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교회의 첫 두 감독 - 야고보와 시므온(작성자; 갈렙)
초대교회 중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내리심으로 인해 형성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는 2,000년 교회사의 원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원뿌리가 되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감독은 누구였을까요?
초대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은 <주님의 동생 야고보>이고, 2대 감독은 <글로바의아들 시므온>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초대 감독 <주의 형제 야고보>
유세비우스는 예루살렘 교회의 제1대 감독은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제1대 감독은 얼핏 생각하면 베드로였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예상외로 열두 사도 중에 들어가지도 않는 야고보였던 것입니다.
어떻게해서 감독이 되었는지는 성경에도 자세한 언급은 없지만, 금세기에 들어와서 발견된 도마복음서 12장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에게 묻기를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떠나실것을 우리는 아나이다.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될것입니까?"하자, 주님께서는 "너희는 의인 야고보에게로 갈 것이니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 유훈을 받들어 예루살렘 교회에서 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감독으로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유세비우스는 1대 감독으로 <주의 동생 야고보>를 기록하여 놓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는 흔히 <주님의 형제>, 또는 <의인 야고보>로 불리워졌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바울이 1차 여행 후에 안디옥교회에 들어온 할례파들의 문제를 사도들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서 만족할 만한 해답을 받고 내려온 적 있으며, (행15:13-21), 바울이 3차 여행을 끝내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도 이 야고보를 만나서 그의 조언을 듣고 결례를 행하기도 합니다.(행21:18-26)
그 야고보가 바로 이 야고보입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써서 남겨줌으로써 우리에게 실천적 신앙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모친 마리아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자로써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털옷을 입지 않았고 베옷을 입었으며, 홀로 성전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도생활로 인하여 그의 무릎은 낙타의 발처럼 딱딱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주후 37년에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가, 70년에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의 순교를 당하여 죽었는데, 그에 대해서 유세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총독 벨릭스에게 고소하여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에 감독으로 있는 야고보를 핍박하였습니다.
먼저 그에게 성전의 익면에 올라가서 예수에 대한 당신의 진실한 입장을 백성들에게 전해서 더이상 예수에게 미혹되지 않게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야고보는 그 곳에 올라가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왜 당신들은 나에게 인자이신 예수에 관해 묻습니까? 그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전능자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며, 장차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매우 실망하여 야고보를 아래로 밀쳐 뜨렸는데, 죽지 않자 돌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 때에 야고보는 "오, 주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행위를 알지못하나이다." 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레갑이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소리치기를 "그만 두시요. 저 의인은 지금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며 만류하였으나 어느 축융업자가 피륙을 두드릴 때 사용하는 곤봉으로 야고보의 머리를 침으로써 순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인 야고보의 순교후 곧바로 예루살렘은 베스파니안 황제에 의해 함락되었는데, 그에 대하여 유세비우스는 요세푸스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들(예루살렘 함락)은 의인 야고보를 죽인 죄에 대한 보복으로써 유대인들에게 발생하였다. 야고보는 그리스도라 불리우는 사람의 형제로써, 지극히 의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를 살해했다.>
이렇게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써 30여년 이상 섬기다가 돌과 몽둥이를 맞고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제 2대는 <글로바의 아들 시므온>이다.
유세비우스는 예루살렘 교회의 2대 감독은 시므온이라 말하면서 유세푸스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이들은 야고보의 후계자를 결정하기 위해 함께 의논한 결과 만장일치로 글로바(Cleophas)의 아들 시므온(Simeon)을 적임자로 선출했다. 시므온은 주님의 사촌형제였다고 한다. 헤게시푸스(Hegesippus)는 글로바가 요셉의 형제였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므온도 예수님의 육신적 사촌동생인데, 왜냐하면 글로바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주후 70년에 감독이 되어 29년 동안 교회를 섬기다가 97년에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베스파니안 황제는 <다윗 족속들을 모두 찾아내어 유대인들 중에 왕족이 하나도 남지 못하게 하라>고 온 제국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유대인들, 특히 다윗의 후손들에게는 가혹한 박해가 가해지게 되었는데 이 박해는 디투스 황제와 도미티안 황제를 거쳐 트라얀 황제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시므온이 순교를 당한 것은 트라얀 황제 때입니다. 주후 98년에 한 이단자에 의해 <시므온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고발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시므온은 재판관에게 끌려가서 많은 고문을 받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가 120세였으므로 재판장도 그의 불굴의 신앙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39대 까지의 예루살렘 감독들을 유세비우스는 기록하였는데, 그 첫째와 두째의 감독이 이렇게 주님의 형제와 사촌이 순교의 피를 뿌려서 시작된 교회라는 특징을 가졌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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