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26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31. 16:33

창세기 제26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제목; “창세기 제26장에서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의 시행착오를 어떠한 방법으로 크게 줄이고 있는가?”(26:1-35)

설교일; 주후 20231210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25일 화요일 작성)

 

크게 보아 창세기 제26장은 두가지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 시절에 발생한 그랄 땅에서의 사건이 거의 그대로 이삭의 시대에 다시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가나안 땅의 흉년 때문에 아브라함이 두차례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는데 이삭의 경우에는 그것이 한번에 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조금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두차례 이웃나라로 이주하고 있는데 그것이 한번은 애굽으로의 피난이고 그 다음이 블레셋의 그랄평야로 피난한 것입니다. 애굽 이주가 먼저이기에 그것이 창세기 제12장 후반부 제10-20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기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가나안으로 선지자 활동을 위하여 들어간 때이므로 그의 나이 75세인 주전 2,091년경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그때에는 애굽이 아니라 가까운 블레셋 족속들의 그랄평야로 이주합니다. 그에 대한 내용이 창세기 제20장과 제21장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기는 사라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임신하기 직전이므로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이며 주전 2,067년경입니다

(2)  둘째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여 브엘라해로이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가나안 땅에 흉년이 찾아옵니다. 그때가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약관의 나이가 된 시기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에서가 떡과 팥죽을 얻는 대신에 자신이 가진 장자의 명분을 판다는 계약이 나름대로 유효하기 위해서는 그가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하는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25:34). 따라서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의 나이를 20세로 보면, 부친 이삭의 나이가 80세이므로(25:26) 자연히 조부 아브라함의 그랄평야 이주보다는 81년이 늦은 시점 곧 주전 1,986년경으로 추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친 아브라함의 경우와는 달리 당시 이삭은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할 것인지 아니면 인근 그랄평야로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으로 보입니다(26:1).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애굽 땅으로 들어가지 말고 그랄평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정확하게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26:2). 게다가 여호와의 말씀에 이삭이 순종하여 그랄 땅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부친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모든 축복의 언약을 이제는 확실하게 후계자인 이삭에게 계승하게 하고 또한 그대로 발동하여 주겠다는 약속이 생생하게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26:3-5).

(3)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성숙한 여호와신앙인의 모습 3가지를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서 발견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가,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이 안방마님 사라를 사별하자 이제는 후처 그두라와 재미나게 살고 있는 헤브론을 떠나 멀리 남방 350리에 위치하고 있는 브엘라해로이에 가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4:62, 25:11). 그 이유가 두가지로 보입니다; 하나는, 헤브론 성내에 새로 집을 마련하고 젊은 후처 그두라와 아들을 생산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부친 아브라함을 편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 멀리 남쪽으로 이주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브엘라해로이 남쪽에는 바란광야와 수르광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크게 용맹을 떨치고 있는 자가 바로 자신보다 14살이 많은 이복형 이스마엘입니다(21:19-21, 16:13-14). 부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집에서 비정하게 내쳤지만(21:14) 이삭은 그리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내고자 합니다. 그 덕택에 부친 아브라함의 장례식을 두 형제 곧 이삭과 이스마엘이 힘을 합하여 잘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25:9).

2)   둘째가, 이삭이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좋은 습관을 지니고 있습니다(24:63). 약속의 아들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의 믿음은 물론 모친 사라의 여호와신앙까지 물려받은 인물입니다. 그는 부모님이 들려주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이야기를 반추하면서 과연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합니다. 말씀에 대한 사색과 동시에 그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제대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청지기로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창조주 여호와께 항상 기도하는 젊은이가 이삭입니다. 그러한 삶이 계속되고 있기에 그는 브엘라해로이를 떠나 잠시 헤브론 교외지역에 있는 모친 사라가 남겨놓은 장막에 머물고 있는 시기에도 들판에서 습관적으로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24:63).

3)   셋째가, 삶의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경우 이삭은 무엇보다 먼저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여호와의 뜻에 합치하는 것인지를 사전에 기도로써 묻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오늘의 본문 창세기 제26장 첫머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삭은 가나안 땅의 가뭄을 피하여 물이 풍성한 애굽으로 이주할 것인지 아니면 그랄평야로 이주할 것인지를 결정하고자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신앙인이며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하면 당연히 실천해야만 하는 그 사전기도의 절차를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까맣게 잊어버리고 제마음대로 결정하거나 세상적인 판단으로 선택하고 맙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창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애굽으로 들어가고 나중에는 그랄평야로 들어가는 식으로 그냥 발걸음을 옮기고 맙니다. 그가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께 갈 길을 결정하여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 흔적이 별로 발견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약속의 아들 이삭은 여호와께 그 결정을 기도로써 맡기고 있기에 여호와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창세기 제26장에서 풍성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12:10, 19:28, 20:1,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와 99세 때 사실은 2번의 흉년이 임한 것임)이 들었더니, (가나안) 땅에 (80년이 지나)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그랄) 에 거주하라(12:1절의 축복의 조건과 같음). 3. (그랄)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을 주고, 내가 이 모든 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12:2-3, 자손의 번성과 천하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임).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당시 리브가의 나이가 60세 정도의 노파임. 그러나 여호와의 은혜로 젊게 보이는 것임)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12:11-13, 히브리인 아브라함의 생각과 이삭의 생각이 같은 것임).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삼하11:2, 다윗대왕의 경우와 비슷함).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20:11, 그 옛날 아브라함의 변명과 동일함).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 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20:3, 7, 17-18, 아비멜렉의 왕가에 전해지고 있는 그 옛날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의 두려운 역사를 지금의 아비멜렉이 확실하게 교육을 받아 명심하고 있는 것임).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12:3a, 여호와의 두터운 보호하심). 12. (초보 농사군에 불과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12:16, 아브라함이 이방나라 애굽에서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되듯이 이삭도 이방나라 블레셋에서 거부가 되고 있음),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26:1-14);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12:10, 19:28, 20:1,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와 99세 때 사실은 2번의 흉년이 임한 것임)이 들었더니, (가나안) 땅에 (80년이 지나)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그랄) 에 거주하라(12:1절의 축복의 조건과 같음). 3. (그랄)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을 주고, 내가 이 모든 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12:2-3, 자손의 번성과 천하만민에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임).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26:1-5);

1)    1절에서 모세오경의 첫번째 경전인 창세기를 기록하고  있는 모세가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제12장 후반부와 제20장의 내용에 비추어보면 맞지 않는 기술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지역으로 들어간 아브라함은 그후 두차례나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지역과 그랄지역으로 이주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12:10, 20:1, 19:28). 그와 같이 저자인 모세는 필요한 부분만 강조하고 그러하지 아니한 대목은 대담하게 생략하고 있는 기록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본문 제1절과 제2절 사이에서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삭은 그 옛날 자신의 부친 아브라함과는 달리 가나안지역의 가뭄의 피해를 당하여 물이 풍성한 애굽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인근 블레셋족속들의 비옥한 평야 그랄로 가야할지 그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보다 먼저 올바른 인생의 인도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인물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평소에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장점을 가진 위대한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24:63).

3)    여호와신앙인 또는 주님의 제자라고 하면 반드시 생활화해야 하는 것이 기도이기에 저자인 모세가 심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여 과감하게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다음 제2절부터 제5절 사이에서는 여호와께서 참으로 기도하는 이삭을 기뻐하시며 그에게 아브라함에게 준 언약의 축복을 그대로 승계시키고 또한 발동시켜주겠다고 하는 약속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4)    일찍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준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은 4가지입니다; ①자손의 번성, ②이름의 창대함, ③확실한 보호, ④이방인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복 등입니다(12:2-3). 그것을 본문에서는 2가지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여호와께서 주시는 이고, 또 하나가 여호와께서 주시는 입니다(3a). 여호와의 복은 이삭의 자손들이 천하만민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신앙이며 구세주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의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구원의 복음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복을 독점하고자 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그 옛날 선지자 요나처럼 먼저 회개를 하라고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12:39-40, 16:4).

5)    여호와께서 믿음의 열조들에게 주시는 은 조그만 가나안 땅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향년을 맞이하여 전부 조그만 막벨라 굴에 안장되고 말기 때문입니다(25:9-10, 35:27-29, 49:29-33). 그 대신에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구원의 땅은 현세적인 좁은 땅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시는 영생의 하늘과 땅입니다. 그 중심이 천성 곧 새 예루살렘이므로 그곳으로 성도들이 부활하여 들어가서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시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11:16, 21:12-14, 22-27).

6)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는 세상살이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과감하게 아버지 데라의 막대한 재산상속을 포기하고서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선지자의 길을 떠난 것입니다(12:1-5). 이삭의 경우에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그랄 땅으로 들어간 것입니다(26:1-4). 훗날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야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손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하려고 할 때에 브엘세바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간절하게 여호와의 뜻을 기도로 재차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46:1-6).

7)    그 점을 본문에서는 5. 이는 아브라함이 내 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26:5)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를 자신들의 왕으로 섬기고자 하는 인류최초의 신정국가를 건설하면서 그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을 하나의 법률체계인 율법으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시내 산 아래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본문에서는 5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여호와의 말씀, ②여호와의 명령, ③여호와의 계명, ④여호와의 율례, 그리고 ⑤여호와의 종의 법도입니다. 먼저 말씀은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있지만 명령은 그와 다릅니다. 명령은 강제적인 것이기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채찍을 가하고 있습니다.

8)    여호와의 계명은 모든 말씀과 율법의 취지입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제20장에 십계명과 참된 제사의 규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쉽도록 시행령으로 보완하고 있는데 그것이 율례이고 더욱 상세하게 시행규칙을 정하게 되면 그것이 규례입니다. 끝으로, 피조물인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창조주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언제나 그 종이며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자신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주인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주인과 종사이의 아름다운 질서와 구별을 법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창조주 여호와의 종의 자세를 확립하고 있을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에서 어긋나지 아니하게 됩니다. 요컨대, 종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선한 청지기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하겠습니다.  

(2)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당시 리브가의 나이가 60세 정도의 노파임. 그러나 여호와의 은혜로 젊게 보이는 것임)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12:11-13, 히브리인 아브라함의 생각과 이삭의 생각이 같은 것임).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삼하11:2, 다윗대왕의 경우와 비슷함).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20:11, 그 옛날 아브라함의 변명과 동일함). 10.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 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20:3, 7, 17-18, 아비멜렉의 왕가에 전해지고 있는 그 옛날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의 두려운 역사를 지금의 아비멜렉이 확실하게 교육을 받아 명심하고 있는 것임). 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12:3a, 여호와의 두터운 보호하심)”(26:6-11);

1)    히브리인이라고 하는 말은 다른 문명권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을 일컫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가족이 살아가고 있는 함족의 땅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셈족의 땅에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인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강가에서 문명이 꽃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강유역에서 이주하여 온 도래인들은 문명이 다른 민족이라는 의미로서 히브리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검은 피부색을 지니고 있는 함족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중동지역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온 셈족은 백색과 황색이 혼합이 되어 상당히 이국적이며 몸매와 눈이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는 유럽과 아시아의 유목민들이 그곳에서 만나 혼혈이 되어 매력적인 모습의 후손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사라나 리브가가 그들 함족의 눈에는 심히 아름답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나그네 호족인 아브라함과 이삭이 아름다운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 원주민 함족에게 해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탐하여 원주민들이 나그네를 해치고 여인을 약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해결책은 아내가 아니고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변명이 되기도 합니다. 결혼하기 이전에 사라는 자신의 이복 누이였기 때문입니다(20:12). 그러나 이삭의 경우에는 완벽한 거짓말입니다. 리브가는 족보로 따지면 촌수가 있는 조카딸에 해당하지 결코 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22:23).

3)    그렇지만 여호와의 두터운 보호하심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삭이 순전한 거짓말을 하고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블레셋 원주민에게 알리고 맙니다. 그때부터 그녀를 얻으려고 하는 원주민들의 눈길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이 들어있습니다. 그는 마치 훗날의 다윗대왕처럼 높은 왕궁의 발코니에서 리브가가 살고 있는 집을 내려다보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8). 이삭이 그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절에 그 비옥한 그랄 땅을 소유하면서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의 칭호가 역시 아비멜렉입니다. 그는 80년전 아브라함 시대의 연맹왕 아비멜렉과 같은 신분이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4)    그렇지만 그는 전임자들로부터 자신에게 전해지고 있는 두려운 이야기를 하나 명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 호족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잘못 누이라고 오인하여 후궁으로 취했다가 아비멜렉의 왕가가 절단이 날 뻔한 이야기입니다(20:1-7, 17-18). 그러므로 그는 먼저 리브가가 확실하게 이삭의 누이인지부터 조심스럽게 파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눈에 여호와의 배려로 멀리서 이삭이 아내 리브가를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 확대가 되어 보이고 있습니다(8).

5)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은 아름다운 여인 리브가가 그랄 원주민들에게 위험요인이 되지 아니하도록 예방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잘못 그녀를 취하게 되면 왕과 신하를 막론하고 여호와의 큰 저주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연맹왕 아비멜렉은 3가지 조치를 당장 취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삭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있습니다(9-10). 둘째, 신하와 백성들에게 이삭 가족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엄명을 내립니다(11). 셋째, 이삭 가족에게 영주권을 주는 한편 관찰대상으로 삼고서 일종의 보호조치를 취합니다(12-16). 

(3)  12. (초보 농사군에 불과한)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12:16, 아브라함이 이방나라 애굽에서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되듯이 이삭도 이방나라 블레셋에서 거부가 되고 있음),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26:12-14);

1)    여호와의 섭리가 두가지로 그랄 땅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연맹왕 아비멜렉을 통하여 이삭의 가족에게 영주권을 주고 그들을 보호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11). 또 하나는, 초보 농사군에 불과한 이삭이 그랄평야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그 소출이 대단하도록 만든 것입니다(12).

2)    이삭이 추수를 하자 무려 백배의 소득을 얻고 있으므로 몇 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그만 거부가 됩니다(13). 그런데 히브리인 나그네 호족이 그랄평야에서 농사 뿐만 아니라 목축업에 있어서도 대성공을 거두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원주민들의 눈에 시기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14). 앞일이 어떻게 전개가 되는 것일까요?...

둘째로,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21:25, 그 옛날 히브리인 호족 아브라함과 원주민 블레셋 족속 사이에 발생한 그 일이 재현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동편으로 가서)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여호와께서 자신의 종인 아브라함에게 준 우물물이므로 그가 죽자 그만 그 우물이 말라버린 것임).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20:14-18, 21:1-8, 이삭은 그랄평야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므로 어린시절 부친 아브라함이 종들과 함께 들판에서 목축하기 위하여 우물을 파고 드디어 물을 얻은 기억이 생생하여 그 옛날의 우물의 이름을 그대로 되살리고 있음. 21:25-31, 아브라함은 자신이 들판에서 판 우물에서 솟아나는 물을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나누어서 사용한 것임. 그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그 땅에 여호와의 복이 흘러 넘치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임, 12:3b,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만 탐욕에 눈이 어두워 힘으로 나그네 호족 아브라함을 밀어내고서 그 우물을 독차지하고 있음.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가족이 그랄평야에서 그랄 골짜기로 나중에는 변경지역 브엘세바까지 쫓겨간 것임).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대적함)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장소가 넓음)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삼상7:12, 이른바 에벤에셀의 은혜임).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이제는 가나안의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의 소유가 되어 있는)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1:33,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서 영생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아브라함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는 여호와이심). 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26:15-25);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21:25, 그 옛날 히브리인 호족 아브라함과 원주민 블레셋 족속 사이에 발생한 그 일이 재현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동편으로 가서)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여호와께서 자신의 종인 아브라함에게 준 우물물이므로 그가 죽자 그만 그 우물이 말라버린 것임).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20:14-18, 21:1-8, 이삭은 그랄평야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므로 어린시절 부친 아브라함이 종들과 함께 들판에서 목축하기 위하여 우물을 파고 드디어 물을 얻은 기억이 생생하여 그 옛날의 우물의 이름을 그대로 되살리고 있음. 21:25-31, 아브라함은 자신이 들판에서 판 우물에서 솟아나는 물을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나누어서 사용한 것임. 그 이유는 그로 말미암아 그 땅에 여호와의 복이 흘러 넘치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임, 12:3b, 그러나 원주민들은 그만 탐욕에 눈이 어두워 힘으로 나그네 호족 아브라함을 밀어내고서 그 우물을 독차지하고 있음. 그 결과 아브라함의 가족이 그랄평야에서 그랄 골짜기로 나중에는 변경지역 브엘세바까지 쫓겨간 것임).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대적함)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장소가 넓음)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삼상7:12, 이른바 에벤에셀의 은혜임) ”(26:15-22);

1)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은 세습제로 이어오고 있는 왕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블레셋 족속이 본래 ()를 숭상하고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인들이며 지중해의 해양민족 출신들이기 때문입니다(10:14). 그러므로 힘이 강하고 지혜가 뛰어난 자가 비옥한 그랄평야를 차지하고 5도시국가의 연맹왕으로 추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연맹왕 아비멜렉 뿐만 아니라 80년 세월이 지나 이삭 시대의 아비멜렉 역시 현명한 대왕입니다.

2)    아비멜렉은 그랄평야에서 거부가 된 이삭을 시기하고 있는 블레셋 족속들이 그에게 어떠한 행패를 부릴지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 때처럼 이삭이 들판에서 판 우물물을 탐내어 블레셋 사람들이 힘으로 빼앗고자 할 것입니다(15). 그 일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그랄평야에서 그것도 지근거리에서 발생하게 되면 여호와의 저주가 왕궁에 임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그는 재빨리 이삭을 불러서 그랄평야를 당장 떠나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16). 그 결과 이삭이 비옥한 그랄평야를 떠나 동쪽변경 척박한 그랄 골짜기로 내쫓기고 있습니다(17).

3)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이삭 역시 그랄평야에서 종들과 함께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얻게 되면 원주민들과 함께 나누어 사용하고 있습니다(12:3b, 26:4b). 그러나 원주민들은 탐욕이 지나쳐서 아예 힘으로 우물을 빼앗고 맙니다. 그러한 일이 아브라함 시대에 발생하여 그가 우물을 빼앗기고 점점 동쪽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 우물물이 아브라함 사후에는 그만 말라버리고 맙니다. 여호와께서 더 이상 복을 내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원주민들이 그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리고 맙니다(18b).

4)    그런데 이삭이 그 우물을 다시 파자 멀쩡하게 지하수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18a). 그것이 여호와의 변함없는 축복의 언약의 효과입니다. 따라서 이삭은 그가 기억하고 있는 부친 아브라함이 붙인 그 들판의 우물이름을 그대로 다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18c). 그렇지만 그랄평야에 살고 있는 원주민 블레셋 사람들도 그 행동양식에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두차례나 이삭이 다시 판 그 옛날의 우물을 그들이 힘으로 빼앗고서 이삭가족을 멀리 내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우물의 이름을 이삭이 그와 같은 그들의 행태를 반영하여 에섹(다툼)싯나(대적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0-21).

5)    이삭은 우물을 그들에게 넘기고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계속 동쪽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그랄 골짜기 가운데에서도 가나안 남부 네게브 지역에 가까운 반()사막성 지역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별로 영양가가 없는 땅이므로 그곳에는 블레셋 족속이 거주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이삭이 종들과 함께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마침내 자신만의 우물을 가지게 되었기에 그가 감격하여 그 이름을 르호봇(장소가 넓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22).

(2)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이제는 가나안의 새로운 지배자 헷족속의 소유가 되어 있는)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21:33, 브엘세바에서 에셀나무를 심고서 영생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아브라함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는 여호와이심). 25.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26:23-25);

1)    그렇지만 그랄 골짜기에서 이삭이 풍성한 지하수를 뽑아내는 우물을 개발한 일이 알려지게 되면 언제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걱정이 된 이삭이 얼마후에는 안전하게 가나안 헷족속이 지배하고 있는 브엘세바로 들어오고 맙니다(23). 80년전 부친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살고 있던 때에는 그 지역의 주인이 아비멜렉입니다(21:22). 그렇지만 힘이 센 헷족속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브엘세바 지역을 차지하고 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브엘세바에서 성장한 에서가 헷족속의 여인을 두사람이나 아내로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34). 그는 힘을 가진 자와 연합하기를 좋아하는 세상적인 지혜와 처신술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부친 아브라함이 수년전에 별세하였기에 그 옛날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우물이 그만 말라버리고 이제는 흙으로 뒤덮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호와의 복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이삭이 종들에게 그 우물을 다시 파라고 지시합니다(25). 그 이유는 그 옛날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을 돌보고 그에게 크게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 후계자인 이삭에게 동일한 축복의 약속을 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24). 여호와의 말씀을 간밤에 얻게 된 이삭은 지체하지 아니하고 종들에게 우물을 다시 파라고 명령하면서 브엘세바에서 오래 거주하려고 그 준비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23-25).

셋째로, “26. 아비멜렉(블레셋 연맹왕의 칭호임)이 그 친구(왕의 벗으로 불리는 자는 고대왕정국가에서는 주로 재사를 말하고 있음, 삼하16:16, 예컨대 다윗의 친구 후새가 그러함)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관직의 칭호임)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헷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브엘세바까지 밀행하여, 34절 참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16절 참조),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브엘세바가 이미 가나안의 새 지배자 헷족속의 정복지이므로 이삭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임)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12:3, 20:3, 7, 17-18, 두려운 상대는 이삭이 아니라 그의 보호자이신 여호와이심을 아비멜렉이 알고 있음)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이는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자는 제안인 것임).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은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33:12, 많은 사병으로 그들을 호위하여 주었으므로 무사히 헷족속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목축사회에서는 들판에서 우물을 파서 물을 얻는 경우 그 땅값이 치솟게 되는 것임),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맹세)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아브라함에 이어 이삭이 오랜 세월 브엘세바에 거주하면서 그 지명을 그렇게 불렀기에 그 후손들이 동일하게 부르고 있는 것임). 34. 에서가 (25:20, 부친 이삭의 나이와 같은) 40세에 (브엘세바 지역의 새 주인이 된)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2:20-25, 창조주 여호와께서 선호하고 있는 11처제의 아름다운 가정생활이 아님), 35. 그들이 (여호와신앙이 전혀 없으므로 말미암아)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28:8-9, 훗날 그 점을 깨닫고 에서가 여호와신앙이 나름대로 살아있는 이스마엘 집안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또 얻고 있음)”(26:26-3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6. 아비멜렉(블레셋 연맹왕의 칭호임)이 그 친구(왕의 벗으로 불리는 자는 고대왕정국가에서는 주로 재사를 말하고 있음, 삼하16:16, 예컨대 다윗의 친구 후새가 그러함)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이름이 아니라 일종의 관직의 칭호임)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헷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브엘세바까지 밀행하여, 34절 참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16절 참조),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브엘세바가 이미 가나안의 새 지배자 헷족속의 정복지이므로 이삭이 큰소리를 치고 있는 것임) 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12:3, 20:3, 7, 17-18, 두려운 상대는 이삭이 아니라 그의 보호자이신 여호와이심을 아비멜렉이 알고 있음) 말하였노라. 29.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이는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자는 제안인 것임).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6:26-29);

1)    자국의 안보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는 이삭의 행동을 계속 감시하고 있는 현명한 연맹왕 아비멜렉입니다. 그는 그랄평야에서 쫓겨난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서도 원주민 블레셋 사람들에게 계속 우물물을 빼앗기고 이제는 가나안 헷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국경을 넘어간 사실을 보고받고 있습니다. 빨리 서둘러서 이삭과 불가침평화조약을 맺지 못하게 되면 여호와의 저주가 그랄 땅에 임하게 될 것 같습니다(29).

2)    아비멜렉은 국방장관 비골 뿐만 아니라 재사인 친구 아훗삿과 더불어 변복을 하고서 가나안 땅으로 밀행하여 들어갑니다(26). 그 옛날 아브라함이 개척한 땅 브엘세바로 이제는 이삭을 만나고자 아비멜렉 일행은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서 잠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복을 하고서 가나안 헷족속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으로 몰래 들어온 아비멜렉 일행을 대하고 있는 이삭의 태도가 차갑고 당당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3)    아비멜렉이 이삭 자신의 가족을 비옥한 그랄평야에서 쫓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그후 이삭이 그랄 골짜기에서 개발한 우물마저 계속 빼앗아간 블레셋 사람들의 만행을 방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지적하면서 이삭이 블레셋의 연맹왕 아비멜렉의 잘못을 크게 책망하고 있습니다(27). 그렇게 책망을 들으면서도 아비멜렉은 모든 체면을 내려놓고 그저 이삭에게 잘 보여서 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28-29). 그만큼 선지자 이삭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경우에는 아비멜렉의 왕가가 절단이 나며 블레셋 족속에게 큰 재앙이 임할 것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는 아비멜렉 일행인 것입니다.

(2)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은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33:12, 많은 사병으로 그들을 호위하여 주었으므로 무사히 헷족속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목축사회에서는 들판에서 우물을 파서 물을 얻는 경우 그 땅값이 치솟게 되는 것임),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맹세)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아브라함에 이어 이삭이 오랜 세월 브엘세바에 거주하면서 그 지명을 그렇게 불렀기에 그 후손들이 동일하게 부르고 있는 것임)”(26:30-33);

1)    쩔쩔 매면서 그저 불가침 평화조약만 맺기를 간청하고 있는 아비멜렉 왕을 보면서 이삭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막강한 블레셋의 연맹왕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주 여호와 앞에서는 그저 작은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허심탄회하게 아비멜렉 일행에게 잔치를 베풀고 후대하고 있습니다(30). 그리고 새벽에는 일찍 평화조약을 맺은 후에 아비멜렉 일행이 안전하게 국경을 넘어갈 수 있도록 이삭이 자신의 사병을 동원하여 그 길을 호위하여 줍니다(31).

2)    그것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이삭의 성숙한 믿음에 즉시 상급을 내려 주십니다. 그것이 그 땅에서 다시 솟아나오고 있는 지하수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기뻐하면서 주인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32).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그 축복의 은혜가 자신에게 그대로 임하고 있는 것을 절실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우물의 이름을 그 옛날 부친 아브라함이 지칭한 그대로 맹세의 우물이라고 하는 뜻으로 역시 브엘세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 그는 여호와의 축복이 크게 임한 그 땅 브엘세바에서 오래 거주하고자 합니다.

(3)  34. 에서가 (25:20, 부친 이삭의 나이와 같은) 40세에 (브엘세바 지역의 새 주인이 된) 헷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2:20-25, 창조주 여호와께서 선호하고 있는 11처제의 아름다운 가정생활이 아님), 35. 그들이 (여호와신앙이 전혀 없으므로 말미암아)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28:8-9, 훗날 그 점을 깨닫고 에서가 여호와신앙이 나름대로 살아있는 이스마엘 집안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또 얻고 있음)”(26:34-35);

1)    야인으로 살아가면서 혈기가 왕성한 에서입니다(25:25, 27a). 가형 이스마엘을 닮아 있는 그러한 장남 에서를 족장인 이삭이 좋아하고 있습니다(25:28a). 그러므로 에서 또한 부친 이삭에 대해서는 효자 아들입니다(27:1-4). 따라서 그는 부친처럼 40세가 되어서야(25:20) 아내를 거느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34a).

2)    에서는 세상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며 힘을 숭상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왕이면 브엘세바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지배족속 헷사람의 딸을 아내로 취하고 있습니다(34b). 한마디로, 결혼을 통하여 처가덕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헷족속 두사람의 딸을 한꺼번에 아내로 취하여 복수의 처가덕을 보고자 하는 에서입니다.

3)    그것은 11처제도를 선호하고 계시는 여호와의 뜻에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습니다(2:20-25). 더구나 힘을 숭상하는 헷족속의 딸들에게 여호와신앙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한 며느리를 보면서 부모 이삭 부부가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입니다(35). 장차 이삭의 집에서는 과연 어떠한 분란이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의 독자적인 여호와신앙의 이야기는 창세기 제12장에서부터 제25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려 14장에 걸쳐 있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이삭의 독자적인 여호와신앙의 이야기는 창세기 제24장 말미에서부터 제28장 초반까지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전체적으로 아브라함 기사 14장에 비하여 이삭의 기사는 매우 짧아서 채 5장도 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그 단점을 크게 개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따라서 시행착오가 적습니다. 그 결과 5장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믿음성숙의 비결이 과연 무엇일까요? 크게 보아, 세가지를 들 수가 있습니다;

(1)  첫째가, 이삭이 헤브론을 떠나 브엘라해로이에 오래 거주하면서 그 옛날 부친 아브라함의 집에서 내쫓긴 하갈과 이복형 이스마엘을 지켜보면서 그들과 친하게 지낸 것입니다(24:62). 그와 같이 버림받은 형제를 돌본 이삭의 신앙이 위대한 것입니다(25:40).

(2)  둘째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말씀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는 이삭입니다(24:63).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사색하면서 동시에 모르는 대목을 알기 위하여 여호와께 끊임없이 기도하는 삶입니다.

(3)  셋째가,  가나안 땅의 흉년을 맞이하여 어디로 피난하는 것이 좋은지 구체적으로 여호와께 기도하여 그 대답을 듣고자 한 것입니다(26:1). 그러한 기도를 여호와께서는 좋아하십니다. 따라서 그랄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시면서 그 명령에 순종하게 되면 아브라함의 축복의 언약이 그대로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발동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고 계십니다(26:2-5).

  그와 같은 사실을 재삼 기억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버림받은 형제와 이웃을 돌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며 그 뜻을 깨달아 매사 기도로써 진리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온전하게 실천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29(26:1-3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 3 10()

 

1.      가나안 남쪽 끝자락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던 이삭이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이주한 것은 언제쯤이며 그때의 이삭과 리브가의 나이는 얼마쯤으로 보이는가?(26:1)

(1)   아브라함 때에 가나안 남부에 들고 있는 흉년은 언제인가?

1)      아브라함은 가나안 남부의 흉년을 피해서 차례나 애굽과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이주를 하고 있음.

2)      애굽으로 이주한 때는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해이므로 그의 나이 75 때로 보임(12:4, 10).

3)      그랄 땅으로 이주한 때는 이듬해에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받은 직후이므로 아브라함의 나이 99세로 보임(18:10, 20-23, 19:27-28, 20:1).

(2)   이삭의 때에 땅에 흉년이 들고 있는데 때는 언제인가?

1)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르고 브엘라해로이에 계속 살고 있을 때임(25:7, 11).

2)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향년 175세에 해당하는 해이며 그때의 이삭의 나이는 75세임(21:5).

3)      그런데 문맥상 야곱이 쌍둥이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떡과 팥죽을 주고 이야기가 직전에 수록이 되어 있으므로 그때는 그들이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있는 나이 20세로 보임(25:31-34).

4)      따라서 브엘라해로이의 가뭄으로 이삭의 가족이 그랄 땅으로 이주한 때는 이삭의 나이 80세로 추정이 . 참고로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그의 나이 60세에 얻은 것임(25:26).

5)      이삭은 나이 40 삼촌 나홀의 손녀인 리브라와 결혼을 하였는데(25:20) 아내 리브가의 나이는 성경에 나타나고 있지 않음. 다만 리브가가 결혼한지 20 후에 쌍둥이 아들을 순산한 것을 보면(25:26) 남편 이삭보다는 10 이상 연하인 것으로 보임.

(3)   요컨대, 부자간의 그랄 이주에는 80 정도의 시차가 있는 것임;

1)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나안 남부의 가뭄을 피해서 그랄 땅으로 이주한 해가 이삭 탄생 1 전임.

2)      이제 이삭의 나이 80 정도가 되어서 다시 가나안 남부의 흉년을 피해서 그랄 땅으로 이주하고 있음. 그러므로 대충 80 만에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임.

3)      그때 아내 리브라의 나이는 60 후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음.

 

2.      피난을 가려고 하는 이삭이 하나님에게 기도한 내용이 무엇이었기에 애굽이 아니고 그랄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답변이 나타나고 있는가?(26:2)

(1)   아버지 아브라함의 기사를 많이 알고 있는 이삭임.

1)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들어온 해에 가뭄이 들어 애굽으로 이주해간 적이 있음(12:10).

2)      이삭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서 그랄 땅으로 이주를 적이 있음(19:28, 20:1).

3)      그러므로 이삭은 브엘라해로이의 가뭄을 피해서 애굽 아니면 그랄 땅으로 피난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

(2)   어느 곳으로 이주할지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있는 이삭으로 보임.

1)      묵상하는 사나이 이삭이기에 가지의 선택지를 두고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으로 보임(24:63).

2)      결과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고 있는 것임(26:2).

3)      아비 아브라함과는 달리 어디로 가야만 할지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보고 있는 이삭이므로 점을 기특하게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해주시고 있음(26:3-5).

 

3.      이삭과 그의 후손에게 애굽 땅이 아니라 블레셋의 그랄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26:3)

(1)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그의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는 땅의 범주에 이미 블레셋의 땅이 포함이 되어 있음;

1)      땅의 범위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애굽 지역을 제외하고 사이에 있는 모든 땅임; “내가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자손에게 주노니”(15:18).

2)      그러므로 가나안 해안지역 서남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블레셋의 땅은 범위 안에 들어가고 있는 것임.

3)      그러나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에 블레셋의 땅을 점령하지를 못했음. 때문에 북방에 자리를 잡은 지파와 블레셋 족속 사이에 전쟁이 있게 .

4)      참고로, 지파의 사사 삼손의 이야기도 블레셋 족속과의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임(14:1-4).

(2)   다윗의 이스라엘 제국이 모든 땅을 차지하고 있음;

1)      아브라함의 언약을 그대로 이루어 가장 영토를 차지한 대왕이 바로 다윗임. 그는 사울 시대의 작은 이스라엘 왕국을 확장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을 제외하고 사이의 모든 땅을 점령하여 중근동의 패권국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한 인물임(삼하8:1-14).

2)      그러므로 당연히 블레셋을 쳐서 정복을 받았음(삼하8:1). 그러한 다윗 대왕의 위업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뜻을 이루리라 하시더니”(13:22).

 

4.      이삭과 그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할 있게 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26:3-5)

(1)   이삭이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세상일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임(26:2-3).

1)      이삭이 애굽과 그랄 어느 곳으로 가서 피난살이를 하는 것이 좋을지 여호와 하나님께 묻고 있다고 하겠음. 왜냐하면,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임(26:2).

2)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평소에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 힘을 쓰면서 세상살이를 해나가게 되면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선지자의 삶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임(26:4).

(2)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것처럼 이삭과 그의 자손들이 똑같이 행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할 있는 것임(26:5).

1)      본문을 음미해보시기 바람; “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모든 땅을 너와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모든 땅을 자손에게 주리니,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말을 순종하고,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26:3-5).

2)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긴 다윗 대왕의 모범을 따르게 되면 다윗 왕조에게 복이 돌아갈 것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솔로몬 대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음; “네가 만일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왕상9:4-5).

 

5.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이 행한 잘못을 이삭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26:6-7)

(1)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보다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임;

1)      이삭은 당장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는 그랄 땅에서 피난민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임. 그러므로 엄청난 약자의 입장임(26:6).

2)      그랄은 힘을 숭상하고 있는 거인족들이 다스리고 있는 땅이므로 이삭 부부는 걱정이 앞섬. 그들이 떠돌이 이삭의 재물을 강탈할 경우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음. 그래서 세상적인 꾀를 동원하고 있음(26:7).

3)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있음. “성숙한 신앙인 이삭이 어찌하여 하나님에게 기도하여 올바른 방법을 찾아서 대처하지를 아니하고 약은 세상적인 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역시 영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아니하지만 블레셋 족속의 위험은 당면한 현실이기 때문임.

4)      일단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되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처방을 기다릴 있는 여유가 사라지는 것임. 예를 들면, 훗날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가 급해지자 느긋하게 사사이며 제사장인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급하게 제사를 지내고 전투에 나서고자 것과 같은 것임(삼상13:5-12).

(2)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들었던 경험담이 어느 사이엔가 이삭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임.

1)      이삭이 그랄 땅에서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고 오히려 블레셋 족속들의 환심을 있는 방법이 바로 미인인 자신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는 것임(26:7).

2)      방법은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배운 것임. 아브라함은 차례나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여서 애굽과 그랄 땅에서 최고통치자들의 환심도 사고 재물도 얻은 경험이 있는 것임(12:13, 16, 20:2, 14).

3)      이야기를 평소에는 이삭이 반면교사’(反面敎師, 잘못된 사례도 반대로 행하는 경우에는 좋은 선생이 된다는 것임) 삼았으나, 발등에 같은 불이 떨어지자 그만 이상한 타산지석’(他山之石, 남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고서 배우는 )으로 삼고 것임.

4)      참고로,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한지 20년만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으며 이제는 에서와 야곱이 20 정도가 때에 그랄 땅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당시 이삭은 80 정도이며 리브가는 60대일 것으로 추정이 . 그런데 여전히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고 있음.

5)      이유는 리브가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옛날 사라처럼 젊음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음(20:2, 21:1).

 

6.      그랄 아비멜렉이 이삭과 리브가의 포옹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아니한 것으로 보임. 그렇다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아비멜렉의 관심사와 하나님의 섭리는 과연 무엇인가?(26:8-11)

(1)   평소에 아비멜렉은 히브리인 미인을 좋아한 것으로 보임.

1)      블레셋 5도시국가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은 곡창지대 그랄 땅을 직할하고 있음. 그는 여러 도시국가의 왕들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매우 현명한 왕중왕임. 그리고 행동이 신중함.

2)      그는 히브리인 이삭 일행이 가나안 남부지역의 흉년을 피하여 그랄 중심에 들어와 살게 되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 이유는 매우 미인인 누이동생을 이삭이 거느리고 있기 때문임.

3)      그렇지만 현명하고 신중한 아비멜렉은 리브가를 당장 후궁으로 취하지 아니하고 왕궁 가까이 살고 있는 이삭의 집안을 틈틈이 창문으로 관찰하고 있음(26:8).

4)      오랜 기간 관찰하여(26:8,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아무런 하자가 없으면 장차 후궁으로 취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는 아비멜렉이라고 하겠음.

(2)   아비멜렉의 관심사를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이삭집안에 살길을 열어주심;

1)      마치 우연한 것처럼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이삭의 집안을 관찰하는 시간에 이삭부부가 포옹을 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음(26:8).

2)      아비멜렉이 이삭을 궁으로 불러 사실확인을 하고 있음(26:9). 결과 이삭 부부로 말미암아 장차 그랄 땅과 아비멜렉의 왕국에 미칠 있는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사전에 예방할 있게 것임(26:10-11).

3)      더구나 아비멜렉은 이삭부부의 그랄 영주를 허락해주고 신변보호를 약속해줌(26:11-12).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을 이용하여 이삭 일행에게 살길을 열어준 것임.  

 

7.      아비멜렉이 이삭 부부에게 그랄 거주를 허용해주고 강력하게 사법적인 보호조치를 취해주고 있는 것은 과거 어떤 사건의 영향으로 있는가?(20:3, 7, 17-18, 21:22-23, 26:11-12)

(1)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당시의 연맹 아비멜렉이 혼이 났기 때문임;

1)      떠돌이 호족 아브라함이 미인 누이동생을 거느리고 있으므로 아비멜렉이 의심하지 아니하고 그녀를 후궁으로 데려옴(20:2).

2)      그날 꿈에 여호와 하나님이 현몽하여 그녀를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심(20:3).

3)      그리고 선지자 아브라함의 기도를 얻지 못하면 아비멜렉 일족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심(20:7). 실제로, 왕궁의 여인들이 모두 불임여성이 되고 태가 닫혀버리는 재앙이 찾아옴(20:18).

4)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은 다음, 그의 기도로 간신히 재앙을 면하게 (20:17)

5)      혼이 아비멜렉은 사라를 돌려보내고(20:14) 아브라함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게 .

6)      아브라함 가족이 변방 브엘세바로 이주하자 그가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비멜렉이 군대장관과 비골과 함께 찾아가서 비밀리에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체결함(21:22-32). 이유는 아브라함의 저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임(21:23-24).

(2)   이삭의 아비멜렉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

1)      위의 사건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해에 발생한 일임. 지금 이삭이 80 정도이므로 그것은 80 전의 일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80 후의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이 옛날 왕의 일을 기억하고 있음.

3)      이유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잘못 대접하게 되면 참으로 심각한 재앙이 초래될 있으므로 사전에 조심을 하라고 후의 아비멜렉들에게 이야기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임.

4)      따라서 이삭 당시의 아비멜렉은 선뜻 리브가를 후궁으로 취하지 아니하고 조심스럽게 떠돌이 호족이며 히브리인인 이삭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 것임.

5)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사전에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이삭과 리브가가 부부관계인 것을 눈치채게 만들고(26:8) 이를 계기로 하여 이삭의 가정을 보호하도록 하고 있는 것임(26:10-11).  

6)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가정에 손해를 끼치게 되면 아비멜렉 왕가에 다시 재앙이 발생할 것임(20:18). 여호와 하나님의 위력에 대하여 교육을 받은 아비멜렉 연맹 왕이 이를 너무나 알고 있음.

 

8.      그랄 땅에서 농업과 목축업으로 거부가 되고 있는 이삭의 성공의 비결(26:12-19)

(1)   이삭은 신출내기 농사꾼임.

1)      이삭이 살고 있던 갈릴리 남쪽 국경마을 브엘라해로이는 대표적인 네게브 지역임. 따라서 농업이 불가능하며 목축만이 가능한 지역임.

2)      그러므로 비옥한 그랄 땅에서 농사를 짓게 되는 이삭은 신출내기 농사꾼이라고 하겠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농사를 지어 성공을 거두고 있음.  

(2)   이삭이 농업으로 성공하고 있는 이유;

1)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임(26:28).

2)      물이 많고 비옥한 땅을 이삭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님. 그는 떠돌이 이주민이므로 원주민들에게 밀려서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짓고 있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종들을 시켜서 우물을 파게 되면 번번이 샘물이 터져 나오고 있음(26:18-21).

4)      풍부한 물로 말미암아 박토는 옥토가 되고 재배한 작목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음. 그래서 기적과 같은 100배의 수확이 계속 찾아오고 있음(26:12)

5)      마침내 농업과 목축업이라는 복합영농으로 이삭이 그랄 땅에서 거부가 되고 있음(26:13). 그것이 원주민들의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음(26:14).

 

9.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심이 옛날 아브라함 시절에도 있었음을 엿볼 있는 대목은 무엇인가?(26:15-16, 18)

(1)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이삭이 다시 파고 있음(26:18).

(2)   아브라함 때에 파서 사용하던 우물을 원주민 블레셋 족속들이 빼앗아 사용하자 그만 말라버리고 있는 것임. 그래서 원주민들이 화가 나서 다시 흙으로 메워버렸다고 모세가 증거하고 있음(26:15, 18).

(3)   참고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을 때에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차후로는 그러한 횡포가 없도록 평화조약에 반영을 하고 있음(21:25-31).

 

10.   에섹과 싯나의 의미(26:20-21)

(1)   원주민들의 기득권을 주장하며 이삭이 우물을 빼앗고 있는 이름 에섹’;

1)      에섹 다툼이라는 뜻임(26:20).

2)      단지 거주허가만 받은 떠돌이는 우물을 파더라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고 하는 블레셋 원주민들의 횡포가 에섹’(다툼) 유발하고 있음.

3)      이삭은 미련 없이 원주민들에게 우물을 주고 가나안이 가까운 동쪽 곳으로 이주를 하고 있음.

4)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그가 가는 곳마다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복을 얻기를 원하고 있는 것임(12:3, 22:18, 26:4). 그것이 이삭의 인생을 인도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임(22:17-18, 26:3-5).

(2)   이삭을 뒤쫓아 다니면서 계속 연고권을 주장하며 우물을 빼앗고 있다는 이름 싯나’;

1)      싯나 뜻은 다투고 대적을 하다 것임(26:21).

2)      이삭의 뒤를 따르면 우물물이 계속 터져 나오는 알고 그것을 뺏고자 원주민들이 따라오고 있는 것임.

3)      결과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처럼 국경 마을 브엘세바까지 이르고 있음(26:23).

4)      아브라함 때는 브엘세바 블레셋의 땅이었으나(21:31, 34) 이삭 때에는 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가나안 땅임(26:24).

5)      따라서 가까이에 와서 우물을 팠더니 블레셋 족속이 이상 쫓아오지를 못하고 있음.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 의미는 이제 하나님이 시비가 없는 넓은 땅을 주셨다는 것임(26:22).

(3)   에섹—>싯나—>르호봇으로 이어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

1)      이삭이 원주민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기 위하여 우물을 양보하고 양보해주었더니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넓은 땅과 물을 모두 새로이 주셨다는 것임.

2)      그러므로 우물을 파는 사나이 이삭, 양보하는 사나이 이삭이 바로 성숙한 하나님신앙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

3)      따라서 이삭의 일대기는 아브라함에 비해서 월등하게 짧지만 그의 신앙의 성숙한 경지는 능히 그의 아버지와 비견할 만한 것임.

 

11.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던 이삭이 그랄 땅을 벗어났지만 그곳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브엘세바에서 살고자 하는 이유(21:31-34, 22:19, 25:11, 26:1, 23-25)

(1)   넓은 국경마을 르호봇을 벗어나 아예 가나안 남부의 성읍 브엘세바까지 옮겨가고 있는 이삭;

1)      옛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오래 살았기 때문임.

2)      이삭이 그곳에서 태어나서 장성했기 때문임(21:5, 8, 14, 22:19)

(2)   이삭은 옛날에 살고 있던 남방 브엘라해로이로 이상 남하하지 않는가?

1)      일찍이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 오래 거주한 이유는 가지로 보임; 첫째, 헤브론에 살고 계신 아버지 아브라함과 계모 그두라 사이에 자식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으므로 본처 사라의 아들인 자신이 멀리 남쪽으로 떠나준 것임. 둘째, 시나이 반도 바란 광야에 살고 있는 이복 이스마엘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가나안 남쪽 국경이 가까운 브엘라해로이로 가서 것으로 보임.

2)      그런데 가나안 남부의 흉년을 피하여 블레셋의 그랄 땅에서 오래 살다가 돌아와보니 이제는 구태여 남하하여 브엘라해로이에 가서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임. 이유는 첫째, 이삭의 나이가 어느덧 100 가까이 되어가고 있으며(장자 에서가 40세에 아내 둘을 취하고 있음, 26:34-35), 둘째, 이복 이스마엘이 이미 114세나 되어 모든 실권이 아들들에게 넘어가버린 상태로 보임. 그러므로 이삭과 이스마엘 사이의 관계가 이제는 그들의 나이만큼이나 소원해진 것임.

3)      그러므로 구태여 멀리 남방 브엘라해로이로 가지 아니하고 단지 헤브론에서 30km 떨어져 있으며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21:21:5, 8, 14) 브엘세바로 이주한 것으로 보임.

 

12.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이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만을 데리고 은밀하게 브엘세바로 이삭을 찾아온 이유와 브엘세바 조약의 특징(26:26-33)

(1)   위험한 브엘세바까지 아비멜렉이 은밀하게 이삭을 찾아온 이유;

1)      이삭의 보호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26:28a) 진노가 블레셋에 미칠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임.

2)      참고로, 이삭이 그랄 땅의 원주민들에게 계속 우물을 빼앗기고(26:27) 가나안 브엘세바로 넘어가서 살고 있는 실정임.

3)      그래서 아비멜렉 왕은 이삭과 빨리 불가침평화조약을 맺어서(26:28b) 재앙을 사전에 피하고자 하고 있음(26:29).

(2)   80년전 아브라함과의 평화조약과 지금 이삭과의 평화조약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1)      아브라함은 당시 블레셋의 영토에 속하고 있는 브엘세바에 계속 살아야 하는 형편이므로 7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따로 주고서 브엘세바의 우물에 대한 아브라함의 소유권을 확실하게 공증을 받고자 하고 있음(21:28-31).

2)      하지만 이삭의 경우에는 그러한 기사가 없음. 이유는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브엘세바는 사이 족속이 차지하여 가나안 땅으로 편입이 되어 있기 때문임. 따라서 브엘세바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게 되면 그것은 당연히 블레셋 족속의 것이 아닌 것임(26:32-33).

3)      80 아브라함 때나 지금 이삭의 때나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과 신하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아브라함과 이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사항임. 따라서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재앙이 발생하기 전에 불가침평화조약을 재빨리 맺으려고 하는 것임.

 

13.   브엘세바에 살고 있는 이삭은 그의 나이 100세에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은 누구이며 어째서 이삭 부부에게 근심덩어리가 되고 있는가?(26:34-35)

(1)   40세의 에서가 족속의 2명을 아내로 맞이함(26:34).

1)      브엘세바의 지배족속이 족속임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음.

2)      익숙한 사냥꾼이며 야인(野人, 들사람) 에서는(25:27) 이왕이면 힘이 부족 족속의 딸과 혼인을 하고자 .

3)      사람도 아니고 2명의 여인을(26:34, 브에리의 유딧과 엘론의 바스맛) 같은 해에 아내로 맞이한 것을 보면, 에서가 일편단심이 아니라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있음. 그리고 하나님신앙에서 멀리 떠나있는 사람임(6:2).

(2)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는 이유

1)      에서가 부모와 상의를 하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는 원주민의 딸들을 아내로 데리고 것임.

2)      아브라함이 600km 떨어져 있는 하란 땅까지 늙은 종과 많은 예물을 보내어 믿음의 며느리 리브가를 맞이해온 사실을 알고 있는(24:2-61) 이삭부부는 맏아들 에서의 처사가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임(26:35, 27:46).

3)      그래서 표현이 그들( 족속 출신의 며느리들)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26:35). 따라서 훗날 집을 떠나게 되는 차남 야곱에게 부디 믿음의 아내를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임(28:1-2).

4)      사실을 눈치채고서 에서도 얼른 백부 이스마엘의 마할랏을 추가로 부인으로 얻고 있음(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