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OBS교재(손진길 작성)

마가복음 제5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0. 12. 21. 18:15

마가복음 제 5 (2:18-3:6) <OBS2-05>(손진길 작성)

 

[Q1] 나의 삶 속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와 안 계실 때의 차이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l  예수님께서 함께 계실 때에는 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즐거워하며 내 인생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마시고 생기를 얻는 기쁨이 충만하지만 일단 예수님께서 나의 인생살이 가운데 아니 계시게 되면 영적인 즐거움과 생명의 기쁨이 모두 사라지게 됨. 따라서 그러한 경우에는 즉시 신앙의 회복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할 때라고 그 차이를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임(2:19-20, 5:33).

l  예수님께서 자신은 혼인잔치자리의 신랑과 같으며 손님을 초대하여 먹고 마시는 기쁨을 주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심. 그리고 예수님이 아니 계시는 인생이란 마치 주인공인 신랑이 없는 손님들만의 혼인잔치와 같이 헛된 것이므로 생명의 주인을 다시 모시기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할 때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임(2:20).

 

 [Q2]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우리 인생에 받아들이자면 어찌해야 하는가?

l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의인, 그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죄인이라는 선민 위주의 이분법을 버리고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고서 회개를 하여야 한다는 것임. 그 이유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율법을 외형적으로 완전하게 지키는 자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 속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온전하게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기 때문임.

l  그러므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와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하고 대속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는 그 인생 가운데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인 것임(5:32, 19:8-10). 그와 같은 말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새 포도주이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이요 구원주로 모시고 사는 자가 새로운 가죽부대에 해당하는 것임(2:21-22).

l  요컨대, 예수님의 만민구원을 위한 복음적인 시각에서의 하나님의 말씀풀이 그것이 새 포도주이며 새 언약의 시대를 열고 있는 것임. 반대로, 자신의 의로움을 내 세우고 선민의 족보를 자랑하며 여전히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여 죄인으로 정죄하는 것은 낡은 말씀풀이이며 묵은 포도주가 되는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새 포도주보다 묵은 포도주를 선호하고 있으며(5:39) 새로운 각오와 결단이 없이 새로운 사상만을 받아들이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내적, 외적인 모순이 발생하여 마침내 터져버리는 낡은 가죽부대의 비극을 경험하고 있는 것임. 예를 들면,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유교 방식의 기독교 문화, 내재적 기복신앙의 존재 등이 그러한 경우임.

 

 [Q3]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l  예수님의 말씀은 첫째, 율법적인 이분법 곧 선민과 이방인 또는 의인과 죄인이라는 인위적인 구분에 물들어 있는 낡은 사고방식을 하나님 보시기에 모두가 죄인이며 회개와 구원의 대상이라는 새로운 인식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음. 그것이 새 부대로 질적으로 변화되는 인식의 첫 단계인 것임(17:3).

l  둘째로,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적인 하나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의 복음적인 시각에서 풀이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풀이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구원의 능력으로 발휘되고 있음.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죄 사함의 능력이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2:7, 1:27). 환언하면,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치심에 계속적으로 말씀의 권세가 주어지고 있는 것임(1:22,27, 2:10).

l  끝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힘이 깃들어 있기에 그것은 가장 권위 있는 것임. 한 마디로, 올바른 인간과 사회의 권위라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임. 공식화 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임; “권위(Authority) = 창조자의 힘(Power of Author)”.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구현하지 못하는 권위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억누르고 속박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

 

 [Q4] 입법취지를 잃어버린 법제도 시행이 가져오는 폐해와 같은 것은 무엇인가?

l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2:27)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사회에 있어서는 마치 백성들이 안식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안식일 규정에 억매여서 살고 있는 실정임. 예를 들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5:8)고 명령하셨더니 유대인들이 안식일 날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행위가 안식일 규정에 위배된다고 시비를 걸고 있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과 같은 것임.

l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방법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생명의 창조주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말씀공부를 시키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본래의 취지를 잊어버리고 안식일 날 자체를 일하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보내는 방법만을 연구하여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던 것임. 따라서 인간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해주기 위하여 제정해놓은 안식일이 어느 사이엔가 인간의 자유를 엉뚱하게 종교적인 권력으로 구속하는 외식적인 율법국가의 모습으로 바뀌어진 것임.

l  요컨대, 창조된 것은 창조자의 창조의 취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지 아니하는 방법이 됨(1:26-28). 그리고 창조의 목적과 말씀의 뜻, 나아가서 안식일과 율법제정의 취지까지 잊어버리게 되면 시행세칙만을 강제하게 되고 율법의 강조가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임.

 

 [Q5] 인간창조의 취지 중 가장 앞서는 것은 무엇인가?

l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심(3:4). 하나님께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50:20, 1:12-13) 그들에게 만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하게 관리하는 책무를 다시 명하신다는 것임(8:19-22). 그것은 창세기에서 엿볼 수 있는 인간창조와 사명부여 그리고 축복의 이유를 다시 말하고 있는 것임(1:26-31).

l  만민과 만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 인자(Son of man)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임(1:11, 1:14, 3:16).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설명한 예수님의 말씀이 오디오’(Audio) 복음이라면 말씀 그대로 실천하신 예수님의 공생애와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삶은 비데오’(Video) 복음인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