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제17장 강해설교
제목;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과 그 기도장소의 특이성”(요17:1-26)
작성자; 손진길 목사(26년 4월 10일 금요일 작성)

사도 요한은 제4복음서를 저술하면서 그 후반부 제13장에 예수님이 12명의 수행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가지신 마지막 유월절만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의 공관복음의 내용과는 달리 만찬 도중에 세족식을 거행했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요13:3-17).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고 적고 있습니다(요13:34-35).
그 다음에는 제18장에 가서야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후 인근에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3명의 수행사도들을 만나 함께 기타 수행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산중턱으로 가셨는데(마26:36-46) 그때 그 집합장소를 알고 있는 가룟 유다가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체포조를 인도하여 그곳으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8:1-4, 마26:47-50).
그러므로 사건의 연속관계를 살펴보면 제13장 다음에 바로 제18장이 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 사이에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12사도들에게 주신 유언과 같은 말씀을 제14-16장에 기록하고 그 다음 본문 제17장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날 밤 홀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기도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점을 이해하자면 논리적인 유추의 과정이 필요하며 그에 따라 본문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1) 마지막 기도가 끝나고 인근에 있는 3명의 수행사도들과 함께 기타 수행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가게 되면 배신자 가룟 유다가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체포조를 안내하여 예수님을 잡고자 당도할 것입니다(요18:1-4). 그것이 정해진 수순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당도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그 확답을 우선적으로 들어야만 합니다;
1)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은 인자인 그리스도가 세상죄를 지고가기 위해서는 극형에 속하는 십자가에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해야만 한다고 예수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너무나 끔찍하여 로마제국에서도 시민권자에게는 절대로 적용하지 아니하는 처형방법입니다. 보통 7일간 십자가에 대못을 박은 채로 죄인을 매달아 두는데 사람의 목숨이란 질긴 것이어서 물을 주지 아니하더라도 3-4일을 버티게 됩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 가운데 결국에는 숨이 끊어지는 실로 극악한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을 입고 계시는 인자 예수님은 그렇게 죽음에 이르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그 방법 대신에 빨리 숨이 끊어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달라고 끊임없이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눅22:39). 그러나 그 방법이 아니면 너무나 악한 사람들의 죄악을 청산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입니다.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 대한 응답마저 그러합니다. 그에 따라 예수님은 보통 3-4일 살아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 그 시간을 최대한 줄여 달라고 고통경감을 두고서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마24:22). 실제로 마가복음을 참조하면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단 6시간만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십니다(막15:25, 34-37). 그렇게 합의가 되었기에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반드시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것임)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2-43).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기도를 예수님이 드렸기에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서 힘을 보태어 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2)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가 끝나고 수행사도들과 함께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기타 사도들과 만나는 그 장소에 도달하면 그곳을 알고 있는 배신자 가룟 유다가 체포조를 이끌고 올 것입니다(요18:1-3). 그러면 예수님은 순순히 포박을 당하고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자신을 다윗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는 유대인의 왕으로 여기고 있는 사도들이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이 커서 그만 모두들 제살길을 찾아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요13:38, 막14:50). 예수님은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그들을 다시 찾아가겠지만 그때까지 그들을 보호하여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 절실한 기도의 내용이 본문 제1-13절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차제에 자신이 부활하여 승천한 다음에 제자들에게 발생할 일에 대해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장차 사도들이 온세상에 앞장서서 전하게 됩니다. 그들이 스승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모두 감당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여 주셔야만 합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 전통적인 율법해석에 억매여서 만민구원이 아니라 선민만의 구원을 고수하고 있으며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아니라 당장 메시아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이기에 그를 미워하여 처단하고자 나서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뒤를 이어 유대인들에게 천국복음을 사도들이 외치게 되면 그들 역시 엄청난 미움과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17:14).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돌보아 달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도인 것입니다(요17:14-15). 또 하나는, 사도들이 앞장서서 천국의 복음을 외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교회생활을 하면서 온세상에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앞길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호하여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요17:20-21).
2) 사도들과 제자들인 성도들은 모두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남아서 거듭난 영적인 인생을 살아가면서 힘있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요17:15-19). 그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되고 팀을 이루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하여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기록되고 있습니다(요17:21-23).
3)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이 세상의 시험을 이기고 영적으로 승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요17:24, 눅22:28-30). 예수님은 그와 같은 천국에서의 상급과 영광을 자신의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도 일부 맛볼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간구의 기도를 차제에 드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되어 성도들의 심령 속 성령의 전에 함께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는 그 은혜가 넘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요17:25-26, 14:23, 고전6:19-20). 그렇게 되면 성도들이 내주하신 3위1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자랑과 육신의 소욕을 이기며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요14:16-20, 23, 롬8: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차제에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요14-16장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수행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서 홀로 자리를 잡으시고, 눅22:39-41)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①대속의 십자가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어 주시고, ②또한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베풀어 그리스도가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하게 해주시고, ③나아가서 주님이 제자들을 통하여 이룩하는 하나님나라의 건설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되시기를 원한다는 예수님의 기도임, 고전15:24)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요6:38-40)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5:22, 27, 마28:18)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3:13-18, 행4:12)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14-18, 29, 3:13-18, 6:38-40, 8:29),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요1:1-4)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이제는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속의 십자가를 예수님이 지심으로 말미암아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하고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새로운 창조의 영광을 나누고 싶다는 것임, 사65:17-18, 계21:1-2, 23-27)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임, 요3:13, 16-17, 6:38-42, 16:28)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6:37),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6:68-70)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요3:2, 5:19-24)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요12:49-50),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12:44-48)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자신의 수행제자들을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보호하여 달라고 간구하심)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자신에게 보내어 준 제자들 가운데 12명의 수행제자들을 선택하여 함께 복음사역의 공생애를 지낸 결과 많은 전도의 열매가 있었다는 것임, 눅19:1-6)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예수님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고 나면 이 세상에 남아서 복음사역을 계속할 제자들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음. 그 내용은 예수님 자신에게 공생애 기간에 주신 그 말씀의 은혜도 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그들로 사랑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음사역을 힘차게 펼칠 수 있도록 조치하여 달라는 것임)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멸망의 자식 가룟 유다만 제외하면 모든 수행제자들을 예수님이 잘 가르치고 양육하였다는 보고임)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비록 대속의 십자가 고난이 남아 있지만 그것을 통과하고 나면 부활 승천하여 예수님은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엄청난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임. 그러한 기쁨을 제자들 역시 생전에 맛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보혜사 성령님도 그들에게 보내어 주시고 또한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그들에게 영적으로 내주 역사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인 것임)“(요17:1-13);
(1) 본문에서 가장 먼저 묵상해보아야 하는 주제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요17:1-2, 24)하는 것입니다;
1)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편한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서 생노병사(生老病死,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시달리면서 백 년 안팎의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인생의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소풍을 왔다고 합니다. 누구는 즐기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조금 의식이 있는 자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소수이지만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자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아주 극소수이지만 해탈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는 자는 신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2-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통 사람과 똑같은 인생을 사신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요3:16-17, 6:39-40, 17:2-4).
2) 영생을 얻는 방법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요17:3); ①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및 그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닫게 되면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는지 그 이치를 알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 이치를 알게 되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영생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는 주장을 그 속에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이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말하고 있습니다(요17:2). ③요컨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구원의 길을 예수님의 생애가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을 모두 이 세상에서 마치고 있다는 것입니다(요17:4). ④그러므로 자신을 천국에서 그 영생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요17:1). 구체적으로, 독생자가 지니고 있는 창조주로서의 신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는 예수님의 간구하심이 나타나고 있으며(요17:5) 또한 이 세상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훌륭하게 사명을 감당한 제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는 예수님의 간구인 것입니다(요17:24, 5:24, 눅22:28-30).
3) 그 다음의 주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방법”(요17:1, 4-5)입니다; 한갓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감히 창조주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요17:1).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요17:4). 그 일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내주시는 사람들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요17:2, 6:39, 눅24:44-49). 세상사람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왔다는 사실은 더 모르고 있습니다. 설혹 그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있거나 아니면 더 만만한 신을 만들어 이미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창조주를 인정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불이익이 찾아옵니다; ①자기 자신이 한갓 피조물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형편이 없는 경지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떳떳합니다. 그리하여야 성취감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한번 태어났으면 누구나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싶고, 많이 소유하고서 그 힘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싶은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창조주를 자신의 위에 인생의 주인으로 두게 되면 그와 같은 야망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 대신에 창조주의 종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4) ②창조주는 절대로 만만한 신이 아닙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한번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모시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그저 적당하게 비위를 맞추어 주고 제사를 지내 주는 것으로 우상은 만족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용도에 맞도록 편리하게 그리고 실용주의 정신으로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것이 우상인데 창조주 하나님은 그렇게 어떻게 해볼 수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 스스로 자신이 주권을 행사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모두 행하는 존재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참 불편합니다(출3:14, 사55:8-9). ③게다가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다고 하면서 독생자를 이 땅에 성육신을 시키고 그리스도로 세우고 있습니다(요3:16-17, 롬3:10).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인생을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요1:12-13).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구원을 얻고 영생에 들어간다고 하니 그것이 결코 쉽지 아니한 노릇입니다(마16:24-25). ④그렇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한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자에게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요17:15, 20-24). 이제는 그 약속을 믿고서 신앙생활에 정진을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행4:12). 야속하게도 예수님이 방금 제자들에게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라고 기본개념을 정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규정은 이제 다른 방법으로는 영생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는 진리를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 본문 제5-11절을 살펴봅니다; 그 주제는 “창세 전에 독생자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는 무엇인가?”(요17:5)하는 것입니다;
1) 노년의 사도 요한은 창세 전에 독생자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화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면서 그의 복음서의 기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1-5).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보다 더 잘 표현을 하고 있는 문장이 없을 것입니다(요1:14). 굳이 사도 요한의 기록에 필적할 수 있는 깨달음을 찾아보자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신관일 것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2) 위의 두 문장으로부터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①독생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했으며(마11:27) 그는 인격체로서 하나님의 본체에 해당되고 있습니다(요1:1, 빌2:6, 창15:1). ②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창1:1-3, 요1:1-3) 독생자가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창1:26, 요1:3, 10). ③모든 피조물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자로서 생명을 불어넣고 특히 인생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요1:4, 마11:27, 빌2:8). ④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독생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인자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날 때까지는 그 정체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마11:27, 요1:5, 3:12-17). ⑤독생자가 이 땅에 오시는 이유는 피조물들이 구원을 받아 창조주께 돌아와서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영생을 얻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요1:11-13, 3:13-18, 17:2, 눅22:28-30, 빌2:11).
3) 위와 같은 여러 가지 독생자의 정체성과 사역의 특징 가운데 당장 본문과 관련하여서는 다음의 속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창조주의 영광을 지니고 있습니다. 잠시 그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겨 두고서 스스로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성육신을 했습니다. 이제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 무덤 속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창조주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자신의 신원을 회복시켜달라는 것입니다. 당장 영생을 누릴 수 있는 부활의 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승천하게 되면, 독생자의 영광의 회복이 다시 필요합니다”. 그 내용이 고스란히 ‘요17:5’절 말씀 가운데 숨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역사 가운데 이루어졌음을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그의 글 ‘빌2:8-11’ 절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 다음의 주제는 “아버지의 ‘이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요17:6a)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구좌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개설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조주만이 그 구좌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창조의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기존 창조의 질서를 변경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무시무시한 능력을 함부로 피조세계에 선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수소폭탄보다도 더 두려운 능력입니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실체가 잠시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엿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것입니다(요6:9-15).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두 마리의 생선요리로 남녀노소 2만명이나 되는 청중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곳간이 열린 결과입니다. 그 곳간의 열쇠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5) 또한 날 때부터 소경인 거지를 실로암 못으로 보내어 새로운 눈을 얻도록 해주고 있습니다(요9:1-7).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하늘에서 땅으로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 능력을 인출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을 드려서 그 이름을 빌려서 창조의 능력을 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나라의 출입증과 모든 거주권이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발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발부될 것입니다(요8:35). 그래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가서 그 거주권을 얻어서 오겠다고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요14:2-3). 그렇게 이해할 때에 여기서 예수님이 왜 아버지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하여 그토록 열심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요17:6, 9-11).
6) 또 하나의 주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넘겨준 것들은 무엇인가?”(요17:6b-11)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①사람들을 넘겨주었습니다(요17:6a, 6:37). 예수님은 자신에게 넘겨진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도록 만들었습니다(마28:20, 요17:6c). 그 말씀에 의거하여 제자들은 그들의 소속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옮겨진 것을 알았습니다(요17:7, 6:38-39). ②말씀을 넘겨주었습니다(요17:8a). 그 말씀을 예수님은 천국복음으로 잘 정리하여 다시 제자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요17:8b). 말씀의 계시와 설명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온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그를 이 땅에 성육신시키신 하나님 아버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17:8c, 6:40). ③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광을 넘겨주었습니다(요17:9-10). 본래 모든 영광은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출20:3-5, 마6:13). 그런데 이제는 그 영광을 하나님과 그 아들인 어린양에게 동시에 올려 드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계5:13). ④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요17:11b). 그 이름을 다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 드리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온전하게 지켜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요17:11c).
7)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려고 합니다(요17:11a).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게 되면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그곳에 마련하고자 합니다(요14:1-3). 그곳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요13:34-35, 14:15-17). 그 계명을 지키면 성령님이 강림하여 제자들에게 내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요15:10-12, 26-27). 그 성전에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임재하실 것입니다(요14:16-20, 23). 그것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예수님이 지극히 원하고 있습니다(요17:11d).
(3) 본문 제12-13절을 살펴봅니다; 그 주제는 “아버지의 이름과 예수님의 이름의 차이”(요17:12, 6, 16:23-24)입니다;
1) 예수님의 이름은 제자나 성도들이 기도할 때, 그리고 그 응답을 받을 때에 사용되고 있습니다(요16:23-24). 반면에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은 창조주의 신분과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요17:6, 12).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이 자신의 늙은 종을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해오도록 하란 땅으로 파견하고 있습니다(창24:2-4). 그때 아브라함은 그 일을 신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늙은 종에게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창24:3). 그 대목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하늘에서도 역사하시고 땅에서도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하늘은 창조주의 세계이지만 땅은 창조함을 받은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질서와 복은 모두 하늘로부터 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뜻을 땅에서 실현시키고 있습니다(마6:10). 그런데 유한한 땅의 재화를 가지고서는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설계도와 물자가 땅으로 공급되고 있습니다(출16:4, 13, 25:1-9, 요6:11).
2) 그 이유는 하늘의 모든 재화와 아이디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는 경우, 또는 죽은 나사로를 무덤 속에서 살려내는 경우 등에 있어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반드시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탁하여서 그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요6:11a),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1:41b-42). 어쨌든 하늘에서 내려 보낸 그 설계도와 물자를 가지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하늘과 땅 사이에 교신(交信, communication)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교신의 암호가 여기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징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수님의 이름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그 통로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암호가 정확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신뢰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정확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3) 그 다음의 주제는 “아버지의 이름, 예수님의 기쁨, 아버지의 말씀의 위력”(요17:12-13)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보전하고 지키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요17:12a). 그 결과 한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을 배신하여 대제사장에게 팔아 넘기고 그 일을 후회하여 자살을 택하게 되는 제자 가룟 유다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될까요? 성경을 응하게 하고자 멸망의 자식이 나타났는데 그 자가 바로 가룟 유다라는 예수님의 풀이입니다(요17:12b). 창세기를 보면, 더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b). 사탄은 가룟 유다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요13:27, 창3:3-6, 신30:19-20). 유다는 군대와 유대교지도자들의 하속들을 데리고 와서 스승 예수를 체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요18:3-5, 막14:43-46). 그 결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이 박히는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요19:16).
4) 요컨대, 사탄의 화신에 의하여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 대가로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서 사탄의 핵심세력인 음부의 세력을 박멸해버립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요20:11-18). 그것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사망이라고 하는 으뜸 권세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롬8:1-2). 예수님의 기쁨을 제자들은 어떻게 그들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가질 수가 있게 될까요?(요17:13).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수님처럼 제자들을 지킬 수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려고 합니다(요17:13a). 예수님 대신에 또 다른 보혜사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지켜줄 것입니다(요14:16-17).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 남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요14:17, 17:12). 그리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계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항상 가지고 계셨던 충만한 기쁨을 제자들도 맛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요16:32-33).
둘째로,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세상사람들이 성도들을 미워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경우와 동일한 이유 때문이라는 말씀임. 그것은 현세적인 소원성취나 세상적인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세상사람들과 달리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영생의 영광을 얻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외쳤기 때문임) 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세상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하여 성도들을 당장 휴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예수님의 간구임)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성도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로 말미암아 영적인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소중한 복음의 일꾼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임)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이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거할 것이며 제자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임, 요16:13-15, 롬6:22)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예수 그리스도의 파송자가 아버지 하나님이듯이 성도들의 파송자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임, 요21:15-19, 눅9:1-2, 10:1-2, 마28:18-20),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인 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대속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예수님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임, 눅22:28-30)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생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도와 제자들이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서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성도로 살아가게 되는 자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므로 그들에게도 거듭난 삶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내주 역사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간구임, 요20:29, 행9:3-22),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쉽게 말하자면 ‘3+1’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사랑 안에서 하나로 존재하고 역사하시는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그들을 통하여 충만하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임, 엡1:20-23)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하였듯이 장차 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역사하시고 또한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되어 그 성도들의 심령 속 성령의 전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게 되면 이 땅에서 성도들이 하나님 자녀의 영광을 맛보면서 복음사역을 하게 될 것임, 요14:16-20, 23, 행1:8, 롬8:1-4, 34-39)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영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주하여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거듭난 인생은 이 세상을 이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게 될 것임, 마28:18-20, 롬8:31-39)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복음전파를 한 다음에는 천국에 들어와서 하나님 자녀의 상급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는 예수님의 간구임, 눅22:28-30, 엡1:4-14)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영생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믿고 있다는 것임, 마16:16)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예수님이 공생애를 12사도와 함께 지내시면서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대속자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음), 또 알게 하리니(앞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온세상에 파송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할 것임, 마28:18-20),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성도들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될 것임. 그때에는 주님과 사랑안에서 연합하고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내주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될 것임, 롬8:11-18)“(요17:14-26);
(1) 본문 제14-16절을 살펴봅니다; 그 주제는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의 위력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말씀을 가진 자의 신분을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즉, 세상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곧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요17:6). ②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보호하여 주십니다(요17:14, 17). ③말씀은 성도를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여 줍니다(요17:15). 그 결과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이기고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요16:33).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한 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 말씀의 위력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체포 당하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시고 있는 위의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인 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②예수님 안에 기쁨으로 역사하고 있는 성령의 능력이 또한 제자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③아버지의 말씀이신 독생자가 주님이 되어 영적으로 제자들에게 임재할 것입니다(요1:1, 14). 요컨대,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 안에 모시게 되는 제자들과 성도들은 모두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의 시대를 미리 내다보면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요18:1, 막14:32).
(2) 본문 제17-23절을 살펴봅니다; 첫번째 주제는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의 이치를 한편의 드라마틱한 인생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쉽게 보여주고 계시는 창조주의 지혜”(요17:17-18)입니다;
1)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어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뜻이 정확하게 말씀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이래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한 자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완벽하게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것을 사람들에게 실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창조주의 횡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진리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자인 사람의 일생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생자가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정확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임의대로 전하는 말씀이 아니고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요5:30, 8:28).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기에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요6:38, 8:40). ②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인생을 살게 되면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납니다(요5:24, 6:40).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나며 종래에는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③자신의 제자들도 스승인 예수님처럼 진리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부활과 영생이 가능합니다(요17:20-24, 빌3:11-14). 그에 따라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멀지 않아 진리의 성령님이 강림하여 그들에게 임재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요16:7, 13).
3)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있게 되면 예수님이 행한 큰 일을 제자들과 성도들이 장차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습니다(요14:12, 16, 26). 요컨대, 예수님의 일생을 통하여 복음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실천한 결과가 무엇인가를 눈으로 똑똑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입니다. 이제는 복음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것은 실천하기 곤란하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예수님처럼 실천할 수 없다고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일을 훌륭하게 행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지혜는 철저하게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요6:39-40).
4) 그 다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일생을 보고 배운 그대로 이제는 실천해야만 하는 제자들과 성도들”(요17:18-20)입니다; 자신의 생애 가운데 예수님의 공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서 배운 자들이 수행제자인 사도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남자이며 12사도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밖에 막달라 마리아 등 여사도라고 불릴 수 있는 여제자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부장의 고대사회에서 그렇게 여자들을 수행제자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들은 생전에 형을 구세주로 믿지 아니했습니다(요7:5). 그 이유는 형 예수가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의붓아들이지 그 혈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사11:1-12). 그렇지만 부활과 승천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는 철저하게 주님을 영접하고 믿기 시작합니다(행1:14, 15:13-21, 고전15:7, 약1:1, 유1:1).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들로 구성된 120명이 모두 오순절날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 초대교회가 탄생하고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됩니다. 그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행2:41-47, 6:7, 11:24). 그들 제자들과 성도들에게는 두 가지의 사명이 부과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마28:18-20). 또 하나는, 남은 평생을 거듭난 영적인 삶으로 예수님처럼 살아가야만 합니다(롬6:22, 12:1-2).
5)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끝내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18-20).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파송한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고 있습니다. 지상명령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주고 있습니다. 이제 초대교회가 성립되고 많은 성도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이 모두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스스로 말씀대로 행함으로 거룩함을 얻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일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부활의 몸으로 다시 제자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진리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은 구원과 영생의 확신 가운데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 또 하나의 주제는 “예수님의 생애와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기술”(요17:21-23)입니다; 신성을 지니고 있지 못한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한 것입니다(막14:38). 그래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특청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7) 그와 같은 장래 일을 예수님이 특이하게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1-23).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반면에 사람들은 영성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에 갇혀 있는 존재입니다. 육신은 시공간 이동이 제약되어 있습니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육신은 같은 시간대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두 공간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동시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8) 예수님은 곧 인간의 몸을 벗어버릴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시게 되면 영에 속한 부활의 새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고전15:44). 그 몸은 마치 하나님의 현신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창18:1-2).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과 두 천사가 인간의 몸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아브라함의 처소에서 함께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용건이 끝나면 다시 하늘로 그 몸을 가지신 채 올라가고 있습니다(창17:22, 18:33). 마찬가지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공간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벽을 통과하고 있습니다(요20:19). 함께 갈릴리 호수가에서 생선구이를 먹고 물을 마십니다(요21:13). 그리고 종내 그 부활의 몸으로 베다니에서 승천까지 하고 있습니다(눅24:50-51). 그와 같은 변화를 짐작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내가 부활의 몸을 입는 것과 같이 나의 제자와 성도들에게도 부활의 몸을 입게 해주십시오. 내가 천국에 거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천국에 거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독생자의 영광을 되찾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우리가 영적으로 성령 안에서 제자와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되면 그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사랑으로 경영되는 영원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육신을 통하여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며 장차 성도들이 수행해야만 하는 사명이 될 것입니다.” 요컨대, ‘요17:21-23’절 말씀에 대한 의미적 해석이 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3) 본문 제17장의 말미인 제24-26절을 살펴봅니다; 첫번째 주제는 “예수님처럼 인생을 살게 되는 제자들과 성도들이 얻게 되는 지극히 큰 상급의 내용”(요17:24)입니다;
1) 창세기 제15장을 보면, 독생자인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현신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훗날 여호와의 독생자인 말씀이 이 땅에 성육신하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14, 29). 그 실체는 천국에서 창조주의 영광을 공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독생자입니다(요1:1). 그 독생자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15:1). 그 의미가 이제 요한복음 제17장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한마디로, 지극히 큰 상급은 창세 전부터 독생자가 창조주로부터 얻어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영생의 영광입니다.
2)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특별히 독생자의 영광 가운데 사람들의 생명과 빛이 담겨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사람들은 믿음이 없기에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보이지 아니하는 생명을, 그 영적인 빛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독생자의 영광이 사람을 살리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목숨을 보전하고 물질계를 경영하며 자신들의 육신을 살게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영적인 어둠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화상입니다(롬1:18-25).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심장을 뛰게 하지도 못하고 장기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3) 자율신경은 오로지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으로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으며 그 움직임 자체를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목숨과 육체의 내부 움직임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의 통제아래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자만과 욕심 때문에 그 영이 어두워져 있는 인간들이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수술에 있어서도 의사가 큰 신경조직과 근육조직만을 수술하고 봉합할 따름입니다. 미세한 신경조직과 세포들은 의사의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 따라 재생되고 서로 연결되어서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의학적인 치료행위의 한계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입니다. 만약에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섭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진작에 모두가 죽은 목숨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독생자의 영광이 바로 사람들의 생명력이며 인생을 움직이는 빛이 된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에 해당하고 있습니다.
4) 결론적으로, 영광은 하늘의 빛이며 그것은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조에’, ζωη)과 영광(‘독사’, δοξα)은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급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지극히 큰 상급을 받기 위해서 믿음의 열조들이 모두 평생을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를 원하고 그가 자신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기를 소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그것이 믿음의 장(章, chapter)인 히브리서 제11장 기록의 특징입니다.
5) 사족을 더하자면, 사도 요한은 사도 바울의 다음 기록을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사도 바울의 에베소서는 주후 60년경의 저술이지만 사도 요한의 복음서는 주후 90년경의 저술이기 때문에 요한이 바울의 저서를 참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창세 전에 독생자 그리스도가 지니고 있던 창조주의 영광은 사람들의 생명이며 구원의 빛입니다. 그것이 지극히 큰 상급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예정론적으로 창세 전부터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그 사도들에 의하여 훗날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될 모든 성도들에게 지극히 큰 상급으로 달라고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이 바로 ‘요17:24’ 절이라고 하겠습니다.
6) 마지막 주제는 “창조주를 아버지로 아는 것이 정체성이며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주장하시는 예수님”(요17:25-26)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소위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창3:15, 마1:18).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 계시고 오로지 영적인 아버지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1:34-38). 한마디로,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님의 유일하신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한 다음에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결론적으로, 이제 제자들과 헤어질 때가 임박하게 되자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제자들이 계승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처럼 제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영적으로 자신과 함께 그들에게 임재하여 달라고 청원하고 있습니다(요17:25-26).
그 내용을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영생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대속자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세상사람들은 믿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믿고 있다는 것임, 마16:16)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예수님이 공생애를 12사도와 함께 지내시면서 그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을 이 세상에 대속자로 보내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음), 또 알게 하리니(앞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을 온세상에 파송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할 것임, 마28:18-20),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성도들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성령의 충만함을 얻게 될 것임. 그때에는 주님과 사랑안에서 연합하고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내주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될 것임, 롬8:11-18)“(요17:25-26);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있는 새로운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지키기만 하면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실 수가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제자들과 성도들은 지상명령을 수행하면서 자신들의 성화를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마침내 이 땅에서의 목숨이 다하는 날 천국으로 직행하게 되는 부활과 승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볼 수 있으며 모두가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요17:24-26, 벧전2:9, 계22:1-5). 아무쪼록 그와 같은 영광을 함께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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