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사회에서 무시당한 소외자들의 기도와 자칭 의인임을 자랑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기도가 성전을 가득 채울 때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 임하는가”(눅18:1-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9. 26. 01:41

제목; “사회에서 무시당한 소외자들의 기도와 자칭 의인임을 자랑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기도가 성전을 가득 채울 때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 임하는가”(18:1-17)

설교일; 주후 2024 12 22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9 26일 목요일 작성)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오경 가운데 출애굽기는 애굽제국의 동북면 고센 땅에서 100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하여 시내광야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으로 양육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9:4-6).

출애굽기 제12장에 따르면 야곱 곧 이스라엘의 후손은(32:28, 35:9-13) 애굽에서 430년을 거주하다가 주전 1,446년에 비로소 애굽을 탈출하게 된 것으로(15:16) 모세가 2차례나 기록하고 있습니다(12:40-41).

그러나 그 동안에 고센 땅에 건설하는 대대적인 병참기지와 신도시 건설에 부역한 기간은 100년 남짓입니다(1:8-14). 그와 같이 볼 수 있는 이유는 애굽의 관련역사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애굽제국에서 오랜 세월 수석총리를 지낸 요셉이 7년 연속 풍년에 얻은 잉여농산물을 전국에 비축하여 그것으로 7년 연속 흉년에 시달리는 애굽의 백성은 물론 주변국의 백성들을 구제합니다(41:39-57). 그러나 그것은 공짜가 아닙니다. 국내외의 백성들의 돈과 재물을 받고 양식을 판 것이며 나중에는 그들의 토지와 노동력까지 전부 저당 잡고서 국내외의 백성들을 연속 흉년에서 구휼한 것입니다(47:13-20). 그 결과 바로의 절대권력은 요셉총리의 정책으로 인하여 한없이 거대해지고 만 것입니다(47:23-26). 그로 말미암아 요셉이 노년에 총리직에서 물러나지만 당시 애굽 ()왕국 제12왕조의 바로들은 한결같이 그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요셉의 형제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영위하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습니다(50:6-14, 22-26,  1:6-7. 특히 1:8에 대한 반대해석).

(2)  둘째, 통일왕조인 제12왕조가 애굽의 총리를 지낸 요셉이 별세한지 3년 후인 주전 1,802년경 붕괴되고 제13왕조가 대두하지만 77년후에는 제14왕조가 발생하여 애굽의 역사는 분열왕국시대인 제2중간기에 접어듭니다. 그와 같은 분열의 시대에 동방의 유목민 힉소스인들이 선진무기체계인 강력한 활과 철제마차로 무장하고서 애굽 땅을 침입합니다. 외세인 셈족 힉소스인들이 주전 1,650년경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수도 아바리스(Avaris)를 고센 땅에 두고서 애굽에 제15왕조를 세웁니다. 그리고 힉소스의 왕이 애굽을 다스리는 바로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들은 같은 셈족으로서 고센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우대합니다. 그 이유는 힉소스인에 비하여 원주민 애굽인의 수가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힉소스인들이 ()이집트에서 발흥한 제17왕조 모세왕가에 의하여 동쪽국경 바깥으로 내쫓기게 되는 주전 1,570년까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힉소스인들과 잘 어울려서 지낸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3)  셋째, 동방의 목축민족 힛소스인들을 동쪽국경 바깥으로 내쫓은 제17왕조의 마지막 바로 카모세의 동생인 아흐모세는 3년후 제18왕조를 개창하고서 천하통일에 나섭니다. 드디어 주전 1,550년경 제18왕조의 아흐모세1세가 애굽을 통일하고 ()왕국 모세왕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천하를 통일하게 된 모세왕조는 동방 힉소스인들의 재침을 예방하고자 동부국경지대의 군사력을 크게 확충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힉소스인들이 애굽제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고자 고센 땅에 아예 신도시를 건설하고 막강한 병참기지를 건설합니다. 그 일에 100년 동안 200만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족속을 번갈아 인부로 동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전 1,550년경부터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주전 1,446년까지 1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처럼 고달픈 중노동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한마음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오경(五經)의 저자인 모세가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 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3-25).

출애굽의 역사를 실시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여호와께서는 민족해방의 사명을 맡기고자 모세를 아라비아 반도 서북면에 자리잡고 있는 미디안 광야 호렙 산 중턱으로 부르십니다(3:1-5).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7-10).

그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제18장 첫머리에 기록되고 있는 예수님의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18:1-8)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첫째, 애굽제국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이 본문 예수님의 비유에 있어서는 과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3a). 그 이유는 선민사회에서 과부는 율법규정에 의하여 구제의 대상이지만(14:29)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버림을 받고 생계의 수단인 토지의 소유권마저 사라져서 마치 종과 같은 신세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과부는 부디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3b, 22:22-23).

(2)  둘째, 그 옛날 애굽제국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100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면서 믿음의 열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구원을 부르짖고 있습니다(2:23-25). 그런데 선민 유대인사회에 살고 있는 본문의 과부는 아들이 없는 경우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에 따라 생계가 막막해지고 사회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디 살길을 마련하여 주고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지 아니하도록 만들어달라고 재판장을 찾아가서 계속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18:3). 그렇다면 재판장은 모세의 율법규정에 따라 선민사회는 과부를 구제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판결해야 합니다(14:29).

(3)  셋째, 그러나 선민사회에서는 그 일이 수백 년이 지나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당시에도 그러합니다(7:12-13). 그러므로 예수님은 훗날 재림하여 그 일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여기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7-8, 22:22-23).

예수님이 파악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사회의 실태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히브리경전의 내용을 생활율법으로 백성들에게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는 랍비를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들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선민사회에서 생계의 수단이 사라지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과부들이 인간소외의 현실을 부디 고쳐달라고 수백 년간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는데 그 소리를 서기관과 랍비를 위시한 바리새인들이 전혀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을 예수님이 신랄하게 여기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18:9-14)로 알기 쉽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비유에 비추어보면, 여호와의 구원의 대상은 자칭 의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바리새인과 기타 유대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눈물로 회개하는 죄인과 세리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점과 관련하여 예수님이 한가지를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장차 누구에게 임하며 누가 말세에 구원의 대상이 되는가?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소자라고 하여 윽박지르고 있는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교훈의 말씀을 덧붙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먼저 옮겨봅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아무 조건이 없이 그저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좋아서 순수하게 그것을 듣고자 하는 사람)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14:28-35,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그렇게 무조건 생명의 아버지를 찾아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고자 소원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향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거기(그 옛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이제는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16b-17);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본문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1. 예수께서 그들(제자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2:23-25, 출애굽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100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한 이스라엘 자손들임을 참조할 필요가 있음) 비유로(이해하기 쉽게)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어느) 과부(선민사회에서 분깃이 없는 과부는 돌봄의 대상임, 14:29)가 있어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과부가 율법사회에서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은 두가지 이유임. 하나는, 아들이 없는 경우 재산을 소유할 수가 없어서 생계의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임. 또 하나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하여 몸을 팔거나 남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니 그 사회적인 천대와 괄시가 너무나 심한 것임)하되, 4. (재판장)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사회적인 소외자들의 원성이 하늘에까지 닿게 되면 비록 경천애민, 敬天愛民 사상이 없는 재판장이라고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다는 것임).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국가도 사회적인 약자의 구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임). 7. 하물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25:40, 예수님이 자신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사회적인 약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22:22-23, “그들(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과부와 고아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여호와의 역사섭리가 그러한 차별과 괄시를 없애는 소득의 재분배 곧 사회보장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완전한 심판은 주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임)”(18:1-8);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예수께서 그들(제자들과 모인 무리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2:23-25, 출애굽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100년이 넘도록 오랜 세월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한 이스라엘 자손들임을 참조할 필요가 있음) 비유로(이해하기 쉽게)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어느) 과부(선민사회에서 분깃이 없는 과부는 돌봄의 대상임, 14:29)가 있어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과부가 율법사회에서 온갖 괄시와 천대를 받고 있는 것은 두가지 이유임. 하나는, 아들이 없는 경우 재산을 소유할 수가 없어서 생계의 위험에 빠져 있기 때문임. 또 하나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하여 몸을 팔거나 남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니 그 사회적인 천대와 괄시가 너무나 심한 것임)하되, 4. (재판장)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사회적인 소외자들의 원성이 하늘에까지 닿게 되면 비록 경천애민, 敬天愛民 사상이 없는 재판장이라고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다는 것임).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국가도 사회적인 약자의 구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임)”(18:1-6);

1)    이 글의 모두(冒頭, 글의 앞머리)에서 설명한 그대로 애굽제국에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100년이 넘도록 조상들의 여호와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의거하여 부르짖고 있습니다(2:23-25, 12:2-3, 15:13-16). 부디 출애굽의 해방을 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2)    그들의 끈질긴 기도가 백 년의 세월이 지나자 여호와가 보낸 모세와 아론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물론 그 두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들을 사용하여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애굽인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3:19-22, 12:29-42).

3)    그와 마찬가지로 믿음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인간들이 그 언약대로 살아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면 반드시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18:1-8)로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계십니다.

4)    첫째, 사회적인 약자이며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죄 된 삶을 살며 때로는 남의 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과부가 멸시와 천대를 견디지 못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부디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돌보심을 허락하여 주시고(14:29) 자신들을 학대하고 있는 사회를 올바로 고쳐달라고 간구 또 간구하고 있습니다(1, 22:22-24).

5)    둘째, 과부의 요청은 선민사회의 재판장을 찾아가서도 되풀이가 되고 있습니다(2-3).  셋째, 재판장은 사회적인 약자를 무시하고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대하여서도 무관심합니다(4). 하지만 사회적으로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과부가 계속 찾아와서 똑같은 내용을 진정하고 있으니 그것이 참으로 귀찮습니다(5).

6)    따라서 정치 및 종교지도자들에게 부디 사회적인 약자를 돌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한마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6). 넷째, 그렇지만 예수님이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당시까지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과부와 고아를 돌보지 아니하는 경우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율법조항(22:22-24)을 우습게 여기면서 도리어 자신들은 종교적으로 의인들이라고 황당한 주장만 늘어놓고 있는 것입니다(18:11-12, 7:30).  

(2)  7. 하물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25:40, 예수님이 자신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는 사회적인 약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22:22-23, “그들(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과부와 고아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여호와의 역사섭리가 그러한 차별과 괄시를 없애는 소득의 재분배 곧 사회보장정책으로 나타나고 있음).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완전한 심판은 주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임)”(18:7-8);

1)    여호와의 역사섭리의 원칙은 예수님이 주장하고 계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 가운데 이미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 여호와는 어느 일방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과 이방인 또는 사회적인 기득권자와 소외자를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모든 피조물 사랑인 공의의 정신입니다.

2)    둘째, 이기적이거나 집단 이기적인 축복을 당장 베풀어 달라고 여호와께 매어 달리는 경우에는 한가지 조건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집단을 사랑하는 만큼 동등하게 다른 민족과 다른 집단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천국복음으로 강조하고 있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3)    주변의 이방인을 원수로 여기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5:43-45)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여호와 앞에 선지자로 그리고 제사장으로 중보기도를 하면서 살아가게 되면(18:22-32)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는 칭찬을 받게 됩니다(22:12, 5:46-48). 그러한 여호와신앙인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대속의 어린양의 속죄의 제사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22:13-14, 1:29).

4)    그와 같은 맥락에서 선민 유대인들은 솔선수범하여 유대사회에서 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분깃이 없는 사회적인 약자들 곧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레위인을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14:29). 그리하지 아니하여 그들의 원한에 찬 기도가 여호와께 계속 상달이 되면 창조주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서 선민들을 내어쫓고 마시겠다는 것입니다(7, 22:22-24);

5)    실제로 그 일이 주후 70년에 역사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군단의 공격으로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110만명의 유대인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이 그 땅에서 쫓겨난 사건입니다(19:41-44, 21:5-6). 그와 같이 선민사회의 멸망을 초래한 것이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멸시와 천대입니다(8a).

6)    그와 같은 선민의 행태는 이방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믿음이 없는 이 세상은 전부 멸망의 대상이 되고(8b) 새로운 하늘과 땅이 창조되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21:1-2, 21-27, 살전4:16-18, 5:24-29).     

둘째로, “9.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고대사회에서 인과응보의 철칙을 믿고 있는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현세에서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의인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음) 다른 사람(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하층민)을 멸시하는 자들에게(인과응보의 철칙에 따라 죄인인 그들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 마땅하다고 기득권자들이 아주 간단하게 사고하고 있는 것임)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율법사회에서 백성들로부터 의인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23:2)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매국노이며 죄인이라고 멸시를 받고 있는 세관원, 5:30) 세리.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7일 동안에 이틀이 아니라 2끼를 금식한다는 것임)하고, 소득의 십일조(철저하게 준수한다는 의미로 향신료의 십일조까지 말하고 있음, 11:42)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죄인으로 치부되고 있는 세관원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딤전1:15)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관원인 세리)(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칭의의 은혜를)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이 세상에서 인위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천국에서)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11).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축복의 안수기도)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는 어린 아기를)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어린 아기보다는 약간 큰 어린아이로 보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①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세대 또는그러한 순수성과 동경심을 지닌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14:28-35,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그렇게 무조건 생명의 아버지를 찾아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고자 소원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향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거기(그 옛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이제는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9-17);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9.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고대사회에서 인과응보의 철칙을 믿고 있는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이 현세에서 부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의인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음) 다른 사람(부와 권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하층민)을 멸시하는 자들에게(인과응보의 철칙에 따라 죄인인 그들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 마땅하다고 기득권자들이 아주 간단하게 사고하고 있는 것임)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율법사회에서 백성들로부터 의인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23:2)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매국노이며 죄인이라고 멸시를 받고 있는 세관원, 5:30) 세리.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7일 동안에 이틀이 아니라 2끼를 금식한다는 것임)하고, 소득의 십일조(철저하게 준수한다는 의미로 향신료의 십일조까지 말하고 있음, 11:42)를 드리나이다 하고”(18:9-12);

1)    욥기를 일부 성경학자들이 영적인 창세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대 족장시대 동방 땅의 부자인 욥이 의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둘입니다; 하나는, 혹시 자녀들이 여호와께 죄를 지었을지 몰라서 잔치가 끝나면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의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그는 의인인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고대사회에서는 의인은 현세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축복으로 부자로 살게 되고 그 반대로 죄인은 여호와의 저주로 가난하게 살게 된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철칙(鐵則)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제사장이며 의인인 욥이 부자로 잘 살고 있다가 그만 하루아침에 건물이 무너져서 자녀 10명이 몰살을 당하고 약탈자들의 침입으로 재산이 전부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게다가 몸에는 피부병이 발생하여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3)    셋째, 그러한 비극과 참상을 보고서 그의 아내는 차라리 그 입으로 여호와를 욕함으로 당장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멀리서 병문안을 온 절친 3명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들먹이면서 부디 숨겨진 죄악을 실토하고 자비로우신 여호와의 용서를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의인인 자신이 어째서 생전에 그와 같은 비극과 참상을 경험하여야 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4)    넷째, 영육 간의 고통 가운데 욥의 소원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직접 만나서 의인인 욥 자신이 죄인처럼 하나님의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여호와의 설명을 듣고서 자신의 생을 마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욥 앞에 현신하여 이 세상을 홀로 창조하신 여호와가 제사장 욥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는 만민을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5)    따라서 욥이 진실로 여호와의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가족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워하게 된 3명의 절친까지 용서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께 중보의 기도는 물론 속죄의 제사를 드려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자 비로소 욥은 자신이 여호와 보시기에 의인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다섯째, 3명의 친구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욥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즉시 그 신원을 회복하여 줍니다(42:10);

6)    갑절의 재산을 주고 다시 10명의 자녀를 주시는 것입니다. 욥이 소천하게 되면 천국에서 그는 영생을 누리며 20명의 자녀를 모두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세와 내세에서 온전한 보상을 넘치게 받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하면서 욥기의 기록이 끝나고 있습니다. 요컨대, 욥기는 두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7)    하나는, 의인은 현세에서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권력자로 그리고 부자로 살아가고 그 반대로 죄인은 저주를 받아 가난한 자로 살아가게 된다고 하는 인과응보의 철칙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역사를 섭리하시는 영이신 여호와는 인간이 갇혀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통찰하면서 피조세계와 천국을 동시에 보고 계십니다.

8)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 서자면 진정한 의인은 욥의 깨달음과 같이 만민을 골고루 사랑해야 하며 그 헌신과 희생에 대하여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온전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신앙고백해야만 합니다(12:1-2);

그와 같은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알기 쉽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9)    더구나 예수님은 친절하게도 인과응보의 철칙을 받아들여서 유대사회에서 권력자와 부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은 여호와 앞에 의인이며 가난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 과부는 죄인이라고 여기며 과부를 멸시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본문에서 한가지 비유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설명하고 계십니다(9).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 바리새인은 예루살렘성전에 들어가서 한쪽에 자리를 잡고서 큰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자기자랑 일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은 죄인인 세리와는 달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의인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기도의 형식을 빌려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10-11).

10)  그가 의인이라는 구체적인 증거가 둘입니다(12); 하나는, 7일 동안에 2끼나 금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a). 또 하나는, 완벽한 십일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b). 모세오경이 정하고 있는 율법상의 십일조에 더하여 탈무드가 규정하고 있는 각종 향신료의 십일조까지 전부 준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1:42). 그와 같은 바리새인의 커다란 기도소리를 듣고 있는 백성들은 그 앞에서 자꾸만 위축이 되며 자신들은 율법에 비추어 죄인이라는 자괴감만이 들고 있습니다;

     

(2)  13. (죄인으로 치부되고 있는 세관원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딤전1:15)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관원인 세리)(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칭의의 은혜를)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이 세상에서 인위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천국에서)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11)”(18:13-14);

1)    예수님 당시 세리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국세를 거두고 있는 세리입니다. 또 하나는, 무역의 관세를 거두고 있는 세관원입니다. 그 가운데 내국세는 로마황제가 속국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관세는 전부 황제에게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대표적인 소비도시입니다.

2)    절기가 되면 순례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어 숙식비가 엄청 비쌉니다. 그러한 ()물가가 세관원들이 매기고 있는 관세가 터무니없이 비싸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선민 유대인들이 그들을 욕하면서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와 같은 속사정을 감안하면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등장하고 있는 세리는 세관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a).

3)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이며 가렴주구를 하고 있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세관원이 성전의 다른 공간에서 큰소리로 기도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소리를 엿듣고 있습니다(11-12). 의인 바리새인의 기도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자신은 여호와 앞에 용서를 받을 수가 없는 큰 죄인입니다. 따라서 세관원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부디 죄인인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여 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3).

4)    예수님이 그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세관원인 세리)(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칭의의 은혜를)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이 세상에서 인위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천국에서)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14:11)”(18:13-14);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의 인위적인 구분과 차별이란 천국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14a). 더구나 인과응보의 철칙을 말하자면 그것은 현세와 천국에서의 상급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14b).

(3)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축복의 안수기도)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는 어린 아기를)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어린 아기보다는 약간 큰 어린아이로 보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①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세대 또는그러한 순수성과 동경심을 지닌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14:28-35,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그렇게 무조건 생명의 아버지를 찾아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고자 소원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향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거기(그 옛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이제는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15-17);

1)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는 한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그 현장에 참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어린 아기를 안거나 등에 업고서 현장에 참석하게 되면 때로는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게 됩니다.

2)    그로 말미암아 장내의 질서유지를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이 때로는 어린 아기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15b). 그렇지만 큰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안수를 자신들이 사랑하는 어린 아기에게 받게 하고자 몰려드는 부모님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15a).

3)    그와 같은 진풍경을 보신 예수님이 갑자기 어린아이를 불러서 앞에 세우고 한말씀을 하십니다(16a);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①어린아이와 같은 미래세대 또는그러한 순수성과 동경심을 지닌 자)의 것이니라”(16b).

4)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14:28-35, 어린아이가 부모를 찾듯이 그렇게 무조건 생명의 아버지를 찾아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고자 소원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의 향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들은) 결단코 거기(그 옛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이제는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17);

결론적으로, 예수님 당시의 과부처럼 사회에서 무시당한 소외자들의 기도가 하늘에 사무칠 때 그리고 바리새인과 같은 자칭 의인임을 자랑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외식적인 기도소리가 성전을 가득 채울 때 여호와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역사를 섭리하시며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본문에서 얻은 결론을 간추려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율법의 내용이 다 성취되도록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섭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이신 여호와의 말씀은 인간이 갇혀서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은 것이고 안과 밖이 같은 것이며 또한 성부 하나님의 말씀과 성자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보혜사 성령님이 진리로 증거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오경에 기록되어 있는 분깃이 없는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와 레위인을 돌보아주어야 한다”(14:29)는 여호와의 율법은 준행해야 하며 만약 율법을 어기고 사회적인 약자들을 괴롭히고 멸시하게 되면 출애굽기 제22장 제22-24절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선민 유대인사회가 여호와의 역사섭리로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후 70년에 다시 맞이하게 되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멸망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말씀은 선민 유대인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선민사회의 역사가 훗날에는 이방인사회에 그대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생명의 부모로 여기고 있는 자들 곧 이 세상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기를 좋아하고 향년을 맞이하면 천국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기를 소원하는 자들에게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서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동경심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바라보며 아무쪼록 끝까지 예수님의 제자 답게 신실하게 복음의 일꾼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