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마가복음 제11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0. 12. 27. 20:23

마가복음 제 11 (6:7-30) <OBS2-11>(손진길 작성)

 

[Q1] 제자들을 떠나 보내면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Power Authority를 주신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권능을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위임하시는 말씀 중 특별히 지팡이신발에 대해서 묵상해보자. 먼저 지팡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l  지팡이는 세상을 이길 힘과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키는 능력의 상징임. 예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이 세상에 성취시키고 있기 때문에(4:1-11) 지팡이로 표현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임. 그리고 그 말씀의 권위가 이 세상에 능력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나의 믿음도 필요한 것임(5:34, 36, 6:8, 9:1-3).

l  이 세상에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행하기 위하여 가져야 될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고 동시에 버려야 될 나의 지팡이가 있음. 가져야 될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음(4:2-5, 8:5). 그것은 꼭 지팡이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님. 그 이유는 모세가 지팡이 대신 손을 사용했지만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임(14:21). 그렇다면 결국 성도들이 바라보아야 될 것은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한 손이라고 하겠음.

 

 [Q2] ‘신발의 의미는 무엇인가?

l  성경은 인간의 신발을 벗고(3:5) 하나님의 신발을 신으라고 말하고 있음(6:15). 그 이유는 인간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임(12:1, 11:8).

l  사도 바울은 평안의 복음을 신발처럼 신고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전도와 선교에 나서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음(6:15). 복음대로 사는 믿음의 길,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길이 하나님의 신발을 신은 것처럼 마음 속 평안과 기쁨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세속적인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처럼 불편하거나 먹고 살기 위하여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님. 그리고 성령과 그리스도의 영이 그 갈 길을 막으실 때에는(16:6-10) 대안을 주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릴 줄 아는 자가 하나님의 신발을 신고 있는 자임. 복음을 생활화하여 길을 가는 자는 인내와 겸손함까지 지니고 있음. 참고로, 거룩한 가난함으로 그리고 충만한 기쁨으로 복음의 길을 걸어간 성 프란시스의 발걸음과 그 고백이 이에 해당될 것임.

 

 [Q3] 인간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고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경우에 발휘될 수 있는가?

l  본문에서 다음 세 가지를 말하고 있음; 첫째,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6:8). 둘째, 하나님의 Authority를 인정하고서 그것을 영접할 때(6:11). 셋째, 예수님 말씀 따라 인생 길을 살아갈 때(6:7, 예수님의 파송 일꾼, 진정한 제자 된 삶) 인간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고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된다는 것임. 예를 들면, 진실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때에 주님의 천하권세가 발휘되는 것과 같은 것임(28:18-20).

l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습 그대로 선교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함께 하고 있음. 그 능력은 먼저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다음에 말씀을 배우고 있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임.

 

[Q4] 세례 요한이 갈릴리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잘못을 질타한 이유와 그 권위의 기반은 무엇인가?

l  헤롯 안디바가 그 이복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는 잘못을 범했음(6:17). 여기서의 빌립은 분봉 왕 빌립(3:1)이 아님. 그리고 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12:1, 23) 누이였으며 아그립바2세의(25:13) 고모였음. 그녀는 삼촌 빌립과 결혼하였다가 다시 위의 삼촌 안디바와 재혼한 것임.

l  그것은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잘못을 범한 것이며 동시에 정치적 타락(Unlawful, 6:18)에 해당됨. 그래서 세례 요한은 사회 정의에 입각하여 헤롯 안디바의 잘못을 강력하게 질타하였던 것임(6:17-18).

 

[Q5] 인간이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인 세례 요한의 사회적 정의와 인간의 도덕성에 비추어 예수님이 위임한 하나님의 Authority Power의 특징은 무엇인가?

l  율법에서 비롯된 것이 인간의 법과 도덕성이라고 볼 수 있음. 따라서 사회적 정의는 율법의 기초인 십계명이나 원시적인 단군의 ‘8조 금법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하겠음.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님.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의 의로운 죽음까지 초래하는 법치국가의 모순, 행위만을 강제하는 율법사회의 모순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임.

l  율법, 사회적 정의, 사회 도덕 등이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의 행위(3:20)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면 복음은 “동기와 행위의 분리”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 사도 바울의 설명 그대로 복음이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회개와 믿음 그리고 마음속 성령의 임재와 그 역사에 기초하고 있는 것임(3:27-28). 그것은 단순한 제도적, 법적인 변화가 아니고 영적인 하나님의 재창조임(65:17-19, 66:22). 그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능력인 것임(3:21-28).

l  불완전한 율법의 작용을 완전하게, 실패한 율법의 적용을 성공작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의 지혜(3:30-31)가 예수님의 말씀과 공생애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 따라서 예수님 닮기가 오늘 날도 제자가 된 자들의 삶의 권위 기반이 되고 있다고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