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70강(눅7:18-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7. 01:21

누가복음 강해 70(7:1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7 13()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이 갈릴리 지역에서 한창 열심히 복음사역중인 예수님께 자신의 제자 사람을 보낸 이유가 무엇인가?(7:18-20)

 

세례 요한은 갈릴리 분봉왕에 의하여 감옥에 갇혀서 지내고 있습니다(4:12, 14:3-5).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의 앞길을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앞장을 서서 이두매 출신 헤롯 왕가의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잘못에 대하여 질책을 하고 강하게 비판하였으므로 뒤를 메시아 예수가 따라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차제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외세를 물리치시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실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판단으로는, 예수님은 신분이 창조주 여호와의 아들이시기에 세상제국인 로마를 쉽게 물리치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3:16-17). 예를 들면, 700여년   히스기야 때에 일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하룻밤에 앗수르의 대군 18 5천명을 몰살시킨 적이 있습니다(왕하19:35). 그러므로 조그마한 헤롯 왕가 쯤이야 금방 물리치시고 요한 자신을 감옥에서 구출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단 강에서 갈릴리 고향으로 올라오신지 여러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갈릴리의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시면서 말씀사역과 치유사역만을 계속하십니다. 갈릴리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의 군대나 헤롯 왕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 외세의 선민지배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들을 내쫓아버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발휘가 있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세례 요한은 불현듯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생기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행동과 활동상황을 전해듣고서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그것은 전통적인 메시아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외세와 함께 공존하는 선민의 삶을 나사렛 예수가 선택하고 있다면 그것은 선민들의 메시아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나중에 진짜 메시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세례 요한은 견디지를 못하고 확인을 해보고자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요한의 제자들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7:18);

(1)   갈릴리 지역에서 공생애의 초기활동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크게 가지의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 말씀사역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둘째, 치유사역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억누리고 있는 귀신들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과 장애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셋째, 예언활동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장차 사함의 은혜와 부활의 은혜와 성령강림의 은혜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예수님의 활동내용을 빠짐없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스승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자신이 요단 강가에서 침례를 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백성들에게 선포한 있는 나사렛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관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이 자신을 감옥에서 구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옥에서 나갈 수만 있으면 자신이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선민들의 힘을 결집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여호와의 영광을 세상에 떨치는 일이 그의 소임으로 느껴지고 있는 세례 요한입니다.

(3)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일까요? 그것은 세례 요한의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하시는데 있어서 사람들을 결코 앞장 세우지를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성령님께서 앞장을 서시고 뒤를 사도들과 제자들이 따라갈 뿐입니다. 모든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앞장을 서시고 뒤를 사람들이 따르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유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취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훗날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웅변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3-36).

둘째로,요한이 제자 중에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7:19);

(1)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신지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갈릴리 분봉왕의 옥사에 갇히어 있는 자신을 면회조차 한번 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의아한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자신이 평범한 선지자에 불과한 나사렛 예수를 혹시 영적으로 잘못 보고서 그만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을 구속하는 메시아라고 백성들에게 소개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떠나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보내어서 확인을 해보고자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7:19a).

(2)   세례 요한이 제자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님을 만나서 이렇게 여쭈어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7:19b). 마디로, “당신이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아니시라면 진짜 메시아는 언제 오는 것입니까? 아시는 대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질문입니다. 그것은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고약한 질문입니다. 이미 십중팔구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강한 의문을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7:20); 세례 요한의 제자 사람은 그것이 엄청난 실례인지도 모르고 곧장 예수님을 찾아와서 스승이 시킨 그대로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1)   보통사람 같으면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세례 요한에 대하여 고깝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복음사역의 현장을 경험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셨는지 정확하게 모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2)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하면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가르침 받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한 기회를 가진 자들이 12사도로 세움을 받고 훗날 예루살렘에 초대교회를 건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는 성령님의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으로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2:1-4). 그후부터 성도들은 줄곳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경험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씀의 은혜와 성령님의 은혜가 세례 요한과 같은 선지자에게는 주어지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십분 이해하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7:28).

결론적으로, 훗날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대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옥중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옥살이의 고난 가운데 오히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의 진수를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놀랍게도 옥중서신을 기록하여 초대교회에 회람을 시키게 됩니다(4:1, 1:12-14, 4:2-3, 1:1-3).

그에 비해서 주후 28년경 갈릴리 가버나움의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의 복음활동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제자들을 보내어서 확인하고자 하는 무례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아무래도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교훈과 생애를 직접 보고 깨닫음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부활까지 보게 된다면 그것은 말로 다할 없는 은혜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12사도와 제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훗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깨닫고 마치 후속사도인 바울처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복이 있다고 하겠습니다(20:29, 고전11:1, 3:10-16).

아무쪼록 그와 같은 놀라운 영적인 복을 이미 받고 또한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