문에 대한 이해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두가지 사실을 먼저 기억하고 의미를 고찰해보게 되면 어느 정도 이해의 실마리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고 있는 두가지 사실에 대하여 먼저 찾아서 고찰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늘과 땅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십니다. 오늘날 구약으로 불리고 있는 히브리정경을 살펴보면,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65:17-18);

1)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역사 가운데 현실로 나타날 것임을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내가 하늘과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보매 거룩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같더라”(21:1-2).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약육강식과 핏빛에 물들어 있는 지금의 하늘과 그리고 바다는 사라지고 맙니다. 또한 사람들이 짓지 아니한 새로운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만들어져서 땅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적인 권위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의 전당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는 것일까요? 지금의 하늘과 땅과 바다가 사라지고 새로운 천지가 전개되는 변혁이 어째서 필요한 것일까요? 이유를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본문에서 찾아보자면 그것은 허무한데 굴복할 수밖에 없는 피조물들의 신세를 변화시켜주기 위한 입니다(8:20). 좀더 구체적으로는 썩어짐의 노릇을 하고 있는 피조물들을 그들의 간절한 소망대로 해방시켜주기 위한 입니다(8:21).

(2)   둘째,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질서가 하늘과 땅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의 질서는 핵심이 허무한 피조물의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의미가 있는 생명으로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썩어짐의 노릇을 하고 있는 피조물들의 육신적인 삶을 이제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 생명을 돌보고 살려주는 소위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공생의 관계로 변화시켜주는 것입니다;

1)      그와 같은 새로운 질서의 창조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거룩한 모든 곳에서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5-9). 마디로, 평화공존과 상생의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을 돌보고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정신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새로운 생명의 세상이 펼쳐질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그의 계시록에서 역시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가운데로 흐르더라.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노릇 하리로다”(22:1-5).

3)      말씀의 요지를 정리해봅니다; 첫째, 옛날 에덴동산에서 강물이 흘러나와서 동산 바깥의 세상에서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 들어 갑니다(2:10-14). 강과 바다가 만나고 있는 삼각주에서 농업이 발생하고 문명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이 생명수가 흘러나와 새로운 천지에 생명력을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생명수의 언덕에서 생명나무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잎사귀에는 치유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가 능력으로 치유가 되고 있습니다. 셋째, 피조물은 본래 여호와의 얼굴을 보게 되면 녹아지고 소멸이 되고 마는 허무한 존재입니다(33:20, 벧후3:12). 그러나 하늘과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기쁨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주를 경배하고 있습니다(5:13).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마치 카인의 표나 대제사장의 금패처럼 그들의 이마에 영생의 보호하심으로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15, 28:36-38).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8:18);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생각하건대”(8:18a); 참으로 흔치 아니한 표현을 사도 바울이 여기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짐작이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장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양자로서 영생의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확신하고 있습니다(8:15-17). 그런데 그가 어째서 여기서는 확신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단지 생각하건대”(8:18a)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첫째, 자신이 짐작도 없는 엄청난 일이 장차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고난과는 비교도 없는 엄청난 영광이 자신과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놀라운 영광을 사도 바울이 아직 경험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사역을 마친 다음에 장차 경험하게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정직하게 생각하건대라고 자신의 짐작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현재의 고난”(8:18b); 지금 사도 바울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정치적 종교적인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첫째, 로마제국이 황제를 현인신으로 숭상하지 아니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하여 정치적인 박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둘째, 유대교인들이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로마제국에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리며 적발이 되는 경우 순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간헐적인 것이기에 그나마 숨을 돌리며 복음전파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순교자의 피를 먹고서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라고 하는 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은 이방인 사도로 일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더욱 현실적인 것입니다.

(3)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8:18c);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약속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의 능력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는 것입니다;

1)      다만 문제는 약속의 상대방인 사람들이 언약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창조주의 능력에 의하여 반드시 성취가 것임을 철석같이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써는 언약을 모두 지켜 행할 수가 없지만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 영적인 능력을 받아서 넉넉하게 실천할 수가 있다고 믿고서 전진하는 성도들에게는 장차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할 것입니다.

2)      영광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세가지를 이미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얻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8:12-13). 둘째,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능력과 지혜의 뒷받침을 얻고 있습니다(8:14-16). 셋째, 땅에서의 사명을 마친 다음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8:17). 요컨대, 성도의 삶을 살아갈수록 인생 가운데 풍성하게 주어지고 있는 영적인 은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질 하나님나라에서의 놀라운 영광에 대하여 그는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피조물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말미암음이라”(8:19-20); 역시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피조물 고대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8:19);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천하만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1)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대속자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점에 대하여 속칭 영적인 창세기라고 불리고 있는 욥기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말이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위에 서실 이라.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그를 보리니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이 초조하구나”(19:23-27).

2)      자신의 모든 재산과 자녀가 하루 아침에 허무하게 사라져버리고 일신에 병마저 깊어지자(1:15-21, 2:7-8) 욥은 죽기 전에 여호와를 만나서 의인으로 살아온 자신에게 어째서 죄인의 벌이 임하고 있는지 이유를 시원하게 듣고자 합니다(7:20, 10:2, 13:24, 16:7-22). 그러하던 욥이 느닷없이 대속자가 훗날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9:25). 그리고 자신이 죽더라도 대속자를 만나고 싶다고 소원합니다(19:26-27). 이유는 마디로, 자신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의 하나님 앞에서 의인의 영광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고난 가운데 얻을 있는 최상의 상급입니다.

3)      사람들이 누리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최상의 상급을 모든 피조물들도 얻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하나님의 양자가 성도들이 많이 나타나서(8:14-15)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셔서 사람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을 함께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과 천하만물)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2)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자기 뜻이 아니요”(8:20a); 여기서 허무하다 하는 말의 뜻은 유한한 삶을 살다가 허망하게 소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육신입니다. 모든 육체는 흙으로 빗은 것이며 흙에서 생산이 것들이기에 수명을 다하게 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따름입니다(3:19, 3:20). 결코 영적인 생명을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적인 삶이 허망한 것이므로 모든 창조물들은 영생의 하나님께 구원과 영생 얻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영생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얻을 있는 은혜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는 피조물들이 대를 이어가면서 허무한 죽음의 반복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3)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말미암음이라”(8:20b); 창세기를 보면 노아의 시대에 홍수심판이 끝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9:8-11). 그것이 이른바 무지개 언약입니다(9:12-17);

1)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약육강식과 포학으로 인도하고 있는 악한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세상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방법을 모색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영생구원의 역사가 세상에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2)      따라서 노아의 시대 무지개 언약으로부터 언약이 성취가 되는 그리스도의 오심때까지는 모든 피조물들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점을 사도 바울이 여기서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말미암음이라”(8:20b)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임하기 전까지는 모든 피조물들이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아 허무한 일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라는 썩어짐의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 이르는 것이니라”(8:21);

(1)   모든 피조물들이 단지 나고 자라며 다음에는 쇠퇴하고 사멸이 되고 마는 허무한 일생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피곤한 육신의 썩어짐의 주기(週期, cycle) 대를 이어가면서 되풀이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도와 간구가 간절합니다.

(2)   마침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속죄의 제사를 지내십니다. 결과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부터 먼저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여 세상 만물의 구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3)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제는 성도들과 세상만물이 함께 구원을 받아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을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하늘과 땅의 창조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라는 썩어짐의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 이르는 것이니라”(8:21) 증거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의 증거가 옳다는 사실을 사도 요한이 훗날 그의 계시록에서 역시 증언하고 있습니다; “ 내가 하늘과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내가 보매 거룩한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같더라”(21:1-2).

따라서 사도 바울의 말그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은 사람들만의 구원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그리고 사이에 있는 만민과 만물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어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앞장을 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구원을 위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며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갈 때에 성도들이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놀라운 미래상을 바라보면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