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15강(눅1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15. 02:49

누가복음 강해 115(1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8 27()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기도문의 특징에 대하여(11: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내용을 사도 마태와 의사 누가만이 그들의 복음서에 적고 있습니다. 그들의 복음서보다 조금 일찍 세상에 나타난 마가의 복음서에는 기도문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과 본문 누가복음 11장의 주기도문은 내용이 약간 다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첫째, 어째서 마가복음에는 주기도문이 없는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수록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②둘째, 사도 마태의 주기도문에 비해서 의사 누가의 주기도문은 간략하게 되어 있는데 누가가 생략하고 있는 구절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1)   대략 주후 65-66 경에 로마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인 사람의 사도가 로마당국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고 처형을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60년대 중반 예루살렘과 이방지역의 교회 성도들이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에 닥치고 있는 로마당국의 박해가 너무 심하므로 성도들이 고난을 끝까지 이길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 정도입니다.

(2)   바로 그러한 초대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로 불리고 있는 마가가 가장 먼저 예수님에 관한 글을 적어서 국내외의 교회에 회람을 돌리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공생애 특히 고난과 영광의 일생을 간략하게 글로 적어서 예루살렘과 유대 그리고 안디옥과 여러 이방교회의 성도들에게 읽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1)      요지는 첫째, 성도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감히 상상도 없이 하나님나라의 영광이 상급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③셋째,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서 환난과 핍박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마가에게 있어서는 그의 복음서에서 적고 있는 예수님의 모든 생애가 바로 성도들이 닮아가야만 하는 내용이며 기도의 제목들입니다. 따라서 그는 별도의 주기도문을 적고 있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먼저 당하신 고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신 놀라운 영광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이 자신도 그와 같은 공생애를 있도록 간구하는 그것이 전체적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들의 기도의 내용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3)   사도 마태는 마가가 급히 복음서를 보고서 그것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1)      이유는 마가는 예수님과 처음부터 끝까지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가 아닙니다. 그는 주로 그의 영적인 아버지 사도 베드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간략하게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마태가 보기에 마가는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      사도 마태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마가의 복음서를 보완하여 증보판을 내고 있습니다. 가운데 특히 마가복음에서 빠져 있는 주기도문을 완전한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관원으로 일한 사람답게 얼마나 꼼꼼하게 놀라운 기억력으로 빠짐없이 주기도문의 완전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4)   의사 누가 역시 마가의 복음서를 보고서 그것이 미흡하다는 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유는 누가가 의사이면서 동시에 정보수집에 탁월한 전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현지를 답사하고 증인을 찾아서 일일이 증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이미 들은 있는 예수님의 행적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현지조사를 통하여 점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의사 누가는 로마당국의 정보책임자와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보고서형식으로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습니다.

(5)   그런데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 가운데 특히 주기도문에 있어서 사도 마태의 경우와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완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골자만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6:9)라는 표현 대신에 의사 누가는 아버지여”(11:2)라고 곧바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멀리 떨어져 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의사 누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시지 아니하시고 아주 가까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개인적으로 친밀한 아버지이신지 모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2)      둘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10)라는 문구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는 이미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예수님의 모습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공생애를 함께 살아갔다는 사실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보혜사 성령님께서 세상에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시고 내주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선교의 현장에서 사실이 얼마나 생생한지 모릅니다. 그가 저술한 사도행전의 기록을 참조하면 분명히 그러합니다(16:6-7). 따라서 이미 하늘의 뜻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들의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풍성하게 구현이 되고 있으므로 위의 기원문을 적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셋째,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6:13a)라는 간구를 빼놓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는 성도가 시험에 드느냐 않느냐의 문제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아니하면 악에 빠지지 않는다고 논리적으로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대목을 생략한 것으로 보입니다.

4)      넷째, 괄호속에 들어가 있는 마치 후렴과 같은,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6:13b)라고 하는 기도문을 의도적으로 적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사 누가가 예수님과 생전에 공생애를 함께하지 아니한 성도임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의 제자가 사람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느끼면서 선교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후렴구가 없더라도 별로 아쉬움이 없습니다.

5)      참고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아무리 성령님의 감동으로 저자가 성경말씀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속에는 불가피하게 저자 자신의 경험과 환경의 영향이 주관적인 가치관과 함께 일부 반영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과학철학에서는 간주관성’(間主觀性, 아무리 과학적인 저작이라고 하더라도 속에는 저자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으므로 그것을 감안하여 객관성을 논하는 입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간략하게 본문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예수께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11:1);

(1)   마침 기도를 하시고 내려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제자 가운데 사람이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만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기도를 적이 있으므로 어떻게 기도를 하는지 이미 배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9:18, 14:32-38). 하지만 자리에 함께 하지를 못한 제자들은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수가 있습니다.

(2)   하나 세례 요한이 기도하는 법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적이 있음을 여기서 수가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 역시 세례 요한처럼 선지자의 기도를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생도들이 스승이신 선지자에게서 전수를 받듯이 그렇게 기도문을 얻고자 것입니다.

(3)   기도문이 중시가 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을 고대사회에서는 신의 능력을 불러오는 주문(呪文, spell) 같이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능력이 무당의 주문에 의하여 나타나듯이 선지자의 기도문도 그것을 배워서 외우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여긴 것입니다.

  둘째로,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 이름 거룩히 여김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11:2);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 기도문은 제자의 역할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미가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①첫째,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이 빛내듯이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백성들로부터 거룩하게 칭송을 받을 있도록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답게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②둘째, 하나님의 통치의 기본이념인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로,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11:3);

(1)   세상에서 먹을 양식을 구하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매일 주셔서 날마다 먹을 양식을 생산할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기도 가운데에는 육적인 양식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의 양식도 매일 달라고 하는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양식을 먹지를 못하게 되면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이미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3)   매일 식사를 해야만 육체가 활동을 있듯이 영적인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묵상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계속 생각하지 아니하게 되면 위급한 순간에 본능적으로만 대처하게 됩니다. 그것은 영적인 삶이 아니라 육적인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넷째로,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11:4);

(1)   사도 마태는 산상수훈 가운데 황금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대접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것을 행해야만 합니다.

(2)   하나님으로부터 사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에게 죄를 지은 원수 같은 자의 죄를 용서해주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실천이 없이 그냥 받고자 한다면 한번 가능할 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제사입니다. 그것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필요하며 그후 제자된 삶이 요청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도록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성도가 거룩한 삶의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여 전도의 문을 막아버린다고 하면 그것은 가장 먼저 회개를 해야만 하는 기도의 제목이 됩니다.

(4)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하는 간구는 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성도를 시험관(試驗官, 시험의 책임을 ) 앞으로 인도하느냐 않느냐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금식기도하신 예수님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도록 인도하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4:1-2). 그리고 욥의 믿음을 시험하겠다는 사탄의 요청을 허락하신 분도 여호와이십니다(1:11-12).

2)      둘째,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아니하도록 막아 주실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자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에 계속 넘겨져 버리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도 못하고 욕심과 탐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마태의 주기도문에 비해서 간단한 의사 누가의 주기도문입니다. 그러나 깊은 의미를 재삼 음미해보면 간구할 내용을 이미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초대교회의 성도로 참여하고 있는 의사 누가인지라 예수님의 부활의 은혜와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의 체험이 이미 주기도문에 반영이 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누가의 주기도문에서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미 누가의 마음속에 강력하게 임재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나라의 영광과 권세를 맛보면서 사도 바울의 주치의로서 함께 유럽선교를 하고 있는 의사 누가를 그가 수록하고 있는 주기도문에서 발견할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주기도문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의사 누가처럼 승리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