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주전 597년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보낸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지와 현지의 거짓선지자 3인에 대한 기록”(렘29:1-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12. 26. 03:27

제목; “주전 597년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보낸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지와 현지의 거짓선지자 3인에 대한 기록”(29:1-32)

설교일; 주후 2027919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12 26일 금요일 작성)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4장 제5-7말씀과 제27장 제7절 말씀의 의미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는, 주전 597년에 전쟁에서 패한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며 그때 많은 왕족과 귀족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현지에서 좋은 무화과로 여기고 잘 돌보아 줄 것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24:5). 그 증거가 본문 제29장인 것입니다. 그 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바벨론 유대인 포로사회에 갑자기 등장하고 있는 거짓선지자 두 사람 곧 아합과 시드기야를 여호와께서 그냥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느부갓네살 황제를 움직여서 조기에 제거하고 있습니다(29:21). 그와 같은 빠른 조치가 없었다고 한다면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여 유대인 포로들이 현지에서 난동을 부렸을 것입니다(29:22절 반대해석). 그렇게 되면 많은 유대인의 희생이 발생하였을 것인데 그것을 사전에 예방한 것입니다.

2)   , 바벨론에 등장한 거짓선지자 가운데 한사람 곧 스마야가 그 영향력을 본국 예루살렘에 미치고 있습니다(29:24-25). 주화파 선지자 예레미야를 처단할 것을 성전의 총감독 스바냐에게 서신으로 촉구한 것입니다(29:26-27). 그러나 부제사장 스바냐는 그 옛날 주전론자인 바스훌과는 견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20:1-3). 그는 예루살렘의 원로이며 주화론자인 아히감의 비호를 받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도와주고 있습니다(29:29, 26:24). 그 결과 예레미야가 바벨론 유대인 포로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편지를 보내어 거짓선지자 스마야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29:30-32).  

(2)  또 하나는, 여고냐와 함께 끌려간 선민 유대인들은 언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알기 쉽게 제27장 제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라고 말하지만(25:11, 29:10) 그것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7. 모든 나라가 (느부갓네살 황제)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27:7a). 바벨론 황제를 3대에 이르도록 섬겨야 할 처지이므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선민 유대인 포로들도 3대에 걸쳐서 바벨론에서 오래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29:4-7). 그 결과 주전 536년경 여호야긴 왕의 손자 스룹바벨과 마지막 대제사장 스랴야(왕하25:18)의 손자 예수아가 유민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는 것입니다(1:1-4).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이하의 내용과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북송 도중에 많이 죽고) 남아 있는 (유대인)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주전 597년 제2차 포로가 발생한 이후임, 왕하24:12-16). 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유대왕국의 사절단) 사반의 아들 엘라사(선지자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있는 사반의 아들 아히감의 형제로 보임, 26:24) (성군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 왕하22:4)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예레미야가 서신을 보내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고 있는 동족들에게) 말하되, 4.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역사를 주장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예레미야는 여호와가 위탁하시는 말씀을 대언할 뿐이라는 표현임)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바벨론에 오래 살 생각을 하고 정착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라는 말씀임)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그 옛날 이스라엘 12지파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더부살이를 한 것같이 그렇게 대를 이어가며 출바벨론의 그날까지 인구를 유지하라는 것임, 1:7, 12, 20)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바벨론의 평안을 기도하면 유대인 포로들에게도 여호와가 평안을 허락하실 것임, 5:43-44, 16:19)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중에 있는 (거짓)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27:9),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참으로 허황하고 무책임한 것이 꿈이야기임. 그러므로 반드시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함)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7:15, 28:15)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3대에 걸치는 70년 세월의 포로생활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임, 25:11, 27:7)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예레미야를 통하여 전달한 생명을 살리는 선한 예언의 말씀)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여호와께서 좋은 무화과 같이 유대인 포로를 잘 돌볼 것이며 70년이 지나면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할 것임, 24:5-7)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여호와는 자식과 같은 백성들에게 생명의 구원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결코 사망의 심판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님, 30:19-20, 3:13-18, 8:1-4)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출애굽 해방의 길을 마련하심, 2:23-3:8. 그리고 이방인 니느웨 성읍의 왕과 대신들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회개하고 구원을 호소하자 멸망 대신에 구원을 주신 여호와이심, 3:4-10)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9:1-2, 65:1-3, 22:12, 18:22-30, 13:44-46,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사는 것과 같음)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1:10-13, 3:22-24, 4:26, 21:33, 1:29, 14:1-3, 16-20, 22:28-30, 11:16, 26)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지금도 변함없는 구원의 길 곧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의 요체임, 4:12, 21:22-27)“(29:1-14);

(1)  본문 제1-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서신으로 전달한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2)  첫째, 1-2절입니다;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 그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29:1-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29:1); 바벨론으로 유대왕국의 인질이 처음 끌려간 때는 주전 605년입니다. 그때는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귀족의 젊은 자제들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요청에 의하여 바벨론의 황궁으로 끌려간 것입니다(1:4). 그들은 3년간 황궁에서 바벨론의 문물과 학문을 배우고 난 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대왕국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손과 발의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1:5). 그와 달리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인질과 포로들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그들은 당시의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야긴과 그의 신하들 그리고 영적인 지도자들과 기술을 가진 백성들 및 군사로 동원가능한 튼튼한 장정들입니다(왕하24:14-16). 그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끌고 감으로 말미암아 신바벨론제국은 강성해지고 그 반면에 시드기야의 유대왕국은 피폐하게 된 것입니다.

2)    따라서 시드기야의 유대왕국은 자력으로는 도저히 신바벨론제국을 배반하거나 반란을 도모할 능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와 같은 때에 시드기야 왕은 매년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습니다. 대규모 사절단이 공물을 바벨론까지 운반하고 있습니다. 그때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생활하고 있는 영적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개인적으로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29:1). 여기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29:1b)이라고 하는 표현은 3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북송과정에 많은 포로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사히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가 남은 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②포로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한두해가 지났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의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상당합니다. ③선민우월사상과 반골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적국에서 포로 생활하면서도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때문에 많이 희생되고 맙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이라고 하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2. 그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29:2);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는 유대왕국의 사절들을 통하여 그곳에서 포로로 생활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서신을 보낸 때는 주전 597년 제2차 인질사건이 발생한 이후입니다. 그것은 시드기야 왕의 통치 초창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주변국의 사신들이 반() 바벨론 동맹을 결성하자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오는 주전 593년 이전입니다(27:3, 28:1). 참고로, 주전 597년에 유대왕국을 침략한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여호야긴 왕과 왕후 그리고 모후와 내시 및 고관들을 인질로 끌고 갔으며 유대왕국의 많은 기능공과 토공까지 잡아가서 바벨론의 부족한 기술인력을 보충한 것입니다(왕하24:16);

(3)  둘째, 3-4절입니다;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9: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29:3); 주전 597년에 유다 왕으로 즉위한 시드기야는 신바벨론제국의 영웅 왕인 느부갓네살 황제가 세운 왕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으며 매년 조공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공물을 보내면서 그 사절편으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여러가지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디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왕국의 인질과 포로들을 잘 돌보아 달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절단에는 예루살렘의 명문가의 자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군 요시야 시절부터 유명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집안과 서기관 사반의 자손들이 그러합니다(왕하22:3-4). 여기서는 대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 그마랴이고 서기관 사반의 아들이 엘라사입니다(29:3). 그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하여 호의적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서신을 바벨론에 있는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바벨론에서 인질로 그리고 포로로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이 70년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25:11-13). 참고로, 사반의 또다른 아들인 아히감과(26:24) 역시 사반의 아들인 서기관 그마랴가 모두 예레미야의 선지자 활동을 도와주고 있습니다(36:10).

2)    ,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29:4);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의 시절부터 장차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대왕국을 침범하여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이며 그들의 포로생활이 70년이나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5:1-2, 11-12). 여호야김 왕이 죽고 그 해 주전 597년에 유대왕국을 침략한 느부갓네살 황제는 왕족과 귀족 뿐만이 아니라 유대왕국의 기술자들과 장정들을 너무 많이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왕하24:14-16). 적국에서의 인질과 포로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고달프기 그지 없습니다. 따라서 몇번의 저항운동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반란과 저항운동이 발생한다면 유대인 포로들의 씨가 마를 지경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예루살렘에서 듣고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급히 조공 사절편으로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지도자들에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깊은 내용은 부디 여호와께서 책정하신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무사히 마치라는 것입니다(29:4).

(4)  셋째, 5-6절입니다;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29:5-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29:5); 농촌에서는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어 부식물을 얻으며 노동을 통하여 주곡을 얻게 되면 나름대로 터를 잡고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대를 이어가면서 살 궁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신바벨론제국의 이방 땅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견딜 준비를 하라고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당부입니다.

2)   ,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29:6); 더이상 유대인의 수가 줄어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방 땅 바벨론에서도 선민은 번성해야 합니다. 그 옛날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비참한 삶을 살아갔을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번성의 축복을 누린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1:12). 다시 한번 그때의 번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디 결혼하여 자녀를 생산하고 그 아들과 딸들이 다시 결혼하여 손주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유대인 남자와 여자들은 자신들의 머리속에 기억되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자손들에게 어릴 때부터 들려주고 대물림을 하라는 당부입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부계 뿐만 아니라 모계로도 신앙의 상속과 족보의 상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이방에서 오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혈통적인 의미보다는 여호와신앙과 율법생활의 대물림이라는 독특한 종교와 문화를 통하여 민족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넷째, 7절입니다;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29:7);

특히 다음과 같은 27:7-8, 28:14’절 말씀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7. 모든 나라가 (느부갓네살 황제)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27:7-8),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28:14).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나라 중동의 패권국 신바벨론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게 되는 것이 여호와의 역사의 섭리라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향락을 쫓아 이방인보다도 못한 이중적인 삶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오죽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렸으면 므낫세 시대의 타락상이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쫓아낸 아모리 족속의 죄악보다 더 심하다고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꾸중을 하셨겠습니까?(왕하21:11) 그러므로 바벨론 땅에서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메어준 쇠 멍에를 함부로 벗겠다고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여 죽임을 당할 일이 아닙니다. 유배생활 70년이 확정되어 있으므로 그 세월을 잘 지내기 위하여 오히려 신바벨론제국의 평강을 여호와께 간구해야 합니다. 신바벨론제국이 전란에 휩싸이게 되면 많은 유대인들이 전장에 동원되어 죽게 되는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7).

(6)  본문 제8-1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망국의 백성으로 이방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주의사항과 미래에의 구원의 희망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7)  첫째, 8-9절입니다;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8-9); 거짓 예언을 전파하는 거짓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포로생활하고 있는 바벨론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29:8a). 그들은 애굽제국이 주도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이 결성 중에 있으며 훗날 능히 느부갓네살의 갈대아군대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1)   그것은 마치 시드기야 왕 후반기의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27:3, 28:1).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음 번 전쟁에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므로 2년 내에 모든 유대인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된다고 유대인 포로들을 현지에서 격려하고 있습니다(28:1-4, 29:9). 그러한 거짓 예언에 고무가 된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현실을 알게 된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진짜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지 그들 유대인 포로들에게 알려주고자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29:1-4).

2)   그 내용은 거짓 예언을 함부로 전파하여 유대인 포로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29:8-9). 그들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있습니다(28:2, 15, 29:9). 그 뿐만이 아닙니다. 포로생활의 고통이 심하기에 그와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점술과 꿈풀이를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이 뒷받침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백성들을 미혹하는 방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지만 악한 영들의 능력을 의존하고 있는 그러한 사술(邪術)들은 백성들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그 점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8-9).

(8)  둘째, 10-11절입니다;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0-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모세오경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과 맺고 있는 언약이 두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축복의 언약이고(6:1-3, 8:1) 또 하나는, 저주의 언약입니다(8:19-20). 그런데 유대왕국 말기에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곧 저주의 언약이 발동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방신상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선민 유대인들의 삶의 모습이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제멋대로 행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모습과 같아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2)    ③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는 진짜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달콤한 거짓 예언을 선포하는 거짓선지자들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언약이 발동되면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그 땅에 임하게 됩니다; ①여호와께서 축복의 언약에 따라 분배해준 젖과 꿀이 흐르는 악속의 땅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②여호와께서 불러들이는 이방 강대국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이 초토화되고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맙니다. ③전란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이라고 하는 여호와의 재앙으로부터 겨우 살아 남은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망국의 백성으로 천대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④포로생활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여호와께 회개하면서 부르짖어도 70년의 징벌이 끝날 때까지는 긍정적인 여호와의 응답을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7:16, 11:11).

3)    그 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동족들을 위하여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이제는 그치라고 지시하십니다; “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7:16). 또 하나는, 여호와의 재앙과 포로생활의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도 여호와께서는 듣지 아니하십니다;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 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11:11b).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의 생활을 복역하고 나면 석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기도의 문이 다시 활짝 열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신 70년의 복역의 기간이 만기됨에 따라 그 옛날 출애굽의 기적이 있듯이 이제는 ()바벨론의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 점을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0);

  

4)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여호와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때는 주전 14세기 초엽입니다.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솔로몬 왕 통치 후반기부터 이방신상과 우상을 도입하여 여호와와 함께 섬기는 영적인 타락이 발생하고 있습니다(왕상11:1-13). 그후 요아스 왕의 시대 전반기(왕하12:1-3, 대하24:17-22) 히스기야 왕의 시대 전반기(왕하18:3-7, 20:12-19) 그리고 성군 요시야의 통치시기를(왕하22:8-23:23) 제외하면 다윗왕조가 우상문화를 제거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들로 채워져 있습니다(왕하23:25-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제국의 침략을 물리쳐 주십니다(왕하19:34-35).

5)    그것은 마지막으로 선민 유대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왕국 말기의 4왕들이 그러한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시대에 시드기야의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맙니다(왕하23:26-27, 25:1-7). 그때가 주전 586년이므로 주전 14세기 초부터 계산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800년 동안이나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이제 저주의 언약이 주전 586년에 발동이 되어 예루살렘성전이 적군에 의하여 불타고 맙니다(왕하25:9). 그러나 바벨론 유배생활 70년이 끝나면(25:11-12, 29:10)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이 건설되어 유대인들이 다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살아가게 됩니다(6:15-18). 그것은 여호와께서는 내심 재앙보다는 축복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14:17-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이 기록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  

(9)  셋째, 12-13절입니다;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2-1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29:12); 주전 588년에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가 갈대아군대를 이끌고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침략하기 전까지(왕하25:1)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선민 유대인들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끊임없이 대언하게 하십니다(1:1-3, 7:13, 25). 그 요지는 우상문화를 제거하고 유다의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자신들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한다면 여호와께서는 진노와 재앙으로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망하는 것을 철회하겠다는 것입니다(15:19-21, 18:8, 26:3). 그러나 끝내 여호와의 말씀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마지막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시드기아 왕이 나아가서 무조건 항복하고 유대왕국의 멸망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2)    그리하면 여호와께서는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 황제를 섬기는 나무 멍에를 메게 되겠지만 선민 유대인들이 계속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섭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27:11-12, 38:17). 하지만 신바벨론제국과의 전쟁에서 ()바벨론 연합군이 무조건 승리하게 된다는 거짓 예언을 따르고 있는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이 예레미야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긍휼의 말씀을 끝까지 배척하고 맙니다(14:13-16, 38:1-6).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제는 구원을 요청하는 중보의 기도를 마감하라고 지시하십니다(7:16, 14:11).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부르짖는 구원의 외침도 70년 동안 듣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11:11, 14:12). 그렇다면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마감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다시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복역이 끝난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고토(故土)로 돌아가서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제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내용이 본문에서 기록되고 있습니다(12).

3)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29:13); 여호와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잘못을 70년 바벨론 포로생활로 청산하고 복역을 마친 후에 온 마음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면 두가지 엄청난 은혜를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의 진리의 말씀을 금방 얻을 수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29:13a). 여호와의 진리를 찾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종교인들이 고행과 금욕생활을 하면서 겨우 진리의 맛을 조금 보고 있는데(7:7b) 여호와께서는 그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면 곧바로 진리의 말씀을 주실 것이라고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를 만나고 그 앞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29:13b, 17:1, 11:29). 그와 같은 직접 신앙생활의 은혜가 향후 유대인들에게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벌써 새 언약의 시대를 시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31:31-34).

(10)               넷째, 14절입니다;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를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14); 굉장히 특이한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첫머리와 마지막에 똑같이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못을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29:14a&c). 따라서 그 사이에 들어 있는 내용은 절대로 변경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된 것입니다(29:14b). 그 내용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말씀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3장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류의 조상 아담부부가 영적으로 타락하여 에덴동산 바깥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3:22-24). 그들의 자손들인 인류가 언제 어떻게 실락원(失樂園, the Lost Paradise)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 신원을 회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가 있을까요? 영생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를 가지고 계시는 그곳이 새 예루살렘으로 불리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수도입니다(65:18, 21:2). 그곳으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이 입성하는 장면이 요한계시록 제21장에 수록되고 있습니다(21:22-27). 그와 같은 성경말씀의 내용을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발자취로 알기 쉽게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조국이 망하고 이방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②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을 견디고 나면 해방과 고토로 돌아오는 꿈같은 신원회복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③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짓고 다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15. 너희가(바벨론 포로사회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 끌려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현지)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 16.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시드기야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임. 그들을 여호와는 먹을 수 없는 상한 무화과라고 부르심, 24: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만을 추구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여호와께서는 전쟁과 가뭄과 전염병의 재앙으로 징벌하실 것임), 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포로 생활하거나 난민 생활하는 현지에서도 원주민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며 여호와의 재앙인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역시 가는 곳마다 발생할 것임, 42:16-17) 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그와 같은 재앙을 만나는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임)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또한 여호와의 말씀을 예언으로 전달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했기 때문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 그런즉 (여호와)(역사섭리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바벨론에 끌려와서 포로생활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 (성군 요시야 시대 예루살렘 부윤, 대하34:8)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거짓 예언을 바벨론 유대인 포로들에게 퍼뜨린 자들임)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악한 누룩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 황제로 하여금 거짓선지자들을 제거함. 그냥 버려두면 많은 유대인 포로들이 그들의 선동을 받아 바벨론에서 반란을 일으켜 죽게 될 것임) 22.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바벨론 유대인포로들이 그들을 저주함으로써 악한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임. 그것이 여호와의 은혜이며 돌보심임, 24:5),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그들의 행실이 극히 불량했음. 그러므로 유대인 포로사회에서도 악평이 자자한 인물들이었음. 그러한 자가 거짓말로 여호와의 선지자인 척 하였으니 실로 말세인 것임) (여호와) (사람의 중심과 속을, 삼상16:7, 4:13)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9:15-23);

(1)  본문 제16-2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바벨론 지역에 거짓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29:8, 15) 유대인 포로들에게 진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정확하게 서신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  첫째, 15절입니다;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벨론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느니라”(29:15); 여기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에서 발생한 거짓선지자들의 거짓된 예언활동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스겔 제1장 제1-3절의 내용에 따르면, 주전 592년경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제사장 에스겔이 선지자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의 통치 전반기에 이 서신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보낸 때에는  바벨론에서 나타난 선지자 가운데 에스겔과 같은 진짜 선지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본문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이어지고 있는 제16-20절까지의 내용이 진짜 선지자가 대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짜 예언을 예레미야가 서신으로 바벨론의 유대인 포로들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과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게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가는 사절단을 통하여 이 서신을 유대인 포로들에게 보내고 있는 이유는 그들 유대인 포로들이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미혹당하여 현지에서 저항운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많은 유대인 포로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는 정확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특히 선민 유대인들이 어째서 70년 동안 신바벨론의 황제를 섬겨야만 하는지를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본문 제15절은 포로생활 현지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발호를 지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3)  둘째, 16-17절입니다;16.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였고”(29:16-17); 여호와께서는 멀지 아니하여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멸망시켜버릴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와는 달리 상한 열매 곧 몹쓸 무화과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29:17). 그와 같은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 자신을 통하여 벌써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의 백성들에게 선포된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29:16). 그 예언의 말씀을 한번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29:17); ①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켜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그들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19:4-6). 구체적으로, 여호와신앙을 가진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변의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는 한편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의 특권만 누리기를 원하고 그 의무와 사명을 전혀 이행하지 않습니다(12:39). ②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은혜를 자신들만 누리고자 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은 영원히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살다가 모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멸망을 당하거나 선민들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5:43, 16:4). 그러한 선민들의 이기적인 현세주의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그리고 세상적으로 타락하여 이방인보다 더욱 악한 이중적인 인격자 곧 외식적인 신앙인이 되고 맙니다(16:11-12, 23:1-31). ③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만을 성취시켜주는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히 부패하여 먹을 수가 없는 무화과와 같습니다(29:17b). 그러한 악한 누룩의 나라를 여호와께서는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이방나라에서 포로생활을 하도록 징벌하십니다(29:17a). 그 포로생활과 유배생활이 70년 동안 신바벨론의 황제를 섬기는 것입니다(29:10). 그러한 진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모르고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속아서 멋대로 행동하고 있으니 그것이 망할 장본인 것입니다(29:15).

(4)  셋째, 18절입니다;18.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29:18); 선민 유대인들이 멀지 않아 조국이 망하고 망국의 백성이 되어 70년간 바벨론에서 황제를 섬기는 포로로 생활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신바벨론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의 시대가 전개되며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에서 해방됩니다(1:1-4). 역사서 에스라의 기록에 따르면, 유대인의 십중팔구는 페르시아제국에 흩어져서 살게 되고 일부만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2:2-65, 6:15). 그렇다면 귀환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들 교포 유대인들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본문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토(故土)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회당(會堂, synagogue)에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며 역시 폐쇄적인 선민우월사상을 고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온세상에 떠돌이가 되어 학대와 수모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29:18). 그것은 () 유대주의가 발생하는 빌미를 그들이 제공하고 만다는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5)  넷째, 19-20절입니다;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29:19-20); 선지자 예레미야가 결론적인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선민 유대인들의 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백성이 되어 온세계에 떠돌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선민들에게 기대하신 사역 두가지 곧 ①온세상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는 일과(12:1-5, 20:7) ②이방인들의 죄사함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들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책무를 전혀 이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29:19a, 19:4-6, 42:6-10, 12:39, 16:4).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을 따라 이방인보다 더 악한 삶을 살아가자 그들을 돌이키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십니다(29:19b, 7:13, 25). 그러나 그들이 전혀 듣지 않습니다(29:19c, 7:26-28). 도리어 거짓 예언으로 도전하며 진짜 선지자를 배척하고 핍박합니다. 그 결과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이 유대인들이 가는 곳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29:18).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 점을 명심하라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재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29:20).

(6)  본문 제21-23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바벨론 지역에서 거짓선지자로 활동한 아합과 시드기야의 죄악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떠한 처벌을 받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7)  첫째, 21절입니다;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29:2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29:21a);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사회에 거짓선지자 두 사람이 나타나서 동족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훗날 예루살렘에서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전파한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 “멀지 아니하여 유대왕국이 가담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과 신바벨론제국이 전쟁하게 되면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가 패하고 유대인 포로들은 2년 내에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28:1-4). 그것이 자신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낙관론적인 예언에 크게 고무된 유대인 포로들이 현실을 잊어버리고 맹목적으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저항하고자 합니다.

2)    여기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감정이나 저항정신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두 선지자의 말씀전파가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29:21ab). 왜냐하면,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이 그러한 신앙적인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아니한 채 거짓 예언을 듣고 그 선동에 넘어가서 선민우월사상과 민족감정에만 충실하여  이방 강대국인 신바벨론제국에 대항한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과를 미리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한 말씀선포와 유대인 교민 보호에 나서시고 계십니다. 그것이 본문 후반절의 내용입니다. 참고로, 주전 597년에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여호야긴 왕이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항복합니다(왕하24:12). 황제는 여호야긴 왕을 폐위시키고 그와 왕족들 그리고 귀족들을 인질로 끌고 갑니다(왕하24:15).

3)    그러므로 여기서 거짓선지자 두 사람의 신분을 골라야의 아들 아합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29:21ab)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다음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당시에 유력한 집안의 자제라는 뉘앙스(nuance)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 점에 유의하여 명문가를 중심으로 그 집안을 추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골라야는 베냐민의 족장으로서 그의 4대손이 주전 440년경 유다 총독 느헤미야 시대에 베냐민의 수령인 살루입니다(11:7). 그리고 마아세야는 성군 요시야가 통치 18년인 주전 622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신명기 두루마리를 발견할 당시의 예루살렘의 시장(市長, mayor)입니다(대하34:8).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주전 597년에 귀족인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인질로 끌려간 것입니다(29:21aa). 또 하나는, 그 두사람은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왕이었던 아합 그리고 남조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와 이름자가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 두 사람의 이름이  우상을 섬긴 아합 왕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짜 예언을 따르지 아니하고 거짓 예언을 따라간 시드기야 왕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는 기묘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4)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29:21b); 거짓선지자 하나냐의 주장과 동일한 예언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고 있는 지체 높은 아합과 시드기야가 유대인 포로사회에 퍼뜨리고 있습니다. 아합은 같은 지파인 베냐민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자신의 지파인 유대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두 지파가 힘을 합하여 신바벨론제국과 유대왕국이 멀지 않아 전쟁할 경우에 내부에서 호응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포로생활이 빨리 끝나고 노예해방을 조기에 맞이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동족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움직임을 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그들 주모자 두 사람을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조속하게 넘기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29:21ba). 그에 따라 시드기야와 아합은 당장 체포당하고 동족들이 보는 앞에서 일벌백계로 처형당하고 마는 것입니다(29:21bb).

(8)  둘째, 22절입니다;22.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29:22);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은밀하게 진행한 모반의 움직임이 어떻게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그렇게 빨리 보고되고 주모자인 아합과 시드기야가 금방 체포되어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사절단 편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지가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여호와의 진짜 예언의 말씀은 그들 가짜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29:4-14).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어그러진 길을 돌이키기 위하여 수도 없이 선지자들을 파견하셨다는 것입니다(7:13, 25). 그러나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엄청난 죄악을 여호와 앞에서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7:26-28). 도리어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거짓으로 몰아서 죽이고 있습니다(7:18-21, 20:1-2, 26:20-24). 그 때문에 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을 신바벨론의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신다는 것입니다(7:13-15, 27:6-9, 28:13-14).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은 망국의 백성으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할 것입니다(25:11). 그 후에 새로운 제국이 탄생하고 유대인 포로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고토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입니다(25:12, 29:10).

2)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반역하지 말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기에 전력투구하라는 것입니다(29:5-8). 그와 같은 여호와의 역사섭리와 예언의 말씀을 모르고 함부로 거짓 예언으로 동족들을 선동하여 불길 가운데 밀어 넣고자 한 가짜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 황제의 손으로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조치하셨다는 것입니다(29:21). 그와 같은 전후사정을 깨닫게 된 유대인 포로들은 모골이 송연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22.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29:22)라면서 거짓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을 이제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 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유대왕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군대가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군대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그 결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유대왕국을 비롯한 가나안 일대의 6왕국이 전부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자 본문의 내용 곧 거짓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를 저주하는 유대인들의 속언(俗言)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9)  셋째, 23절입니다;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9:2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29:23a); 여호와신앙의 요체는 여호와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평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17:1). 그렇게 살아가는 종은 주인이신 여호와의 눈이 자신을 언제나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섣불리 여호와의 눈을 속이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은밀한 장소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계명을 어기는 패륜행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35:22, 39:9). 예를 들면, 그 옛날 애굽에서 보디발의 종으로 살아가는 청년 요셉이 미모의 주인의 아내가 자신을 은밀하게 유혹하지만 여호와께서 보고 계시는데 자신이 그 큰 죄악을 범할 수 없다고 선언한 내용과 같은 것입니다(39:9). 그런데 거짓선지자인 아합과 시드기야는 그러한 여호와신앙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버젓이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동족들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밀한 곳에서는 여호와의 눈이 없다고 생각하고서 유부녀와 간음을 행하고 있습니다(23a). 말로는 선민우월사상과 의인사상을 선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권력과 육신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있는 패륜아이며 반역자인 것입니다. 

2)    ,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9:23b);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음욕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내어 회개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완악하게 여호와를 무시하고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있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곳에서도 선민우월사상을 내세우면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 선두에 서고 있는 운동권의 리더가 아합과 시드기야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며 제멋대로 거짓 예언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패역함은 육신적인 간음행위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남의 눈을 속일 수 있으면 여호와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4:6-11). 그러나 그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29:23b)고 벌써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12-13).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시는 심판대에서 거짓선지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변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딱한 노릇입니다.

셋째로,24.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 느헬람(유대의 구릉지 시골임) 사람(출신) 스마야(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으며 주전론자로서 거짓선지자임)에게 이같이 말하여(편지를 내어) 이르라(경고하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거짓으로 감히 여호와의 말씀의 위탁을 받았다면서) (너 자신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왕하25:18-21, 주전 586년 예루살렘 함락 당시 갈대아군대에 체포되어 살해됨)와 모든 (성전의)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널리 서신을 보내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거짓 예언을 전파하고 있는데 그 내용인즉), 26. 여호와께서 (스바냐) (바스훌의 뒤를 잇고 있는, 20:1)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왕하25:18, 대제사장의 바로 아래 직급인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20:1)로 세우심은 (선지자 예레미야처럼 행동하는)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20:2-3),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전전임자 바스훌처럼 예레미야를 구속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는 바벨론의 거짓선지자 스마야의 주장임) 28. (예레미야) (감히)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29:1) 오래 지내야 하리니(적어도 3 70년 세월을 말하고 있는 것임, 29:10, 25:11, 27:7),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29:4-7)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제사장 스바냐는 국가원로 아히감과 같은 주화파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호의적임),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바벨론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 포로에게 전언하여(서신을 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 끌려가서 살고 있는 유대인 제사장과 선지자들도 제멋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임, 27:15, 28:15)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스마야의 가문을 멸절시킬 것이라는 여호와의 진노의 말씀임)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신바벨론제국이 망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자유민이 되는 여호와의 역사가 발생하는 것, 10, 25:12, 1:1-4)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퍼뜨리면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임)“(29:24-32);

(1)  본문 제24-28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민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바벨론 지역에서 거짓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는 스마야가 감히 예루살렘성전의 감독자인 부제사장 스바냐와 여러 제사장들에게 예레미야 자신을 징계하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2)  첫째, 24-25절입니다;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제사장 마이세야의 아들 스바냐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29:24-2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4. (선지자 예레미야)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편지를 내어)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29:24); 본문 이하의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로 바벨론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짓선지자 스마야에게 보낸 경고의 서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선지자 스마야를 여기서 느헬람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느헬람의 뜻은 꿈을 꾸는 자인데 그것을 지명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느헬람 사람 스마야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느헬람이라고 하는 지명이 실제로 유대왕국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또한 그 위치가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유대 광야에 있는 하나의 구릉지이며 비옥한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 시골마을로 유추할 따름입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자신의 꿈을 풀이하여 그것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함부로 전파하고 있는 자의 이름이 대표적으로 스마야가 아닌가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29:8-9’절의 말씀을 참조하면 그러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8-9).

2)    ,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29:25); 여호와께서는 어째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서 거짓선지자로 활동하고 있는 스마야에게 엄중하게 경고하는 서신을 보내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내용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거짓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성전의 제사장들과 그가 알고 있는 예루살렘의 주민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때문입니다. 스마야가 도대체 어떤 내용의 서신을 예루살렘으로 보냈기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것일까요? 특히 스마야는 예루살렘성전에서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25b).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29:21)와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짓선지자 시드기야는 성군 요시야 때 예루살렘 시장’(市長 또는 부윤, mayor)을 지낸 유다 지파의 유력자 마아세야의 아들입니다(대하34:8, 29:21). 그와 달리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스바냐는 레위 지파 아론의 후손이며 그의 아버지가 제사장 마아세야입니다(29:25). 참고로, 유대인사회에서 마아세야라고 하는 이름은 흔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일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름자 마아세야를 유대인들이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정경에서 20회 정도나 등장하고 있습니다(대상 15:18, 대하 23:1, 26:11, 28:7, 34:8, 21:1, 29:21, 25, 35:4, 37:3, 10:18, 21-22, 30, 3:23, 8:4, 7, 10:25, 11:5, 7, 12:41-42)

(3)  둘째, 26절입니다;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29:26);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29:26a);바스훌’(20:1)의 뒤를 여호야다가 이어 받았으며 그 자리를 제사장 스바냐가 승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서 레위인들의 업무를 총감독하고 있는 제사장 스바냐의 서열이 대제사장 바로 다음이라고 하는 사실을 역사서인 열왕기하에서 다음과 같이 알 수가 있습니다; “18. (갈대아군대의) 시위대장(예루살렘성전의)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문지기 3사람을 사로잡고”(왕하25:18).

2)   ,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29:26b); 거짓선지자 스마야는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를 미친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옛말에 미친 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듯이 미친 선지자에게는 성전의 총감독이 레위인들을 시켜 체포하여 성전의 베냐민 문 위층에 마련되어 있는 큰 칼을 그 목에 씌워서 백성들에게 죄인으로 수치를 당하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20:1-2, 29:26b);

  그와 같은 잘못된 생각은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의 부제사장 바스훌이나 바벨론에서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스마야에 있어서나 동일하며 그것은 참으로 무도한 일입니다. 그런데 진짜 선지자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께서 그저 12일 정도 나무 고랑을 차고서 모욕을 당하는 것으로 그 수치를 끝나게 하십니다(20:1-3). 그러나 거짓선지자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적국으로 끌려가서 그 목에 쇠고랑을 차고서 노예와 같은 포로생활을 영위해야만 합니다. 진짜 선지자를 배척하고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을 따라간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나무 멍에가 아니라 쇠 멍에를 자초한 완악한 선민 유대인들에 대한 여호와의 징벌인 것입니다(28:13-14).  

(4)  셋째, 27-28절입니다;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29:27-28);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29:27); 여전히 바벨론 유대인 포로사회에서 거짓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스마야는 자신이 진짜 선지자이고 아나돗 출신의 예레미야가 가짜 선지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29:27). 예레미야는 머리가 돌아버린 미친 선지자라는 것입니다(29:26b). 그와 같은 언행으로 보아, 스마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고 그 말씀의 위탁을 받아서 그것을 대언하고 있는 선지자의 경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와 같이 여호와를 만나 그 말씀의 위탁을 받는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 보응의 원칙을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데 스마야는 그것을 하나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똑같이 사랑하고 돌보시며 그 생명을 전부 살리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3:4, 12:30-3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선민 유대인들을 이방 땅으로 멀리 보내어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하기를 원하십니다(12:1-5, 19:4-6). 그런데 선민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그러하지 아니합니다. 현세적인 이익만을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기를 소원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이 신상과 우상을 만들어 놓고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비는 것과 동일합니다.

2)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그러한 우상문화에 물들어 세상적인 탐욕과 음욕으로 죄악을 범하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이방인들과 똑같은 처벌을 시행하십니다(왕하21:11-16, 8:19-20).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보응의 법칙입니다(32:34).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진실로 여호와를 만나 말씀의 위탁을 받은 선지자들은 공통적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 스마야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는 그러한 경지를 알지도 못하고 있으며 오로지 자신이 꾼 꿈을 풀이하여 그것을 여호와의 말씀의 현몽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짓 예언으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동포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스마야이기에 겁도 없이 예루살렘 북쪽 십리 시골 제사장의 마을 아나돗 출신인 선지자 예레미야를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루살렘성전에 편지를 내어 그곳의 총감독인 스바냐와 여러 제사장들에게 종교적인 치리권(治理權)을 발동하여 빨리 가짜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아서 심문하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29:27). 그것은 마치 악화(惡貨)양화(良貨)구축(驅逐, 내쫓는 것)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어서 예레미야가 가짜 선지자라는 증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29:28).

3)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29:28);29:4-7말씀에 대한 요약입니다. 바벨론에서의 포로기간이 70년이 될 것이며 그때 신바벨론제국이 망하고 다른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대인들이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29:10, 25:12). 그러므로 마음을 평안하게 가지고 바벨론에서 터를 잡고 오래 살도록 채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29:28). 또한 멀지 않아 유대왕국이 참여한 다국적군(多國籍軍)이 신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을 해방시켜준다고 하는 거짓선지자와 몽상가들의 주장에 현혹되지 말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상한 서신내용입니다(29:8-9). 그와 같은 서신의 내용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개인의 의견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탁하신 말씀을 그렇게 정확하게 대언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29:4). 그러나 그 진위여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거짓선지자 스마야는 그 말씀에 바벨론 포로들의 심정이 상하고 예레미야를 원망하고 있으니 그 점을 반영하여 유대왕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속히 그를 잡아서 처벌하라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5)  본문의 말미인 제29-32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부제사장 스바냐가 바벨론의 거짓선지자 스마야가 보내온 서신을 자신에게 읽어주자 그 자리에서 어떠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6)  첫째, 29-31절입니다;29. 제사장 스바냐스마야의 글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줄 때에,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29:29-31);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9. 제사장 스바냐스마야의 글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줄 때에”(29:29); 제사장 스바냐는 보통 제사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여호야다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성전의 감독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9:26). 그 직책은 일찍이 제사장 바스훌이 맡고 있던 것으로서 막강한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입니다(20:1-3).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직위이며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지휘하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리이므로 역사서에서는 18. 시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왕하25:18a)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제사장 스바냐의 전전임자인 성전의 총감독 제사장 바스훌은 유다 왕 여호야김의 시대에 성전의 뜰에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레위인들을 시켜서 현장에서 체포하여 자신의 권력으로 치리(治理)한 적이 있습니다(20:1-3). 선지자 예레미야를 성전의 뜰 북편에 있는 베냐민 문 2형구실(刑具室)로 끌고가서 그의 목에 큰칼을 채우고 인신을 구속한 것입니다(20:2).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로 몰아 백성들에게 수치를 당하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2)    제사장 바스훌이 자신의 종교적인 권력을 잘못 사용하여 여호와의 신실한 종이며 진짜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박해하였기에 여호와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20:3-6). 그러한 전전임자의 전례에 비추어보면, 부제사장 스바냐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누가 진짜 선지자이며 누가 거짓선지자인지 분별하고 있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따라서 부제사장 스바냐는 바벨론의 거짓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성전으로 편지를 보내어 예레미야를 거짓선지자로 몰아 그를 처벌해 달라고 하였지만 그에 응하지 않습니다(29:25-29).  부제사장 스바냐는 그 편지를 들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찾아 옵니다. 그 앞에서 스마야의 편지의 내용을 읽어 줍니다(29:29). 부제사장 스바냐의 의도는 바벨론 포로사회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는 거짓선지자 스마야가 있으니 그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한 의도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대접하고 있는 그 현장에 여호와의 말씀이 갑자기 임하고 있습니다(29:29-30). 여호와께서는 성전의 제2의 권력자인 부제사장 스바냐 앞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하여 무엇을 증거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3)    ,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29:30-31a); 여호와께서는 부제사장 스바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하고 있는 그 자리에 영적으로 임재하십니다(29:29-30). 그리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위탁하십니다. 그 내용이 바벨론에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관한 것입니다. 스마야가 진짜 선지자인지 아니면 가짜 선지자인지 밝혀 줄 터이니 여호와의 그 판결의 내용을 바벨론에 있는 모든 유대인 포로들에게 알려주라는 것입니다(29:31a).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더이상 거짓선지자 스마야의 주장에 속지 아니하도록 조치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성전의 제2인자인 부제사장 스바냐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대언하게 함으로써 진짜 선지자 예레미야의 신변을 종교적으로 보호해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4)    ,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29:31b); 진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세우시고 말씀을 위탁하셨으면 진짜 선지자이고 그런 적이 없으면 거짓 선지자입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스마야를 선지자로 세우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위탁한 적이 전혀 없다고 확인하십니다(29:31b). 따라서 스마야는 거짓 예언을 선포하고 있는 거짓선지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판결을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선포하십니다. 그것은 영적인 것이며 타인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선포하고 있는 그 말을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말을 믿게 할 수가 있을까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진짜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말씀선포의 내용에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당장 맹목적인 여호와의 축복만을 선포하고 있는 스마야의 예언은 그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스마야와 예레미야의 예언 가운데 어느 것이 진실로 성취되고 있는 것일까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몇 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39:1-10).

(7)  둘째, 32절입니다;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32);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29:32a); 거짓선지자에 대해서는 여호와께서 직접 치리하십니다(삼상24:6-7, 26:9-11, 28:15-17). 그 심판의 내용이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당사자인 거짓선지자 스마야만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손까지 더불어 처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자신이 꾸민 말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주장하거나 거짓말을 전파해서는 안됩니다. 거짓말은 악한 누룩의 영향력을 지니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미치고 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처벌하시기 때문입니다.

2)   ,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9:32b); 여호와께서 선지자로 세우지 아니했으며 그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하지 아니하였는데 거짓선지자들은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위탁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예언을 지어서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가 심각합니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 포로사회에서는 그 거짓 예언을 믿고서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반란을 획책하다가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단호하게 조치하십니다. 그 내용이 두가지입니다;

3)   하나는, 거짓선지자 스마야와 그의 자손들을 거짓선지자 시드기야와 아합처럼 처형당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시드기야의 경우에는 당사자에 국한되었는데 스마야의 경우에는 그 자손까지 포함되고 있습니다(29:22, 32). 그 이유는 감히 여호와의 진짜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처벌하라고 예루살렘성전의 권력자와 제사장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청원하는 무도한 행동까지 범했기 때문입니다(29:24-28). 또 하나는, 장차 여호와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그 복된 일을 거짓선지자 스마야가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①그것은 짧은 견해로는 바벨론 포로들이 해방되고 예루살렘 귀환이 발생할 때에 그 자리에 스마야와 그의 자손들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②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도들이 부활하여 영생의 천국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갈 때에 그 자리에 스마야와 그 후손들이 없다는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21:26-27). 한마디로, 생명책에서 거짓선지자 스마야의 이름이 지워져 버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32:33-34, 21:27).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을 끝까지 보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서신을 통하여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서신은 시드기야 왕의 통치 초창기인 주전 596-595년경에 바벨론으로 보내진 것으로 보입니다.  

주전 597년에 대규모의 인질과 포로가 유대왕국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들은 노예생활이 힘들어서 저항과 반란을 도모하다가 많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는 주전 594-593년경에 애굽제국이 주창하고 있는 반 바벨론 동맹에 가입하는 문제가 한창 논의되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냐와 같은 거짓선지자들은 그 동맹에 가입하여 신바벨론의 갈대아군대와 전쟁하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선민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미묘한 시기이므로 바벨론 현지의 포로사회에서도 그와 같은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발생하여 크게 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를 미리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으로 가는 사절단에게 부탁하여 일찍 편지를 보내라고 지시하십니다. 그 내용은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이 여호와께서 정하신 유형(流刑)의 기간이므로 부디 저항하지 말고 그곳에서 터를 잡고 대를 이어가며 살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돌보아 이방 땅에서도 번성의 축복을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아무리 힘이 든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돌보심과 번성의 축복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깊은 사랑과 돌보심을 명심하고서 끝까지 힘있게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