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13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12. 07:54

로마서 강해 13(2:12-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13()

 

유대주의와 헬레니즘을 넘어서는 복음사상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2:12-16)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믿고 있는 복음이 유대주의나 헬레니즘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민이고 다른 족속들은 모두 이방인들이라고 하는 이분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인 유대인들은 비록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했지만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세상에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지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며 선민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2:12a). 하지만 이방인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므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한다는 것입니다(2:12b).

(2)   둘째,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이란 유대인들의 주장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2:13).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매주 안식일에 성전이나 회당에서 배우고 있는 율법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실천하지 아니하게 되면 역시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배와 율법공부에 착실하게 참석하고 율법준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보고서 판단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입니다(2:16).

(3)   셋째, 헬라인들은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중심의 신관(神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범신론자들이며 인본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창조의 이치를 깊은 명상과 탐구를 통하여 깨우치게 되면 철학자 역시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의 영역을 있는 능력이 인간의 이성과 지성 속에 본성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도 헬라인들은 철학자들의 본성적인 능력으로 능히 깨우칠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14).

(4)   넷째, 사도 바울은 헬라 철학자들이 발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하여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2:14-15).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신이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창조의 이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 심어 놓은 양심이 작용하여 그들이 발견한 하나님의 법을 지키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이치를 깨닫는 철학자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의 역사 안에서 여전히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5)   다섯째, 사도 바울이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율법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이거나 (인간의 이성으로 철학을 하면 하나님의 이치를 깨달을 수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이방인인 헬라인이거나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율법이 그들의 행위가 의로운지 아닌지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에게는 그들의 양심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도록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가장 깊은 곳까지 은밀하게 살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피조물의 위치에 다시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2:16). 그것이 심판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2:12); 부분을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2:12a); 선민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는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그들의 경험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제국에서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인들에게 10가지의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밤에는 애굽의 장남과 가축의 초태생들이 모두 멸망을 당했습니다(12:29-30). 대신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되고 애굽을 떠나 자유민이 되는 구원이 주어지게 됩니다(12:31-42).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애굽인과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십니다(19:4-6). 율법을 지키겠다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맹세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신정국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 다른 민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말씀의 뜻을 율법으로 가지고 있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다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범죄가 되어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12a).

(2)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2:12b); 반면에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있는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대로 실천하게 되면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완전히 망하기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에 자신들의 행동을 한번 비추어볼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율법에 비추어 보아 범죄를 했다고 깨닫게 되면 얼른 회개를 하면 됩니다. 그러면 심판의 자리에 가게 되더라도 용서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선민들이 파수하고 있는 율법의 강점입니다.

둘째로,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2:13); 절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서 선민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문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조상을 덕분에 선민들은 율법과 할례와 성소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민족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율법만 지키면 구원의 대상입니다. 율법을 모르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이방인들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선민들은 매주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전과 회당에서 랍비로부터 율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들도 낳으면 8일째에 할례를 시행하고 있습니다(17:12, 21:4). 하나님을 성소에 모시고 절기를 따라 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10 10 속죄일에는 선민 모두의 죄를 속하는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16:29-34).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인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2:13); 그의 주장은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단계는 율법을 듣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반드시 실천을 해야만 의인이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사람들 보기에 율법을 실천하고 있다고 인정을 받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반드시 하나님 보시기에 그러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어야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지적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받기 위해서는 율법이나 사람의 거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복음의 거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율법 없는 이방인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2:14-15); 바울이 괄호 속에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서 풀이하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헬라의 철학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소아시아 길리기아 주의 교육도시 다소에서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 봅니다;  

(1)   율법 없는 이방인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2:14); 이방인인 헬라 사람들은 율법이 없지만 철학과 학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가지고 세상의 이치와 창조의 이치를 깨우치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철학과 학문의 탑을 쌓을 있는 것은 본성 가운데 이성이라고 하는 강력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논리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과학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헬라의 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깊은 명상과 논리적 추구를 통하여 세상의 이치와 창조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사람이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선민들의 율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2)   이런 이들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2:15); 그런데 문제는 진리를 자력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양심입니다;

1)      극도의 수련과 이성적인 작업을 통하여 세상 이치를 깨닫고 창조의 이치까지 통달했다고 주장하더라도 득도자의 양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결코 하나님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선험적인 양심이 깊이 자리를 잡고서 그렇게 경고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주운행의 법칙을 만든 당사자가 있으며 사람에게 이성과 영성까지 부여한 창조주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2)      창조주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새겨 놓은 마치 율법과 같은 양심이 거울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결과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외치고 있는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가를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정직하게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의 그림자를 진리 가운데서 발견하고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나게 됨으로써 산술적인 하나라는 관념을 넘어서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성의 신비를 어렴풋이 깨닫게 것과 비슷합니다(9:3-8, 4:6).

넷째로,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2:16);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와 헬라인들의 과학주의가 어떠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지를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가지 사실을 첨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행적을 통하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설명을 해봅니다;

(1)   그리스도의 교훈과 행적을 살펴보면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선민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기적과 이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각종 질병과 장애를 치료해주고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까지 살려내고 있습니다. 옛날 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는 사람씩을 살려내었는데 예수님은 3사람이나 살려내고 있습니다(7:11-17, 8:49-56, 11:39-44). 그러므로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합니다. 이유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디 외세를 물리치시고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달라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선민들의 소원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두가지의 죄성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집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멸망을, 선민들에게는 해방과 구원을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현세적인 축복사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이나 영생구원의 하나님나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당장 이방인들을 종으로 부릴 있는 선민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해달라고 하는 요구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파수하고 있다고 하는 선민들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들입니다.

3)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아니하자 선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모독죄라는 명분으로 종교재판을 통하여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로마황제에 대한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고 로마총독에게 고발하여 마침내 십자가에서 처형해버립니다(19:12-16). 마디로, 선민우월사상에 입각하여 현세적인 복을 가져다 주지 아니하는 메시아는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라고 하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은 도저히 자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깊숙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간들의 속마음입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라고 바울이 당부하고 있습니다(2:16).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회개하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십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선민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인 헬라인이거나 아니면 로마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모두가 자신의 은밀한 죄를 회개해야만 하는 죄인들입니다. 이제는 빨리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서 구주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심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멸망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의 심판을 얻을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한 복된 소식이 바로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사람의 은밀한 죄를 드러내고 있는 세가지 거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라고 하는 거울이 있고 둘째, 헬라인에게는 양심이라는 거울이 있고 셋째, 모든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거울이 있습니다. 가운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만 할까요?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가장 깊숙한 은밀한 죄까지 전부 비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깊고도 은밀한 죄까지 청산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속죄의 제사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이거나 헬라인이거나 로마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께 고백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심판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있는 가장 복된 소식입니다.

아무쪼록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서신 가운데 본문에서 전달하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깊이 묵상하시는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