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여호와께서 80세의 양치기 모세를 호렙 산으로 불러서 무슨 일을 맡기고자 하시는가?”(출3:1-22)
설교일; 주후 2025년 4월 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24년 11월 18일 월요일 작성)
창조주가 아니고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미래완료형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만들어 이 세상에 보낸 창조주의 의도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를 만나는 그날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알게 되고 또한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약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은 이 세상이라고 하는 피조세계에서 육신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람의 육신은 공간이동에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엄격한 일방통행의 선상에서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람의 육신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정신세계도 시 공간적인 제약을 받으면서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서 필요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의 정신도 공간적으로 분명히 인식의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일방통행을 강요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제3장 오늘의 본문에서 모세는 자신이 40세부터 80세가 될 때까지 이방지역 미디안 땅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치기로 살았는데 우연히 하루는 호렙 산 중턱에서 마치 환상처럼 여호와를 만났으며 그때 비로소 시 공간적인 제약을 상당히 벗어나서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대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미리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려두고 싶습니다;
첫째로, 어째서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 생활을 40년이나 한 후에 비로소 여호와께서 그를 호렙 산 중턱 꺼지지 아니하는 가시나무 불꽃이 타고 있는 그곳으로 부르신 것인지를(출2:22-3:6)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알기 쉽게 세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첫째, 모세가 양치기 생활을 36년간 하고 있는 그때에 비로소 애굽제국에서는 뛰어난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투트모세3세가 별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2:23a). 투트모세3세는 어린 나이에 핫셉수트 왕비에 의하여 바로로 즉위하였기에 그녀의 섭정 아래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더구나 십대 청소년이 되자 그를 실권자인 대비 핫셉수트가 원정군에게 딸려 보내고 맙니다. 그리고 수도에서 대비 핫셉수트는 스스로 여자 바로가 되어 혼자서 애굽 천하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투트모세3세는 오랜 원정생활과 수많은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며 20대 초반에 벌써 전쟁의 영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군부의 지지를 얻은 그는 회군하여 여자 바로를 몰아내고 핫셉수트의 양자인 40세의 모세를 수도에서 변방 고센 땅으로 보내 버립니다(출2:11). 그리고 밀정을 풀어서 모세의 동태를 살피게 하였더니 그가 어리석게도 출신성분을 쫓아서 동족인 히브리인들의 세력을 자신에게 결집하여 권토중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2) 투트모세3세는 급히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체포하려고 시도했으나 그만 사전에 눈치를 채고서 모세가 아예 동쪽국경을 넘어 멀리 탈출하고 맙니다(출2:15). 그후 36년간 애굽제국을 강력하게 다스린 투트모세3세가 마침내 별세하고 있습니다(출2:23a). 요컨대, 애굽 땅에서 모세를 제거하려고 했던 바로가 드디어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출4:19). 그 뒤를 잇고 있는 아멘호텝2세는 모세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개인적으로 성장하면서 별로 고생을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다지 뛰어난 바로가 아닙니다. 그저 훗날 이스라엘제국에 있어서 솔로몬대왕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 왕이 백성들을 강압일변도로 통치하려고 나서는 것과 같은 그러한 인물입니다(왕상12:14). 그와 같은 시대적인 변화를 여호와께서 눈 여겨 보고 계십니다.
(3) 둘째, 아멘호텝2세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히브리인들은 죽을 맛입니다. 도저히 고센 땅에서 더 이상 중노동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따라서 4년 동안 매일같이 조상들의 여호와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부디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을 시켜달라는 것입니다(출2:23b). 그 옛날 믿음의 열조들에게 말씀하신 그 축복의 언약을 이제는 발동시켜달라고 하는 구체적인 요구입니다(출2:24). 근거가 있는 그 요구에 귀를 기울이신 여호와께서는 80세의 노인 모세를 드디어 호렙 산 중턱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출2:25, 3:3-5).
(4) 셋째, 지난 40년 동안 여호와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모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하여 광야로 데리고 나오는 경우 그들은 오랜 세월 광야에서 목축을 하면서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모세가 광야에서 목축을 하는 방법 그리고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방법 등을 장인 이드로에게서 모두 배우고 익혀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준비과정을 점검하신 다음에 여호와는 80세가 된 모세를 비로소 호렙 산 가시나무 불꽃으로 유인하여 산중턱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출3:1-8).
둘째로, 그 옛날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여호와의 언약을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과 약속의 땅 점령이 필요한데(출3:7-8) 그 두가지 일이 근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오로지 여호와의 능력과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제국의 압제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그 땅에 9가지 재앙을 먼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앙과 재앙 사이에 틈이 발생하자 곧 항복할 것만 같던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일단 숨을 돌릴 수만 있게 되면 다시 여호와 앞에 완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유월절 밤 애굽인들에게 내리게 됩니다. 그 재앙의 내용이 끔찍하게도 하룻밤에 애굽인들의 집에서 일시에 장남의 죽음이라는 초상이 발생하고 동시에 집안에 있는 가축의 초태생이 모조리 죽고 마는 대 참사인 것입니다(출12:29-30);
(2) 그 재앙 다음에는 바로와 신하들 자신 그리고 애굽인 가장들의 죽음이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그러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끼게 된 바로와 신하들이 마침내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출애굽을 하도록 간청하고 있습니다(출12:31-34). 그 재앙덩어리를 속히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 자신들의 살길인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의 지시 그대로 동족들에게 애굽인들에게 요청하여 물품을 충분히 받아서 아침에 출애굽을 하도록 조치합니다(출12:35-42).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열 번째 재앙이 없으면 출애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훗날 가나안 남부지역 국경선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10정탐꾼이 모세와 백성들에게 보고하고 있는 정탐의 결과가 또한 그러합니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13:31).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가 여호와의 허락 없이 자신들의 힘만으로 가나안 남부지역으로 쳐들어갔다가 대패를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민14:41-45). 따라서 훗날 모세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신8:17-18).
셋째로, 모세는 40세에 고센 땅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 12지파의 힘을 모아 자신이 앞장을 서서 수도로 진군하여 바로 투트모세3세를 폐위시키고 애굽제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은밀한 시도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출2:11-13). 그러나 자신을 지도자로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동족들의 태도 때문에 그의 시도는 완전히 좌절이 되고 말았습니다(출2:14-15). 그런데 어째서 전능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때 야망이 있고 혈기왕성한 시절의 모세 자신을 도와주지 아니하시고 이제서야 80세의 노인이 되어버린 별볼일이 없는 자신에게 그 대업을 맡기고 계시는가?(출3:9-10) 하는 점입니다. 그 이유가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모세의 야망을 성취할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그 길을 열어주게 되면 그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발생하게 됩니다.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노동에 시달리는 마치 노예와 같은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그들은 체계적인 군사교육과 훈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어중이떠중이들입니다. 그런데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있는 40세의 모세가 그들의 세력을 모아서 수도로 쳐들어가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10년 이상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 있는 대(大)영웅 투트모세3세입니다. 그리고 바로의 군대는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입니다. 그 전쟁의 결과는 불 보듯이 뻔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희생이 엄청날 것이며 그 피의 결과는 죽음 뿐입니다. 또 하나는, 애굽에서 도망자가 되어 국경을 벗어나 멀리 아라비아의 서북지역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의 양치기 생활을 한 끝에 드디어 모세는 젊은 날의 야망이 전부 사라지고 이제는 한사람의 힘없는 늙은이가 되어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형편의 모세를 애굽제국의 수도로 보내어 젊은 바로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하게 하면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창조주 여호와의 능력을 크게 발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세에게는 젊은 완력도 군사적인 뒷받침도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세력도 없습니다. 오로지 여호와의 도우심과 그 전능하신 능력만이 애굽 땅에서 재앙으로 나타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과 약속의 땅 정복이란 여호와의 뜻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실현되기 위하여 창조주의 전능하신 능력이 역사적인 개입으로 발휘가 된 결과인 것입니다;
넷째로, 40세에 청운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좌절해버린 모세가 이방지역 미디안 땅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치기로 40년을 지내는 동안에 완전히 꿈을 잃어버린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언약의 성취와 사명자의 길은 이제 자신에게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옷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인간적인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있는 80세의 모세를 위대한 여호와의 사자로 일으켜 세우는 여호와의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똑똑하게 알려주십니다. 홀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그 이름 여호와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떠한 피조물도 여호와의 뜻에 굴복할 수밖에 없으며 저항을 할 때에는 그 전능하신 능력의 발휘로 멸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고 자신의 생각을 창조주의 말씀의 뜻에 맞추어 살아간 믿음의 조상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조상의 생애와 교훈을 물려받은 요셉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애굽의 총리로 살아갔습니다. 그들 믿음의 조상과 열조들에게 주어진 여호와의 언약이 이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적용이 되어 나갈 것임을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서 약속한 것입니다.
(3) 셋째, 40년전에 모세가 동족들을 규합하여 바로에게 대항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동족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징크스를 지니고 있는 모세를 출애굽의 지도자로 파송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동족들의 힘을 결집하여 최고지도자 모세에게 향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일을 전부 그의 친형 아론에게 맡기고자 하십니다. 그래도 모세가 반신반의하면서 실패자의 체념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신위적인 능력의 일부를 공개하여 줍니다. 모세의 목전에서 여호와는 무생물인 마른 지팡이로 살아 있는 생물인 뱀도 만드시고 불치병인 나병도 발생시키고 또한 낫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능력이 발휘가 된 지팡이도 모세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모세가 드디어 용기 백배하여 애굽으로 들어가고자 결단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이드로는 이름이 아니고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의 호칭임. 따라서 이드로의 집에서의 이름이 르우엘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친구임, 출2:18)의 양 떼를 치더니(데릴사위이며 양치기인 모세는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옛날의 야곱처럼 자신의 양 떼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양 떼를 치고 있음, 창30:25-30. 그 정도로 그는 가진 재산이 없는 상태임), 그 떼를 (미디안)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르비딤 광야에 있는, 출17:1, 6) 하나님의 산 호렙(이글의 저자인 모세가 처음으로 여호와를 만난 산의 이름을 호렙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애초의 그의 사명은 동족을 해방하여 호렙 산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음, 출3:12, 17:6, 9, 18:5. 그런데 장인 이드로가 부디 미디안 땅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였기에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 최남단의 시내 산으로 이동한 것임, 출18:12, 27, 19:1-2)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천사를 의미하고 있음)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모세)가 (멀리서) 보니 떨기나무(סְּנֶ֖ה 히브리어 ‘스네’는 가시나무를 말하고 있음)에 불이 붙었으나, (한참이 지나도) 그 떨기나무가 (불에 타서)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2절, 모세가 처음에는 천사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대화를 나누어 보니 그 정체는 천사가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있는 것임).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여호와가 임재하신 그곳이 거룩한 것임)이니 네 발에서 (이 세상의 먼지가 묻어 있는) 신을 벗으라(창17:1, 여호와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성도는 자신의 세속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거룩한 공의의 원칙과 아가페 사랑을 실천해야 함).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2:24-25, 믿음의 조상들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구원을 간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의미하고 있음).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출33:20, 20:18-19)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2:23-25), 8. 내가 내려가서(인간세상의 역사에 개입하여)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창15:13-21,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말하고 있는 것임)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나의 사자로 애굽에)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운다는 것임).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동족들이 모세를 버렸으며 애굽의 바로가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임, 출2:14-15)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여호와께서 영적으로 동행하시기에 이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임, 요14:16-20, 행1:8, 롬8:1-4, 37-39).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출17:1, 6, 르비딤 광야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여호와의 말씀은 3위1체 하나님께서 성도와 영적으로 동행하심으로 반드시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된다는 것임, 사55:8-13, 요14:16-20, 마28:18-20)”(출3:1-12);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이드로는 이름이 아니고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의 호칭임. 따라서 이드로의 집에서의 이름이 르우엘이며 그 의미는 하나님의 친구임, 출2:18)의 양 떼를 치더니(데릴사위이며 양치기인 모세는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옛날의 야곱처럼 자신의 양 떼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양 떼를 치고 있음, 창30:25-30. 그 정도로 그는 가진 재산이 없는 상태임), 그 떼를 (미디안)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르비딤 광야에 있는, 출17:1, 6) 하나님의 산 호렙(이글의 저자인 모세가 처음으로 여호와를 만난 산의 이름을 호렙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애초의 그의 사명은 동족을 해방하여 호렙 산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음, 출3:12, 17:6, 9, 18:5. 그런데 장인 이드로가 부디 미디안 땅을 떠나달라고 요청하였기에 여호와의 허락을 얻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 최남단의 시내 산으로 이동한 것임, 출18:12, 27, 19:1-2)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천사를 의미하고 있음)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모세)가 (멀리서) 보니 떨기나무(סְּנֶ֖ה 히브리어 ‘스네’는 가시나무를 말하고 있음)에 불이 붙었으나, (한참이 지나도) 그 떨기나무가 (불에 타서)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2절, 모세가 처음에는 천사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대화를 나누어 보니 그 정체는 천사가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이심을 깨닫고 있는 것임).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여호와가 임재하신 그곳이 거룩한 것임)이니 네 발에서 (이 세상의 먼지가 묻어 있는) 신을 벗으라(창17:1, 여호와 앞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성도는 자신의 세속적인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거룩한 공의의 원칙과 아가페 사랑을 실천해야 함).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2:24-25, 믿음의 조상들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구원을 간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기도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의미하고 있음).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출33:20, 20:18-19) 얼굴을 가리매”(출3:1-6);
1) 미디안 제사장의 양떼를 7딸들이 목축하고 있을 때에 모세가 들판의 우물가에서 그녀들에게 도움을 주게 됩니다(출2:16-17).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 집에 식사초대를 받게 되고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에 그 미디안 제사장의 이름이 ‘르우엘’(רְעוּאֵ֖ל)입니다(출2:18). 그 뜻은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사정이야기를 듣게 된 르우엘이 나그네인 모세를 자신의 맏사위로 삼고 미디안 땅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출2:21).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하고 장남 ‘게르솜’까지 얻게 됩니다(출2:22).
2) 모세는 젊은 바로 투트모세3세가 강력하게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기에 그보다 연상인 자신은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으로 알고서 체념합니다(출2:15, 4:19). 따라서 장인 르우엘의 양떼를 치면서 4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출7:7, 행7:23). 그렇지만 그 양치기 생활은 고달프기 그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그저 처자식과 함께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정도이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도무지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모세는 40년이 되어도 여전히 장인의 양떼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출3:1).
3) 또 하나는, 장인과 사위의 사적인 관계가 어느 사이에 공식적인 주인과 머슴의 관계로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바뀌어 있습니다(출18:19). 그 점을 말하고 있는 대목이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라고 하는 구절입니다(1a). 집에서 부르고 있는 미디안 제사장의 편한 개인적인 이름 ‘르우엘’이 아니고 모세가 의도적으로 그 직책을 말하고 있는 ‘이드로’라고 하는 공식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의 저자인 모세는 그러한 관계의 변화를 그 이름자의 차이로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그렇다면 르우엘은 어떻게 7딸만 가진 힘이 없는 노인에서 당당한 제사장의 이름으로 지금 행세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훗날 모세가 출애굽한 동족들을 이끌고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로 그 다음에는 신(Zin)광야를 넘어서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방으로 진입하고자 계획하고 있을 때에 그의 길 안내를 맡아준 처남 ‘호밥’의 존재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민10:29). 장인 이드로가 유목민인 겐 족속의 여인과 재혼하여 아들 ‘호밥’을 얻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삿1:16);
5) 모세가 장인의 양떼를 몰고서 미디안 땅의 서쪽에 있는 르비딤 광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1b). 광야에 존재하는 약간의 물과 풀을 따라서 이동하는 유목생활이 고달프지만 시간만은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호렙 산 중턱에서 가시나무 떨기(행7:30)에 불이 붙어 있는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습니다(2b). 마른 가시나무 떨기에 붙은 불이기에 금방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고서 조금 이동을 하다가 되돌아 보았더니 그것이 아닙니다. 여전이 불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2c).
6)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인 천사가 신위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낸 불이라는 사실을 그때에는 모세가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2a). 참으로 신기한 광경입니다. 호기심이 동한 모세가 동료에게 잠시 양떼를 맡기고 호렙 산 중턱으로 올라갑니다(3절). 현장에 도착하자 느닷없이 모세가 접근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던 여호와의 음성이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4a). 그날 그곳에서 모세가 여호와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본문 제3장에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처음의 대화가 다음과 같습니다;
7) 첫째, 모세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인생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정확하게 모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4b). 모세는 정직하게 대답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습니다(4c). 둘째, 훗날 선민 유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에 먼지가 묻은 손과 발을 깨끗하게 물에 씻습니다(눅7:44, 11:38).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자 하면 그 앞에서 먼저 세상의 먼지가 묻어 있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5절). 환언하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을 버리고 창조주의 거룩하신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때에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창12:1-5).
8) 셋째, 모세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정체가 믿음의 조상들이 섬긴 그들 인생의 창조주이며 주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6a). 그 말을 듣자 모세는 자신의 목숨의 사활을 주장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금 현신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서 본능적인 피조물의 두려움 때문에 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6b). 훗날 시내 산 정상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소원하였을 때에 주의사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면 피조물인 인간은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출33:20). 그와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최고지도자 모세 혼자 시내 산 정상에 올라가서 여호와를 만나 그 말씀을 받아오면 자신들이 그대로 지키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출20:18-19);
(2)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2:23-25), 8. 내가 내려가서(인간세상의 역사에 개입하여)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창15:13-21,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땅을 말하고 있는 것임)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나의 사자로 애굽에)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의 사명자로 세운다는 것임).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동족들이 모세를 버렸으며 애굽의 바로가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임, 출2:14-15)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여호와께서 영적으로 동행하시기에 이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임, 요14:16-20, 행1:8, 롬8:1-4, 37-39).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출17:1, 6, 르비딤 광야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여호와의 말씀은 3위1체 하나님께서 성도와 영적으로 동행하심으로 반드시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된다는 것임, 사55:8-13, 요14:16-20, 마28:18-20)”(출3:7-12);
1) 육신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피조세계에 살고 있는 피조물인 사람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지만 영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러한 제약을 받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우주 바깥에 보좌를 가지고 계시며 광속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 출입하시는 여호와의 생각을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까?(엡4:6)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2)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은 두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피조물인 사람이 꼭 필요한 여호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음성으로 여호와의 생각을 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 순서가 먼저 선지자를 불러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눈과 코와 머리 그리고 발의 기능을 빌려와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3) 그러한 맥락에서 여기서는 제7절에서 ‘보고, 듣고, 알고’라는 3가지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①눈으로 고통의 현장을 보고, ②그 귀로 백성들의 고통소리를 듣고, 또한 ③여호와의 머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심을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실태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8절). 그것이 직접 발로 뛴 여호와의 역사개입을 말하고 있습니다.
4) 그러한 선례가 사실은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에 불심판을 내리기 전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장막을 방문하였으며 2천사를 소돔성에 파송한 경우입니다(창18:1-21).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구원할 자를 구원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출33:19). 소돔성에 살고 있는 롯의 가족에 대한 여호와의 조치가 그러합니다(창19:16). 여기서는 모세를 출애굽의 사명자로 삼고 천사를 동행하게 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여호와의 언약을 바야흐로 실현하고자 하십니다(8b-10절).
5)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피조물인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경험과 식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현실적이고 명백한 이 세상 권력의 위협은 직접 피부로 당장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동족들이 모세를 버렸으며 애굽의 바로가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임, 출2:14-15);
6)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영적으로 동행함으로써 그의 모든 약점을 전부 제거하고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게 할 것입니다(12a). 모세는 동족을 해방하여 호렙 산으로 데리고 오는 전 과정을 통하여 여호와의 놀라운 도우심을 철저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12b). 동일한 취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사도와 제자들에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둘째로,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그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사실은 모세가 그 점이 궁금한 것임)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그 유명한 ‘I am who I am’임. 그 의미는 만들어진 존재인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라는 것임. 모세의 궁금증을 먼저 해결해주고 있음).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그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주라는 것임). 15. (창조주)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초월적인 창조주의 존재성보다는 직접 믿음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고서 그 약속에 따라 그들의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한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믿음의 조상들처럼 그 언약에 따라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동일하게 역사하시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임).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한꺼번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로들을 모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면 그들 장로들이 12지파 백성들에게 전부 전달할 것임)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선지자인 나 모세에게 믿음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타나 이렇게 너희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임), 내가 (기도소리를 듣고서, 출2:23-25) 너희를 돌보아(직접 방문하여, 창21:1)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창15:14-21, 46:3-4,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그대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장로들을 대동하고 바로를 방문하라는 것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애굽에서 노예취급을 받고 있는 히브리인이므로 그 수호자인 여호와도 멸시를 받을 수 있음)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애굽 바깥으로 나가는 구체적인 출애굽의 요청임).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미래를 이미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이 완강하게 버틸 것임을 알고 계심. 따라서 재앙을 내릴 것임을 예고하심),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가장 강력한 재앙을 만난 다음에야 바로가 두려워 떨면서)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일종의 노예생활에 대한 배상금이며 그 가운데 훗날 여호와께 성막을 짓기 위하여 바치는 물품이 벌써 들어 있음, 출25:3, 창14:20)”(출3:13-22);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3.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그 정체성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사실은 모세가 그 점이 궁금한 것임)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그 유명한 ‘I am who I am’임. 그 의미는 만들어진 존재인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라는 것임. 모세의 궁금증을 먼저 해결해주고 있음).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그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주라는 것임). 15. (창조주)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초월적인 창조주의 존재성보다는 직접 믿음의 조상들과 언약을 맺고서 그 약속에 따라 그들의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한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기에)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믿음의 조상들처럼 그 언약에 따라서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동일하게 역사하시겠다는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임)”(출3:13-15);
1) 모세는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출생배경과 성장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하나인 레위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젖을 뗄 때까지 히브리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므로 출생성분으로 보아서는 히브리인 이스라엘 자손입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제국의 상속녀가 되는 핫셉수트 공주에게 입양되어 바로 궁에서 공부하면서 40세가 될 때까지 정치지도자로 살았습니다.
2) 따라서 모세는 겉으로 보면 완전한 애굽인 왕족입니다. 그와 달리 내적인 혈통으로 보면, 히브리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후손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거의 애굽인 왕족입니다. 그러한 모세가 여호와의 뜻으로 출생의 비밀이 자신을 지배하는 중년과 노년시절을 맞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투트모세3세의 회군으로 양어머니인 여자 바로 핫셉수트가 실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그만 동족들이 중노동 현장에서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고센 땅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3) 모세는 그곳에서 동족들의 세력을 규합하여 은밀하게 반란을 일으키려고 획책합니다. 그러나 애굽인 감독을 쳐죽이고 암매장한 사실이 탄로나게 되자 애굽을 탈출하여 미디안 땅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 같은 모세의 경력과 경험에 비추어 보게 되면, 그가 호렙 산에서 만난 믿음의 조상들의 하나님에 대하여 그 정체성을 자세하게 밝혀달라고 다시 한번 요청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4) 예를 들어 보면, 애굽제국에 있어서는 주신(主神)이 둘이나 됩니다. 하(下)이집트에서는 수도 멤피스의 북쪽에 있는 헬리오폴리스의 신전에서 태양신 ‘라’를 주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통일왕조인 제12왕조와 제18왕조가 모두 상(上)이집트 테베에서 북진하여 천하를 통일합니다. 따라서 테베의 주신인 바람의 신 ‘아몬’이 또 하나의 주신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 둘을 합하여 편하게 ‘아몬라’신을 주신으로 섬긴다고 말합니다.
5) 그런데 모세의 경우에는 출신배경으로 보면 믿음의 조상들이 섬긴 여호와(אֶֽהְיֶ֑ה)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점은 미디안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가 여호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모세가 이제는 여호와신앙에 더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여호와의 선지자가 되어 애굽의 고센 땅에 살고 있는 동족들을 만나는 경우 자신의 사명과 파송의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6) 그 이유는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서 400년 이상 살아오는 동안에 동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만 애굽의 주신인 ‘아몬라’와 여러 신들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모세가 여호와와 아몬라 신의 차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설명해주는 것이 가장 여호와의 뜻에 맞는 것일까요? 그 점을 모세가 심각하게 질문하고 있습니다(13절). 모세의 질문이 있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가지고 간단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7) 그 내용을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이 본래 ‘I am who I am’이라는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한 창조주’라는 의미입니다(14절). 그러므로 그 앞에 서게 되면 애굽의 주신과 모든 신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관념적으로 만들어진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14b)”. 그 다음에 여호와는 자신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의 주인이며 그들의 인생길을 영생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의 길로 인도하였다는 사실을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설명하여 주라고 명령하십니다(15a).
8) 모세는 동족을 찾아가서 그 점을 말하면서 자신이 출애굽의 지도자로 여호와에 의하여 세움을 받았다고 진술해야 합니다(15b). 그것이 모세의 영적인 권위의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 점은 진리의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아서 본문에서는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15c)고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16. 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한꺼번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로들을 모아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면 그들 장로들이 12지파 백성들에게 전부 전달할 것임)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선지자인 나 모세에게 믿음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타나 이렇게 너희들에게 전달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임), 내가 (기도소리를 듣고서, 출2:23-25) 너희를 돌보아(직접 방문하여, 창21:1)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창15:14-21, 46:3-4,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한 그대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장로들을 대동하고 바로를 방문하라는 것임),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애굽에서 노예취급을 받고 있는 히브리인이므로 그 수호자인 여호와도 멸시를 받을 수 있음)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애굽 바깥으로 나가는 구체적인 출애굽의 요청임)”(출3:16-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는 사명은 다음 4가지 용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①첫째가, 애굽의 고센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9절). ②둘째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라는 것입니다(16a). ③셋째가, 장로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16b-17절). ④넷째가, 장로들과 함께 바로를 찾아가서 출애굽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18절). 이상 4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여호와의 명령을 듣자 모세가 즉시 그대로 실시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2) 그 이유는 이미 제11-12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동족들이 모세를 버렸으며 애굽의 바로가 그를 잡아서 죽이려고 한다는 것임, 출2:14-15)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여호와께서 영적으로 동행하시기에 이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임, 요14:16-20, 행1:8, 롬8:1-4, 37-39).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출17:1, 6, 르비딤 광야의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여호와의 말씀은 3위1체 하나님께서 성도와 영적으로 동행하심으로 반드시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된다는 것임, 사55:8-13, 요14:16-20, 마28:18-20)”(출3:11-12).
3) 약간의 풀이를 다시 해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고센 땅에서 모세가 겪은 실패와 투트모세3세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호와가 끝까지 모세와 동행하여 그 모든 일을 이루어 무사히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켜 호렙 산까지 데리고 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해주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인 모세의 생각에는 그것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미래적인 성격의 영적 도우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모세는 눈에 보이는 조력자 그것도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붙여 주겠다는 여호와의 약속을 듣고자 합니다(출4:10, 13). 그 말씀을 듣고나서 모세가 비로서 그 사명을 맡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출4:14-16).
4) 참고로, 모세가 훗날 친형 아론의 도움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소집하여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합니다(16절). 그때 모인 장로의 수에 대해서는 출애굽을 하고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70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출24:9-11). 출애굽 당시 장정만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60만명입니다(출12:37). 그렇다고 하면 백성의 수는 그 4배수인 240만명 가량입니다. 그들은 12개 지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지파에는 6명 정도의 장로가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한사람의 장로는 남녀노소 3만명 이상의 동족을 돌보고 있는 그들의 어른이며 대표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장정 1천명을 거느리고 있는 천부장 8명이 한사람의 장로를 보좌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5) 제17절에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등 원주민 6족속이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점은 8절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약 600년전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그 부족의 수가 10입니다(창15:19-21, 구체적으로 겐 족속, 그니스 족속, 갓몬 족속, 헷 족속, 브리스 족속, 르바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기르가스 족속, 여부스 족속 등임). 그와 같은 차이는 아브라함 시대의 10족속이 6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절반인 5족속만 가나안 땅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 그리고 갓몬 족속은 떠돌이 유목민들이고, 르바 족속은 거인족으로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기르가스 족속은 동쪽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히위 족속은 야곱시대에 가나안의 중심지 세겜 성을 차지하고 있는 강한 족속입니다(창34:2).
(3) “19.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미래를 이미 알고 계시는 여호와께서는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이 완강하게 버틸 것임을 알고 계심. 따라서 재앙을 내릴 것임을 예고하심), 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가장 강력한 재앙을 만난 다음에야 바로가 두려워 떨면서) 너희를 보내리라.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일종의 노예생활에 대한 배상금이며 그 가운데 훗날 여호와께 성막을 짓기 위하여 바치는 물품이 벌써 들어 있음, 출25:3, 창14:20)”(출3:19-22);
1) 여호와는 영이시며(요4:24)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창1:1-2:9). 태초에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배치를 결정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은 정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진행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으며 일정한 공간의 칸막이에 갇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피조물은 하늘의 천체들이 우주선을 내보내어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를 살아오고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향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창1:14-18). 그리고 동서남북과 높이로 형성이 되는 일정한 공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창1:2, 6-10, 20-21).
2) 그와 같은 시공간적 제한을 벗어나는 존재가 영입니다. 특히 창조주 여호와는 그러한 영적인 존재까지 통제하는 창조질서의 감독자이며(창1:2, 사14:12-15) 필요한 경우에는 새로운 창조까지 할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입니다(창17:1, 사65:17-18). 그와 같은 맥락에서 말하자면, 피조세계의 일개 제국의 황제에 불과한 바로는 창조주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게 되면 그 요구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창조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는 범신론적 이방제국의 권력자들입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존재와 전능성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3) 따라서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여호와의 직접적인 재앙이 발생할 때까지는 완강하게 저항합니다(19절). 그러나 모든 장자의 죽음이라는 여호와의 두려운 재앙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자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합니다(20절). 더구나 히브리인들이 요청하는 물품까지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습니다(21-22절). 재앙덩어리를 빨리 국경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 자신들의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모세에게 미리 알려주시는 참으로 친절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4) 그러한 친절을 예언으로 베푸시는 여호와의 목적에 대해서는 훗날 선지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예로부터 네게 알게 하였고,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을 네게 듣게 하였느니라. 그것을 네게 듣게 하여 네가 이것을 내 신이 행한 바요, 내가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명령한 바라 말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6.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隱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것)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7.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사48:5-7).
결론적으로, 미디안 땅에서 장인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지내고 있는 80세의 노인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나타나십니다. 모세가 양떼를 몰고서 멀리 서쪽의 르비딤 광야에 있는 호렙 산을 지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가시나무 떨기에 불이 활활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불이 계속 타고 있습니다. 마른 가시나무가 무슨 화력이 있어서 오랜 시간 불이 붙어 있는 것일까요? 그 비밀을 알아보기 위하여 동료에게 양떼를 맡기고 접근한 모세가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그 불을 피운 존재는 천사이며 그 불길 속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늙은 모세가 80세에 호렙 산 불꽃 속에서 여호와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호렙 산으로 데리고 오는 사명을 맡게 됩니다.
어째서 여호와께서는 혈기가 왕성하고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겠다고 고센 땅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던 40세의 모세에게 노예해방의 길을 열어주지 아니하시고 꿈이 사라진 80세의 노인 모세를 불러서 그 사명을 맡기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40년 전에 동족의 배신을 경험하고 투트모세3세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멀리 미디안 땅까지 도망하여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80세의 노인 모세를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실패와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들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나름대로 본론을 음미하면서 다시 한번 그 대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모세를 일으켜 세워서 민족해방과 동족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사명자로 세우시는 여호와의 은혜가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