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창세기 제40장에서 히브리인 청년 요셉의 눈에 비친 바로의 절대권력(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19. 05:48

제목; “창세기 제40장에서 히브리인 청년 요셉의 눈에 비친 바로의 절대권력”(40:1-23)

설교일; 주후 2024 3 24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 19일 화요일 작성)

 

출애굽기 제3장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두가지 방법으로 모세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라는 것입니다(3:14). 그 점을 훗날의 세례 요한은 백성들이 알기 쉽게 만물보다 먼저 계신 이라는 창조주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1:30).

또 하나는, 창조주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3:15a). 그 의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이 여호와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세를 비롯한 모든 믿음의 자손들은 변함없는 여호와의 정체성으로 언제나 자신들의 인생 가운데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3:15b).

그와 같은 맥락에서 창세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여호와의 존재를 자신의 인생 가운데 처절하게 인식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17세에 이방인 함족의 제국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낯선 땅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말과 글이 완전히 생소한 곳입니다. 문화도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자신은 노예의 신세입니다. 당장 주인을 섬기고 상전의 명령을 수행해야만 하는데 도무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돌아보아도 청소년 요셉을 도와주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수도 멤피스에서 그만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장차 자신의 운명은 어떻게 되고 마는 것일까요?...

깊은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날의 할 일을 당장 실천하지 아니하면 매를 맞을 따름입니다. 그와 같은 절체절명의 비극적인 상황 아래에서 청소년 요셉이 오로지 애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단 하나의 생명줄을 움켜잡고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의 생명줄이 바로 부친 야곱에게서 배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이방 땅 애굽에서 13년 동안이나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여호와의 은혜로 지혜가 자라며 범사에 형통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점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창세기에서는 요셉의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려 14장이나 됩니다. 차제에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요셉의 탄생이 제30장이고(30:22-25), 17세때의 기록이 제37장이며, ③애굽에서의 종살이가 제39장이고, ④감옥살이가 제40장이며, ⑤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제41장입니다.

그리고 ⑥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온 이복형들을 만나는 것이 제42장이며(42:5-17), ⑦친동생 베냐민을 은연중 만나는 것이 제43장이고(43:15-16), ⑧베냐민을 애굽에 붙들어 주고자 노력한 대목이 제44장입니다.

또한 ⑨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부친 야곱의 가족을 애굽에 초청하는 대목이 제45장이고, ⑩부친을 만나고 애굽의 동북면 고센 땅에 정착시키는 이야기가 제46장과 제47장이며, ⑪애굽제국의 총리인 요셉이 부친 이스라엘의 여호와신앙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대목이 제47장말부터 제50장까지입니다.

참고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4:16)의 기록은 창세기에서 요셉의 경우보다 1장이 더 많아서 총 15입니다. 구체적으로, 창세기 제11장에서 먼저 족장 데라의 장남 아브람의 이름으로 그 기록이 약간 나타나고 있습니다(11:26-32).

 그 다음에는 아브람이 75세의 늙은 나이에 창세기 제12장에서부터  부자인 부친 족장 데라를 떠나서 독자적인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제17장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99세의 아브람이 할례를 받기 전에 그 이름이 여호와에 의하여 아브라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17:5, 24);

그리고 76년의 세월이 더 지나자 아브라함은 창세기 제25장에서 175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25:7-11).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일대기는 총15장에 걸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는 그보다 훨씬 짧습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잇고 있는 약속의 아들 이삭은 창세기 제21장에서 태어나 180세를 향년으로 창세기 제35장에서 별세하고 있지만(21:1-7, 35:27-29) 이삭이 활동한 이야기는 실질적으로는 창세기 제28장 앞부분에서 끝나고 있기 때문입니다(28:1-8);

더구나 창세기 제23장에서는 이삭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모친 사라의 별세와 부친 아브라함이 헤브론 막벨라 굴을 사게 되는 이야기가 제2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대목에서 아들 이삭의 이름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삭의 이야기는 그의 별세를 포함해도 총8장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야곱의 이야기가 도합 19장으로 가장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경우에는 세상적인 방법과 꾀로 살아간 그 이름 야곱 시절의 이야기와 영적인 장자로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간 이스라엘로서의 이야기가 모두 포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이야기가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가장 길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이삭의 차남 야곱이 77세에 부모님의 집을 떠나 외가가 있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의 하란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창세기 제28장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창세기 제35장에서는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야곱의 이름이 영적인 장자를 의미하는 이스라엘로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32:28, 35:9-13).

(2)  야곱은 창세기 제37장에서 자신이 편애하고 있던 아들 요셉을 짐승에게 찢겨서 죽은 것으로 믿게 되지만 창세기 제45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으며 여호와의 은혜로 도리어 애굽제국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제46장부터 제49장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그러므로 야곱에 관한 기록을 전부 합해보면 ①창세기 제25장에서 출생하고, ②제27장에서 부친 이삭을 속이며, ③제28장에서 집을 떠나게 되고, ④하란과 가나안에서 지낸 이야기가 제37장까지이며, ⑤별도로 연속 흉년으로 양식을 사오게 하는 가나안의 대()족장 야곱의 이야기가 제42장과 제43장에 기록되어 있고, ⑥요셉의 소식을 들은 창세기 제45장부터 애굽에 이주한 다음의 이야기 곧 제46장부터 제49장까지를 전부 합하면 19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의 일대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를 그가 미리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기록을 끝내면서 모세가 그 점을 제50장에서 요셉의 여호와신앙으로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만민구원의 하나님 발견),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0-21),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영생구원의 하나님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믿음의 열조들과 함께 만나고자 하는 것임, 47:30-31, 49:29-33, 11:16) 하였더라”(50:25). 그 기록의 의미를 별도의 항목으로 풀이해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만민구원영생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대속의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이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전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처형권한을 빌려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만들었지만 그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어 만민구원을 위한 영원한 제물인 대속의 어린양으로 삼아 주셨습니다(1:29, 36).

(3)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이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자들은 죄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어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성화의 과정을 밟아가게 되면 마침내 영생구원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풍성한 요셉의 말씀이 창세기를 마감하고 있는 제50장에서 위와 같이 웅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과 관련하여 특히 청년 요셉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애굽의 정치범들로부터 어떠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애굽의 정세에 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애굽제국은 그 영토가 매우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방제국인 애굽은 요셉이 철이 들면서 17살까지 살고 있었던 가나안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 영토가 광대합니다.

창세기 제10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애굽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인종이 함의 아들인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입니다(10:6). 여기서 구스는 오늘날의 이디오피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스라임은 하()이집트에 속하는 애굽인과 상()이집트에 속하는 누비아인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은 오늘날의 리비아와 튀니지에 살고 있는 인종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상의 연대를 따져보면, 17세의 청소년 요셉이 이복형들의 보복으로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상단에 노예로 팔려서 애굽제국의 수도인 멤피스로 들어가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린 시점은 주전 1,898년경입니다.

그와 같이 계산할 수 있는 근거가 열왕기상 제6장 제1절의 기록입니다. 솔로몬대왕 4년인 주전 966년이 출애굽한지 480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처자식과 자손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한 시점은 출애굽한 해 주전 1,446년에 이스라엘 족속의 애굽 거주기간 430년을 더하면 됩니다(12:40).

그 해가 주전 1,876년인데 요셉의 일대기로 보면, 그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의 풍년과 2년의 흉년을 경험하고 있는 때 곧 요셉의 나이 39세 때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17세의 청소년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시작한 해는 주전 1,876년에 22년을 더한 해 곧 주전 1,898입니다.

그 해는 애굽제국의 통일왕조인 중왕국시대에 속하는 12왕조의 전성기입니다. 참고로, 세누스레트2가 부황 아메넴헤트2세와의 공동통치를 말하고 있는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되는 시점이 그 이듬해인 주전 1,897년입니다.

12왕조에는 바로가 8명인데 마지막 바로가 특이하게도 여자입니다. 참고로, 바로의 명단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아메넴헤트1(주전1991-1962), 세누스레트1(주전1971-1926), ③아메넴헤트2(주전 1929-1895), 세누스레트2(주전 1897-1878), 세누스레트3(주전 1878-1841), ⑥아메넴헤트3(주전 1842-1797), ⑦아메넴헤트4(주전 1798-1786), ⑧여자 바로인 소베크네프루(주전 1785-1782) 입니다.

역사적으로 상()이집트 테베에서 발흥한 제11왕조가 하()이집트를 정복하고 통일왕조를 이루었는데 그것이 중왕국시대입니다. 그들은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를 용이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고도 멤피스에서 바로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의 정변으로 제12왕조가 출범하는데 세누스레트1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게 됩니다.

그의 손자가 세누스레트2인데 그가 3년간 부황과 공동통치를 하다가 부친상을 당하고 그해 주전 1895년부터 단독통치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요셉이 30세가 되는 해 곧 주전 1885년에 세누스레트2세에 의하여 그가 전격적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41:37-46). 요컨대, 히브리인 노예의 신분인 청년 요셉을 단숨에 제국의 총리에 임명할 수 있는 막강한 절대권력자가 바로 세누스레트2인 것입니다;

세누스레트2세는 7년 연속 풍년이 끝나자 주전 1878년에 별세하면서 자신의 어린 황자를 바로로 세우고 잘 보필하여 달라고 37세의 애굽 수석총리인 요셉에게 부탁합니다. 앞으로 7년 연속 흉년이 있을 것이므로 그 어느 때보다도 요셉 총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요셉 총리가 형제들에게 말하고 있는 그의 정치적 입지와 엄청난 권력에 관한 설명이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어린 세누스레트3)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니”(45:8).

오늘의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애굽의 황제인 바로 곧 세누스레트2세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수발을 들고 있는 최측근인 관원장 두사람을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다고 하여 즉시 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시위대 옥사에 정치범으로 감금하여 버릴 수가 있습니다(40:1-3).

그리고 모두가 축하하는 자신의 생일날에도 기분에 따라서 한사람은 사면하고 또 한사람은 처형할 수 있는 이른바 신하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제마음대로 행사하고 있습니다(40:13, 19-22). 그것은 한마디로, 고대제국시대 전제군주의 절대권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요셉이 30세에 바로의 신임으로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소위 좌불안석의 처지와 같은 것입니다(41:46). 옥사에서 만난 두 관원장처럼 바로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즉시 죄수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바로의 생일날 처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두렵고도 무서운 애굽제국의 황제 바로 치하임을 청년 요셉이 두 관원장의 설명을 듣고서 깊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권력자 바로 역시 창조주 여호와의 손아귀에 있다는 사실을 요셉이 알고 있기에 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전진하는 신앙생활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 훗날 신바벨론제국에서 재상의 자리에 오르고 있는 다니엘의 여호와신앙과 같은 것입니다(2:44-4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더불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그후에(20대 중반의 청년 요셉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지만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간수장의 눈에 들어 행정보조가 되고 20대 후반에 실무총책이 되어 있는 그 때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조선시대의 정3상온() 벼슬과 같음)떡 굽는 자(조선시대의 내시부의 수장인 종2상선() 벼슬과 같음)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절대권력자인 세누스레트2)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두 관원장)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시위대의 감옥과 같은 것임, 32:2)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 (39:19-20, 시간이 지나자 요셉의 무죄함을 알게 된 보디발임, 그가)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 들게 하매(바로의 측근인 두 관원장이 훗날 사면이 되어 복권될 때를 대비하기 위하여 권력자 보디발이 눈치 빠르게 처신하고 있는 것임),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젊은 날 노예생활을 한 요셉이므로 상전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빈틈이 없는 것임).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2: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40:1-8);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 그후에(20대 중반의 청년 요셉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지만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간수장의 눈에 들어 행정보조가 되고 20대 후반에 실무총책이 되어 있는 그 때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조선시대의 정3상온() 벼슬과 같음)떡 굽는 자(조선시대의 내시부의 수장인 종2상선() 벼슬과 같음)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절대권력자인 세누스레트2)에게 범죄한지라. 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 그들(두 관원장)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옥(시위대의 감옥과 같은 것임, 32:2)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40:1-3);

1)    한국의 옛날 조선시대에는 시중의 잡범을 가두는 포도청의 옥사가 있고 국왕에 대한 반역자나 정치범을 수용하는 의금부의 옥사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제국에서는 조선의 의금부 옥사에 해당하는 감옥이 바로를 지키는 친위대장의 저택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3). 그것은 훗날 다윗왕조의 유대왕국에 있어서는 소위 시위대의 뜰에 마련되어 있는 옥사와 같습니다. 그 옥사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갇혀서 예루살렘의 멸망소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32:2).

2)    그러한 성격의 의금부옥사가 자신의 집 한쪽에 은밀하게 마련되어 있으므로 친위대장 보디발이 동네 창피하지 아니하게 슬그머니 가정총무인 요셉을 얼른 그곳에 가두어 버린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39:19-20).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지도 아니하고 요셉이 조용히 그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20대 후반의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요셉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의 삶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청년 요셉이 많은 정치범들을 만나서 함께 지내면서 애굽제국에 관한 여러가지 고급정보를 취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또한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청년 요셉은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게 되어 간수장의 눈에 들게 됩니다(39:21-23). 간수장은 능력이 출중한 요셉에게 두가지 중요한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하나는, 감옥의 행정업무를 보좌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치범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오라는 것입니다. 그 일은 감옥살이를 함께하고 있는 요셉이 적격입니다. 요셉은 그 일을 처리하면서 애굽제국에서 조직관리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동시에 정치범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애굽의 정치와 경제 특히 국가정책의 흐름을 파악하게 됩니다;

4)    요셉은 세월이 지나자 황제인 바로의 최측근인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1). 그들의 지위는 마치 조선시대 내시부의 수장인 상선과 그 다음 지위인 상온과 같습니다. 그들이 중요한 이유는 음식과 술에 독을 타서 황제를 암살할 수도 있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황제의 신임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그만 당시의 바로 세누스레트2세의 눈 밖에 나서 하루아침에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2-3).

5)    자신의 최측근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애굽의 황제인 바로는 그 권력이 절대적인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요셉으로서는 그 두사람을 만나게 됨으로써 애굽제국의 가장 깊숙한 이야기 곧 바로와 귀족들의 권력관계에 관하여 자기도 모르게 상당히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훗날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4. (39:19-20, 시간이 지나자 요셉의 무죄함을 알게 된 보디발임, 그가)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 들게 하매(바로의 측근인 두 관원장이 훗날 사면이 되어 복권될 때를 대비하기 위하여 권력자 보디발이 눈치 빠르게 처신하고 있는 것임),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젊은 날 노예생활을 한 요셉이므로 상전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빈틈이 없는 것임).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2: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40:4-8);

1)    세월이 지나자 자신을 그곳에 가두어 버린 보디발이 요셉을 불러서 한가지 중요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보디발은 자신의 으뜸 청지기 곧 가정총무 요셉이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아니하고 순순히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여 자신의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때부터 은밀하게 살핀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평소 품행이 좋지 못한 점을 발견합니다. 그는 요셉을 내심 다시 신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나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애굽의 황제 세누스레트2세의 최측근이었던 두 관원장의 옥살이를 잘 보살펴주라는 것입니다(4). 그때부터 요셉이 감옥에서 그 두사람을 돌보는 시종 노릇을 하게 됩니다;

2)    요셉은 감옥살이를 하면서 많은 배움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바로의 최측근이었던 두 관원장을 섬기면서 은연중에 얻어듣고 있는 정보들이 대단히 귀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는 중에 하루는 두사람의 안색이 어둡습니다(6). 요셉이 그 연유를 묻자(7) 그들은 간밤에 꾼 이상한 꿈들이(5) 풀이가 되지 아니하여 근심 중이라고 말합니다(8a). 그 말을 듣자 요셉이 그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개꿈이 아니라 중요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예언을 미리 주시는 여호와에게 간구하여 그 풀이를 얻을 수가 있다는 구체적인 요셉의 말입니다(8b, 48:5-7). 그러므로 여호와신앙인 요셉 자신에게 한번 그 꿈의 내용을 설명해보라는 것입니다(8c).  

둘째로,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3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다시 바로의 잔을 손에 들게 된다는 좋은 꿈임),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다시 상온의 직위를 얻는다는 것임).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3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前職)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훗날 페르시아제국에서 느헤미야가 황제 아닥사스다에게 술잔을 올리는 최측근이었음, 2:1).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시위대 감옥이 역시 친위대장 보디발의 저택안에 있으므로 그 집에서 구원하여 달라는 것임, 3절과 7). 15. 나는 히브리 땅(요셉이 살던 가나안지역은 히브리 땅이 아님. 다만 유프라테스 강 상류 하란에서 출생한 요셉이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히브리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임)에서 (억울하게)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이 대목 요셉의 발언은 사실임. 왜냐하면,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임, 39:12-20).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꿈은 불길한 것임. 그렇지만 동료의 꿈에 대한 요셉의 풀이가 너무나 좋으므로 거기에 기대를 걸고서 말하고 있는 것임), 나도 꿈에 보니 흰떡 3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바로에게 줄 음식을 새가 대신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은 불길한 꿈임).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3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7:9-10, 성문지기 모르드개 대신에 재상 하만은 자신이 세운 나무에 매달리게 되는 처형을 페르시아 황제 아하수에로에게서 받게 된 것임)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완벽한 처형대의 모습임) 하더니”(40:9-19);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3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다시 바로의 잔을 손에 들게 된다는 좋은 꿈임),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다시 상온의 직위를 얻는다는 것임).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3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前職)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훗날 페르시아제국에서 느헤미야가 황제 아닥사스다에게 술잔을 올리는 최측근이었음, 2:1).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시위대 감옥이 역시 친위대장 보디발의 저택안에 있으므로 그 집에서 구원하여 달라는 것임, 3절과 7). 15. 나는 히브리 땅(요셉이 살던 가나안지역은 히브리 땅이 아님. 다만 유프라테스 강 상류 하란에서 출생한 요셉이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히브리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임)에서 (억울하게)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이 대목 요셉의 발언은 사실임. 왜냐하면,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임, 39:12-20)”(40:9-15);

1)    술 맡은 관원장은 자신의 꿈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썩 괜찮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당장 요셉에게 자신의 꿈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9). 요셉이 듣기에는 약간 이상한 꿈이기는 하지만 그리 해몽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포도나무의 3가지에 포도가 여물었으며 그것을 짜서 즙을 만들어 술 맡은 관원장이 옛날처럼 바로의 잔에 올려드렸다는 좋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10-11). 따라서 요셉을 3일이 지나면 그가 옛날의 직분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분 좋게 풀이하여 줍니다(12-13).

2)    여호와께로부터 얻은 지혜로 술 맡은 관원장의 꿈풀이를 해준 것이기에 요셉은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날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한가지 개인적인 일을 부탁합니다(14-15). 억울하게 가나안에서 노예로 애굽에 팔려왔으며 무죄한 자신이 감옥살이까지 하고 있음을 부디 바로에게 말씀을 드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명한 바로께서 자신을 구출하여 줄 것으로 믿고 있다는 요셉의 말입니다. 과연 옛날의 직책을 회복하게 되면 그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 것일까요?...  

(2)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그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꿈은 불길한 것임. 그렇지만 동료의 꿈에 대한 요셉의 풀이가 너무나 좋으므로 거기에 기대를 걸고서 말하고 있는 것임), 나도 꿈에 보니 흰떡 3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바로에게 줄 음식을 새가 대신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은 불길한 꿈임).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3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7:9-10, 성문지기 모르드개 대신에 재상 하만은 자신이 세운 나무에 매달리게 되는 처형을 페르시아 황제 아하수에로에게서 받게 된 것임)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완벽한 처형대의 모습임) 하더니”(40:16-19);

1)    한편 떡 굽는 관원장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간밤의 꿈이 좋은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말하기에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비슷한 꿈을 꾼 동료에게 요셉이 해주는 풀이가 정말 좋습니다. 따라서 용기를 내어 자신의 꿈이야기를 하고서 요셉에게 해석을 요청합니다(16a). 그런데 요셉이 듣고 보니 그것은 흉몽입니다.

2)    그렇지만 정직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18a). 바로를 위하여 준비한 떡을 3광주리에 담아서 그 관원장이 머리에 이고서 바로에게 가는 중에 그만 새가 날아들어서 그것을 대신 먹어 치우고 있으니(16b-17) 그것은 3일후에 머리가 날아가는 일대 흉몽입니다(18b-19). 과연 그 해몽이 맞는 것일까요? 맞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요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셋째로,20. 3일은 바로의 (경사스러운)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일단 2관원장을 황궁으로 불러들인 것임).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장의 나무에) 매달리니(자신의 생일날 그 경사스러운 잔칫날에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측근인 상선을 처형하는 절대권력자 바로의 모습이 역력함),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하찮은 히브리인 노예신분에 불과한) 요셉(그의 부탁, 14-15)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화장실에 갈 때와 다녀온 다음에는 그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임)”(40:20-23);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20. 3일은 바로의 (경사스러운)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일단 2관원장을 황궁으로 불러들인 것임).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40:20-21);

1)    요셉의 해몽을 얻고서 2관원장은 이틀이 지나자 갑자기 바로궁으로 들어오라는 황명을 듣게 됩니다. 그 이유는 제3일에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의 생일잔치가 황궁에서 열리는데 그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2관원장은 너무나 기뻐하면서 바로궁으로 들어갑니다.

2)    드디어 제3일 바로의 탄신일에 하례를 드리는 신하들이 단 아래에 도열하고 있습니다(20a). 그 자리에는 생일잔치를 미리 준비한 2관원장이 자리를 잡고 서 있습니다(20b). 그들은 내시부의 일을 맡고 있기에 바로의 지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    그 자리에서 세누스레트2세가 먼저 상온 벼슬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황명을 내리고 있습니다; “너의 죄를 사하고 다시 술 맡은 관원장의 직책을 수행하도록 하겠다! 성심을 다하여 짐을 섬기도록 하라!”. 바로의 명령을 듣자 그가 황송하여 즉시 머리를 조아리면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4)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는 떡 굽는 관원장은 가슴이 뛰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황명은 자신에 대한 사면과 복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세누스레트2세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며 생일날 잔치자리에서도 신하들의 목을 나무에 매달 수 있는 잔인한 독재자라는 사실을 아직 사무치게 모르고 있는 자라고 하겠습니다.

(2)  22.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장의 나무에) 매달리니(자신의 생일날 그 경사스러운 잔칫날에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측근인 상선을 처형하는 절대권력자 바로의 모습이 역력함),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40:22);

1)    당시의 애굽의 황제인 세누스레트2세는 백성들로부터 현군이라고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조부인 세누스레트1가 역사적으로 제12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뛰어난 군주였는데 그 뒤를 지금의 바로인 자신이 잇고 있다는 좋은 평을 얻고 있기에 그가 세누스레트2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현군이기는 하지만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하들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추호의 용서함이 없는 가장 두려운 존재가 바로 절대권력자인 세누스레트2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공포스러운 모습이 그 좋은 잔칫날 그 현장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3)    돌연 세누스레트2세가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 상선을 나무에 매달아 즉시 처형하라!(22a) 그는 내게 반감을 지니고 있는 자이다. 나를 독살하기 전에 그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옳다. 누구든지 그 마음속에 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자를 짐은 결코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다”. 바로의 내심을 미리 파악하고 있는 자는 여호와의 지혜를 얻고 있는 요셉 뿐일 것입니다(22b);

4)    그와 같은 방법으로 모든 신하들에게 한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는 바로가 바로 세누스레트2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서 직언을 하거나 아닙니다라고 충언을 하는 자는 자신의 목숨을 그 자리에서 걸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독재자 세누스레트2세이기에 훗날 히브리인 종에 불과한 요셉을 단숨에 제국의 총리로 발탁하는 일까지 신하들의 눈치를 조금도 보지 아니하고 일사천리로 해치우고 있는 것입니다(41:37-43).

(3)  23. 술 맡은 관원장이 (하찮은 히브리인 노예신분에 불과한) 요셉(그의 부탁, 14-15)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화장실에 갈 때와 다녀온 다음에는 그 사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임)”(40:23);

1)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되고 있는 창조주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하고 명심해야만 하는 사실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알기 쉽게 스토리텔링으로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여호와께서 피조물인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인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본문 제23절 말씀입니다.

2)    요셉과 함께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술 맡은 관원장 상온은 괴이한 꿈을 꾸고서 마음에 큰 근심을 보이고 있던 자입니다(6-8). 그 근심을 단숨에 기쁨과 희망으로 바꾸어 준 인물이 바로 그를 보디발의 부탁으로 옥사에서 섬기고 있던 히브리인 종 요셉입니다(4절과 12-13). 그의 해몽 그대로 자신이 바로로부터 사면을 받고 복직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21) 그렇다고 하면 옥사에서 요셉이 부탁한 것 한가지는 들어주는 것이 도리입니다(14-15);

3)    그러나 일단 전직(前職)을 회복하고 잘 나가게 되자 상온()은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히브리인 종이며 수감자에 불과한 그 청년의 부탁 따위는 기억하여 들어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오만한 권력자가 술 맡은 관원장 상온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요셉의 진정한 생명과 구원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그의 운명을 어떠한 방법으로 바꾸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로 달려가게 만드시는 것일까요?(45:8-11, 50:20-21) 그것이 요셉의 일대기 후반부에서 볼 수 있는 깊은 내용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세기의 기록만 살펴보더라도 인간이 어떠한 성품의 존재인가를 넉넉하게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별로 신의가 없으며 배은망덕한 존재입니다. 아브라함 부부의 주변을 살펴보더라도 그러합니다.

(1)  부친 데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아 서방선교를 떠났지만 도중에 하란에서 도시개발을 하여 큰 돈을 벌 욕심에 사로잡혀서 그만 여호와의 명령을 외면하고 맙니다(11:31-32, 24:10, 7:4). 선교의 목적지 가나안까지 들어가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셔도 그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 하란 땅에서 요지부동입니다.

(2)  장조카 롯은 백부 아브람이 애굽에서 얻은 재산을 가나안 벧엘에서 나누어 주자 그것을 가지고 그만 사해주변에 있는 큰 도시 소돔으로 떠나버리고 맙니다(13:5-13). 그는 부자가 되었기에 대도시 소돔에서 세상의 낙을 즐기면서 살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큰 재산을 떼어준 백부의 은혜를 외면하고 맙니다.

(3)  야곱은 여호와께서 벧엘에서 맺은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그를 하란에서 일가를 이루고 큰 재산을 얻도록 도와 주시지만 모든 위험요인이 사라져버리자 그만 여호와를 배신하고 맙니다.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서자 남행하여 벧엘로 들어가서 서원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북쪽의 대도시 세겜을 찾아가고 마는 것입니다(33:18-20, 28:16-22).

그와 같은 일이 본문에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하고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만 감옥에서 자신을 도와준 히브리인 청년 요셉의 부탁을 깡그리 잊어버립니다(40:23). 그러므로 요셉이 권력자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억울한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면하고자 시도한 것은 좌절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 가운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그 신분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오로지 온전한 구원의 주체는 창조주 여호와이심을 다시 한번 요셉의 일생을 통하여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3:14-17, 5:24-29, 11:16).

아무쪼록 그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요셉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생명과 구원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은혜를 재삼 발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