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26강(눅11:45-4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22. 21:30

누가복음 강해 126(11:45-4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7()

 

신앙생활에 있어서 바담 바람 ’, 그리고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는 율법교사들에 대하여(11:45-48);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다음 세가지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바리새인들은 겉으로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는 외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11:42). ②둘째, 백성들의 구원과 사함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겸손한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영위하지 아니하고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권력과 대접 받는 삶에 익숙해져 있습니다(11:43). ③셋째, 내세와 영생구원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현세적인 축복만을 탐하는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1:44).

그와 같은 엄중한 예수님의 질책을 당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의 율법교사가 그것은 너무나 모욕적인 말씀이라고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11:45). 항의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랍비들의 역사적 잘못에 대하여 지적하시는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내용은 크게 보아 두가지입니다; ①첫째, 율법교사인 랍비들이 백성들에게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라고 교육을 시키면서도 실제로 그들은 율법의 깊은 내용에 대해서는 실천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1:46). ②둘째, 하나님께서 말씀의 깊은 뜻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선민들의 사회에 보내셨지만 랍비의 조상들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사회를 선지자들의 무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1:47-48).

위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11:45);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신앙생활이 위선적이라고 주장하십니다(11:39-44). 구체적으로, 겉과 속이 다르고, 군림하기를 좋아하며, 현세적인 축복사상만 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말을 들은 바리새인 중에 사람의 율법교사 랍비가 예수님께 항변을 하고 있습니다(11:45a).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들을 모욕하는 언사(言辭, 말이나 말씨)라는 것입니다(11:45b).

둘째로,이르시되,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도다”(11:46);

(1)   랍비의 항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율법교사들이 잘못하고 있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율법교사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그냥 말로써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 모범을 보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랍비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를 아니하면서 백성들에게만 실천을 하라고 강조하고 있으니 그것이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면, 선생이 잘못 발음을 하여 바담 이라고 하면서 생도들에게는 바람 으로 알아 들으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조문화하고 그것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하여 장로들이 세부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7:7-8). 그것을 랍비들은 백성들에게 그대로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방대한 규정을 모두 지킨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랍비 앞에 서게 되면 백성들은 모두 죄인들입니다.

(4)   그래서 괜히 주눅이 들고 있습니다. 눈속임이 아니면 도저히 모두 지킬 수가 없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결과 가식적인 신앙생활의 모습만이 농후해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율법의 무거운 짐을 백성들에게 지워 놓고서 정작 랍비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만 모두 지키는 하면서 거룩한 흉내를 내고있습니다(11:46). 그와 같은 현실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11:48);

(1)   선민들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부류의 지도자가 있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율법국가의 ,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가운데 왕과 제사장은 세습이지만 선지자는 아닙니다. 신정국가의 왕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선민의 나라를 지키고 통치하며 백성들에게 생활의 복을 전해주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생도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다윗 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다음에는 제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레위인의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에는 왕이 대제사장을 겸임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종적을 감춘 시대입니다. 대신에 바리새인들이 히브리 정경을 연구하고 주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율법생활을 있도록 율법의 세부규정을 정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과 백성들은 선지자의 말씀을 바로 듣는 시대가 아니라 랍비로부터 바리새인들이 만든 히브리 정경에 대한 주석을 배우고 상세한 율법의 세부규정을 배워서 생활에 적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   그와 같은 시대적인 변천을 예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밝혀주는 선지자들이 사라지고 대신에 바리새인들이 집대성하고 제멋대로 해석을 놓은 주석을 랍비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랍비들이 만약에 여호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기도와 간구 그리고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뜻과 취지를 깨달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훌륭한 랍비의 문하에서 생도생활을 하게 되면 율법을 배울 수가 있고 나중에 백성들을 가르칠 있는 랍비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학문의 분야로 이해하고 것입니다.

(4)   그러한 시대를 살다가 보니까 선지자가 필요 없는 시대, 그리고 선지자를 외면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전 5세기 말의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하여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지자가 없었지만 대신에 바리새인들과 랍비가 있었기 때문에 별로 불편함이 없이 선민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옛날 선지자들을 존경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자신들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선택이 옳았으며 업적이 찬란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11:48).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선지자를 죽이고 무덤을 만들어 기념하면서 자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랍비들의 시대 예수님 당시라고 하겠습니다.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11:47-48).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잘못된 모습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위탁한 선지자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정경과 율법세칙만을 공부한 랍비의 가르침을 옳다고 믿고서 가르침에 따라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백성들의 영을 살려서 스스로 말씀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있도록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랍비들은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의 말씀연구와 율법의 전승만이 학문적으로 옳으며 율법의 세칙을 모두 준수하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을까요? 그것은 믿음이 그러하듯이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만약 신앙생활이 학문의 분야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성이 사라지고 지성과 이성만으로 종교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바리새인과 랍비들의 신앙의 모습을 질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아무쪼록 깊은 성찰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