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리안 족속의 왕 고레스를 불러서 바벨론을 치고 이스라엘을 해방하며 마침내 만민구원의 뜻을 펴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대하여”(사45:1-25)
설교일; 주후 2026년 12월 2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9월 3일 수요일 작성)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新)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가 지휘하는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전란 가운데 겨우 살아남은 신민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사39:6-7). 그곳에서 바벨론 왕을 섬기며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출(出)바벨론 해방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사44:28).
주전 15세기 중반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세상제국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하고 출애굽하여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인류최초의 신정국가를 건설하고 있습니다(출19:4-6). 그와 같은 일이 주전 6세기 후반에 다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이사야 제45장의 내용을 가지고 900년전 출애굽 당시와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출애굽 당시에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출신인 모세를 보내어 민족해방의 역사를 성취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인 모세가 민족해방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바벨론 당시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바사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이방인 왕 고레스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하고 있는 것입니다(스1:1-4).
(2) 둘째, 해방의 방법도 다릅니다. 모세의 경우에는 순수하게 여호와의 신위적인 능력이 애굽에 대한 10가지 재앙으로 발휘되어 바로와 신하들이 무조건 항복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바사 왕 고레스는 같은 아리안 족인 메대 왕 다리오와 연합하여 군사적으로 바벨론을 기습하여 승리를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10가지 재앙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아리안 국가의 군사작전의 승리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성을 얻게 되자 메대의 왕 다리오와 바사의 왕 고레스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신바벨론의 황제 나보니더스가 정예병을 이끌고 북부 아라비아에 가서 오랜 세월 반란을 진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군대를 쳐부수지 못하면 수도 바벨론을 얻어보아야 신바벨론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늙고 노회한 다리오 왕은 바벨론 성에서 전국을 장악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단5:30-6:3). 그리고 젊고 전쟁에 밝은 고레스 왕은 나보니더스 황제의 정예병을 쳐부수는 일을 맡아 전장으로 다시 출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다리오 왕은 수도 바벨론에서 제국을 정치적으로 장악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면서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획책합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이 생각보다 빨리 전방에서 승리를 얻어 회군하고 있습니다. 메대 왕 다리오의 꿈은 막강한 바사 왕 고레스의 군사력 앞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4) 넷째, 다리오 왕을 끌어내리고 제국의 황제가 된 바사 왕 고레스는 주전 538년에 페르시아제국의 시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놀라운 군사적인 승리를 안겨준 것은 전부 이 세상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도우심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40년전 신바벨론의 황제 느부갓네살의 고백과 같습니다(단4:37). 그러나 행동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차이가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느부갓네살 황제는 여호와의 놀라운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유대인들을 해방하려고 생각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고레스 황제는 자신에게 천하통일의 은혜를 베풀어준 여호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을 해방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바벨론제국에서는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강요하였지만 페르시아제국에서는 그와 같은 종교적인 박해를 가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여호와를 모시는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한가지 이슈를 제기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방나라의 왕 고레스를 여호와 하나님이 불러서 도구로 사용하여 신바벨론제국을 쳐부수고 그들의 포로가 되어 있는 선민 유대인들을 해방하여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게 하는 일이 훗날 독생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성육신하여 와서 공생애를 통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일과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본문에서부터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그에 따라 여기서는 그 대략적인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첫째, 메시아의 의미가 여호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로 정의한다면 본문 제1절의 표현은 바사 왕 고레스 역시 그러한 역할의 일단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사45:1a).
(2) 둘째, 그러나 메시아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이방인의 왕 고레스와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결정적인 차이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레스가 군사력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눅24:44-45, 사11:1-12, 렘31:31-35) 하시더라”(마26:52-54).
(3) 셋째, 본문에서 바사 왕 고레스가 여호와의 도우심을 얻어 공의를 행하는 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하고 있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사45:1-8). 그러나 그것 역시 세상의 제국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제국은 팽창을 계속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동진하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과 격돌하고 마침내 주전 330년에 헬라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역참제, 총독 제도(사트랍)를 도입하고 도량형을 통일했으며,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놀라운 관용정책을 실시하였기에 세상적으로는 공의로운 나라라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넷째, 선민 유대인들이 꿈꾸고 있는 이상세계는 역사적으로 다윗대왕의 후계자가 메시아로 등장하여 신위적인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사라진 이스라엘제국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옛날처럼 다윗의 제국이 이방인들을 다스리며 여호와의 영광을 만천하에 드러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선민들의 시온의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주전 15세기 중반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세상제국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 있지만 그들은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가 되라고 하는 여호와의 기대를 저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주전 6세기에 들어서자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50년이 채 지나지 아니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선민 유대인들을 세상제국 신바벨론에서 해방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여호와신앙인으로 다시 살아가도록 조치하였지만 그것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2) 주후 1세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만민구원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으로 선포하고 선민 유대인으로 하여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외쳤지만 그들은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 생각이 없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만 배척하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 주후 70년에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무력으로 반란을 시도한 유대인사회가 붕괴되고 선민들이 다시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3) 그 대신에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무덤속에 들어간 예수 그리스도가 3일만에 창조주의 능력에 의하여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승천한 후 그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고 온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들 성도들에 의하여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로 함께 들어가게 되는 새로운 새 언약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4)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만민에 대한 복음전파와(마28:18-20) 대속의 삶의 모습이(마16:24)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 아가페 사랑이 살아 숨쉬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눅24:44-49, 행1:8, 2:1-42). 그와 같은 맥락에서 바사 왕 고레스가 실현하고 있는 공의와 메시아적인 역할은 선민 유대인들의 시온사상이나 이스라엘제국의 논리와 같은 세상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여호와의 선택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삼상16:6-13) 받은 (바사의 왕)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보다 힘이 세고 의로운, 창48:18, 사41:10)오른손을 붙들고 그(고레스의 군대) 앞에 (대항하고 있는) 열국(많은 나라)을 항복하게 하며 내(여호와)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무장을 해제하게 만들고) 그 앞에 문들을 열고(여호와의 사자가 먼저 적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고레스에게 항복하게 하고, 출23:28, 33:2),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1절과 동일함)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받은 승리의 은혜와 동일함, 창14:13-16, 22:17), 3. 네(바사 왕 고레스)게 흑암 중의 보화(잘 알지 못하는 나라와 전쟁하여 얻는 전리품)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숨어 있는 적들을 소탕하고 얻는 전리품)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고레스를 불러서 군사로 사용하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선지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사44:28-45:4) 네가 알게 하리라(너로 하여금 깨닫도록 만들 것임) .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을 위하여(사44:1, 21) 네(바사 왕 고레스 너의)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이방인이지만) 네게 (선민 유대인을 신바벨론의 압제에서 해방하는 구원자의)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이며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임, 출3:14).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출20:3-7, 사44:6-8).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창조주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의 왕이지만)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너를 전장으로 끌고 갈 것이며),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네가 가는 그 모든 땅에서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창조주와 역사의 섭리자는 오직 나 여호와 뿐임을 알게 될 것임).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4:6).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함께 네 앞에 가지고 온다는 것임, 신30:19),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그러므로 살아서 영생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라는 것임, 신30:20). 8.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자가 고레스의 앞길을 인도할 것임, 출13:21-22).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고레스로 하여금 신바벨론을 치고 포로들을 해방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만들라는 것임). 나 여호와가 이 일(세상제국 바벨론을 망하게 하고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역사)을 창조하였느니라(스1:1-4, 당장은 역사적으로는 주전 6세기 후반의 사건을 말하지만 그 깊은 의미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바벨론을 정복하고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있음, 사65:17-18, 계21:1-2)“(사45:1-8);

(1) 본문 제1-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두가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천하 권세를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위임해주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장차 메시아에게 위임해주는 그 천하 권세의 일부를 미리 선보여주고 있는 것이 고레스 황제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제45장은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3가지 권세가 무엇인지 각각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피조물들이 역사 가운데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특정한 자에게 위임해주는 것이 천하 권세입니다(사45:1-8). ②하나님의 태초의 창조와 새로운 창조의 권세입니다(사45:9-19). ③피조세상을 구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권세입니다(사45:20-25).
1) 사실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주권과 구원의 주권은 너무나 엄청난 권세이기에 감히 미물에 속하는 피조물들이 제대로 감지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조물들, 특히 교만한 사람들은 마치 창조주가 아니 계신 것처럼 여기고서 제멋대로 자기의 욕심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막강한 권세를 일부 대리자를 통하여 역사 가운데 보여줌으로써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위력을 확실히 깨닫고 정신을 차리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2) 여기 본문에서는 페르시아의 고레스 황제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권세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사45:1-5). 고레스는 그와 같은 이사야의 예언을 접하고서 자신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이 있는 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거침없이 중근동지역의 천하통일에 나섭니다. 그 결과 당대에 인도 북부에서 애굽에까지 이르게 되는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 주신 여호와의 뜻을 따라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고토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조서를 내려줍니다(스1:1-4).
3) 그와 같은 하나님 권세의 선례가 왜 필요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천하 권세의 일부 위임을 통하여 신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선민들이 자유를 얻게 되며 또 예루살렘성전이 재건된다고 하는 역사가 무엇을 미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일까요? 왜 이사야가 그의 선지서에 그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메시아의 오심을 미리 알고서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방인 왕에게 하나님이 일부 권세를 위임해주어도 엄청난 역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장차 메시아에게 천하 권세를 위임해주게 되면(마28:18, 요5:21-22, 27, 30) 어떠한 역사가 발생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요5:22-29).
4) 구체적으로, 바사 왕 고레스에게 일부 권세를 위임해주더라도 중근동에 거대한 제국이 형성되며 선민들이 해방을 맞이하게 되고 예루살렘이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메시아에게 모든 천하 권세를 위임하여 주게 되면 거뜬하게 만민구원을 성취하고 하나님나라를 이 세상에 온전히 성립시킬 것입니다(마28:18-20, 고전15:24).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내 목자 고레스’(사44:28)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고레스를 통하여 메시아의 권세를 일부 나마 미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일종의 ‘예표’(豫表, 미리 보여주는 표시나 표징)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a)여호와께서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b)그(고레스)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사45:1);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을 선택하여 그에게 천하를 정복하는 권세를 주겠다고 하는 예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사45:1a); 고레스에게 기름부음을 주고 그의 오른손을 붙들어준다고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기름부음을 주셨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 하늘의 권세를 주었으며 계시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의 영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고레스는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해방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옛날 모세처럼(출4:17, 20)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신바벨론제국의 타도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레스의 오른손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은 그를 높여준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고레스가 옳다고 인정해주고 그의 편을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를 얻게 됩니다;

2) 둘, “그(고레스)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사45:1b);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레스는 가는 곳마다 승전을 얻고 있습니다. 적들이 항복하기에 바쁩니다. 하나님이 미리 천사를 보내어 사전공작을 하여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내분을 조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기가 꺾인 나라의 왕들이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허리를 풀고 스스로 성문을 열어 고레스의 군대를 무혈(無血, 피를 흘리지 아니함)입성하게 합니다.
(3) 둘째, 제2절입니다; “2. (a)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b)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사45:2);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의 약속의 땅 점령방식과(신9:3-6) 그리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추수꾼의 예화를(요4:35-38)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2가지 경우를 간단하게 살펴본 다음에 구절을 나누어서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이 악하므로 그 땅에서 먼저 쫓아내십니다(창15: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땅을 곧바로 인수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출23:27-31).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그 뒤를 따라가면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경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욕심을 부려서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점령했다고 자랑을 해서도 안됩니다(신9:3-6).
2) 이방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이미 구원해 놓은 백성들을 거두어 말씀으로 가르치고 선교의 일꾼으로 세워주라고 하십니다(마28:18-20). 그것이 복음으로 이방인을 추수하는 일꾼들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요4:35-38). 정리를 해보자면 2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앞서 일하시고 종들은 주인의 뒤를 따라가면서 땅을 경작하고 추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처리하는 독특한 방식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의 구절을 살펴봅니다;
3) 하나, “2.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사45:2a); 험한 곳은 위험한 곳입니다. 적이 쳐들어오는 경우에 숨어서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충지가 반드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많은 대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좁은 협곡을 지나야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양쪽 산 위에 군사를 매복해놓고 많은 돌과 통나무 그리고 화살과 기름과 불을 사전에 준비해두면 얼마든지 적의 침입을 저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바벨론제국을 치고자 고레스가 진군할 때에 그 앞에 예상되고 있는 요충지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신위적인 능력으로 먼저 위해가 되지 아니하도록 조치해놓겠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4) 둘, “놋 문을 쳐서 부수며 쇠 빗장을 꺾고”(사45:2b); 막상 적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공성(攻城, 성을 공격함)작전이라고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통상적으로 성을 공격하는 군대는 방어군에 비해서 3배 이상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서로 군사력이 팽팽한데 어떻게 하면 적의 성을 쉽게 점령할 수가 있을까요? 단단한 적의 성문을 쳐서 깨어 부수자면 탁월한 공성기구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도와 좋은 공성기구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비군 내부에 분란을 일으켜서 야간에 쇠 빗장을 스스로 열게 만드는 내부공작도 진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여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다양하다고 하겠습니다.
(4) 셋째, 제3절입니다; “3. (a)네(고레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b)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45:3); 여호와는 종들에게 그냥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권세와 재물을 주십니다. 다음과 같이 고레스 왕의 경우가 두드러지게 그러합니다;

1) 하나, “3. 네(고레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사45:3a); 고레스는 작은 왕국 바사의 왕이 된 후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내게 됩니다. 먼저 동쪽으로 원정하여 인도 북부까지 차지합니다. 그 다음에는 북쪽으로 쳐들어가서 신바벨론제국을 차지합니다. 나중에는 서쪽으로 원정하여 이집트까지 정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군대를 모집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략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군자금 면에서 엄청나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암시장의 돈줄과 은닉되어 있는 재물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면 쉽습니다. 그 정보를 고레스에게 제공하여 군자금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것입니다.
2) 둘,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사45:3b);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도와 주십니다. 그것은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책도 알려주고 군자금에 관한 정보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의 사기도 떨어뜨려주고 무혈입성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나아가서 적의 매복군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주고 성안의 적군에 대하여 내분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 모든 일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이름을 부르시고 그에게 사전에 선지서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내용대로 성취해주는 것입니다.
3)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과 그 실현을 비교하면서 고레스 황제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신실하게 이행해주신 하나님을 자신이 실망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훗날 고레스가 하나님의 뜻을 살펴서 얼른 바벨론에 끌려와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줍니다. 원하는 자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스1:1-4). 생각해보면, 고레스는 엄청나게 많이 받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작은 것을 해준 셈입니다. 믿음과 헌신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합니다. 작은 믿음과 작은 헌신이 훗날 엄청난 하나님의 상급과 축복을 가져옵니다(히11:26). 사도 바울의 지적과 같이 성도들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롬8:18).
(5) 넷째, 제4절입니다; “4. (a)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b)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사45:4); 이사야는 고레스의 경우를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종이 등장하게 됩니다(사53장). 또한 이스라엘의 경우도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이스라엘이 이방인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사66:21). 요컨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스라엘과 새로운 종들을 부르시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하나,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for the sake of my servant Jacob, and Israel my chosen, NRSV) 네 이름을 불러(I call you by your name, NRSV)”(사45:4a);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왜 야곱을 믿음의 장자로 예정하시고 때가 되어 그 예언을 이루어 야곱을 하나님의 대(大)족장 이스라엘로 살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훗날 그의 자손들이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산에 도착했을 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19:5-6).
2) 열방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민족이 되도록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은 오로지 세상의 모든 민족들 특히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살아가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그 결과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신(新)바벨론의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시 출(出)바벨론의 역사를 일으켜서 선민들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이방인 왕 고레스를 불러 그 옛날 모세처럼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주라고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3) 둘,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사45:4b); 주전 605년 다니엘과 세 친구가 신바벨론제국에서 인질로 살게 됩니다(단1:4-6). 그들은 바벨론 황궁에서 입신하여 이방제국에 여호와신앙과 율법을 전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의 선지서가 중동 땅에 전파됩니다. 그렇지만 바사 왕 고레스는 여전히 이방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이사야의 예언서 가운데 자신의 사명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내 목자’(사44:28) 그리고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사45:1)이라는 칭호를 주시고 있으며 실제로 그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신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사44:28).
(6) 다섯째, 제5절입니다; “5. (a)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b)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45:5); 이사야는 하나님 여호와가 유일한 창조주이며 구원자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고레스를 비롯하여 이방인 가운데 사명자를 선택하여 여호와의 종으로 삼아 권세를 주고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일을 행하게 할 것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사45:5a); 우상을 자신들의 수호신과 토착신으로 많이 섬기고 있는 자들이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만이 유일한 창조의 신이며 구원의 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2) 둘,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45:5b); 그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여호와가 자신을 들어 사용하신다고 믿는 자에게는 고레스 왕 때처럼 그 허리를 단단하게 동일 것이며 전투에서 연전 연승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후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 뜻은 언제나 만민을 구원하고 하나님나라를 온 세상에 확장하는 것입니다.
(7) 본문 제6-8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의로 온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신다는 선언을 예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선민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영생으로 구원하겠다는 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입니다. 그에 따라 이방인 왕 고레스도 여호와의 부름과 도움을 받아 중동에서 천하통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8) 첫째, 제6절입니다; “6. (a)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b)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6);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빛을 제공함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식물이 광합성을 합니다. 광합성 곧 탄소동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열매를 먹고서 모든 생물들이 삶을 영위합니다. 따라서 만약 해가 비치지 아니하면 식물이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 모든 생물은 먹거리를 구할 수 없어서 사멸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도 창조주가 그 해를 아침에 동쪽에서 솟아나게 하고 저녁에 서쪽으로 지도록 섭리하고 있습니다. 그 섭리로 말미암아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사45:6a); 해 뜨는 곳과 해 지는 곳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두 가지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먼저 좁은 의미 곧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선민들의 입장에서는 동쪽 요단 강 너머에서 해가 뜨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 지중해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그 지경 안에 속하고 있는 선민들의 사회에서 유일하신 창조주로 섬김을 받고 있는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서 점점 이탈하고 있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주고 성공신화를 만들어준다는 이방신을 도입해서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현세적인 복을 주고 자신들의 소원성취에 도움을 주면 하나님으로 섬기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가차 없이 여호와신앙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출17:1-2, 7).
2) 둘,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6b); 여호와 하나님은 본문에서 넓은 의미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선민의 사회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쪽과 서쪽의 땅끝까지 언급하십니다. 극동지역 곧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에서부터 지중해와 대서양을 넘어 해가 지는 그 서쪽의 땅끝까지 모두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언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살고 있는 그 모든 지역에서 유일하신 창조주이며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 뿐이시라는 엄중하신 선언입니다. 그에 따라 모든 이방인들도 우상을 버리고 자신들의 수호신과 토착신을 버려야 합니다.
3) 이제 광대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선민들은 자신들의 좁은 안목과 견해로 함부로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됩니다. 자신들의 전통적인 선민우월사상과 선민구원사상을 내려놓고 이사야의 예언을 ‘화두’(話頭, 명상의 실마리)로 삼아 깊은 묵상을 해야만 합니다; “이방인의 왕 고레스가 어찌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해방자가 될 수 있는지? 어째서 여호와는 고레스의 도움을 받아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게 하시는지?”. 앞으로 깊고 넓으신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9) 둘째, 제7절입니다; “7. (a)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b)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선민들이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피곤한 나그네 유목민의 삶에서 탈출한 그들은 생활의 안정을 찾게 되자 그만 안일한 일상에 젖어 들게 됩니다(신8:12-14). 계속 이방세계로 나아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삶을 중단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한 선민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사45:7a);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출애굽 당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멀리 떠나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조치해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감히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광명이 있지만 애굽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는 암흑의 재앙이 임하도록 역사하고 있습니다(출10:21-23).
2)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멀쩡하지만 애굽 사람들에게는 각종 재앙과 환난이 발생하도록 합니다(출8:21-22, 9:6, 25-26). 그 모든 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창조되고 있는 역사입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빛과 평안의 복만을 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만 어둠과 환난도 창조하시는 두려우신 심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여호와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명령 곧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중보기도를 해주라고 하는 제사장나라의 직무를(출19:5-6)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b); 이제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선민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십니다(롬3:29). 선민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사랑하십니다(마5:44-45). 선민만이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의 대상입니다. 빛과 어둠의 역사는 선민과 이방인 구별 없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신30:19). 하나님말씀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여 순종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빛의 자녀가 되지만 거절하고 패역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어두운 영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신30:20). 그와 같이 구원과 심판이라는 양날의 칼을 휘두르시는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마25:45-46, 요5:29) 명심하라고 이사야가 동족들인 선민들에게 부르짖고 있는 내용입니다.
(10) 셋째, 제8절입니다; “8. (a)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b)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 돋게 할지어다. (c)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 하늘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계획은 철저하게 공의의 정신에 의하여 수행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도 장차 하늘에서 비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합니다(마5:43-48, 6:10, 막12:30-31);
1) 하나, “8.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사45:8a); 공의의 정신이 어디에서부터 오고 있는가를 이사야가 예언 가운데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피조물들이 공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삶이 일상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자연계에서도 살기다툼과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정신은 피조물로부터 생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이 함께하고 있는 피조세계를 보시고서 심히 좋아하십니다(창1:31). 그렇게 모든 창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신 그 마음이 바로 공의의 정신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좋아하신 그 모든 피조물들을 이제는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 뜻이 하늘에서부터 비와 같이 이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사45:8a).
2) 둘,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 돋게 할지어다”(사45:8b); 하나님께서는 구원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만민과 만물을 구속하는 구원사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생물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공의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메시아의 사역이므로 이 땅에서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사55:11, 행5:38-39).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복음사역에 반대하는 모든 저항세력을 분쇄하시고 반드시 이 땅에서 공의의 정신에 입각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어 가실 것입니다(사45:8b).
3) 셋,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사45:8c); 겉으로 보면, 메시아가 이 땅에서 구원의 주역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배후에서 모두 섭리하시는 구원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마무리는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로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사65:17-18, 계21:1-2); 먼저 그리스도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은 실천할 뿐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6:38).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메시아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릴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4).
4) 대속의 제물로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리고 또한 그를 통하여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행2:32-33).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65:17-19).
둘째로,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주권적인 역사섭리에 대하여 감히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임. 저항하거나 항변할 때에는 패망의 역사가 임할 따름임, 롬9:19-21)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출20:12,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창조주 여호와에게 패역한 자와 같음. 그 죄악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원칙임, 출21:15, 17) 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장래일에 대하여 함부로 알고자 하거나 여호와의 역사섭리에 대하여 감히 간섭하고자 하는 자는 여호와의 신실한 종이 아님, 눅17:10, 행1:7)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여호와 하나님만이 홀로 창조주이며 역사의 섭리자이고 천군천사를 동원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것임. 그러므로 인자 예수 그리스도마저 아버지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대하여 일체 침범하지 아니하심, 행1:7, 마26:53-54, 요5:30-32, 8:29). 13. 내가 공의로(많은 족속에게 해방을 주도록 하는 도구로) 그(바사왕 고레스)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평탄하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예루살렘성)을 건축할 것이며 (바벨론에) 사로잡힌 내 백성(선민 유대인)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아무 대가 없이 석방할 것임).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반드시 장래에 예언 그대로 역사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확약하고 있음).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이디오피아)가 무역한 것과 스바(홍해 건너 아라비아 서남부)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고레스)게로 건너와서 네(페르시아제국)게 속할 것이요,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페르시아제국이 애굽제국을 완전히 정복할 것이라는 예언임).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창조주 여호와의 역사개입으로 말미암아 애굽제국이 페르시아제국에게 패배하여 복속되고 말았다고 증거할 것임) 하시니라.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수호신)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이스라엘의 역사 뒤에서 섭리하시는, 출13:21-22, 14:19, 19:18-19, 왕상19:12)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출20:4-6, 32:1-10, 33-35, 왕하17:21-23,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임), 17.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창조주 여호와가 베푸시는 구원은 영생의 구원임, 요3:13-17, 17:3), 너희가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영접하면 요1:12-18, 3:16)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18. 대저 (창조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이는 궁창인, 창6-7)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창1:1)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태초에 흑암 가운데 떠돌던 흙덩이가 다시 무질서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도록 여호와 하나님이 중력의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정하시는 등 창조의 질서를 엄중하게 정립하셨으며, 창1:2, 9),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물 위 지상의 거주지 땅을, 창1:9-12)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신10:13,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베풀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준) 다른 이가 없느니라. 19. 나는 (생명과 진리의 빛이므로 결코, 요1:4-5, 9-18)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나 여호와는 (공)의를 말하고 (안과 밖 그리고 처음과 끝이 같은 진리 곧)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사45:9-19);

(1) 본문 제9-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선민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하나님의 공의와 만민구원의 계획을 믿고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사야는 선민들이 2가지 잘못을 여호와 하나님께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의 목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들 선민이 없으면 여호와는 이 세상에 개입할 수단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수단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의로움과 위대함을 자랑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본문에서 이사야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9절입니다; “9. (a)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b)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 그 유명한 토기장이 비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사29:16, 렘18:3-6, 롬9:21-24). 선지자 이사야는 토기장이 비유를 통하여 선민의 잘못을 가장 알기 쉽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하나,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사45:9a); 이 세상에서 선민이라고 우쭐대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면 일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토기장이와 같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토기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고 함부로 토기장이와 같으신 창조주 여호와에게 대들지 말라고 이사야가 경고하고 있는 대목입니다(눅17:9-10, 18:13-14).
2) 둘,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사45:9b); 피조물에 불과한 선민들이 크게 보아 2가지를 하나님께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는,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시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요나 선지자의 항변이 그와 같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멸망시키기로 한 이방인의 도읍 니느웨를 왜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어 구원을 베풀어주고 있는지 항의하고 있습니다(욘4:1-5, 8-9).
3)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창18:32, 출19:4-6, 욘4:11, 요3:16-17, 6:39). 그런데 선민의 선지자인 요나는 선민구원사상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은 용서함을 받을 수 없으며 무조건 멸망의 대상일 뿐이라고 하나님께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가관입니다. 또 하나는, 선민이 하나님의 손발이 되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없으면 하나님도 별수가 없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참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가소로운 선민들의 과대망상입니다. 그에 대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궁금합니다.
(3) 둘째, 제10절입니다; “10. (a)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b)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45:10); 선민들의 패역함을 부모님에 대한 불경으로 비유하여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사45:10a);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 때에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자기와 같은 자식을 낳았느냐?는 것입니다. 잘못 낳았으니 모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반성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와 같은 자식을 낳았으니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모두 창조주 하나님께 전가해놓고 잘못 만들어진 이방인을 부디 멸망시켜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선민들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는 지적의 말씀입니다.
2) 둘,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45:10b);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과정이 얼마나 신중하며 또 그들을 구원하는 과정이 얼마나 큰 산고를 치르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마치 옥동자를 낳기 위하여 산고를 치르고 있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런데 그 수고를 모르고 제멋대로 대들고 있는 탕자의 형과 같은 존재가 바로 선민이라고 하겠습니다(눅15:20-32). 그러므로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사32:9-14, 39:5-7).
(4) 셋째, 제11절입니다; “11. (a)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b)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사45:11); 장래 일을 묻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1) 하나, “11.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사45:11a); 사람들은 미래가 궁금할 때에는 점쟁이를 찾게 됩니다. 그것은 귀신에게 장래 일을 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민이라고 하는 유다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일개 점쟁이의 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제물을 드리고 물으면 언제나 장래 일을 신탁으로 말해주는 우상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서운 영적인 타락입니다.
2) 둘,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사45:11b); 선민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가 잘못되어 있다고 시비 거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잘못되어 있으니 시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아예 기도를 통하여 이방인을 구원하는 행위 따위는 철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훗날 만민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사53:3-6, 눅20:12-15).
(5) 넷째, 제12절입니다; “12. (a)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b)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자신의 전능하신 오른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 하나, “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사45:12a); 하나님께서 땅을 먼저 만드시고 그 다음에 그것을 경작할 수 있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청지기이며 종으로 창조하십니다(창2:15).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여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땅을 경작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을 돌보고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창1:26-27). 그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2) 둘,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사45:12b);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창17:1a). 그 능력은 피조물이 감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줄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이상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조각 칼이나 수술칼과 같아서 만물과 만민을 조각하고 치유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에는 악한 세력과 반항하는 자를 토벌하기 위하여 천상의 엄청난 군대를 동원하실 수도 있습니다(마26:52-53). 하지만 토벌과 심판보다는 피조물을 치유하고 고쳐서 사용하려고 하십니다(사19:22, 요3:17). 그러므로 선민 유다의 백성들처럼 마치 자신들이 없으면 하나님은 손이 없으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참고 인내하고 계시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의 경박함과 교만함의 발로입니다.
(6) 다섯째, 제13절입니다; “13. (a)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b)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값음이 없이 놓으리라. (c)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였느니라”(사45:13);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서 건설하시는 새 나라의 건국이념을 언급하고 또한 그 나라건설에 동참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사45:13a); 인간세상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사라지고 없습니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며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조차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자신들의 정의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구원의 대상이고 이방인들은 모두 멸망의 대상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이웃 이방 족속들은 하나같이 선민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2) 그렇게 자신들만 의롭고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 신앙이며 삐뚤어진 선민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선민들을 버리시고 그 대신에 진정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메시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사7:13-14, 9:1-7, 11:1-14). 앞으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메시아의 일생을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심으로 도와 주실 것입니다(사45:13a). 둘,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값음이 없이 놓으리라”(사45:13b); 잘못된 선민사상으로 무너진 여호와신앙을 메시아가 공의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바로 잡으실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할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새로운 성읍을 건축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메시아의 나라입니다.
3) 성도들과 함께 땅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여 그 나라가 완성되면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릴 것입니다(고전15:24).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메시아는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이 여호와 앞에 죄인인 자신을 위한 것임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 결과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롬8:1-2). 그렇게 메시아의 공로로 하나님의 용서함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앞으로 달리 살아가야만 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 여전히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를 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4) 값없이 주시는 메시아의 구원을 믿고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는데 모두들 나서야만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사명입니다(마28:18-20, 행1:8). 셋,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였느니라”(사45:13c);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명령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과 피조물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과 만물구원에 나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롬8:19-21).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메시아가 행하는 그 일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도우시는 그 일에, 값없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참여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그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7) 본문 제14-1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 이스라엘과 새로운 이스라엘과의 차이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꿈은 다윗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윗대왕의 시대처럼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약속의 땅을(창15:18) 모두 회복하는 것입니다(삼하8:1-14). 그런데 선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은 늘 그들의 꿈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연이어 강력한 외세의 침략과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선민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빨리 와서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다윗제국을 다시 건설해주고 그동안 선민들을 괴롭힌 강대국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굴복시켜주는 것입니다(사45:14). 선민들의 소원은 과연 메시아를 통하여 이루어질까요?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는 그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분석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의미를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8) 첫째, 제14절입니다; “14. (a)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 (b)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 (c)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 (d)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사45:14); 언뜻 보면, 선민 이스라엘의 소망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예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족을 달고 있는 문장까지 검토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며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서고 있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앞날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1) 하나, “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소득과 구스가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남자들이 네게로 건너와서 네게 속할 것이요”(사45:14a); 선민 이스라엘은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던 그 땅을 다시 차지하기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제국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즉, 메소포타미아와 애굽 사이에 있는 땅들을 전부 차지하는 것입니다(창15:18). 그런데 이사야는 더 큰 것을 주신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차지하지를 못했던 애굽 제국까지를 전부 속국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사45:14a 의역). 참고로, 나일강 하류 삼각주에서 하(下)이집트는 농사지어서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홍해와 인도양에 접해 있는 이디오피아 구스는 해상무역을 통하여 큰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스 인들이 아라비아 해변으로 건너가서 좋은 땅에 건설한 스바에서는 노동력이 뛰어난 장정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선민 이스라엘은 섬기고자 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어 함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만민구원사역에 나서고자 몰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2) 둘, “그들이 너를 따를 것이라”(사45:14b); 만민구원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그의 제자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마28:18-20, 행1:8).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접하게 된 이방인들이 이제는 그 대열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조주의 공의로 만민에게 차별 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심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사45:14b). 셋, “사슬에 매여 건너와서 네게 굴복하고 간구하기를”(사45:14c); 선민 이스라엘이 꿈꾸고 있는 세상은 그들이 다윗대왕처럼 이방인들의 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의 힘이 약해서 할 수가 없으면 하나님의 신위적인 도우심으로 그 일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에게 메시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 그들을 유다 땅으로 끌고 와서 종으로 부리고자 합니다(사45:14c). 그것이 다윗의 왕도 시온성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선민들이 꿈꾸고 있는 세속적인 시오니즘의 핵심 내용입니다.
3) 넷,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다 하리라 하시니라”(사45:14d); 그런데 이방인들이 그들 선민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새로운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스스로 복종하여 나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도들이 두려워서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 뒤에 숨어서 역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 이방인들이 섬기고 있던 조상신과 수호신 그리고 토착신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출12:12).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신과 우상들이 감히 여호와 앞에 설 수조차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이방인들이 이제 성도가 되어서 그 입술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네게 계시고 그 외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습니다”(사45:14d의역).
(9) 둘째, 제15절입니다; “15. (a)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b)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새로운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예언임을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사45:15a);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구원주이십니다. 그렇게 빛나고 영광스러운 창조주이며 구원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던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선민구원, 이방인 멸망이라는 시오니즘에 집착하게 되자 그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둘,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b); 이방인들은 결코 선민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거나 스스로 종이 되고자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의 현세 구복적인 신앙이나 선민 이스라엘의 현세주의 선민사상이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민족우월주의라고 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선민우월주의와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이 이방인들과 똑같은데 무엇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그러나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곧 새로운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이방인들은 창조주의 넓은 사랑을 만민구원의 복음 가운데서 깨닫게 됩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사는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앞으로 성도들 뒤에 숨어서 역사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스스로 나아오는 것입니다(사45:15b).
(10) 셋째, 제16절입니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사45:16);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를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능사입니다. 하지만 선민 이스라엘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노예와 같은 삶에서 해방을 얻은 민족입니다.
1) 그리고 하나님의 산에 도착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나게 됩니다(출19:5-6). 그러나 그 다음 그들의 여호와신앙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의 뜻을 어기고 여호와를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여호와 하나님을 이용의 대상인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 다윗왕조와 선민의 나라가 마침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왕국이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주전 538년경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한 고레스 황제의 칙령으로 고토에 돌아온 일부 유대인들이 제2성전을 짓고 다시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이 여전합니다.
2) 주후 1세기에 유대인의 땅에서 메시아가 탄생합니다(마1:18-25). 메시아는 선민 유대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오신 분입니다(요6:38-40).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선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 심판보다는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대속의 제사를 드려주라는 것입니다(요3:14-17). 그것이 본래 선민들에게 부과되었던 사명입니다. 즉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책무가 그것입니다(출19:5-6). 그것이 본래 하나님 말씀의 취지였음을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으로써 보여줍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 의하여 교회가 건설되고 새로운 이스라엘이 형성됩니다(행2:36-47). 이제 선지자 이사야는 그와 같이 장차 발생하게 되는 새로운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미리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11) 넷째, 제17절입니다; “17. (a)(새로운)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b)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사45:17); 선민 이스라엘이 소원하고 있던 구원과 새로운 이스라엘이 소망하고 있는 구원이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7. (새로운)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사45:17a); 그리스도의 모범을 쫓아가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 곧 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요5:24-29, 14:1-3).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고 그 다음에는 천국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고자 합니다(빌3:9-14, 약1:12). 그것이 영원한 구원입니다. 반면에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고자 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현세적인 구원을 얻기 원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세상에서 소원성취하고 선민의 나라의 영광을 떨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현실적으로, 자신들은 구원 받고 이방인들은 멸망 받기를 원합니다. 이방인들을 종으로 삼아 선민의 영광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이루어 주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 “너희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거나 욕을 받지 아니하리로다”(사45:17b); 메시아처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으로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아가는 성도들은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선민 이스라엘만 구원을 독점하고 이방인들은 선민을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소원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역사 가운데 한없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본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2) 본문 제18-19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영적인 무지(無知, no knowledge)와 혼돈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창조의 이치를 다시 한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2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혼돈 가운데 헤매며 헛되이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우상처럼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어떻게 공의와 진리로 창조하셨는지 그 이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무엇을 버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만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분석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3) 첫째, 제18절입니다; “18. (a)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b)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c)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For this is what the Lord says—he who created the heavens, he is God; he who fashioned and made the earth, he founded it; he did not create it to be empty, but formed it to be inhabited—he says; “I am the Lord, and there is no other”, NIV)”(사45:18);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치를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For this is what the Lord says—he who created the heavens, he is God)”(사45:18a); 창세기 제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땅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창1:1-2); 그런데 그 땅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그러한 땅의 모습이 아닙니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Now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darkness was over the surface of deep,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waters, NIV)”(창1:2). 빛이 없는 가운데 땅이라고 하는 소재가 온 우주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이전의 세상은 흑암이 지배하고 있으며 서로 만날 수조차 없는 땅들이 텅 빈 우주에 제멋대로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창조이전의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의 세력이 더이상 팽창하지 못하도록 막고 계십니다. 전체적으로 제멋대로 흩어져서 존재하고 있는 그 땅들을 하나님의 능력이 스며 있는 물의 막으로 덮어 버리시고 있다고 모세가 말하고 있습니다(창1:2). 그 바깥을 순찰하시면서 흑암의 세력의 팽창을 견제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능히 유추할 수 있는 영적인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2) 그러한 흑암의 세상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십니다(창1:3-5).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스며 있는 그 물로써 혼돈 가운데 흩어져 있는 땅들을 압박하여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천상의 물과 천하의 물 사이에 텅 빈 궁창 곧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늘(sky)이 탄생하고 있습니다(창1:6-8). 그런데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보이는 하늘 곧 궁창’(sky)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천상의 하늘들’(heavens)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제1장에 수록되어 있지 아니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구태여 선지자 이사야가 그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보이지 아니하시는 천상의 세계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엄과 그 거룩하심을 온통 잊어버리고 오직 보이는 하늘과 그 하늘 아래에 있는 보이는 세상에 너무 집착하여 인생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지극히 현세주의적이고 현실위주의 율법주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도움과 복을 줄 수 있는 하나님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들의 생존과 집단 이기적인 목적에 맞는 하나님을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 그들은 온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민족을 돌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어떠한 역할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여 세상 이방인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장나라로 삼아 주셨는데 그 역할을 전혀 행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나라로 선택 받은 선민들이 망하게 되는 이유입니다(마5:43-44, 12:39). 장차 그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역사 가운데 찾아올 것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입니다. 만민구원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취지라고 하는 사실을 메시아가 오셔서 유대인사회에서 강조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고 메시아의 부르짖음을 따라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미래를 예지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눈에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 뜻은 부디 선민 가운데 장차 여호와신앙을 보존하고 있는 남은 자만이라도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따라주었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하는 강력한 바램이라고 하겠습니다.
4) 둘,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he who fashioned and made the earth, he founded it; he did not create it to be empty, but formed it to be inhabited)”(사45:18b); 이제부터는 말씀을 풀이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이 스며들어 있는 물로써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땅이라고 하는 소재를 압박하시자 그것들이 뭉쳐져서 단단하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견고한 터전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제 혼돈과 흩어짐의 시대는 끝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과 그 위에서 동식물이 자라고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제1장에서 모세가 이미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셋,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he says; “I am the Lord, and there is no other”, NIV)”(사45:18c);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을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의지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신(神)도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주인(the Lord)이시라고 이사야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라(I am the Lord)”(사45:18ca).
(14) 둘째, 제19절입니다; “19. (a)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b)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c)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I have not spoken in secrete, from somewhere in a land of darkness; I have not said to Jacob’s descendants, ‘seek me in vain.’ I, the Lord, speak the truth; I declare what is right, NIV)”(사45:19);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큰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허망한 우상으로 여기고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혼돈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사야는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9. 나는 감추어진 곳과 캄캄한 땅에서 말하지 아니하였으며(I have not spoken in secrete, from somewhere in a land of darkness)”(사45:19a);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수면 바깥에 계셨습니다(창1:1, 2b).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고 있는 그 수면 아래에는 공허함과 혼돈 가운데 캄캄한 땅들만 흩어져 있을 뿐입니다(창1:2a); 하나님께서는 그 캄캄한 땅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빛을 창조하여 그 캄캄한 땅을 광명천지로 만들어 버리십니다(창1:3-4). 다만, 훗날 인간을 창조하여 그 땅위에서 살게 할 때에 그들에게 ‘활동 시간대’와 ‘취침 시간대’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사전에 ‘밝은 낮과 어두운 밤’의 구분이 있도록 섭리하셨을 뿐입니다(창1:4-5). 그런데 사람들은 캄캄한 땅 어두운 곳에서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기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 마치 그 옛날 아담부부처럼 자신들의 어두운 탐욕과 허물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창3:8). 그래서 자꾸만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빛이 자신들에게 비추어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요1:4-5, 3:19-20). 그것이 사람들이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은밀한 영적인 문제입니다(롬7:17-24).
2) 둘, “야곱 자손에게 너희가 나를 혼돈 중에서 찾으라고 이르지 아니하였노라(I have not said to Jacob’s descendants, ‘seek me in vain.’)”(사45:19b);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을 이루게 해주는 신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줄 수 있는 토착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부락과 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수호신을 만들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돌아가신 조상들에게도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조상신이 되어 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아울러 천재지변을 예방하기 위하여 하늘의 천체가 땅의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별들까지 신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이 한마디로, 영적인 타락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이전의 혼돈의 세상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되돌아가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아니하십니다(사45:19b). 그래서 선지자들을 그들의 사회에 보내어 계속 그들의 대 각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행7:52).
3) 셋, “나 여호와는 의를 말하고 정직한 것을 알리느니라(I, the Lord, speak the truth; I declare what is right, NIV)”(사45:19c);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어두운 데서 행하지 말고 부디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빛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그리고 사람 뿐만 아니라 만물과 천지자연까지 전부 비추고 있습니다(사45:7-8, 마5:45).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생명력을 전달해주고 있습니다(창1:31, 2:7, 요3:16). 그런데 선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진리의 빛이 이방인들에게 비추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구원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부디 하나님의 진리의 빛 앞에 정직하게 서서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보라고 말합니다(사45:19c). 선민들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 세상적인 축복을 누리고 구원의 기쁨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선민사상이야 말로 큰 문제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마저 이기적인 욕심으로 왜곡되고 있습니다(사29:13, 마7:6-9).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메시아를 보내셔서 다시 한번 회개의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진리로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공의를 손수 만민의 죄를 대속하는 제사로 보여주실 것입니다(사45:19c). 사람들이 그것마저 배척하게 되면 역사적으로 엄청난 심판만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셋째로, “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여호와신앙을 파수하고 있는, 창9:26, 사6:13) 자들아,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사11:10-12). (이방인들처럼)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출20:4-7, 여호와의 말씀의 취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무지한 자들이니라. 21. (여호와의 종인)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하지 말고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선지자들의 경전을 통하여, 눅24:44-45)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마11:27)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만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창조주의) 공의를 행하며 (만민에게 영생의)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창조주나 구원주)가 없느니라!(요17:3) 22. 땅의 모든 끝이여(온세상에 전파되는 천국복음을 듣고, 마24:14)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행4:12).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은 반드시 그 예언대로 성취가 된다는 것임. 그것이 불변의 진리임, 롬11:33-36),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롬8:37-39). 24.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righteousness, 하나님의 법정에서 선포되고 있는 의로움, 곧 영생의 요건이 되고 있는 만민구원사상의 실천을 말함, 막3:4, 12:30-31, 마25:40-46, 요5:24-29)와 힘(창17:1a)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모든) 사람들이 그(여호와와 독생자, 요1:12-18)에게로 (영생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반대하고 저항하는) 자는 부끄러움을(패망과 영벌의 수치를) 당하리라. 그러나, 25. 이스라엘 자손(롬4:16, 선민 유대인 보다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성도를 말함)은 다 (영적으로 성도들이 그들의 심령에 임재하신, 요14:16-20) 여호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칭의의 은혜)을 얻고 (영생의 구원을 온세상에) 자랑하리라 하느니라“(사45:20-25);

(1) 본문 제20-2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민과 성도를 흩으시고 다시 모으심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전파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지를 예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에 관하여 이방인들이 어떻게 알게 되어서 구원을 얻고자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는 것일까요? 2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선민들이 이방인 땅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성도들 곧 메시아의 제자들이 온 땅으로 나아가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는 본문인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20절입니다; “20. (a)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you fugitives from the nations, NIV),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 (b)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Ignorant are those who, NIV)”(사45:20); 열방 중에 흩어져서 피난생활하고 있는 자들은 일단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 유대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것 만이 아닙니다. 열방 중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또한 나아오고 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0. 열방 중에서 피난한 자들아(you fugitives from the nations, NIV), 너희는 모여 오라, 함께 가까이 나아오라”(사45:20a); 이미 설명한 그대로 이 대목은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멀지 아니한 장래에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 당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민인 동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월이 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고레스 황제를 일으켜서 신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사44:28, 45:1-6).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일부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대다수는 페르시아제국에 흩어져서 살게 될 것입니다(스1:1-4, 2:64-67). 그들 가운데 일부 남은 자가 훗날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사45:20a).
2) 훗날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이 온세상으로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방인들 가운데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또한 전통적인 이방신을 버린 성도들이기 때문에 자국에서 종교적인 탄압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피난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이므로 천국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사44:20a). 둘,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며 구원하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자들은 무지한 자들이니라(Ignorant are those who, NIV)”(사45:20b);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에 참여할 수 없는 자들에 관하여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무 우상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치 그 옛날 야곱의 식솔들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자신들이 소지하고 있는 우상들을 모두 나무 아래에 파묻어야 합니다(창35:4-5).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나무 우상을 지니고 다니며 또한 이방신들에게 기도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시해 버리실 것입니다(사45:20b, “ignorant are those who carry about idols of wood, who pray to gods that cannot save”, NIV).
(3) 둘째, 제21절입니다; “21. (a)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b)이 일을 예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c)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d)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1);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있습니다. 창조주도 자신이며 구원주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언하신 그대로 반드시 구원하시고 새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구절을 살펴봅니다;
1) 하나, “21.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사45:21a); 하나님의 만민구원계획이 여호와말씀의 정확한 취지인지 아닌지 많은 논란이 있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여기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유대교인들은 선민사상에 젖어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짖게 되는 메시아를 배척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방해를 뛰어넘어서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이 이방세계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여호와의 말씀의 뜻인지에 관하여 이방세계에서도 논란이 발생할 것입니다(사45:21a).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방향이 분명히 드러나게 됨에 따라 종결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이 있던 것처럼 성도들에게도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영생의 미래가 전개될 것을 믿고 전진하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이미 그 논란이 종결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 “이 일을 예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사45:21b);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메시아가 유대인 사회에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11:1-4). 그리고 열방에서 많은 자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사11:10-12). 그것은 선민구원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는 만민구원의 복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예언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미리 선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의 내심이 궁금합니다(사45:21b). 자세한 설명은 후술이 되고 있습니다(사48:6-7).
3) 셋,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사45:21c); 이사야를 통하여 만민구원의 구체적인 기준을 이미 예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이방의 토착신을 떠나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나아오는 자들을 구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거나 이방신을 계속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만민구원에서 제외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강경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신은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다른 신들은 나무 우상을 가지고 다니든지 상관없이 그저 자기 앞에 제물이나 많이 바치고 자신에게 절하면 그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명심하라고 이사야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사45:21c)라고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4) 넷,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1d);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특징은 정확하게 공의의 원칙에 따라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공의’(公義, righteousness)라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에서 피조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관점입니다. 서로가 정의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의 이기적이고도 편파적인 정의의 논리가 결단코 아닌 것입니다.
(4) 셋째, 제22절입니다; “22. (a)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b)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2); 땅끝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음과 같이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2.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사45:22a);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땅끝까지 이르게 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게 될 것임을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11.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1-14). 그러므로 땅끝에 살고 있는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복음을 듣기 전에 종말이 오고 말았다고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상을 버리고 자신들의 이방신을 떠나서 창조주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사45:22a). 그것이 탕자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론입니다(눅15:15-24).
2) 둘,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2b); 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우상도 엄청 많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인구의 수만큼 많은 우상과 신들이 존재하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수의 우상과 신들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자신에게 복을 비는 자들에게 현세적인 이익을 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복을 얻는 형통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 영생을 얻는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②정성을 바치며 복을 비는 자에게 복을 주지만 자신을 찾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불이익을 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소위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에 속하는 복입니다. 그것이 편중되거나 편파적이거나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③결국, 우상문화는 당사자의 현세적인 복에 치중하고 있으므로 영생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신앙과 다릅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형편을 두루 살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우상 문화이며 이기적인 사람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유일하게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자 하시는 구원주는 공의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여기서 이사야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사45:22b).
(5) 본문 끝자락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모든 사람들이 굴복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사45:23-25). 이사야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숨쉬는 새로운 세상이 창조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45:23). 특히 하나님의 공의가 만민구원과 온 세상구원을 위하여 땅끝까지 전파되어 나가게 되면 순차적으로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할 것임을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방인들이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나아오는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사45:24). 또 하나는, 그 다음에는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드디어 칭의의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45:25).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음미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제23절입니다; “23. (a)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b)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c)(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d)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45:23);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된다고 하는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사45:23a); 여호와의 말씀을 이사야가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두고 맹세한다고 합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신분과 능력을 두고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신분은 무엇일까요? 3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①창조주입니다. ②심판주입니다. ③구원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역시 3가지입니다; ①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창조하며, 천지를 만들고, 만물을 지으며, 사람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②심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심판이란 그 죄질에 따라 몸과 영혼까지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③구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를 말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고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꾸어 주기 위해서는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대속물이 필요합니다(요1:29). 영원하고 완전한 대속물이 이 세상의 창조에 관여하신 독생자 메시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신분과 전능하심을 두고서 맹세하고 계십니다(창17:1, 사45:23a). 그러므로 그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창조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현될 것입니다(사65:17-18). 그렇게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그 맹세의 내용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2) 둘,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사45:23b); 그 맹세의 내용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공의’(the righteousness of God)를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세상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조금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공의를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공의를 잊어버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자신들의 의로움(롬10:3) 즉 ‘사회적인 정의’(social justice)가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공의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정의는 남을 죽이더라도 자신은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집단에게는 해가 될지라도 자신들의 집단에 이득이 된다고 하면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제로섬’(zero-sum) 게임에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람들의 ‘사회적인 정의’의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3) 셋,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나니”(사45:23c);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이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제55장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사55:11).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공의를 실천하는 세상이 되라고 명령하시면 세상의 모든 만물과 만민은 그 명령에 복종을 해야만 합니다. 끝내 거절하고 자신들의 의를 성취하려고 나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넷,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45:23d);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거절하게 되면 두려운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겠다고 맹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천국에 입성하여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눅12:4-5, 히11:16).
(7) 둘째, 제24절입니다; “24. (a)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 (b)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사45:24); 창조주의 의도와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 “24. 내게 대한 어떤 자의 말에 공의와 힘은 여호와께만 있나니”(사45:24a); 세상에서 범죄행위의 고의성여부를 따질 때에 그 사람의 의도와 능력을 모두 살피게 됩니다. 예를 들면, 남을 해치고 싶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면 범죄행위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혹 남을 해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해치고 싶은 의도가 없다고 한다면 역시 범죄행위는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 구절을 검토해봅니다; ‘어떤 자의 말’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흔히 따지고 있는 위와 같은 세상적인 행위의 구성요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 드린 ‘의도와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경우에는 그 의도가 ‘공의’의 원칙의 실현입니다. 그리고 능력은 하나님의 고유한 ‘힘’입니다.
2) 공의의 정신은 본래 피조물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치 밀림과 같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살기에도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잡아 먹히기가 쉬운 처지인데 어떻게 남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 능력과 지혜를 받아야만 합니다. 간구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처럼 공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힘이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영적으로 공급되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마16:24).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집단의 이익이라는 정의의 개념을 내려놓고 피조물 모두를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입니다(마5:44-48, 막12:30-31).
3) 둘,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라. 무릇 그에게 노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그러나”(사45:24b); 여기서 ‘사람들’은 주로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나’는 마지막 경우로서 ‘선민’에 대해서 말하고자 사용하고 있는 접속사로 보입니다. 이방인들 가운데 진심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따라 공의를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즉 만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맹세하고 나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이방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공의를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에 분노합니다. 계속 남을 해치더라도 자기들만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획책합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8) 셋째, 제25절입니다; “25. (a)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b)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사45:25); 선지자 이사야는 마지막으로 선민들이 구원받게 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5. 이스라엘 자손은 다 여호와로 말미암아”(사45:25a);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출19:5). 그 목적은 이방세계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이방인들의 속죄를 위하여 대신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출19: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특권을 자랑하기에 앞서 여호와가 맡긴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선민이 되었으므로 여호와가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실천해야 합니다(사45:25a).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믿음의 열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자신들의 혈통적인 자랑으로 바꾸고 있는 불신앙입니다(요1:12-13반대해석).
2) 둘,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사45:25b);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는 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대하여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11:11-12). 풀이해보자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메시아를 배척함으로써 만민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먼저 넘어가서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선민들의 구원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예언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를 하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고 자랑하리라 하느니라”(사45:25b); 풀이를 해보자면 ①그것은 전통적으로 유대인사회에서 얻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만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얻게 되는 의로움입니다. 그것은 공의를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마16:24).
3) ②선민 유대인들이 더이상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살리는 그 능력을 자랑합니다. 이제는 세상적인 선민의 지위나 자신들의 율법적인 행위의 거룩함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③사도 바울이 좀더 구체적인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롬11:23-24). 선민 유대인들이 구원을 얻자면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선민만의 구원론’이 옳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까지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만민 구원론’이 옳다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 옛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하고 있던 그들인지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전파하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속죄의 제사를 대신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직분을 실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직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선민우월사상에만 젖어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의 나라가 지상에서 사라지게 될 운명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있고 100년 남짓 지나자 실제로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선지자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로 살아가고 있는 동족들을 해방하는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인 왕 고레스를 사용하여 선민 유대인을 다시 해방시킬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가 고레스를 ‘내 종’, ‘내가 기름을 부은 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뜻은 앞으로 선민 이방인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명자로 불러 사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고레스는 훗날 이 땅에 오시는 구원자 메시아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많은 이방인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세가 성도들에게 함께할 것임을 역시 고레스를 통하여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이방인을 종으로 불러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현지화 전략이라고 하겠습니다(사66:20-21, 마28:18-20, 행18:11, 19:8-11).
저와 여러 성도님들이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와 같은 거룩한 만민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주님의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레스 왕처럼 하나님의 예언 그대로 연전 연승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힘차게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와 적들을 파괴하시는 다양한 권세가 평생 동안 함께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