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24장 후반부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30. 01:20

창세기 제24장 후반부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제목; “창세기 제24장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3인물의 신앙적인 결단력”(24:42-67)

설교일; 주후 20231126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1121일 화요일 작성)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에는 크게 보아 주인공이 둘입니다; 첫째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둘째가 여호와를 자신의 인생과 인류의 역사의 섭리자로 신앙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두 주인공의 관계, 곧 양자관계를 중심으로 성경말씀을 살펴보면 크게 어렵지 아니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하나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한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인공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보이는 나의 인생과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을 가지고 주의 깊게 탐색하는 것이다라는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점을 좀더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 성경말씀의 주인공이심을 66권 신구〮약 성경의 서론이라고 볼 수 있는 창세기 앞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1. 천지와 만물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2:1-2),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

그 점을 신구〮약 성경말씀의 총결론이라고 볼 수 있는 요한계시록 말미에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말미인 제21장과 제22장의 앞부분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  1. 내가(주님의 사도인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할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같이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1-4). 성경말씀은 요한계시록 제22장에서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장(, chapter) 앞에서 성도가 구원을 받아 창조주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는 미래가 새로운 세상의 창조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성경말씀의 실제 주인공이신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제는 또다른 주인공인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모습으로 새로운 역사의 창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는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목에 대한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의 대미인 요한계시록 제2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2)  1. 그가(일곱 천사 중 하나가 성령으로, 21:9-10)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22:1-2). 요한계시록 제22장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새 예루살렘에서 생명수를 흘러 보내고 그 강가에 생명나무가 자라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열매와 잎사귀로 세상의 모든 나라와 백성을 치유하는 것이 성경말씀의 대미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성도가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말씀의 총 결론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성경말씀의 또다른 주인공인 성도의 이야기는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창세기 첫머리와 요한계시록 말미의 사이에 또다른 주인공의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거기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1)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 셋과 에노스 그리고 그들의 여호와신앙을 상속하고 있는 인물들의 이름이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창세기 제2장에서 제5장까지임). 그 다음에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새로운 인류를 대표하여 언약을 맺게 되는 상대방으로서 노아의 이야기와 그의 자손들의 족보가 수록이 되고 있습니다(창세기 제6장에서 제11장까지임).

(2) 이어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개인적인 언약을 맺게 되는 상대방으로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이스라엘로 불리게 되는 야곱의  이야기가 수록이 되고 있습니다(창세기 제12장과 제50장 사이임). 그들이 이른바 성경말씀의 또다른 주인공들입니다. 출애굽기에 들어오게 되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하게 되는 하나의 민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 은혜로 출애굽의 역사를 경험하고 시내 산 아래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여호와와 집단적으로 언약을 맺고서 만민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지만(19:4-6) 역사 가운데 실패자가 되어 선민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전부 사라지고 맙니다(왕하17:5-20, 25:1-12).

(4) 그 점을 훗날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복음서인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큰 물고기의 뱃속에서 3일간 회개한 다음에 드디어 이방도시 니느웨에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출발함)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12:39).

(5)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서에서는 선민의 나라의 멸망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진정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란 오로지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24:44-49). 그 예언이 인류의 역사 가운데 성취가 됨을 복음서와 기타 신약의 서신서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믿음의 열조들과 신약에 등장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주님의 성도들이 바로 성경말씀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21:12-14).

그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서 창세기 제24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전반부에서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주인공이지만 후반부에서는 늙은 종인 엘리에셀을 비롯하여 리브가이삭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의 강해설교를 통하여 저는 창세기 제24장 전반부의 내용을 노인 아브라함의 복과 깨달음이라는 주제로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일에는 창세기 제24장 후반부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내용은 새로운 3명의 주인공  곧 늙은 종 엘리에셀리브가 그리고 약속의 아들 이삭이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여호와신앙에 의거한 그들의 결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따라서 오늘 강해설교의 제목은 창세기 제24장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3인물의 신앙적인 결단력”(24:42-67)입니다.

먼저 대체적인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자신의 입장보다는 언제나 자신을 하란의 나홀 성으로 파견한 주인의 뜻을 먼저 실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따라서 창세기 제24장에서 전반부에 한번, 후반부에 한번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1)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34.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24:33-34).

2)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이삭의 신부감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준비한 리브가를 데리고)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24:56-57).

(2)  둘째로, 나홀의 손녀인 리브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홀 성에서의 생활보다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서의 삶을 동경하여 이삭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친정인 나홀의 성에는 증조부인 족장 데라의 세상적인 탐욕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이 하란에서는 세상적인 탐욕 및 부유한 삶의 안일함과 적당하게 타협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늙은 종 엘리에셀이 전해주고 있는 가나안에서의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는 이방인 원주민들에게 여호와신앙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생생한 선지자적인 삶의 모습이 뚜렷합니다.

2)   그와 같이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여호와신앙인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 것이 어느 사이에 처녀 리브가의 소원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신랑 이삭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 신앙적인 동경심과 설렘으로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대답이 비록 간결하지만 그녀의 신앙적인 결단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리브가)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24:58).

(3)  셋째로, 약속의 아들 이삭은 어머니 사라에게서 들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과 자신이 경험한 부친 아브라함의 여호와신앙의 모습을 깊이 생각하면서 과연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참된 여호와신앙인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계속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제63절에서는 특이한 용어 묵상’(默想)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24:63).

1)   그리고 제62절에서는 이삭이 부친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헤브론이 아니라 멀리 남방에 위치하고 있는 황무한 곳 브엘라해로이에서 살다가 잠시 부친의 집을 방문한 것으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멀리 350리나 떨어진 네게브의 끝자락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부친 아브라함이 조강지처 사라를 사별한 후에 젊은 후처 그두라를 얻어서 자식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25:1-4). 부친이 편하게 신혼생활을 영위하도록 다 큰 아들 이삭이 멀리 가서 독립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또 하나는, 브엘라해로이가 본래 이복형 이스마엘과 서모 하갈이 여호와의 보살핌을 얻은 장소입니다(16:13-14). 그러므로 그 남방의 바란광야에서 입신하고 있는 이스마엘을 쉽게 만날 수가 있는 장소입니다. 이삭은 결국 그들과의 유대감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브엘라해로이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이삭의 노력이 있어서 그런지 훗날 헤브론에서 부친 아브라함이 별세하자 이스마엘과 이삭이 한마음으로 부친상을 잘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25:8-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42. 내가(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서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45.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46. 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한지라. 47.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여성인 자손)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여호와)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24:42-49);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42. 내가(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이) 오늘 우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만일 내가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 주실진대, 43. 내가 이 우물 곁에 서있다가 젊은 여자가 물을 길으러 오거든 내가 그에게 청하기를, 너는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하여, 44.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45. 내가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와서 우물로 내려와 긷기로, 내가 그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내게 마시게 하라 한즉, 46. 그가 급히 물동이를 어깨에서 내리며 이르되,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기로 내가 마시매, 그가 또 낙타에게도 마시게 한지라”(24:42-46);

1)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브라함 부부로부터 그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많은 감화를 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신의 주인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체적으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보다 나은 문제의 해결을 얻고 있습니다(42). 그 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2)    늙은 종이 여호와께 간구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 두가지 행동을 하는 처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선택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목마른 나그네에게 우물물을 길어서 줄 수 있는 처녀입니다. 또 하나는, 먼 길에 지친 낙타들에게 충분한 해갈이 되도록 수고로이 우물물을 길어서 마시게 해주는 그러한 처녀입니다. 만약 그러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주는 처녀를 발견하게 되면 그녀가 바로 이삭의 신부감이라고 늙은 종이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의 허락을 구하고 있습니다.

3)    과연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돌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는 훌륭한 여호와신앙인 처녀를 나홀의 성밖 우물가에서 만날 수가 있는 것일까요? 24장 전반부 제17-20절에서 우리는 리브가가 그 시험에 여호와신앙의 실천으로 벌써 통과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의 집에서는 아직 그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기에 본문에서 늙은 종이 그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42-46).

4)    여호와신앙을 신정국가를 운영하는 율법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모세의 기록에 따르면, 기업이 없어서 굶주리며 갈증에 허덕이고 있는 가난한 자 곧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레위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것이 여호와의 백성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행할 일입니다(26:11-12).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작은 자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형제를 돌보는 여호와신앙인의 의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25:40). 그러한 의미에서 리브가는 자기도 모르게 여호와신앙인의 헌신이 무엇인지 그 시험문제의 출제자인 늙은 종에게 똑바로 보여준 처녀입니다. 

(2)  47. 내가 그에게 묻기를, 네가 뉘 딸이냐? 한즉 이르되,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브두엘의 딸이라 하기로, 내가 코걸이를 그 코에 꿰고 손목고리를 그 손에 끼우고,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여성인 자손)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여호와)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24:47-49);

1)    늙은 종은 헤브론을 떠나올 때에 주인인 아브라함에게서 한가지 부탁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프라테스 강 상류지역 하란 땅에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게 되면 그 자손 가운데 믿음의 처녀를 발견하여 약속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4).

2)    그런데 자신이 여호와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출제한 문제를 우물가에서 만난 처녀가 훌륭하게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처녀가 과연 나홀의 자손인지를 확인하면 됩니다. 혹시나 싶어서 그 신분을 확인하였더니 역시 여호와신앙이 나름대로 살아있는 나홀의 자손입니다(47).

3)    따라서 자신의 길을 형통함으로 인도하여 주신 여호와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늙은 종이 우물가에서 경배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렸다고 리브가의 부모와 오빠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48). 이제 남은 과업은 그녀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보호자인 부모와 오라버니의 허락을 구하는 것입니다(49).

4)    그런데 그것은 그냥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물가에서 여호와께 경배를 드리기 전에 늙은 종은 기쁜 마음으로 리브가에게 상당히 값비싼 선물을 제공했습니다(47). 만약 리브가의 보호자들이 그녀의 결혼을 허락하는 경우에는 더 많은 예물을 제공할 것입니다(53). 과연 리브가의 부모와 오라버니의 결정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둘째로,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1.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혼인의 허락임).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54.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주인의 일이 언제나 우선인 충성스러운 청지기 늙은 종임). 55. 리브가의 오라버니(그 집의 실세이며 차기 족장인 라반, 24:29, 29:5-10)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이삭의 신부감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준비한 리브가를 데리고)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리브가)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드보라, 35:8)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32)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17:15-16, 열국의 어미 사라의 뒤를 잇는 믿음의 며느리임)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22:17, 늙은 종의 이야기가 라반의 집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음, 31:24, 49-55, 라반의 말이 씨가 되어 훗날 야곱을 많은 재물과 함께 순순히 보내주고 있는 것임)”(24:50-60);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1.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혼인의 허락임).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24:50-53);

1)    돌이켜보면, 부자 아버지 족장 데라가 머물고 있는 하란 땅을 떠나 아브라함 부부가 가나안 땅으로 떠남으로써 한가지를 잃어버리고 다른 한가지를 얻고 있습니다. 상실한 것은 거부인 부친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는 세상적인 권리입니다(12:1). 반대로 새로이 얻게 된 것은 창세기 제12장 제2-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4가지 축복의 언약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큰 것일까요? 그 점이 늘 궁금한 동생 나홀의 자손들입니다(22:20-24).

2)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란의 나홀 성으로 파견한 늙은 종 엘리에셀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이 얻은 영적인 축복과 세상적인 축복이 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부친 브두엘과 그 집안의 실세인 오라버니 라반이 순순히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내어놓고 있습니다(50-51). 다만 그 집안에서 부친 브두엘보다 차기 족장인 라반의 권세가 더 크다고 하는 점이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는 구절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가부장 서열사회인 고대사회에서는 이름의 배열순서가 곧 권위의 서열인 것입니다. 이제 보호자인 가장과 차기 족장의 결혼허가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신랑의 얼굴 한번 보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놀라운 결혼 허락입니다. 따라서 늙은 종은 자신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우선 경배부터 드리고 있습니다(52). 그 다음 순서는 열 필의 낙타에 가득 싣고 온 결혼예물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4)    그에 대한 기록이 제53절입니다. 참고로, 먼저 신부 감인 리브가에게 금은 패물과 의복이 주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신부 집안에 주는 예물을 모친과 오라비 라반이 대표로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신부가 되기 위하여 신랑집에서 받은 패물과 의복을 가지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치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54.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주인의 일이 언제나 우선인 충성스러운 청지기 늙은 종임). 55. 리브가의 오라버니(그 집의 실세이며 차기 족장인 라반, 24:29, 29:5-10)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이삭의 신부감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준비한 리브가를 데리고)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24:54-56);

1)    늙은 종은 식사를 하기 전에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이 부탁한 일을 먼저 처리한 것입니다. 무사히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잘 차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 있습니다(54a). 참으로 주인이 보고 있거나 아니하거나 간에 상관없이 충성스럽고 신실한 종입니다. 그 점은 주님의 종이며 제자로 한평생을 살아가게 되는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2)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늙은 종이 서두르고 있습니다. 빨리 이삭의 신부 감인 리브가를 데리고 헤브론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54b). 늙은 종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모친이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혼례식을 하더라도 신부집에서 며칠을 보내고 시가로 가도록 하는 것이 전통사회의 규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헤어지면 남은 평생에 다시 만날지 알 수가 없는 먼 시집으로 떠나게 되는 리브가를 당장 데리고 길을 가겠다고 하니 그것은 관례와 상식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3)    따라서 모친과 라반이 예의범절에 맞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55). 과연 인간의 상식과 전통 그리고 예의범절을 넘어서고 있는 여호와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 점을 늙은 종이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이삭의 신부감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준비한 리브가를 데리고)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24:56).

(3)  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리브가)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드보라, 35:8)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32)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17:15-16, 열국의 어미 사라의 뒤를 잇는 믿음의 며느리임)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22:17, 늙은 종의 이야기가 라반의 집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고 있음, 31:24, 49-55, 라반의 말이 씨가 되어 훗날 야곱을 많은 재물과 함께 순순히 보내주고 있는 것임)”(24:57-60);

1)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모친이 곤란한 입장에 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발걸음을 인도하여 무사히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로 얻게 되었으므로 이제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늙은 종이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56). 그와 같은 경우 전통사회의 통념과 규례만을 가지고 반대하는 것은 여호와신앙인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2)    그렇다고 하여 무작정 찬성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라반과 그 모친은 모든 결정을 당사자인 리브가 본인의 의사에 맡기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57). 과연 리브가의 신앙적인 결단이 무엇일까요? 당찬 여호와신앙인 리브가의 결심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가겠나이다”(58).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훗날 페르시아제국의 황후가 된 에스더의 결심과 비슷합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4:16).

3)    리브가의 친정에서는 딸을 멀리 시집 보내는 일이 즉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유모 드보라를 함께 시집으로 보내고 있습니다(59, 35:8). 그 다음에는 놀라운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을 멀리 시집가는 리브가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60). 그 내용은 늙은 종의 이야기를 통하여 알게 된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들에게 주는 여호와의 축복의 말씀입니다(22:17). 그 말씀 그대로 리브가에게 믿음의 어머니 사라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17:15-16).

4)    그리고 이 세상에 우뚝 서는 자손들을 많이 생산하라는 것입니다(22:17-18). 라반이 자신도 모르게 여호와신앙에 의지하여 여동생 리브가에게 축복한 그 말이 세월이 지나자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브가의 아들 야곱을 해치려고 라반이 맹 추격했지만 막상 그 일을 행할 수가 없게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밤에 꿈으로 나타나셔서 야곱을 해칠 경우에는 라반의 집안에 보복을 하시겠다고 공언하셨기 때문입니다(31:24, 29).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한 말씀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축복인까지 기속(羈束)하는 효과가 있음을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말씀을 남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셋째로,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62. 그때에 이삭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네게브의 남쪽 끝에 브엘라해로이가 있음) 거주하였음이라.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שׂ֥וּחַ)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25:27-28, 야곱의 경우에는 어머니 리브가의 기도의 장막임),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2:22-25, 아담이 여호와가 창조한 하와를 맞이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고 사랑한 것과 같은 의미임),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2:20-25,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아름다운 11처제 사랑의 보금자리가 인생의 외로움과 상실의 슬픔을 치유하고 있다)”(24:61-67);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62. 그때에 이삭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네게브의 남쪽 끝에 브엘라해로이가 있음) 거주하였음이라.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שׂ֥וּחַ)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24:61-65);

1)    늙은 종 엘리에셀은 리브가와 그녀의 여자종들을 데리고 서남쪽에 있는 가나안 땅 헤브론을 향하여 2천리나 되는 거리를 다시 이동하게 됩니다. 하루에 70리 정도를 갈 수 있다고 하면 한달이 걸리는 긴 여정입니다. 그 먼 길을 오로지 여호와신앙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서 늙은 종과 함께 일어나서 떠나고 있는 처녀 리브가의 결심이 돋보이고 있는 대목입니다(61).

2)    당시 약속의 아들 이삭은 부친이 살고 있는 헤브론이 아니라 그 남방 350리에 자리잡고 있는 브엘라해로이에 살고 있습니다(62). 40세인 그가 반()사막성 기후를 가지고 있는 황야 네게브의 남방 끝자락의 브엘라해로이에 거주하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라고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는, 헤브론에서 부친 아브라함이 젊은 후처 그두라와 잘 살고 있기에 그를 떠난 것입니다(25:1-4).

3)    또 하나는, 브엘라해로이는 그 남방에서 무인으로 성공하고 있는 이복형 이스마엘 및 서모 하갈을 만나기에 편리한 곳입니다(16:13-14). 그렇게 부친은 물론 가출한 이복형에게까지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고 있는 사려가 깊은 청년이 이삭입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의 장점은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깊이 음미하면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자 생명의 말씀의 진리를 올바로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인입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묵상(שׂ֥וּחַ)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63). 그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묵상이라는 또다른 히브리어 하가’(הָגָה)가 여호수아 제1장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4)    참고로, 본문에서는 묵상이라고 하는 히브리어 용어가 시아흐’ (שׂ֥וּחַ)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제1장 제8절에서는 묵상이라는 다른 히브리어 하가’(הָגָה)가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 말의 공통적인 뜻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조용히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깊이 사색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읊조리면서 마음속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 이치를 깨닫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5)    그것은 부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깨닫도록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정확한 뜻을 알아야 올바로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간구에는 주님의 은혜가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바르게 실천하겠다고 하는 것이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이 각별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고 있는 명상(冥想, meditation)과는 그 뜻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명상은 그냥 간단한 화두를 가지고 깊은 생각에 빠지는 일종의 면벽수련과 같은 것이지만 기독교의 말씀의 묵상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을 읽다가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진리의 성령님께 깨우침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닫기 위하여 깊이 생각하고 기도할 줄 아는 이삭이기에 그의 믿음생활에 있어서 두가지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친 아브라함에 비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한번은 애굽으로 그 다음에는 그랄 평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은 지 여호와께 기도한 내용이 없습니다.

7)    그러나 이삭의 경우에는 여호와께 결정을 위하여 기도함으로써 그랄 땅으로 가라는 답변을 얻고 있습니다(26:1-3). 그 결과 두번의 시행착오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의 말씀과 믿음의 열조들의 행적을 깊이 생각하며 더 나은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는 이삭의 생활방식은 그가 처하고 있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상관이 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신부감을 만나기 위하여 부친의 집 헤브론으로 불려와 있는 지금도 습관적으로 그 들판에서 묵상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63).

8)    리브가가 비록 저녁시간이지만 먼발치에서 자신들을 향하여 접근하고 있는 젊은 청년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늙은 종 일행이 신부감을 구해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이삭인 것만 같습니다. 그녀는 얼른 낙타에서 내려 옆에 있는 종에게 그 청년의 신분을 확인합니다(64-65a). 역시 그녀의 신랑감입니다. 리브가는 예의범절에 맞게 얼른 신부의 복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울의 사용입니다(65b). 중동지역에서는 너울로 신부의 얼굴을 가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첫날밤 신방에서 처음으로 신랑에게 공개하는 것이 신비로운 신부의 얼굴인 것입니다.

(2)  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25:27-28, 야곱의 경우에는 어머니 리브가의 기도의 장막임),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2:22-25, 아담이 여호와가 창조한 하와를 맞이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고 사랑한 것과 같은 의미임),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2:20-25,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아름다운 11처제 사랑의 보금자리가 인생의 외로움과 상실의 슬픔을 치유하고 있다)”(24:66-67);

1)    사명을 완수한 늙은 종은 자신을 수행한 종자들과 함께 주인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에게 절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의 경과를 작은 주인에게 보고합니다(66). 그 보고를 들은 이삭은 늙은 종과 수행한 종들에게 노고를 치하한 후에 신부감인 리브가를 데리고 헤브론 외곽에 있는 그 옛날 모친의 장막으로 들어갑니다(67a). 참고로, 후처 그두라와 살고 있는 아브라함은 거처를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25:1).

2)    따라서 그 옛날 모친 사라가 사용하던 그 장막이 이제는 40세의 이삭이 리브가를 신부로 맞이하여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는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67b). 잠시 그동안의 일을 살펴보면, 이삭은 그의 나이 37세에 헤브론에서 모친 사라의 죽음을 경험한 청년입니다(23:1). 그는 부친 아브라함이 근처의 다른 곳으로 장막을 옮긴 후 후처 그두라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자 그때부터 독립생활에 들어갑니다(25:1).

3)    이삭은 어쩌다가 한번은 헤브론에 있는 모친 사라가 남겨놓은 장막에 와서 거처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350리 남방에 있는 브엘라해로이에 가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훗날 부친 아브라함의 장례를 헤브론에서 치른 후에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25:11). 그렇지만 신부 리브가를 맞이하여 신혼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헤브론 외곽에 있는 그 옛날 모친 사라의 장막에 머물고 있습니다.

4)    다시 남방으로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새 신부 리브가에게는 미안한 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3년상을 벌써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편하게 모친 사라가 남긴 장막을 신혼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의 인도하심으로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11처제의 아름다운 신혼생활을 시작한 것과 같은 새로운 삶을 모친 사라가 그에게 남긴 장막에서 아름다운 리브가와 함께 시작하고 있습니다(2:22-25).

5)    그로 인하여 3년전에 모친의 별세를 경험하고 슬픔에 잠긴 이삭이 비로소 인생의 기쁨을 다시 되찾고 있습니다(37c).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은 새로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에 치유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24:67).

결론적으로, 창세기 제24장에서는 전반부에서 노년의 아브라함이 얻고 있는 여호와의 복과 깨달음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인 후반부에서는 믿음의 인물 3명 곧 늙은 종 엘리에셀, 이삭, 리브가의 여호와신앙과 그 삶의 결단력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자신을 파송한 주인의 뜻을 먼저 실천하고자 발벗고 나서고 있는 늙은 종의 믿음의 결단은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집안에서 버림받고 있는 형제와 서모를 돌아보고 있는 이삭의 신앙자세 역시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인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신앙이 살아 숨쉬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집으로 시집가서 새로운 신앙생활을 시작하고자 하는 당찬 처녀 리브가의 결단을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체면이나 관습에 억매여서 꼼짝하지 못하는 신앙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동경심과 꿈이 우리 성도들에게 풍성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생동감이 넘치는 여호와신앙인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27(24:33-6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6 2 25()

 

1.      자신의 사명을 감당한 다음에 식사를 하겠다고 하는 늙은 종은 어떤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가?(24:33)

(1)   파송을 받은 종은 주인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임(24:33).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전도자와 선교자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

(2)   그와 같은 삶의 모범을 보인 종은 훗날 아들이 되어 영생을 누리며 주인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있는 상급을 누리게 되는 것임.

1)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는 말씀 가운데 영생을 얻는 방법이 들어 있음.

2)      방법은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것을 최우선으로 그리고 절대적인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고서 살아가게 되면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임.

3)      그렇게 신실하게 살아가는 종이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음;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8:35), “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2-3).

 

2.       늙은 종이 리브가의 부모와 오라버니에게 전해주고 있는 아브라함 가족의 이야기와 자신의 사명의 특징은 무엇인가?(24:34-49)

(1)   75세에 아비 데라를 떠난 아브라함이 140세가 때까지 지난 65 동안 가나안, 애굽, 블레셋 등지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방백이며(23:6) 선지자로서의(20:7) 삶을 살아왔던가에 대해서 늙은 종이 리브가의 집안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임. 그것은 다음과 같이 모험에 인생이며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엄청난 축복과 승리의 이야기임;

1)      애굽의 바로와 블레셋의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후궁으로 취하려다가 혼이 이야기(12:17, 20:3, 18).

2)      오히려 아브라함은 그들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고 부자가 이야기(12:16, 20, 20:14, 16).

3)      브엘세바에서 블레셋의 왕중왕인 아비멜렉과 대등하게 상호불가침 평화조약을 맺게 (21:23-24, 31).

4)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의 다국적군을 추격하여 격파하고 장조카 롯을 비롯한 많은 포로와 약탈당한 재물을 되찾아온 (14:14-16).

5)      100세에 하나님의 역사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은 (21:1-5).

6)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급히 말리시고 오히려 축복을 주신 (22:10-18) 등임.

(2)   늙은 종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밤새 해주고 있는 이유;

1)      아무쪼록 리브가를 믿음의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얻어서 데리고 가고자 하는 것임.

2)      이야기를 듣고서 리브가가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고 계시는 집의 역동적인 삶을 동경하여 시집을 가겠다고 자원하면 늙은 종의 사명이 성취가 되는 것임.

 

3.       리브가를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늙은 종의 요구에 대한 리브가 집안 어른들의 답변은 무엇이며 특징은 무엇인가?(24:49-51)

(1)  먼저, 늙은 종의 요청이 다음과 같음; “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사실은 손녀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24:48-49);

1)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며느리로 선택이 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음.

2)      여기서 사실 리브가는 나홀의 손녀인데 마치 그의 딸인 것처럼 기술이 되고 있음. 그러므로 그것은 의미가 가지인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임; 첫째, 진짜 딸을 의미함. 둘째, 손녀나 여자로서 뛰어난 후손을 의미하기도 . 그것은 마치 아들이란 용어 속에 진짜 아들 혹은 뛰어난 자손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은 용법임.

(2)  이에 리브가의 오라비와 부친이 긍정적으로 답변하고 있음;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24:50-51);

1)      고대사회에서는 친권자인 친정 아버지가 딸의 혼사를 결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2)      그리고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의 이름이 부친 브두엘의 앞에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집안의 실권자는 이미 젊은 라반임. 그가 대내외적으로 늙은 아비를 대신하여 족장의 위세를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대목임.

(3)  나홀의 후손들 역시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가문임을 알게 해주고 있음. 그래서 그런지 나홀의 맏아들 이름이 우스(22:21).

1)      훗날 우스 땅에 하나님 경외자인 의인이며 집안의 제사장인 욥이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음(1:1, 5).

2)      그렇다면, 욥이 완전한 이방인이 아니고 나홀의 후손이며 이스라엘의 친척이기 때문에 그의 기록이 성문서로 끝까지 남아 있다고 있을 것임.

3)      그리고 욥기는 이스라엘 자손들만 하나님 경외사상을 지니고 있는 족속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 이방인 중에 특히 셈의 후손들 가운데 하나님신앙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며 정경인 것임.

(4)  리브가의 친권자들로부터 허락을 받은 늙은 종이 그들에게 감사하기 이전에 땅에 엎드려 여호와 하나님께 절하고 예물을 주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임.

1)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를 드려야 하는 것임(24:52).

2)      다음에 당사자들에게 감사하고 선물을 드리는 것임(24:53).

 

4.       미리 주고 있는 예물의 크기는 어떠한가?(24:52-53)

(1)   필의 낙타에 실려 있던 것임(24:10). 그것은 엄청난 양의 예물임. 아브라함이 믿음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기 위하여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임.

(2)   내용물은 은금 패물과 의복 그리고 보물임(24:53a). 그것은 특히 고대사회에서 값이 비싼 것들임.

(3)   예물을 받은 사람은 리브가, 오라비 라반, 모친 등임(24:53b). 부친 브두엘이 선물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 인상적임. 아무래도 집의 남자에 대해서는 라반이 대표자로서 물품을 수령한 것으로 보임.

 

5.       다음날 바로 리브가를 데리고 떠나기 위하여 늙은 종은 어떠한 요구를 하고 있으며 리브가의 답변은 무엇인가?(24:54-58)

(1)   다음날 아침 늙은 종의 무리한 요구; “이에 그들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리브가와 함께) 보내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24:54).

(2)   이에 대한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모친의 답변; “리브가를 며칠 또는 열흘 친정에 머물게 다음에 데리고 가도록 하라 것임(24:55).

(3)   늙은 종이 서두르는 이유; 이에 대하여 늙은 종은 여호와께서 형통한 길을 내신 것이므로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것임(24:56). 결국 최종결정은 신부 감인 당사자 리브가의 결심에 따르도록 하고 있음(24:57).

(4)   리브가의 결정; “가겠나이다!”(24:58).

1)      짧지만 결연한 태도임.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또한 허락하신 길이므로 길을 달려가는 것이 옳다는 리브가의 단호한 결심인 것임.

2)      요컨대,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는 가문에(22:18) 편입이 있는 여인의 신앙자세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음.

 

6.       리브가를 축복하고 있는 친정식구들의 축복내용은 무엇인가?(24:60)

(1)   라반이 친정 집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이 시집을 가는 누이의 앞날을 축복하고 있음;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 될지어다. 씨로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24:60).

(2)   모세 기록의 의미

1)      사라가 열국의 어머니’(17:16)이며 그녀의 며느리는 천만인의 어머니’(24:60). 그것은 같은 의미임.

2)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 “ 씨가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22:17) 예언이 장차 리브가의 자녀를 통하여 실현이 것이라는 것임.

3)      결국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삭이 승계하고 사라의 칭호를 리브가가 승계하고 있는 것임. 그리고 약속의 아들 이삭의 가문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가 되어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예언으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임.

 

7.       자신의 신부 감을 기다리고 있는 이삭은 빈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24:63)

(1)   묵상’(默想, contemplation) 하고 있음(24:63). 그것은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용어임.

1)      따라서 이삭을 묵상하는 신앙인으로 부를 수가 있을 것임.

2)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달리 묵상을 통하여 시행착오를 많이 줄이고 있는 성숙한 신앙인임.

(2)   묵상 의미는 명상’(瞑想, meditation) 다른 것임;

1)      흔히 있는 명상 스님이나 도사들이 화두(話頭, 사색의 주제나 실마리) 가지고 마음을 비워 면벽수련을 하면서 풀이를 하고자 하는 것임. 그것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수련이며 일종의 마음의 수련으로도 효과가 있음.

2)      이에 비해 묵상 하나님의 예언이나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자 하나님의 지혜를 요청하고 있는 일종의 기도와 같은 것임.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마음 속에 비쳐오게 되면 정경의 전체말씀 가운데서 예언이나 구절의 대목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중이 깨달아지는 것임. 그렇게 되면 당사자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깨달음의 영성 아래에 가지런히 정렬이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고 하겠음.

 

8.       이삭은 헤브론 아버지 집이 아니라 멀리 브엘라해로이에서 살고 있는가?(24:62)

(1)   브엘라해로이 일찍이 아브라함의 헤브론 집에서 애굽 쪽으로 도망을 하갈이 하나님을 만난 장소임(16:6-14). 위치는 애굽으로 가는 수르 광야의 샘물 근처임(16:7)

(2)   이삭이 헤브론에 살고 있는 아버지 아브라함을 떠나서 총각의 몸으로 남쪽 브엘라해로이 살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음;

1)      계모 그두라와 아버지 아브라함 사이에 자식들이 태어나고 있으므로(25:1-5) 나이가 총각 이삭이 아비 집을 떠난 것임.

2)      자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이스마엘과 서모 하갈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한 이삭이(21:9-14) 일부러 그들 모자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장소 브엘라해로이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래서 그런지 이삭과 이스마엘은 우애가 좋은 것으로 보임. 왜냐하면,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있기 때문임(25:9). 어쨌든 성숙한 신앙인 이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음.

3)      이삭이 독자적으로 목축을 하기 위하여 남쪽의 브엘라해로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9.       이삭의 존재를 눈치 채자 리브가는 어떠한 조치를 하고 있는가?(24:65)

(1)   이삭을 발견하고 신랑감임을 확인하자 리브가는 낙타에서 내려 너울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이삭에게 접근하고 있음(24:64-65).

1)      성경에 최초로 나타나고 있는 신부의 면사포임.

2)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신부로 데려다 때는 그러한 표현이 없음(2:22-25).

(2)   참고로, 북부 시리아 하란에서 가나안 헤브론까지 600km 낙타여행을 하는 동안 늙은 종과 동행자들 앞에서는 너울로 얼굴을 가린 적이 없는 리브가임(24:63).

1)      그런데 신랑이 되는 이삭 앞에서는 얼굴을 가린 것일까?

2)      사도 바울의 다음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임; “우리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3)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님이 임재하여 함께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16:6-7) 영적인 삶으로 말미암아(8:8-18) 구태여 너울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임.

 

10.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삼고 어떠한 위로를 얻고 있는가?(24:67)

(1)   이삭의 외로운 처지

1)      이삭은 3-4 무렵에 브엘세바에서 이복 이스마엘과 헤어짐(21:8, 14). 그리고 3년전에는 헤브론에서 어머니 사라가 별세한 있음(23:1).

2)      아버지 아브라함은 상처를 후처 그두라와 살고 있으므로(25:1) 이삭은 아비 집을 떠나서 멀리 남쪽 브엘라해로이에서 목축생활을 하고 있음(24:62).

3)      천지간에 자주 만날 있는 형제가 없는 이삭은 마디로, 외로운 청년임. 그래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음(24:62).

4)      그것은 훗날 혈혈단신으로 애굽에 팔려가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요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39:1). 그와 같은 고생이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형통의 삶이 되고 있는 것임(39:2).

(2)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의 뒤를 잇고 있는 이삭과 리브가의 가정의 출범

1)      이삭은 어머니 사라를 여의고 3년상을 치른 다음에 리브가와 신방을 꾸민 셈임(24:67).

2)      리브가의 성품에 대해서는 늙은 종의 보고로 충분히 알고 있음(24:66).

3)      어머니 사라와 너무나 닮아 있는 리브가(사라의 오라비 나홀의 손녀임, 20:12, 22:22-23) 아내로 맞이하고 이삭은 다시 행복해짐(24:67).

4)      표현이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24:67) 것임. 대목은 2:23-25’(하나님 안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사랑과 결혼) 만큼이나 아름다운 기록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