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메시아의 오심과 여호와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라는 이사야의 예언”(사42: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5. 8. 26. 09:05

제목; “메시아의 오심과 여호와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소망하라는 이사야의 예언”(42:1-25)

설교일; 주후 2026 1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 826일 화요일 작성)

흔히 사도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교리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본문 이사야 제42장은 구약인 39권의 히브리정경에 있어서 일종의 교리서와 같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넓은 의미에서 이웃사랑인 공의의 정신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데(5:43-48, 1:12-13, 3:4, 12:30-31, 6:33-37) 선지자 이사야는 여전히 선민우월사상과 이기적인 정치적 메시아사상을 지니고 있는 동족 유대인들이 선호하고 있는 유대인사회 내에서의 정의구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야는 정의라는 용어를 이방인사회의 구원에 있어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관련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b),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42:3b). 그것은 아직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과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정의의 실현이 다르다는 점을 밝히 드러내고 있지 못한 구약적인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선민만의 구원사상이 만민구원사상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선지자 이사야가 본문 이사야 제42장 첫머리에서부터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시대를 예언하고 있는 구약상의 교리서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선지자 이사야가 새 언약에 따라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 메시아와 그의 제자인 성도들에 대하여 여호와의 종임을 분명히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 실제로 훗날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인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보혜사 성령으로 임하여 내주 역사하십니다(1:29-34, 14:16-20, 1:8, 2:1-4).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구약의 선지자인 이사야가 너무나 잘 증거하고 있기에 그의 선지서를 예수님이 자주 인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4:17-21, 19:46, 22:37).

1)   그와 같은 새 언약의 시대를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또한 자신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을 여호와의 종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같이 맹인이겠느냐?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42:18-20).

2)   한마디로, 구약상의 선민이나 신약상의 성도나 다같이 여호와의 종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들은 여호와의 종이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그 말씀의 진정한 뜻을 정확하게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선민만의 구원에 만족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여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도무지 이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선례를 전혀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사실을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따갑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 예수께서 (이방인 로마사람)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8:10-13),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인의 도성 니느웨에 전파한, 3:1-10)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3)  셋째, 위와 같은 용어사용에 있어서의 혼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 이사야는 훗날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이 온 세상 만민에게 전파되고 또한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에 함께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24:44-45, 66:20-21).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대선지서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본문 이사야 제42장은 구약인 히브리정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천국복음에 대한 교리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본문에서 관련구절을 찾아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2:7)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11:25-29)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9:1-2),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11:5, 7:22). 8. 나는 여호와이니(3:14),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6).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천국에서)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이 세상에, 6:10) 새 일을 알리노라(31:31-34).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미리) 이르노라(48:5)”(42:5-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1. 내가 붙드는 나의 종(41:10,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여호와의 종에게 권능을 부여함, 6:38-40, 9:1-2, 1:8),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3:21-22, 여호와가 성육신한 독생자를 기뻐함, 12:1-2, 그리스도와 그 제자의 대속의 삶을 기뻐함, 16:24), 내가 (창세전부터 예정하여, 6:37, 1:4-9)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진리의 보혜사 성령, 14:16-20)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9:1-2, 12:39) 정의(justice, 이사야가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아직 사회적인 정의와 구별하지 아니하고 있음. 그 이유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표현을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를 베풀리라. 2(여호와가 선택한 복음의 종 메시아와 그 제자들)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11:29, 온유하며, 53:7)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길거리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집이나 들판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칠 것임),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26:51-54, 22:50-51, 떨어진 종 말고의 귀를 치유하여 줌)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 세상정의(사실은 공의를 말함)를 세우기에 이르리니(끝까지 창조주 여호와의 생명살림의 뜻을 온세상에 전파할 것임, 28:18-20), 섬들(먼 곳의 많은 나라들) 그 교훈(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1:3-8, 14-18),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1:9-12),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1:26-28),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2:7)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righteousness)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12:3, 41:10),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31:31-34) 이방의 빛이(9:1-2, 1:4, 9-13)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58:6, 7:22). 8. 나는 여호와이니(3:14) 이는 내 이름이라(3:15).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5-6, 창조주의 영광은 오로지 유일하신 31체 하나님이 공유하고 있으며, 결코  다른 피조물이나 악한 영에게 그 영광을 나누어 준 바가 없음. 그러므로 사탄의 주장은 뻔한 거짓말임, 4:6, 8:44).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창조적인) 새 일(선지자를 통하여 예언으로 미리, 48:5-7)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그 일이 실현되었을 때에 그것이 여호와의 창조행위임을 깨닫게 하고자 사전에, 48:5) 너희에게 이르노라“(42:1-9);

(1)  본문 1-4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와 선지자, 메시아와 세상임금과의 차이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동족인 유대왕국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과연 어떤 분이신지 다시 예언을 통해서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백성들이 알아 듣기 쉽도록 그들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사야가 정성을 다하여 가장 알아듣기 쉽게 선민들에게 예언하고 있는 이유는 장차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메시아를 영접하고 영생의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용이 어떠하며 깊은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부터 구절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절입니다; “1. (a)내가 붙드는 나의 , (b) 마음에 기뻐하는 내가 택한 사람 보라. (c)내가 나의 그에게 주었은즉, (d)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to the Gentiles, KJV)”(42:1); 이사야의 글에서 메시아라는 용어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이사야는 메시아 해당하는 여호와의 ’(42:1) 대하여 다양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마누엘이라고 이름하는 아기”(7:14),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아기”(9:6), “이새의 가계에서 태어나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의 영의 강림으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는 ”(11:1-5), “ ”(52:13), “나의 의로운 ”(53:11)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따라서 이사야가 형용하고 있는 인물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후대의 사람들이 충분히 수가 있습니다(1:41, 4:25). 그렇게 이사야가 동족들에게 장차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메시아에 관하여 다양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이유는 이미 여러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 메시아가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에 오셔서 구원과 심판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선민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깨닫게 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의 속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부디 메시아를 배척하지 말고 그의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구원을 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본문에서는 이사야가 메시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한번 구절을 쪼개어가면서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 해보고자 합니다; 하나, “1. 내가 붙드는 나의 ”(42:1a);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 붙들려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결단으로 자기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무엇이 사실은 주인입니다. 자신은 그것의 종이 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본문에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있는 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인생은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하고 있는 신실한 종이라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사람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3)      , 마음에 기뻐하는 내가 택한 사람 보라”(42:1b);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체 피조물에게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한사람 있습니다. 예를 들면, 70억의 인류 가운데 하나님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가 한사람 있어서 그를 세상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아 자랑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사람과 같은 인생을 살아갔으면 참으로 좋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구절입니다. , 내가 나의 그에게 주었은즉”(42:1c);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에 사람은 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메시아도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다음 항목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4)      ,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he shall bring forth judgment to the Gentiles, KJV)”(42:1d); 구약시대 이방 땅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 기록은 모세오경(12:1-4, 20:7, 23:6, 26:28) 선지서 요나(3:4) 다니엘(4:24-27) 등입니다. 그리고 선민과 이방인 차별을 두지 아니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선지서는 이사야입니다(19:23-25); 그와 같은 의미에서 대선지서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을 가장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는 하나의 교리서라고 수도 있습니다(24:44-45). 본문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관련하여 그가 장차 이방 땅에 공의를 베풀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42:1d);

5)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예언을 속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까지 전부 메시아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메시아는 세상에 대한 심판의 권한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고 있습니다;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5:22), “27.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5:27). 여기서 인자(人子, son of man)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사람의 형편을 체험하시고 그것을 심판에 반영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판 가운데에서도 정상참작을 크게 하여 구원을 베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3:16). 일을 행하시는 분이 여기서 메시아이기에 보통의 선지자와는 뚜렷이 구별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둘째, 2절입니다; 2. (a)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b)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c)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42:2); 메시아와 세상임금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먼저 이사야는 세상임금들이 적들을 섬멸하고 적대세력을 심판하기 위하여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준비할 때에 어떻게 하는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42:2a); 세상임금은 먼저 전국에 방을 붙입니다. 적들의 잘못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징벌하고자 군사를 모집한다는 내용입니다. ,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42:2b); 원정군을 모으고 그들을 사열합니다. 세상임금은 군대를 출전시키기에 앞서서 목소리를 높여 훈시하고 드디어 출전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42:2c); 기치창검을 번쩍이며 대군이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출전합니다. 그것이 전쟁을 치러가는 군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최고권력자가 바로 세상 임금입니다.

(4)  셋째, 3절입니다; “3. (a)상한 갈대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아니하고, (b)진실로 공의를 시행 것이며”(42:3); 세상임금들이 적국을 침입하여 어떠한 행위를 할까요?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으며, 꺼져가는 등불까지 완전히 꺼버릴 ”(42:2a 반대해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뜻은 패색이 짙은 적국에 난입하여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도륙하며 나라를 완전히 멸망시켜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것이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세상임금의 적국심판의 방법입니다.

1)      그렇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메시아의 심판은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42:3b); 이방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창조되어 있는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1:26). 그리고 세상임금이 자신들의 정의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고 메시아는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서 숨쉬는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건설방법은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아닙니다(26:52-54).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공의를 사용하신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2)      7.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백성을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8.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리니, 그들은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and I will be their God, in truth and in righteousness, KJV)”(8:7-8). 또한 하나님나라는 진리의 나라라고 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증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37.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18:37b).

(5)  넷째, 4절입니다; “4. (a)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b)낙담하지 아니하고, (c)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d)섬들(the islands, NIV, the coastlands, NRSV) 교훈 앙망하리라”(42:4); 메시아를 사로잡고 있는 주인은 누구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할 있도록 힘을 공급해주시는 분은 누구일까요? 역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메시아에게 공급해주고 있는 힘에 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      하나,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42:4a); 창조주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의 의미는 영원한 힘과 생명력이 계속 샘솟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힘과 생명력을 메시아가 세상에서 힘입고 있습니다. 따라서 쇠하지 아니하는 능력의 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42:4a). , 낙담하지 아니하고”(42:4b); 사람들이 메시아의 천국복음을 듣기를 좋아할까요? 아닙니다. 그것보다 절실한 문제가 그들에게 가로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각종 질병과 장애로부터 고침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은 메시아가 외세를 물리치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2)      그것은 선민에게는 영광, 이방인들에게는 멸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유대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요구 때문에 메시아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낙담하지 않습니다(42:4b). 이유는 여호와의 종을 강력하게 보호하시고 붙잡아 주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영적인 힘을 계속 공급해주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42:4c); 세상사람들이 승리할까요? 아니면 메시아가 승리할까요?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승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칙 공의의 원칙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제도가 구축됩니다(42:4c). 그것이 가장 쉽게 이해할 있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메시아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피조물의 뜻대로 세상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서 경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도 그와 같은 이치로 발생하고 있습니다(2:32). 부분에 대한 사도 바울의 설명이 다음과 같습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 섬들(the islands, NIV, the coastlands, NRSV) 교훈 앙망하리라”(42:4d); 선민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는 레바논, 시리아, 터어키, 그리고 지중해 북쪽 해안에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중해 남쪽 해안에는 애굽제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4)      일찍이 솔로몬 대왕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니키아 상인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서 지중해와 인도양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무역을 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의 관념 속에는 세상의 열방이 대체로 섬들이거나 연안의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통념에 비추어 이사야가 섬들(the islands, NIV, the coastlands, NRSV) (메시아) 교훈 앙망하리라”(42:4d) 예언하고 있습니다. 뜻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메시아가 전해주고 있는 복음을 받아들여 모두 하나님의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나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의 역사가 결말을 맺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힘있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6)  다음으로 본문 5-9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일과 메시아가 하시는 일의 구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백성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사야는 천지만물과 만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42:5abc). 가운데 하나님의 영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42:5d).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메시아를 불러 백성들에게 보내신다는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42:6). 아울러 이사야는 메시아가 땅에서 어떠한 사역을 행하실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42:7). 끝으로,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시게 되는 일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과 관련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예언대로 이루어진 일은 무엇이며 새로이 창조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7)  첫째, 5절입니다; “5. (a)하늘 창조하여 펴시고, (b) 소산 내시며, (c) 위의 백성에게 호흡 주시며, (d)땅에 행하는 에게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42:5); 창세기 1장에서 천지와 만물 그리고 만민을 창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사야는 본문에서 구절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요약이 어느 정도로 정확한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5. 하늘 창조하여 펴시고”(42:5a);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은 첫날에 빛을 창조하십니다(1:3). 그리고 다음날 보이는 하늘인 궁창(sky) 창조하십니다(1:6-7). 그리고 넷째날에 천체(天體) 창조하십니다(1:14-19). 내용을 이사야는 여기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하늘 창조하여 펴시고”(42:5a). , 소산 내시며”(42:5b); 하나님은 셋째날에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십니다(1:9-10). 그리고 땅에 식물이 자라도록 조치하십니다(1:11-12). 장차 사람과 동물들이 먹고 있는 먹거리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대목을 이사야는 여기서 소산 내시며”(42:5b)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2)      , 위의 백성에게 호흡 주시며”(42:5c); 창세기 2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십니다(2:7).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위의 백성들에게 호흡을 주고 계신다고 본문에서 이사야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의 설명입니다. , 땅에 행하는 에게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42:5d); 이사야는 선민들에게 한가지 내용을 추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종들에게 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행하는 에게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42:5d).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종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고 인생길에 동행하게 하십니다. 일을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종들에게 한말씀을 이제 더하시고자 하십니다. 내용이 무엇일까요? 이사야도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8)  둘째, 6절입니다;  6. (a) 여호와 (의로운 메시아) 불렀은즉, (b)내가 잡아 너를 보호하며, (c)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 이방의 되게 하리니”(42:6);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의 메시아를 불러 세상에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상세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6. 여호와 (의로운 메시아) 불렀은즉”(42:6a); 수많은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주셨지만 그들이 제대로 행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방세계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선지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북조 이스라엘왕국 여로보암2 때에 변방 갈릴리 출신 선지자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3:1-3). 그러나 그가 얼마나 일을 하기 싫어했는지 모릅니다(1:3, 4:1-5). 그래서 이제는 이방세계에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제대로 전하고 보여줄 있는 의의 종을 부르고 계십니다(42:6a). 그가 바로 메시아입니다.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소원을 땅에서 실현해줄 자입니다.

2)      , 내가 잡아 너를 보호하며”(42:6b); 하나님은 자신의 명령 따라 이방세계에 선지자로 나아가는 자를 두텁게 보호하십니다. 그것은 아브라함 때부터 그러합니다(12:1-4). 보호하심이 당연히 메시아에게 함께할 것입니다(42:6b).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증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8:29).

3)      ,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 이방의 되게 하리니”(42:6c); 언약은 본래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나 약속의 아들, 나아가서 선민들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 있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언약입니다. 한마디로, 선민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독점하던 언약의 시대가 끝나고 만민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여기서 이사야가 (메시아) 세워 백성의 언약 이방의 되게 하리니”(42:6c)라는 하나님의 예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9)  셋째, 7절입니다; “7. (a) 눈먼 들의 눈을 밝히며, (b)갇힌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c)흑암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42:7);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맺었던 언약을 메시아가 새롭게 하신다고 이미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42:6c). 주내용은 언약을 이방인에게 확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헤매고 있던 그들에게 어떠한 은혜가 임하게 될까요? 이사야가 메시아의 사역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1)      하나, “7. 눈먼 들의 눈을 밝히며”(42:7a); 영적으로 눈이 자는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사야 시대 선민들이 그러합니다. 하나는 아예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오시면 선민들에게 여호와 말씀의 본래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세계에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전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2)      , 갇힌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42:7b); 출애굽기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세상제국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사건입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셔서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온세상에 전하시면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선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들에게 확장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옥에 갇히고 지배자들에 의하여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던 자들에게 해방이 주어지게 됩니다. 천하의 권세를 지니시고 일을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통하여 수행하시는 것입니다(28:18-20).

3)      , 흑암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42:7c); 여기서 흑암에 앉아 있다고 하는 것은 진리의 빛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방 땅에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감방에 갇힌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창조주 하나님의 광대한 뜻을 아주 이기적으로 좁게 해석하는 자들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렇게 자기 중심, 자기 고집, 자기 이익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처럼 살아갈 있는 깨달음의 기회가 제공될 것입니다.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흑암의 감옥이 부서지고 믿는 자들이 모두 하나님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거듭난 삶이 전개될 것입니다.

(10)    넷째, 8절입니다; “8. (a)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이름이라. (b)나는 영광 다른 자에게, 찬송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2:8);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영광을 어떤 피조물이나 우상과도 나누지 아니하실 것임을 다음과 같이 다시 천명하고 계십니다;

1)      하나,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이름이라”(42:8a); 모세에게 계시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입니다(3:14). 뜻은 피조물이 아니며 초월적인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로부터 여호와는 찬송과 영광을 받을 있습니다. 반면에 우상은 사람들이 만든 신이므로 가상의 존재이며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결코 스스로 존재할 있는 자가 아닙니다. 당연히 찬양과 예배의 대상이 수가 없습니다.

2)      , 나는 영광 다른 자에게, 찬송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42:8b); 그와 같은 분명한 차이를 그만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가려서 모르고 있습니다. 여호와이든지 우상이든지 상관없이 그저 자신의 현세적인 욕심을 이루어 있으면 그것이 자신의 신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존재하고 인간의 속셈을 꿰뚫고 있는 버거운 여호와 하나님보다는(삼상16:7, 4:13) 자신들이 만든 만만한 우상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결과 선민들조차 엉뚱하게 우상과 이방인들의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경계하기 위하여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20:1-17). 대목이 바로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창조주의 영광을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돌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11)    다섯째, 9절입니다; “9. (a)보라 전에 예언한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b)이제 내가 알리노라. 일이 시작되기 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42:9); 전에 예언한 일로서 이미 성취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제 예언을 먼저 주고 새로이 창조하고자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1)      하나, “9. 보라 전에 예언한 이미 이루어졌느니라”(42:9a);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활동하고 있던 히스기야 왕의 시대에 2가지 예언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앗수르의 군대가 물러가는 것입니다(37:34-35). 실제로 천사가 그들을 섬멸하자 맥없이 물러가고 말았습니다(37:36-37). 하나는 히스기야 왕의 죽을 병이 낫고 또한 15 목숨연장을 받게 된다는 예언입니다(38:5). 그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39:40). 그런데 그러한 예언의 특징은 현세적인 복을 받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형통의 복이 성취된 것을 기뻐하면서 히스기야 왕이나 선민들이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2)      , 이제 내가 알리노라. 일이 시작되기 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42:9b);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시고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임재하게 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만민의 구원과 영생의 구원 사역입니다. 선민만의 구원, 그것도 현세적인 구원에 머물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과의 언약을 하나님 본래의 말씀의 취지대로 환원시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는 것이 맞습니다(3:16). 그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들을 구원하여 천국의 자녀로 세우시는 것이 옳습니다(1:12-13).

둘째로,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모든 해양 족속들은), 여호와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감사하는) 새 노래로 노래하며 (대륙의 민족들은)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아라비아 미디안 땅에 더불어 살고 있는)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에돔 땅)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세일)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온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이웃 여러 민족에게 천국복음을) 전할지어다(19:25, 66:20). 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성도들이 복음 들고 나아가는 그 길에 여호와께서 앞장서서 그 길을 편하게 하실 것임, 23:28, 7:20, 28:18-20).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이제는 더이상 기다리지 아니하고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이 세상을 심판할 것임, 65:17-18). 15. 내가 산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그 모든 초목들을 마르게 하며 강들이 섬이 되게 하며 못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여호와의 복음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며 계속 살아가는 자들은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 그 양상은 41:18과는 정반대인 저주임), 16.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7:22, 이방인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영생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임. 그 증거가 성령세례임, 10:44-48), 17. 조각한 우상을 의지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우상숭배자는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됨, 20:3-5, 삼상2:30)“(42:10-17);

(1)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하나님의 말씀과 새로운 역사의 창조(42:10-13), 일에 동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동참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처벌(42:14-17)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이사야는 주전 8세기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가나안 땅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면서 이방세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게 보아 북쪽과 서쪽은 바다이며 동쪽과 남쪽은 대부분이 광야와 사막입니다. 그가 이방세계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장차 선민사회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것임을 백성들에게 예언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전파의 끝은 어디일까요? 이사야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땅끝이란 지중해 바닷길의 끝과 광야와 사막 길의 끝을 말하고 있다고 개념정리를 하고 있습니다(42:10-11).

2)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방세계에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민구원의 대원칙을 전하는 것입니다(42:13).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차별하지 아니하고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공의의 정신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기본취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복된 구원의 소식입니다. 기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계십니다. 모두의 생명을 똑같이 살리고 돌보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원칙을 저버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이기적으로 하나님말씀을 풀이하고 자신들에게만 선민구원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유대인사회에 엄청난 재앙이 발생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42:15, 17).

3)    반면에,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메시아와 같은 마음으로 구원의 소식을 이방세계에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한마디로, 암흑의 세계가 광명하게 변하는 것을 보게 것입니다(42:16). 그리고 땅끝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게 것입니다(42:11). 이사야는 그와 같은 시대를 창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지막 산고(産苦) 치르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2:14). 이사야 자신도 동족들이 모두 회개하고서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역에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지극한 소망이 열매를 맺을 있기를 이사야 역시 산모처럼 헐떡이면서 시대를 잉태하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예언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10절입니다; “10. (a)항해하는 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 섬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 (b)여호와 노래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42:10); 이사야가 서쪽과 북쪽을 향하여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곳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만민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는 시대를 여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의 노래를 전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0. 항해하는 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 섬들, 거기에 사는 사람들”(42:10a); 가나안 서쪽은 지중해입니다. 연안에 수많은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페니키아의 사람들은 지중해를 오가면서 무역하고 있습니다. 북방에는 흑해와 카스피해가 있습니다. 그곳 연안에도 많은 족속들이 살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가 퍼져 나가게 것입니다. 항해자들, 연안의 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에게만 구원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이사야는 한가지 구원의 대상이 있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다 가운데의 만물”(42:10ab) 표현되고 있는 그대로, 땅의 생물들과 자연도 모두 구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6:11-12절에 대한 반대 해석이며 일종의 integrity salvation) . 그것은 3:16절의 취지와 동일한 세상 구원 메시지입니다. , 여호와 노래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42:10b);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서 땅끝에서부터 모든 나라와 백성들 그리고 만물들이 여호와께 노래로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리게 것입니다.

(3)  둘째, 11-12절입니다;11. (a)광야 거기에 있는 성읍들, (아라비아 미디안 인근) 게달 사람 사는 마을들 소리를 높이라. (b)(에돔 ) 셀라의 주민들 노래하며 (세일)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 전할지어다”(42:11-12); 이사야의 시선이 이번에는 동쪽과 남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광야와 사막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곳에, 너머에, 수많은 이방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메시지가 전해질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에 감격하는 찬양이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1)    11. 광야 거기에 있는 성읍들, 게달 사람 사는 마을들 소리를 높이라”(42:11a);  여기서 광야와 거기에 사는 성읍들’(11aa) 가나안 남부에 있는 이방인들의 성읍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아라비아 반도가 나타납니다; 그곳에는 유목민들과 약탈민족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가운데 이사야는 아주 호전적인 족속으로서 게달 사람의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인 게달은 검은 천막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25:13).

2)    게달 족속은 조상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운명에 아주 어울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16:12b). 그런데 그들의 삶이 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 셀라의 주민들 노래하며 (세일)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42:11b); 에돔의 고대수도 셀라의 주민들도 메시아의 복음을 듣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올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자주 멸망의 대상으로 언급이 되고 있던 그들이(34:5-9, 63:1) 구원으로 나아오는 것은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3)    , 12. 여호와께 영광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 전할지어다”(42:12); 바다의 많은 족속과 광야의 많은 족속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만민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힘을 합쳐서 세상 끝까지 가서 모든 남아 있는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찬양을 땅끝까지 퍼지게 만드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4)  셋째, 13절입니다; “13. (a)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b) 대적 크게 치시리로다”(42:13); 이방선교의 길에 누가 앞장서고 있는 것일까요? 선지자일까요?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하나,13.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42:13a); 창조주 하나님 앞에 모두 나아와서 회개하고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전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수천 동안 창조주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만든 편리한 우상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현세적인 소원을 일방적으로 성취하여 준다는 그러한 신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 무척 편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창조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그가 만든 만민과 만물을 몸처럼 사랑하라고 공의의 정신을 강조합니다.

2)      특히 그와 같이 사랑하지 못한 그동안의 잘못을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저항과 반발이 거세고 조직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전도자들이 너무 겁을 먹지 아니해도 좋습니다. 이유는 적대세력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옛날 가나안에서 그러하신 것같이 먼저 쳐부수어 버리시기 때문입니다(42:13a, 23:21-33, 33:2). , 대적 크게 치시리로다”(42:13b);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께서 직접 세상의 적들을 토벌하시는데 어느 악한 영과 피조물이 감히 앞에서 끝까지 저항할 수가 있겠습니까? 크게 덤비면 크게 깨어질 따름입니다(42:13b).

(5)  넷째, 14절입니다;14. (a)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b)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42:14);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는 시대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선민들의 한심한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참고 보셨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을 보고서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시대를 열기 위한 마지막 산고(産苦) 다음과 같이 치르고 있습니다;

1)      하나, 14.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42:14a);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모습의 신앙생활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이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사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구원을 부르짖으며 이방인들을 모두 혼내 달라고 성전에서 히스기야 왕처럼 부르짖고 있습니다(37:14-20). 원수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모두 멸망을 시켜야만 한다는 것입니다(5:43). 원수가 영적으로 사탄과 마귀인데(6:12) 선민들의 개념은 다릅니다;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방인들이라는 것입니다”.

2)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위하여 제사장나라가 되어야 선민들이(19:6) 이방인들을 멸망시켜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할 수가 있을까요? 기도를 오랜 세월 들어오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참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선민의 나라를 내주고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는 참아야만 합니다. ,내가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42:14b); 마침내 메시아를 그들의 사회에 내보내게 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마지막 산고를 치르고 계십니다;

(6)  다섯째, 15절입니다;15. (a)내가 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 (b) 모든 초목들 마르게 하며, (c)들이 되게 하며, 들을 마르게 것이며”(42:15); 시대를 여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있습니다. 선민사상과 현세구원사상을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의 취지를 깨닫기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뜻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메시아를 배척하게 되는 미래가 엿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5. 내가 들과 언덕들을 황폐하게 하며”(42:15a); 가나안 땅에는 산들과 언덕들이 많습니다. 서쪽 지중해 연안지역은 들판이며 비옥합니다. 하지만 동쪽으로 언덕이 나타납니다. 북쪽에는 높은 산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 비스듬히 산맥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농지가 부족하여 산들과 언덕에서 목축하여 겨우 자급자족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려운 형편에 만약 하나님께서 선민들을 치시게 되면 목축을 경영할 목동을 구하기도 힘들게 됩니다. 주민이 격감하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산들과 언덕들이 황폐하게 된다는 뜻입니다(42:15a).

2)      , 모든 초목들 마르게 하며”(42:15b); 전쟁의 발발로 사람들만 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되면 자연재해가 심하게 찾아옵니다. 산천초목이 모두 마르게 됩니다. 가뜩이나 비가 적은 지역에 아주 심한 가뭄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 들이 되게 하며, 들을 마르게 것이며”(42:15c); 끝까지 선민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만민구원사역에 나서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 땅에서 강제로 쫓아내어 세상의 유민으로 떠돌게 하실 것입니다. 아무도 가나안 땅에 수가 없도록 완벽한 가뭄으로 강들과 못의 물을 마르게 것입니다. 그렇게 강제로 떠나게 되기 전에 이기적인 신앙을 버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만민구원사역에 나서라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외침입니다.

(7)  여섯째, 16절입니다;16. (a)내가 맹인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끌며, (b)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 인도하며, (c)암흑 앞에서 광명 되게 하며, (d)굽은 곧게 것이라. (e) 행하여 그들 버리지 아니하리니”(42:16); 반면에, 만약 선민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메시아의 제자들이 된다면 장래가 어떻게 될까요?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 이상의 예언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하나, 16. 내가 맹인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이끌며”(42:16a); 맹인들은 자신의 몸이 느끼고 손과 발이 촉각으로 인지하고 있는 공간에서만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이 선민인 유대인들이며 그러한 교리를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 유대교입니다. 이제 메시아가 오시면 그러한 종교생활을 개혁하고 개방할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들이 옛날 요나처럼 이방 땅의 도시로 보냄을 받게 것입니다(1:1-2, 3:1-2).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42:16a).

2)      ,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 인도하며”(42:16b); 역사적으로 많이 늦었습니다. 진작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 이방 땅에 전해졌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이방도시와 성읍으로 연결하는 지름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의 역사 가운데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의 징검다리가 그러합니다. 예를 들면, “안디옥-à에베소-à빌립보-à고린도-à로마-à(스페인 다시스)”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 암흑 앞에서 광명 되게 하며”(42:16c); 어두움의 세상에 가장 먼저 빛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3).

3)      역사가 이방 땅에 임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암흑의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이 광명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 굽은 곧게 것이라”(42:16d);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고 삐딱하게 자신들의 편의를 위하여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섬겨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굽은 신앙생활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진실로 바로 서게 되는 신앙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섯, 행하여 그들 버리지 아니하리니”(42:16e); 우상문화를 버리고 여호와신앙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보호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언의 말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8)  일곱째, 17절입니다; “17. (a)조각한 우상 의지하며, (b)부어 만든 우상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 (c)물리침 받아 크게 수치 당하리라”(42:17); 만약에 현세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이방 땅에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를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7. 조각한 우상 의지하며”(42:17a);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사람들이 신상을 조각하여 살아 있는 신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우상입니다. 자신이 만든 조각품을 신으로 섬긴다고 하는 것이 사실은 난센스입니다. 더구나 그것을 의지하여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위태로운 일입니다. , 부어 만든 우상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42:17b);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크게 십계명을 어긴 적이 있습니다(20:3-5).

2)      영적인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수십일 동안 하산하지 아니하자 백성들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여호와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있도록 신상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32:1). 대제사장인 아론은 하나님의 십계명을 어기고 백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출애굽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32:4). 광경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모두 멸망시켜버리겠다고 모세에게 내심을 밝히신 바가 있습니다(32:10). 지금도 그때와 같이 행동한다면 똑같은 진노 아래 놓이게 것입니다.

3)      , 물리침 받아 크게 수치 당하리라”(42:17c); 모세의 중보기도로 겨우 전멸을 면했지만 동족 3천명이 도륙 당하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32:28). 그리고 송아지 우상을 부수어 가루를 물과 함께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누어 마셔야만 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32:20). 마찬가지로 그때나 지금이나 기복적이며 이기적인 현세주의 우상문화를 청산하지 못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민족이 수치를 당하고 동족상잔의 아픔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18.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6:9-10, 영적으로 눈뜬 장님이며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선민 유대인임을 지적하고 있음. 여호와의 말씀을 독점하고 선민만의 구원을 교리화하고 있으니 유대교인들이 그러한 질책을 받고 있는 것임) . 19. 맹인이 누구냐? 내 종(선민 출신 유대교지도자를 말함)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여호와의 선지자도 어느 사이에 세속화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임)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여호와를 잘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사랑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으니 제사장과 레위인이 모두 청맹과니와 같다는 것임, 10:31-32)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근시안적이고 멀리 보지 못하는) 맹인이겠느냐? 20. 네가 (여호와의 말씀인 히브리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고 말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율법의 취지를 생각하면서 율법의 각론을 살피지 아니하고 도리어 각론을 세분화하여 오로지 종교행위만 규제하고 있으니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임, 15:2-9, 29:13). 21.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 말미암아(사람이 영생의 구원을 받는 것은 창조주 여호와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지 결코 죄인인 인간이 사람의 눈앞에서 행하는 종교적인 율법준수나 유대교지도자들의 인정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님, 37:35, 1:29, 1:32, 8:1-4)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 22. (여호와신앙을 잊어버리고 율법국가만을 경영한) 이 백성이 (여호와의 눈 밖에 나서) 도둑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되돌려 주라 말할 자가 없도다. 23.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올 일을 삼가 듣겠느냐? 24. 야곱이 탈취를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냐이스라엘을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역사를 섭리하시는)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다윗왕조 유대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39:5-7), 그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2성전 시대에도 제국의 희생양이 되지만, 21:6),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도다(12:39, 23:28-31,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본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지를 못하게 되고 마는구나!)“(42:18-25);

(1)  본문 18-22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째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출애굽기 19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 최초로 시내산에 강림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목격하게 됩니다(19:1-22). 그때부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인 그들을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게 됩니다(19:6). 그렇게 탄생한 선민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중근동에 떨치게 됩니다(삼하8:1-15). 선민의 나라는 지혜의 솔로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밝은 선견자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방세계에 자랑하게 됩니다.

2)      그런데 본문에서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의 자랑에 찬물을 끼얹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종은 소경이 되어버렸으며 선지자들은 귀머거리가 되어버렸고 제사장들도 맹인이 되어버렸으니 나라가 망하지 아니할 도리가 있겠느냐? 것입니다(42:18-22). 그렇다면, 선민들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하나님 경외에서 멀어지게 되고 것일까요? 질문을 생각하면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구절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깊은 의미를 다음과 같이 묵상해봅니다;

(2)  첫째, 18절입니다; “18. (a)너희 듣는 자들 들으라. (b)너희 맹인들 밝히 보라”(42:18); 여호와말씀의 뜻을 알아 듣는 자들과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하나,18. 너희 듣는 자들 들으라”(42:18a); 귀에는 2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소리를 듣는 기능입니다.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능입니다(19:19). 여기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너희 듣는 자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후자의 기능이 상실된 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답답하여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알아 들을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선지자들을 보내어 작업을 수차례 진행시켰습니다.

2)      그러나 성과가 별로입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주겠다는 의미입니다(11:27, 21:37). , 너희 맹인들 밝히 보라”(42:18b); 일반사람들은 피조세계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신앙을 가진 자들은 피조세계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는 눈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영적인 세계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워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시 영적인 눈을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  둘째, 19절입니다; “19. (a)맹인 누구냐? 아니냐? (b)누가 내가 보내는 사자같이 듣는 겠느냐? (c)누가 내게 충성된 같이 맹인이겠느냐? (d)누가 여호와의 같이 맹인이겠느냐?”(42:19); 사람들은 자신들의 여호와신앙에 대해서 자신하고 있습니다. 자신만은 의롭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계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의 종과 사자와 충성하는 자들부터 모두 신앙적으로 귀머거리가 되고 소경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평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1)    하나, 19. 맹인 누구냐? 아니냐?”(42:19a);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들었던 왕이 다윗입니다(삼상16:7, 12-13, 13: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를 얻도록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그는 출전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조카 요압으로 하여금 암몬의 수도를 점령하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삼하11:1). 그때에 그가 실족합니다. 간음죄와 살인죄를 연달아 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윗 대왕은 그것이 십계명을 어기고 있는 심각한 범죄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종이지만 그만 승승장구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어버린 자와 같습니다(42:19a). 얼마 나단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써 전해주자(삼하12:1-9) 비로서 눈에서 꺼풀이 떨어지고 자신의 엄청난 범죄를 깨닫고 있습니다(삼하12:13).

2)    , 누가 내가 보내는 사자같이 듣는 겠느냐?”(42:19b); 역시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사람을 사자로 선택합니다(4:13-16). 모세와 아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동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19:1-3).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하여 산에 올라가고 수십일 동안 하산하지 아니하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있도록 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론은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20:4-5)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서 그만 애굽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여호와라고 소개하고 맙니다(32:2-4).

3)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좋아하면서 금송아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이게 됩니다(32:5-6). 똑같은 사건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역사 가운데 다시 발생합니다. 초대 여로보암1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한 것입니다(왕상12:27-33). 정책을 이스라엘왕국이 망할 때까지 선민의 왕들이 계속 유지합니다. 그리고 남조 유대왕국에서는 이사야의 시대에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저 외적을 물리치고 자신의 수명을 늘려주고 현세적인 구원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39:8). 다윗왕조의 왕인 히스기야가 정도의 신앙에 머물고 있으므로 백성들도 수준 이하입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가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형편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 바로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42:19b).

4)    , 누가 내게 충성된 같이 맹인이겠느냐?”(42:19c); 하나님의 마음에 그토록 들었던 다윗대왕조차 실족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심각한 범죄행위를 하고서도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으므로 마치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만 자신의 충성심과 놀라운 성취에 눈이 멀어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동등하다는 하나님의 공의의 원칙을 있는 눈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누가 여호와의 같이 맹인이겠느냐?”(42:19d); 신정국가인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에 있어서는 가지 종류의 여호와 종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정치적 지도자이며 동시에 종교적인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모두 선민의 우월성과 현세적인 축복에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것으로 백성들을 지도하고 여호와의 영광을 대외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셋째, 20절입니다; “20. (a)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b)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42:2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정말 신앙적으로 보아야 것을 보지 아니하고 들어야 것을 듣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하나, 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42:20a);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많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종교생활 가운데 무엇을 유의해야만 할까요? 선민국가에는 지혜자, 선견자, 선지자, 제사장 뛰어난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으며 그것으로 백성들을 교육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제례의식도 집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수많은 민족 가운데 그들을 선택하시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았는지(19:4-6)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말씀과 율법을 많이 암송하고 제례의식에 밝다고 하더라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2)      예를 들면, 그리스도 예수님을 대접하고 있는 베다니 나사로 집의 풍경과 같습니다;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10:38-42).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부엌에서 바쁩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열심입니다. 혼자서 식사준비에 바쁜 마르다가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마리아를 자신에게 보내어 일손을 돕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뜻밖입니다. 마리아가 좋은 편을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여호와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옷을 정확하게 입을 수가 있습니다. 선민들의 지도자들이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의 나라가 앞으로 걱정입니다.

3)      ,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42:20b); 하나님께서 제사장나라로 선택한 백성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암기력이 뛰어나고 종교심이 깊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예민한 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적으로 자랑거리가 많아지자 그만 실족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한가지 예를 들어 보고자 합니다; 이방인들이 지혜의 대왕으로 소문난 솔로몬을 많이 찾아오자 그가 실족하게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왕상10:1-13, 11:1-13). 자신의 능력으로 잘난 알게 되자 그만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지혜를 주신 하나님, 지식을 많이 섭렵할 있도록 총명함을 주신 하나님, 부귀와 넓은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왕상3:9-15)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신 주인께서 살아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요컨대, 이상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5)   넷째, 21절입니다; “21. (a)여호와께서 그의 말미암아, (b)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 (c)(선민들을)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42:21); 선민들이 내세우고 있는 () 볼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로움을 가지시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거룩하게 만들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 이하입니다. 그럴까요?

1)      하나, 21. 여호와께서 그의 말미암아”(42:21a); 여호와신앙을 가지고 종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지의 의가 서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법정에서 선포되고 있는 정의’(正義, justice)입니다. 하나는 천국의 하나님 법정에서 선포되고 있는 공의’(公義, righteousness)입니다; 정의는 이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와 너와 우리들이 옳다고 판정하는 것이 정의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는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을 몸과 같이 사랑하고 생명을 모두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모든 계명의 완성입니다(12:30-31).

2)      그런데 선민들이 자신들의 정의를 내세우고 종교생활을 율법적으로 영위하고 있습니다. 선민구원과 선민들의 세상적인 영광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이방인까지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현세적인 영광이 아니라 영생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추구하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시는 이유, 나아가서 메시아를 보내시는 이유가 모두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올바르게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3)      , 기쁨으로 교훈을 크게 하며”(42:21b); 흔히 하나님의 견인(堅忍)’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회개하도록 만드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원하는 죄인이기 때문에 천국에서 잔치가 열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이기적인 신앙인들이 정의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을 방해하고 있지만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계속 선지자들을 보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강조하여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이며 선지서의 내용입니다.

4)      , “(선민들을) 존귀하게 하려 하셨으나”(42:21c); 여호와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게 되는 선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일을 행할 때에 그들은 존귀한 하나님의 사자이며 종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민만의 구원을 고집하며 이방인들의 멸망을 계속 원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문젯거리입니다.

(6)   다섯째, 22절입니다; “22. (a) 백성 도둑 맞으며, 탈취 당하며(25:34, 여호와의 장자로 살아가지 못한 것임), (b) 잡히며, 갇히도다. (c)노략 당하되, 구할 없고(14:16, 소돔성의 주민들과 함께 상당히 동화되어 살아간 것임), (d)탈취 당하되, 되돌려주라 말할 없도다(12:17, 20:6-7,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의 선지자로 제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있게 되는 것임)”(42:22); 선민들이 하나님의 기대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영광과 성공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결과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과 영은 나라를 떠나고 있습니다(6:3). 결과 그들에게 재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1)      하나,22. 백성 도둑 맞으며, 탈취 당하며(25:34)”(42:22a); 선민의 나라가 침략당하고 있습니다. 국토가 적에게 유린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재물이 약탈당하며 장정들이 전쟁포로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 잡히며, 갇히도다”(42:22b); 결국에는 선민의 나라가 적의 침입으로 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이 모두 붙잡혀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맙니다. 북조 이스라엘왕국에 이어서 남조 유대왕국마저 같은 운명에 처하게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100여년 후에 닥칠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멸망을 예지하면서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2)      , 노략 당하되, 구할 없고(14:16, 20)”(42:22c); 가지의 사례를 가지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아브라함 때의 일이고, 하나는 히스기야 때의 일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나안 헤브론 땅에 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들이 다국적군을 형성하여 염해 지역 소돔과 고모라 등을 침략합니다(14:1-2). 소돔과 고모라 5도시국가가 맞서지만 패전합니다. 결과 재물을 노략 당하고 장정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가운데 아브라함의 장조카 롯의 가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14:12). 그때 가나안 땅에서는 그들을 구할 있는 세력이 없습니다.

3)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세력을 이끌고 출전하여 기적적인 승리를 하게 됩니다(14:13-16). 대목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18. 살렘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매, 아브람이 얻은 것에서 10분의 1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14:18-20).  

4)      주전 701 히스기야 앗수르 산헤립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침략을 했습니다. 수도인 예루살렘을 제외하고 전국의 주요 성읍들이 적에게 점령되고 맙니다; 적들의 노략이 얼마나 심한 모릅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도 급해서 종주국 애굽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원군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산헤립 황제의 지략 때문에 패전하고 것입니다(37:8-9). 세상적으로 구원의 방법이 사라집니다. 오직 구원주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실제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됩니다(37:34-37). 깨달음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한 일은 너무나 빨리 왕과 백성들이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39:1-8).

5)      , 탈취 당하되, 되돌려주라 말할 없도다(12:17, 20:6-7)”(42:22d); 역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때의 기록을 가지고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다른 나라로 이주한 적이 2 있습니다(12:10, 20:1). 애굽과 블레셋입니다; 그때마다 그는 미인인 아내 사라 때문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뺏아갈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신의 누이라고 속입니다. 결과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후궁으로 끌려갑니다(12:15).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가 잘못을 깨닫고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되돌려줍니다(12:17-20). 또한 블레셋의 그랄 아비멜렉에게 후궁으로 끌려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6)      당장 되돌려주라고 왕을 강압한 것입니다(20:3-7). 말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랄 왕궁 모든 여자의 태를 닫아버리고 있습니다(20:18). 무사히 사라가 아브라함의 품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20:14-16). 그와 같은 하나님의 개입이 선민들의 나라에도 계속 나타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의 때를 지나고 나면 그러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지 아니하고 마치 우상 섬기듯이 그렇게 기복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유대인들의 종교행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너무나 실망하셨기 때문입니다;

(7)   본문 23-2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인 선민들에게 먼저 절규하고 있습니다; “23. 너희 중에 누가 (만민구원에 나서시는 여호와의 )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뒤에 (불응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삼가 듣겠느냐?”. 다음에 이사야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였도다!”(42:24c) 개탄하면서 본문에서 범죄내용의 핵심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42:24de). 그리고 그로 인하여 선민들의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42:24ab, 25a). 그럼에도 불구하고 훗날 나라를 잃어버린 선민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42:25b).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예견하면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목소리를 높여 위와 같이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23).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구절을 검토하면서 의미를 자세하게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8)   첫째, 23절입니다; “23. (a)너희 중에 누가 (만민구원에 나서시는 여호와의 ) 귀를 기울이겠느냐? (b)누가 뒤에 (불응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삼가 듣겠느냐?”(42:23);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누가 나서겠느냐? 질문입니다. 후자는 훗날에 발생하는 , 특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부디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강조법인 질문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3. 너희 중에 누가 (만민구원에 나서시는 여호와의 ) 귀를 기울이겠느냐?”(42:23a); 여기서의 질문은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자가 아직까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는, 그렇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자원하여 경청하고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깨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사야가 질문형식으로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일이 너무나 중차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세움을 받은 때의 경우를 참조하여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이사야를 만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6:8a) 다음과 같이 질문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b). 그때 이사야가 즉시 긍정적으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c). 결과, 이사야가 동족인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전하게 되는 선지자로 세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6:9).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동족인 선민들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민구원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방 땅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선지자를 모집할 때에 부디 귀를 기울여 듣고 자원하십시오(42:23). 그것이 선민사회가 망하지 아니하는 방법입니다(42:25)”.

3)      ,누가 뒤에 (불응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 삼가 듣겠느냐?”(42:23b); 이사야는 대부분의 선민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히스기야 시대의 동족들의 신앙태도가 그러하며 그가 예지하고 있는 메시아의 시대에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부르짖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살림의 역사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진노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이사야는 한사람의 동족이라도 살리고 싶어합니다. 요컨대, 그것이 동족을 사랑하는 선지자의 마음입니다.

(9)   둘째, 24절입니다; “24. (a)야곱 탈취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나? (b)이스라엘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 아니시냐? (c)우리(선민) (여호와)에게 범죄하였도다. (d)그들(선민들) (여호와)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e)그의 교훈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42:24); 이사야는 지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섭리와 그와 같은 역사가 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24. 야곱 탈취 당하게 하신 자가 누구나?”(42:24a); 조상인 야곱의 일생을 먼저 생각해봅니다. 77세의 중늙은이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게 됩니다. 쌍둥이 에서에게 돌아갈 차기 족장의 축복을 가로챈 결과 보복이 두려워서 집에 있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7:41-45). 결과 북부 시리아 하란 나홀의 성으로 찾아가서 외삼촌 라반의 머슴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24:10, 29:1-20). 그때부터 20 동안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에게 억울하게 착취를 당하게 됩니다(31:38-42).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야곱을 20 동안 라반에게 맡겨서 탈취를 당하게 했을까요? 택한 자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도가 훗날 드러나게 됩니다. 요컨대, 야곱을 여호와신앙으로 이방 땅에 우뚝 서는 하나님의 ()족장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35:9-13, 37:14, 17, 48:22).

2)      , 이스라엘 약탈자들에게 넘기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 아니시냐?”(42:24b); 현세적인 축복과 선민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제사장으로 사용하여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만들 수가 있을까요? 또한 선지자로 사용하여 이방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게 있을까요?(12:39)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는 동일합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야곱을 하나님의 대족장 이스라엘로 만드신 하나님의 방법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임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라반과 같은 약탈자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연이어 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16:5, 18:13-17).

3)      , 우리(선민) (여호와)에게 범죄하였도다”(42:24c); 역사 가운데 선민의 영광이 아니라 약소국의 비참함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유를 이사야가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은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마음대로 선민들의 욕심을 쫓아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 그들(선민들) (여호와)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42:24d);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길에는 근본적으로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고 있는 인생길입니다. 선민들의 선택은 후자라고 하는 이사야의 지적입니다. 그것이 선민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5)      다섯, 그의 교훈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42:24e);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수많은 의사결정을 하게 됩니다. 특히 어려운 난관이나 난제를 만났을 때에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방법론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세상적인 경험과 힘을 의지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것인가? 선민들의 선택이 전자였다고 이사야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셋째, 25절입니다; “25. (a)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 전쟁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 (b)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 (c)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도다”(42:25); 잘못 선택하여 욕심껏 살아온 결과 절망적인 미래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눈에는 이미 훤히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미래가 사람들의 뜻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라 섭리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 전쟁 위력을 이스라엘에게 쏟아 부으시매”(42:25a);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할 모르고 있는 동족들입니다. 그저 선민으로서 자신들의 위세를 높이고 세상적인 번영이라는 소원성취나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민과 만물을 돌보고 사랑하며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마음가짐은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선민들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엄청납니다. 재앙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상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사라질 판국입니다.

2)      , 사방에서 불타오르나 깨닫지 못하며”(42:25b);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동족들은 유민이 되어 이방세계를 떠돌게 됩니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환영 받지 못합니다. 선민의 영광이 전혀 드러나지 못하고 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고토로 돌아와서 약속의 땅에서 다시 살고 있는 선민들에게도 위기가 임하게 됩니다(1:1-6, 13:7-29, 27:22-26).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메시아가 사회에 와서 명확하게 보여주지만 그것을 배척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선민의 구원과 영광만을 갈구하고 있는 그들의 말로가 이사야는 가장 걱정입니다. 그래서 부디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도다”(42:25c);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될까요?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 처해지며 불꽃 가운데 몸이 타게 것입니다(25:41-46, 16:23-24). 그러한 위기가 눈앞에 보이고 있는데도 종교적으로 자신의 인간적인 의로움을 내세우고 있으니 그것이 걱정입니다(10:3).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 욥의 기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42:3-10);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동족들의 잘못된 여호와신앙 유대인들의 이기적인 선민사상과 현세주의 신앙태도를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자면,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들 선민만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수호신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이방인들은 그들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결코 구원을 받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자 유대인들에게 항복하고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찾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66:20).

선지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의 계시를 받아(6:1-8) 동족인 다윗왕조 유대왕국의 선민들에게 전달하는 예언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1:1, 2:1, 3:16, 6:9).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는 한마디로, 선민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여호와신앙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봅니다;

(1)   첫째, 현세위주의 기복신앙을 영생구원의 신앙으로 바로잡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목적이 영생의 하나님을 만나 영원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남은 인생 가운데 세상적인 복을 마음껏 받고 한세상 없이 누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본문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그대로 메시아가 하나님의 공의를 이방세계에 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만 아니라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공의로 심판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일을 행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은 메시아에게 함께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불어넣으신다고 하는 설명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본문을 읽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도 크게 각성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와 같은 여호와의 종이라고 한다면, 더구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이방세계 끝까지 전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고 있는 것입니다(28:18-20).

일을 행하고자 결심하고 나설 때에 평생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철저하게 보호하시며 성령께서 생수와 같은 힘을 공급해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은혜를 사모하고 또한 생생하게 체험하시는 인생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