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8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시내 산 언약이 파기되자 여호와는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새언약을 마련하시다”(렘31:1-4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12. 30. 19:00

제목;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시내 산 언약이 파기되자 여호와는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는 새언약을 마련하시다”(31:1-40)

설교일; 주후 2027 10 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12 30일 화요일 작성)

구약인 히브리정경에 있어서 대선지서는 예레미야애가까지 포함하여 5권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라는 4권입니다. 그 가운데 2권은 다윗왕조 유대왕국내에서 활동한 2사람의 선지자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서이고 나머지 2권은 바벨론에서 활동한 2사람의 유대인 출신 선지자 에스겔과 다니엘의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경우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활동의 시기가 좀 다릅니다. 이사야가 주로 앗수르제국이 유대왕국을 침범하여 그 도성인 예루살렘성이 함락위기에 놓여 있었던 시기 주전 701년에 여호와의 신위적인 구원을 예언하고 또한 기록하였다고 한다면 예레미야는 그보다 100여년이 늦은 시기인 다윗왕조 멸망에 이르는 유대왕국 말기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대선지서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가장 중요한 예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사야의 경우에는 5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의로운 종 그리스도에 대한 대속의 죽으심과 그로 인한 영광스러운 부활의 예언 그리고 65장에 기록되어 있는 새하늘과 새 땅의 창조와 더불어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영생의 천국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에 관한 예언입니다.

한편, 대선지서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새언약에 대한 예언이 수록되어 있는 오늘의 본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 언약이란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아래에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이 선민의 나라가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폐기됨에 따라 나중에 그것을 대신하여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의 영원한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설명을 먼저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류최초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삼아 그들에게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실천한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라고 하는 것이 시내 산 언약의 핵심입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출애굽기에서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19:6)는 기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나라는 모든 선민들이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감으로써 회개하는 원주민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벧전2:9, 12:1-5). 그리고 거룩한 백성은 이웃의 이방인들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에게 열심히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아브라함과 같은 백성을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8:23-32). 그러나 그후 이스라엘 자손들의 역사에 있어서 그들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구태여 하나의 사례를 찾아보자면 그것은 억지로 니느웨 성으로 가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전달한 변방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 요나 정도입니다(왕하14:25).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가 역사적으로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12:39).

(2)  본문 예레미야 제31장에서는 마지막 선민인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이기적으로 손쉽게 이루기 위하여 이방신과 우상을 도입하여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세속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출애굽하여 시내 산 아래에서 맺은 여호와와의 언약은 선민들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폐기되고 있습니다(31:32). 그것은 언약에 따른 여호와의 보호하심이 사라지고 이방나라처럼 변해버린 약소국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세상적인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 따라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하고 전란 중에 살아남은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그것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 황폐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3)  70년동안 3대에 걸쳐서 세상제국 바벨론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다시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신바벨론제국이 고레스 황제의 페르시아제국에 의하여 종말을 고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귀환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1:1-4). 그러나 실제로 예루살렘과 고토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전체 유대인의 1할 정도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기록을 살펴보더라도 귀환자의 수가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진작에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시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6:13). 비록 소수이지만 귀환한 유대인들은 여호야긴 왕 곧 여고냐(왕하24:6, 15, 대상3:16-17)의 손자 스룹바벨과 마지막 대제사장 스라야(왕하25:18)의 손자 예수아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을 완공하여 율법에 따른 성전제사를 다시 드리고 유월절을 지키고자 열심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페르시아제국에서 돌아온 율법학자 에스라와 유대총독 느헤미야가 합심하여 유대인들에게 율법교육을 시키고 유대교의 순수성을 되살리는 종교개혁을 실시합니다.

(4)  그러나 그들의 뒷배가 되어주던 페르시야제국의 황제 아닥사스다1세가 주전 424년경에 죽고 나자 그만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 결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선례를 쫓아 외세와 타협하여 유대교의 자주성을 확립하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13:7). 그리고 그들의 유대교는 성전에서 드리는 대 속죄일의 제사와 육체적인 할례를 의인의 증거로 삼고 있으며 이웃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을 보여주고 그들의 구원을 위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한 시대 주후 1세기 전반기에 여호와의 독생자가 성육신하여 대속의 그리스도로서 유대인사회에서 공생애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이 창조주 여호와의 모든 말씀의 뜻임을 선포하지만(3:16)  선민만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믿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고 맙니다(11:45-53). 그 결과가 십자가 처형입니다(18:28-32, 19:15-16).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예레미야가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 새언약의 시대가 동터오고 있습니다(24:44-49).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자신을 영원한 희생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모두가 새언약에 따라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14:16-20, 2:36-42, 10:38-48).  그리고 그들이 성도가 되어 현세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며 자신의 성화를 이루어 갈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는 영생의 부활과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28:18-20, 10:20, 18:27-30, 22:28-30, 21:22-27). 그와 같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새언약의 기록이 본문에서 함축되어 기술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12지파를 초월하여)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여호와께서는 이제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마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갔기에 그들을 버리고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축복의 언약 또는 저주의 언약을 적용할 것이라는 새언약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임. 그러한 선례가 단편적이지만 출애굽해방 당시에 벌써 모세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음, 12:38)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그 옛날 출애굽 해방을 얻어 광야에서 40년간 살아간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가 신위적인 능력으로 ①적의 공격을 막아주고, ②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며, ③새벽마다 이슬처럼 만나를 주어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④또한 안식일마다 율법을 공부하고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준 것임)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8:1-10, 19:4-5)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15:20, 출애굽과 마찬가지로 훗날 출 바벨론의 은혜가 주어질 것임, 25:12-14)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선민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을 맞이하고 예루살렘과 고토에 돌아와서 생활하게 될 때에 사마리아사람들이 유대인에 대하여 적대적임, 4:4. 9:52-5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사람들에게도 천국복음을 전파하심, 10:1-20.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마리아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고 영적인 추수를 하라고 말씀하심, 4:35, 28:18-20) 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임금은 시종일관 백성들이 예루살렘 순례하는 것을 막았지만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임, 41:5. 그러나 제2성전시대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사람이 다시 서로 배척함.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전파되자 그때부터 회심하고 여호와께로 나아오는 일이 발생하고 있음, 4:40-42)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출바벨론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그때에는 만민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파하는 것임) 8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 곳으로 돌아오리라!(훗날 그리스도가 비유로 말씀하시는 천국잔치에의 초대와 같음, 22:10) 9.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15:17-20, 탕자처럼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것임),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1:3, 23:1-6, 주님이 목자장이 되심. 3:4-6, 세례 요한이 그 곧은 길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음)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11:13,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창조한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음) 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11:10-12, 65:1-1-3, 선민 유대인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열방과 만민에게 전파한다는 것임, 66:20-21)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출애굽 해방이 그러한 것임. 12:29-42),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그것은 선민들이 원하고 있는 다윗의 제국의 재건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도래임, 11:1-12, 65:17-25)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빈부귀천,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부어 주시기 때문임, 2:28-32),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61:1-3, 65:18-19) 14. (창조주 여호와) (성령세례와 충만의) 기름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대속의 그리스도를 주어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는) 내 복으로 내 백성을 (영적으로) 만족하게 하리라!(5:3-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14);

(1)  본문 제1-6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는 길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어떠한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2)  첫째, 1-2절입니다;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길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31:1-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31:1); 여기서의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만민구원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전부 구원하고자 하는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새 언약이 발동되고 있는 때를 말합니다(31:31-34). 주전 722년에는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제국의 변방으로 끌려가서 살게 됩니다(왕하17:5-6).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고수하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함께 우상을 섬기면서 혼혈이 되고 맙니다. 그것으로 선민의 신분을 가질 수 있는 이스라엘 10지파가 자격미달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동일한 현상이 주전 586년에는 남조 유대왕국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2)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 가운데 살아가던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맙니다(왕하25:7-9). 그리고 이방인의 땅으로 끌려가서 역시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게 됩니다(왕하25:10-12). 유대인들 역시 선민의 자격과 신분을 여호와 보시기에 상실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모든 종족을 말하고 있습니다(31:1b). 그러므로 그 의미는 요한계시록 제7장에 기록되고 있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개념과 같은 것입니다(7:4-8).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세상으로 흩어져서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대속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제자들을 목자로 보내어 전하게 하면서(21:15-19) 이제는 선민과 이방인 구분하지 아니하고 누구나 대속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28:18-20, 22:28-30).

3)   ,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길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31:2a);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19:4-6). 그것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그들에게 승계시킨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가는 곳마다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이방인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들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벧전2:9).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의 기업으로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맙니다. 일찍이 모세가 염려한 그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의 풍요에 취하여 교만한 백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8:11-14). 자신들의 힘으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잘 살게 된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4)   따라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는 민족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선민의 자격을 상실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는 이방인의 땅으로 쫓아내고 마십니다(8:19-20). 그때부터 이 세상에서는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만이 온 세상에 선포된다고 하겠습니다(31:31-34). 그 천국복음이 선포되는 장소가 바로 여호와를 떠나서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땅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길을 가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더 옳다고 생각하고서 어그러진 길을 가고 있습니다(14:10, 10:3). 그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광야와 같은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구원하는 것입니다(31:2a).

5)   ,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31:2b); 참된 안식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2:1-3, 16:29-30).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 되어버린 이스라엘 자손들 및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을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새로운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 만민구원의 역사는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수행이 됩니다; ①이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와 더불어 현지의 이방인들을 전부 여호와께로 돌이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먼저 그들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31:2b, 24:14). 부활 승천하신 대속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자들이 성도들인데 그들이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우선적으로 세상 끝까지 전파한 결과입니다(28:18-20, 24:44-49). ②복음의 일꾼들인 성도들이 온세상으로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바로 그때에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께서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3:20). 그때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또는 남녀노소나 차별이 없이 누구나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대속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주로 받아 들이고 이제는 주님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자 결단하게 되면 그들을 영생의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복이 개인적으로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3:20-22, 22:28-30, 8:15-18, 2:28-32).

(3)  둘째, 3-4절입니다;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31:3-4);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31:3); 영원한 사랑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두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이 쉽게 말하자면, ‘길이와 넓이입니다; 길이는 태초부터 영생에 이르는 것입니다. 넓이는 모든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설명을 더하고자 합니다; ①하나님의 피조물 사랑이 태초부터 영생에 이르는 영원한 것이기에 그 인내와 관용이 엄청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기장이가 자신이 만든 토기를 그 자리에서 박살내 버릴 수가 있지만 그 주권을 행사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고쳐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그 치유의 과정이 참으로 인내와 관용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9:22-23). 공의(公義, righteousness)의 하나님께서는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인류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3:16, 8:19-23). 그와 같은 넓이와 포용력을 가지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점을 사도 바울이 그의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4. 이 그릇은 우리니,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9:24),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19-21). 

2)   ,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31:4); 순전(純全, 순수하고도 온전함)한 여호와신앙을 회복한 성도들을 여기서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4a). 그들이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여호와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내 산 앞에서 언약의 백성으로 세우셨듯이(19:4-6) 앞으로는 만민 가운데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백성들을 새 언약의 백성으로 세우신다는 선언입니다(31:4a). 출애굽의 은혜와 홍해에서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를 필두로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찬양하고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15:1). 그때 여선지자 미리암이 작은 북인 소고(小鼓)를 손에 잡고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15:20a). 그 주위에서 이스라엘 여인들이 역시 소고를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15:20b). 그때처럼 처녀 이스라엘이 작은 북을 두드리고 함께 춤을 추면서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한다는 것입니다(31:4b).   

(4)  셋째, 5-6절입니다;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를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31:5-6);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악 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나라가 망하고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포로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와 같은 뜻을 알기 쉽게 자신이 심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고 침략자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28:30). 그러나 이제는 사마리아의 포도를 빼앗기는 역사가 다시는 없게 됩니다(31:5). 더 이상 서로가 약탈하지 아니하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입니다(11:5-9).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세상나라의 시대가 지나고(12:31)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새 언약의 대 원칙이 되는 시대가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31:31-34, 11:1-13, 12:32, 8:1-2). 북조 이스라엘왕국에서는 본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지만 나중에 에브라임 지파에 편입된 남쪽 국경도시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두고 여호와로 알고서 섬기게 조치하고 있습니다(왕상12:32-33). 그것은 절기 때에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이 남조 유대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전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왕상12:26-30). 그 정책을 계속 고수하다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만 것입니다(왕하17:21-23). 그런데 이제는 벧엘의 금송아지 우상을 철거하고 그 에브라임 산지에서 파수꾼들이 외치고 있다고 합니다(31:6a). 그 내용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전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31:6b). 그것은 모든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기 시작했다는 기쁜 소식이라고 하겠습니다(19:21-25, 66:20-21). 그리고 여기서의 예루살렘은 의미상 새 예루살렘성을 말하고 있습니다(65:18-19, 21:22-27, 11:16, 26).

(5)  본문 제7-1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언약을 승계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나 살다가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자 이제는 야곱의 언약을 누구에게 계승하게 하시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봅니다;

(6)  첫째, 7-8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부터 모으리라.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31:7-8); 다음과 같이 4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31:7a); 야곱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입니다. 여러 민족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조상인 야곱의 일생을 기쁜 소식으로 선포할 수 있는 이유는 야곱이 만난 여호와 하나님 때문입니다(31:7a). 여호와 하나님께서 타고난 야곱의 운명을 창조주의 능력으로 다음과 같이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32:28-29, 35:10-12); 고대 가부장사회에서 장자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족장의 지위를 지차인 야곱에게 허락하십니다. 그것도 보통 족장이 아닙니다. 아버지 이삭의 족장의 권능을 훨씬 뛰어넘는 가나안 땅의 대 족장의 지위를 주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예루살렘 남방 30km지점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야곱은 예루살렘 북방 65km에 위치하고 있는 세겜의 들판은 물론 그 북쪽 20km 도단의 들판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37:12-17). 그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가나안 땅의 중심인 세겜을 정복하였기 때문입니다(48:22). ②야곱이 여호와의 종인 이스라엘로 살아가면서 이 세상의 영광보다는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애굽의 황제인 바로를 축복하고 있습니다(47:7-10). 그리고 애굽 땅에서 총리 요셉의 부친으로 명당자리에 안장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들이 천국을 소망하면서 잠들어 있는 헤브론 막벨라 굴에 들어가서 함께 천국에 갈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47:29-31, 49:29-33).

2)    ,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31:7b); 여호와께서는 야곱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19:4-6). 그 목적은 야곱이 승계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계승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가는 곳마다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전해주고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영생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천국을 소망하라는 것입니다(12:3, 21:33, 11:16).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풍요를 누리며 살게 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신앙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내쫓고 이방인들처럼 살아가게 만들고 마십니다(8:19-20). 그것으로 이 세상에서 선민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옛날 야곱처럼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 바꾸고자 눈물로 기도하는 백성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는 남은 자이며 새로운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들을 주님의 백성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1:7b).

3)    , 8. 보라, 나는 그들을 북쪽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부터 모으리라”(31:8a); 여호와신앙을 가진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 동편의 땅과 그 서편 가나안 일대의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고 살게 됩니다(21:23-35, 11:16-12:6). 그러나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세상적인 욕심을 쫓아 죄악된 삶을 살아가게 되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북방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왕하17:6, 25:7,11, 7:14-16). 그것으로 이 세상에서 선민의 지위를 누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의 나라의 멸망과 더불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모두 여호와의 종으로 살고자 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구태여 선민과 이방인으로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에 참으로 신실한 여호와의 의로운 종이 나타나게 됩니다(53:1-12).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가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입니다(1:30-38, 3:23, 1:14-18). 36개월간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고 선포하면서 천국복음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신 것입니다(5:44-48). 공생애의 마지막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입니다(22:42).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3일만에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24:6, 46).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장차 부활과 영생이 주어진다는 기쁜 소식입니다(22:28-30). 그 복음을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땅끝까지 전하게 됩니다(24:44-49, 1:8). 그에 따라 만민 가운데 믿는 자들이 발생하고 세상의 포로에서 벗어나 북쪽에서부터 여호와의 전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입니다(31:8a).

4)    , 그들 중에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있으며,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리라”(31:8b); 세상의 종말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특히 그 환난의 날에 아이 밴 여자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산모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24:19). 그 말씀은 세상의 종말에는 전란(戰亂)이 있을 것이므로 빨리 피난할 수 없는 맹인과 다리 저는 자와 임산부와 갓난아기에게 젖 먹이는 산모들의 희생이 클 것이라고 하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듣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31:31-34). 그것으로 종말의 심판과 전란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기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8b). 

(7)  둘째, 9절입니다;9. 그들이 울며 돌아 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3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9. 그들이 울며 돌아 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31:9a);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비록 흙으로 빗었지만 사람의 코에 창조주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1:26-27, 2:7). 따라서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영적교제보다는 세상에서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쫓아 소원성취하고자 열심입니다. 부디 욕심의 소원을 이루지 말고 여호와를 섬기는 종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배척하며 떠나고 맙니다(4:4:6-8, 7:13, 25-28). 그와 같은 사람의 타락에 대하여 훗날 예수님께서는 탕자의 비유로 알기 쉽게 설명하십니다(15:12-21).

2)    생존하시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몫을 챙겨서 큰 도시로 떠나간 탕자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서 마침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를 맞이하시는 아버지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들로 삼지 마시고 종으로 아버지의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청입니다(15:18-21). 그러한 의미로 9. 그들이 울며 돌아 오리니”(31:9aa)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31:9ab)라는 말씀은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4:12)는 말씀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처럼 죄악을 범하고 살아가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여호와께서는 버려 버리고(14:12) 그 대신에 대속의 그리스도를 통하여(31:31-34) 만민 가운데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을 구원하시기로 확정하셨기 때문입니다(31:9ab).

3)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31:9b); 여호와께서 자신을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31:9ba) 또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자녀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구절이 출애굽기 제4장에서 다음과 같습니다;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4:22-23).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특히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의 침입으로 그 나라가 먼저 망한 이스라엘 10지파는 그 흔적이 역사 가운데 사라지고 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선민사상을 미워한 이방 강대국 앗수르제국이 식민정책과 혼혈정책 그리고 종교적인 혼합주의를 통하여 선민 이스라엘의 혈통 및 신앙의 순수성을 모조리 말살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자파의 자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그 초대 왕 여로보암1세의 출신 지파의 이름으로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31:9bb)고 부르고 계십니다. 그 의미는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를 대신하여 만민 가운데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여호와의 종으로 따라 나서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여호와의 장자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온세상에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24:49, 1:8);

(8)  셋째, 10절입니다;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31:10);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입니다; 하나는, 선민의 입장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끝까지 돌보시고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맞아들이시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그것을 부러워하면서 그 사실을 온세상에 전파할 따름입니다. 또 하나는, 그것이 아니라 여기서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만민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하고 있는 만민구원 사상인데  그것은 예레미야보다 100년이나 앞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서에서 벌써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9:1-2, 7, 11:4-12, 19:22-25, 65:1-2, 17-18, 66:18-21).

(9)  본문 제11-1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야곱의 언약을 승계한 성도들이 온 세상 만민 가운데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그 기쁨을 어떻게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에서 그 내용을 살펴봅니다;

(10)               첫째, 11절입니다;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31:11);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31:11a); 창세기 제4장 말미에서 아담의 믿음의 형상을 물려 받은 아들 ’(Seth, 5:3)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짓고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4:25-26). 그 의미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진 육신의 인생이지만 이제는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 불쌍하게 여기시고 부디 영생의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셋의 가문이 고수하고 있는 여호와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러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 창세기의 교훈입니다(6:1-8). 따지고 보면, 믿음의 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도 브엘세바에서 영생의 여호와를 찾고 있으며(21:33) 또한 모리아 산에서 영생과 부활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번제로 바치고자 합니다(22:1-2, 11:19). 그때 인신제사를 여호와께서는 원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밝히시면서 여호와가 직접 대속의 제물로 숫양을 제공하고 있습니다(22:12-14). 그것이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1:29).

2)    부친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을 물려 받은 이삭이 여호와의 언약을 계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언약과 신앙을 이삭의 차남인 야곱이 승계하고 있습니다. 본래 영적인 장자의 축복과 언약의 승계는 쌍둥이 아들 가운데 장남인 에서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들사람인 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용맹과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고자 합니다. 그 때문에 차남인 야곱에게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여호와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35:9-12). 야곱은 믿음의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여호와께 타고난 자신의 운명을 축복받은 장자로 그리고 족장으로 바꾸어 달라고 간구하면서도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25:27-28). 따라서 세상적인 꾀로써 형 에서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고자 합니다(25:29-34, 27:22-30). 그러나 그것이 망할 장본입니다. 그때문에 야곱은 아비의 집을 떠나 하란 땅에서 외삼촌 라반의 머슴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두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의 양떼를 몰고서 야반도주를 했다가 길르앗 산에서 꼬리가 잡히고 만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강력하신 간섭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31:23-24). 또 하나는, 얍복 시냇가에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고 있는 형 에서를 만나게 되는 위기에 직면합니다. 자신과 처자식을 부디 살려 달라고 밤새 여호와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3)    그 결과 세상의 꾀로 앞 사람의 발목이나 잡는 야곱의 삶을 버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이스라엘이 되는 조건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32:24-31, 33:15-16). 야곱처럼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신의 타고난 육신적인 삶과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밤새 기도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운명을 얻은 자들이 바로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의미는 여호와의 종인 성도들을 일컫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혈통적으로 야곱의 자손이라고 하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1:12-13).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에서는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31:11a)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듯이 이제는 이방인들을 새로운 여호와의 종으로 삼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구원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율법생활이 아닙니다. 혈통과 사람들이 만든 종교를 떠나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속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새로운 언약 곧 대속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31:31-34, 1:12-14, 1:8).

4)    ,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31:11b); 야곱에게 있어서 그가 상대할 수 없는 강한 자는 라반과 에서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입니다; ①외삼촌이며 장인인 라반은 야곱보다 두뇌회전이 더 빠른 사람입니다. 라반의 간교한 꾀로 말미암아 야곱이 무려 14년간이나 별 소득 없이 그 집에서 머슴살이와 양치기생활을 하게 됩니다. ②쌍둥이 형 에서는 야곱보다 월등 힘이 세고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그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리고 에서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온갖 성의를 표시할 따름입니다(32:13-29, 33:10-11). ③가나안 땅의 중심도시가 세겜입니다. 세겜 성의 추장의 칭호가 세겜인데 그는 히위 족속입니다. 그런데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욕보이고 차제에 그녀를 아내로 취하고자 합니다(34:2-4).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상적인 꾀로 야습하여 세겜 성에 살고 있는 히위 족속의 남자를 전부 살해합니다(34:24-29).

5)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서 주변의 가나안 원주민들이 연합하여 야곱의 가문을 공격하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34:30). 위기에 직면한 야곱이 여호와께 간구한 결과 남쪽 벧엘로 도주하여 살 길을 도모하고 있습니다(35:1-5). 그렇게 강한 적에게 마냥 쫓기던 야곱이 세상적인 꾀를 버리고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생 이스라엘로 살아가게 되자 오히려 세겜 성과 그 주변의 가나안 원주민들을 정벌하고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대 족장으로 살게 됩니다(37:12-17, 48:22). 그렇게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변화가 만민 가운데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의 강한 적들은 누구일까요? 하나는, 악한 영들입니다(6:12). 또 하나는, 패권을 자랑하고 있는 제국들입니다(2:31-43). 그러나 그들이 성도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성도들을) 속량하셨기”(31:11b) 때문입니다. 

(11)               둘째, 12절입니다;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곡식과 새 포도주기름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심령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31:1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31:12a);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이 구절을 해석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훗날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제국을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예루살렘성에서 모든 속국의 사신들이 메시아에게 예물을 드리고 여호와를 찬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1:12a).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거하여 해석하게 되면 달라집니다; ①야곱을 새로운 운명 곧 여호와의 종 이스라엘로 변화시키는 그러한 운명의 변화가 모든 이방인들에게 대속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임하게 됩니다. ②그때에는 시온과 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서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은혜를 성도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만민구원사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높은 산 시온의 의미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시온산성은 본래 다윗의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원주민 가운데 작은 부족인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난공불락의 성입니다(삼하5:6). 그런데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이 된 다윗이 그곳을 점령하여 다윗의 성으로 삼고 훗날 이스라엘제국의 수도 예루살렘성으로 명명한 것입니다”(삼하5:5, 7, 9-10). 그러므로 유대인이거나 이방인들이거나 누구나 시온의 높은 곳에서 여호와를 찬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31:12a).

2)    , 여호와의 복곡식과 새 포도주기름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31:12b); 성도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 땅에 어떠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까요? 그 복은 성도들을 통하여 그 땅의 족속들에게 흘러가게 되는 복입니다(12:3). 알기 쉽게 본문에서는 세상적인 복으로 여호와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표현입니다; ①목축을 하는 떠돌이 삶보다 정착식 농업의 복이 앞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곡식과 새 포도주가 가축인 양과 소떼보다 먼저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정적인 생활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농사를 지어 생계를 도모합니다. 그것이 곡식의 생산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생계만이 아니고 삶의 풍요를 맛보게 하십니다. 따라서 매년 새 포도주가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③목축을 하면서 기름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바치는 전제입니다. 그리고 가축의 새끼가 많이 태어나서 양과 소가 번성하여 큰 떼를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주는 여호와의 세상적인 축복입니다. ④그 옛날 그랄 평야에서 초보 농사꾼 이삭이 농사지어 백배의 소출을 얻은 것과 비슷합니다(26:12-14). 그러므로 만약, 그 땅의 거주민들이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면 그러한 여호와의 축복은 그들에게도 흘러 넘치게 됩니다(12:3). 반면에 성도들을 해치고자 하면 여호와의 복은 마치 그 옛날 그들이 빼앗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물처럼 말라버리게 되고 말 것입니다(26:18).

3)    , 심령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31:12c); 여호와의 복은 세상적인 복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축복이 반드시 세상적인 복과 함께하고 있습니다(18:30). 따라서 본문의 말씀이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12c).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지방 수가 성의 여인에게 생수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4:14). 그 복음의 생수가 마치 물 댄 동산같이 성도들의 심령속에서 솟아날 것이라고 여호와께서는 여기서 예언하시는 것입니다(31:12c). 간략하게 풀이하자면, 대속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따라 성도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여호와의 종들에게 말씀의 위로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항상 공급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8:15-18, 37-39).

(12)               셋째, 13절입니다;13.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31:1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13. 그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31:13a); 여기서 처녀처녀 이스라엘’(31:4)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 언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게 된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처녀와 같은 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따라 나선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즐거워하면서 그것을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31:13aa). 그 결과 이방인들 가운데 많은 청년과 노인들이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서 진심으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써 이제는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행10:44-48). 바야흐로 놀라운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길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방인들에게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31:13ab).

2)   ,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31:13b); 사람들은 너나 없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슴 속에 묻고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그나마 조부모나 부모의 상을 당한 경우에는 세월이 지나면 잊고서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식을 품안에서 키우다가 일찍 떠나 보내게 되면 그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부모의 가슴에 자녀의 무덤이 남아서 그 슬픔을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11:28, 31-32, 37:34-35, 44:27-31). 그와 같은 인간의 슬픔의 정체를 아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슬픔을 돌려서 즐거움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31:13ba, 61:3). 그것이 구원의 의미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3)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이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발휘가 될 때에 비로서 가능합니다; ①성도에게 영원한 위로를 주십니다(31:13bb). 슬픔이 가득한 육신을 벗고 영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처럼 천국에 들어가서 헤어진 가족을 모두 만날 수가 있다는 부활의 메시지를 소망 가운데 믿게 해주시는 것입니다(3:10-16, 14-18). ②성도가 근심하고 있을 때에 그것을 떨쳐버리고 기쁨을 얻게 하십니다(31:13bc). 성도라고 하더라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죽을 것만 같은 근심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7:21-24, 9:1-3). 그때 믿음을 회복하도록 내주하신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주신 복음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십니다(14:16-20, 26). 그 결과 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처럼 성도들도 이 세상이 어찌할 수 없는 승리와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8:1-2, 35-39).

(13)               넷째, 14절입니다;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 먼저, 율법에 따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 제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에 이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그에 대한 분류를 해보고자 합니다; 화제(火祭)전제(奠祭)입니다. 화제는 가축이나 곡식을 제물로 사용할 때에 그것을 태워서 그 향기를 올려드리는 제사입니다. 전제는 제물이 액체인 경우로서 가축의 피, 곡식으로 짠 기름, 포도주 등을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화제(火祭)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번제(燔祭)입니다. 그것은 가축을 토막 내어 전부 제단 위에 올려서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타의 화제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먹으면 좋지 아니한 가축의 기름과 내장 그리고 콩팥 등을 태워서 드리고 식용이 가능한 살코기는 다리 한쪽을 먼저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나머지는 백성들에게 화목의 식사를 위하여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거제’(擧祭, 제물을 높이 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함)요제’(搖祭, 제물을 높이 들고 흔들어서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동시에 분깃으로 주심을 감사함)입니다. 여기서 거제와 요제라고 하는 제사의 방법을 제례의식에 관한 율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그것이 제사장과 백성을 아끼시는 여호와의 마음과 그 배려하심을 넉넉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따라서 본문에서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라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③가축과 곡식과 기름과 기타 열매들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가축과 곡식은 화제(火祭)로 드리는데 그것은 완전히 태워서 바치는 번제와 일부만 태워서 드리는 기타 화제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곡식의 경우에는 소제’(燒祭)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곡식 역시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번제와 같은 소제가 있고 일부만 태워서 소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요제나 거제로 바치는 모양만 내고서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액체인 기름, , 포도주 등은 전제(奠祭)로 드린다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끝으로, 기타 과일이냐 열매는 태우지 아니하고 예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땅의 소산과 가축 그리고 야채와 허브 등 모든 십일조 및 성전세를 여호와께 바치는 경우에도 그것은 예물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사람이 먹으면 좋지 아니한 가축의 기름과 같은 것들을 화제물로 삼아 여호와께서 받으시고 살코기는 전부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부위별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거제와 요제라는 제사의 방법을 구태여 도입하여 여호와께 바치는 시늉을 하고 그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곡물의 경우에는 일부만 소제로 바치게 하고 나머지는 예물로 삼아 제사장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에 대해서도 여호와의 제단에 바치는 모양새만 갖추고 사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분깃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배려와 넉넉하신 도우심에 대하여  알기 쉽게 본문에서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31:14a)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b); 이 세상의 재화는 한정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재생산이 되고 있는 것일 뿐 그 전체의 양이 이미 확정되어 있습니다. 재화가 고무줄과 같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생물들이 그것을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하여 생존의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글의 법칙’,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원색적인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약간 고상하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또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재화란 모두가 행복하게 나누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구원의 문제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는 본문에서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4b)고 당당하게 선포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세상의 재화는 피조세계의 재생산의 법칙에 기속(羈束)이 되어 있기에 한정적인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플러스섬’(plus-sum)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넉넉하게 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하늘의 곳간을 열어서라도 배불리 먹이시고 그 영적인 기근과 갈급함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오병이어’(五餠二魚, 5덩어리와 물고기  2마리)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배가 고픈 청중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14:17-21, 15:32-38). 그렇게 맛배기로 선을 보인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이 만민구원을 위해서는 풍족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31:14b, 28:18-20, 1:23, 4:19).

둘째로,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라마(예루살렘의 북쪽 20리 지점이며 그곳에서 산모 라헬이 객사함, 35:16-20)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야곱의 제2부인) 라헬 (녀의) 자식(요셉과 베냐민)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하여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및 므낫세 지파가 멸망하고 주전 586년에는 신바벨론에 의하여 요셉의 동생인 베냐민 지파가  멸망한 것을 말함)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당장은 주전 536년경 바벨론 포로가 해방되고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것을 말함)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그러나 영원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므로 그것은 새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는 성도의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임, 65:18-19, 21:22-27) 17. 너의 장래에 (여호와의 저주의 언약이 끝나고 축복의 언약이 임하는)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회개하고서, 15:13-20)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당장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지만 종국적으로는 영생의 천국을 말함, 11: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에브라임(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1세가 에브라임 출신이므로 흔히 그 나라와 백성을 에브라임으로 선지자들이 부르기도 함)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이방인처럼 되어 버린 사마리아 사람들도 훗날 새 언약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한다는 예언임, 11:10-12, 24:44-45, 4:5-42) 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선민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누구나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스스로 자신이 치욕스러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눈물로써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얻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예언임, 18:13-14) 20. (10:33-37, 예루살렘 유대인에 의하여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되는 사마리아 사람 곧) 에브라임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이방인 역시 창조주 여호와의 자식이므로 그들을 선민과 함께 구원하신다는 말씀임, 11:10-12.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임, 11:4-5, 5:44-4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3:14)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어디에서 선민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는지를 되돌아보고 이제는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순수한 첫사랑과 같은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임) 22. 반역한 딸아(이방인과 이방인처럼 되어버린 선민을 동시에 말하고 있음),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선민 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새언약의 시대 곧 복음의 시대를 창조하기로 여호와께서 벌써 결정하셨다는 것임)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 싸리라!(남녀가 결혼하듯이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복음을 믿자고 하는 새언약의 시대가 찾아올 것임)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58:6, 7:22)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바벨론에서 자유를 얻은 선민 유대인들이 돌아오듯이 그렇게 이 세상에서 방황하던 이방인들이 회개하고서 영생의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임),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유대인 출신 사도들이 주님의 양을 치는 목자들이 되어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길러낼 것임, 28:18-20, 21:15-19), 25. 이는 (여호와)가 그 피곤한 심령을 (그리스도를 보내어 천국복음으로)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내주 역사하게 하여)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예레미야가 꿈에서 환상으로 여호와로부터 얻은 꿀과 같이 단내가 나는 예언의 말씀이라는 기록임, 28:11-17)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1:26-27, 4:26, 5:3) 사람의 씨 (단지 흙으로 만들어져서 육신적인 삶만 살아가는, 6:2-5) 짐승의 씨 (선민사회 곧)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서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영접하는 심령이 있고 복음을 물리치고 마귀의 거짓말을 영접하는 자가 생기는 것과 같음, 13:3-9),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여호와의 말씀을 버린 자들에게는 저주의 언약이 임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들에게는 축복의 언약이 임한다는 것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삼상2:30, 모세를 통하여 출20:5-6절에 기록하게 한 연좌제를 폐지하고 여호와의 저주 또는 축복의 언약은 행위당사자에게만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임)“(31:15-30);

(1)  본문 제15-2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 라헬이 라마에서 통곡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에브라임의 패망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 세상에 베풀고 계시는지를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살펴봅니다;

(2)  첫째, 15-16절입니다;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5-16);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도다”(31:15); 예루살렘 북쪽 8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라마는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성읍입니다(18:25). 베냐민은 라마에서 야곱의 12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모친 라헬이 산고 끝에 그곳에서 객사하게 됩니다(35:16-18). 야곱은 애처 라헬의 시신을 3일길 운구하여 예루살렘 남방 8km지점인 베들레헴의 초입에서 장사지냈으므로 라헬의 무덤이 그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35:19-20). 따라서 베냐민 지파에게 성읍 라마와 베들레헴을 배분한 것은 합리적인 것입니다. 야곱은 죽기전에 자신을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을 해달라고 자손들에게 두차례나 유언합니다(47:29-31, 49:29-33).

2)    그곳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부부, 이삭부부, 그리고 자신의 제1부인인 레아가 잠들어 있으며 그들은 훗날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9:31, 11:16). 그런데 남편 야곱의 사랑을 언니 레아보다 훨씬 많이 받은 애처 라헬은 사내아기 베냐민을 낳다가 객사하게 되고 그만 막벨라 굴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믿음이 조상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라헬 자신은 제외되는 것과 같은 불이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자손들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 그리고 베냐민 지파들이 모두 여호와신앙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선민의 자격을 상실하고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망국의 백성이 되어 이방세계를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라헬 자신에 이어 그녀의 자손들마저 영생의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31:15b). 그러므로 라마에서 라헬의 슬픔의 통곡이 메아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애곡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습니다(31:15a).

3)    ,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31:16a);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백성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며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65:19, 21:4).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8:31, 9:31, 10:33-34). 그리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진리의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십니다(14:16-20).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제31장에서 새 언약으로 기록하고 있는 예언의 깊은 내용입니다(31:31-34). 따라서 성도들이 끝까지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22:28-30, 14:1-3). 그와 같은 새 언약의 시대가 다가오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라헬에게 그 슬픈 울음을 이제는 멈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31:16a).

4)    ,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6b); 한평생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복음의 일꾼으로 일하게 되면 어떠한 삯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성도들이 받게 될까요?(31:16ba) 사도들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그 삯을 다음과 같이 주신다고 그의 로마서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8:15-18).

5)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6bb). 성도들이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자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6:12). 그들은 여호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역사를 훼방하면서 성도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 묶어 놓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그 악의 지배에서 해방을 주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님의 역사이십니다(8:1-2). 그 점을 예수님께서 더 확실하게 증거하십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3)  둘째, 17-18절입니다; 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31:17-18); 역시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7.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7); 여호와께서는 라헬의 자손들인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이 훗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사역을 하다가 이 땅에서도 자신들의 기업을 얻고 하나님나라에서도 영원한 기업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믿고서 라헬에게 소망 가운데 천국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그와 같은 믿음을 창세기에서 하나님 경외자인 아브라함이 다음과 같이 보여 주고 있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의 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11:19).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라헬의 눈물을 닦아 주고 동시에 모든 성도들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11:26).

2)   ,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31:18a);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에브라임을 비롯한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왕하17:6). 그곳에서 혼혈이 이루어지고 우상과 더불어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적인 혼합주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정통성과 순수성이 사라져버리는 그와 같은 비극이 어째서 발생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10지파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긴 그 죄악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왕하17:21-23). 선민들이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며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의 선민의 자격이 상실되는 비극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적국의 포로로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입니다(18a). 한마디로, 여호와의 종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세상의 주인인양 제멋대로 살아오다가 마침내 여호와의 징벌을 받게 된 죄인들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인 것입니다.  

3)   ,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31:18b); 앗수르제국의 변방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10지파의 자손들은 스스로 우상문화를 벗어나서 여호와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여호와께서는 대속자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시고 성령님을 자신들에게 임재시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악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10지파 후손들의 부르짖음의 내용입니다.

(4)  셋째, 19절입니다; 19. 내가 돌이킨 후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31:1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9. 내가 돌이킨 후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내 볼기를 쳤사오니”(31:19a); 참으로 영적으로 무지하고 여호와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는 불쌍한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에게 훗날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속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주셨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비로소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뉘우치고 있습니다(31:19aa).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자신과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36개월간 공생애를 사시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자세하게 풀이하여 가르쳐 주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의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후 3일만에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 곧 인류최초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첫 열매가 되십니다(고전15:20-23. 44). 그와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영적인 교훈으로 받은 이스라엘 10자파의 후손들과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볼기를 때리면서 스스로 여호와의 구원의 은혜를 저버린 어리석은 죄인이었음을 통탄하고 있는 것입니다(31:19ab).

2)    ,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31:19b); 참으로 철없는 미성숙한 신앙인이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진술에 따르게 되면 그 옛날 선민이라고 자랑하던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의 잘못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1-3). 그 잘못을 깨닫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죄인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31:19b).

(5)  넷째, 20절입니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31:20a); 이스라엘 10지파는 금송아지를 두개나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다가 주전 722년에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에 그들의 후손이 일부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혼혈이 되어 선민의 족보를 잃어버렸으며 또한 여호와신앙의 순수성을 모두 잃어버린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마리아 수가 성을 찾아가시고 그곳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십니다(4:40-42).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을 비롯한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의 후손을 깊이 생각하시고 그들을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본문말씀이 기록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0a).

2)   ,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0b); 금송아지 우상을 두개나 만들어 200년 동안이나 여호와라고 주장하면서 섬긴 어리석은 백성들이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참여한 이스라엘 10지파입니다(왕상12:26-33, 왕하17:21-22). 그들은 모세 시대에 시내 산 앞에서 금송아지 하나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주장하면서 섬기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자손 모두가 전멸을 당할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습니다(32:1-10). 따라서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 10지파가 역사 가운데 사라지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왕하17:21-23).

3)   그렇다면,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에브라임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혈통적인 이스라엘 자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세상에 흩어진 이스라엘 자손들과 어울려서 살아가고 있는 만민들을 일컫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금송아지를 섬긴 선민들이나 신상과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방인들이나 그 죄질이 여호와 앞에서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태여 혈통을 쫓아서 그들을 구별할 실익이 전혀 없습니다(1:12-13).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나면 바야흐로 모두가 여호와 보시기에 이방인이 되어버린 세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불신앙의 세계를 보시고 만민을 구원하고자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같이 피조물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여호와의 마음이 본문의 구절에 절실하게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20b).

(6)  본문 제21-26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처녀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그리고 유다의 농부들과 목자들아 돌아오라고 외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구절풀이에서 알아보겠습니다;

(7)  첫째, 21-22절입니다;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세우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으로 돌아오라. 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셨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31:21-2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세우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으로 돌아오라”(31:21); 여기서 처녀 이스라엘아’(31:21a)라고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용어는 다음 두가지 의미를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진짜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 모습을 가상하게 생각하여 기쁘게 호칭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그 이방인의 땅에서 함께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결단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일컫고 있는 용어이기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주전 586년이 되면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이방 강대국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멸망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호와께 죄를 범한 유대인들이 모두 선민의 지위를 상실하고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이므로 이제는 더이상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별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은 참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2)    그 이유는 수많은 종족 가운데 그들이 여호와신앙을 가진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먼저 살아가게 된 그 성공과 실패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두가지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축복의 언약 안에 머물고 있다면 그 믿음의 역사를 보고 그대로 따라서 이방인들도 여호와를 모시고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이루고자 죄악을 범하다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면 그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과 실패를 거울삼아 차제에 나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로 삼아 그렇게 살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험한 광야를 지나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잘 생각해보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31:21b). 광야에는 지명도 길도 제대로 없습니다. 따라서 200만명이 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하면서 그 길을 함께 걸어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①이정표(里程標, milestone)를 세운 것입니다. 목적지를 얼마 앞둔 지점인지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힘을 안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②푯말을 세운 것입니다. 광야이지만 물이 있어 함께 오래 머문 그 장소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후일 그 장소를 지날 때에 도움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③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던 그 행로를 마음에 두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 험한 길을 걸어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업 그 성읍으로 들어왔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격려하며 믿음을 나누던 그 신앙적인 경험이 전체 믿음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3)    ,22. 반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31:22a); 여기서 반역한 딸아’(31:22aa)는 위에서 부르고 있는 처녀 이스라엘아’(31:21a)와는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세상적인 욕심을 성취하고자 죄악 된 삶을 살아갔기에 여호와께서 주신 성읍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백성들을 일컫고 있는 용어가 반역한 딸아’(31:22aa)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 된 삶의 모습을 보고서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광야로 내쫓아 버렸지만 내심으로는 그들이 여호와신앙을 회복하여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고자 하시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31:22ab). 따라서 앞절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옛날 광야를 어떻게 통과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보라고 자상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    ,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셨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둘러싸리라”(31:22b);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모세와 여호수아를 인도자로 세워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쳐 요단 강 동쪽의 땅과 그 서편의 가나안 땅을 전부 그들의 기업으로 주었지만 그것으로 그들이 믿음생활에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의 풍요로움에 취하여 그만 교만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여호와의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주인으로 제 마음대로 살고자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섬기는 삶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그 옛날 노아 시대의 세상사람들의 모습과 똑같은 것입니다. 창세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2-3). 여호와신앙을 잃어버린 남자들이 여자들을 취하여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싫어하시고 그들을 떠나 버리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적인 삶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그것은 두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옛날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이 세상의 가나안 땅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생의 생수가 흐르는 하나님나라를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처녀 이스라엘과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31:22ba). 그 일은 대속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을 또다른 보혜사로 성도들에게 보내어 주심으로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31:31-34). 또 하나는,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처녀 이스라엘이 세상의 남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과 함께 전파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옛날 노아 시대에 남자들이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종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의 삶을 부드러운 여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31:22bb).

(8)  둘째, 23절입니다;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31:23);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어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1:12-18, 3:13-18).

1)   영생의 하나님을 떠나서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백성들이 대속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써 이제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받아 성령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고 있습니다(14:16-20, 8:1-4). 그들이 새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31:31-34, 1:12-13).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떠한 특권을 누리게 되는지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마지막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며 살아갔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재앙으로 심판하십니다.

2)   그 결과 이방 강대국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기업인 가나안 땅은 적군에 의하여 초토화되고 황폐해져 버립니다. 그들의 땅은 여호와께서 버린 저주 받은 땅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이방인이 되어 버린 그들과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세상에 대속의 제물로 오시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31:31-34);

그러한 만민구원의 결과는 영적으로 그들과 하나님께서 함께 인생을 살아가시게 된다는 것입니다(14:16-20). 그러므로 새로운 축복의 눈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들의 강토를 바라보게 됩니다. 온 천지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며 성도들이 걸어가는 그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서 본문과 같이 미리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3).

(9)  셋째, 24-26절입니다;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양떼를 인도하는 자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31:24-26);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양떼를 인도하는 자거기에 함께 살리니”(31:24); 선민 유대인들이 타락하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에 의하여 그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으로 끌려가서 포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황제가 그 땅에 남겨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 땅을 관리하고 목축하며 농사지을 수 있는 목자와 농부들입니다(왕하25:12). 비록 모든 성읍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불태워버리고 말았지만 농촌지역에는 농부들과 목자들이 살면서 소출을 얻어 총독부를 통하여 황제에게 조공을 바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그들 목자와 농부들은 선민의 왕이 다스리던 시대나 이방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있는 시대나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여전히 신분상 비천한 자들이며 나름대로 여호와신앙을 지니고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이 아닌지는 몰라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계속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가 본문에서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31:24a)에 진하게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들의 땅에 훗날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백성들이 함께 살도록 조치하십니다(31:24b). 여호와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백성들을 구원하여 성도로 삼아 약속의 땅에 남아 있는 농부들과 함께 평화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들 이방인 성도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또다른 의미의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을 천국복음으로 교육시키고 목자로 발령하신 그 전통을 따라 오늘날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고 새로 믿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하는 자들입니다(28:18-20, 24:44-49, 21:15-19, 고전11:1). 

3)    참고로,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하게 된 때에는 이스라엘 출신의 농부들조차 한사람도 그 땅에서 살지 못하게 됩니다. 앗수르 황제가 북조 이스라엘왕국을 얼마나 증오하였는지 이스라엘 10지파의 백성들을 모조리 전쟁포로로 끌고가서 앗수르 변경에서 근근이 살아가도록 조치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왕하17:6, 23). 그리고 사마리아와 북조 이스라엘의 성읍에는 앗수르 변방의 온갖 잡족(雜族)들을 식민(植民, planting people)으로 들여보낸 것입니다. 그러한 식민정책으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와 북조 이스라엘의 성읍에서 이스라엘 10지파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혹시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면 전란을 피하여 남쪽으로 사전에 피신한 일부 백성들과(2:36) 훗날 앗수르가 멸망하자 몰래 고토(故土)로 돌아와서 살게 되는 혼혈아들만이 있을 뿐입니다(9:52-53, 4:20). 따라서 훗날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짓고 살아가게 되는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토록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혼혈이 된 죄인들이라고 온갖 멸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4:1-4, 4:9);

4)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31:25); 가나안 땅에서 농사지어 이방인 황제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고 나면 그 생활이 참으로 힘이 듭니다. 속국의 백성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바로 농노’(農奴, 농사를 짓는 노예)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목자의 인도를 따라 목축지를 옮겨 다니면서 풀을 뜯어 먹어야만 하는 양들의 처지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서의 사람들이나 모든 피조물들은 마치 유배생활을 하듯이 그렇게 힘이 드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3:17-19, 23-24, 4:12-17). 그것이 이른바 실락원’(失樂園, the lost paradise)의 삶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19-23).

5)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진 에노스가 아버지 과 할아버지 아담과 함께 영생의 여호와 하나님께 영원한 구원을 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4:25-26). 아담의 아들 셋과 손자 에노스의 가문처럼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영생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소원을 두가지로 부르짖고 있습니다(21:33, 22:12, 11:16, 19);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벗고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11:19). 또 하나는, 영생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에덴동산이나 천국으로 되돌아가서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11:16, 21:33). 그와 같은 소망이 장차 대속의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의 임재로 말미암아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기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선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5).

6)    , “26.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31:26); 꿈과 같은 일이 과연 생시에도 발생할 수 있을까요? 꿈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짓선지자에 속하는 꿈꾸는 자가 있습니다(27:9). 그것은 꿈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꿈에 본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점에서 개꿈이나 같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예언의 일종으로 주시는 꿈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환상을 꿈의 형태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7세의 청소년 요셉이 가나안에서 꾼 꿈이 그러합니다(37:6-11). 요셉의 꿈은 훗날 그가 애굽에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30세에 총리가 되어 7년 연속 흉년으로부터 애굽과 주변국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는 만민구원의 역사로 성취되고 있습니다(45:4-8, 50:20).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기서 전자가 아니라 후자에 속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꿈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꿀같이 단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31:26, 28:11-17). 여호와의 말씀을 먹고 소화하게 되면 그것이 꿀과 같이 달게 느껴지듯이 여호와께서 복음 안에서 성도에게 주시는 그 꿈도 그렇게 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119:103, 3:3).

(10)    본문 제27-3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구원의 원칙을 어떻게 천명하고 계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파악해봅니다;

(11)    첫째, 27-28절입니다;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7-28);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31:27);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의 백성들이 앗수르 변경으로 전부 끌려가서 비참하게 살다가 결국에는 그 흔적이 사라지게 됩니다(왕하17:6, 23). 그리고 주전 586년에는 마지막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의 유대왕국마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말미암아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패망하고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전쟁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왕하25:7-12). 그것으로 공식적으로 이 세상에서 선민의 지위를 가진 백성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는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반역의 세상에 언제 여호와신앙을 가진 백성들을 만들어 내시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벌써 창세기에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아벨 대신에 또다른 씨로서 이라는 아들을 아담의 집안에 주신 것입니다”(4:25-26, 5:3). 그와 같은 선례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후손 가운데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자 하십니다(31:27).

2)    그런데 그와 관련하여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만 합니다; 하나는, 언제 누구에 의하여 그 복음의 씨앗이 이 세상에 뿌려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함께 뿌리신다고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이스라엘 10지파와 남조 유대왕국의 유대인들이 모두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욕심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게 되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준 가나안 땅의 기업을 빼앗고 선민의 지위에서 쫓아내어 버리십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방인의 땅에서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자 그들의 고토(故土, 연고가 있는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나십니다(1:14). 나사렛 예수로 불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설명하면서 제자들의 마음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4:14, 8:11, 15).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28:18-20).

3)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 속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과 같은 부활과 영생의 소망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22:28-30). 그와 같은 내용의 복음의 씨앗이 가나안 땅과 그 주변에 뿌려지고 나중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하여 온세상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28:18-20, 1:8, 2:11).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러한 대속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오심이 새 언약의 핵심이라고 은근히 제31-34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만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와 같은 뜻이 요한복음 제3장에서 다음과 같이 잘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영생구원의 복음이라는 씨앗이 사람에게 그리고 짐승에게 골고루 뿌려질 것이라고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31:27). 훗날 사도 바울은 그 표현도 미흡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짐승대신에 모든 피조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8:19-22).

4)   ,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31:28a); 피조물인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때로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탐욕과 정욕이 육신적인 충동으로 일어날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포악한 행동과 악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인간의 교만과 죄악을 여호와께서는 깨어서 모두 지켜보고 계십니다(31:28aa). 구체적으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양이 여호와께서 관용하시는 수준을 넘어설 때에는 가차 없이 역사적인 심판을 행하십니다(15:16, 왕하21:11-13). 축복의 언약에 따라 그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서 쫓아내어 버리십니다. 여호와의 저주의 언약이 임하게 되면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28ab)하는 심판이 죄인들에게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이 전부 선민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이방인의 땅에서 망국의 백성이 되어 처량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5)   ,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8b);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 이방인들의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면 인간세상에서는 구원의 희망이 사라지고 맙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은혜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시는 새로운 씨앗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로 보내어 여호와의 신실한 종의 모습이 어떠하다는 것을 만민들에게 똑똑하게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영적인 패배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는 계기를 마련하십니다(8:1-2). 누구나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구원을 얻을 수가 없는 심각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호와의 도우심을 정직하게 구하면 놀라운 영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영적인 삶이 시작됩니다(8:1-4). 그렇게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여 복음의 전파자로 세우고자 하십니다(31:28b, 66:20-21, 28:18-20). 복음의 일꾼들은 온세상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심고 있습니다(31:28c). 그렇게 모든 사람의 심령속에 복음의 씨앗을 심게 하는 역사가 소위 새 언약의 내용으로 예레미야 제31장에서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31:31-34).

(12)    둘째, 29-30절입니다;29.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31:29-30);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9.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31:29);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이가 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치아가 신 포도에 약하고 민감한 것입니다. 그런데 훗날 그의 아들이 역시 신 포도를 먹게 되면 이가 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약하고 예민한 치아가 자식에게 대물림이 유전적으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국복음과 구원에 대한 믿음도 대물림이 되고 유전적으로 승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믿음이 혈통적으로 다음 세대로 대물림 되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유전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옛날 모세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 강 동편과 서편의 가나안 땅을 모두 차지하고 선민의 영광을 떨치던 그들이 이제는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모두가 멸망하고 마는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도 여호와신앙도 전혀 혈통적으로 유전되거나 대물림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31:29).

2)   ,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31:30); 예레미야는 다윗왕조 유대왕국 말기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주전 627년 성군 요시야 시대에 선지자로 세움을 받아 조국이 망할 때까지 선지자로 활동했습니다(1:1-3). 자신의 눈으로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게 됩니다(38:28). 그리고 망국의 백성들이 애굽의 난민촌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에 예레미야는 그곳에 끌려가서도 이방나라들에게 주시는 여호와의 예언을 전파하게 됩니다(43-51). 어째서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이방 강대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그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적국으로 끌려가서 비참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방의 나라들이 하나같이 유대왕국처럼 망국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요?(25:29) 그 질문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기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 명쾌하게 한마디로 답을 하고 있습니다;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31:30). 그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망국의 백성은 남 탓과 국가의 탓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조국이 패망하고 자신이 이방인의 노예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전부 자신이 여호와 보시기에 죄악을 범한 심각한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31:30). ②신 포도를 먹으면 이가 신 것은 이제 당사자에 국한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선민과 이방인이라고 하는 구분이나 아버지의 믿음으로 온 집안이 모두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는 주장이 이제는 호소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유전되거나 혈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1:12-13, 삼상2:30).

셋째로,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시내 산 언약, 19:4-6, 24:3-8)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여호와)나의 법(말씀과 율법, 8:2)을 그들의 (심령, 고전6:19)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로) 기록하여 (창조주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14:16-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임, 5:24, 11:26)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24:14, 이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그리고 각자의 인생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임. 그리고 자연계시가 존재하고 있음, 1:14-15, 38:2-41. 그와 더불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살아 있는 생령으로 창조되어 있는 것임, 1:26-27, 2:7, 4:26, 1:18-23) (여호와)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백성들)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창조주 여호와의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이며 그 진리를 확인하여 주는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 및 내주 역사하심이 영원할 것임)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1:9-10, 14-17)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38:8-11)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창조주 여호와 앞에 청지기로 창조된 사람이 그 종의 법도를 지켜서 끝까지 살아가지 아니하면, 1:26-31, 15:25, 17:10) 이스라엘 자손도(선민이라고 하더라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실제로 선민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다윗왕조가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임)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사람들이)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세상적인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여 마천루 바벨탑을 쌓아 자력으로 하늘에까지 닿을 수 있다고 하면, 11:4)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3:22-24, 죄 가운데 영생하는 마귀가 되고 말았으므로 훗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일단 에덴동산에서 내쫓고 만다는 것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오늘날에도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스스로 창조주가 될 수 있다고 과학을 맹신하고 창조주 앞에 교만하다면 역시 그러하다는 여호와의 말씀임)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Tower of Hananel,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망대임, 14:10)로부터 모퉁이 문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당장은 주전 516년에 완공되는 예루살렘 제2성전의 건설을 의미하고 있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그러나 영원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므로 그것은 영원한 새 예루살렘성을 의미하기도 함, 65:18) 39. (스룹바벨의, 4:9-10) 측량줄(또는 다림줄)이 곧게 (예루살렘 남서쪽의)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예루살렘 서쪽 골고다언덕과 그 남쪽의 공동묘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40. 시체와 재의 모든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馬門, horse gate)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실제로는 새 예루살렘 성임을 밝히고 있는 대목임)“(31:31-40);

(1)  본문 제31-34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맺으시는 새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2)  첫째, 31-32절입니다;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유다 집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1-3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유다 집새 언약을 맺으리라”(31:31);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그 백성인 이스라엘 10지파가 전부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가서 포로로 생활하다가 그 족보가 사라짐은 물론 그들의 여호와신앙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이스라엘 집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은 이방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유다 집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그것은 선민의 자손이라고 하는 의미를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망하고 136년이 지나자 주전 586년에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대왕국마저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 가운데 살다가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쓸 만한 백성들이 전부 적국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왕하25:1-11). 하지만 일부 목자와 농부들은 고토에 남아서 목축을 하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총독부를 통하여 신바벨론 황제에게 매년 조공을 바치게 됩니다(왕하25:12). 그들은 나름대로 선민 유대인의 자손이라고 하는 의식을 지니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70년의 세월이 지나자 신바벨론제국이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이 건설됩니다(25:11-12). 페르시아제국의 창건자 고레스 황제는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원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2성전을 짓고 여호와를 섬길 수 있도록 윤허하고 또한 지원하고 있습니다(1:1-4). 그에 따라 80년 후에는 율법학자인 에스라와 그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히브리경전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여호와신앙과 율법에 대하여 가르치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본문에서 이방인들이스라엘 집으로, ‘히브리정경을 되살리고 있는 유대인들’(3:2)유다 집이라고 달리 표현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남조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민들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주전 1,446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과 시내 산 앞에서  맺으신 축복의 언약과 저주의 언약은 전부 효력을 상실하고 그 적용의 대상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지상에 선민이 사라지고 모두가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므로 새로운 언약이 필요합니다. 새 언약을 여호와께서는 여기 본문에서 선포하신다고 하겠습니다(31).

3)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31:32a);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과 시내 산 앞에서 맺은 언약은(19:4-6, 24:3-8), 장차 남조 유대왕국까지 멸망하고 나면, 여호와께서 이방인의 땅에서 살아가게 되는 유대인들의 자손을 비롯하여 모든 이방인들과 맺게 되는 새 언약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31:31-32a) 그 특징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다음 두가지로 먼저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내 산 언약은 어디까지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12지파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그것의 효력이 이방인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다릅니다.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만 이스라엘 10지파가 상징하고 있는 이방인의 집은 물론 제2성전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래도 율법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2지파와 레위인들 곧 유다의 집과 함께 맺고자 하는 언약입니다. 요컨대, 이 세상의 열방과 만민을 말하고 있는 모든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새 언약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 얻고자 하신 열매를 선민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통하여 온세상에 여호와신앙을 전파하고자 한 것입니다(12:1-5, 19:4-6, 12:39). 따라서 이제는 선민들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에게 직접 여호와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십니다. 그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이 새 언약의 실제적인 방법론입니다.

4)    ,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2b);

시내 산 언약은 마치 부부간의 계약과 같아서 일방이 언약을 깨뜨려버리면 그것으로 그 효력이 상실된다는 것입니다(31:32b). 그것은 이혼증서를 써주는 것과 같이 일종의 육적인 성격의 언약입니다(3:8). 환언하면, 살아 생전의 육신적인 삶만을 규제하는 언약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그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생을 좌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성격의 영원한 언약임을 여기서 시사하고 있습니다. 과연 영적인 어떠한 새로운 계약일까요? 다음 구절에서 정확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3)  둘째, 33절입니다;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3.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31:33a); 2성전 시대의 유다의 집’(31:31)이 생략되고 있는 문장입니다. 유대인들은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건립하고 나름대로 여호와신앙을 보전하면서 율법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안식일과 절기 때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집회가 열리고 매년 대 속죄일 제사를 빠짐없이 드리고 있으므로 자신들은 이세상에서 유일한 선민이며 의인들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7:30, 18:11-1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후 28년경 가나안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유대인들이 무늬만 선민들이지 그 마음은 여호와를 떠나서 살고 있는 외식적(外飾的)인 종교인의 모습에 불과하다고 질책하십니다(23:1-36). 그러므로 유대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성도들과 새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31:33a). 그들 성도들은 모든 이방인 곧 이스라엘 집에 해당하는 자들입니다(8:10-13). 그러한 관점에서 말하자면 유대인들도 자신들이 이방인과 같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어떠한 놀라운 획기적인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일까요?

2)    ,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b); 새 언약의 가장 중요한 내용 3가지를 다음과 같이 엿볼 수가 있습니다;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31:33ba)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영을 성도들의 심령 속에 임재시켜 주겠다고 하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에 하나님의 영이 한자리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불길같이 갈라져서 각각 성령님으로 임재하시는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2:1-4). 사도 바울은 그렇게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여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악한 영들이 장악하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8:2, 11:20). 그리고 의사 누가는 사도행전 제1장에서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그 권능을 힘입어 땅끝까지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8).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31:33bb)라고 하는 말씀은 예수님의 교훈과 그 대속의 생애의 의미를 진리로 깨닫도록 해주는 은혜가 내주하신 진리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훗날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6. 보혜사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bc);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은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들 선민만의 수호신인 하나님이라고 여기고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선민의 나라가 모두 망하고 나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眞意, 진짜 뜻)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선민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이 세상 모든 백성들의 하나님이다. 특히 대속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성령님을 임재하게 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면서 온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제자를 길러내는 사명을 감당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영원한 약속의 말씀이다”(31:33bc 의역).

(4)  셋째, 34절입니다;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31:34a);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초지일관(初志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음)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하여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두 차례나 지적하십니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16:4).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라고 하셨는데 그 명령을 끝까지 지키지 아니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여호와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목적은 그들이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면서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이방 땅에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전해주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죄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12:1-5, 19:4-6).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어 살면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이 전혀 아브라함의 언약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2)    그 이유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영토를 자주 침략하고 있는 주변의 이웃나라 이방인들을 미워하여 그들을 정벌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5:43). 그 소원을 달성하고자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여호와의 축복과 구원의 말씀을 전해준 적이 없으며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조금도 보여주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갈릴리 변방의 선지자 요나를 선택하여 앗수르의 도성 니느웨로 파송하지만 그는 그 사명을 탐탁하지 아니하게 여기고 있습니다(1:1-3).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이 한꺼번에 회개하고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것을 보고서 배가 아파하는 선지자 요나입니다(3:10, 4:1-5). 더구나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은 이방인들의 우상문화에 물이 들어서 순수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육신적인 정욕을 쫓아 이방인처럼 죄악을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진노와 재앙으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10지파가 먼저 망하고 이어서 남조 유대왕국의 2지파와 레위인들이 선민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을 통하여 이방나라와 여러 민족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축복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단념하십니다. 그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새 언약의 또다른 깊은 내용입니다.

3)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31:34b);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 12지파의 자손들을 통하여 온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파하고자 계획하신 일을 이제는 중단하십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보내어 새로운 시대를 전개하십니다. 그것이 새 언약의 시대이며 주님의 제자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임재하게 하여 성령님의 강권하심으로 성도들이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만드십니다(24:14, 28:18-20, 1:8). 그 일에 도움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입고 계시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어떻게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제자를 양육하는지 친히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9:1-6, 10:1-11). 따라서 이제는 영적으로 31체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복음사역에 나서고 계시기에 온 세상 만민들이 하나님의 천국복음을 모두 듣게 되는 시대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여기서는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31:34b)는 예언의 말씀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c);새 언약의 시대는 31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함께하시면서 온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의 책임이 하나님과 그 종인 성도들 사이에 공동의 책임입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일방적으로 그 책무를 감당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여 문책하고 저주의 언약이 임하도록 징벌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세상에 천국복음을 전하는 그때가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려올 때에는 배척하지 말고 주님을 자신의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하고서 앞으로의 인생을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결단하게 되면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완악하게 복음을 물리치게 되면 이제는 영생이 아니라 영벌의 심판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5:29).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c)는 여호와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속의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제사를 십자가에서 드리시고 3일 후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그때부터 이 세상의 종말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성도들이 전하는 천국복음을 듣는 그때가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행사하는 인생입니다. 그때 진심으로 회개하고서 주님의 복음을 영접하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31:34c).

(5)  본문 제35-37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천지의 창조가 어째서 무엇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알아봅니다;  

(6)  첫째, 35절입니다;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셨고, 바다를 뒤흔들어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31:3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3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셨고”(31:35a); 창세기 제1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그것은 혼돈과 암흑 그리고 공허함 가운데 헤매고 있는 땅의 성분들을 모아서 우주의 질서를 만들고 빛과 생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땅덩어리들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도 생명도 발생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캄캄한 흑암의 세상만이 계속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서로 만나고 부딪침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기고 빛과 생명이 나타날 것인데 그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허무하고 공허한 세상에 빛과 밝음과 생명을 선물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질서가 생기고 빛과 생명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창조주의 살아 계심과 그 역사하심을 모르게 되면 공허하고 캄캄한 인생만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빛을 창조하셨지만 피조물인 사람은 24시간 빛 가운데 활동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쉬고 잠자는 시간이 있어야 육신적인 삶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볼 수 있는 빛과 볼 수 없는 빛으로 구분하시고 또한 천체로 그 빛을 가려주시는 여호와의 지혜와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1:4-5, 14-19). 그러한 이치를 여기서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5a).  

2)    , 바다를 뒤흔들어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31:35b);

이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도 힘이 세시고 지혜가 크시며 능력이 많으신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창조주이신 만군의 여호와’(Almighty God)이십니다(31:35bb). 그 증거의 하나를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연현상의 하나로 바다의 파도가 굉음을 내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피상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바다 표면의 파도가 사실은 그 바다 속을 규칙적으로 뒤집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표면적인 현상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창조주 여호와께서 그 능력으로 바다 속을 규칙적으로 뒤집고 계시기 때문에 바다의 물이 자정(自淨)의 능력을 가지며 썩지 않습니다. 그리고 움직이고 있는 그 힘으로 말미암아 해저에서 터져 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용암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는 것입니다(1:2). 수면과 지표면 위에서 작용하고 있는 대류의 환류작용도 그와 같은 억지력(抑止力)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7)  둘째,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6);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스스로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계십니다(31:35). 그 이유는 그 자명한 진리를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면하고서 제멋대로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탐욕과 정욕을 쫓아 죄악을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만들어 제공하신 분도 그리고 그 인생을 창조하여 섭리하고 계시는 분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참으로 교만한 행위입니다. 그러한 불신앙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법도(法度)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31:36a, 15: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십니다. 그 주내용이 다시는 스스로 이스라엘왕국이나 유대왕국을 만들 수 없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제국에 의하여 멸망하고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 변경으로 끌려간 이후 그 종적이 공식적으로 사라지고 맙니다(왕하17:6, 23). 그리고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망하고 난 다음에는 다윗의 가문에서 다시는 유다의 왕이 탄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호와의 강력한 징계를 여기서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36).   

(8)  셋째, 37절입니다;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7);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다스리는 모든 권한을 선민 이스라엘에게 맡겨 놓으시고 이제는 그저 편히 쉬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질서를 지금도 주장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역사도 섭리하고 계십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 모든 피조물의 상태를 감찰하고 계십니다(1:2, 39:9, 42:1-10, 11:33-36, 4:6, 4:12-13). 특히 예배를 드리고 영이신 여호와 안에서 말씀 가운데 안식하고 있는  성도들과 여호와 앞에 겸손하게 나아오는 정직한 하나님 경외자에 대해서는 그 영과 육을 자상하게 치유하여 주십니다(2:3, 7, 4:23, 4:24). 그렇게 지금도 살아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 그 점을 여기서는,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31:37a)이라고 알기 쉽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여전히 세상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섭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점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며 여호와가 자신들의 도구적인 수호신에 불과하다고 떠들고 있는 자들이 오만하기 그지없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종의 법도를 떠난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징벌하십니다. 그들에게 준 선민의 지위와 기업을 모두 몰수하고 마시는 것입니다(31:37b).

(9)  본문의 말미인 제38-40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성을 어떻게 계측하고 건설하겠다고 말씀하시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절풀이를 통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0)    첫째, 38절입니다;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8); 선지자 예레미야는 지금 유대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제31장에 기록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29:1-3, 29, 31:1). 그 주내용은 새 언약에 관한 것입니다(31:31-34). 그것은 선민이 사라진 세상에서 유대인 사회에 장차 대속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것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 온세상에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더 깊은 내용은 대속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와 칭의의 은혜를 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심령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여 성령님으로 내주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1:33). 그에 따라 온세상에 천국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고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새 예루살렘성은 영원합니다(31:40b). 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성이 이 세상에 강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65:17-18, 21:1-2, 22-27).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여호와의 예언 그것도 새로운 예루살렘성과 성전에 관한 예언을 수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영원한 도성 새 예루살렘성을 하나님나라의 수도로서 이 세상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알기 쉽게 38.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8)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됩니다; ①여호와께서 만민을 구원하여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하는 날이 반드시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31:38a). 하나넬 망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 성이 예루살렘 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31:38b). 왜냐하면, 예루살렘 북쪽 성곽의 어문’(魚門) 가까이에는 하나넬 망대가 있고 양문’(羊門) 가까이에는 함메아 망대가 있기 때문입니다(3:1, 12:39).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되는 새 예루살렘성이(31:38c)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영원한 도성이라는 사실을 선지자 스가랴가 또한 하나넬 망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14:10). 그러므로 스가랴에게 주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 본문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은 서로 맥이 닿아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둘째, 39절과 제40절 전반부입니다;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31:39-40a);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하나,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31:39);측량줄’(31:39a)이라는 용어와 다림줄’(a measuring line, NIV)이라는 용어가 같이 사용되고 있는 예언서가 스가랴입니다.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2:1),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4:10b). 그 말씀의 뜻은 스룹바벨이 주전 516년에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동족들의 신앙심을 북돋우어 제2성전을 완성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먼 훗날 하나님나라의 도성으로 새 예루살렘성이 건설될 때에 주님께서 스룹바벨과 같은 성도들을 모아서 그 성을 영원한 성으로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원한 예루살렘성을 의미하고 있기에 도저히 그 위치를 알 수 없는 지명으로 가렙 언덕고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1:39b). 어떤 학자들은 그 다음 구절에 힌놈 골짜기와 기드온 시내가 언급되고 있으므로 추측하여 가렙 언덕은 힌놈 골짜기 가까운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그리고 고아는 기드온 시내에 가까운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2)    , 40.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31:40aa); 예루살렘성의 남쪽 골짜기 힌놈에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또한 이방신상과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산당이 자리잡고 있습니다(7:31-33). 그러므로 여기서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의미로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31:40aaa). 예루살렘의 동편에는 기드론 시내가 있습니다(31:40aab). 그곳의 물을 길어 예루살렘에서 식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전 444년경 예루살렘 총독인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할 때에 동쪽에 마문’(馬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3:28). 그것은 무거운 짐을 싣고 기드론 골짜기를 올라온 말과 당나귀들이 마문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문을 되살린 것입니다;

3)    ,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31:40ab);힌놈의 골짜기는 여호와의 저주와 재앙을 상징하고 있는 장소입니다. 반면에 기드론 골짜기마문’(馬門, the Gate of Horse)은 좋은 뜻을 지니고 있는 장소들입니다. 일종의 생수안식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반대되고 있는 이미지들임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31:40ab)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차 새 예루살렘성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으므로 죄와 사망이 벌써 사라지고 그곳에 없다는 것입니다(20:11-15, 21:22-27). 그리고 그러한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 다음 구절입니다.

(12)    셋째, 40절 후반부입니다;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되지 못할 것이니라”(31:40b); 선민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다윗왕조의 예루살렘성과 솔로몬의 성전이 주전 586년이 되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불에 타고 붕괴되고 맙니다(왕하25:8-10). 주전 536년경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도로 예루살렘 제2성전을 주전 516년에 완공하고, 주전 444년경에는 페르시아 황제에 의하여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한 느헤미야가 동족들에게 호소하여 예루살렘 성곽을 52일만에 완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모두 전소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예언되고 있는 영원히 불타거나 붕괴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예루살렘성과 성전은 과연 무엇일까요?(31:40b)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때에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하나님나라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처녀 이스라엘을 영생의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계획에 대하여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선민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라진 이스라엘 10지파 대신에 그 자손들이 흩어져서 살고 있는 모든 이방인들의 땅에서 현지인들을 그리스도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으로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66:20-21).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는 사실을 천국복음으로 선포하시고 그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3일만에 인류최초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심으로 증거하신 일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서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차게 전파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내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14:16-20) 복음전파에 헌신하시는(28:18-20, 1:8, 22:28-30)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