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07강(눅10:4-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10. 21:12

누가복음 강해 107(10:4-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8 19()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를 2명씩 35개조로 편성하여 사마리아 각지로 파송하시면서 주시는 말씀에 대한 구절 해석(10:4-12).

 

첫째로, 전대 배낭이나 신발 가지지 말며, 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10:4);

(1)   옛날 사람들은 여행을 때에 돈주머니를 허리에 차게 됩니다. 그것이 전대(錢臺)입니다. 그리고 봇짐을 등에 지게 됩니다. 속에는 여행용 옷가지와 침낭 그리고 세면도구 온갖 필수품이 들어 있습니다. 더구나 옛날에는 신발이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므로 여분의 신발을 배낭에 묶어서 지니고 다녀야만 합니다.

(2)   가지가 여행을 때에 필요한 법인데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사마리아 여러 마을로 복음사역을 하라고 전도여행을 떠나 보내시면서 그것들을 지니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10:4a).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말씀은 전부 현지조달을 있도록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누구를 통해서 현지조달을 해주는 것일까요?

(3)   예수님이 믿고 있는 든든한 뒷배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여행용 물품을 지니고 가지 아니하는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현지조달이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가게 되면 현지에서 그들을 맞이하여 숙식을 일체 해결해주는 주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안배가 믿는 자에게 현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4)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전폭적인 배려와 섭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친교에 한층 힘을 써야만 합니다. 방법이 일체의 일정을 전부 복음사역과 전도여행에 할애를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용무가 있어서 옆으로 새거나 집안의 어른들에게 문안을 하겠다고 자기 일을 보러 다녀서는 안됩니다(10:4b). 그것은 복음사역과 전도여행이 일단 끝난 다음에 개인적으로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둘째로,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10:5-6);

(1)   여기서 말하고 있는 평안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0:5). 그러므로 70명의 제자들은 전도를 위하여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집에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의 역사가 있기를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집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영이 떠나가고 이제는 예수님을 구원주로 영접함으로써 영적인 평안을 누리라는 의미에서 집이 평안할지어다(10:5)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2)   그리하면 진실로 영적인 평안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가정이 나타납니다. 집은 기꺼이 전도팀을 맞아들이고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실시할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에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이 함께합니다(10:6a). 반대로, 제자들이 복을 빌어주는 평안을 거절하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복만으로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는 자들입니다. 구태여 예수님을 구속자로 영접하고 회개함으로써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영생구원을 얻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집안입니다.

(3)   그러한 집안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면 집에 대하여 저주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조용히 떠나야 합니다. 이유는 가지입니다; ①첫째, 집안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직접 다루실 것입니다. 능하신 손에 조용히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②둘째, 집안에 빌어준 평안의 복이 그곳에 머물지를 못하고 제자들에게 되돌아오게 됩니다(10:6b). 만약 저주를 했더라면 큰일이 했습니다. 저주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집에서 집으로 옮기지 말라”(10:7);

(1)   제자들을 영접하는 집이 부유한 집안인지 아니면 가난한 집안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가지 있는 사실은 가정을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붙여주었으며(6:37) 집안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했다는 것입니다(10:6). 그러므로 제자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집에 머물면서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해야만 합니다(10:7).

(2)   제자들의 숙식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집안에 머물면서 집에서 주는 것으로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해결이 됩니다(10:7a). 집이 넉넉하여 융숭하게 대접을 하든지 아니면 가난하여 소찬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해주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 중요한 사실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일찍이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공생애의 모습을 그곳에서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과 제자들은 함께 먹고 마시며 같이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신앙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성장이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치유의 사역이 펼쳐지게 됩니다(10:8-9). 그와 같은 집안과 제자들의 새로운 공생애는 지역에 대한 복음사역이 끝날 때까지 지속이 것입니다(10:7c).

(4)   제자들의 전도여행과 복음전파는 공생애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을 복음사역의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숙식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10:7a). 그것은 일을 시키고 삯을 지불하는 것과 같습니다(10:7b). 그런데 일꾼들이 삯이 적다고 하여 불평을 하면서 부유한 집으로 숙박을 옮기고자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허용이 될까요? 사적인 경우에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맡기고 있는 공생애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함부로 좋은 처우를 따라서 옮기지 말라고 하십니다(10:7c). 그것이 목자장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넷째로,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8-9);

(1)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변을 내포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첫째, 일꾼에게 삯을 지불했는데 맡긴 일을 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정죄가 되고 것입니다(25:26). 둘째, 자신은 일꾼인데 집에서 제공하는 잠자리와 식사가 형편이 없다고 불평하면서 복음사역을 게을리하게 되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세상적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것이 아닙니다.

(2)   땅에서 주시는 보수와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을 합산하여 모두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앞에서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짧은 소견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훈시를 하십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10:8-9).

(3)   셋째,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어떠한 복음사역을 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말씀사역과 치유사역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①말씀사역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10:9b) 외치면서 하나님말씀을 예수님의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②치유사역은 하나님의 임재를 백성들이 눈으로 있도록 병자와 장애자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10:9a).

다섯째로,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하라. (예수님)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날에 소돔이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0:10-12);

(1)   마을에는 보통 수십 또는 수백 호의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어느 집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마을이 존재하고 있을까요? 그러한 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사마리아에 있는 번째의 마을에서 알게 됩니다(9:52-53). 사실을 알게 사도 야고보와 요한이 격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마을을 모두 불태워버리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예수님의 의향을 묻고 있습니다(9:54).

(2)   예수님께서는 야고보 형제의 의견에 강하게 반대를 하십니다(9:55). 조용하게 마을을 떠나며 심판에 대해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두라고 하십니다(9:56). 그와 동일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문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줄을 알라 하라”(10:10-11).

(3)   위와 같이 불신앙 동네에 대하여 처벌을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리고 조용히 마을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불신앙자라고 하더라도 구원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신 구속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하여 공생애를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23:34, 3:16-17).

(4)   그렇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발걸음을 완전히 막아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마을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불심판이 옛날 소돔 성에서와 같이 임하고 것입니다(10:12). 이유는 성령님의 만민구원의 역사를 끝까지 배척했기 때문입니다(12:31-32, 1:8). 참고로, 사도 마태의 기록이 다음과 같습니다; “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

결론적으로, 본문에 대해서는 지난 강해에서 이미 전도자에 대한 명심보감 8개조로 정리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구절 해석에 있어서는 지난 강해를 참조하여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성도님들의 공생애와 전도여행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