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25강(눅23:44-4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7. 04:39

누가복음 강해 225(23:44-4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19()

 

정오에서 오후 3 운명하실 때까지 십자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23:44-4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6시간 동안의 기록에 있어서 4복음서가 조금씩 내용이 다릅니다. 이유는 복음서의 저자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에 처음부터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가 사도 요한 사람뿐이고 나머지 3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3인의 저자들은 당시의 증거와 증인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자료의 취사선택의 여부에 따라 약간씩 기록의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요한복음의 내용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사건의 발생과 요한의 저술 사이에는 60년의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시점은 주후 32 4월경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4복음서를 저술하고 있는 때는 주후 90년대초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20 초반의 경험을 80대의 노인이 사도 요한이 복음서의 저술을 위하여 다시금 회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억에 있어서 매우 인상적인 것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예수님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참고하여 주제와 관련된 4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상에 가장 먼저 나온 마가복음에서는 첫째, 유대인들의 6 정오부터 9시인 오후 3시까지 땅에 어둠이 계속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15:33). 둘째, 9시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라고 부르짖으시고 다음에 소리를 지르시면서 운명하십니다(15:37). 셋째, 운명하시자 동시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15:38). 넷째, 예수님의 운명의 순간을 보고서 십자가를 지키고 있던 로마의 백부장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15:39)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본 증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에서 여인들입니다(15:40-41).

(2)   마가복음을 크게 증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대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한가지 사실을 제외하면 대체로 마가복음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한가지가 바로 예수님의 운명하심과 더불어 세상에 임하고 있는 지진 성도들의 부활 사건입니다.

2)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27:51-53).

(3)   마태복음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누가복음에서는 대체적으로 마가복음과 비슷하지만 다음과 같이 몇가지가 다릅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15:34, 27:46)라는 외침 대신에 아버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숨지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처형의 광경을 보려고 골고다 언덕에 나왔던 많은 무리들이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23:48).

(4)   공관복음보다 25 이상 늦게 나온 요한복음은 대목에 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대단히 다릅니다. 이유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십자가 임종의 자리에서 묘사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어떻게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이루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대속의 희생제물로 매달리게 되자 이제는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아시고 히브리정경의 예언을 응하게 하려 하사 내가 목마르다”(19:28, 69:21, 그래서 마치 초와 같은 포도주를 마시게 되심)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루었다”(19:30) 말씀하시고 영혼이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그의 손과 영혼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53:10-11) 십자가상의 예수님에 의하여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다음날이 안식일이므로 십자가에 이상 매달아 수가 없어서 죄수들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19:31). 그런데 죄수들이 도중에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다리를 분지르고 있습니다(19:32).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끌어내리고 보니까 이미 숨이 끊어져 있습니다(19:33a). 따라서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시신을 운반하고 있습니다(19:33b). 그것은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12:46, 9:12, 34:20) 히브리정경상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19:36).

4)      넷째, 선지자 스가랴의 글에 그들이 찌른 자를 보리라”(12:10) 예언한 그대로 실제로 로마병정들이 예수님께서 숨이 끊어져 있는 것을 보고서도 확인사살을 위하여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는 것입니다(19:33-34a, 37). 결과 부위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사람들이 있었다는 내용을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19:34b).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때가 6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둠이 임하여 9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23:44-45);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시간은 유대인 시간으로 3 오늘날의 오전 9시입니다(15:25). 그때 예수님의 뒤를 따라온 사도 요한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비롯한 이모와 숙모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등이 십자가 곁에 서있습니다(19:25-26a). 따라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홀로 남게 되시는 모친의 노후를 막내 사도인 요한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십니다(19:26b-27). 나중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이상 그들이 아래서 지켜보지를 못하고 멀찍이 물러나서 보고 있는 것으로 의사 누가가 간략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23:49).

(2)   의사 누가는 당시 골고다 언덕에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여 신빙성을 분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시간에 예루살렘성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 누가는 마가나 사도 마태가 그들의 복음서에 기록하였다고 하여 그대로 옮겨 적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나름대로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근원부터 기록을 하고자 무척 애를 쓰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1:3). 그리고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여 로마제국의 정보조직이 정확한 상황분석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1:4).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도 확실한 정보만을 제공하여 모두들 예수님의 복음의 증거자로 삼고 싶어합니다(24:47-48).

(3)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당시의 일을 기술하고 있는 의사 누가가 다른 공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가지 사건이 사실이라고 역시 자신의 복음서에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첫째, 그날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세상에 어둠이 임했다는 것입니다(23:44, 15:33, 27:45). 둘째, 예루살렘성전에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있는 휘장이 완전히 둘로 갈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23:45, 15:38, 27:51). 사건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밤중에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체포한 순간부터 사실은 어둠의 권세가 지배하고 있는 시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22:53). 어둠의 권세가 절정을 치달리고 있는 시간이 바로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3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정오부터 어둠의 권세를 지닌 악한 영들이 얼마나 메시아의 숨통을 끊어버리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오부터 예수님께서 운명하시는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흑암의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2)      그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 9번째 재앙으로 흑암의 재앙이 애굽 땅에 임한 것과 같습니다(10:21-23). 재앙이 있은 후에 장자의 죽음이 10번째의 재앙으로 유월절 밤에 임하게 됩니다(12:29-30). 그와 동일한 사건이 골고다언덕에서 발생합니다. 흑암의 재앙이 임하고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23:44-46).

3)      둘째, 유월절 장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출애굽사건이 있은 다음에 홍해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사건과 홍해사건은 다릅니다. 이유는 유월절 밤에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서 먹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는데 그러하지 아니한 애굽인들의 집에서만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2:6-14).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남의 불구경과 같은 것입니다.

4)      하지만 홍해사건은 다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서쪽의 비하히롯에서 사람씩 홍해가 둘로 갈라지고 사이에 생긴 마른 땅을 건너서 동편의 바알스본까지 도착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14:2, 21-22, 29). 홍해바다가 둘로 갈라지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희생양으로 운명을 하실 때에 예루살렘성전의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23:45).

5)      이제는 갈라진 휘장 사이를 성도들이 사람씩 자신의 발로 걸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지성소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상 성소 바깥에서 모세가 전해주는 율법을 법조문처럼 지키는 그러한 간접적인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는 지성소 내의 언약궤를 열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야만 합니다(25:21-22). 따라서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졌다고 하는 묘사는 이제는 성도들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그러한 새로운 언약의 시대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희생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언약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22:20).

둘째로,예수께서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말씀을 하신 숨지시니라”(23:46);

(1)   땅에서 예수님께서 3 6개월간 제자들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시는 공생애를 끝내시고 대속의 십자가까지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육신을 입고서 하시는 모든 사명이 끝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평안하게 영혼이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야 시간입니다. 따라서 소리로 아버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라고 모든 사후의 일을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능력에 맡기시고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십니다.

(2)   그러한 기도가 사실은 유대교인들의 잠자리에 들기 전의 기도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다음날 눈을 뜨게 되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새날을 허락하시고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복음사역을 있도록 다시 깨어나게 해주시는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 세상에서 깨어난다고 하면 그때에는 천국에서 부활의 몸을 입고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것입니다(27:52-53, 고전15:21-23). 그것은 영적으로 은혜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백부장이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23:47-48);

(1)   유대 땅에 파견이 되어 있는 로마총독은 옛날 헬라시대 셀루시드 왕조가 다스리고 있던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는 시리아 총독의 감독과 감찰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2:1-4, 로마황제의 명령이 시리아총독을 통해서 예루살렘총독에게 전달이 되고 있음). 그러므로 로마의 군단들은 사실 다메섹에 있는 시리아총독의 관할 아래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대의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총독은 군사가 적습니다. 천부장이 3명이고 수백명의 기병대를 거느리고 있을 뿐입니다. 가운데 평소 예루살렘에는 천부장을 사람 군대와 더불어 주둔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부장은 그대로 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아래에는 10명의 백부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가운데 당시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처형을 시행하고 있는 자가 사람의 백부장과 그의 군사들입니다. 백부장은 주후 32 4 15 금요일 아침부터 바빴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포함하여 3명의 죄수를 로마군 현지사령부인 브라이도리온에서부터 골고다언덕까지 끌고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15:16-20, 23:26, 32). 그리고 오전 9시에 모두 십자가에 못박습니다(15:25). 정오가 되자 이상하게도 백주에 오후 3시까지 해가 어두워지고 흑암이 임합니다(23:44).

(3)   사도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 갑자가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27:51). 따라서 백부장은 골고다 언덕 아래에 있는 골짜기의 공동묘지가 쩍쩍 갈라지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27:52). 자신의 밑도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부장은 자신이 크게 잘못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인 알고 십자가에 잘못 처형하였기에 하늘이 노한 것으로 보입니다; “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23:47b). 그래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부디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23:47a).

(4)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던 구경꾼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자리에 이상 서있지를 못합니다. 메시아를 죽이는 만행의 자리에 계속 서서 구경을 하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로 어떠한 재앙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면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슴 속에 후회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23:48).

넷째로,예수를 아는 자들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멀리 서서 일을 보니라”(23:49);

(1)   다른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27:55-56, 15:40-41). 그리고 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여인들과 더불어 사도 요한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19:25-27). 그런데 의사 누가는 본문에서 여인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아는 자들 멀리 서서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23:49). 의사 누가의 묘사가 정밀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유는 안식 첫날 새벽에 무덤으로 찾아간 사람들 가운데 갈릴리 여인들이 있고 다음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있기 때문입니다(24:10-12, 20:1-10).

(2)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따라온 여인들에 대하여 4복음서의 표기가 조금씩 다릅니다. 의사 누가는 그녀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다른 여자 등이라고 적고 있습니다(24:10).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던 사도 요한은 좀더 세밀하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어머니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19:25). 참고로,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재정적으로 도운 여인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예수님 일행) 섬기더라”(8:2-3). 가운데 사람이 십자가 자리에까지 동행하고 있습니다. 역시 재물이 가는 곳에 몸도 따라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길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길은 성소와 지성소를 오랜 세월 분리시키고 있던 휘장이 두조각으로 갈라지고 생겨난 길입니다. 그동안 지성소 휘장 안으로 들어갈 있는 자는 히브리정경에 의하면 대제사장뿐입니다(30:10, 16:2, 11). 그것도 10 10 속죄일 하루만 들어갈 있습니다(16:12-17, 29-30).

돌이켜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5:4-5). 그래서 모세에게 혼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와서 자신들에게 율법으로 가르쳐주면 그것을 무조건 지키겠다고 서약을 합니다(5:25-27). 결과 모세와 같은 선지자 또는 왕이 다스리는 신정국가가 성립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고 하는 지성소 안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하루 출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은 백성들의 간접적인 신앙행태에 대하여 모세는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때가 되면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있는 선지자들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1:29).

모세의 소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간접신앙의 어두운 시대를 청산하고 태양보다도 밝은 하나님의 생명의 빛을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 가운데 얻게 되는 영적인 임재와 동행의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놀라운 은혜가 주님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