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마가복음 제34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1. 1. 19. 14:00

마가복음 제 34 (16:15) <OBS2-34>(손진길 작성)

 

[Q1]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열방(列邦, 여러 나라와 지방)에 전할 복음(Good News, 16:15)은 구약이 아니고 신약일 수밖에 없는가?

l  구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요셉을 통하여 히브리 인을, 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이야기와 아브라함 자손이 복을 받아 가나안을 차지한 후 신정국가(神政國家, 신과 신의 율법이 지배하는 나라) 선민(選民,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민족)의 위용을 열방에 떨치는 이야기임. 그 역사적 실패와 성공의 사례들의 기술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십계명이며 율법이 실패와 성공의 시금석이 되고 있음.

l  그런데 그 계명의 적용이라는 것이 선민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이웃의 민족에 대해서는 침탈과 악행을 정당화시켜주는 민족우월주의 내지 선민들의 자칭 의의 근거로밖에 작용하지 못했음. 따라서 구약은 열방의 입장에서는 Bad News에 지나지 않았음. 반면에 신약은 그 핵심이 십자가이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공로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인 ‘복음’(Good News). 요컨대, 구약의 유대인 역사는 ‘Zero sum game’에 충실한 반면 신약의 예수님 역사는 ‘plus sum game’의 원칙이므로 열방과의 공존공영(共存共榮), 나아가서 각 개인이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원리가 되고 있는 것임.

 

[Q2] 그런데 왜 신약을 전하면서 구약을 함께 이야기하는가?

l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이(10:16) 예수님의 말씀임. 주님의 말씀 그대로 복음의 전파에 있어서도 지혜롭게 해야 함. 그러므로, 구약이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고 또한 성도들의 세상살이의 지혜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그것도 참고하여야 하는 것임. 따지고 보면, 믿는 자에게 세상살이의 Know-how가 되고 있는 것이 구약의 지혜임.

l  또한 구약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대안(처방)이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구약적 관념의 문제점을 폭넓게 고찰할 때에 복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는 것임. 그러한 의미에서, 복음서가 교과서라면 서신서는 해석서, 구약은 풍부한 참고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임.

 

 [Q3] 구약에 기초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믿음은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예수님의 질타를 받은 것인가?

l   십계명 중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기술한 부분(1계명-4계명)의 추상성 때문에 그것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시행세칙을 정하는 과정에 있어서 동원된 장로들의 세상적 경험과 랍비들의 세상적 지혜가 문제의 발단이 되고 있음. 그 행동의 지침은 세상적 성공의 비결은 되었으나 십계명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자칭 자신들의 의의 규례화였으므로(10:3) 외형은 의인, 내심은 규정위반만 아니면 악행조차 정당화되는 오류를 범한 것임.

l  요컨대, 유전되는 규례만 지키면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완전한 의인으로 설 수 있다는 자만과 독단에 빠진 것임. 그 점을 이사야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음;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29:13). 예수님도 이사야 선지자의 지적을 인용하고 있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7:6).

 

[Q4] 그와 같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믿음은 어떠한 관념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l  첫째로, 가나안과 하늘나라라는 이원론적 사고의 문제점에서 비롯되고 있음. 구약적 축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데 집중되어 있으며 하늘나라(Kingdom of Heaven)는 대제사장이나 1년에 한번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와 관련되어있지 일반 백성들은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 즉, 그들의 일상생활과 완전히 분리된 개념이었음.

l  둘째로,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흑백대결구도의 문제점에서 잘못된 믿음이 발생하고 있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선민과 저주를 받은 이방인이라는 흑백논리 때문에 율법이 명기하고 있는 의인에 대한 축복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향유하고 이방인에 대해서는 저주받은 죄인으로 취급하고서 비율법적인 악행을 서슴지 않았음. 특히 이방나라들은 선민을 침략하고 노예로 삼는 악한세력으로 규정하였으며 그들에 대한 보복행위는 항상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 구약적 사고임. 따라서 요셉을 통한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모습이나 요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이방민족에 대한 구원 사역은 흑백논리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었음.

l  셋째로, 이적과 표적 중심의 구원역사의 문제점이 잘못된 믿음과 결부되고 있음.  구약적 여호와의 이적은 초자연적 능력으로 선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첫 번째 시험문제와 동일) 위기에서 구하고(두 번째 시험) 이방인의 땅을 뺏어주는 수단으로(세 번째 시험문제) 동원되었으므로 이제는 그와 같은 이적이 없으면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됨. 또한 그와 같은 구원역사와 하나님의 섭리는 이스라엘에게는 Plus, 이방인에게는 Minus라는 ‘Zero sum game’의 논리로 받아들여짐. 따라서 창조적 하나님의 ‘Plus sum’적인 본래 모습은 구약적 선민의 관념 속에서는 존재하지 아니하고 있음.

 

[Q5]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유대인들이 세상의 부와 명예 그리고 첨단과학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l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는 세상적 부와 명예의 획득이 바로 자신들이 차지해야 될 가나안이 되고 있음. 그리고 약속 있는 제5계명 이하 10계명까지가 가나안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음.

l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의 기조(基調)가 되고 있는 효와 정직성이 성공의 최고 정책(Best Policy)이 됨. 말 그대로 “Honesty is the best policy”인 것임. 그리고 탈무드에 담겨있는 각종 규례와 유전들이 세상적 성공의 세부지침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