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88강(눅8:40-4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25. 14:57

누가복음 강해 88(8:40-4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7 31(주일)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과 오랜 혈루증 여인의 믿음에 대하여(8:40-44)

 

공관복음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회당장(the synagogue ruler) 야이로의 딸을 죽음에서 되살리시는 예수님의 기사를 기록하면서 중간에 12 혈루병을 가진 여인이 살며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서 지병이 낫게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습니다(9:18-26, 5:21-43, 8:40-56). 그와 같이 회당장의 믿음과 여인의 믿음을 대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회당장이라고 하면 주로 레위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을에 회당을 짓고서 매주 안식일에 주민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으며 기타 지역에는 전국적으로 회당이 많이 건설이 되어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대인 남자 성인 10 이상이면 회당을 지어서 운영할 있는 자격이 유대교의 규정에 따라서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유대교는 회당문화를 통하여 세계의 유대인들을 하나의 신앙체계로 묶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회당을 갈릴리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회당장 야이로는 믿음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믿음이 좋아 보이는 회당장 야이로와 초라한 혈루병 여인의 믿음을 대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의문을 풀어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거라사 인의 땅에서) 돌아오시,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기다렸음이더라”(8:40);

(1)   예수께서 (거라사 인의 땅에서) 돌아오시”(8:40a);

1)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일대에서 복음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다가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 동쪽의 도시 거라사로 가셔서 복음사역을 하시고자 하십니다(8:26). 그곳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군대 귀신이 들어 있는 광인입니다(8:27).

2)      예수님께서는 귀신 떼에게 사람에게서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군대 귀신은 부디 돼지 떼에게라도 들어갈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8:32). 예수님이 허락을 하시자 즉시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게 귀신이 들어가게 됩니다. 결과 귀신이 나간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정상으로 돌아옵니다(8:35).

3)      반면에, 악령이 들어오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돼지들을 모두 미쳐서 날뛰게 됩니다. 결국 돼지들은 비탈 길로 내달아 갈릴리 호수에 빠져서 전부 익사를 당하게 되고 맙니다(8:33). 그러한 전후사정을 알게 돼지 떼의 주인들은 마을회의를 거친 후에 예수님에게 정중하게 요청을 합니다. 부디 이상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지 마시고 조용히 자신들의 도시를 떠나달라는 것입니다(8:37).

4)      그들 이방인들의 선택은 귀신들린 사람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고 있는 예수님을 떠나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 유대인들의 땅으로 되돌아 오신 것입니다(8:40).

(2)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기다렸음이더라”(8:40b); 갈릴리 유대인 마을에 도착을 하시자 예수님은 전혀 다른 대접을 받게 되십니다.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어서 예수님 일행을 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질병과 장애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이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마을을 방문해주시기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둘째로,이에 회당장인 야이로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12 외딸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8:41-42);

(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8:41); 가운데 가장 크게 예수님을 환영한 사람은 마을의 회당장인 야이로입니다. 그는 마을의 유지이며 회당의 책임자로서 동네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회당장 야이로가 참으로 겸손하게도 젊은 예수님의 아래에 엎드려서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자신의 집으로 왕진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2)   이는 자기에게 12 외딸 있어 죽어감이러라”(8:42a);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는 12살이 외동 딸이 중병에 걸려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용한 의원을 많이 불러서 치료를 해보았지만 낫지를 않습니다. 이제는 죽을 것만 같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예수님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달려나온 회당장 야이로는 남의 눈치를 보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8:42b); 회당장 야이로의 급한 처지와  딱한 사정을 예수님께서 알아채십니다. 그래서 없이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시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 주위에 몰려있던 많은 병자와 장애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딱한 사정도 살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을 잡고 놓아주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셋째로,이에 12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8:43-44);

(1)   그러한 때에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무려 12 동안이나 혈루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여인이 은밀하게 예수님께 접근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뒤에서 살그머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전이가 되어 와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혈루병이 낫게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바로 순간에 놀랍게도 혈루병이 그녀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언제 피를 흘리는 일이 있었는지 감쪽같이 아무도 모르게 치유가 되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신기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2)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가지의 표현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12해의 혈루증, 아무도 고친 , 예수님의 옷에 살그머니 등입니다.

1)      12해의 혈루증”; 12 동안 여인은 간헐적으로 피를 흘리면서 삶을 영위해온 여인입니다. 그녀의 고통을 회당장 야이로의 외동 딸의 고통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12살입니다. 혈루병 여인은 야이로의 딸의 전체 생애와 맞먹는 오랜 세월을 혈루병과 싸워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야이로의 딸보다 훨씬 더한 것입니다.

2)      아무도 고친 ”; 무려 12 동안 여인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유대인 선민사회에서는 율법에 따라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도록 되어 있습니다(15:1-12). 따라서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혼자서 고독하게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한 처지이므로 사람대접을 받자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병을 치료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보아도 병은 나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옷에 살그머니 “; 마지막 방법 하나만이 남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땅에 가지고 메시아를 만나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능력만이 자신의 지병을 치료해줄 것으로 그녀는 믿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녀의 병을 치료해줄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로 나아갈 있는 방법이 그녀의 눈에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인 메시아의 옷깃을 살며시 잡고서 간절하게 여호와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4)      창조주의 능력이 부디 메시아를 통하여 자신에게 들어오게 허락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청하면 됩니다. 그녀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있는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마저 실패를 하게 된다면 그녀는 이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 구차하게 혈루병을 짊어지고서 살아갈 용기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녀를 하나님께서 돌아보신 것입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밀고 당기고 있지만 유일하게 그녀의 믿음만을 보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베데스다 못가에서 38 병자이며 장애자 사람만을 돌아보신 예수님의 눈길과 같은 것입니다(5:5-9).

결론적으로, 회당장 야이로와 혈루병 여인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모시고 자신의 집으로 가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딸이 낫게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혈루병 여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능력이 흘러나오고 있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자신의 병이 낫게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회당장 야이로는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아래에 앉아서 부디 자신의 딸을 낫게 해달라고 떳떳하게 말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혈루병 여인은 그렇게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부정한 여인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면 돌팔매를 던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녀는 예수님께 살그머니 접근한 것입니다.

(3)   셋째, 회당장 야이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선지자의 능력으로 사람의 병을 치유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혈루병 여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러한 신분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은 사람의 힘으로 낫게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창조주 여호와만이 낫게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치유의 능력이 흘러나오는 통로와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의 복이 선지자 아브라함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흘러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12:2-3).

그러므로 결국 회당장 야이로가 믿고 있는 대상은 예수님의 신기한 치유의 능력입니다. 반면에 혈루병 여인이 믿고 있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 나오고 있는 매개물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허락이 없이도 여인의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지병을 낫게 해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께 주여 주여하면서 보이려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믿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처럼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7:21). 아무쪼록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