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로마서 강해 제8강(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1. 3. 9. 09:29

로마서 강해 8(1:24-2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1 8(주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기게 되면 어떠한 악에 빠져들게 되는가?(1:24-27)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육신에 불과하지만 코로 영적인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받아 들이고 호흡함으로써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되어(1:26-27, 2:7) 만물의 영장(靈長, 영적인 어른) 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청지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1:28-31, 2:15-17). 그러므로 사람이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가며 계속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세상을 다스릴 있는 관건은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계속 받아들일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모세는 선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결을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전하면서 그것을 요약하여 먼저 알기 쉽게 십계명으로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론으로서 2계명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20:4-6). 마디로, 육신적인 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창세기의 이야기를 사도 바울이 이방인인 로마의 성도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1:23). 다음에는 알아 듣기 쉽게 본문의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1:24-27). 대강은 사람의 육체를 하나님이 주신 영혼보다 사랑하는 자가 받게 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육신적인 것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사람의 육체를 탐하는 마음의 정욕이 발동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정욕적인 안목으로 다른 사람의 육체를 탐욕적으로 보게 됩니다(1:24). 육체안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고귀함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를 해버립니다(1:25).

(2)   둘째, 육신적인 탐욕에 눈이 멀게 되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를 가정생활에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깨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남자들이 남색을 하게 되고 여자들이 여색을 밝히게 됩니다(1:26-27a). 그것이 하나님의 인과응보입니다(1:27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1:24-25);

(1)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아니면 사탄의 달콤한 유혹을 따르느냐? 하는 것이 사실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범죄의 내용입니다. 사탄의 화신인 뱀의 유혹에 하와의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있습니다(3:2-3). 뱀은 간교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말을 걸어 것입니다(3:1). 다음에는 말씀에 대한 풀이를 거짓으로 왜곡합니다(3:4-5).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먼저 내세우고 다음에는 진리를 왜곡하여 거짓을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이 너무나 달콤하여 하와의 탐욕과 마음속의 정욕이 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3:6). 사탄의 유혹이 찾아오더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다스려야만 하는데(4:7, 4:3-11) 점에서 하와와 아담이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3:6-7).

(2)   선악과의 열매를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탐스러워서 그것을 따먹게 되면 하나님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만족을 얻게 것으로 판단해버린 것입니다(3:6).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물을 창조주의 말씀보다 사랑하게 하와와 아담부부의 원죄의 출발점입니다. 그들의 원죄의 본질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대물림이 되고 맙니다(4:5-8, 23-24). 나중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세상가문의 딸들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탐하여 함부로 여러 여자를 아내로 취하게 되는 잘못에 이르게 됩니다(6:1-2). 따라서 육체의 힘과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있는 약육강식의 인간세상을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십니다(6:3). 그것이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오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피조세계와 육체만을 탐하며 창조의 질서를 가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파괴하고 마는 도시문명이 다시 발생합니다(19:4-5). 결과 소돔과 고모라 등의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불심판이 다시 있게 됩니다(19:24-26).

(3)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영적인 흐름을 지니고 있는 도시문명이 이방인들의 대도시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선교를 하고 있는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그리고 그리스 반도의 여러 도시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특히 항구도시일수록 유흥과 향락산업이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해상무역을 통하여 돈을 벌고 있는 항구도시에 우상숭배와 호화사치 그리고 퇴폐문화가 모두 몰려들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지역의 도시들이므로 도덕적 영적인 타락상에 대해서는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잘못된 퇴폐문명의 성행은 그것을 도덕적으로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책임이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따가운 충고를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1:24-25); 부디 로마교회의 성도이신 여러분들은 그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시고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해결책을 찾도록 하시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1:26);

(1)   창세기 3장에서 있듯이 사탄의 화신인 간교한 뱀의 유혹이 먼저 하와에게 찾아옵니다(3:1-5) 하와는 뱀의 달콤한 말을 듣고서 그만 자신의 안목의 정욕과 마음속 탐심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또한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어서 먹게 합니다(3:6). 그와 같은 인류의 타락이 사도 바울이 선교를 하고 있는 현장에서도 그대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장차 방문하고자 하는 도시 로마에 있어서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도시의 타락과 퇴폐문명이 어디에서부터 비롯이 되고 있는지를 성도들이 짐작할 있도록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1:26). 여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욕과 탐욕에 눈이 멀어 성적으로 타락하고 심지어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순리를 버리고 수치스럽게도 여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로 바꾸는 역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아직 로마와 이태리 반도를 방문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로마시(, city) 그러한 성적인 문란함 가운데 빠져 있다고 단언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사도 바울이 진작에 그와 같은 로마의 소식을 로마시에 살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서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그들 부부는 로마에서 살다가 황제 글라우디오(재위 주후 41-54)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하였기에 그리스의 고린도로 건너온 것입니다(18:1-3).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고 있는 서신은 적어도 그가 고린도에서 아굴라 부부를 만난 이후에 작성이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는 로마서 16장에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16:3) 적고 있으므로 그들 부부가 황제 글라우디오의 서거로 말미암아 유대인 추방령이 풀려서 다시 로마시로 들어간 주후  54 이후로 보입니다.

셋째로,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1:27);

(1)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다음에 남편인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하듯이 그렇게 다시 역사가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를 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싫어하게 되자 여자들만의 사랑에 빠져듭니다. 다음에는 문화가 남자들의 사회에 파급이 되고 맙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떠나 이제는 남자들과 동성 간에 부끄러운 애정행각이 발생하고 맙니다. 결과 가정이 파괴가 되고 사회적으로 하나님의 질서가 자리를 잡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회를 하나님께서 계속 보호하고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요?

(2)   옛날 그와 같은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말하고 있는 노아 시대입니다.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가문의 아들들이 이상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들의 아름다움만을 취하여 함부로 여러 여자를 아내로 취하게 됩니다. 여자의 하나님신앙이 어떠한 지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탐하고 육체적인 정욕에 이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이 있는 자가 여러 여자를 아내로 취하고 있으므로 부와 권력이 없는 자는 결혼조차 수가 없습니다. 결과 힘과 부를 하나님으로 숭상하는 문화가 만연이 되고 맙니다. 마침내 육신화된 사회를 하나님께서 떠나 버리십니다(6:3). 그것이 노아의 시대 홍수라는 하나님심판이 있게 되는 원인입니다.

(3)   그와 같은 역사가 다시 발생한 것이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입니다. 도시의 형편이 과연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먼저 보내어 현장확인을 하게 하십니다(18:16, 20-21). 천사가 롯의 집에서 쉬고 있는 밤중에 성읍 사람들이 몰려옵니다(19:4). 낮에 롯의 집으로 들어가는 천사의 현신이 그들이 보기에 아름답고 묘한 중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집주인 롯에게 강요를 합니다. 남자를 자신들의 성적인 노리개로 삼고자 하니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19:5). 모습을 보고서 천사는 이상 소돔 성에 대한 현장조사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저 롯의 가족만 성밖으로 탈출을 시키고 하나님께 불심판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4)   그것은 자업자득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성읍 등에 불심판을 내리시듯이 이제는 여자와 여자 그리고 남자와 남자 사이에 발생하는 부끄러운 일을 그들의 음욕대로 내어버려 두실 계획이십니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1:27). 마디로, 그러한 행위가 그들 사회의 퇴폐와 타락의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15:16, 왕하22:11-15). 따라서 그것을 청산하지 아니하게 되면 그에 대한 상당한 보응이 그들의 인생 가운데 그리고 그들의 사회생활 가운데 계속 영적인 고통으로 주어질 것임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결과는 그들 사회의 멸망입니다.

결론적으로, 성적인 타락이 하나님의 상당한 보응을 받고 있다는 표시라고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1:27). 주후 50년대 중반에 바울이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천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바울의 지적에서 별로 자유스럽지가 못합니다. 이유는 성적인 타락이 그만큼 심하며 영적인 황폐함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서 영적으로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이제는 한국이 성형의 왕국이라고 하는 자랑에서도 벗어나야만 합니다. 영적이며 정신적인 가치가 몰락을 하고 육체적인 가치와 외식적인 꾸밈이 계속 번창하게 된다면 과연 하나님의 상당한 보응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모두가 깊이 회개하고 반성하는 영적인 대각성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현금의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도 그러한 문화가 낳고 있는 비극의 현장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성도님들부터 사도 바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가 국내외의 한국사람들을 다시 살리고 이어서 한민족 통일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섭리가 속히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