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여호와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온세상에 전하도록 출바벨론의 역사가 주어지지만 유대인들이 그러하지 못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다”(사43:1-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8. 28. 15:16

제목; “여호와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온세상에 전하도록 출바벨론의 역사가 주어지지만 유대인들이 그러하지 못할 것임을 이사야가 예언하다”(43:1-28)

설교일; 주후 2026 12 13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828일 목요일 작성)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8세기 다윗왕조 유대왕국에서 활동한 여호와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기록으로 남긴 예언서 이사야는 대선지서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제39장 말미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주전 701년 유다 왕 히스기야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두번의 구원의 기회를 얻었지만(38:5, 37:35-36) 그후에 그가 보인 태도는 배은망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39:2-8).

돌이켜보면 예루살렘성에 갇혀서 앗수르 군대의 집중적인 포위공격을 받고 있는 다윗왕조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사 18 5천명을 하룻밤에 도륙하고 있습니다(37:35-36, 왕하19:34-35).

그것은 한마디로, 주전 15세기에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의 내용가운데 유월절 밤 여호와가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세상제국 애굽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전멸시켜버린 사건이 700여년이 지나 재현된 것입니다(12:29-30).

그리고 그 영적인 의미는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역사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12:12, 왕하19:34-35).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 본문 제43장에서는 이사야가 구속’(redeem, 1)이라는 용어와 구원자’(saviour, 3)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 제3절에서 이사야는 세상제국 애굽에서 마치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압제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창조주 여호와께서 대신 희생시킨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 희생자는 먼저 민간인인 애굽의 장자들입니다(43:3b, 12:29). 그 다음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체포하고자 그 뒤를 추격하고 있는 바로의 군대입니다. 특히 멀리 남쪽 이디오피아 구스와 홍해 건너 서남 아라비아 스바에서 온 병사들이 거명되고 있습니다(43:3c, 왕하19:9, 14:27-30).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특이하게도 개인적으로 불치의 병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38:9). 병이 낫게 되고 동시에 15년 수명연장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38:5). 그렇다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대신 희생하고 히스기야 왕의 죽을 병을 고쳐주고 또한 수명연장을 선사하고 있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히스기야 왕이 그 정도로 운명의 변화를 얻을 수 있는 자격자가 아닌 것으로 역사서와 선지서 이사야에 기록되고 있기에 그 점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가 15년 연장된 삶속에서 보이고 있는 두가지의 큰 실책을 보게 되면 그 점이 분명합니다;

(1)  하나는, 그는 향년을 늘려주고 침략군 앗수르를 물리쳐 주신 여호와의 놀라운 은혜와 영광을 대내외적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그 반면에 자신의 대단한 업적과 유대왕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망명정부 바벨론에서 온 사절들에게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입니다(39:1-4, 왕하20:12-15). 그로 인하여 훗날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부유함을 탐낸 신바벨론제국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일부 왕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환관이 되고 말 것이라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38:5-7, 왕하20:16-18). 그러나 그의 반응은 참으로 의외입니다.  선민의 왕인 히스기야는 자신이 살아 생전에 왕국이 건재하고 국왕으로 한세상 잘 살게 되면 그만이지 죽은 다음의 문제는 하등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지독한 이기적인 현세주의자의 면모만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39:8, 왕하20:19).

(2)  또 하나는, 왕자가 없던 히스기야 왕이 수명연장을 받은 후 3년이 지나자 왕자 므낫세를 얻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평소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이기적으로 국왕의 권위만 내세우고 제멋대로 살아왔기에 그의 아들이 그 본을 그대로 보고 성장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므낫세가 12살에 다윗왕조의 국왕이 되어 55년간 유대왕국을 통치하는 동안 너무나 심하게 우상을 섬기고 학정을 일삼게 됩니다(왕하21:1-9, 16). 그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죄악이 옛날 원주민 가나안 여러 족속보다 더 심하므로(15:16, 왕하21:9, 11) 기필코 다윗왕조 유대왕국을 없애 버리고자 결심하고 마시는 것입니다(왕하21:12-15).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의 죽을 병을 치유하여 주고 그에게 15년 수명연장이라고 하는 특혜가 새로운 운명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을 대속의 제물로 받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원을 선사한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하여 시사성을 주고 있는 대목이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 제32장 말미의 다음 구절입니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모세를 포함하여 그)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대속자 어린양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1:29, 3:13-17, 11:26)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32:1-10)”(32:30-35).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선지자인 이사야는 훗날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조국과 그 동족들의 구원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그와 관련하여 이사야는 그 옛날 출애굽 사건이 다시 ()바벨론 사건으로 발생할 것이며 유민들이 해방을 얻어 고토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에 제2성전을 건설하고 다시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43:4-5, 11:12-13).

그와 관련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이상한 구절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1:5)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1:12-13),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6:39).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1:3-14)”(43:6-7).

그 내용은 선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까지 만민을 구원하여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지상명령을 수행하면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11:10-11, 16, 14:1-2, 66:20-21, 1:29, 3:13-17, 5:43-48, 28:18-20).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 제14-21절에 기록되어 있는 출바벨론 사건을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언약을 중심으로 하여(31:31-34)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찬양하며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과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그 옛날 선민들이 여호와신앙의 뿌리로 삼고 있던 히브리경전을 함께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3:8-13, 3:2).

그 이유는 새 언약의 시대를 히브리경전에서 벌써 예언하고 있으며 선민들의 역사 자체가 여호와의 새로운 창조에 대한 증거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계십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이사야를 포함한)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보혜사 성령님, 14:16-20)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1:8) 이 성(예루살렘)에 머물라 하시니라”(24:44-49);

주후 1세기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이전의 시대 곧 제2성전의 시대에 대해서는 히브리정경의 마지막을 말라기 선지자의 글이 장식하고 있습니다(3:7-4:6).

주전 5세기말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선지서 말라기의 내용은 제2성전의 시대 여호와신앙을 버린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을 웅변적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전개될 것임을 선지자 이사야가 본문 제22-28절에서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2:7, 25:21-26, 아담과 마찬가지로 야곱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심).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35:10-13, 벧엘에서 야곱을 선민의 조상 이스라엘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 19:4-6,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을 시내 산 아래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삼으심).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41:10a).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12:29, 24:36-43, 영생의 몸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을 대속의 십자가에 속죄의 제물로 희생하였기에 그리스도가 너희들을 구속하고 이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이 되셨다고 말씀하심)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12:13), 너는 내 것이라(41:10b, 13:2, 28:18-20, 1:8). 2. 네가 (홍해)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14:21-30). (요단)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3:13-17),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13:21-22),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3:27),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6:4-25, 11:16, 26, 22:12-14, 1:12-18, 29,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아브라함과 같은 여호와 경외자를 누구나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임). 내가 애굽을(애굽의 장자를) 너의 속량물로(12:29-30, 13:2,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고자 대신 제물로 삼고자 한 것임), 구스와 스바를(애굽의 추격군에 포함되어 있는 멀리서 온 제국의 병사를 말함)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14:21-31, 그들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이 대신 살아난 것임).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그와 같은 희생을 치르고 대신 구원받은 선민들이니 이제부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임. 그것이 이방인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하며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소임을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감당하는 것임, 19:4-6),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그와 같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선민들 곧 디아스포라를 모두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구원하심, 9:15-19, 10:3. 에스더에 기록되어 있는 부림절 사건이 그 증거임),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온세상에서 불러모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 대속으로 구원한 성도들임, 3:13-17, 8:10-13, 12:17-21),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6:39).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1:26-27, 2:7, 1:3-14)“(43:1-7);

(1)  본문 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하여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동족 이스라엘 자손을 구속’(救贖, 속전 몸값을 치르고 노예에서 해방시켜주는 )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치르시고 계시는 엄청난 희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43:1-4).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미 굉장한 희생을 치른 사실과 함께 앞으로 치르게 되는 막대한 희생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과연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구절을 풀이하면서 깊은 의미를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야곱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b)이스라엘 너를 지으신 말씀하시느니라. (c)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d)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이라”(43:1);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동족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전하고 있는 계시는 한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의 입장표명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선민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지적해주시는 말씀이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그러합니다;

1)    하나, 1. 야곱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43:1a); ‘야곱 개념은 이스라엘 개념과 다릅니다. 물론 야곱의 운명이 바뀌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족장 이스라엘로 변화하고 있지만(32:28, 35:10) 여기서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개인적인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민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라고 하는 인생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 한가지 말씀을 하시겠다는 언질입니다. 한가지 말씀을 특별히 지금 시간에 말씀하시는 이유는 지금부터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대변하고자 합니다.

2)    , 이스라엘 너를 지으신 말씀하시느니라”(43:1b); 언뜻 보면, 야곱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의 의미가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야곱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같은 개인의 인생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을 지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을 형성하시고 특별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의미입니다(19:4-6). 그러므로 지금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한꺼번에 상대하시면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은밀하고도 비밀스럽게 추진된 내용이지만 앞으로는 공개적으로 추진되어 나갈 역사적인 사실입니다(48:6-11). 성도들은 점을 염두에 두고서 귀를 기울여야만 것입니다.

3)    ,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43:1c); 사람의 영혼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소멸이냐? 아니냐? 갈림길에 섰을 때입니다. 심판주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앞에 나타나시게 되면 본능적으로 벌벌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두려워서 떨고 있는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24:38-42). 구속해주기로 이미 결정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사야가 복음을 전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구속이라고 하는 의미는 죄와 사망에 지배 받고 있는 인생을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께서 대가를 대신 치르시고 해방을 시켜주겠다는 것입니다(3:13-17, 8:1-2). 쉽게 이해하자면, 영벌의 대상에서 영생의 대상으로 옮겨 주기로 천국에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5:24, 11:26);

4)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이라”(43:1d); 수많은 인류 가운데 나를 특정하여 구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을 특별히 구속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가를 대신 치른 것이므로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것으로 소속이 바뀌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 노릇하던 처지에서 이제는 여호와의 종으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1:1, 8:1-2, 1:1-7). 신분이 달라졌기에 이제부터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달리 살아가야만 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히 알아 듣고서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지금 여기서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렇게 특별히 선택된 이유와 목적에 맞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5)    비싼 대가를 치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과 선민국가의 지위를 부여해 주셨는데 그들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했는데(19:6) 그렇게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와 이민족들을 위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하나님에게 중보기도하고 대신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18:22-33).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몸소 본보기를 보여주는 이른 선지자다운 거룩한 인생으로 살아가지 아니한 것입니다(28:19-20). 참고로, 그러한 하나님의 탄식과 지적사항이 선지서 요나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12:39-41, 16:4).

(3)  둘째, 2절입니다; “2. (a)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것이라.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b)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43:2); 이미 경험한 역사적인 사건 뿐만 아니라 미래에 경험하게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두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구속의 의미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소속이 죄와 사망의 권세아래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백성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하나님의 강력하신 보호하심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보호하심이 과연 어느 정도로 강력한 것일까요?

1)    하나, 2.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것이라.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43:2a); 세상의 모든 풍파가 밀물같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한평생 살아가고 싶지만 성난 파도를 바라볼 때에 두렵기 그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종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것이라.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43:2a). 말씀을 어떻게 믿을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믿게 해주실까요? 요컨대, 출애굽한 백성들을 홍해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지게 하십니다. 사이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하십니다. 추격해서 홍해 속으로 들어온 애굽의 군대를 일시에 수몰시켜 버리십니다(14:23-31). 그리고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일어 제자들이 타고 있는 작은 배를 전복시킬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꾸짖으시자 조용하게 되고 맙니다(14:32-33, 8:24). 그러므로 세상보다도, 적군보다도, 풍랑보다도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2)    , 네가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43:2b);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가운데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를 풀무 불속에서 보호하여 구해 내시는 것입니다(3:23-29). 또한 불꽃은 음부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16:23-24). 불꽃이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40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때문입니다(28:1-10, 24:44-53).

(4)  셋째, 3절입니다; “3. (a)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 이요, 구원자임이라. (b)내가 애굽 너희 속량물, 구스 스바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43:3);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하여 무엇을 대신 희생했는지 내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미 지불한 것과 앞으로 지불할 내용을 함께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    하나, 3. 대저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 이요, 구원자임이라”(43:3a); 대목에서 하나님의 정체에 대하여 3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조주, 거룩하신 초월자, 구원자입니다.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뜻은 스스로 있는 (I am who I am)입니다(3:14).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라는 말입니다. 속성은 언제나 변함없이 스스로 존재하시고 스스로 결정하시고 스스로 행동하십니다. 요컨대, 시공간에 구애 받지 아니하고 모든 피조물 앞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 현현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함’(holiness) 피조물의 특성이 아니고 온전히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3:5, 4:8).

2)    그러므로 구속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오로지 거룩하신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때에 거룩한 선민으로 자리매김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거룩한 사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못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스스로 구원자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옛날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을 치르신 일을 또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3)    , 내가 애굽 너희 속량물, 구스 스바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43:3b); 출애굽의 분기점은 애굽에 내린 10번째 재앙입니다. 소위 장자(長子, 맏아들) 죽음과 초태생(初胎生, 처음 태어난 가축의 새끼)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월절 양의 피를 문인방( 위의 들보) 좌우 설주( 기둥) 뿌린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게 조치하지 아니한 애굽 사람들은 모두 줄초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깊은 의미가 무엇일까요? 모두가 하나같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접하지 아니하며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땅을 경작하며 세상을 경영하는 것입니다(1:28, 2:15). 그런데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군림하려고 합니다(6:2-7). 따라서 모두가 멸망의 대상들입니다.

4)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에서 구원을 받을 있는 방법이 모세를 통하여 전달되고 있습니다(12:7-14). 어린양의 피를 대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지 아니한 애굽 사람들은 장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실을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른 측면에서 언급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 사람들이 대신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세주나 구원주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속량의 제물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뜻은 종말심판이 있기 전에 역사적인 심판을 당하게 되는 슬픔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유월절 밤이 노예해방의 기쁨의 밤이며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하는 밤이지만 애굽 인들에게는 엄청난 슬픔의 밤입니다(12:29-30).

5)    밤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바라보고 기뻐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수많은 애굽의 장자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현장을 보시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4:11). 그들도 모두 구속과 구원의 대상인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겨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만 구출하는데 그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날 구원함을 입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특별한 사명을 부여 받게 됩니다. 다시는 애굽의 곡성과 같은 재앙 역사적인 심판이 없도록 모든 나라와 백성을 구원하는데 앞장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19:5-6).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제사장나라가 감당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사명을 저버리고 선민들이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애굽에서의 속량함이 허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6)    구스와 스바는 히스기야 예루살렘성을 구하기 위하여 출전했던 구스 디르하가의 원군과 관련되고 있습니다(37:9).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입니다. 당시 애굽 25왕조 구스의 왕은 전체 애굽제국의 패주입니다. 그들은 바다 건너 아라비아의 형제국가인 스바와 함께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있는 앗수르제국의 군대를 치기 위하여 원정을 했습니다(왕하19:8-10). 그러나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전술을 당하지 못하고 많은 군사를 잃고서 패주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제국 애굽은 나일강 삼각주 ()이집트는 물론 수단과 이디오피아를 포함하는 ()이집트까지 다스리고 있습니다. 상이집트에는 구스와 맞은 스바가 포함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군사가 출애굽 당시 바로의 추격군에 들어 있다가 홍해에서 함께 수장된 것으로 보입니다(14:23-30).

(5)  넷째, 4절입니다; “4. (a)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b)내가 대신 사람들 내어주며, 백성들 생명을 대신하리니”(43:4);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대신 내어준 사람들은 누구이며 앞으로 그들을 대신할 자는 누구인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점을 따져보고자 합니다;

1)    하나, 4.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43:4a); 선민들은 스스로 이방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선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멸망의 대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지키며 속죄의 제사를 제때에 드린다면 선민들은 항상 구원과 번영을 누릴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심판이 오히려 선민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100년후를 예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있습니다(39:6).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39:7).

2)    훗날 페르시아 고레스 황제에 의하여(45:1-5) 자유민이 되고 소수만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유대인 사회에 장차 메시아가 오시게 됩니다. 만민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오십니다. 그러나 선민구원만을 고집하는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배척 받게 되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유대인 사회가 붕괴되고 다시 한번 온세상에 나그네가 되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세상 끝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가 유대인들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은혜를 이사야가 위와 같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4a).

3)    , 내가 대신 사람들 내어주며, 백성들 생명을 대신하리니”(43:4b);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는 종이 어느 정도로 소중한 존재일까요? 종이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로 두텁게 보호하시는지를 보면 해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옛날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을 전해주기 위하여 선지자로 떠나고 있는 아브라함을 다음과 같이 보호하십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12:3). 여호와신앙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있는 떠돌이 선지자 아브라함입니다. 그를 원주민들이 어떻게 대접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그들이 아브라함을 배척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4)    예를 들면, 당시 가나안의 중심도시 세겜에 도착했을 때의 일입니다(12:6).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선언하시자 아브라함은 신이 났습니다. 곧바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12:7). 하지만 이웃 원주민들의 방해로 철수하고 맙니다. 남쪽으로 옮겨가 인적이 드문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하고 있습니다(12:8).

그리고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차례 피난살이를 합니다. 애굽과 블레셋의 그랄 지역입니다. 차례 모두 미인인 아내 사라를 황제의 후궁으로 빼앗기게 됩니다(12:15, 20:2). 하나님께서 적극 개입하시어 도로 찾게는 되지만 고생이 보통이 아닙니다. 또한 그랄 땅에서는 우물을 파지만 전부 원주민들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21:30, 26:15, 18).

5)      그렇게 여호와의 선지자를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십니다(12:17, 20:7, 18). 그래서 세상 끝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메시아로 오셔서 목숨을 대속의 제물로 버리시기까지 하십니다(1:12-13, 29, 3:14-15). 그러한 의미를 당시의 사람들이 알아듣기 편하게 이사야가 위와 같이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4b). 그러나 직역하게 되면,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아니한 문장이라고 하겠습니다.

(6)   사실 본문 4-7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구속과 파송, 그리고 자손을 하나님의 자녀로 땅끝에서부터 불러 모으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희생을 치르시고 보배롭고 존귀한 성도를 구원하여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43:4). 결과 성도들이 여호와신앙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의 일꾼이 되어 땅끝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장차 그들과 그들의 믿음을 승계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은혜가 임하게 될까요? 질문에 대하여 본문 5-7절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답변해주고 있습니다;

(7)   첫째, 5절입니다; “5. (a)(악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b) 자손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모을 것이며”(43:5);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으면 그것이 진리이며 의로운 것입니다. 일을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행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격려의 말씀이 이사야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하나, 5.(악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43:5a); 악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힘을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약속이 필요할까요?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세상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보기에 옳은 것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의 형편을 두루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대입니다.

2)      자신과 자기 집단이 먼저 살고 이익을 크게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것을 약탈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정의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명분과 정의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사랑 공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핍박과 박해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옳게 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강하게 임재하시고 힘을 보태어 주시는 것입니다.

3)      , 자손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모을 것이며”(43:5b);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도들과 성도들을 끝까지 구원하겠다고 하는 약속이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사도들을 서쪽으로 파견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1세대를 서쪽에서부터 모으겠다고 하는 표현으로 보아 초대교회시대 복음이 서쪽 로마로 먼저 퍼져 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세월이 지나면 성도들이 동방으로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적극적으로 전하게 됩니다. 그들도 모두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아 들이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8)   둘째, 6절입니다; “6. (a)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b) 아들들 에서 이끌며, 딸들 땅끝에서 오게 하며”(43:6); 사도 바울의 그대로 땅에서의 성도의 고난은 장차 얻게 되는 하나님자녀의 영광과 비교하면 작고도 작은 것입니다(8:18). 그와 같은 취지의 말씀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1)      하나,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43:6a); 성도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이방 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선지서 이사야 19 말미의 말씀을 참조하면, 앗수르와 애굽으로 상징되고 있는 땅이 우선적인 선교 지역입니다. 선민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바라보면 앗수르는 북쪽으로 가서 동쪽으로 들어가는 지역입니다. 애굽은 남쪽으로 가서 서쪽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을 여기서 이사야가 북쪽과 남쪽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그들 이방인들이 순순히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말씀과 신앙을 받아 들일까요? 아닙니다. 자신들의 토속신앙과 우상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적대적인 조치를 취합니다. 결과 말씀을 전하는 종들이 포로가 되고 옥살이를 하게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거나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종을 보호하시며 구원하시는 창조주의 권능이 선교현장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박해의 현장에서 내놓게 만들고 옥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입니다(43:6a).

3)      , 아들들 에서 이끌며, 딸들 땅끝에서 오게 하며”(43:6b); 하나님의 자녀를 곳에서부터 그리고 땅끝에서부터 천국으로 불러모으십니다. 재미있는 표현은 아들들이 곳에서 오게 되며, 딸들이 땅끝에서 오게 된다는 대목입니다(43:6b). 아들과 가운데 누가 멀리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아들보다는 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일꾼 가운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용감하며 적극적인 것으로 짐작된다고 하겠습니다.

(9)   셋째, 7절입니다; “7. (a)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 내가 영광 위하여 창조한 오게 하라. (b)그를 내가 (거듭나게) 지었고, 그를 내가 (사명자로) 만들었느니라”(43:7); 여호와의 종은 평생 누구를 위하여 봉사해야만 할까요? 또한 일을 끝까지 충실하게 행할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주시고 있는 것일까요?

1)      하나, 7.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 내가 영광 위하여 창조한 오게 하라”(43:7a); 하나님의 사자,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의 백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여호와의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존재이유와 사역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종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종을 두고 있는 이유는 주인이 일을 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이 행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민과 만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입니다. 일을 신실하게 행하게 되면 피조물들이 창조주의 영광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렇게 찬양을 받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의롭고 신실한 종을 천국으로 불러들이십니다. 천국잔치에 참석하게 하고 기업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1:12).  

2)      , 그를 내가 (거듭나게) 지었고, 그를 내가 (사명자로) 만들었느니라”(43:7b); 땅에서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장차 어떠한 영광을 얻게 될까요? 세상이 주는 영광이 아니라 창조주로부터 오게 되는 엄청난 영광을 얻게 됩니다. 육신적인 삶으로 만족하지 않게 됩니다; 모태에서 육신을 입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생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운명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삶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영적인 삶이 시작되고 있습니다(8:1-17). 그것이 거듭난 인생이며 하나님의 새로운 운명의 창조입니다. 가장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안팎의 유한한 인생을 사는 동안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한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인생을 살게 해주시니 은혜와 기쁨이 남은 인생 가운데 넘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있는 인생으로 창조해 주심에 대하여 거듭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6:9-10,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상적인 탐욕으로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버린 선민들을 말함). 9. 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어 그 열매를 거두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오래전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벌써 드러나고 있으며 그것이 히브리경전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선민들이 증거하여야 한다는 것임, 24:44-49, 1:1-7, 3:2,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거도 훗날 사도 바울의 증언도 그와 같음).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선민 출신 성도들), 나의 종(이방인 출신 성도들)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여호와의 선재성을 말함, 1:30).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①계1:8, 여호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임. ②엡4:4-6, 만민과 만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유일하신 창조주 31체 여호와 하나님을 말함. ③창1:26,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복수임. ④창3:22,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언급임).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 성육신하여 영생구원을 실천하신 성자 하나님,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말하고 있음, 4:12, 1:2-4, 4:6, 고후13:13).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4:28-31), 구원하였으며(12:29-42, 14:21-31, 17:8-16), 보였고(19:16-20),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19:4-6),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24:44-48), 나는 하나님이니라(6:4-9) (만고불변의 진리인)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3:14, 1:29-30), 내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8:31-39)“(43:8-13);

(1)  본문 8-1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누가 하나님을 직접 보고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서 만민들에게 전해줄 수가 있을 것인가를 예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간략하게 하고자 합니다;

(2)  첫째, 8절입니다; “8. (a) 있어도 보지 못하고, (b)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 (c)이끌어 (하나님 앞에 세워) 내라”(43:8); 다음과 같이 3가지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8. 있어도 보지 못하고”(43:8a); 사실 눈이 있어도 사람은 하나님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서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33:20).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34:10). 어떻게 모세가 죽지 아니하였을까요? 의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밝혀 주시고 있습니다; “20. 이르시되, 네가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보라, 곁에 장소가 있으니 너는 반석 위에 서라. 22.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등을 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33:20-23).

2)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향하실 때에는 얼굴을 바로 없도록 손으로 가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모세가 하나님의 뒤를 보고 있을 때에는 손을 치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가까이 간다고 하는 것은 심히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과 죽음을 영원히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이 바로 심판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5:8). 그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접하도록 되어 있을 때에 그들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모세에게 부탁합니다. 모세 혼자만 시내 정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달라는 것입니다(5:5, 25-27). 지도자 모세를 대신 하나님 앞에 올려 보내고 자신들은 목숨을 보전하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쩔 없이 허락해주시지만 그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3)      물론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5:28-29). 하지만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영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제까지나 모세나 선지자가 전해주는 말씀에 의존하여 간접적인 신앙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자기처럼 하나님을 만나볼 있는 선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b). 훗날 창조주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보여줄 있는 새로운 방법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께서 메시아로 세상에 오셔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b).

4)      ,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43:8b); 사람의 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시기 때문입니다(19:19, 왕상19:12). 그렇게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접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직접 음성 듣기를 백성들이 원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귀가 있어도 하나님 말씀의 정확한 뜻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19.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9). 그것은 위협적인 음성이 아니라 위안을 주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사실을 엘리야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2.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19:12).

5)      , 이끌어 (하나님 앞에 세워) 내라”(43:8c); 하나님은 백성들이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로 계속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경영하도록 창조된 피조물이 사람입니다(1:26-27). 그러므로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서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자면 하나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직접 듣고 그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그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에서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소경이며 귀머거리입니다. 그들을 이제는 하나님 앞에 다시 세워야만 합니다. 일을 위하여 메시아가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3)  둘째, 9절입니다; “9. (a)열방 모였으며, 민족들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일을 알려 주며, (b)이전 일들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c)그들이 그들의 증인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43:9);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어 선지자로 만들고자 하십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깨달아 세상에서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은혜를 복음으로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전해줄 자가 누구일까요?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9. 열방 모였으며, 민족들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일을 알려 주며”(43:9a); 본래 일을 담당하도록 선택된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선민만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영위했습니다. 결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이야기를(43:9a) 전혀 적이 없습니다. 한번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내용은 40 후에 하나님의 진노로 니느웨 성이 무너진다는 예언입니다(3:4).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놀랍게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성이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발생합니다(3:5-10). 선민의 선지자인 요나는 일이 무척 못마땅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니느웨 근교에 머물면서 다시 악을 행하고 망하는 꼴을 지켜보고자 합니다(4:15). 그것이 소위 선민들의 행태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선택하여 진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야 할까요? 대상이 바로 메시아를 영접하는 성도들입니다(1:12-13).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메시아처럼 만민구원사역에 매진할 것입니다.

2)      , 이전 일들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43:9b); 창조주 하나님은 선민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이방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선민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이방인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정경을 들여다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본뜻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드러내기 위하여 그들의 역사를 섭리하신 기록이 생생합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만민구원의 메시지입니다(66:18-21, 2:28). 그러므로 이전 일들을 세상사람들에게 말해줄 필요성이 있습니다(43:9b). 그리고 메시아가 오신 이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또한 만민구원의 드라마가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선민 출신이거나 이방인 출신이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만민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주고 있습니다(1:8).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일을 대대적으로 준비하시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수없이 보내어 미리 예언했다는 사실을 함께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43:9b, 4:22, 24:44-45, 7:51-52, 3:2).

3)      , 그들이 그들의 증인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43:9c);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의 잘못을 이사야가 집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세상사람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우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증거는 다음 가지입니다; 하나님말씀과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생활규칙과 전통적인 주석입니다. 아전인수격이며 선민들의 집단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규정들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9.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도다”(7:9),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유대교권의 확립입니다. 백성들에게 율법을 준수하도록 가르치고 그것을 최고기관 산헤드린 ()공회에서 감독하며 규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두려워하고 산헤드린 대공회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결과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는 마음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남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외식적인 종교생활로 전락하고 것입니다.

(4)  셋째, 10절입니다; “10. (a) 여호와가 말하노라. (b)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c)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깨닫게 하려 함이라. (d)나의 (, , before) 지음을 받은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43:10); 이사야는 여호와신앙을 온세상에 전하는 성도들이 명심해야 하는 사실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0. 여호와가 말하노라”(43:10a);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만든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바로 창조주 여호와이며 지금도 역사를 섭리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도는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모든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창조주는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을 훨씬 초월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어찌할 없는 전능자라는 사실도 말해주어야 합니다(17:1, 3:14, 1:27, 30).  

2)      ,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으로 택함을 입었나니”(43:10b); 증인에는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증거하고 있는 증인입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증거하게 되는 증인입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증인을 하나님이 메시아의 시대를 준비하면서 필요로 하고 있다고 하는 예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온세상에 만민구원의 뜻을 전하는 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라고 하겠습니다(43:10b).

3)      ,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깨닫게 하려 함이라”(43:10c);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조금씩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선민사상에 의거하여 답변할 것입니다. 이방나라 애굽에는 재앙을 내리고 대신에 이스라엘의 자손인 자신들에게는 출애굽의 영광과 하나님 백성이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에게는 참으로 좋으신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이방세계를 대표하고 있는 애굽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여호와는 결코 구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진노와 재앙으로 이방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일 따름입니다.

4)      만약 선지자 이사야에게 묻는다면 어떠한 대답이 나타날까요?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을 이사야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종으로 주인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공의의 원칙을 적용하여 만민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성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백성과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성도라고 하면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5)      , 나의 (, , before) 지음을 받은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43:10d);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존재하기 이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후에도 물론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호와가 다른 신을 만든 사례가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이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다고 한다면 여호와 때에는 지음을 받은 신이 있다고 해석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호와가 지음을 받은 신이라고 한다면 누가 여호와를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질문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 구절에서 친절하게도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5)  넷째, 11절입니다; “11. (a) 나는 여호와. (b) 외에 구원자 없느니라”(43:11);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사실을 재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말입니다;

1)      하나,11. 나는 여호와”(43:11a);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는 이기 때문에 시간이나 공간에 억매이지 아니하고 항상 먼저 존재하고 있는 신입니다(3:14). 그러므로 세상에 여호와보다 먼저 존재하거나 여호와를 만들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1:27, 30). 그것은 유일한 창조주가 여호와라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2)      , 외에 구원자 없느니라”(43:11b); 만민과 만물을 창조하신 당사자이시기에 그들을 심판하고 구원할 있는 자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역사에 참여하지 아니한 자가 구원자가 된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것은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창조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창조라고 하는 구원을 베풀어줄 있는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방 신이나 우상에 의하여 구원을 쟁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처음부터 원인무효의 발상이라고 하겠습니다(4:12).

(6)  본문 12-1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라는 사실을 증명할 있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큽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요? 무작정 이스라엘 자손들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만 해주면 되는 것일까요? 답변은 뻔합니다;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구원의 능력은 좋은 참고자료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선민의 자랑거리밖에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까지 창조하시고 구원하신다고 하는 증거를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내용은 이사야가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러한 관점에서 구절을 검토하면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7)  첫째, 12절입니다; “12. (a)내가 알려 주었으며, (b)구원하였으며, (c)보였고, (d)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 (e)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f)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3:12);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서 되살아나고  예루살렘성이 앗수르 군대로부터 구원받을 있었던 것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주 되심에 대하여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르짖음은 히스기야 왕이나 선민들에게 별로 영향력이 없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너무 빨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다시 제멋대로 한세상 자기들 욕심대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39:8). 더구나 이사야의 설명은 이방인들에게는 더욱 효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선민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구원주 되심을 증거해줄 있을까요?   방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주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설명입니다. 내용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2. 내가 알려 주었으며”(43:12a); 이사야는 사람의 힘으로 구원함을 받을 수가 없으며 이방 신이나 우상으로도 구원받을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구원병으로도 예루살렘성이 앗수르의 침략에서 구원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31:1). 그리고 랍사게의 주장과 같이 이방 신들이 앗수르의 군대 앞에 참으로 무기력했기 때문입니다(37:12). 다만 여호와 하나님만이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어 히스기야 왕과 선민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구원해줄 것이며(37:33-35) 훗날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내어주겠다는 것입니다”(9:6-7, 11:1-16).

2)      가운데 역사적으로 이미 예루살렘성의 구원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메시아의 오심과 구원사역이 이사야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예언되어 나갈 것입니다. 이사야가 알려주고 있는(43:12a)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육신입니다; 메시아는 처녀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실 것입니다(7:14). 공생애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사시며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성령의 능력으로 풀어 주실 것입니다(11:1-9). 그렇게 미리 예언으로 알려주시는 뜻은 일이 이루어질 때에 그것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이며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48:6-7).

3)      , 구원하였으며”(43:12b); 메시아가 땅에서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속의 죽으심 맞이하실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자면 먼저 그들의 죄를 사해주는 제사가 필요합니다. 해마다 드리는 제물로는 그들의 죄를 영원히 사해줄 수가 없습니다(7:27). 그러므로 영생의 하나님께서 영원한 속성을 지니고 있는 독생자를 땅에 메시아로 태어나게 하셔서 대속의 제물인 유월절 어린양으로 삼으시는 것입니다(1:29). 훗날 대속의 장소가 바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 어떻게 대속의 제물이 되는가를 이사야가 벌써 700 전에 정확하게 예언해주고 있습니다(52:13-53:12).

4)      , 보였고”(43:12c); 실제로 메시아는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28:1-10). ,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43:12d);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 메시아의 성육신, 공생애, 대속의 죽으심, 무덤 부활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가 아니고는 대속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을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2:31-32). 따라서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구원을 이룰 있는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다섯,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43:12e); 이제 성도들이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자 메시아의 오심과 성취를 세상에 증거하는 것입니다(24:44-48). 여섯,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3:12f); 선지자 이사야는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대언하고 있을 뿐입니다(6:8, 37:4, 10). 말씀을 계시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말씀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는 것입니다;

(8)  둘째, 13절입니다;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43:13); 만민구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위엄으로 스스로 결정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어떤 힘있는 피조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바꿀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8:38-39).

셋째로, “14. 너희의 구속자(대속의 어린양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22:12-14, 1:29),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 19:4-6), 여호와(3:14)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메대와 바사의 군대, 5:30-31)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신바벨론제국을 멸망하게 하고 선민 유대인들에게 출바벨론 해방을 선사할 것임, 25:11-14).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하나님)이요,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 이스라엘의 창조자, 너희의 (주권자인) 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홍해)바다 가운데에 길을(14:21-22), 큰 물(요단 강)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3:13-17),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14:23-31, 애굽 추격군이 일시에 모조리 홍해에 수장되고 만 것임).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주전 15세기에 선민 이스라엘 자손을 세상제국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여호와가 행하신 출애굽사건은 국지적인 작은 일에 불과하다는 것임).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65:17-18,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새 역사는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것임).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만민을 영생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경천동지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 곧 영원한 생명살림의 새로운 역사를 발생하게 할 것이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주전 15세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와 사막에서 40년간 생존하게 한 것처럼 이 세상의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영생을 누리게 할 것임, 11:1-16, 65:17-25, 66:15-24).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8-11, 5:11-14, 21:22-27). 22.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배은망덕한 야곱의 세겜 사건을 말함, 33:16-34:31),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여호와의 구원을 받았지만 앗수르 군대가 물러간 다음 히스기야 왕과 유대백성들이 보이고 있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현세주의 종교생활을 말함, 39:5-8), 23.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십일조생활을 버린 것이 말라기 시대와 같다는 것임, 3:8-12, 27:30-32).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적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한세상 먹이고 입히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10분의 1도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옛날 욥의 신앙보다 못하다는 것임, 1:21-22),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23:56-24:1,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16:24, 12:1-2,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지 아니하고 있으며),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전심으로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속죄일의 제사만 제례의식으로 행하고 있으니 그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임, 16:29-34, 29:13, 15:8). 25. (2:36-42, 이제라도 회개하고서 성도 곧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6.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18:11-12, 사람들의 눈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17:1, 삼상16:7) 의로움을 나타내라. 27. 네 시조가 (여호와의 선지자를 외면하고 그들을 해치는 것으로, 20:10-12, 11:47) 범죄하였고, 너의 교사(바리새인)들이 나를 배반하였나니(20:13-15, 23),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을 욕되게 하며(예루살렘성전을 붕괴하여 불태워버리며, 왕하25:9, 21:6), 야곱이 진멸 당하도록 내어 주며(선민의 족보가 사라지도록 역사를 섭리할 것이며), 이스라엘이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처형한 선민 유대인들을 미워하도록 만들 것임)“(43:14-28);

(1)  본문 13-17절에서 선지지 아사야는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역사를 다시 이루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부디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선지자 요나처럼 이방나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강조하십니다(1:2, 3:1-2, 12:39-41, 16:4). 하지만 선민들에게는 쇠귀에 경읽기입니다. 마침내 선민 유대인들은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세상나라의 압제를 다시 받게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멀지 아니하여 신바벨론에 의하여 망하고 포로생활을 하게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39:6-7, 43:14a). 그러나 본문은 다시 한번 회개의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43:14b). 여기서 출바벨론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와 같은 뜻이 담겨 있는지 지금부터 구절을 살펴보면서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3절입니다; “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이니 손에서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43:13); 여기서 이사야가 태초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1:1)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다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능력으로는 창조주의 일을 저지하거나 방해할 수가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가 맞고 동시에 현실적인 타당성이 충분한 설명입니다.

(3)  둘째, 14절입니다; “14. (a)너희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여호와 말하노라. (b)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43:14); 이사야는 장차 신바벨론에 의하여 조국 유대왕국이 망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39:6-7). 그리고 여기서 다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신바벨론을 망하게 하시고 유다의 백성들을 구출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 14. 너희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여호와 말하노라”(43:14a); 여기서 이사야가 구속자 언급하는 것은 애굽제국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출해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가를 치르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가는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애굽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이 전부 죽임을 당하는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12:29-30). 선민들 생각으로는 그것은 감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대가이며 여호와의 보복으로 있습니다.

2)      하지만 사람을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닙니다(2:5). 슬프고 아픈 것입니다; “11. 하물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12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4:11). 마음을 알고서 거룩한 백성들은 달리 살아가야만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요? 정답이 하나님의 산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5.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 되며 거룩한 백성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5-6).

3)      선택된 민족은 온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나라가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쫓아 일을 행하는 민족이 바로 거룩한 백성입니다. 만약 일을 행하지 아니하면 거룩한 백성이 아니고 타락한 백성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위세를 자랑하면서도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제사장나라의 역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결과 이제는 애굽이 아니라 세상나라 신바벨론의 노예가 되고 것입니다.

4)      ,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43:14b);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이켜서 다시 제사장나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의도이며 역사섭리의 방향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섭리를 통하여 신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구출하실 것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은 본래 갈대아 사람들이 세운 왕조입니다. 그들은 유프라데스 강을 타고서 남하한 아람의 갈래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제국이 망하게 되자 다시 고토(故土) 돌아가고 만다는 예언입니다;

(4)   셋째, 15절입니다; “15. (a)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 (b)이스라엘의 창조자, (c)너희의 이니라”(43:15); 이사야는 짧은 본문이지만 다음 3가지 개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43:15a); ‘여호와 피조물이 어찌할 없는 스스로 존재하는 ’(3:14)라는 의미입니다. 창조주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는 피조물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거룩함입니다(6:3). 거룩하다고 하는 개념은 피조물의 생각과 뜻을 초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5:8-9). 예를 들면, 피조물은 원수를 사랑할 수가 없지만 창조주는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5:44-45). 이유는 원수가 바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창조주가 사랑할 없는 존재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그것은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악한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사탄과 하수인이 되고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6:12). 그들만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얻지 못하고 완전한 멸망으로 들어가고 것입니다(14:12-20, 20:10).

2)      , 이스라엘의 창조자”(43:15b); 야곱을 이스라엘로 만든 것은 타고난 운명을 바꾸어준  것입니다(32:28, 35:10). 그것은 새로운 운명의 창조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나라 애굽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는 것도 새로운 운명의 창조입니다(43:15b). 더구나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 그리고 번영만을 희구하고 있는 선민들의 생각을 바꾸어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일할 있도록 만든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창조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65:17-18).

3)      , 너희의 이니라”(43:15c); 이사야는 다윗왕조의 히스기야의 신앙태도를 보고서 절망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 사신들에게 나라의 보물창고와 무기창고를 전부 보여주고서도 자신이 잘못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39:2-4). 세상적인 자랑이 엄청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겨우 구원을 받았으면 자신의 평소의 부족한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반성해야만 터인데 전혀 아닙니다. 특히 때문에 멀지 아니하여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에게 망하고 왕족들이 적국 황제의 환관이 되는 수치를 당하게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 앞에서도 그는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39:5-7).

4)      히스기야 왕은 그저 자신의 당대에 나라가 태평하고 개인적으로 영화를 계속 누릴 수가 있다고 하니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39:8). 그것이 현세적인 축복만 얻고자 하는 일종의 기복신앙입니다. 영생의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생전에 영화를 누리게 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그때부터 다윗왕조의 왕이 아니라 제사장나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43:15c).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실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5)   넷째, 16-17절입니다; “16.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려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43:16-17); 출바벨론의 역사는 출애굽의 역사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만약 출애굽의 이유와 목적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명심했더라면 신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고 노예와 같은 삶을 다시 살게 되는 비극이 찾아오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하지 못했기에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만민구원의 사역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묘사하고 있는 출애굽의 역사를 조금 살펴봅니다;

1)      하나, 16.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43:16);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 가에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 막고 있으며 뒤에서는 애굽 바로의 군대가 추격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14:9). 진퇴양난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구원의 방법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가르시고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십니다(14:21-22).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을 건너고 있습니다.

2)      ,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려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43:17); 그렇지만 홍해 바다 사이에 길로 애굽의 군대 역시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들을 완전히 따돌려야만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의 군대를 바닷물로 덮어서 수장시키고 맙니다(14:26-28). 그것이 완전한 출애굽의 역사입니다. 역사를 다시 한번 바벨론 땅에서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예언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6)   본문 18-2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한 내용입니다. 출애굽의 역사에 이어서 다시 출바벨론의 역사가 임하게 것입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일부 유대인들이 고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믿음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는 과거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모습의 여호와신앙을 청산할 수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훗날 유대인들을 그들의 땅에 오신 구원자 메시아를 배척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절망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앙의 모습을 되찾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십니다. 세상은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세상입니다. 일에 앞장서는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9:6-7, 11:1-12).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직접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그들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영적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42:1, 2:28-32). 그렇다면 짧은 본문 가운데에는 그러한 내용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요? 이제부터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7)   첫째, 18절입니다; “18. 너희는 이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생각하지 말라”(43:18); 사람은 과거를 기억하고 장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은 장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고 가운데 교훈을 얻어 그것을 가지고 현재를 슬기롭게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애를 쓰며 살아왔는데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하시려고 하시는지 짧게 살펴봅니다;

1)      선민 이스라엘의 오래된 기억은 출애굽과 40 동안의 광야생활입니다. 그것이 율법국가의 시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세상나라 애굽을 강하게 징계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켜버렸습니다. 광야생활 40 동안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으며 적으로부터 승리를 얻게 했습니다(16:4, 17:6, 11). 다음에 약속의 가나안을 차지하게 해주고 다윗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제국의 영광을 세상에 떨치게 했습니다.

2)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세상나라 이방민족에 대해서는 징계하시고 선민을 항상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섭리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시대 예루살렘성을 앗수르의 침략에서 지켜 주신 은혜도 그러합니다(37:34-36). 그와 같은 선민 이스라엘의 기억은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을 보호하고 구원하시지만 이방인들의 세상나라는 항상 징계하시고 멸망시켜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에게는 구원, 이방인에게는 멸망이라고 하는 인위적인 이분법을 성립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생각과 기억을 지워버리라고 명령하십니다(43:18).

3)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보호와 구원의 대상입니다. 다만 선민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다고 한다면 선민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다는 것입니다(19:6). 제사장의 직분은 자신을 먼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하고 다음에는 죄인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주는 일입니다(29:37-46, 16:29-34). 따라서 선민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목적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창조주 앞에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66:20-21, 28:18-20).

(8)   둘째, 19절입니다; “19. (a)보라 내가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이라. (b)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 사막에 내리니”(43:19);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신다면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창조하시는 것일까요? 이사야의 예언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19. 보라 내가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이라”(43:19a); ‘ 지금까지 한번도 선을 보인 적이 없는 일을 말합니다. 창조주가 새로이 창조하는 일이기에 그것은 사탄이나 우상 또는 피조물이 만들어 보일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막상 일이 공개될 때까지는 아무도 눈치챌 수가 없으며 짐작도 수가 없는 천지개벽’(天地開闢, 하늘과 땅이 다시 열리는 변혁) 일입니다. 정도로 무시무시한 일이 이제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들과 사람들이 이제부터 숨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눈여겨보아야만 합니다;

2)      ,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 사막에 내리니”(43:19b); 영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육체를 가진 인간들이 쉽게 이해할 있도록 그들에게 익숙한 세상적인 모습에 비유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념적으로는 추상적이지만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는 구체적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43:19ba); 이사야가 이미 여러 변죽을 울린 적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이사야의 예언을 묵상해보면 충분히 짐작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반드시 내가 광야에 ”(43:19bb);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이 광야입니다. 사람들은 광야가 아니라 농사를 지을 있는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는 성읍에 살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성읍들은 넓은 광야를 사이에 두고서 서로 뚝뚝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선민의 성읍과 이방인의 성읍이 서로 교류가 없이 광야를 사이에 두고서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선민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을 허물겠다고 하시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이미 19 23절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내용과 같습니다.

4)      사막에 내리니”(43:19bc); 사람이 없는 지역이 사막입니다. 사막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사막 가운데 신기루처럼 생겨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신기루와 같은 오아시스를 만들어 아예 사막을 뒤덮어버리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세상창조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사막에 강을 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막과 같이 삭막한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생수의 강물이 터져 나오도록 만들겠다는 뜻입니다(4:14). 일은 인간의 회개 정도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마음속에 흡족하게 내려 주셔야 합니다(2:23).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 주시고 보여주시는 메시아의 오심과 말씀을 실천할 있는 영적인 능력을 공급해주시는 성령님의 내주와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장차 가지의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임하게 것이라는 예언입니다(31:31-34).

(9)   셋째, 20절입니다;20. (a)장차 들짐승 승냥이 타조 나를 존경할 것은, (b)내가 광야에 , 사막에 강들 내어 백성, 내가 택한 에게 마시게 것임이라”(43:20); 들짐승은 이방인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새롭게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실 것입니다.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20. 장차 들짐승 승냥이 타조 나를 존경할 것은”(43:20a); 들짐승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족속들이 이방인들입니다. 선민들이 사람 취급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들 이방인들이 사실 남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삭의 이복 이스마엘이 야인’(野人, 사람)입니다(16:11-12). 야곱의 쌍둥이 에서도 그러합니다(25:27).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장조차 롯의 아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있습니다(19:37-38). 따라서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구원의 대상입니다. 본문은 그들을 구원하는 시대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예언입니다.

2)      , 내가 광야에 , 사막에 강들 내어 백성, 내가 택한 에게 마시게 것임이라”(43:20b); 구절에서 이방인들을 들짐승으로 비유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승냥이 또는 타조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승냥이는 남을 해치고 먹을 것을 얻습니다. 타조는 야생의 능력이 탁월합니다. 그들이 더이상 야성으로 또한 남을 해치면서 살아가지 아니해도 되도록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신다고 하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11:9).

3)      그것은 광야를 비옥한 땅으로, 사람이 없는 사막을 오아시스로 만들어준다고 하는 자연과 환경의 변화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이방인들의 마음 속에 남을 죽이고 해치는 것이 아니고 살리고 돌볼 있는 마음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예언입니다(10:33-37). 그리고 야성으로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갈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있도록 이방인들을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세상의 창조입니다(66:20-21).

(10)      넷째, 21절입니다; “21. (a) 백성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b)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창조주를 찬송할 자들이 누구인가?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1)      하나,21. 백성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43:21a); 백성은 과거의 선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방인 가운데 새로이 선택된 백성들을 전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66:21). 이제는 승냥이나 타조와 같은 삶을 청산하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 함께 돌보며 살고자 하는 자들이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며 함께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본래 일을 담당하도록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내가 나를 위하여 그들을 지었다 말씀하십니다(43:21a).

2)      ,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b); 구원의 목적은 세상에서만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원히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15:2-4).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12-13).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얻을 것입니다(8:17). 그리고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경영하는 청지기의 일을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8:19-23). 한마디로 잃어버린 동산 에덴의 회복을 선지자 이사야가 내다보고서 본문의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1)      본문 22-2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만민구원을 위하여 선택된 제사장나라의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말하고 25-28절에서는 창조주의 전능성이 발휘될 있도록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그에 따라 전통적인 선민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성전의 시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성도와 예루살렘성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2)      첫째, 22절입니다; “22. (a)그러나 야곱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b)이스라엘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43:22);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야곱은 하나님의 의견을 묻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차를 거친 다음에 큰일을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예를 들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2. 그러나 야곱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43:22a); 하나님의 예언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때에 야곱이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리브가는 결혼한지 20년이 되었지만 불임입니다(25:20, 26). 그에 따라 남편 이삭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열심히 기도합니다. 부디 불임을 치료하시고 자식을 달라는 기도입니다(25:21). 이삭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역시 불임 여성이었던 어머니 사라가 90세에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낳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1:30, 21:1-7). 결과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을 임신하게 됩니다.

2)      쌍둥이가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예언이 임합니다; “첫째가 둘째를 섬기게 것이다”(25:23) 것입니다. 그것은 장자상속이 원칙인 고대 족장사회에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림없는 예언입니다. 예언의 실현은 오로지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바꾸어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쌍둥이 에서의 축복을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가로채는 일에 있어서(27:7-14) 하나님께 간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만약 간구했더라면 사기행각이 이루어지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여호와신앙인 어머니 리브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같은 잘못이 그들 개인의 차원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도 그러하다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43:22a).

3)      , 이스라엘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43:22b);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큰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허락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이 전투를 치르게 되는 것과 같이 급박한 경우에 있어서는 준수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약식으로 대충 제사를 드리고 전투에 임하고자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대 사울의 경우입니다(삼상13:5-10); 블레셋과의 전투는 급한데 대제사장 사무엘의 행차가 늦습니다(삼상13:8).

4)      어쩔 없이 사울 왕이 대신 약식으로 제사를 드리고 전투에 임하고자 합니다(삼상13:9-10). 사울 왕의 판단으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차가 심히 괴롭고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근본적으로 전투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17: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에 전투를 맡겨드리는 정식 제사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괴로운 것이 아니고 비현실적인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승리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17:15-16).

(13)      둘째, 23절입니다; “23. (a) 번제의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제물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b)나는 제물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c)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43:23);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지자 이사야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하나, 23. 번제의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제물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43:23a); 아브라함이 하나님 경외자 역사 가운데 우뚝 서게 되는 곳은 모리아 산입니다(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가 이상하지만 순종합니다(22:3).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명령이지만 따르고자 합니다(22:2). 이유에 대해서는 훗날 히브리서에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11:17-19).

2)      막상 칼로 이삭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나타나서 가로 막습니다(22:10-1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 있는 신앙심을 지니고 있는지 그것을 보고자 것이지 실제로 인신제사’(人身祭祀) 원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하나님 경외자 선언하시고(22:12)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게 됩니다(4:16). 그런데 여기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와 같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심을 본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마디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43:23a).

3)      , 나는 제물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43:23b);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창세기는 그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믿음의 열조들에게 가운데 일부라는 사실을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재물을 크게 얻게 되는 장소는 애굽입니다.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사라의 연고로 아브라함에게 많은 가축과 재물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12:16). 그는 재물을 가지고 출애굽을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있습니다(13:3-4, 15:9-10). 또한 메소포타미아 다국적군을 추격하여 대파를 합니다. 많은 전리품을 되찾아서 개선하고 있습니다(14:14-16). 그때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타나서 아브라함에게 승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14:19-20). 아브라함은 그가 얻은 전리품 가운데 십일조를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바치고 있습니다(14:20).

4)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급히 가로막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을 하나님 스스로 마련하십니다. 그곳 수풀 속에 걸려 있는 어린양입니다(22:13). ‘여호와 이레 은혜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준비하신 어린양 영원한 제물이 바로 훗날 그리스도이십니다(1:29). 야곱의 재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라반의 것을 빼앗아 주신 것입니다(30:36-43, 31:9, 42).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때에도 애굽에서 가축과 재물을 얻어서 나옵니다(47:6, 12:35-38). 야곱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가축 가운데서 단지 일부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고 제사 드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제물로 말미암아 사람을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43:23b) 진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5)      , 유향으로 말미암아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43:23c); 기도생활 또는 영적인 신앙생활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렇지가 않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목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100 안팎을 살게 되는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유한한 생을 살면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한다면 허무함을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창조주께서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끝까지 감당하다가 천국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는 기업을 얻고 영생을 누리라고 하십니다(8:1-18). 사실을 깨닫고 있는 성도들은 세상의 물질적인 삶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만민구원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부디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서 실천할 있도록 영적인 능력을 달라고 기도생활을 하게 됩니다(6:12-20). 그와 같은 영적인 삶이 향기로운 유향과 같다고 하겠습니다(43:23c, 5:8).

(14)      셋째, 24절입니다; “24. (a)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b)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c)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43:24); 이사야는 율법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선민들에게 그들의 죄와 악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가슴이 서늘한 대목입니다;

1)      하나,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43:24a); 향기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소에서 향을 피워 연기가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시는 지성소로 흘러 들어가게 하고 있습니다(30:6-8, 36). 마찬가지로 기도생활로 상징되고 있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의 시간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성도들은 영과 육이 강건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추진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세 기복적이며 도구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되면 전혀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무병장수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돈으로 성의표시를 크게 하고자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는데 백성들은 돈으로 시간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돈을 버는데 시간을 모두 할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되고 있는 현대판 여호와신앙의 비극입니다. 원형이 여기 본문에서 이사야의 시대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43:24a).

2)      ,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43:24b); 하나님께 올라갈 있는 것이 가지 있습니다; 향을 태우는 향기가 지성소에 들어갑니다(30:7-8, 16:13). 제물의 기름을 태우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갑니다(3:9-11).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습니다(2:23-25). 의미를 합하여 보면, 기도와 간구 그리고 희생적인 헌신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그런데 이사야가 보기에 선민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그와 같은 희생적이고도 헌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목의 뜻입니다(43:24b).

3)      ,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43:24c); 하나님께서 세상 수많은 백성들 가운데 특정한 백성을 선택한 것은 맡겨야 임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의미는 옛날 아브라함처럼 이방인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며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것입니다(18:22-33, 20:7, 17). 하나님의 뜻은 만민을 구원하고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여 세상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입니다(3:16, 8:15-22) 그러므로 일을 수행하지 아니하거나 방해를 하는 것은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선민이나 성도라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7:21).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지 아니하는 그것입니다”(43:24c).

(15)      넷째, 25절입니다;25. 나는 (창조주의 명예)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43:25); 사람들의 죄악상을 보면 도저히 용서의 대상이 수가 없습니다. 모두 심판의 대상들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자신들의 이익과 번영만을 추구하고 있는 이방인들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나님이 선택한 선민 이스라엘조차 이방인들에게 물이 들어 형편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고 속내는 현세 기복적이고 선민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29:13). 게다가 이방인들의 나라를 모두 멸망시키고 자신들의 종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사람을 차별하고 있는 무서운 선민 사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결단을 내리시고 계십니다. 사람을 잘못 만든 모든 책임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시겠다고 하는 선언입니다(43:25). 사람들의 허물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 속죄하는 절차를 밟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메시아를 대속의 제물로 땅에 보내시는 이유가 됩니다(1:29). 메시아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희생제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도말하고 기억조차 아니할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43:25);

(16)      다섯째, 26절입니다.26. (a)너는 나에게 (무지개와 같이) 기억이 나게 하라. (b)우리가 함께 (메시아의 공로를) 변론하자. (c)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43:26); 성도들은 무엇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요? 자신들이 의롭다고 하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있을까요?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하나,26. 너는 나에게 (무지개와 같이) 기억이 나게 하라”(43:26a); 노아의 홍수가 끝나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가족들이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8:20).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심판과 같은 전면심판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8:21-22). 약속의 증거로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설치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9:11-17); 비가 땅으로 많이 쏟아지게 되면 무지개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무지개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진노의 마음을 거두시고 비를 그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범죄한 인류를 심판하시고자 때에 무엇이 무지개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이끌어낼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물론 십자가만으로는 별로 효력이 없습니다. 핵심은 십자가를 의지하여 범죄한 자신을 부디 용서해달라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이제부터는 범죄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신실하게 살아갈 것이니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2)      , 우리가 함께 (메시아의 공로를) 변론하자”(43:26b); 용서함을 받을 있는지 없는지 변론의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메시아의 대속의 제사가 자신에게 죄사함의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고 하는 것이 유력한 변론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가 않기 때문에 변론은 계속됩니다. 다음에 변론해야만 하는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공로로 용서함을 받은 다음의 자신의 인생입니다.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갔느냐? 아니면 다시 제멋대로 살아갔느냐? 문제가 됩니다. 근거를 말해주고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라야 들어가리라”(7:2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8:11b);

3)      ,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43:26c);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보라는 지적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의롭다고 하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자랑스럽게 만천하에 외치고 있습니다;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8:11-12),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3). 선민사상과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의존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의로움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만족시켰다고 한다면 선민들의 나라가 망하고 그들이 세상의 유민으로 떠돌지 아니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답은 사람들의 자신의 이기적인 판단과 의로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있는 의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느냐?하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그러한 성공적인 사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는 ,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의로움입니다.

(17)      여섯째, 27절입니다; “27. (a) 시조(始祖, 처음 조상) 범죄하였고, (b) 너의 교사들 나를 배반하였나니”(43:27); 선민 이스라엘의 시조와 교사들이 이미 하나님의 밖에 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27. 시조 범죄하였고”(43:27a); 선민들의 처음 조상은 누구일까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그들 믿음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고 있을까요? 그렇지가 못하기에 이사야는 그들도 범죄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시행착오를 많이 거친 다음에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헤브론 막벨라 굴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49:30-33, 11:13-16).

2)      참고로, 그와 같은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속에 있게 하셨고, 27.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5-29);

3)      , 너의 교사들 나를 배반하였나니”(43:27b); 전통적인 유대교는 장로들의 유전을 율법의 세칙으로 삼아 하나님의 계명보다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 범하나이까?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15:1-3). 풀이해보자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율법 선생입니다. 그들이 유대교의 교사들입니다. 그리고 선민들의 장로들이 율법의 세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계명을 배반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점을 벌써 이사야가 29 13-14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18)      일곱째, 28절입니다; “28. (a)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 욕되게 하며, (b)야곱 진멸 당하도록 내어주며, (c)이스라엘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43:28); 선민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이방인들처럼 타락하게 되자 처벌이 엄청납니다. 역사적으로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는지에 관하여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8. 그러므로 내가 성소의 어른들 욕되게 하며”(43:28a); 성소의 어른들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들이 욕을 당한다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주전 586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됩니다(왕하25:1-7). 그리고 후에 바벨론의 군대는 예루살렘을 불사르고 성전까지 태워버리고 맙니다(왕하25:9). 그후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주전 516년에 2성전을 건축하지만 그것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24:2) 주후 70 로마군대의 진격으로 다시 완전 붕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2)      , 야곱 진멸 당하도록 내어주며”(43:28b); 여기서 야곱이 진멸을 당한다고 하는 것은 그의 자손들의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망하게 되면 다음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는 것일까요? 새로운 선민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들은 혈통적인 선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선민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12. 영접하는 (메시아)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1:12-13).

3)      , 이스라엘 비방거리가 되게 하리라”(43:28c);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망하고 나면 백성들이 신바벨론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끌려가게 됩니다. 그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 땅에서 유민으로 떠돌게 됩니다. 훗날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서 2성전을 건축하고 선민의 삶을 영위하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제국에서 생활하게 됩니다(3:6). 그들 유대인들이 훗날 중근동과 유럽 땅에서 그렇게 환영 받고 있지 못합니다. 특히 메시아를 처형한 이후부터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사야가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비방거리가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만약 오늘날에도 어느 민족이나 종교적인 집단이 구태의연하게 선민우월사상에 젖어 있다고 한다면,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비방거리가 되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선지자 이사야의 시대가 지나고 700년이 흐르게 되면 메시아 예수님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사이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망하고 선민들의 피가 가나안 땅을 적시게 됩니다(왕하25:2-7). 그리고 메시아를 배척한 유다 사람들이 40년이 지나지 못하여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정벌되고 맙니다. 당시 예루살렘을 위시한 유대인사회에서 무려 11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러한 피의 역사와 선민들의 희생의 의미를 본문에서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4.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대신 사람들 내어주며, 백성들 생명을 대신하리니”(43:4). 하나님 보시기에 인생이 진실로 보배로운 자를 얻을 수만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언급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선민의 지위와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땅끝까지 있을까요? 누가 현세적인 이익과 축복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영생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하나님나라의 축복만을 바라보면서 인생을 복음전파에 올인’(all in) 수가 있을까요?

그러한 성도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한 자신의 아들을 메시아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3:16-17). 그와 같이 엄청난 희생으로 탄생시킨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새로운 이스라엘로 불리고 있는 성도들입니다(7:4-17, 21:27).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천하보다도 귀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