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장별강해(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제16장 강해설교

손진길 2026. 4. 8. 12:09

요한복음 제16장 강해설교

제목;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예수님의 영적인 깨달음이 이 세상의 환난을 이기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하다”(16:1-33)

작성자; 손진길 목사(26 48일 수요일 작성)

80대의 노인 사도 요한이 제4복음서를 기록하면서 후반부에 오게 되면 커다란 특징 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예수님이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밤중에 체포를 당하시기 전에(18:1-14)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유월절만찬을 12명의 수행제자들과 함께 가지시는데 그 도중에 갑자기 예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도들의 발을 손수 물로 씻어 주셨다는 것입니다(13:1-17). 세족식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인 이벤트(event)입니다. 그것이 너무나 의미 깊은 사건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그날 저녁 성찬식 제정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도중에 세족식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 세족식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없는 것이며 사도 요한의 독점적인 기록입니다. 더구나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주신 새 계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13:34). 그 내용은 성도들이 서로 섬기는 형제사랑이 있어야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고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3:17, 34-35, 14:21, 15:10, 12, 17, 17:26).  요컨대, 그 세족식의 물의 의미를 제자들이 깊이 깨닫고 형제를 사랑할 때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일찍이 예수님이 자신을 은밀하게 방문한 공회원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b)고 말씀하신 것과 그 의미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해하기 어려웠던 물의 의미가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세족식의 모범에서 나름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사도 요한이 제14장은 물론 제15장과 제16장에서 집중적으로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사도 요한의 성령론입니다(14:16-21, 26-28, 15:26-27, 16:7-16).

(2)  또 하나는,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성찬식의 의미를 말씀하시고 또한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기 위하여 세족식을 거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 가운데 성도들이 교회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형제사랑의 새 계명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예수님이 거행하신 세족식의 의식의 제정을 통하여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가 소아시아 서남부 큰 항구도시 에베소에 살면서 그 주변에 세워져 있는 초대교회를 돌보면서 느끼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그것으로 보입니다(1:4-3:22). 초대교회가 내분으로 말미암아 지역사회에 대한 힘과 영향력이 자꾸만 약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이 유언처럼 말씀하신 세족식의 정신과 새 계명의 뜻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노인 사도요한이 제4복음서 제13장에 예수님의 세족식 행사와 새 계명의 제정을 기록하면서 그 의미를 예수님의 메시지로 다시 체계적으로 보완하고 정리하여 제14-17장에 길게 수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17장은 예수님이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의 앞날을 돌보아 달라는 기도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본문 제16장의 내용 가운데 무슨 이야기가 두드러지게 담겨 있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다음과 같이 3가지입니다;

(1)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신론이 담겨 있습니다(16:1-6).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이 산술적인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합니다(16:2, 6:4-5).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온 성자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3, 5, 10:30).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16:5, 28). 그 말씀은 일찍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내용과 동일합니다(3:13-18).

(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 곧 성령론이 들어 있습니다(16:7-24). 보혜사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게 되면 두가지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구원주 그리스도이지만 보혜사 성령님은 심판주의 역할을 수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시한 자들은 회개하면 용서를 얻을 수 있지만 성령님을 대적하면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16:6-11, 12:31-32). 또 하나는, 보혜사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실천이 동일하다는 것을 성령님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16:13-15). 그러므로 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면서 아버지의 뜻임을 강조한 그것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 창조의 능력으로 건설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의 출현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65:17-18, 66:20-21, 21:1-2, 22-27).

(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성도들의 거듭난 삶의 비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3:5). 그것은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만 성도들의 심령속에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여 주님이 되셔서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성도들의 심령속에 마련되어 있는 성령의 전에 임재하여 함께 남은 인생을 동행하는 놀라운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적인 동행의 이야기가 사도 요한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16:25-33). 성도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인생을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육신적으로는 이 세상에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자기 성화에 힘쓰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 임재하여 함께 인생길에 동행하고 있으므로 악한 영이 쫓겨나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8:1-2) 하나님의 나라가 벌써 그 심령속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11:20, 8:15-39, 16:30-33).

이상과 같은 말씀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차제에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다가 그만 유대교의 잘못된 교리로 되돌아가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임. 사도 요한이 돌보고 있는 초대교회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자꾸만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임), 2. 사람(유대인)들이 너희를(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을) 출교할 뿐 아니라(9:22, 12:42)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신론의 차이 때문에 예수를 성자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을 처형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임, 8:1)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하나로 되어 있는 창조주의 신비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 1:26, 3:22, 15:1, 1:1-4)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예언을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전해주고 있는 것은 훗날 그 일이 실제로 발생하게 되었을 때에 그것이 순전히 여호와의 창조의 역사임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것임, 48:6-7),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11:27, 여호와 하나님 말씀의 주관자인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수행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말씀이 완전하게 계시되고 있었다는 것임, 1:14-18)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성부 하나님)에게로 가는데(3:13-18)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유대인들은 물론 자신의 제자들까지 메시아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만 여기고 있지,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다음에 무덤에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신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임, 10:32-41),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5a, 10:33-34)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힘없이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체포되어 처형되어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대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기에 사도들이 그것을 심히 근심하고 있다는 것임)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보혜사 성령님, 14:16)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예수님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여야 아버지 하나님에게 부탁하여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을 회개하는 제자들에게 보내줄 수 있다는 것임), 8. (보혜사 성령님)가 와서 에 대하여, 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주이시기에 긍휼과 용서를 베푸시지만 성령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용서함이 없다는 것임, 12:30-31)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바리새인들처럼 의인사상에 젖어서 자신들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대속자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7:30, 18:9-14),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맞아들이려고 하는 여호와의 선하신 뜻과 공의의 정신을 저버리고 그리스도를 처형한 그들에게 역사적인 심판이 있음을 알게 한다는 것임, 19:41-44),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성령의 역사로 이 세상에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 쫓겨나고 그들의 추종자인 왕들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는 것임, 12:31-32, 6:12)“(16:1-11); 몇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첫째 주제가 장차 제자들에게 닥치는 두 가지 위험”(16:2)입니다;

1)    예수님은 다음날이면 체포를 당하고 제자들은 흩어져버릴 것입니다(14:27). 그 사실을 제자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신성(神聖)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은 아시고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며칠이 지나면 부활하여 제자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40일이 지나면 제자들을 남겨두고 홀로 승천하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두 가지 위험이 제자들에게 닥치게 됨을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16:2a). 또 하나는, 죽임의 위협을 당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배교자이며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쳐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유대교지도자들이 선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6:2b).

2)    오늘날 기독교가 유대교의 하나의 분파라고 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유대교를 개혁하여 헬라세계와 로마제국의 백성들에게 개방하자고 주장했던 소위 힐렐학파의 전통을 나사렛 예수일행이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20세기 후반에 바울신학을 연구하면서 3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주장은 본문 말씀에 비추어볼 때 잘못된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출교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16:2).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더 확실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파는 하나님에 대한 신관이 다르기 때문에 배교자이며 이단이기 때문에 죽여도 좋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16:2).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가 유대교의 일파가 될 수 있겠습니까?

3)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의 판단과 오늘날 자유주의 바울신학자들의 견해가 모두 틀렸다고 하는 더 확실한 증거는 랍비 사울의 회심사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요청하여 유대교인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한 배교자들을 잡아올 수 있는 일종의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신나게 시리아의 다메섹으로 가던 사람입니다(8:1, 9:1-2). 그가 다행스럽게도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양식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9:3-19). 그 결과 사울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복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서 이른 바 사도 바울로 거듭나게 됩니다(22:14-21, 1:14-2:1). 참고로, 다메섹 사건의 의미를 깊이 연구한 복음주의 신학자로는 김세윤 박사를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2)  두번째 주제는 유대교인들이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16:3), 그리고 성령님이 오시면 그들은 어떠한 꾸중을 받게 듣는가?(16:8-9)”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유대교인들이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16:3). 유대교인들이 왜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 역시 이미 예수님이 설명하신 바가 있습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독생자)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선지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하나님의 존재양식에 대한 신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에 상세하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 구약시대에는 오직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서 이 세상에 전한 선지자들에 의하여 유대 땅에 전해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불행하게도 선지자들의 주장과 예수님의 설명을 모두 배척하고 말았습니다(1:5, 10-11, 7:51-53, 10:3).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선지자들의 증언을 유대교인들이 듣지 아니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모세와 이사야와 다윗의 증언을 모두 거부하고 있습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1:26a),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3:22a),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b),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끝까지 믿지 아니하고 인간의 셈본으로 하나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긴다고 우기고 있는 자들이 바로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고 주장하고 있는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이 그들의 신관에 맞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인들의 교리의 한계이자 그들이 자초하고 있는 역사적인 비극입니다.

3)    어떻게 인간의 두뇌로 하나님의 신비와 지혜를 모두 재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간이 바로 신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자가 어떻게 그렇게 스스로 신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처신할 수가 있을까요? 결국 그러한 종교적인 지도자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 교리의 무류성(無謬性, 오류가 전혀 없다는 ) 주장하면서 매년 드리는 제사와 매주의 예배로 마치 의인이 것처럼 여길 것입니다(7:30, 18:11-14).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열심을 의의 기준으로 삼으며 함부로 세상적인 권력을 사용하여 영적인 공동체를 지배하려고 것입니다(10:2). 그러한 유대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철퇴를 맞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그들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6:8). 다음에는 로마의 군대가 주후 70년에 대대적으로 침입하여 그들의 성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워버릴 것입니다(13:1-2).

4)    구체적으로 책망의 내용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죄사함의 은혜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b)라고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는 메시아라고 이미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교인들은 증거를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입니다(16:9). 자신들은 매년 드리고 있는 번제로 이미 죄인이 아니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제물로 근본적인 죄사함이 필요한데 그것을 부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외면한 것을 책망 받게 됩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은 죄인이고 자신들은 의인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며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의인이 아니냐고 반론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10:2-3). 그렇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5)    이방인까지 만민을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공의의 정신입니다. 책무를 수행하라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19:5-6). 그런데 공의의 정신은 버려버리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선민사상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선민들의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찾지 못하고(5:1)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게 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것입니다(16:10). 그래서 유대인들이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해석하여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계시의 전달을 배척하고 대신에 장로들의 유전과 랍비들의 주석만으로 율법을 해석하고 세부규정을 잔뜩 만들어서 율법주의 종교생활을 강요하고 있을 뿐입니다(7:6-9). 그들의 잘못된 종교행위를 비판하고 있는 예수님을 이단으로 심판하고 로마총독의 권한을 빌려서 처형하려고 흉계를 꾸미고 있습니다(2:23, 36, 7:51-53). 일이 훗날 성령님의 호된 질책을 받게 것입니다(16:8). 이미 세상임금처럼 유대교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율법으로 지배하고 있는 그들이 장차 역사적인 심판을 면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16:11).

(3)  세번째 주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호하시는 가지 방법은 무엇인가?”(16:1, 4, 5-7)입니다;

1)      첫째 방법은 예고를 해두는 것입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16:1)라는 말씀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지(先知, 미리 아는 )하게 되면 얻는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는, 막상 일이 닥쳤을 당황하지 아니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가능하면 필요한 대비책을 미리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선지자들이 얻을 있는 유익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많이 깨닫게 되면 누구나 선지자가 있습니다(16:13). 하나님께서는 미리 예언하신 그대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리 성도들은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갈 있게 됩니다. 그것이 엄청난 유익인 것입니다. 하나는, 미리 예언을 해둠으로써 막상 나중에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신 것임을 알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점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4. 오직 너희에게 말을 것은 너희로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16:4a).  그렇게 예언과 성취를 대조하여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예언을 믿게 됩니다(48:6-7). 환언하면, 하나님 말씀의 진정성을 신뢰하게 됩니다. 결국 믿음이 커지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유익이 됩니다.

2)      번째 방법은 보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16:7). 예수님이 아니 계실 때의 공백을 성령님이 메워 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굉장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공동체에는 함부로 사탄이 날뛸 수가 없습니다. 창조의 사역을 감당하셨던 독생자가 사람이 되어 제자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장소에 악한 영들이 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항상 잔치자리에 있었으며 마음 속에 영적인 고민이나 세상적인 근심이 없었습니다(9:15). 점을 예수님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16:4b). 예수님의 허락이 없이는 사탄조차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27. 조각을 받은 사탄이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13:27). 이제 엄청난 창조주의 보호의 우산이 잠시 제자들에게 걷히게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견디면 굉장한 보호막이 다시 생길 것입니다. 독생자와 같은 다른 보혜사가 오시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또는 장차 어떻게 되는지에 관하여 길게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16:5-6). 성령님은 완전한 영이시기에 제자들이 장차 칭의의 은혜를 입게 되면 영원히 함께 거주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유익이며 은혜인지 모릅니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믿음생활에 있어서 제자와 성도들을 결코 고아와 같이 내어버려 두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다만 문제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제멋대로 인생을 살기 위하여 가출하고 있습니다(1:28-32). 또는 아예 탕자와 같이 재산을 사전에 달라고 하여 창조주를 떠나서 세상의 향락만을 즐기고 있습니다(15:12-16). 한마디로, 구원과 영생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인생이 아깝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 오기를 하나님이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15:20, 10:21).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전하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28:18-20, 10:13-15).

둘째로,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영적인 비밀이므로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와 도우심이 필요하다는 말씀임, 13a)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보혜사 성령님이 성도들로 하여금 가장 먼저 깨닫게 하는 영적인 진리는 ①성부, 성자, 성령님의 말씀은 각각 다른 것이 아니라 전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임. ②그리고 31체 하나님이 합의하여 의사결정한 하나의 진리는 예언으로 먼저 전해지며 그것은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임)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대속의 십자가를 지셨기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하셨으며 천하 권세를 가지시고 제자들을 목자로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하신다는 것임, 1:14-18, 21:15-19, 28:18-20, 고전15:24)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1:1-4, 14-18, 창조의 능력을 공유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말함, 4:6)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의사항인 진리만을 증거하시는 진리의 성령님이심)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체포와 십자가처형을 말함),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제자들을 찾아오심) 하시니, 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스승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확실히 알지 못하여 사도들이 서로 설왕설래하고 있음), 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16)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제자들이 계속 왈가왈부하고 있음),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자신들의 영적인 무식이 탄로날까 싶어서 직접 스승 예수님께 질문하지 못하고 있는 속사정을 아시고 예수님이 친히 설명하고자 하심),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이하의 말씀은 이미 천국에서 확정된 사항이므로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임),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스승의 죽음을 제자들은 애도하겠지만 대속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사람들에게는 장차 회개하면 여호와의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크게 임하게 된다는 것임)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스승의 십자가처형을 근심하지만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또한 그대로 승천하게 되심을 목격하게 되면 그 기쁨과 소망이 엄청날 것임을 미리 알려주심)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출산의 시기)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임신하면 산모가 10달간 힘이 들고 또한 해산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미리 근심하지만 막상 옥동자를 분만하게 되면 그 기쁨이 엄청난 것과 같다는 것임, 21:1-7. 이 세상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놀라운 영생의 기쁨을 말하고 있음,  5:12-14, 22:28-30, 8:18)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다시는 죄와 사망을 지배하는 악한 영에게 빼앗기지 아니하는 영원하고도 확실한 생명의 구원임을 말하고 있는 대목임, 10:28-29, 8:1-2)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에게 보내어 이미 맡긴 자들이며 그들을 영생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그 성취자가 아들인 것임, 6:29. 그러므로 동일한 맥락에서 아들이 이 세상에 파송하는 일꾼에 대하여 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임, 28:18-20)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성도가 주님의 지상명령의 실천과 성화를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간구하면 즉각 응답을 받게 되어 그 기쁨이 크다는 것임)“(16:12-24);

(1) 본문 제12-15절을 살펴봅니다; 그 주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아직도 말씀하시지 아니한 것들은 무엇인가?”(16:12)입니다;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들에게 장차 발생할 일들에 관하여 말씀하시고 있습니다(16:1-11). 그 요지는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들을 유대교에서 쫓아낼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단으로 몰려서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16:2). 그렇지만 제자들은 너무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부탁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그들에게 보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16:6-7). 성령님이 오시면 성도들을 탄압하고 있는 세상의 정치권력과 잘못된 종교적인 권력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임금조차 역사적인 심판을 당한다는 책망의 의미입니다(16:8-11). 그 정도의 강력한 대책을 예언으로 말씀해주었으면 제자들이 충분하게 분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본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 신뢰하며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초월적인 판단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1:1). 한마디로, 믿음의 행위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실감각이 부족한 것입니다. 따라서 생생하게 피부로 느끼기에는 상당히 둔감합니다. 어떻게 하면 제자들이 더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을까요? 더 상세하고 구체적인 예언이 필요합니다.

2)   그렇지만 현재의 단계에서 예수님이 더이상 말씀을 하려고 하지 아니하십니다;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6:12). 잠시 떨어지게 되겠지만 십자가 죽음 다음에 사흘이 지나면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여 제자들과 재회하게 될 것입니다(24:46, 고전15:3-8). 그때 40일간 이 땅에 더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상세하게 다음의 사항들을 설명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1:3); “지상명령의 실천방법, 초대교회의 개척과 운영방법, 유대인들의 미래,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등에 관하여 설명하는 한편 공생애 기간 동안 가르친 내용을 복습 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그렇게 거창한 역사를 감당하기에는 제자들의 믿음이 미약한 것이 사실입니다(16:12). 아직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무덤 속 부활을 목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목숨을 버리면 영원한 부활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선교와 교회개척 그리고 목양의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그 다음의 주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궁금증은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가?”(16:13)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은 3가지를 말씀하실 것으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합의하신 말씀 진리의 말씀, 예수님의 승천보고로 이루어진 새로운 합의의 내용, 만민구원을 위한 세부계획 등입니다”(16:13). 성령님은 예수님의 후임으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과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보혜사이며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세상에서 거룩하게 보호하고 믿음을 성숙시키는 것이 보혜사의 역할입니다. 환언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아니하도록 성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창조주의 마음과 계획을 진리로서 깨닫게 것입니다. 동시에 성령님은 예수님과 다른 다음의 차이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것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님은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에서 어떠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가를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4)   그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인류의 구원에 관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임하셨기 때문으로 보입니다(5:21-22, 28:18, 1:21-22).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피조물의 탄생과 같이 아기 예수로 땅에 오신 독생자이십니다(1:14, 2:5-7). 모든 성장의 과정을 체험했습니다. 더구나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공생애를 수행제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죽음이 주는 위협과 공포까지 체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어느 영적인 실체가 천국에서 사람의 형편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직접 체험하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 바로  체휼’(體恤, 체험에 입각하여 긍휼을 베푸는 ) 의미입니다(4:15). 그러므로 체휼이야 말로 구원주와 심판주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과 변호를 가장 중시하시는 것입니다. 점을 땅에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깨우쳐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자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남은 생애를 예수님처럼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부활과 영생을 얻는 방법이 것입니다. 길을 달려간 사도 바울이 후진들에게 그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7:21, 3:7-16, 고전11:1).

5)   다른 주제는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것이라”(16:15a) 구절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전권(全權) 위임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에 전권을 위임할까요? 적어도 가지의 요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일심동체(一心同體, 마음 ) 되어야만 합니다. 뜻이 하나이며 분신과 같은 존재여야만 합니다.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본래 하나였음을 예수님이 세상사람들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그리고 사도 요한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1:1). 하나는, 전문화가 필요한 경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기까지 완벽하게 인생을 경험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완전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인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전문가입니다. 사람의 구원과 심판에 대해서는 전권을 위임 받아서 행사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28:18b),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1:21),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2:10). 결론적으로, 완전한 구원과 영생의 확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복음이며 진리입니다. 사실을 오늘 날도 성령님이 증거하시고 있습니다.

(2)   본문 16-24절을 살펴봅니다; 주제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의미(16:16-19) 관한 것입니다;

1)      오늘날은 예수님의 위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이해할 있습니다. 이유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제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 무덤 부활과 승천, 성령의 강림이라는 일련의 사건이 약간의 시간의 차이를 두고서 숨가쁘게 전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확한 예언이 스승으로부터 여러 있었지만 마지막 유월절 만찬자리에서는 그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제자들입니다(12:7, 23-24, 13:36-38, 14:2-3). 그들의 탓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사건의 전개를 예언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이성과 세상적 경험 그리고 사고방식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전히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6:16-19). 그래서 뜻을 알지 못하여 제자들끼리 수군대고 있습니다; “18. 말하되, 조금 있으면 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6:18).

2)      예를 들면,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삼일 만에 스스로 부활한다고 합니다(16:16-17).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1-35).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사흘 부활은 이미 하나님 아버지와 합의된 사항이므로 변개가 있을 없습니다.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 3차례 같은 예언이 반복되고 있습니다(8:31, 9:31, 10:34).

3)      그렇게 구체적으로 3차례나 예언하고 의미를 가르쳐주고 있는데 제자들이 한결같이 믿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 바로 너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8:33c)라는 예수님의 날카로운 지적인 것입니다. 만민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제물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1:29). 누구나 믿는 자에게 죄사함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려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죽어서는 아니 됩니다(12:34). 영원히 살아서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고 다윗의 왕좌에 다시 앉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패권국 선민의 나라가 부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유대인들이고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4)      그러나 그것은 선민에게는 영광이지만, 주변 이방민족들에게는 슬픈 소식이 것입니다. 모두의 생명을 살리는 복음이 결코 아닙니다. 선민들 자기들만 먹고 살며 세상에서 특혜와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끼리끼리 의식에 불과합니다. 집단적인 이기주의야 말로 복음에 있어서도 빈익빈, 부익부를 가지고 것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모두를 자신들과 자기 민족만 독차지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이며 이방인들을 모두 자신들의 종으로 삼고자 하는 지배의 야욕이 드러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러한 사상을 지칭하여 한마디로 사탄아 ( 뒤로) 물러가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8:33b).

5)      다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는 가지 시선”(16:20)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는 가지 시선은 대조적인 것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은 허무하게 스승님을 잃어버린 충격 때문에 괴로워하고 곡하며 애통해 것입니다(16:20a). 비록 대속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사이에는 지난 3년반이라는 공동생활의 정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와 달리 유대교지도자들은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16:20b). 너무나 간단하게 그리고 손쉽게 안티 엘리트’(anti-elite) 나사렛 예수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해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유대인들의 국론이 분열될 수도 있는 위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은 그대로 유지가 것입니다.

6)      세상 일이란 당사자가 죽고 나면 모두 역사 속에 파묻히는 법입니다. 살아남은 자가 승리자이며 그들의 주장이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이 주도하는 역사에 있어서만 적용되고 있는 원칙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성격이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항입니다. 사건으로부터 새로운 하늘과 땅의 창조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피조물의 창조가 시작될 것입니다(21:1-2, 3:5). 하나님의 가장 권력은 부활의 능력입니다(37:5-10, 11:42-44, 8:11). 능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치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절대선의 창조주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지 않으면 세상에서 누구를 살릴 것입니까? 그렇게 자명한 진리를 사탄이 깜박했다는 것은 욕심에 그만 눈이 어두워지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가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증거해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유혹을 받았던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고서 40 지나지 아니하여 로마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반면에 후회와 더불어 근심에 사로잡혀 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감격에 겨워하게 것입니다(16:20c).

7)      하나의 주제는 해산의 기쁨과 옥동자가 가지고 오는 선물”(16:21-24)입니다; 가임 여성이 임신하고 달간 태아를 배속에서 키우는 동안에는 고통이 심합니다. 그리고 분만의 고통은 심합니다(3:16). 그래서 다시는 아기를 가지지 아니하겠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고난 끝에 기쁨이 찾아오듯이 극도의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을 닮아 있는 아기가 세상에 탄생하고 고고의 함성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모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순간은 산모가 창조주만이 누릴 있는 창조의 기쁨을 비슷하게 맛보고 있는 때입니다(1:31). 해산의 기쁨은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단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가 있을 뿐입니다; “다시 아기를 가지고 싶다!”. 사람이 자식을 낳고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세상에 내어 보낼 있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이상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성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보다 값진 일을 수행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래서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8)      예를 들면, 라헬이 그러했습니다; “23. (라헬)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30:23-24). 점을 아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기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16:21). 분만의 고통보다 고통은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극형이기 때문에 로마제국에서는 로마시민에게 금지하고 있는 형벌입니다. 단지 로마의 반역자나 주인을 해치려고 하는 노예에게 가하는 극단적인 형벌입니다. 형벌을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가지고서 감당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을 견디고 나면 어떠한 옥동자가 태어나는 것일까요?

9)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전에 3가지의 선물이 일로 말미암아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몸은 시공간에 갇혀 있는 유한한 몸이 아닙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있는 몸입니다(20:19). 영생하는 몸입니다. 승천이 가능한 몸입니다(24:50-51). 한마디로, 영적인 삶에 충실한 몸입니다(8:9-17). 보혜사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어줄 있게 됩니다(16:7). 임재와 동행의 역사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이 것입니다(1:8). 결과 교회가 땅에 세워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있게 됩니다(16:23-24). 기도의 응답은 제자들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10)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부활하여 승천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올려지고 있는 제자들의 기도를 듣고서 판단할 것입니다. 만약 내용이 지상명령의 수행을 위하여 반드시 요청되는 사항이라고 한다면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는 천하의 권세를 가지고 일이 이루어지도록 뒷받침할 것입니다(28:18-20, 1:21-23).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을 지원할 있도록 이미 전결규정이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이름으로 주시리라”(16:23b). 창조주의 능력과 권세로 지원하는 것이기에 응답은 미물에 불과한 제자들과 성도들이 감히 꿈도 없는 대단할 것이 것입니다(18:27). 그와 같은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면서 주님에게 감사하고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면서 성도들은 남은 평생을 살게 것입니다. 할렐루야!

셋째로,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아직은 영적인 신비와 비밀이 많지만 장차 보혜사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임하여 심령속에게 내주 역사하시게 되면 영안이 열려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의 의미를 밝히 알게 된다는 것임)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성도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이 임재하여 직접 내주 역사하시는 경우와 그러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이 성도들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필요한 것들을 간구하는 경우가 다르다는 말씀임. 그것은 마치 직접신앙과 간접신앙의 차이와 같음. 다만, 직접신앙의 경우에도 지상명령의 수행과 성화의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할 때에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간구하라는 것임. 그 말씀의 의미는 벌써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대한 사항은 전부 주님에게 위임이 되어 있다는 것, 28:18),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대속의 십자가에 자신을 스스로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신 예수님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인류최초로 영생의 몸을 창조하여 주고 천국으로 승천하여 어린양의 보좌를 가지도록 허락하심, 5:12. 마찬가지로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 답게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천국에서 그와 같은 영광을 허락하신다는 것임. 그것이 공의로운 창조주 여호와의 사랑인 것임, 22:28-30)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3:13-18, 독생자는 천국에서 이 세상으로 와서 인자 예수님으로 사시고 대속의 희생제물이 되심. 그리고 승천하여 보혜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심. 그때부터 하나님나라가 건설되며 장차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여 영생의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임, 8:19-21.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만유를 통일하시고라고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음, 4:6),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제자들과 이별을 앞두고 있는 날이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명쾌함),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1:14, 독생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관하시며 이 세상에 선지자를 통하여 계시하셨으며 진리가 충만하신 성자 하나님이심, 11:27)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이제서야 1:1-4’절의 내용을 제자들이 믿는다는 것임, 1:18. 그것은 일찍이 니고데모가 고백한 내용과 같은 것임, 3:2)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고 마음이 흡족해진 예수님의 반응임. 그것은 일찍이 자신을 찾아온 헬라인을 맞이할 때의 반응과 같은 것임, 12:20-24)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14:50, 예수님이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체포조에게 잡히시게 되자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임. 이 구절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본문 제16장이 마지막 유월절 만찬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사이에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유언과 같은 말씀으로 이해가 됨)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8:29선언과 같은 것임;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24:36,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성도가 이 세상을 이기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임, 8:37-39, 고전15:8. 그 사실을 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반드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8:1-2, 37-39,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는 자는 예수님처럼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기고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임, 22:28-30, 8:18)“(16:25-33);

(1)  본문 제25-31절을 살펴봅니다; 그 주제는 제자들이 밝히 깨달은 믿음 두 가지”(16:25-31)입니다;

1)   예수님은 여자가 아기를 해산하는 과정의 고통, 나아가서 옥동자를 분만하게 되면 그 기쁨 때문에 도중의 고통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가지고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고통과 무덤 속 부활의 기쁨을 비유하고 있습니다(16:19-22). 그리고 그 날이 되면 예수님께 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6:23). 그 이유는 그 날이 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통하지 아니하고 직접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16:23-24). 구체적으로,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영이 강림하여 제자들에게 임재할 것입니다. 장차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내주하시게 되는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가르치고 진리의 삶으로 그들을 인도할 것입니다(16:13).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4:13-14, 16:23b-24a).

2)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서 다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1:1, 10:30, 14:10-12, 16:26-28). 사도 바울의 용어를 사용하면, 창조주의 본체와 합하여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2:5-11).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라오는 기도를 듣고서 그 옛날 사람으로 살았던 그 시절을 회상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체휼하신 바가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면 사람의 입장에서 그 기도의 내용을 살피고자 하실 것입니다”. 요컨대, 본문은 그와 같은 사실들을 추론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상당히 제공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6:23-28). 그와 같은 사실을 제자들에게 친히 언급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16:25-30).

3)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 그 속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랑하는 영적인 교제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16:27). ②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감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로 일체가 됩니다. 따라서 창조주가 모든 것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분류될 것입니다(16:26, 28). 날이 되면 하나님과 직접 영적으로 교통을 하고 진리를 바로 깨달을 있도록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찾아오실 것입니다(16:12-13, 25, 30). 결과 제자들이 가지의 사실을 밝히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나오셔서 이제는 다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신다는 것입니다. 분이 땅에서는 메시아의 역할을 담당하셨지만 천국에 가시면 다시 창조주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성령님께서 땅에 오시게 되면 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즉시 하나님의 응답이 성령님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분명한 사실로 진리를 깨닫게 되자 기쁨이 믿음으로 밝아져 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16:30).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진리,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16:31b).

(2)  본문 요한복음 16장의 말미인 31-33절을 살펴봅니다; 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이 오기 전에는 제자들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것이다”(16:31-33)라는 것입니다;

1)      제자들이 참으로 대단한 두가지 믿음을 마지막 순간에 얻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디어 믿게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믿게 되는 관문에 들어선 것입니다. 하나는, 장차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응답 받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바로 순간에 야속하게도 예수님이 축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32. 보라 너희가 각각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제자들은 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끝까지 인간을 믿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예수님입니다. 이유는 사람이란 것이 본래 의도와 능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23-25).

2)      예를 들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이익을 쫓아 움직이며 배은망덕하고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혹시 착한 마음을 잠시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의도를 관철시킬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7:18-24). 그렇게 연약한 인간을 믿고서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맡기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 자신을 믿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을 신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하나님의 다른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하고 있습니다(16:23-24). 하나님은 제물로서도 사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22:13-14, 1:29). 그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인간이 만민의 생명을 한꺼번에 대속하고자 십자가의 극형을 감당할 것으로도 믿고 있지 않습니다(32:32-34). 그것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감당할 있는 몫입니다(16:32).

3)      따라서 그리스도가 승천하고 나면 제자들과 성도들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교회를 개척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있도록 하나님의 영이 직접 강림하실 것입니다(24:44-53). 십자가 대속의 값으로 성도들의 몸에 성전을 마련하고 내주하여 역사하시기를 시작할 것입니다(고전6:19-20). 성도들의 속사람이 겉사람을 이기고 진리의 말씀이 세상의 ()진리를 이길 있도록 역사할 것입니다(7:22-8:17).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성도들에게 공급할 것입니다(1:8). 능력의 크기는 믿음의 성숙의 정도에 비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생활화하며 실천하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성화되어가는 만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영적인 좋은 영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도 그렇게 전개될 것입니다.

4)      그런데 그와 같은 말씀을 예수님이 하고 있는 시점은 아직 성령님의 강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 성령님이 세상에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령님의 능력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과 인생을 모두 바쳐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만 하는 것입니다(1:8). 그래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32. 보라 너희가 각각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49. 볼지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5)      창조주의 능력이 영적으로 함께 한다면 어느 정도의 역사가 땅에 발생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경우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할 있는 십자가의 처형을 감당할 있게 됩니다(16:32). 능력이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하심으로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함께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하는 기적을 선보이게 됩니다(3:1-10).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의 환난과 죽음의 세력과 육체의 욕심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제자들과 성도들도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 있게 것입니다. 다시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위로하고 있습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결론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심으로 예수님이 세상의 환난에서 승리하고 마음속 평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결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들도 성령님이 임재하시면 능력으로 평안을 회복하고 세상의 환난을 이기라는 권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사는 , 그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의 유혹도 이기고 목숨의 위협도 이기며 죽음의 세력까지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1:12-13, 21:7).

그와 같은 승리의 삶을 살아갈 있는 비결이 바로 자신의 심령속에 성령의 전이 마련되어 있으며 안에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으로 임재하여 함께 내주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람의 지성과 경험으로 세상에서 소원성취하며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자 몸부림칠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향인 그곳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31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을 받아 많은 생명을 구원하여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