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야곱을 족장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자손을 의로운 종 여수룬으로 만들기 위하여 여호와가 섭리하시는 놀라운 역사”(사44:1-28)
설교일; 주후 2026년 12월 2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5년 9월 1일 월요일 작성)

본문 제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익숙한 표현을 사용하여, “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사44:1)고 여호와로부터 받은 그의 예언을 기록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5장 제26절을 참조하면, 야곱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그와 달리 이스라엘은 얍복 시냇가에서 밤새 야곱이 부디 숙적 에서의 위협으로부터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을 때 새벽녘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전해준 새 이름입니다(창32:28).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의미는 벧엘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곱을 그곳에서 다시 만난 창조주 하나님이 그에게 장차 여호와가 선택한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창35:10-11);
그 대목을 알기 쉽게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창25:26, 장자상속의 고대사회에서 장남으로 태어나는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의미임. 그와 같이 세상적인 불공평함을 견디지 못하여 태생적인 차별을 극복하고자 창조주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의 이름이 야곱임)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창25:29-34, 시장한 형 에서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고자 하는 소위 세상적으로 약은 꾀를 사용하는 야곱임)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창32:28, 천사가 미리 알려준 그대로 새로운 운명이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되는 것임) 그(여호와)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고 번성하라(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의 자손을 번성하게 할 것임, 창12:2).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너는 하나님이 선택하는 이스라엘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임, 출19:4-6)”(창35:10-11).
약간의 설명을 더해보자면 두 이름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야곱이란 이삭의 집에서 쌍둥이 아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차남의 이름이며 숙명적으로 고대 장자상속의 사회에서 장자인 형의 신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달리 이스라엘은 타고난 차남 야곱의 운명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바뀌게 되어 다시 받게 된 이름이며 이 세상을 이긴다는 축복을 그 속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2)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의미는 차기 족장인 쌍둥이 형 에서보다 더욱 큰 성취를 이룩하게 되는 선지자의 이름이며 동시에 여호와가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 자손의 조상이 된다는 것입니다(창25:23, 35:10-11). 그것은 마치 아브람의 이름이 여호와에 의하여 아브라함으로 바뀌고, 그의 아내 사래의 이름이 사라로 바뀌게 된 것과 같습니다(창17:4-6, 15-16).
또한 본문 제1절에서 이사야는 야곱이란 피조물로 태어난 사람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있으며(창18:3) 여호와에 의하여 그 운명이 달라진 이스라엘이란 많은 사람 가운데 선택 받은 선지자 아브라함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창12:1-5, 17:4-7, 출19:4-6).
그런데 본문 제2절에서 갑자기 선지자 이사야가 생소한 이름 ‘여수룬’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2). 여수룬(ישֻׁר֖וּן)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그 의미가 ‘의로운 자’입니다;

여호와에 의하여 선택 받은 자가 이스라엘이며 민족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인데 그들 선민 대신에 어째서 선지자 이사야가 생소하게 ‘여수룬’이라는 이름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마디로, 이사야가 보기에 선민인 히스기야 왕과 유대백성들의 여호와신앙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사39:3-8).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훗날 메소포타미아 패권국 신바벨론의 침입으로 망하게 되는 줄도 모르고서 왕과 귀족들 그리고 백성들이 교만하게도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현세적인 기복신앙에 빠져서 흥청거리고 있습니다(사39:5-8).
그들은 적군이 쳐들어와서 수도 예루살렘이 다시 포위공격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안전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심히 단순하고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다윗왕조의 왕이 성전에 들어가서 구원을 호소하면 히스기야 왕 때처럼 여호와가 천사를 보내어 적군을 쳐부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사37:14-20, 35-38). 그러나 그것은 선민의 착각입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이사야의 뒤를 잇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에서 생생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렘7:8-16).
그러므로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현세적인 복만 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 대신에 새로운 여호와의 의로운 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사52:13-53:12). 그가 바로 여호와가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구원자 메시아입니다(사42:1-9).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입니다. 그 이름이 ‘여수룬’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속자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고 그 뒤를 이어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되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사42:5-9). 그와 관련하여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 3가지를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선지자 예레미야가 ‘새 언약’(렘31:31-34)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있는 그와 같은 새로운 세상의 창조는 오로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도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44:6-8, 21-27).
(2) 둘째, 사람이 만든 우상들이 그러한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예언하거나 도래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사44:9-20). 철로 만든 신상이라고 하더라도 피조물인 장인이 만든 쇳덩어리에 불과하므로 사람의 힘 이상으로 힘을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사44:12). 그리고 나무로 조각하여 만든 신상은 그 재질이 불을 피우는 장작과 같을 뿐입니다(사44:15-17).
(3) 셋째, 제1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가 택한 이스라엘을 말하고 그 다음 제2절에서는 여호와가 택한 의로운 종 여수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수룬에 대해서는 특이하게도 앞선 제1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그를 모태에서부터 지어내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은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제4복음서 제3장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은 심상하지 아니한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율법학자인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다시 모태에 들어가서 태어날 수가 없는데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이라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거듭나는 인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이 성육신하여 대속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요3:3-1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에 대하여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나(창조주 여호와)의 (피조물인) 종 야곱(태생적인 이름임), 내가 (선)택한 이스라엘(출19:4-6, 수많은 족속 가운데 여호와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선택한 민족의 이름임)아 이제 들으라(신6:4, 쉐마임). 2. 너(야곱)를 만들고(사람을 창조하고, 창1:26-27, 2:7)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창3:15, 요3:3-5) 너를 (메시아와 성령을 보내어, 요3:13-17, 14:16-20)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의로운 종 메시아와 그 제자인 성도들, 사42:1-9)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1:10).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창16:13-14, 21:15-19, 24:18-20, 목마른 사람과 동물에게 마실 물을 주고),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43:19, 창2:10, 식물이 자라고 땅이 생명을 키워낼 수 있도록 시냇물을 흐르게 할 것이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사42:5, 민11:25-29, 욜2:28-29, 행2:1-4),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사11:10-13, 66:20-21),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시23:2, 출15:27, 레23:40). 5. 한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태어날 때부터 여호와의 예언을 얻은 이름 야곱, 여호와의 선택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자의 이름 이스라엘이 선민의 정통성을 말하고 있음, 창25:23, 32:28, 35:10-12).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사41:4, 계1:8).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출20:3, 사45:5-7, 행4:12).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사46:21).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출19:16, 사41:10, 눅24:37).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사43:10a, 12b, 눅24:48).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사43:12a) 과연 (구원의) 반석은 없나니(사43:11),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사43:10b)“(사44:1-8);

(1) 본문 제1-5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장차 임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동족들에게 아무쪼록 자기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절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 첫째, 제1절입니다; “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사44:1);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종 야곱’과 ‘내가 택한 이스라엘’을 동시에 거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인 야곱’에게는 ‘그 주인이신 여호와’가 계시고, ‘선택을 받은 민족 이스라엘’에게는 ‘이스라엘 자손을 선택하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종인 너희는 이제 제멋대로 행하지 말고 주인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 받은 민족인 너희들은 이제 너희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이 바야흐로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터져 나오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사44:1).
(3) 둘째, 제2절입니다; “2. (a)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b)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2); 여기서 이사야는 먼저 창조주가 만드신 전체 인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시기에 여호와 하나님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도와주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특히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 지어낸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2a); 참으로 흥미로운 구절입니다. 다음과 같이 생명의 탄생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2. 너를 만들고”(2aa); 창조주 하나님이 ‘너’라고 하는 인간을 만든 것이 먼저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며 영혼의 탄생입니다. ②“너를 모태에서 지어낸”(2ab); 그 생명과 영혼이 육체를 입게 됩니다. 모태에서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모태가 생기기 이전 이른 바 ‘태초’(창1:1)와 관련하여 창세기 제2장에서는,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영과 육이 하나로 합체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2) ③“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2ac); 인생 가운데 사람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신의 소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롬7:21-25). 땅에서 태어난 육신은 땅에서 형통함을 누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영혼은 영생을 누리고자 합니다. 한 몸에 그렇게 겉사람과 속사람의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도와주고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누구일까요?(롬7:18-8:6) 이사야는 명쾌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진정한 도움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사44:1ac 의역).
3) 둘,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사44:2b);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고자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실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의 동족인 유다 백성들이 훗날 그들의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할 것이라는 사실을 또한 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구원에서 배제되고 마는 것일까요? 이사야는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사44:2bc)고 먼저 동족들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도 훗날 ‘올바르고 정직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 대목에서 ‘여수룬’(jeshurun, 올바르고 정직함)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는 이유입니다(2bb).
(4) 셋째, 제3절입니다; “3. (a)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b)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c)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d)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니”(사44:3); 여호와 하나님이 장차 만민을 구원하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사44:3a); 하나님은 광야에서 두 가지의 물을 사람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자들에게는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여 그것을 마시게 해줍니다(출17:6). 또 하나는, 영적으로 목이 마른 자 곧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하여 천국말씀을 생수로 주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도와 주십니다(마5:3, 요4:14, 5:39, 14:26, 16:13).
2) 둘,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사44:3b);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환경을 에덴동산처럼 복구하여 주십니다. 저주를 받아 황폐해진 마른 땅에 장차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흡족하게 주실 것입니다(욜2:23). 그리하면 시내가 흐르고 모든 생명체가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환경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른 비가 메시아이며 늦은 비가 성령님이라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3) 셋,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사44:3c);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구원자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 되심으로 그 대속의 은혜를 믿고 회개하는 죄인은 모두 의인으로 간주가 됩니다. 특히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고자 결심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게 됩니다(욜2:28, 요14:16-20, 행1:8). 이사야는 그 은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있게 될 것임을 여기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넷,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주리니”(사44:3d);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생의 복을 천하만민에게 흘러 보낼 수 있는 통로가 그리스도이며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방인의 땅 가나안에서 행한 그 일이(창12:1-4) 전세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일에 빠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5) 넷째, 제4절입니다;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사44:4);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메시아의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나서고 있는 성도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버드나무가 무성한 것과 같이 영육 간에 강건하고 그 열매가 풍성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의 그 대목 예언을 훗날 이 땅에 오신 메시아가 다음과 같이 더 실감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대단하여 비록 겉보기에는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곧 큰 나무로 자라고 무성하게 되어 많은 새가 깃들 수 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6) 다섯째, 제5절입니다; “5. (a)한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b)또 한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c)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기록에 남을 인생으로 살아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44:5);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속한 레위 인, 기타 이스라엘 자손들, 그리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나서는 자들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상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5. 한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사44:5a); 이사야는 첫째 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 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장자는 모두 여호와의 것입니다(출13:12). 그 이유는 출애굽 당시 애굽의 장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모두 목숨을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장자 대신에 레위 인들을 여호와의 것으로 삼습니다(출13:13, 민3:12-13, 41-51). 그 때문에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것을 여호와에게 속한 레위 인들이 가지게 됩니다(레27:30, 민18:21).
2) 애초 레위 인들이 여호와께 속하게 되는 시초가 출애굽기 제32장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6.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출32:26). 여호와의 종 모세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일을 함께하고자 결단하고 있는 자들이 레위 인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속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성도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3) 둘, “또 한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사44:5b); 둘째 유형은 전형적으로 혈통적인 선민 사상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거듭난 삶보다는 여전히 혈통적인 선민임을 자랑하고 있는 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신의 영적인 결단과 개인적인 신앙고백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보다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혈통적인 그리고 세속적인 소속관계를 더 중시하고 있습니다(요1:12-13참조). 그것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혈통적으로 야곱의 후손이라고 하여 여전히 자신이 선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만민구원사상으로 나아가기 힘든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선민우월주의에 물든 유대인들이 만민의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를 처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셋,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기록에 남을 인생으로 살아가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사44:5c);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만민구원사역에 동참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가 자신의 깨달음을 가지고 제3의 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레위 인들처럼 여호와께 속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살아가고자 결단해야만 합니다. ②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인생의 기록이 필요합니다. ③새로운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혈통적이거나 사람의 뜻으로 얻은 신분이 아닙니다.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에 하나님 자녀로 불리게 되는 것입니다(요1:12-13). 참고로,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러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는 자입니다(막12:30-31).
(7) 본문 제6-8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영원한 왕이며 구원자로서 모든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구절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8) 첫째, 제6절입니다; “6. (a)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b)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c)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 선민 이스라엘의 왕, 그들의 구원자, 그리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들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

1) 하나,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6a); 사람들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제국의 왕이 다윗 대왕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종입니다(삼하3:18, 행13:22). 따라서 진정한 선민의 나라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고대사회에서 왕국의 모든 백성과 재산은 전부 왕의 소유물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왕에게 속한 것입니다. 동일한 이치로 선민들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따라서 영생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백성들을 구원하여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더구나 이 세상에서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탈취해갈 수 있는 존재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애초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라는 명제는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명제는 지극히 영예스럽고 위엄이 있는 것입니다.
2) 둘,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사44:6b);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창조주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을 선민으로 세우고 그 나라의 왕이며 주권자이기 때문에 그 백성을 완전히 탈취해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선민을 지키고 구원해 내실 것이므로 그것을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의문이 생기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방인들의 제국인 바벨론에 의하여 선민의 나라 유대왕국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의 사회에 오시는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이게 됩니다. 그 결과 선민의 사회가 다시금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그와 같은 역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3) 사도 바울이 명쾌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습니다;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11:25-26a),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3-36). 풀이해보자면,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하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순서를 인내로써 기다릴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여 우둔하게도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것이 여호와신앙에서 실족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 세상적인 방법은 속히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자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입니다.
4) 셋,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44:6c); 여호와 하나님은 한마디로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상의 힘과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과 우상의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은 불신앙의 전형입니다. 그것은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우상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유혹을 견디는 자, 또는 잠시 실족하더라도 곧 회개하고 돌아서는 백성만이 다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9) 둘째, 제7절입니다; “7. (a)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b)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사44:7); 창조주께서는 자신이 영원하듯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요3:16). 그 방법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대대로 신실하게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신실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장래가 비극적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하나님께서 가감 없이 진실되게 전해주시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특징이 창조주 하나님의 것임을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사44:7a); 하나님은 속임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감추고 있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너무나 정직한 것이기에 부정직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요3:19-21). 너무나 자명한 진리이기에 세상적으로 바라보면, 멍청하며 미련스러운 것입니다. 예를 들면, 메시아를 보내셔서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 믿는 자를 구원한다는 시나리오가 그러합니다. 이미 이사야 제53장에서 소상하게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설마 그렇게 우직한 대속의 방법을 사용하겠느냐?고 똑똑한 세상사람들과 영악스러운 악한 영들이 판단하고 있습니다.
2) 그 때문에 세상의 지혜가 패배하고 하나님의 미련스러워 보이는 십자가 대속의 방법이 세상을 구원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18, 27, 3:18-21).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으로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언약의 상대방은 대를 이어가고 있지만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은 불변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대대로 그 언약 안에 머물기만 하면 구원을 따 놓은 당상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대대로 선지자를 계속 보내어 동일하게 확인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자명한 진리의 말씀을 외치고 가르치고 설명하여 주신 분이 바로 여호와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소위 히브리어로 ‘헤세드’ 하나님이십니다.
3) 둘,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사44:7b); 이사야는 이제 우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불변의 진리와 자명한 진리를 전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창조주가 아니며 역사를 섭리하는 주권자가 아니기에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또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서 역사적인 사례의 통계수치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럴 듯하게 현재와 미래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통계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에 대한 처방을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확한 것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4)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창조에 결코 만족하시는 창조주가 아니십니다. 역사를 섭리하시면서 계속 새로운 창조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진리가 진리로서 증명되고 또한 구원의 언약이 반드시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그렇게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그리고 장애가 있으면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생명을 구원하십니다. 그것이 피조물이나 우상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두려우신 능력입니다.
(10) 셋째, 제8절입니다; “8. (a)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b)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c)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사44:8); 성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마침내 구원하시는 은총을 베풀고 계십니다. 비록 부족하고 미흡하며 넘어질지라도 다시 믿음의 사람으로 일으켜 세워서 재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견인(堅忍, 오래 참고 인내하심)이며 전능하심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하나,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사44:8a); 세상의 풍파를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이사야가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세상의 환난과 핍박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장중에 보호함을 받고 있는 성도의 영혼을 해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롬8:37-39). 조금 설명을 더해봅니다; 물론 성도들이 이 세상에 속한 유한한 육체와 목숨을 잃어버릴 수는 있습니다(마10:28). 하지만 그 기간은 잠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을 영원히 담을 수 있는 영생하는 부활의 몸을 다시 입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고전15:20-24). 그와 같은 사실을 이미 듣게 하고 알려주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사44:8a);

2) 그 증거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욥19:25-27). 고대 족장시대 동방의 제사장 욥이 이미 대속자의 오심과 그 앞에 부활하여 자신이 서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을 다시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5-7). 메시아가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원히 군림한다는 예언입니다. 그 나라의 백성으로 다시 서는 자들이 부활한 성도들입니다.
4) 둘,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사44:8b); 이사야는 이미 구원자 메시아의 오심과 부활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시작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그 동안 불완전했던 선민의 나라 다윗왕조 유대왕국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신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누가 선택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의 관심은 온통 그 이슈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은 단 하나입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사44:8b). 창조주, 구원주, 영원한 나라의 왕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입니다.
5) 하나님 이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사실을 믿고 온세상에 전파하는 자들이 천국백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미 메시아가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7:14, 9:6-7, 11:1-9). 따라서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증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언급을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6-48).
6) 셋,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사44:8c);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는 기댈 언덕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구원의 반석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반석일까요?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이 세상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고 곤궁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출해주는 정도의 문제라고 한다면 구태여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피조물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돌아가서 영생을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저히 그와 같은 구원을 베풀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창4:26, 21:33, 22:12-14, 요1:29).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사야를 통하여 위와 같이 선언하시는 명제가(사44:8c) 지극히 논리적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둘째로,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신상을 만들어 영계를 지배하는 신으로 섬기고 있으니 그것은 제조자인 사람만큼 어리석고 힘이 없는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출20:1-7, 32:1-10, 십계명을 가르쳐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이고 있으니 여호와의 진노로 멸절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임). 12. 철공(쇳물을 가지고 물건을 제조하는 장인들)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신상)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역시 사람에 불과하므로)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신상의 제조자인 장인이 피로한 것처럼 그가 만든 우상도 힘이 약한 것임) 13. 목공(나무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예술품이나 신상으로)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4. 그는 자기를 위하여(좋은 재질의 나무로 걸작인 예술품이나 신상을 만들고자) (레바논의)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가나안에서 볼 수 있는 cypress, 삼나무임)와 상수리나무(도토리나무를 말함)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장차 우상을 빗고자 미리 그 재료가 되는)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그 나무를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라는 것임, 고전3:6).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나무는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품이나 우상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재질은 땔감에 불과하다는 것임)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참으로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인간들이 어리석고 허망하다는 것임)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창3:6, 사6:9-10, 세상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고 여호와말씀에 대한 영적인 깨달음이 없기에 그러한 우매한 일을 자행한다는 것임).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끝까지 선민들은 선지자들이 전달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 탐욕을 이루고자 하니), 20. 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우상과 더불어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고 마는 것임, 계19:20)“(사44:9-20);

(1) 제8-11절에서 선지자 이사야가 신앙생활의 반석인 3요소 곧 ①하나님, ②말씀, ③믿음에 대하여 멋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장을 살펴보면, 만물의 영장이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육신을 가진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1) 그러한 측면에서 이사야는 그 신앙생활의 반석(盤石)에 대하여 본문 제8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계시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證人)이라. 나 외에 신(神)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盤石)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사44:8). 간략하게 다시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창조의 신(神)으로서 신앙생활의 반석(盤石)이 되고 있습니다.
2) ②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시고 알려주신 그 계시의 말씀이 신앙생활의 반석이 되고 있습니다. ③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그 구원의 말씀이 왔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증인(證人)들의 믿음이 또한 신앙생활의 반석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반석의 3요소는 ①창조주 하나님, ②그 분의 말씀, ③성도의 믿음 등입니다. 이제부터 이사야는 그 3가지 요소를 가지고 우상(偶像, idol)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멋진 설명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9절입니다; “9. (a)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虛妄)하도다. (b)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無益)한 것이거늘, (c)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44:9); 히브리서 저자는 소위 ‘믿음의 장’으로 불리는 제11장을 시작하면서 믿음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 substance, KJV)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證據, evidence, KJV)니”(히11:1). 그 믿음의 정의를 참조하여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虛妄)하도다”(사44:9a); 믿음이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은 그 소망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창조주가 실존하시며 실제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사람이 우상을 만들면서 자신의 소원을 빌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 결과가 허망(虛妄, 헛된 바램)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이 창조주가 아니며 그 열매를 얻을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상 자체가 사람이 상상하여 만들어 놓은 신적인 모습에 불과한 것인데 어떻게 그 ‘허구적인 허상’(an imaginary ghost)이 실상인 창조주를 대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2) 둘,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無益)한 것이거늘”(사44:9b);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하나님이 확실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생의 목적과 그 종착역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또 그 인생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출13:20-22).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켜줄 것 같은 만만한 신을 하나 만들어서 대신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출20:4-5). 따라서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상을 섬기는 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생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영생의 구원도 얻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우상을 믿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인간들은 진실로 유익함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셋,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44:9c);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 행하실 일들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사전에 계시해 주십니다(사48:5-6). 그 말씀 그대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 구원역사의 증인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에 대하여 전혀 알지를 못하고 더구나 만민구원사역에 대해서는 소경과 같습니다. 그렇게 무지하여 제 욕심대로 무식하게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부끄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맙니다(사44:9c).
(3) 둘째, 제10절입니다; “10. 신상(神像)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사44:10); 이사야는 창조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만들고 있는 신상과 우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금속으로 신상을 만드는 방법이 둘입니다; 하나는, 주로 주물을 부어서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틀을 사용하여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와 달리 정성을 들여 하나씩 금속에 조각하고 새겨서 만드는 신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더 비싼 물건입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정성을 들이든지 간에 사람이 만든 우상은 효험이 없으며 구원을 베풀 수가 없는 허상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4) 셋째, 제11절입니다; “11. (a)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 (b)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44:11); 여호와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시기에 앞서 모세를 통하여 먼저 그 헌법에 해당하는 십계명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전문을 참조하면 처음 4개의 계명은 유일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제대로 섬기라는 것입니다(출20:3-11). 특히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므로 그 어떠한 피조물의 형상이나 모습으로 조각하거나 만들어서 섬겨서는 결코 아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출20:4-5). 그런데 그 계명을 어기고 있는 자들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1) 하나, “11. 보라 그와 같은 무리들이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대장장이들은 사람일 뿐이라”(사44:11a);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 있는 사이에 시내 광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 아론에게 부탁하여 애굽에서 본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상으로 만들어 섬기자고 말합니다(출32:1). 십계명의 뜻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아론이 그만 계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출애굽의 신 여호와’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한 것입니다(출32:4).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 3천명이 죽임을 당하고 우상을 갈아서 그 가루를 백성들이 시냇물과 함께 마시게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출32:20, 28). 역사적으로, 그와 같이 행하는 무리들은 동일하게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사44:11a). 대장장이들이 만든 우상을 신이라고 섬긴다면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둘, “그들이 다 모여 서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사44:11b);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만민구원의 메시아를 믿는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나갈 것임을 예지하고 있습니다(사11:1-12). 그렇게 여호와신앙이 전파되는 곳에는 사람이 만든 신상과 우상을 믿는 자들이 끝까지 저항할 것입니다(계19:19, 20:8). 만민구원보다는 자기들만 구원을 얻는 것이 더 좋다고 하는 이기적인 신앙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부활과 영생보다는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소원성취하며 무병장수를 누리는 것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결국은 크게 수치를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사44:11b). 그 이유는 피조물들이 교만하게도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했기 때문입니다(사14:13-15).
(5) 본문 제12-17절에서는 이사야가 우상을 만드는 사람의 약점과 그 소재의 약점을 가지고 우상문화의 허망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상문화의 허망함을 지적하고 있는 이사야의 설명이 다음과 같이 명쾌합니다; ①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사44:12, 17). ②우상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고 있는 나무들이 본래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사44:15-16). ③사람이 그러한 소재로 만든 우상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사44:12-15). 과연 그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6) 첫째, 제12절입니다; “12. (a)철공(鐵工, steel worker)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b)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c)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사44:12); 이사야가 옛날 대장간이나 철물공장에서 철공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장간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대장장이의 약점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1) 하나, “12. 철공(鐵工, steel worker)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사44:12a); 대장간에서 일하는 철공은 주로 철로써 연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2장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 본업을 땅의 경작으로 명하시고 있습니다(창2:15). 그러므로 대장간에서는 병장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녹여서 농기구로 만드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사2:4, 마26:52).
2) 둘,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사44:12b); 옛날 대장간에서 작업하고 있는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철을 녹여서 연장을 만들자면 먼저 고온의 화로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숯불을 사용하고 입구에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화로에서 달구어진 쇠를 끄집어내어 대장장이가 그 힘센 팔로 망치질을 합니다. 쇠를 집게로 집어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질하면서 모양을 잡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장을 만드는 작업 방법입니다.
3) 셋,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사44:12c); 대장장이가 망치질하면서 주로 연장을 만들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우상을 제조합니다. 그런데 우상을 만들고 있는 철공에게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제때 식사하지 않으면 기운이 없어서 우상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물도 마셔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약점을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간이 만든 것이 우상입니다. 만들어진 존재는 만든 자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상이 얼마나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겠습니까? 그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소원을 빌고 있는 자들은 또 얼마나 목이 타고 배가 고프겠습니까? 그에 따라 사람들은 영원히 배가 고프지 아니하며 목이 마르지 아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요6:53-58) 구하고 있습니다(요4:13-15).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우상으로부터 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바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우상을 만드는 자나 그것을 섬기는 자는 다 허망하고 무익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사44:9-11) 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7) 둘째, 제13절입니다; “13. (a)목공(木工, wood worker)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b)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사44:13); 이사야는 목공이 평소 작업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상을 만드는 과정을 또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3. 목공(木工, wood worker)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사44:13a); 목수가 작업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나무에 대패질을 하여 깔끔하고 편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치수를 잽니다. 그 다음에는 연필이나 붓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정확을 기하기 위해서는 때로 곡선자를 사용합니다. 그 다음에는 밑그림 그대로 잘라내기 위하여 끌과 망치를 사용합니다. 훗날에는 톱을 사용하게 됩니다.
2) 둘,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사44:13b); 이사야는 고대시대 목공예 가운데 우상을 만드는 경우가 많음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미의 여신 아세라 목상이 대표적입니다. 지역에 따라 아스다롯이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훗날 비너스가 됩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조각하여 가나안에서는 주신인 바알의 배우자로 삼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그 목상을 집에 모셔두고 집안의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8) 셋째, 제14절입니다; “14. (a)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Lebanese cedar나무)을 베며, 디르사 나무(삼나무, ‘표준새번역’, 동양계cedar나무)와 상수리 나무(oak tree, 도토리나무)를 취하며, (b)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c)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사44:14); 선지자 이사야는 아세라 목상 등 우상을 만드는 소재가 무엇인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4.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Lebanese cedar나무)을 베며, 디르사 나무(삼나무, ‘표준새번역’, 동양계cedar나무)와 상수리 나무(oak tree, 도토리나무)를 취하며”(사44:14a); 아세라 목상과 같은 우상을 만드는 나무는 재질이 좋은 것입니다. 첫째가는 소재가 레바논의 백향목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과 비슷한 삼나무인데 ‘디르사’ 나무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흔하지만 단단한 나무인 상수리 나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둘,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사44:14b); 그러한 나무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재질의 나무를 구해서 사용합니다. 따라서 평소 우상을 만드는 목공이 숲을 찾아 다니면서 좋은 나무를 선택해 둡니다. 셋,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사44:14c); 아세라 목상과 같은 경우에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평가되고 또한 작은 것이라도 부자들이 서로 소장하고자 합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습니다. 따라서 아예 좋은 재질의 나무를 심어서 산림자원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키우기도 합니다.
(9) 넷째, 제15절입니다; “15. (a)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b)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c)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사44:15); 이사야는 나무의 용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사44:15a); 본래 나무는 땔감으로 사용합니다. 추위에 떨고 있던 고대 인류가 나무로 불을 피워서 추위를 견딥니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서 맹수로부터의 위험을 사전에 예방한 것입니다;

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사44:15b); 유목민들이 정착식 농업을 경영하게 되면서 실내에서 많이 생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닥불이 아니라 거주하는 방에 군불을 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엌과 화덕에서는 떡을 구워 냅니다.
2) 셋,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사44:15c); 그렇게 땔감으로 사용하던 나무가 신전을 짓거나 신상을 만드는데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사람이 목공예로 만들어낸 그 우상에게 절을 하고 소원을 빌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문명이 발달하고 있지만 사람은 영적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민의 경우에도 창조주를 섬기는 차원 높은 여호와신앙에서부터 타락하고 있습니다. 점점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을 선호하면서 아예 현세 기복적이고 편리한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도구주의적인 실용주의가 영적인 차원에까지 스며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 다섯째, 제16절입니다; “16. (a)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b)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 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c)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사44:16); 이사야는 땔감으로 사용하는 나무를 더욱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경우를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사44:16a); 여전히 땔감의 수요가 큽니다. 그래서 절반의 나무가 난방용 땔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둘,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 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사44:16b); 절반의 절반 곧 전체 나무의 25% 정도가 취사용과 목욕탕 물을 데우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내용을 이사야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본래 산업이 목축업이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사44:16c); 그렇게 나무는 유용한 것입니다. 따뜻한 열과 밝은 빛을 내어주고 있는 고마운 소재가 나무입니다.
(11) 여섯째, 제17절입니다; “17. (a)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b)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사44:17); 이사야는 아까운 목재를 실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사44:17a); 좋은 목재의 4분의 1 정도는 거대한 신상이나 아름다운 우상을 만드는 데 소용되고 있다고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수요입니다. 아름다운 여신을 나무로 조각한 것은 신앙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고대사회에서는 귀하고 아름다운 예술품입니다. 서로 소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공들은 최고의 목각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 도다”(사44:17b);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나무로 조각하여 그것을 예배와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좋은 목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습니다(출20:4-5). 하나님 백성에서 끊어져 나갈 것입니다. 창조주의 말씀과 영적인 진리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머리가 없는 선민들조차 이방신상과 우상을 모셔놓고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왕상11:1-9). 그것은 한마디로,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를 보고 물고기를 달라고 하는 것, 그만큼 어처구니가 없이 번지수가 다름을 말함)의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것은 허망하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종교 행위입니다(사44:9).
(12) 본문 제18-20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선민들이 그만 우상문화에 깊숙이 빠져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차이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에게 구해야 할 것들을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구하고 있으니 기가 찰 일입니다. 어째서 그토록 영적으로 그리고 지성적으로 우매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요? 이제부터 각 구절을 검토하면서 다음과 같이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13) 첫째, 제18절입니다; “18. (a)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b)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사44:18); 창조주와 피조물인 우상과의 차이를 왜 분별하지 못할까요? 무엇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과 같이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사44:18a); 선민의 역사를 살펴보면, 주전 930년경 이스라엘제국이 둘로 갈라집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대왕의 치하에서 엄청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북쪽의 이스라엘 10지파가 후계 왕 르호보암이 그 정책을 계승하자 그만 다윗왕조를 버리고 독립하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분리되었지만 종교적으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절기가 되면 이스라엘왕국의 백성들이 다윗왕조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왕국에서는 초대 왕 여로보암1세 때부터 남하하는 백성의 행렬을 막기 위하여 비상수단을 강구하여 실시합니다. 그것이 금송아지 우상 둘을 만들어 단과 벧엘에 두고서 여호와로 부르면서 섬기도록 만든 것입니다;

2) 왕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사마리아의 이스라엘왕국은 외세 앗수르의 침입으로 주전 722년에 멸망을 당하고 그 백성이 앗수르 변방으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우상숭배정책이 훗날 예루살렘과 유대왕국에도 므낫세 시대에 크게 성행하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다윗왕조마저 여호와의 눈 밖에 나게 되고 훗날 신바벨론 갈대아군대의 침입으로 멸망당하고 마는 것입니다(왕하21:9-15). 십계명을 살펴보더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결코 피조물의 형상으로 자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출20:3-11). 당연히 영이신 하나님을 그렇게 물질적인 관념으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치적인 욕심과 물질적인 탐욕이 그들의 영적인 눈을 가려버릴 때에 비극이 발생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사람들이 만들어 섬기고 있는 우상과의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사44:18a).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비극이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처벌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3) 둘,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사44:18b); 물질적인 탐욕과 쉽게 이루고자 하는 욕심에 이끌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창조주가 제시하고 있는 신앙상의 절차 그리고 말씀의 뜻을 분별하고 청종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이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적인 소원성취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존재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힘들게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두 번 어기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립니다. 드디어 악한 세력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그 마음은 어두워지고 영적인 분별력은 제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14) 둘째, 제19절입니다; “19. (a)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b)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c)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d)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사44:19); 이사야가 하나님과 우상과의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안타깝게도 다음과 같이 그 차이를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다;
1) 하나, “19.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사44:19a); 이사야는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게 되면 생각과 지식과 총명 등 3가지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밀하게 분절하여 3가지 사항을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2) ①“19. 마음에 생각도 없고”(19aa)라는 대목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좋은 생각을 주신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인데 그것을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 또는 그리스도의 아가페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이웃사랑을 실천할 때에 여호와의 청지기인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막12:30-31). 그런데 우상을 섬기게 되면 자신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피조물을 돌보고 사랑하는 그 생각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3) ②“지식도 없고”(19ab);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창조주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요14:26, 16:13, 17:8).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를 더 소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소원을 세상적으로 쉽게 이루어 줄 수 있는 지식을 찾기에 열심입니다. 그렇게 성공신화에 목말라 성장의 노하우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어떻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겠습니까?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사야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드러내는 메시아적인 지식이 이 땅에 넘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사11:9).
4) ③“총명도 없으므로”(19ac); 우상문화가 유대사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거짓선지자들이 백성들을 묘한 말로써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뜻과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을 구별할 수 있는 총명이 절실합니다. 그렇게 절실한 그 총명이 유대사회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이사야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5) 둘,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사44:19b); 생명을 살리는 생각,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총명 등 그 어느 것도 사람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상이며 거짓말하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남을 해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생각, 세상적으로 소원성취할 수 있는 지식, 성공의 길을 포착하는 총명함 등을 추구하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 모두가 처벌의 대상이며 영원한 불 못 속에 던져질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은 영적인 능력이 없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고 있는 나무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불태우고 취사용 연료로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사44:19b 의역).
6) 셋,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사44:19c); 우상은 나무조각일 뿐입니다. 그것에 영적인 관념을 불어넣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서 섬긴다고 한다면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심각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출20:3-11). 더구나 하나님의 세상창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제1장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허용했을 뿐입니다(창1:26-27).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주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령해 보이는 나무나 큰 바위 그리고 천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는 영적인 능력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2장에서는 창조주가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사람에게만 불어넣어 주십니다(창2:7). 따라서 사람만이 창조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람들이 땅을 경작하며(창2:15)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경영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창1:26-28).
7) 넷,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사44:19d);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어 있는 유일한 존재인 사람들은 다른 피조물보다 더 중요한 사명자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른 피조물들을 올바르게 다스리고 돌보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청지기인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과 사명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아름다운 우상을 신이라고 여기고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가 안타깝게 동족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이방 신이나 우상 따위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잘못된 처사입니다”(사44:19d 의역).
(15) 셋째, 제20절입니다; “20. (a)그는 재를 먹고, (b)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 (c)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d)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사44:20); 우상문화에 빠져든 자들이 겪게 되는 4가지 참상에 대하여 이사야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참상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1) 하나, “20. 그는 재를 먹고”(사44:20a); 우상을 계속 섬기게 되면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우상이 불타고 그 재를 백성들이 마시게 되는 참혹한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례가 있는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라고 잘못 섬겼을 때에 그러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감히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거룩한 창조주 하나님을 피조물인 송아지 형상으로 만들어 섬긴 것입니다(출20:4-5). 영생의 하나님을 유한한 피조물로 대체하고 있는 영적인 모독 행위입니다. 그래서 그 우상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그 재를 백성들이 시냇물과 함께 나누어 마시도록 처벌하고 만 것입니다(출32:20);

2) 둘, “허탄(虛誕, 거짓되고 신뢰의 대상이 아님)한 마음에 미혹되어”(사44:20b);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요8:44). 거짓말로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며 사람들을 속입니다. 결코 신뢰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마귀의 거짓말을 믿고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창3:4-6). 자신의 탐욕을 이루고자 마귀의 말을 따르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그 마음을 이사야는 여기서 ‘허탄한 마음’(사44:20b)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부패한 마음’(렘17:9)입니다.
3) 셋,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사44:20c); 창조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창2:7). 그때부터 인간이 유일하게 피조물 가운데 영혼을 가진 육체의 소유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은 더이상 육체에 머물지 못하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야만 합니다(전3:21). 무덤에서 깨어난 영혼이 부활의 몸을 입고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 어떠한 미래가 전개될까요?(계20:6, 12-15)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5:22),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스스로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도 그러합니다. 오로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권한을 대행하는 자도 우상이 아니고 메시아인 것입니다.
4) 넷,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사44:20d); 100년 안팎의 인생을 사는 동안에 사람이 끝까지 그 오른 손에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일까요? 아니면 영혼구원이 전혀 불가능한 썩은 새끼줄에 불과한 것일까요? 이사야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것은 거짓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사44:20d). 그런데 우상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거짓선지자들이 주장했을 때에 그 말을 백성들이 쉽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우상을 섬기는 방법은 쉽고 재미가 있는데 비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은 귀찮고 손해볼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고 나면 우상이야 말로 세상적으로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만 같습니다.
5) 한마디로, 적게 투자했는데 큰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충동질하고 또한 합리화해주고 있으니 그 꾀임에 넘어가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거짓선지자에게 속았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가 있을까요? 이사야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사44:20d). 그 이유는 창세기 제3장에서부터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자 우상을 섬기고 거짓선지자의 말을 청종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그 책임을 피할 수가 있겠습니까? 눈 밝으신 하나님 앞에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변명거리에 불과합니다”(창3:11-19).
셋째로, “21. 야곱아 이스라엘아(1절),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야곱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그 운명을 여호와의 족장으로 바꾸어 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임, 창25:23-26, 35:10-12)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벧엘의 하나님과 대속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임, 창28:12-22, 요3:13-17).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하게 하여 광야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인류 최초의 신정국가를 만들고 아브라함처럼 이방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창조주 여호와이심, 출19:4-6)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욥38:3-8), 25.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 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여호와의 지혜보다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사6:9-10, 롬1:20-25), 26.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선지자들의 예언 그대로 메시아와 하나님이 영이 오시면 새 언약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창조주 하나님이 이기적이며 현세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있는 이 세상을 심판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새 예루살렘을 강림하게 한다는 것임, 사65:17-18), 27. 깊음(음부의 권세)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홍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세상의 노예로 다시 끌고 가려는 바로의 추격군을 섬멸한 것처럼 성도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로 끌고 가려는 악한 영들을 심판하고 마는 것임, 출14:23-31, 롬8:1-2), 28. (선민을 노예로 부리고 있는 세상제국 신바벨론을 멸망하고자 동원한 아리안 족속의 왕)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바벨론을 정복하고 선민들을 해방하여 주는 자가 고레스임),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고레스2세가 칙령을 내려서 유대인을 고토로 돌려보내어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하게 할 것임, 스1:1-4) 하는 자니라!(예언을 먼저 주고 성취가 되도록 역사를 그대로 섭리하시는 진리의 하나님이심, 사48:5-7, 롬11:36)“(사21-28);
(1) 본문 제21-23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고 야곱을 구속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용어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용어만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다음 3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야곱이 하나님의 대(大)족장으로 그 운명이 달라졌다는 의미, ②선민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의미, ③그리스도를 영접한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의미 등입니다. 그와 같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용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이사야가 전해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예언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각 구절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그 깊은 의미를 도출해보고자 합니다;
(2) 첫째, 제21절입니다; “21. (a)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b)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c)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 야곱이 개인이라면 이스라엘은 민족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세상적인 꾀를 따르고 있는 자라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겠다고 작심한 자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 구절의 깊은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사44:21a); 야곱 곧 세상적인 꾀를 따라서 살고 있던 자라고 하더라도(창25:31-34, 27:11-19) 여호와 하나님의 종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대족장으로(창32:28, 35:10, 47:7, 10, 48:22) 살아가는 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아가서 선민 이스라엘(출19:5-6)이나 새로운 이스라엘(마28:18-20, 눅24:445-49, 행1:8)이나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사44:21a).
2) 둘,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사44:21b); 야곱이라는 이름의 사람 곧 개인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창1:26-27, 2:8). 세상사람 야곱을 여호와의 사람 이스라엘로 그 운명을 바꾸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창35:10).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 앞에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출19:5-6). 따라서 그 모두가 개인이 되었든지 민족이 되었든지 전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며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사44:21b).
3) 셋,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c); 그런데 평생을 야곱으로 살아가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맙니다. 세상적인 꾀와 지혜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면 하나님의 눈 밖에 나고 만다는 의미입니다(창25:31-34). 그러면 영생에서 멀어지고 맙니다. 반면에, 창조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서 살려달라고 진심으로 매달리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창32:28-30). 그렇게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시며(창35:7-13) 그에게 사명완수의 기회를 부여해주시는 것입니다(사44:21c).
(3) 둘째, 제22절입니다; “22. (a)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b)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c)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 이사야는 죄와 허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구속함을 받고 있지만 그 구속의 방법이 다음과 같이 다릅니다;

1) 하나, “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사44:22a); 빽빽한 구름은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진면목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볼 수 없도록 가리고 있는 수단입니다(출19:16, 18). 만약 백성들이 빽빽한 구름이라는 보호막이 없이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노출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출33:20). 그렇게 사람들의 허물을 가려주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구원자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입니다. 그리고 허물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어기고 있는 잘못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것보다 더 낫다고 우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따르지 아니했던 그 허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 “네 죄를 안개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사44:22b); 허물과 달리 죄는 정말 가리움을 받거나 용서함을 받기 힘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주제에 감히 스스로 창조주가 되고자 반역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죄인은 영벌(永罰, 영원한 형벌)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요5:29, 계20:15). 그런데 만약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칭의(稱義, to justify)를 얻게 됩니다. 그 결과 용서함을 받아 그 죄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사44:22b, 요1:12-13).
3) 셋,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c); 구속(救贖)이란 속전(贖錢)을 내고서 사람을 풀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자면 속전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죄인이 방면되자면 속전을 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허물과 죄가 가리움과 용서함을 받자면 엄청난 속전이 필요합니다. 그 속전을 치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구원자로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는 것입니다(출32:34, 요1:12-18, 29). 그러므로 사람의 허물을 가리워주고 그 죄를 용서해주는 분은 이사야의 지적과 같이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하겠습니다(사44:22c). 그렇다면 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메시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사람들의 허물을 가려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요1:29). 진심으로 자신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적용시켜달라고 천상의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를 드리는 것입니다(히4:14-16, 7:24-28). 그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 또는 죄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되는 것 등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라고 하겠습니다(요14:1-3, 17:17-24, 계21:1-8).
(4) 셋째, 제23절입니다; “23. (a)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b)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 (c)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44:23); 야곱과 이스라엘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모두 지으시고 구속하신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그 구속사업을 추진하신 것입니다. 그 일은 모든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큰 사건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와 맥이 통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구절을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사44:23a); 죄인을 구속하기 위하여 구원자로 메시아를 보내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메시아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인간을 대신하여 치르고 있는 그 참혹한 속죄의 현장을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함을 구하는 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실한 종으로 살게 되면 나중에는 천국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눅22:28-30). 그것이 이사야가 내다보고 있는 미래입니다. 그와 같은 엄청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미리 보고서 이사야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2) ①“23.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23aa);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하늘에서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14a). 그렇다면 메시아가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눅15:22-24). 왜냐하면, 그것은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6:39-40). ②“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23ab);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를 회복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일이라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14b). 그 이유는 하나님과 불화하여 음부의 세계에서 징벌을 받기에 이르렀던 인간들이 회개하고서 하나님과 화평하며 부활의 기쁨을 맛볼 것이기 때문입니다(롬3:25, 5:1-2). 그래서 이사야는 땅의 깊은 곳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3) 둘, “산들아 숲과 그 가운데의 모든 나무들아 소리 내어 노래할지어다”(사44:23b); 사람들만 구원의 감격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민과 더불어 만물을 구원하라고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요3:16-17). 따라서 삼라만상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사44:23b). 셋,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 중에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로다”(사44:23c); 선민 이방인 차별 없이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주십니다. 그렇지만,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즉, 개인적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대속의 제사를 대신 드려 주신 메시아를 구주로 영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그러한 회개를 하는 자는 원칙적으로 야곱처럼 허물이 많은 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꾀가 하나님의 예언을 이룬다고 교만을 행했던 자입니다(창25:23, 27:12-14). 그런데, 스스로 바리새인들처럼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자는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눅7:30, 18:11-12). 따라서 세리 마태나 삭개오는 야곱과 같은 죄인을 부르고자 오신 메시아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것입니다(마9:13, 눅19:57, 사44:23c). 그와 같은 관점에서 이사야는“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23c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더불어 개인의 심령 속에 복음의 씨를 뿌리게 되면 그 영혼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부가 됩니다(눅17:21). 그렇게 거듭난 개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새로운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사44:23c).
(5) 본문 제24-28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구속자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실시하시는 역사섭리의 방향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사업 및 역사의 재창조사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예언의 순서가 다음과 같습니다; ①구속 및 재창조의 대상에 관한 언급(사44:24). ②악한 영들과 그 하수인들에 대한 처벌(사44:25). ③그리스도와 그 종들 그리고 선민들에 대한 예언(사44:26). ④음부의 세력을 도말하신다는 예언(사44:27). ⑤향후 역사섭리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서 제시하고 있는 것, 곧 고레스를 통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사44:28) 등입니다. 하나씩 살펴봅니다;
(6) 첫째, 제24절입니다; “24. (a)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b)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 태초에 천지와 만물과 만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이 구속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1) 하나, “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사44:24a);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주이십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창1:1) 유독 사람을 세상의 대표자로 선택하여 말씀을 하시고 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창8:20-22, 9:8-11). 사람들이 모든 피조물들의 대표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창1:27). 또 하나는, 세상을 경작하고 만물을 경영하도록 청지기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창1:26, 28, 2:15).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먼저 구원하시고 그 다음에는 창조의 질서를 따라서 천지만물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롬8:19-23).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대 역사입니다.
2) 둘,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사44:24b); 사람들 다음에 무엇을 구원하시는 것일까요? 그 순서를 말씀하시기 위하여 만물과 천지를 또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언급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하신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종으로 사용하여 또한 구원하실 것입니다. 구원의 순서는 만민들, 만물들, 그리고 하늘과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그 구원도 하나님께서 홀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 종들로서 사람들이 동원된다고 하더라도 그 성취의 영광은 온전히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7) 둘째, 제25절입니다; “25. (a)헛된 말을 하는 자(거짓선지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b)지혜로운 자(세상적인 현인)들을 물리쳐, 그들의 (세상적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사44:25); 하나님께서 악한 영에게 사로잡힌 자와 세상적인 지혜를 숭상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사업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처리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1) 하나, “25. 헛된 말을 하는 자(거짓선지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사44:25a);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가 아닌 악한 영들을 믿거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고자 만들어 놓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자들은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한 결과만을 얻게 될 것입니다(사44:9). 그 이유는 창조주께서 그렇게 역사를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악한 영의 사주를 받고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역사하십니다(왕상18:29). 그리고 점치는 자들의 말이 진실이 아님을 드러내며 그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도록 완전히 미치게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사44:25a).
2) 둘, “지혜로운 자(세상적인 현인)들을 물리쳐, 그들의 (세상적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사44:25b);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영적인 지혜와 지식을 무시하고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을 사용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들이 소위 세상적인 현자들입니다(출7:11, 단2: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역사섭리를 통하여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부끄럽게 만들어 버리실 것입니다(단2:12-13); 세상적인 지혜자들이 절대시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판단능력과 이성의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고 있는 창조주의 영적인 능력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이므로 인정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단2:11). 종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적도 모두 신화적인 요소로 취급하고 맙니다.
3) 그렇게 인간의 인식과 경험 안에 갇혀 있는 것들만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이지 유신론이 아닙니다. 더구나 과학의 이름으로 신학 역시 전적으로 세상적인 학문의 한 분과로만 취급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여호와신앙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잣대로 하나님을 검증하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적인 지혜와 지식을 절대시하고 있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는 선지자 다니엘의 다음 말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도다. 22.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라 하니”(단2:20-24).
(8) 셋째, 제26절입니다; “26. (a)그(메시아)의 종(사도와 제자)의 말을 세워주며, (b)그(메시아)의 사자(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c)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여호와)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사44:26);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 종들을 통하여 구원사역을 계속하실 것이며 선민들에 대해서도 회복의 역사를 전개하실 것임을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계십니다;
1) 하나, “26. 그(메시아)의 종(사도와 제자)의 말을 세워주며”(사44:26a);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그에게 충만하게 부어 주십니다(요1:14). 능히 구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함께 하십니다(요8:29).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을 사도로 파송하십니다(마28:18-20).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셨던 그 말씀의 은혜와 보호하심을 제자들에게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요17:17-21).
2) 둘, “그(메시아)의 사자(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사44:26b);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구원자 메시아로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요3:16-17).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능력으로 그 일을 행하시는 메시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요5:21-24). 마찬가지로 천하 권세를 위임 받으신 그리스도가 지상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제자들을 그 권세와 능력으로 뒷받침해주시는 것입니다(마28:18-20).
3) 셋,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여호와)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사44:26c); 메시아의 제자들이 온 세상으로 나아가서 복음사역을 전개할 것입니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이방 땅에서 크게 건설됩니다. 그러면 선민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선지자 이사야는 동족들의 앞날에 대하여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당시에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예루살렘성을 구원하고(사37:34-37) 온 유대 땅을 회복시켜 주신 것과 같은 은혜가 훗날에도 있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사44:26c 의역);

4) 물론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김으로 말미암아 다윗왕조 유대왕국이 망하고 백성들이 이방 땅에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고토로 돌아와서 황폐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사44:26c). 그 예언 그대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두 차례 기적이 발생합니다; 하나는, 주전 539년 뜻밖에 바벨론이 망하고 몇 년 후에 유대인들이 해방을 맞이합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사회를 다시 형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또 하나는, 주후 70년 로마군대에 의하여 유대사회가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선민들이 온세상에 흩어져서 떠돌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주후 1948년 5월에 팔레스틴 땅에서 기적적으로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사야 예언의 성취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9) 넷째, 제27절입니다; “27. (a)깊음(음부)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b)내가 네(음부세력) 강물(흘러나옴)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사44:27); 하나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세력에 대하여 엄격하게 조치하시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 “27. 깊음(음부)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사44:27a); 깊은 음부의 세계가 황폐화될 것이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입니다. 종말로 죽은 자를 토해내게 되면 음부의 세계가 무용지물이 됩니다(계20:13). 결국 불 못 가운데 던져질 운명이라고 훗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계20:14).
2) 둘, “내가 네(음부세력) 강물(흘러나옴)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사44:27b); 태초에 하나님이 계신 에덴동산에서 세상으로 강물이 흘러 나가고 있습니다(창2:10). 그 강물이 땅에 생명력을 전달해주고 고대문명을 꽃피게 합니다(창2:11-14). 한편 음부와 관련하여 그곳에서부터 죽음의 세력이 마치 강물처럼 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옵니다(엡2:2-3, 6:12). 그 세력이 미치는 곳에서는 죽음의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롬8:1-2반대해석). 그것을 하나님께서 장차 없애 버리실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3) 그 예언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10) 다섯째, 제28절입니다; “28. (a)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b)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44:28); 오래지 아니하여 하나님께서 고레스 황제를 동원하여 마치 기적처럼 선민의 해방과 예루살렘성전의 재건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일은 기타 예언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성취될 것임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하나의 징표와 같은 것입니다;

1) 하나,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사44:28a); 고레스(Cyrus)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인물이 여러 명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예언을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믿고 행동하는 고레스는 페르시아제국을 일으키는 고레스2세(주전580-529)입니다. 그는 창조주이며 구속자인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평정합니다. 그가 당대에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이사야의 예언을 믿고서 평생을 두려움 없이 전투에 임했기 때문입니다(사45:1-6). 그가 신바벨론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에서 애굽까지 천하를 통일했을 때에 여호와의 예언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유대민족의 해방자가 됩니다.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4만명 이상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어주기 때문입니다(스1:1-4). 그러한 미래를 내다보면서 여기서 이사야는 벌써 그를 ‘하나님의 목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44:28a).
2) 둘,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44:28b); 고레스의 칙령에 의하여 바벨론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제2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같은 역사를 율법학자 에스라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스1:2-4);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자신의 동족인 선민 유대인들이 진실로 여호와의 편에 서있다고 한다면(출32:26) 이제부터는 자신처럼 메시아를 앙망하는 선지자로서 달리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선민우월사상에 집착하지 말고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환언하자면, 여호와의 말씀과 복을 온 천하만민에게 전할 수 있는(창12:1-4) 새로운 이스라엘로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사44:1-5). 결국 이사야는 동족들에게 훗날 그들의 땅에 메시아가 오시면 그의 제자로 살아가라고 은근히 종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들이 그 옛날 선민들의 잘못을 되풀이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혈통적인 우월함이나 제도적인 힘을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그들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결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3위1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크게 도와 주십니다(요14:16-20, 마28:18-20, 행1:8).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 인생의 기록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