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창세기 제39장에서 17세의 히브리인 종 요셉이 부친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다(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12. 00:00

제목; “창세기 제39장에서 17세의 히브리인 종 요셉이 부친 야곱의 하나님을 만나다”(39:1-23)

설교일; 주후 2024 3 17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3 12일 화요일 작성)

 

요셉의 부친 야곱 77세때 가나안 남부 브엘세바에 있는 부친 이삭과 모친 리브가의 집을 떠나 밧단아람 곧 북부 시리아 하란에 있는 나홀의 성으로 외삼촌 라반을 찾아간 사람입니다(28:10, 30:24-26, 31:41, 41:46, 45:11, 47:9);

야곱이 부모님의 명령으로 집을 떠난 이유는 가나안 원주민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지 말고 여호와신앙이 나름대로 살아있는 모친 리브가의 친정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들 가운데서 믿음의 아내를 얻어 부모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28:1-5).

그렇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모친 리브가와 공모하여 눈이 어두운 부친 이삭을 속이고 쌍둥이 형 에서에게 주어질 차기 족장에 대한 축복의 기도를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알게 된 형 에서는 부친이 죽고 나면 당장 동생 야곱을 쳐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것입니다(27:41-42).

그 사실을 알게 된 모친 리브가가 남편 이삭에게 부탁하여 집안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간 살인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차남 야곱을 멀리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 있는 하란으로 보내 버린 것입니다(27:42-45).

 야곱은 77세가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쌍둥이 동생이라는 자신의 타고난 억울한 운명을 장자의 신분으로 바꾸어 달라고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한 인물입니다. 모친 리브가의 장막 그 기도하는 처소에서 야곱은 자신을 편애하고 있는 모친 리브가와 함께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로 끈질기게 매어 달린 것입니다.

  참고로, 고대가부장사회에서는 부친의 족장권과 모든 재산이 오로지 장남에게 전부 상속이 되고 맙니다. 그와 동시에 동생들은 장자가 훗날 집안의 족장이 되면 그의 신하가 됩니다. 더구나 세월이 지나 야곱의 자녀들이 태어나게 되면 그들은 전부 족장인 에서의 종이 되는 가혹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숙명을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바꾸어 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야곱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하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야곱이 형 에서와 함께 모친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에 창조주 하나님의 예언이 리브가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23.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장자)가 어린 자(아우)를 섬기리라 하셨더라”(25:23).  

그 예언의 말씀의 의미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직결되고 있으므로 먼저 여기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산모 리브가는 가부장 족장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그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아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장자 에서가 아우 야곱을 섬기게 되는 운명의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친 리브가의 편애를 받고서 자라난 야곱이 장차 창조주 여호와의 역사로 형 에서가 아니라 동생인 야곱 자신이 부친 이삭의 뒤를 잇는 족장이 된다고 예단한 것입니다.

(2)  둘째로, 그러나 그 예언은 창세기 제38장에 기록되어 있는 다말이 낳은 쌍둥이 세라와 베레스의 이야기를 참조하게 되면 먼 훗날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38:27-30);

1)   신기하게도 모태에서 손 하나가 먼저 이 세상에 빠져나오고 있는데 그 손의 임자가 바로 쌍둥이 형인 세라입니다. 그 당시 산파가 얼른 그 손에 장자의 표시로 홍색실을 묶어 주고서 그 자가 형이라고 선언합니다(38:28, 30). 그렇지만 그 손이 다시 모태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 다음 순간 실제로 모태에서 먼저 머리를 밀고 나온 자가 베레스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산파의 증언에 따라 성질이 급하여 형보다 먼저 그 머리로 태를 터트리고 나온 자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가 되고 맙니다(38:29). 당연히 세상적으로는 동생이 된 것입니다(38:30). 그와 같은 기이한 기록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

2)   한마디로, 단지 산파가 그 손에 묶여 있는 홍색실을 보고서 세라를 베레스의 형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37:30). 그와 같은 인위적인 편리한 구분이 훗날 이 세상에서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부장 족장사회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는 사회질서의 기초로서 하나의 엄격한 철칙(鐵則)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에 따라 그 동생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그 서열을 바꿀 수가 도저히 없습니다.

3)   그렇지만 여호와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것이 아닙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회의 안정성이나 가부장서열사회의 철칙이 곧 창조주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것입니다. 창세기 제22장의 기록을 참조하면,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서 얻은 자신의 모든 성취와 후계자 이삭까지 창조주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번제로 바치겠다고 실천에 나섰을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인정하십니다(22:12). 그때 비로소 여호와이레의 축복으로 번제용 숫양이 그 산에서 준비가 되고 진실한 여호와신앙인에게 주어지는 축복의 언약이 만민구원의 복음으로 다시 선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22:13-18).

4)   그와 같은 의미에서 말하자면, 머리가 먼저 이 세상에 나온 자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지각과 깨달음을 중시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영적인 장자입니다(14:2, 53:2, 5:21). 따라서 훗날 77세의 야곱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서 루스 땅에서 비박할 때에 꿈속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축복의 언약을 얻게 됩니다(28:10-15). 그는 그것이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의 뒤를 이어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 곧 영적인 장자로 삼아 주시는 여호와의 뜻이 나타난 것으로서 소위 벧엘의 은혜라고 깨닫고 있습니다(28:16-17). 그러므로 돌 베개를 제단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전제를 드립니다(28:18-19).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축복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면 평생 신실하게 여호와신앙인으로 끝까지 살아가겠다고 서원을 합니다(28:20-22).

(3)  셋째로, 그러한 맥락에서 영적인 장자는 그 머리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다른 피조물을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자(3:4) 곧 여호와의 참된 청지기입니다(1:26-28). 그와 같은 의미에서 훗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3번이나 강조하십니다; “35. 예수께서 앉으사 12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9:35),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3-45),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도 주님의 모범을 따라 형제와 이웃을 섬기는 삶 곧 대속의 삶을 한평생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함족의 제국 애굽에서 셈족인 히브리인 종으로 살아가게 되는 17세의 요셉은 앞길이 막막합니다. 이제는 가나안에서처럼 족장인 부친 이스라엘의 편애만 믿고서 교만을 떠는 철부지로 살아갈 처지가 전혀 아닙니다.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노예로 한평생 살아가야 합니다.

요셉은 애굽의 말과 글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문물은 전혀 생소합니다. 그는 앞길이 막막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제서야 요셉은 그 옛날 자신에게 말씀해주신 부친 야곱의 이야기가 정수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가 즐겨 들었던 부친 야곱과 조부 이삭 그리고 증조부 아브라함의 일대기가 여호와신앙의 정수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애굽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창세기 제39장 본문에서는 달리 형통의 비결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39:1-6).

그와 같은 입장에서 다시 한번 요셉이 기억하고 있는 부친 야곱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봅니다;

(1)  첫째로, 요셉의 부친 야곱은 77세가 될 때까지 창조주 하나님의 예언이 자신에게 성취가 되어 쌍둥이 형 에서를 이기고 집안의 족장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가 모친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형 에서에게 주어질 부친의 축복의 기도까지 가로채었지만 그 결과가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차기 족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2)  둘째로, 그렇지만 야곱의 상상을 뛰어넘는 여호와의 축복의 은혜가 벧엘에서 비박하고 있는 야곱의 꿈속에서 환상 가운데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축복의 언약의 내용은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에게 주어진 축복의 언약 4가지가 이제는 야곱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1)   한마디로, 야곱이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얼른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돌 베개를 제단으로 삼아 기름으로 전제를 드리고 서원의 맹세를 합니다.

2)   그 내용은 여호와의 임재와 동행으로 자신이 무사히 하란에서 일가를 이루어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면 이곳 벧엘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바치며 여호와신앙인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3)  셋째로, 그러나 야곱은 위기에 처했을 때에만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을 구원하여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리고 일단 위기가 지나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세상적인 탐욕과 향락에 눈이 멀어서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훗날 히스기야 왕의 신실하지 못한 신앙태도와 같은 것입니다(39:4-8). 그렇지만 여호와께서는 세상적인 꾀와 욕심으로 살아가는 야곱을 신실한 여호와의 청지기 이스라엘이 되어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를 세겜에서 벧엘로 부르십니다(35:1-5). 엘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 야곱은 그때부터 영적인 대족장 이스라엘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35:7-15, 37:12-17, 48:22).

그와 같은 부친의 여호와신앙을 11번째 아들 요셉이 깨닫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 시점이 바로 17세의 요셉이 이복형들의 보복으로 애굽으로 가는 상단에 노예로 팔려간 때입니다. 미디안 상인들의 대상행렬을 호위하고 있는 용감한 이스마엘 무사들이 은 20세겔을 주고 청소년 요셉을 종으로 샀습니다(37:28).

그들은 애굽의 수도에 도착하면 미소년인 요셉을 비싼 값에 애굽의 부자나 권력자의 집에 노예로 팔아서 이익을 챙길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37:36). 한여름 폭염 속에서 결박을 당한 채 험한 광야와 사막길로 애굽을 향하여 끌려가고 있는 요셉은 죽을 지경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을 노예로 팔아 치운 이복형들을 무지하게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힘만 빠질 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무기력해진 요셉은 그때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나안의 대()족장 부친 야곱의 편애를 믿고서(37:3, 48:22) 집안에서 이복형들에게 교만하게 철부지로 행동한 자신의 허물을 그때서야 발견하고 있습니다(37:2-11);

마침내 미디안 상단이 요단강 서편 도단에서 15백리나 되는 먼 길을 행진하여 목적지 애굽의 수도 이트즈토위에 도착하고 있습니다. 주전 1,898년인 그때는 애굽제국의 통일왕조 중왕국의 시기이며 제12왕조가 한창 번영한 시절입니다. 이듬해 부황을 도와서 수년간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 세누스레트2가 상당히 현명한 바로인 것입니다(41:37-45).

통일왕조 중왕국은 본래 하()이집트가 아니라 상()이집트 테베에서 발흥하여 천하를 정복한 왕조입니다. 그렇지만 제12왕조에 들어서자 나일강의 삼각주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하이집트에 있는 고도(古都) 멤피스의 남부 이트즈토위에 천도하여 그곳에서 바로가 애굽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17세의 히브리종인 요셉은 바로의 황궁에서 황제인 바로를 호위하고 있는 친위대의 대장인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리고 있습니다(39:1). 셈족인 요셉이 함족의 제국에 노예로 팔려왔으므로 애굽의 말과 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문물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입니다. 그는 어떻게 처신해야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일까요?...

당시의 요셉은 마치 그 옛날 미래가 불투명했던 부친 야곱의 처지와 같습니다. 야곱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 믿음의 아내를 얻기 위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숙적 에서의 위협을 벗어나기 위하여 도망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생전 처음 타국인 북부 시리아의 하란으로 길을 떠나고 있는 77세의 야곱은 하도 기가 막혀서 루스 땅에서 비박하면서 부친 이삭의 하나님께 부디 살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꿈속에서 환상 가운데 여호와를 만나고 축복의 언약을 얻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창조주 여호와는 영이시기에 언제나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4:24, 14:16-20).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추어 공부하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는 성도에게 변함없이 신실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4:23-24).

그런데 이제는 애굽의 수도에서 야곱의 아들 17세의 요셉이 부디 살길을 열어달라고 기도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 옛날 벧엘에서 기도하는 야곱에게 준 축복의 언약을 이제는 요셉에게 적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이 얻은 그 축복의 언약 그리고 이제는 요셉이 얻고 있는 그 축복의 언약의 주내용은 그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준 언약과 동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꼼짝하지 아니하고 있는 거부인 부친 데라의 재산에 대하여 상속의 권리를 포기하고서 그 대신에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12:1-5).

그것을 보시고 창조주 하나님은 4가지의 구체적인 축복 곧 ①자손의 번성, ②이름의 창대함, ③두터운 보호하심, 그리고 ④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는 축복의 언약을 아브라함의 남은 인생 가운데 성취하여 주신 것입니다(12:1-3). 그것이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영적인 장자로 살아가는 여호와신앙인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형통의 복입니다(39:1-3, 21:22, 26:28, 30:27).

이제 그러한 일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요셉에게 그대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 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39:2-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풀이하여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 가운데 얻은 소중한 교훈과 메시지를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가나안 도단지역에서 이복형들의 보복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상단에 노예로 팔린) 요셉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결박을 당한 채) 이끌려 애굽에 내려 가매(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는 약속의 땅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높은 곳으로 그리고 세상제국인 애굽을 낮은 곳으로 보고 있는 것임),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테베에서 발흥한 왕조가 애굽을 통일하고 제12왕조에 들어서자 나일강 삼각주 유역의 고도 멤피스의 남부 이토즈토위에서 천하를 통치하고 있는 시대임. 그러므로 바로의 황궁이 그곳 수도에 있으며 친위대장 보디발의 저택이 또한 이트즈토위에 있는 것임)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상단에서 호위 무사이며 또한 노예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이 이스마엘 사람임. 그렇지만 장사에 밝은 상인은 미디안 사람들임. 따라서 미디안 사람들이 호위 무사인 이스마엘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좋은 값을 받고 요셉을 보디발에게 판 것임, 37:36). 2. 여호와께서 (17세의 요셉이 부디 타국 애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아 달라고 눈물로 간구하고 있으므로 그 옛날 부친 야곱의 경우와 동일하게)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그 옛날 벧엘의 하나님이 신실하게 하란에서 야곱과 함께하시면서 역사하신 것과 같음, 29:31, 30:22, 30, 31:7-13)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총무(최고지위의 청지기를 말함)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 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본래 미인 라헬의 소생인 아름다운 청소년 요셉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 인하여 더욱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 것임. 그것은 다윗의 경우와 동일함, 삼상16:12, 18)”(39:1-6);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1. (가나안 도단지역에서 이복형들의 보복으로 말미암아 미디안 상단에 노예로 팔린) 요셉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결박을 당한 채) 이끌려 애굽에 내려 가매(모세오경의 저자인 모세는 약속의 땅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높은 곳으로 그리고 세상제국인 애굽을 낮은 곳으로 보고 있는 것임),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테베에서 발흥한 왕조가 애굽을 통일하고 제12왕조에 들어서자 나일강 삼각주 유역의 고도 멤피스의 남부 이트즈토위에서 천하를 통치하고 있는 시대임. 그러므로 바로의 황궁이 그곳 수도에 있으며 친위대장 보디발의 저택이 또한 이트즈토위에 있는 것임)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상단에서 호위 무사이며 또한 노예를 관리하고 있는 자들이 이스마엘 사람임. 그렇지만 장사에 밝은 상인은 미디안 사람들임. 따라서 미디안 사람들이 호위 무사인 이스마엘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 좋은 값을 받고 요셉을 보디발에게 판 것임, 37:36). 2. 여호와께서 (17세의 요셉이 부디 타국 애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아 달라고 눈물로 간구하고 있으므로 그 옛날 부친 야곱의 경우와 동일하게)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그 옛날 벧엘의 하나님이 신실하게 하란에서 야곱과 함께하시면서 역사하신 것과 같음, 29:31, 30:22, 30, 31:7-13)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39:1-2);

1)    미디안 상단에 노예로 팔린 요셉이기에 신체의 자유를 속박당하게 됩니다(37:28). 먼 길에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결박을 당한 채 가나안 중부의 도단에서 애굽의 나일강 삼각주에 있는 제국의 수도 이트즈토위로 끌려간 것입니다(37:36, 39:1a). 그 길은 자그마치 1 5백리길이므로 광야와 사막을 행군하느라고 거의 한달이 걸린 셈입니다;

2)    용모가 아름다운 미소년 요셉이기에 그곳에서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 비싼 값으로 팔립니다(39:1b). 그러나 셈족이 살고 있는 하란 땅에서 태어나(30:24) 가나안 땅에서 줄곧 성장한 요셉이기에 함족의 제국 애굽은 지극히 생소합니다(33:18-20, 35:27, 37:2). 그들의 말과 글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문물도 생전 처음 대하는 것들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3)    노예 신세이므로 주인의 말과 상전의 말을 얼른 알아듣고 명령대로 수행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당장 불가능합니다. 늦장을 피우게 되면 히브리인 종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 타작입니다.   따라서 그 옛날 부친의 집에서 교만하고 철부지였던 요셉이 애굽에서는 살아남기 위하여 부친 야곱의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37:2-4). 부디 자신의 잘못과 죄를 용서하시고 노예신세를 면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살길을 열어달라고 매달리고 있는 요셉에게 그 옛날 벧엘에서 나타나시고 하란에서 역사하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응답을 주십니다.

4)    그때부터 17세의 청소년 요셉의 삶의 자세가 전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거나 철부지가 아닙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임재와 돌보심으로 만사에 형통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은연중에 요셉을 통하여 발휘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2). 히브리인 종인 그가 애굽인 종보다 더 빨리 애굽의 말과 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명령을 더 빨리 알아듣고 정확하게 실행합니다. 그와 같은 요셉의 변화를 유심히 보고 있는 자가 그의 애굽인 주인 보디발입니다(3);

   

(2)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총무(최고지위의 청지기를 말함)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 지라”(39:3-5);

1)    부자의 귀는 밝고 권력자의 눈은 예리합니다. 애굽제국의 황제인 바로의 신변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고 있는 친위대장 보디발의 눈은 날카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의 눈에 청소년 요셉의 놀라운 변화가 포착이 됩니다(3a). 애굽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던 바보 히브리인 종이 갑자기 지혜와 총명이 넘치고 있습니다. 애굽인의 말과 글을 단숨에 배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주인의 명령을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3b).

2)    그래서 보디발은 처음에 자신의 청지기에게 요셉을 맡겨서 보조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청지기의 장이 게으름을 피우고 그 일을 보좌역 요셉이 모조리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보디발이 서서히 요셉의 지위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마침내 7년의 세월이 지나자 24세의 아름다운 청년 요셉이 애굽제국의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서 청지기의 으뜸인 가정총무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4). 그때부터 여호와의 도우심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게 됩니다(5). 그것은 여호와의 신앙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집안에서는 벌써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21:22, 26:28, 30:27).

3)    그것을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4번째의 축복의 언약이 히브리인 종 요셉을 통하여 주인 보디발의 집에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3),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 지라”(39:5).

(3)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본래 미인 라헬의 소생인 아름다운 청소년 요셉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 인하여 더욱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하게 된 것임. 그것은 다윗의 경우와 동일함, 삼상16:12, 18)”(39:6);

1)    주인 보디발의 집에서 히브리인 종으로 지내고 있는 요셉은 처음에는 일가붙이가 한사람도 없고 말과 글과 문명이 완전히 생소한 애굽제국에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께 부디 살려 주시고 살 길을 열어달라고 부친 야곱에게 배운 그대로 말씀과 기도로 철저하게 매어 달렸습니다. 그 결과 누구보다 빨리 애굽인의 말과 글을 배우고 그곳의 문물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처리하는 지혜와 능력이 출중하게 됩니다.

2)    그 점을 눈치채고 인정한 주인 보디발에 의하여 요셉은 그 집안에서 청지기로 크게 출세하고 있습니다. 7년의 세월이 지나자 24세의 청년 요셉이 어느 사이에 청지기 가운데 으뜸인 가정총무가 된 것입니다(6a). 그렇다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요셉을 단지 권력자 보디발의 청지기로만 사용하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요셉을 단련하여 정금같이 만든 다음에 더 큰 일을 맡기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요셉이 그 일을 맡기 위해서는 애굽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만 하는 것일까요?

3)    그 훈련과정과 여호와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요셉의 일대기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로서 주후 19세기 전반기의 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쇼팽(Chopin)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유럽대륙의 중심인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젊은 나이에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칭송을 받게 됩니다. 이제 유럽에서 남은 지역은 섬나라 영국입니다. 따라서 쇼팽은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 최고가 되고 말 것이 아니라 영국 섬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자! 그래야 훗날 유럽의 대륙과 섬에서 그리고 온세상에서 내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불리게 될 것이 아닌가?”.

4)    마찬가지로 요셉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최고의 청지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애굽의 황제인 바로의 총리가 될 것인가? 후자로 인도하시는 여호와의 손길이 보이고 기이하게도 보디발의 아내가 은밀하게 유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임재하고 계시기에 아름다운 청소년 요셉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의 신분이 히브리인 종에 불과하지만 그 용모에 있어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6b). 24세의 미남자 요셉을 보고서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습니다(7).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자고 하는 권력자 아내의 유혹을 성적 충동이 왕성한 시기인 청년 요셉이 과연 물리칠 수가 있을까요?... ;

둘째로, “7. 그후에(요셉은 13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그리고 죄수로 생활하게 됨. 따라서 여기서는 그 절반 남짓 7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것으로 보임) (요셉)주인(보디발)아내(무장이며 권력자인 보디발의 아내이므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하겠음)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요셉의 여호와신앙이 정확하고도 실로 대단한 것임, 4:13)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엄청난 유혹과 시험을 끝까지 이기고 있는 요셉임, 22:28-30).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안주인이 사전에 종들을 전부 내보내고 은밀한 유혹을 벌이고자 한 것임).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주인의 책임을 먼저 거론함).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적반하장의 누명임), 15. 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일방적인 주장으로 증인을 만들고 또한 증거를 조작하여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안주인임), 16. (요셉)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가정총무라는 막강한 자리에 있는 아름다운 청년 요셉이므로 그가 원한다고 하면 여종 가운데 아름다운 처녀와 얼마든지 사귈 수가 있을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나이가 많은 안주인과 상관할 필요는 전혀 없음. 그 점을 과연 주인 보디발이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관심거리임)”(39:7-18);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7. 그후에(요셉은 13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그리고 죄수로 생활하게 됨. 따라서 여기서는 그 절반 남짓 7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것으로 보임) (요셉)주인(보디발)아내(무장이며 권력자인 보디발의 아내이므로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하겠음)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요셉의 여호와신앙이 정확하고도 실로 대단한 것임, 4:13)”(39:7-9);

1)    청년 요셉으로서는 권력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7). 혈기와 성적충동이 강한 청년의 시기에 그러한 은밀한 유혹을 이긴다고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고서 살아가고 있는 요셉이기에 그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8).

2)    당시 청년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들려주고 있는 자신의 신앙고백이 다음과 같습니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 간략하게 풀이를 해봅니다;

3)    첫째, 이 집의 주인 보디발이 종인 자신에게 맡긴 것과 맡기지 아니한 것이 무엇인지 요셉은 종의 법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8b). 맡기지 아니한 것이 그의 아내입니다(9a). 그런데 어떻게 종의 법도를 어기고 주인의 아내를  탐할 수가 있느냐? 하는 요셉의 말입니다.

4)    둘째, 요셉에게는 세상적인 주인 보디발보다 더욱 중요한 주인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영이신 여호와께서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이 시간 종인 요셉의 모든 것을 통찰하고 계신다고 하는 고백입니다(4:24).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자신은 아무리 은밀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주인의 아내와 동침하는 죄악을 범할 수가 없다는 요셉의 상세한 신앙고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9b).

(2)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엄청난 유혹과 시험을 끝까지 이기고 있는 요셉임, 22:28-30).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안주인이 사전에 종들을 전부 내보내고 은밀한 유혹을 벌이고자 한 것임).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주인의 책임을 먼저 거론함).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적반하장의 누명임), 15. 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일방적인 주장으로 증인을 만들고 또한 증거를 조작하여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안주인임), 16. (요셉)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가정총무라는 막강한 자리에 있는 아름다운 청년 요셉이므로 그가 원한다고 하면 여종 가운데 아름다운 처녀와 얼마든지 사귈 수가 있을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나이가 많은 안주인과 상관할 필요는 전혀 없음. 그 점을 과연 주인 보디발이 주의 깊게 살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관심거리임)”(39:10-18);

1)    보디발의 아내는 끈질깁니다. 세상적인 유혹의 속성이 본래 그러합니다. 그녀는 미남인 젊은 종 요셉을 볼 때마다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자고 계속 유혹합니다(10a). 따라서 요셉은 주인 보디발이 그 집에 없는 경우에는 아예 저택에 머물지 아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10b).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가 한번 발생하고 있습니다(11a).

2)    그 일을 미리 알게 된 사모님이 한가지 계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전에 종들에게 전부 집을 비우라고 명령한 것입니다(11b). 빈집에 사모님만이 청년 요셉을 기다리고 있다가 은밀하게 사랑을 나누자고 달려들고 있습니다(12a). 요셉은 그 함정을 벗어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3)    옷을 잡고 늘어지는 사모님을 벗어나고자 그만 겉옷을 남겨두고 피신하고 맙니다(12b). 자신을 끝까지 무시하고 있는 히브리인 종 요셉을 사모님이 이제는 한없이 괘씸하게 여기고 맙니다. 요셉의 겉옷을 거짓 물증으로 삼아 그녀의 복수가 시작됩니다(13). 먼저 하인들을 불러서 증인으로 세웁니다(14a).

4)    빈집에 있는 자신을 보고서 요셉이 완력으로 자신을 덮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고함을 쳤더니 그가 얼른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거짓말입니다(14b). 그 증거가 바로 요셉의 겉옷이라는 허위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15). 그리고 그녀는 저녁에 퇴청하는 남편 보디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16).

5)    남편을 만나자 그의 아내가 거짓고발을 하면서 두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러한 히브리인 종을 가정총무로 삼은 남편 보디발의 잘못이 이와 같은 현상을 초래하였으므로 책임을 지고 조치를 취하라는 것입니다(17). 또 하나는, 그 물증이 바로 요셉이 남긴 겉옷이라는 주장입니다(18). 그 일을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이 과연 어떻게 처리할까요?...

셋째로, “19. (요셉)주인(보디발)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상대방인 요셉의 말을 들어보지도 아니하고 전후사정을 살피지도 아니한 채 에 불과한 약자 요셉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포도청이 아니라 의금부 그것도 친위대장의 저택에 자리잡고 있는 내밀한 감옥)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피조세계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아니하는 곳이 전혀 없는 것임),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이제는 요셉이 감옥의 행정업무까지 배우게 된 것임),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보디발의 집에 임한 형통과 동일한 것임, 3)”(39:19-23);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19. (요셉)주인(보디발)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상대방인 요셉의 말을 들어보지도 아니하고 전후사정을 살피지도 아니한 채 에 불과한 약자 요셉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포도청이 아니라 의금부 그것도 친위대장의 저택에 자리잡고 있는 내밀한 감옥)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피조세계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아니하는 곳이 전혀 없는 것임)”(39:19-21);

1)    권력자 보디발이 히브리인 종 요셉을 신임하여 가정총무로 삼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데 있어서 총명한 지혜자인 그의 도움을 얻기 위하여 취한 조치에 불과합니다(3-5). 그런데 자신의 아내의 말을 듣자 보디발은 잘 생긴 청년 요셉이 괘씸하기 그지 없습니다(19). 종의 법도를 어겼다고 생각이 들자 당장에 물고를 내고 싶습니다.

2)    그렇지만 요란하게 처리하게 되면 온 동네가 창피한 일입니다. 따라서 진노한 그는 억지로 분을 삼키면서 당장 요셉을 붙들어 자신의 저택 한쪽에 있는 은밀한 친위부대의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20, 32:2).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것은 요셉이 전혀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의 내심이 무엇일까요?

3)    당시에 진노한 보디발은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를 수감하고 맙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가자 은밀하게 아내의 행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디발은 히브리인 종에 불과하지만 청년 요셉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것이 훗날 감옥에서 요셉을 불러서 바로를 모시던 관원장들에게 수발을 잘 들어달라고 개인적으로 당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40:4).

4)    한편, 억울하게 애굽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요셉은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애굽제국의 절대권력자인 바로에게 밉보여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 그곳에 수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40:1-4). 그들이 나누고 있는 말들을 듣고서 히브리인 종 요셉의 안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때 바로의 총애를 받고 있던 그들 정치범들이 주로 나누고 있는 이야기의 수준이 대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구체적으로, 주로 애굽의 정치와 경제에 관한 것인데 특히 애굽의 황제와 귀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애굽인들의 신관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요셉은 청소년시절부터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서 청지기로 일한 히브리인 종입니다. 애굽의 권력자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6)    그러한 요셉이기에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애굽인 고관 출신들을 섬기고 또한 간수장의 일을 돕는데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점을 알게 된 간수장이 요셉을 신임하고 개인적으로 그를 행정보조직원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 일을 통하여 청년 요셉은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애굽제국의 법제도와 사무처리방법을 나름대로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그 모든 일들이 여호와의 예비하심과 배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준비과정이 과연 훗날 무엇을 위하여 필요한 것일까요?...

(2)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이제는 요셉이 감옥의 행정업무까지 배우게 된 것임),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보디발의 집에 임한 형통과 동일한 것임, 3)”(39:22-23);

1)    4년의 세월이 지나자 간수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요셉이 비록 수감자의 처지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간수장의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위치에 이르고 있습니다. 비록 바로의 친위대장의 저택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옥사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의금부보다 더욱 은밀한 감옥입니다. 따라서 애굽의 황궁에서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그에 따라 간수장은 옥사를 관리하면서 주요 수감자들의 옥중생활을 황궁에 보고하는 일까지 맡고 있습니다.

2)    그 일은 감옥살이를 함께하고 있는 청년 요셉이 사실은 적임자입니다. 그에 따라 간수장은 요셉을 크게 신임하여 정치범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까지 전부 맡기고 있습니다. 더불어 감옥을 운영하는 제반업무까지 위임하여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요셉은 애굽의 조직을 관리하는 기술을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익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요셉의 형통함은 그가 조상들이 섬긴 여호와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기도로써 아뢰고 여호와의 지혜를 구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의 주이시며 생명의 주인으로 삼은 결과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훗날 사도 바울에 의하여 불리게 되는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부자인 부친 데라를 떠나서 정처 없이 남행길에 나서게 됩니다. 그는 변방 가나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지만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방인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무작정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자손의 번성, 이름의 창대함, 두터운 보호하심, 그리고 원주민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복이 선지자 아브라함을 통하여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 등입니다.

그와 같은 아브라함에게 임한 여호와의 축복의 언약이 그의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계승이 됩니다. 이삭이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고자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여호와께 기도하자 블레셋 족속의 땅 그랄평야로 들어가라는 여호와의 응답을 얻게 됩니다.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이 그랄 땅으로 이주하게 되자 그때부터 여호와의 도우심이 그 옛날 부친 아브라함의 때와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이삭의 아들 야곱이 부모님의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무르게 될 때에도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애굽에서 한없이 겸손하게 조상들의 하나님 창조주 여호와께 부디 살길을 열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청소년 요셉에게 형통의 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애굽의 권력자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가 된 일이 그러합니다.

나중에는 청년 요셉이 주인의 아내의 거짓고발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지만 그곳에서도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간수장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그와 같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성숙하고 세상적으로 계속 성장하게 되는 요셉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살길이 막막한 타국 애굽제국에서 오로지 조상들이 믿은 여호와신앙으로 그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는 요셉의 신앙자세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