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년 손진길 목사 설교문

영감이 넘치는 고라 자손들의 시편 제85편(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29. 14:09

제목; “영감이 넘치는 고라 자손들의 시편 제85”(85:1-13)

설교일; 주후 202144일 부활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29일 월요일 작성)

 

오늘날 구약으로 불리고 있는 히브리정경에는 영감이 넘치는 150편의 시가(詩歌)가 시편이라는 이름 아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의 시대 찬양대장을 지낸 헤만이(대상6:33) 소속된 고라 자손들의 시가가 11편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 고라 자손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 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성전의 실무 총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라 자손들이 바로 레위인들 가운데 제사장 가문인 아론의 집안을 제외하면 대제사장의 신임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실무적인 실세들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들의 중시조인 고라는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에서 모세와 아론의 사촌이어서 그런지 여호와를 섬기는 성막에서 최고지도자인 모세와 대제사장인 아론의 집안을 제외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큰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16:8-9). 그러나 그는 욕심이 지나쳐서 그만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감히 여호와 하나님이 세우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하는 어리석은 일을 자행하고 마는 것입니다(16:1-3, 10-11);

소위 고라 도당의 반역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그 일로 말미암아 고라의 살아남은 자손들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른바 죄인의 가문이 되고 있습니다(26:11, 27:3). 하지만 고라 자손들은 심기일전하여 여호와신앙에 철저를 기하면서 신원회복의 그날을 바라며 은밀하게 제2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장자인 비느하스를 돕게 됩니다.

출애굽 4011월말에 요단강 하류의 동편 모압 평지 싯딤 지역에 진을 치고 있던 이스라엘의 진지에서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군부의 지휘관들과 군사들 가운데 일부가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서 그만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브올 산에 올라가서 우상을 섬기는 한편 여사제가 된 모압 여인들과 육체적인 향락을 즐기고 만 것입니다(25:1-3);

   

그 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진지에 전염병이 창궐하게 됩니다(25:4). 그 사건의 궤적을 면밀하게 추적한 비느하스에 의하여 적들의 미인계와 이스라엘 젊은이들의 영적 및 성적 타락의 시발점이 밝혀지고 맙니다. 아람의 거짓선지자 발람의 계책을 돈을 주고 사들인 미디안의 왕들이 재색을 겸비한 공주 고스비를 이스라엘 진영에 첩자로 밀파하여 시므온 지파의 젊은 지도자 시므리를 유혹한 결과 족장 시므리의 비호 아래 자행된 조직적인 적들의 이스라엘 와해 전략인 것입니다(25:14-18, 31:8).

여호와신앙이 투철한 젊은 비느하스가 분노합니다(25:11, 13). 시므리의 장막에 쳐들어가서 단숨에 자신의 장창으로 시므리와 고스비를 척살하고 맙니다(25:8);

비느하스의 보고를 받은 최고지도자 모세는 시므리의 전철을 밟고 있는 이스라엘 진영의 지휘관들과 장정들을 색출하여 전부 처형합니다(25: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 앞에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그 결과 비록 24천명이 전염병으로 죽게 되는 큰 상처를 남겼지만 이스라엘 백성 240만명은 전멸을 면하게 됩니다(25:9). 당시 비느하스를 적극 지지하면서 여호와신앙을 새롭게 하는데 있어서 큰 일을 실무적으로 담당한 자들이 고라의 자손들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들은 신원이 회복되고 제3대 대제사장 자리에 오른 비느하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됩니다.

훗날 복권이 된 고라의 자손들이 솔로몬의 성전에서 실무적인 총책을 맡게 됩니다(대상9:34). 그들이 성전의 찬양대를 이끌고 있으며 제물을 보관하고 있는 창고를 관리하는 한편 성전의 문지기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라 자손 가운데 살룸의 집안이 진설병과 전병을 굽고 성전 문을 지키는 일에 열심입니다(대상9:17, 31-32).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앞장서서 백성들에게 히브리 정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고라 자손들이 히브리경전을 얼마나 열심히 연구하면서 대를 이어 공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특히 에스라 시대에 제2성전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살룸의 자손들이 그러합니다(2:42, 10:24, 7:45).

그러한 고라 자손들이 시편에 11편의 빛나는 시가를 남기고 있습니다(42, 44-49, 84-85, 87-88). 그 가운데 제88편은 고라자손으로서 에스라학파인 헤만이 직접 만든 시가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들의 놀라운 영감을 맛볼 수 있는 시편 가운데 특별히 제85편을 선택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면 강해설교를 위하여 각 구절을 살펴보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제국의 침략군에게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 대부분이 앗수르의 변방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17:6). 그리고 136년이 지나자 마지막 제사장나라 다윗왕조 유다왕국마저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1-12).

그렇지만 여호와의 돌보심으로 훗날 신바벨론제국이 바사의 영웅왕 고레스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주전 538년경 페르시아제국이 성립되자 고레스 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1:1-4). 그 이유는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고레스 황제가 여호와의 은덕으로 천하통일을 하게 된다는 여호와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45:1-6).

다윗가문을 계승하고 있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을 승계하고 있는 예수아가 자원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렇지만 귀환자의 수는 전체 이스라엘 자손의 1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감격스럽게도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축합니다(6:15-18). 하지만 그 규모는 솔로몬성전의 4분의 1규모에 불과합니다. 페르시아 황실의 재정지원이 그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주전 458년경 페르시아의 수산궁에서 율법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황제의 총애로 백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 제2성전은 지어져 있으나 유대인들에 대한 율법교육이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제자들을 길러 소위 에스라 학파를 만들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 고라 자손 중 살룸의 후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전 5세기에 고라 자손들이 중심이 되어 에스라 학파에서 영감이 넘치는 시가를 모아서 시편을 편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고라 자손들의 시가가 오늘 살펴보게 되는 제85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첫 문장이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는 동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언약의 백성으로 다시 살아가게 되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게 된 것이 모두 여호와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감격은 고스란히 여호와 찬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첫째, 죄를 범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여호와께서 용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노를 돌이키신 여호와의 은혜입니다(85:3). 피조물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죄악을 범한 자를 온전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용서의 은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은 결코 여호와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출애굽기 제32장에서 모세가 이미 예언한 그대로 그들의 죄를 가릴 수 있는 대속자를 보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32:34). 그것이 이미 천상에서 확정된 사실이기에 그 시제가 과거형입니다. 그러한 의미가,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라는 찬양 가운데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전 5세기에 고라 자손들은 그와 같이 대속자의 오심을 은연중에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의 내용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죄악을 범한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아담부부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3:21).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정경에 밝은 고라 자손들이 대속자 메시아의 오심을 여기서 미리 찬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85:2).

둘째로,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6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은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성품 헤세드입니다. 그렇지만 피조물인 인간들은 그러하지를 못하고 변덕이 심합니다.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짓고 감격에 겨워 이스라엘 자손들은 한때 여호와신앙에 전념하고자 결심하지만 다시 실족하고 맙니다.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여호와신앙이 식어가고 십일조 규례마저 지키지 아니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성전에서 먹고 살 방도가 사라진 레위인들이 살길을 찾아 뿔뿔이 지방으로 떠나가고 맙니다.

주전 410년경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당시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소선지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1:13, 3:8-9).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선견자인 고라의 자손들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임하시는 여호와의 진노를 예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그들의 간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완전한 회복의 역사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6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주를 기뻐하게 아니하시겠나이까?”. 과연 그와 같은 시대가 언제 예루살렘에 찾아오게 되는 것일까요? 적어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이 있게 되는 주후 1세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시대가 속히 오기를 고라의 자손들이 소망으로 부르짖고 있는 시가가 바로 제85편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고라 자손들이 여호와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성품인 자비와 긍휼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85:7). 왜냐하면, 온전한 율법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력으로 그러한 상급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장차 어떠한 방법으로 죄를 범한 백성들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만드시는 것일까요? 그와 관련하여 고라 자손들은 장차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선포하실 말씀의 비밀을 미리 알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85:8a).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특히 성도들에게 영원한 화평의 제물을 주신다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5:8b).

여기서 성도를 가리키고 있는 히브리어가 복수로는 하시딤이고 단수로는 하시드(חֲסִידָ֑יו)입니다. 그것은 경건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말하고 있는 히브리어가 살롬’(שָׁלֹ֗ום)입니다. 하시딤에게 살롬을 주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영원한 속죄물로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이제부터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한평생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자녀가 되는 영적인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1:12-13, 6:40). 반면에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믿으며 예수님의 모범을 쫓아 살아가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의 심판이 그대로 임하고 마는 것입니다(5:27-29, 25:40-41).

넷째로,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 10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1)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 대해서는 창세기 제22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 경외자로 여김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기 때문입니다(22:12). 그와 같은 맥락에서 논하자면 이 세상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모범을 쫓아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치는 하나님 경외자가 있고 그러하지 아니한 불신앙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2)   성경말씀은 그렇게 하나님 경외자와 불신앙자로 백성들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러한 구분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율법을 가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율법을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이방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방인들은 여호와의 저주를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그 옛날 유월절 출애굽의 역사에 기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그런데 신기하게도 본문에서 고라 자손들이 9 진실로 그(주님)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이에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리이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무조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지의 여부를 따져서 구원을 베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인위적인 구별이 아니라 하나님 경외 여부를 가지고 구원을 베풀고 있으니 그것이 감격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고라 자손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여호와 경외자에게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4)   특히 제10절과 제11절이 백미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화의 기법을 사용하여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성령님에 의하여 실현되는 과정을 알기 쉽게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0 긍휼진리가 같이 만나고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 나누어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대속자로 보내어 주신 이유가 두가지입니다; 하나가 긍휼이고 또 하나가 진리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훗날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잠자고 있는 모습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시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26:4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인 인간들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고자 스스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을 위하여 먼저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대속자로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3:16).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나라의 율법으로 주신 여호와의 뜻은 본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한 것입니다(19:4-6, 11:29, 19:22-25). 그런데 그 복음의 진리를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굽인들에게는 장자의 죽음으로 심판을 베푸시고, 반면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뿌린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원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말씀의 뜻이라고 한정하고 있습니다(12:12-14). 그것이 그들이 믿고 있는 유대교의 교리입니다.

그와 같은 선민우월사상과 이방인 멸시사조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며 비()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여호와의 말씀의 바른 뜻을 나타내고자 완전한 계시자로서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십니다. 훗날 성령님의 진리에 대한 증거하심도 그 맥락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의는 창조주의 공의(righteousness)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은 피조물을 골고루 모두 돌보고 그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모세오경에서부터 고아와 과부 그리고 생계의 위협에 처한 나그네와 생계수단이 없는 레위인들을 돌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점을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재삼 강조하십니다(5:43-48);

그러나 선민우월사상과 유대교지상주의를 신봉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맙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가 이 땅에서 패배하고 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인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는데 있어서는 성공했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감찰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잊어버렸기에 결국에는 큰 실패를 경험하고 맙니다.

본문을 참조하면, “10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하였도다라는 말씀의 뜻을 유대교지도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고 선민구원사상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하게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유대 땅에 보내어 주셨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애가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를 이 땅에서 계시하고 있는 것인 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맙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죽음의 땅에서 영생의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85:11a). 고라 자손들이 예지하기로는 먼 훗날 창조주 하나님께서 무덤속의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새로운 새언약의 시대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하지만 그들은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백성들이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하감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85:11b);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지도자들은 400여년 전의 선견자 고라 자손들보다 영적으로 훨씬 무지합니다.

작은 결론을 맺어보자면, 진리의 성령님과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 땅의 성도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곧 복음의 시대입니다. 그와 같은 먼 훗날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400년전에 고라의 자손들이 벌써 여기서 영감에 넘치는 깨달음의 시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법을 사용하여 은유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시편 제85편인 것입니다.

다섯째로,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행하며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으리로다”; 마지막으로 고라 자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길에서 한때 실족할지라도 종래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육간의 축복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85:12a). 그에 따라 한동안 버림을 받게 되는 약속의 땅이 먼 훗날에는 다시 회복이 될 것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85:12b). 그래서 그런지 주후 70년에 로마의 군대의 침입으로 멸망을 당한 이스라엘 사회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기적적으로 현대 이스라엘 국가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고라 자손들은 훗날 이 땅에 대속자 그리스도께서 오시는데 그 분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정직하게 실천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85:13a). 그리스도께서는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 대신에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그 모범을 보일 것입니다(85:13b).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에 오시면 백성들을 긍휼하게 여기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대속물로 주실 것이라고 고라 자손들이 은유적으로 의인화 기법을 사용하여 시편 제85편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만민구원의 진리를 이 세상에 보여주며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세를 얻는 길입니다;

그와 같은 복음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고라 자손들의 깨달음의 노래인 시편 제85편을 천천히 묵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많은 영적인 깨달음과 성실한 실천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참고자료; 시편의 저자 별 분류입니다;

(1)1 1) 다윗의 : 37(3-9, 11-32, 34-41)

(2)2 1) 아삽의 : 1(50). 2) 고라 자손의 : 7(42, 44-49). 3) 솔로몬의 : 1 (72). 4) 다윗의  : 18(51-65,68-70)

(3)3 1) 다윗의 : 1(86). 2) 아삽의 : 11(73-83). 3) 고라 자손의 : 4(84-85, 87-88). 4) 에스라인 에단의 : 1(89)

(4)4 1) 다윗의 : 2(101,103). 2) 모세의 : 1(90)

(5)5 1) 다윗의 : 15(108-110,122,124,131,133,138-145). 2) 솔로몬의 : 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