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92강(눅9:7-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29. 02:52

누가복음 강해 92(9:7-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8 4()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되살리신 이야기가 예수님의 함구령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가버나움의 권력자들의 귀에 들어가게 되다(9:7-9).

 

요즘은 인테넷상에서 검색어 1위가 누구인지 금방 수가 있습니다. 이유는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달리고 있는 광전자가 빠른 속도로 인류에게 생생하게 최신정보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의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보통정보는 여행자들의 발걸음과 입소문으로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급한 정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말을 타고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정보의 전달속도가 늦은 시대이므로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에 대한 소문도 무척 천천히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보의 전달속도는 오늘날과 옛날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검색어 1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만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사람들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유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고대사회이므로 검색어 1위라고 있는 신기하고도 기이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오래 기억을 하고 또한 세월 동안 화제(이야기꺼리)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갈릴리의 백성들에게 실로 놀라운 소식이 하나 검색어 1위로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되살리신 사건입니다(8:49-56).

갈릴리의 백성들은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옛날 850년전 조국의 선지자였던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을 많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되살려낸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왕상17:17-24, 왕하4:32-37). 그런데 그와 같은 소문이 다시 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출처가 사람들이 존경하는 회당장 야이로의 집안 이야기이므로 믿을 있는 내용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전에 나인 성에서도 과부의 죽은 아들을 장례행렬에서 되살려내었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소문으로 전해져오고 있는 것입니다(7:11-17).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대표적으로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가 그러한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적고 있습니다(9:7-9). 헤롯 안디바는 일을 계기로 하여 나사렛 예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이 되고 있습니다. 관심이 커진 만큼 이제는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에 대해서 정권안보의 차원에서 감찰을 하고자 것입니다. 일은 일부 가버나움에 있는 산헤드린 지방 공회를 통하여 진행이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을 빨리 일단락을 짓고서 사역지를 예루살렘과 유대 땅으로 옮기는 문제를 검토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획의 일환으로서 12사도에게 권능을 주고 독자적인 전도여행을 떠나도록 하는 조치가 먼저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9:1-6).

그러한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분봉 헤롯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9:7);

(1)   나사렛 예수 일행이 갈릴리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복음사역이 평소 백성들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운데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의 복음으로 풀어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사역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 갈릴리 백성들의 주된 관심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입니다. 불치의 병자와 장애자들이 고침을 받게 되고 귀신이 쫓겨나며 정신병자가 온전해지는 그것을 백성들이 크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최근에  예수님의 복음사역이 갈릴리 백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되살려내셨다는 놀라운 소문 때문입니다. 이적은 믿을 만한 소식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지역에서는 누구나 알만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었기 때문입니다(8:49-56).

(3)   일찍이 예수님께서 나인 성의 이름없는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려내었다고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7:11-17) 그것은 출처가 분명하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처가 너무 확실하기 때문에 갈릴리 지역의 백성들이 자신 있게 이야기를 자신들의 화제거리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갈릴리 지역의 최고권력자인 분봉 헤롯 안디바에게 소식이 공식적인 정보로서 정식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정보를 접하게 헤롯 안디바가 크게 당황해하고 있습니다(9:7a).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부활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고 하므로 자신이 참수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입니다(9:7b, 6: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죽은 자의 영을 다시 시신에 들어가게 하여 되살려낼 있는 능력자가 예수라고 한다면(8:54-55)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헤롯 안디바는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5)   헤롯 안디바가 상상하고 있는 경우는 가지입니다; 첫째, 죽은 세례 요한의 영이 나사렛 예수에게 들어가서 예수가 요한의 일을 계속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안디바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다시 질책하며 백성들을 선동하여 정치적인 반대행위를 자행하게 것입니다(6:18). 그것은 안보상 위협을 의미합니다. 둘째, 예수가 죽은 요한의 영을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게 하여 세례 요한을 되살려 내는 경우입니다. 그리하면 헤롯 안디바는 부활한 요한을 다시 잡아들여야만 합니다.

(6)   과연 어느 경우일까요? 그래서 헤롯 안디바는 측근을 시켜서 은밀하게 예수 일행의 복음사역을 감시하게 합니다. 하지만 측근의 보고는 별다른 위협의 조짐이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과 달리 예수님 일행은 로마당국이나 헤롯왕가에 대해서 적대적인 주장이나 행동을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의 복음사상이란 마디로, 원수를 사랑하며 세상 모든 백성들이 함께 서로 생명을 돌보며 창조주 여호와를 같은 하나님 아버지로 섬기자고 하는 평화적인 생명사랑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어떤 사람은 엘리야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선지자 사람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9:8);

(1)   갈릴리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선지자로서 죽은 자를 살린 경우는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 오므리 왕가의 번째 왕인 아합 시대의 선지자입니다(왕상16:30). 아합 왕은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하고 이방 신과 우상을 가장 심하게 섬긴 왕입니다. 그는 시돈의 왕이며 제사장인 옛바알의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고 바알 신을 주신으로 삼은 자입니다(왕상16:31-32).

(2)   그렇게 영적으로 캄캄한 시대이므로 여호와께서는 디셉 사람 엘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고 권능을 주십니다(왕상17:1). 그래서 엘리야는 시돈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는 기적까지 보이게 됩니다(왕상17:8-9, 17-24). 그것은 바알 신을 섬기는 페니키아 중심지 시돈 땅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고유한 부활의 능력을 선보이신 사건입니다.

(3)   엘리야의 제자인 선지자 엘리사 역시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자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부왕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거한 것입니다(왕하3:1-2). 그러나 모압과의 전쟁과 흉년으로 나라살림이 어려워집니다(왕하3:4-9, 26-27, 4:2, 38). 그와 같은 때에 엘리사가 선지자 대접하기를 기뻐한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자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들을 되살려주는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왕하4:8, 25, 32-37).

(4)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가 있은지 850년이 지나서 나사렛 예수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다른 선지자(9:8b) 엘리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에 따르게 되면, 여호와의 영광의 날이 이르기 전에 불말을 타고서 승천한 있는 엘리야가 세상에 다시 온다고 합니다(4:5-6, 왕하2:11). 그러므로 헤롯 안디바도 예수님이 바로 다시 이세상에 오는 엘리야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9:8a).

셋째로,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9:9);

(1)   나사렛 예수가 차례나 갈릴리 지역에서 죽은 자를 되살려내는 기적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헤롯 안디바는 아찔했습니다. 자신이 참수한 세례 요한이 부활하여 자신의 목을 물어 뜯는 것과 같은 위기를 느꼈기 때문입니다(6:16,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2)   하지만 헤롯대왕의 아들인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는 어린시절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의 왕궁에서 왕자교육을 받은 자입니다. 구체적으로, 헬라의 과학적인 학문과 이성적인 철학 그리고 로마의 실용주의 사상도 많이 교육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참수한 있는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 예수와 함께 활동을 수는 없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9:9a).

(3)   자신의 생각은 그렇게 정리를 했지만 나사렛 예수가 어떠한 사상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민심을 얻고 있는 그가 장차 헤롯왕가에 정치적인 위협이 되지나 않을지 여전히 궁금합니다(9:9b). 따라서 은밀하게 예수의 복음사역을 감찰하도록 신하들에게 지시를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를 받고서 일단 관심을 끄게 됩니다.

(4)   하지만 2 정도의 세월이 지나서 예루살렘에서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체포가 되어 자신에게 끌려온 나사렛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23:6-7). 그때 헤롯 안디바의 이야기를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23:8). 참으로 이슈를 끝까지 추적하는 끈질긴 과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의사 누가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가 관능적인 춤을 추어서 의붓아버지인 헤롯 안디바를 매료시킨 다음에 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사건은 유명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14:3-12, 6:14-29) 문학적으로나 음악적으로도 흥미로운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급하게도 헤롯 안디바가 살로메의 춤을 보고서 그녀의 무슨 청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14:7) 그만 살로메의 요구대로 세례 요한이 참수형을 당하고 맙니다(14:8-11). 그런데 공관복음의 저자들은 헤롯 안디바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인 세례 요한을 죽였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14:2, 6:14-16, 9:7-9).

특히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되살린 이야기와  12사도들을 파송하여 갈릴리 지역에서 대대적인 복음사역을 사실에 대하여 헤롯 안디바가 정세보고를 받고서 고통과 불안감이 한층 커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9:7, “분봉 헤롯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그것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 특히 부활의 능력과 심판의 능력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땅에서의 잘못에 대하여 훗날 영벌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 여전히 심적으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활과 심판이 예비되어 있는 것일까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함의 방법에 대하여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도래 등을 예언하시고 계심을 앞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예언을 제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곧이어 9장에서 기록해나가려고 합니다(9:18-36). 그러므로 아무쪼록 헤롯 안디바처럼 부활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반대로 이를 기쁨으로 소망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