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년 설교문(손진길 목사)

“여호와의 예언대로 전개되지 아니하는 현실을 보고 모세가 기도하여 얻은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백성들에게 전하다”(출6:1-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1. 26. 01:41

제목; “여호와의 예언대로 전개되지 아니하는 현실을 보고 모세가 기도하여 얻은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 백성들에게 전하다”(6:1-30)

설교일; 주후 2025 42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 11 26일 화요일 작성)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제6장의 이야기는 창조주 여호와가 모세와 아론의 입을 주장하여 애굽의 황제인 바로 아멘호텝2세에게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의 동쪽 국경 바깥으로 내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요청한 결과 그 직후에 초래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여호와께서 어떻게 대처하고 계시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초 모세와 아론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생각은 믿음의 열조들이 인생의 주인으로 섬긴 하나님 여호와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에 피조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확실하게 바로잡아 여호와의 언약을 계승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출애굽의 해방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승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보여주실 것이라고 믿고 여호와에게 머리 숙여 경배하고 있습니다(4:31).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이 40년전에 모세를 고센 땅에서 배척한 것과는(2:13-15)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서 모세와 아론은 용기를 얻어서 왕도 멤피스의 바로 궁을 찾아가서 아멘호텝2세를 예방했습니다(5:1). 그러나 그 결과는 두사람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로 나타나고 맙니다.

중노동의 부역현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만 갑절의 노동량이 할당되고 만 것입니다. 흙벽돌에 섞어야만 하는 짚을 더 이상 주지 아니하고 산야를 헤매어 풀을 베어와서 짚을 대신하여 동일한 수량의 흙벽돌을 만들라고 하는 바로의 엄명입니다(5:6-9);

잠자는 시간을 엄청 줄여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풀을 구해와서 흙벽돌을 생산하여도 도저히 하루의 할당량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5:14b). 고센 땅에 파견되어 있는 애굽인 감독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는 히브리인 기록원들에게 매질을 가하기 시작합니다(5:14a).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백성들을 대신하여 매 타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질을 견디지 못한 기록원들이 바로를 찾아가서 부디 살려달라고 호소합니다(5:15-16). 그러나 그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모세와 아론의 허망한 이야기에 현혹이 되어 조상신을 섬기겠다고 하는 잘못된 꿈에 젖어서 공사를 게을리하고 있으니 그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5:17-18).

요컨대,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과 역사섭리를 믿고서 행동했더니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와 그 신하들의 계책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노동현장에 그만 엄청난 탄압과 박해가 나타나고 만 것입니다.

바로의 생각은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신 여호와는 별볼일이 없는 하급신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양신의 아들이며 나일강의 주인이고 백성들의 행동을 하늘에서 감찰하는 신의 능력 곧 호레스의 눈을 가진 현인신 바로인 자신이 하급신인 여호와의 요구를 들어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판단입니다(5:2).

따라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결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감히 집단 태업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작업의 강도를 크게 높이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모세와 아론의 말을 따르게 되면 바로의 진노를 사게 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주고 현실적인 불이익으로 뼈아프게 체감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바로의 살아있는 권력이 그와 같이 무서운 강제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선처를 구하기 위하여 바로를 찾아갔던 기록원들은 자신들에게 보여준 바로의 분노와 확고한 정책방향에 직면하자 그만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고 그에 따라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맙니다.

바로 궁 앞에서 초조하게 예방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모세와 아론에게 히브리인 기록원들이 원망하는 말을 퍼붓다가 마지막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5:21a).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한마디는 모세와 아론을 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운 여호와의 계획을 이제는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그 참담한 말입니다. 그 대신에 그들 기록원들의 선택은 그래도 여호와의 판단에 마지막 기대를 한번 걸어보겠다는 것입니다(5:21b).

그들의 절통한 호소 앞에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할 수가 없음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문을 닫아 잠그고 그때부터 자신을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신 여호와께 부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로써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5:22-23). 한마디로, 자신의 믿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실로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이 이제는 말과 예언으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6:1-13, 28-30). 그것이 그때부터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의 연속으로 차례로 나타나게 됩니다(7-12).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재앙을 막아보겠다고 바로와 신하들이 마술사들을 동원하고 자신들의 수호신들에게 호소하여 보아도 그 결과가 허망하고 사태가 도리어 악화될 따름입니다(7:11-12, 22, 12:12a&b). 특히,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12:12b)는 말씀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훗날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분노는 인간세상에 기근전염병의 재앙으로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4:10, 27:8, 29:18). 그런데 선지자 모세가 먼저 저술하고 있는 출애굽기의 기록에 따르면 그 순서가 정반대입니다. 요컨대, 애굽에 내리는 여호와의 재앙이 전염병기근 그리고 의 순서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생물로 보이는 것들이 사람을 위협하고 해치는 생물이 되어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강한 뱀의 등장이 맛보기로 나타난 다음에는 강물 및 시냇물을 오염시키고 있는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핏빛의 미생물에 이어 여러 가지 독충과 해충의 발생으로 인한 전염병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의 재앙 사이에는 약간의 숨쉴 틈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와 신하들은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그 마음이 완악해지고 맙니다. 그에 따라 기근이 애굽에 찾아오고 있습니다. 굵은 우박이 지면을 때리자 한창 자라고 있는 작목인 보리와 삼의 피해가 엄청납니다(9:31).

그래도 미련한 바로와 신하들은 땅속에 남아 있는 주곡(主穀)인 밀과 쌀보리 작목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9:32).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먹거리를 먹어 치우도록 메뚜기 떼를 들여보내고 있습니다(10:15).

그래도 미련을 떨고 있는 바로와 신하들의 모습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마지막 두가지 재앙을 준비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흑암의 재앙으로 인간세상을 무력하게 만든 다음(10:21-23) 유월절이 되자 하룻밤에 죽음의 천사를 보내어 애굽인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초태생을 일시에 전멸시키는 무서운 칼의 재앙 것입니다(11:1-8, 12:29-33);

출애굽 해방을 얻은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오랜 광야생활을 하면서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선지자 모세는 이미 애굽에 여호와의 10가지 재앙이 내렸으며 그 결과 출애굽의 해방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신위적인 역사가 전염병과 기근 그리고 죽음의 천사의 칼로 애굽에 임하기 전까지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에 대하여 모세도(12c, 30), 이스라엘 자손도(12a, 9), 바로와 그 신하들도 모두가 반신반의하였다는 사실을(12b) 선지자 모세가 솔직하게 본문 출애굽기 제6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모세는 비록 출애굽의 지도자로 여호와의 세움을 받고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일하고 있지만 그 역시 피조물인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경험에 의지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에 대해서는 온전한 확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약간 짐작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처음에 동족들이 예전과 달리 자신이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자신을 지도자로 인정해주자 그것이 기뻐서 용기 백배하여 형 아론과 함께 바로를 찾아가서 여호와의 요구를 전달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만사가 형통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것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개선(改善)이 아니라 개악(改惡)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5:6-9). 크게 당황한 모세가 여호와께 현실문제를 해결하여 달라고 기도로 매달리고 있지만(5:22-23) 여호와의 말씀은 동일할 뿐입니다(6:1-8). 그러므로 자신을 더 이상 백성들을 대표하여 바로에게 보내지 아니하면 좋겠다고 발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6:12c, 30).

(2)  둘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의 선지자인 모세가 대단한 묘책을 가지고 다시 백성들에게 나아오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예언을 들어보니 처음에 들었던 것과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같을 것입니다. 속이 상한 백성들은 이제 모세가 전하고 있는 말도 여호와도 불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암담한 현실을 이기자면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이 크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까? 계속 기대를 가지고 여호와께서 능력을 나타내시는 그때를 기다려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시점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아니하고 있으니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6:9, 12a). 그와 같은 사실은 14백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는 그 현장에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그때는 온전히 창조주 여호와의 전권 사항이므로 그 자리에서 말해줄 수가 없다는 말씀과 함께(1:7) 예수님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모두들 함께 모여서 기도하라고 지시하십니다(1:4-5). 그 결과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성도 500명 가운데 다수인 380명이 실망하여 기도의 자리를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고전15:6, 1:15).

(3)  셋째로, 믿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으며 여호와의 언약의 계승자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조차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데 있어서 회의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인 애굽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예언을 믿지 아니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한마디로, 애굽은 범신론(汎神論)에 젖어 있는 고대사회입니다. 주신(主神)만 하더라도 둘입니다. 수도인 ()이집트 테베에서는 공기와 바람의 신 아몬, 왕도인 ()이집트 멤피스에서는 태양의 신 를 섬기고 있습니다. 애굽을 통일한 중왕국시대 제12왕조와 신왕국시대 제18왕조에서는 다같이 테베가 그 수도이므로 아몬를 하나로 만들어 주신을 아몬라라고 부르면서 한꺼번에 섬기고 있습니다. 특히 그들 애굽인은 제국의 황제인 바로를 신의 아들로서 현인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노예계급인 히브리인들의 조상신에 불과한 여호와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경스럽게도 그 위력이 현인신 바로보다 열등한 하급신으로 우습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6:12b). 그러므로 여호와의 능력이 바로나 주신인 아몬라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애굽사람들이 결코 승복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점을 여호와께서는 가장 먼저 모세에게 예언하여 주십니다(6:1). 그러나 모세는 그 예언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6:12c, 30);

(4)  참고로, 그와 관련하여 백과사전 위키백과의 관련내용을 일부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파라오(영어Pharaoh)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종교적 최고 통치자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집트의  또는 왕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원래 파라오는큰 집이라는 뜻으로 이집트 왕의 궁정, 왕궁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왕과 동격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성스러운 권좌를 의미하는페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이집트의 파라오는 호루스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파라오는 인간이 아닌 신으로 숭배되기도 하며, 파라오가 죽으면 육체를 모두 소진하고 영혼으로서 다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라오가 영원히 사는 궁궐의 의미로서 피라미드가 건설되었다. 투트모세 3가 파라오로 즉위하여 이집트를 통치한 이후의 모든 이집트 군주들은 파라오라고 불리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4:21-23, 여호와는 모세에게 이미 애굽에 재앙을 내릴 것이며 끝까지 완강하게 여호와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들의 장자를 전부 죽여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음.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모세가 확실히 믿지 못하여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 그 대신에 그가 확실하게 믿고서 전한 말씀이 2-8절에 먼저 기록되고 있음).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3:14,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17:1, 3:15)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13:14-15, 15:7, 18, 26:3, 28:13-14),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2:23-25, 3:7-10).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3:10, 말을 듣지 아니하면 애굽에 큰 심판을 내린다는 예언의 말씀이 벌써 들어 있음),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력행사가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의미하고 있는 대목임.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의 역사 섭리임, 17:1. 그것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인물이 사실은 모세와 그의 동족들인 것임).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3:16-17, 4:28, 말만으로 남의 땅을 빼앗을 수가 없음. 그러므로 여호와의 강력한 역사섭리와 전쟁의 승리가 벌써 내포되어 있는 예언임).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확인도장을 찍고 있는 언약의 내용인 것임). 9. (비록 전에 호렙 산에서 들었던 내용과 동일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모세가 기도의 결과 얻은 여호와의 유일한 대답이기에 충직하게도 밖으로 나가서)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있는 여호와의 구체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환영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10.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이제는)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다시 바로 궁으로) 들어가서 애굽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똑같은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도 꿈쩍하지 아니했으니 이방인인 바로가 그 말을 들어줄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모세가 아예 바로 궁으로 가지 아니하고자 하는 것임). 13.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무언가 색다른 구체적인 사항을 모세에게 예언으로)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그것이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여호와의 재앙의 내용을 모세가 제7장에서부터 기록하고 있음. 모세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인간의 역사와 미래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의 뜻과 예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임)”(6:1-1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4:21-23, 여호와는 모세에게 이미 애굽에 재앙을 내릴 것이며 끝까지 완강하게 여호와의 요구를 거절하면 그들의 장자를 전부 죽여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음. 그러나 그 예언의 말씀을 모세가 확실히 믿지 못하여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임. 그 대신에 그가 확실하게 믿고서 전한 말씀이 2-8절에 먼저 기록되고 있음).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3:14,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17:1, 3:15)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13:14-15, 15:7, 18, 26:3, 28:13-14),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2:23-25, 3:7-10).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3:10, 말을 듣지 아니하면 애굽에 큰 심판을 내린다는 예언의 말씀이 벌써 들어 있음),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력행사가 뒤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의미하고 있는 대목임. 그것이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의 역사 섭리임, 17:1. 그것을 반신반의하고 있는 인물이 사실은 모세와 그의 동족들인 것임).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3:16-17, 4:28, 말만으로 남의 땅을 빼앗을 수가 없음. 그러므로 여호와의 강력한 역사섭리와 전쟁의 승리가 벌써 내포되어 있는 예언임).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창조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확인도장을 찍고 있는 언약의 내용인 것임)”(6:1-8);

1)    인간세상의 법정에서 원고측과 피고측이 누가 더 옳은가를 다툴 때에 법의 해석과 적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많은 사례를 살피고 거기서 법의 원리를 끄집어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어느 해석과 적용이 더 옳은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많은 사례를 참조하여 여호와의 변함없는 말씀과 예언 그리고 그 예언이 성취가 된 경우를 면밀하게 살피게 됩니다.

2)    그러한 측면에서 오늘날의 성도들은 행운아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전부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기록한 수많은 사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복음서에는 성육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공생애를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메시지 그리고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에서 3일만에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시고 40일만에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주님의 이야기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그에 대한 체계적인 해설까지 서신서로 신약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3)    그런데 구약성경이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하는 주전 15세기 모세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수집한 자료와 믿음의 열조들의 신앙이야기는 그가 기록하고 있는 오경에 집대성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그리 많은 분량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판단해보면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답변내용이 모세와 아론에게 있어서는 오늘날보다는 생소하게 그리고 그 깊은 내용이 덜 민감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4)    그래서 그런지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는 기도의 내용 곧 절박한 현실에 대한 타개책을 부디 말씀하여 달라는 간구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다시 말씀하여 주시는 대안은 그가 호렙 산에서 진작에 받은 예언의 말씀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전체적으로 모세로서는 실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본문 제12절에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과 애굽제국의 바로 및 그 신하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였지만 그 효과가 긍정적이지 아니하고 부정적입니다.

5)    오히려 벌집을 쑤셔 놓은 것과 같습니다. 바로가 진노함에 따라 출애굽의 해방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중노동의 강도만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인 기록원들이 바로를 예방하여 그 내심을 파악한 이후에는 완전히 절망하여 출애굽 해방의 희망을 고취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상황을 타개하는 여호와의 대안의 말씀이 절실합니다. 절박하게 부르짖고 있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진작에 호렙 산에서 말씀하신 예언을 간추려서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6)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제부터 바로를 강하게 칠 것이다(1a). 여호와의 강한 징계를 바로가 견디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게 될 것이다(1b). 오늘날의 성도들은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라고 두 번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경우 그것은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실현이 되는 두려운 창조주 여호와의 예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일천한 모세의 경우에는 그 정도로 실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7)    요컨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모세는 아직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미래가 회의적입니다. 그전에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향하고 있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부연설명하신 예언의 말씀,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4:22-23)는 말씀이 애굽에서 반드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는 무서운 사실을 모세가 아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8)    둘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는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일생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신 언약의 상대방 곧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어떠하셨는지 그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름대로 풍성하게 구전되고 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 가운데 예언적인 성격의 핵심내용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400년간 살면서 큰 민족으로 번성할 것이며 그들을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입니다(15:13-16, 26:3-5, 28:13-15, 46:3-4).

9)    그 언약을 의지하여(4)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고센 땅에서 엄청난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여 여호와께 예언의 성취를 부르짖고 있습니다(2:23-25).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이제 애굽의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실현이 된다는 사실을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심으로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5). 그렇지만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밝힐 때까지 그 예언의 말씀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정확하게 모르고 있습니다(2-3). 더구나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애굽 땅에서의 10가지 재앙을 모두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세 역시 그러합니다;

10)  셋째,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사실 정확한 미래의 역사에 대한 응답을 주고 계십니다(6-8). 다만 모세가 그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 점을 두가지로 간추려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하여 출애굽시키기 위해서는 결코 말로써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력이 큰 심판으로 애굽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6).

11)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출애굽의 역사는 불가피하며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이 그 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부연 설명입니다(7). 또 하나는, 여호와의 약속은 출애굽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그대로 그 후손들에게 주겠다고 이미 약속한 땅 가나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반드시 기업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8a). 여호와의 약속이므로 그 일이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실현이 될 것입니다(8b).

(2)  9. (비록 전에 호렙 산에서 들었던 내용과 동일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모세가 기도의 결과 얻은 여호와의 유일한 대답이기에 충직하게도 밖으로 나가서)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있는 여호와의 구체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환영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10.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 (이제는)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다시 바로 궁으로) 들어가서 애굽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똑같은 말을 듣고 이스라엘 자손도 꿈쩍하지 아니했으니 이방인인 바로가 그 말을 들어줄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여 모세가 아예 바로 궁으로 가지 아니하고자 하는 것임)”(6:9-12);

1)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 모세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는 두려운 역사의 현장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에 따라 무서운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받았지만 그 의미의 깊이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모세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찾아가서 열심히 설명해보아야 그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2)    그들 백성들 역시 반신반의하면서 그러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현재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모세에게 여호와께서는 이제 바로를 찾아가서 동일하게 설명하라고 명령하십니다(10-11). 그때 모세가 3가지로 조목조목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합니다(12a);

3)    첫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긴다고 하는 나의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들려주어도 헛수고입니다(12b). 둘째, 여호와가 아니라 잡신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 황제 바로에게 설명해보아야 더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12c). 도리어 더 큰 반발을 불러올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역의 현장에서 가혹한 매질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모세의 판단입니다.

4)    셋째,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기에는 모세 자신이 입이 둔하고 능력이 부족한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12d). 그 말의 뜻은 다른 자에게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 좋겠다는 모세의 의견입니다. 기실 모세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으로는 절박한 현실을 타개할 수가 없다고 보고서 그와 같이 꼬리를 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래를 확실하게 볼 수가 없는 피조물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점을 익히 알고 계시는 영이신 창조주 여호와의 대답이 과연 무엇일까요?...

(3)  13.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무언가 색다른 구체적인 사항을 모세에게 예언으로)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그것이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여호와의 재앙의 내용을 모세가 제7장에서부터 기록하고 있음. 모세는 사람들의 생각대로 인간의 역사와 미래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의 뜻과 예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임)”(6:13);

1)    이상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에 대한 총론이 끝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각론으로서 창조주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에 대한 한가지의 시현과(7:9-13) 10가지의 재앙이 구체적으로 하나씩 선을 보이게 됩니다(7:14-12:30). 결국은 사람인 모세의 의견대로 미래가 결정되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12:31-42).

2)    그러므로 모세가 다른 사람을 사명자로 세워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시라고 여호와께 진언하고 있지만 그 뜻은 결코 받아들여지지 아니합니다(12). 왜냐하면,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삼으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모세를 사용하시고 기어코 출애굽의 역사를 성취하시고 또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모세의 후계자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들이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이 바로 본문입니다(13).

3)    물론 신실하신 여호와께서는 재앙을 애굽에 내리시기 전에 사전에 예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두려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사전에 피할 길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재앙은 여호와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자들을 징계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민족의 구별에 상관없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경내로 들어와서 그 재앙이 지날 때까지 피신하면 됩니다.

4)    그러한 사실이 있음을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0.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21.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9:20-21),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장정이 60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하였으며”(12:37-38). 참으로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크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만민구원의 역사는 벌써 출애굽의 과정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14.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니, 이들은 르우벤의 (4)족장이요. 15. (이스라엘의 차남)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니, 이들은 시므온의 가족(6집안)이요. 16. (야곱의 3남인)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족보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3족장임). 레위의 나이는 137였으며, 17. (레위의 장남) 게르손의 아들들은 그들의 가족대로 립니와 시므이요, 18. (레위의 차남) 고핫의 아들들은 (아론과 모세의 부친인) 아므람 (그들의 숙부이며 고라의 부친인)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고핫의 나이는 133 였으며, 19. (레위의 3)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니 이들은 그들의 족보대로 레위의 족장이요(아므람 역시 족장이라는 것임). 20. (족장)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아므람이 족장이기에 그러한 혼사가 가능함. 비근한 예는 족장 아브람과 누이 사래와의 혼사임, 11:29-30, 20:12), 그는(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아므람의 나이는 137였으며(아론과 모세의 조상 3대의 시대를 모두 종합하면 137+133+137=407년이 됨. 그것은 창15:13-16절이 예언대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하나의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임), 21. (족장) 이스할의 아들들은 고라(16:1-2, 훗날 고라 반역사건의 주모자임)와 네벡과 시그리요, 22. (족장)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요. 23. 아론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아비후(훗날 제사장이 된 장남과 차남은 다른 불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음, 10:1-2)  엘르아살(훗날 부친 아론의 대제사장 직을 계승함, 20:26-28) 이다말(모세의 명을 받아 성막에 들어간 재료를 계산하여 기록을 남김, 38:21. 역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면서 최고지도자 모세를 많이 보좌한 것으로 보임)을 낳았으며, 24. (반역자)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이니, 이들은 고라 사람의 족장이요(그들의 후손 곧 고라의 자손들이 모세의 배려로 환난 가운데 살아남아 훗날 솔로몬성전을 돌보는 실세가 되고 시편에 많은 시가를 남기게 됨), 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부친 엘르아살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됨, 25:11-13, 24:33)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12지파의 장정들 곧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군대대로(12:41, 모세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장정들을 군대라고 부르고 있음. 그 이유는 그들이 그때부터 광야에서 기습해오는 약탈민족과 전투해야만 하기 때문임, 17:8-9) 애굽 땅에서 (질서정연하게)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 27. 애굽  바로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아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6:14-27);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4.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니, 이들은 르우벤의 (4)족장이요. 15. (이스라엘의 차남)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니, 이들은 시므온의 가족(6집안)이요. 16. (야곱의 3남인)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족보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3족장임). 레위의 나이는 137였으며, 17. (레위의 장남) 게르손의 아들들은 그들의 가족대로 립니와 시므이요, 18. (레위의 차남) 고핫의 아들들은 (아론과 모세의 부친인) 아므람 (그들의 숙부이며 고라의 부친인)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고핫의 나이는 133 였으며, 19. (레위의 3)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니 이들은 그들의 족보대로 레위의 족장이요(아므람 역시 족장이라는 것임). 20. (족장)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아므람이 족장이기에 그러한 혼사가 가능함. 비근한 예는 족장 아브람과 누이 사래와의 혼사임, 11:29-30, 20:12), 그는(아므람과 요게벳 부부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아므람의 나이는 137였으며(아론과 모세의 조상 3대의 시대를 모두 종합하면 137+133+137=407년이 됨. 그것은 창15:13-16절이 예언대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하나의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임), 21. (족장) 이스할의 아들들은 고라(16:1-2, 훗날 고라 반역사건의 주모자임)와 네벡과 시그리요, 22. (족장)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요. 23. 아론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아비후(훗날 제사장이 된 장남과 차남은 다른 불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음, 10:1-2)  엘르아살(훗날 부친 아론의 대제사장 직을 계승함, 20:26-28) 이다말(모세의 명을 받아 성막에 들어간 재료를 계산하여 기록을 남김, 38:21. 역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면서 최고지도자 모세를 많이 보좌한 것으로 보임)을 낳았으며, 24. (반역자)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이니, 이들은 고라 사람의 족장이요(그들의 후손 곧 고라의 자손들이 모세의 배려로 환난 가운데 살아남아 훗날 솔로몬성전을 돌보는 실세가 되고 시편에 많은 시가를 남기게 됨), 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부친 엘르아살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됨, 25:11-13, 24:33)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6:14-25);

1)    본문 출애굽기 제6장은 제5장과 제7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출애굽기 제5장에서는 모세와 아론이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표하여 바로 아멘호텝2세를 예방하고 여호와의 뜻을 전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바로가 크게 반발하여 출애굽 해방이 아니라 고센 땅에서의 강제노역이 더욱 무거워지는 불이익만이 동족들에게 초래되고 맙니다.

2)    모세는 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제7장에서부터 국면을 전환시키는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이 애굽인들에 대한 10가지의 재앙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와 같은 사건의 전후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본문 제6장의 주제는 이글의 기록자인 선지자 모세가 여호와의 예언과 그 예언을 성취하는 여호와의 위력 사이에서 그 예언성취의 지체현상(遲滯現狀, time-lag)을 경험하면서 그 틈바구니에서 예언의 성취를 과연 믿을 수가 있는지를 크게 고민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현상태는 애굽에서 살아있는 절대권력자인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우습게 여기고 그 요구를 묵살하면서 도리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과중한 중노동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는 실정입니다.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일일 노동의 목표량을 강요하면서 미흡한 성과에 대해서는 동족출신인 기록원들을 불러내어 매일같이 태형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똑똑한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 참상을 바라보면서 모세의 가슴을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4)    도대체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출애굽 해방의 예언은 언제 실현이 된다는 말입니까? 애굽인 장자의 죽음으로 출애굽이 이루어진다고 이미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어서 모세가 계속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모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여호와의 답변은 정확한 시기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1:7). 그에 따라 모세는 창세기의 말씀과 관련하여 자기 집안 조상들의 족보를 살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6:16-21).

5)    그들의 행적 가운데 여호와의 예언이 어떻게 살아 있는 역사로 진행이 되고 있는지를 살펴서 모세가 여호와의 예언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다음 3가지 사항입니다; 첫째, 창세기 제15장에서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인의 땅에서 객이 되어 살아가지만 압제 가운데에서도 크게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할 것이며(46:3) 여호와의 은혜로 4대만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기업을 얻게 된다고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15:13-16).

6)    그렇다고 하면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이 지난 400여년 동안에 그 인구가 얼마에서 얼마로 증가한 것일까요? 그리고 과연 400년 동안에 겨우 4대가 흘러가고 있는 그러한 집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을 모세가 자신의 가문의 역사를 살피면서 추적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 증거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주전 1,876년에 애굽으로 이주한 조상 레위가 당시 43살이었는데 그는 어린 아들 3명 곧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를 데리고 고센 땅에 정착하여 137세를 살았다”(46:11, 6:16), “레위의 차남 고핫 133세를 살았는데 그의 장남 아므람이 족장이 되었다”(6:18).

7)    족장 아므람137세를 살았는데 그의 장남 아론이 족장이 되었다”(6:20), “참고로,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해 곧 주전 1,446년에 족장 아론의 나이가 83세이고 그 동생 모세의 나이가 80세이다”(7:7). 이상에서 430년간 애굽의 고센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모세 자신의 집안은 특이하게도 레위---고핫---아므람---아론이라는 4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모세 집안의 레위인 족보가 창세기 제15장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모세가 발견하고서 출애굽의 예언이 반드시 실현이 된다고 내심 확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8)    둘째, 모세는 아론과 함께 12지파의 장로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장정의 수가 얼마인지를 진작에 파악하고 있습니다. 60만명 가량입니다. 그 수를 그는 출애굽의 감격이 기록되어 있는 출애굽기 제12장에 특기사항으로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요”(12:37), “41. 430년이 끝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12:41). 이스라엘 자손 70명이 애굽으로 이주하여(46:27) 430년만에 장정만 60, 남녀노소를 계산하면 적어도 200만명 이상으로 그 인구가 증가하여 하나의 큰 민족을 이루어 여호와의 예언 그대로 출애굽을 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진군하고 있는 것입니다(15:13-16, 46:3).

9)    셋째, 창세기 제49장에는 조상 야곱 곧 이스라엘이 12아들의 미래와 그들의 자손이 장차 이루게 되는 12지파의 미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축복의 기도와 더불어 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이한 예언이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의 자손이 기타 지파에 흩어져서 지내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49:7). 그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7.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여호와)그들(시므온과 레위의 자손)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49:7). 그것은 실제로 축복의 예언이 아니라 저주의 예언입니다.

10)  그런데 시므온 지파에 대해서는 훗날 그 저주가 그대로 임하고 맙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에 대해서는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레위의 자손 모세와 아론이 출애굽의 지도자로 여호와에 의하여 세움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6:26-27). 게다가 훗날 시내 산 앞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잘못을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했을 때에 레위인들이 모세를 중심으로 여호와의 편에 서서 그 칼이 되고 있습니다(32:26-28). 그와 같이 레위인들이 모세의 친위부대가 되고 여호와를 모신 성막을 지키는 칼이 됨에 따라서 그들의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11)  세상적인 12지파에서 빠져서 여호와를 성막에서 섬기는 백성이 되고(3:1-12) 그들은 기타 지파에 흩어져서 살면서 그들에게 여호와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신앙훈련을 책임지는 레위인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21:1-3, 41-42). 참고로, 훗날 모세의 형 아론이(6:20, 7:7) 최초의 대제사장이 되고 그의 아들과 자손들이 제사장 집안이 됩니다(28:1-3, 20:25-29, 25:11-13). 그리고 사촌인 고라의 집안이(6:21, 24) 성막에서 레위인들을 지휘하는 실무책임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16:8-9);

  

(2)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12지파의 장정들 곧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군대대로(12:41, 모세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장정들을 군대라고 부르고 있음. 그 이유는 그들이 그때부터 광야에서 기습해오는 약탈민족과 전투해야만 하기 때문임, 17:8-9) 애굽 땅에서 (질서정연하게)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 27. 애굽  바로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아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6:26-27);

1)    모세는 자신의 집안의 족보를 깊이 살펴봄으로써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모세 자신에게 주신 여호와의 예언도 철저하게 앞으로의 역사 가운데 실현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모세 자신과 친형 아론이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하게 되면 자신의 집안에 걸려 있는 여호와의 저주스러운 예언도 장차 변화되어 나갈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2)    따라서 모세는 자신의 집안의 족보 이야기를 마감하면서 형 아론과 모세 자신이 여호와께서 선택한 출애굽의 지도자이며 선지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26-27);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바로 궁으로 다시 들어가서 아멘호텝2세에게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라고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명령에 대해서는 즉시 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습니다(29-30). 그 이유는 만약 예방의 자리에서 바로가 대노하는 경우에는 형과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28.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바로에게 다 말하라. 30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6:28-30);

(1)  여기서 나타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은 모세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반드시 종이 주인의 말씀 그대로 빠짐없이 실천해야만 하는 하명(下命)입니다(28-29). 그런데 그 사실을 여호와의 선지자인 모세가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감히 자신의 의견을 보태고 있습니다; “30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6:30).

(2)  모세의 말을 들으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결단을 내리실까요? 모세의 시건방진 태도에 대하여 호통을 치실까요? 아니면 자상하게 한번 더 설명을 해주실까요? 그 대답이 사실은 한번 더 모세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제7장 제1절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먼 훗날 모세가 사명을 완수하게 되면 천국으로 불러 올려서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11:16, 25-26).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이 훗날 예수님과 함께하는 변화산의 환상을 통하여 수행사도 3인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9:28-33).

(3)  그렇지만 그 미래의 영광을 일부 현재의 모세에게 부여하여서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를 바로에게 다시 보내어 출애굽의 해방을 구현하고자 하십니다(7:1). 그만큼 장차 제사장나라로 그리고 거룩한 백성으로 마치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실현하기 위하여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19:4-6). 그와 같은 맥락에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조차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그를 회개시켜 목자로 발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18:25-27, 21:15-19);

 

결론적으로, 본문의 기록은 앞장인 제5장과 뒷장인 제7장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5장은 모세와 아론이 용기 백배하여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달하였더니 불호령을 받게 되고 동족들의 중노동의 현장에서 엄청난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모세가 부디 대책을 마련하여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제7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전능하신 위력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리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실력행사가 발휘되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자손들과 바로에게 다시 한번 사자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와 같은 불이익을 당하기 전에 부디 마음을 고쳐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입장에서는 미디안의 변경 호렙 산과 애굽으로 들어오는 도중에 벌써 여호와로부터 들었던 출애굽에 관한 예언의 말씀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다시 하나의 대책이라고 말씀하면서 동족들과 바로 아멘호텝2세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명령이 좀 이상합니다.

이미 한번 전달하였다가 사태가 심각하게 악화되고 말았는데 다시 한번 그대로 전달했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일단 동족들의 장로들을 찾아가서 여호와의 대답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대로 바로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한가지 대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살아오는 동안에 과연 그 족보 가운데 여호와의 예언이 성취가 되고 있는 대목이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발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특이하게도 레위고핫아므람아론으로 이어지는 4대가 애굽 체류 400여년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400 4대가 지나면 이방인의 굴레를 벗어나서 가나안으로 돌아와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는데 그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15:13-16).

(2)  둘째, 모세가 알고 있기로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장정만 따져도 60만명 가량입니다. 남녀노소를 모두 계산하면 적어도 200만명이 넘는 큰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이 수가 많이 증가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겁내고 있는 것입니다(1:7-10). 그것 역시 조상 야곱에게 주신 여호와의 예언이 성취가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46:3).

(3)  셋째, 조상 야곱 곧 이스라엘이 향년을 맞이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미래에 대하여 축복의 예언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시므온 지파와 레위 지파에 대해서는 저주의 예언입니다. 그 성격이 급하고 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서고 있기에(34:25-26) 왜소화가 되고 기타 형제들의 지파에 흩어져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49:7). 그런데 이상하게도 레위 지파에 속하는 모세 자신과 친형 아론을 선지자로 삼고 있습니다(6:26-27).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모세는 자신과 형이 여호와께 끝까지 신실하게 충성하게 되면 자신의 지파의 장래가 놀랍게 구원을 얻을 것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모세의 깨달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본문의 족보 이야기입니다.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차제에 자신들의 집안과 민족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풍족하게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