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33강(눅12:22-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26. 03:58

누가복음 강해 133(12:22-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14()

 

믿음이란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창조주 앞에 정직하게 바로 서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12:22-28)

 

선민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가치가 목숨의 보전이며 몸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하고 염려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12:2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목숨이란 음식보다 소중한 것이며 몸이란 의복보다 훨씬 귀중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23). 말씀은 목숨을 보전하고 있는 자신의 인생을 물질적으로 목숨을 유지하게 해주는 음식을 구하는 일에만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의복으로 감싸고 있는 몸이 의복보다 훨씬 소중한 이유는 사람의 목숨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이 깃들어 있는 육체를 가지고서 자신의 인생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얻을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의 소원처럼 유한한 목숨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고 보전할 있는 방법과 세상에서만 사용할 있는 몸이 아니라 영원히 사용할 있는 부활의 몸을 입을 있는 방법이 것입니다(3:10-12).

그렇게 인생이라는 시공간을 뛰어 넘을 있는 영원한 것들은 어떻게 얻을 있는 것일까요? 방법에 대하여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쉽게 말씀해 주십니다;

(1)   첫째, 의식주를 구하느라고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조용히 공중의 새와 땅의 백합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농사도 짓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아니하는 새가 오히려 힘있게 하늘을 날며 또한 백합화가 사람들이 만든 의복보다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음을 있게 됩니다(12:24, 27). 그렇다면, 새와 백합화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며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고 계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12:24, 28).

(2)   둘째, 사람들에게 식물의 종자를 주시고 그것을 나고 자라게 해주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역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사람들이 옷을 만들고 있는 재료도 근본적으로 누가 주신 것일까요?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능력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농사를 짓고 가공을 하여 사용하고 있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3)   셋째, 생각을 넓혀보면 세상적인 인간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과학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를 모방하여 가공하며 체계화하고 있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마디로 원천적인 창조는 불가능한 인간입니다. 그것이 과학의 한계이며 인간 능력의 한계입니다.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바로 때에 인생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창조주의 긍휼과 자비를 믿고서 생활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발견입니다(12:28-30).

위와 같은 사실을 분문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 음식보다 중하고 의복보다 하니라”(12:22-23);

(1)   비근한 예로, 컴퓨터로 작업을 하자면 첫째, 하드웨어인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둘째,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며 셋째,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자면 첫째,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몸이 있어야 하고 둘째,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목숨이 있어야 하며 셋째, 에너지를 공급하며 체온을 유지하게 해주는 음식과 의복이 있어야만 합니다.

(2)   그래서 사람들은 몸의 건강을 챙기고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기서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얻고자 하며 몸을 따뜻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호하기 위하여 좋은 의복을 구하는 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12:22). 말씀 그대로 사실 사람들은 평생 의식주(衣食住, 의복과 음식과 ) 매어 달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만 사람이 세상에서 생존하며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한번 깊이 생각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일종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목숨 음식보다 중하고 의복보다 하다”(12:23) 하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의 우선순위가 변해야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우선순서는 첫째, 의식주보다는 목숨과 몸이 훨씬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②둘째, 본질적이고 복음적인 사고에 있어서는 유한한 목숨과 몸보다는 인생 가운데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몸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발견하고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귀하냐?”(12:24);

(1)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집대성하여 현실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며 동시에 다가오는 미래의 문제에 대비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며 미래지향적인 행동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과거의 사실들을 집대성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기에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참으로 분주합니다.

(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물질적인 삶의 기반을 확고히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항상 염려하고 문제에 매어 달리는 것을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시지 않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의 인생살이를 관찰하시고 필요한 생존의 방법을 제공하시며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의 불신앙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3)   따지고 보면, 인생의 주인은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살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삶의 여건을 조성하시고 생존의 조건을 갖추게 해주시는 인생을 인도하시는 주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자들이 하나님 경외자입니다. 반면에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입니다. 그들 무신론자들은 얼마나 인생살이가 힘이 들고 염려와 불신앙으로 가득 있는지 모릅니다.

(4)   예수님께서는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는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2:24a). 그러므로 그들을 키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각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지성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생을 살아가고자 도모하고 있으므로 얼마나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만약 발상을 전환하여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을 따라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고 하면 여호와의 완벽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할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공중의 새나 들판의 백합화보다는 훨씬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12:24b).

셋째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키를 자라도 더할 있느냐?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12:25-26);

(1)   사람이 염려를 한다고 하여 자신의 키를 키울 있는 것이 아닙니다(12:25). 키는 하나님께서 주신 유전자의 정보에 따라서 커져 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유전자를 하나님처럼 만들어낼 수가 없는 이상 인간의 염려는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2)   흔히 생물학의 목표는 작은 생물체라도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목표는 21세기 지구촌 시대인 오늘날에도 달성이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세상과 만물을 보고 디자인을 모방하여 무언가 편리하게 공작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무생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3)   그러한 기본적인 창조의 일을 수행할 없는 인간이 세상을 개조하거나 인생을 자신의 뜻으로 변화시켜 나간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말도 안되는 소리) 것으로 보입니다(12:26). 따라서 자신과 세상을 올바르게 경영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먼저 인정하고 능력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넷째로,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12:27-28);

(1)   예수님께서 알아 듣기 쉽도록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①첫째, 백합화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백합화의 자연미와 독창적인 아름다움은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이기 때문입니다. ②둘째, 그에 비해서 솔로몬 대왕이 입고 있는 왕복은 그것만큼 아름답지가 못합니다(12:27). 이유는 창조주의 솜씨가 아니라 사람들의 솜씨이기 때문입니다.

(2)   기본적으로 백합화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백합화의 품격과 속성을 일일이 아시고 그것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 입히시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사람들은 백합화를 만들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백합화에 어울리는 옷을 디자인하여 만들어 입히라고 주문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라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인간들이 만든 옷은 자연미와 독창성 면에서 애초부터 하나님의 것과는 비교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가지의 절차를 거치시고 있습니다; ①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번성의 축복과 세상을 경영할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십니다(1:26-27). ②둘째,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드십니다(2:7a). ③셋째, 육신에 코를 맞대시고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2:7b).

(4)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선물하셨기에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 걸작품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내적인 성품을 닮아 있으며 디자인을 물려받고 있는 유일한 창조물인 인간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더구나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과 코를 맞대고서 영적인 호흡을 함께 하면서 영생의 존재로 살아갈 있는 존재입니다.

(5)   그러므로 마디로, 사람이란 자신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서 함께 영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가게 되면 마치 하나님의 자녀처럼 고귀한 존재입니다(1:12-13). 그러므로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믿음의 결단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12: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힘으로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십니다(28:18-20, 1:8, 1:21-23).

결론적으로, 본문은 어떻게 하면 창조주를 발견할 수가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우선순위와 사람들의 우선순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우선순위는 목숨의 보전과 육신적인 자신의 안전과 영광이 최우선입니다. 영생의 문제나 하나님신앙은 후순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반대입니다. 유한한 인생과 목숨의 보전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노심초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짧은 인생살이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고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며 정직하게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우선순위는 유한한 목숨과 인생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그에 합당한 새로운 몸을 구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몸이 사도 바울이 그토록 얻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입니다(3:10-12, 고후5:1-4).

그러므로 아무쪼록 부활의 몸을 얻고 영생으로 들어가는 성도의 삶을 영순위로 삼고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