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68강(눅7:6-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6. 17:25

누가복음 강해 제68(7:6-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711()

 

예수님께서 로마인 백부장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하인을 치유하여 주는 것과 먼 거리에서 말씀으로 낫게 해주는 것과의 차이에 대하여(7:6-10)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장하고 공생애를 살아가시면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구속자로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 앞에서 오만하며 예수님에 대한 대접이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민들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단지 다윗의 후계자로 이 세상에 오시는 유대인들의 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메시아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 옛날 다윗대왕처럼 외세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세상적인 패권과 경제적인 번영을 선물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생각과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들의 생각은 그것이 아닙니다; ①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선민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②둘째, 그리스도가 전해주고 있는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말씀의 뜻을 깨닫게 된 성도들은 회개하고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계승하여 제자로서 거듭난 삶을 살아가게 될 때에 그 앞에 영생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민들에게 현세적인 복을 주고 모든 병들고 약한 자를 고쳐주는 치유사역자 정도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창조주의 신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 앞에 서는 피조물들은 모두가 주인 앞에 서있는 종의 처지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해야만 합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직면하고 있는 것이기에 자신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 자세를 낮추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본적인 인식과 신앙의 자세를 선민들의 사회에서 예수님이 복음사역 가운데 별로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공생애 초기에 있어서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5:8), 제자 나다나엘의 고백(1:49), 율법학자 니고데모의 고백(3:2), 수가 성 주민들의 고백(4:42) 등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느닷없이 이방인인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그에 필적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7:6-8). 그래서 예수님의 칭찬을 얻고 있습니다(7:9).

한 마디로 로마인 백부장의 고백은 예수님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선민들이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 신분과 사명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데 이방인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 믿음의 고백을 간접적으로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위하여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7:6);

(1)  예수님이 일행과 함께 로마군대의 백부장의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도착하기 전에 백부장의 친구들이 급히 달려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백부장의 말을 예수님께 전해주고 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오지 마시라는 것입니다”(7:6a).

(2)  경우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전갈입니다. 부디 오셔서 자신의 사랑하는 종의 죽을 병을 고쳐달라고 유대인 장로들까지 보내어서 사정을 하던 그 백부장이(7:3) 갑자기 집안으로 예수님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친구들을 급파하여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6).

(3)  그런데 그렇게 섭섭하게 여기기에는 무언가 전갈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라고 부르면서 백부장이 자신의 위치를 낮추고 있습니다(7:6a). 둘째, 천한 종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가로막고 있는 이유입니다(7:6b).

(4)  그것은 예수님을 업수이 여긴다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의 집에 모시기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너무나 존귀하신 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서 친구들을 보내어 미리 전갈해주고 있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이방인 로마사람 백부장에 대해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7:7-8);

(1)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재빨리 친구들을 보내어 그 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행동을 혹시 예수님께서 무례하게 여기실지 몰라서 자세한 설명을 친구들 편으로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시고 있는 주께 나아가기도 힘든 죄인이라는 것입니다(7:7a). 둘째, 예수님께서 멀리서 말씀으로 명령만 하셔도 자신의 종은 병이 낫게 될 것임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7:7b).

(2)  백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서 예수님께 전달하고 있는 설명은 다분히 자신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상명하복’(상관이 명령하면 부하는 복종을 해야한다는 것임)의 원칙입니다. 먼저 그는 예수님이 로마의 백부장인 자기보다 훨씬 능력이 많으시고 감히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라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슴없이 ’(Lor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멀리서라도 한 말씀만 명령을 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백부장의 종의 중병이 그 명령에 따라 물러갈 것이라는 전언입니다.

(3)  백부장은 자신의 경험을 친구를 통하여 예수님께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군대에서 부하들은 무조건 상관의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7:8a). ②둘째, 집안의 하인들도 주인의 말에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7:8b).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한 마디 명령만 내리시면 시공간을 뛰어 넘어서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종의 중병 따위는 그 명령에 따라 당장 물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7:7).

셋째로,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7:9);

(1)  예수님의 말씀은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복음사역을 하는 중에 그와 같은 경우를 한번 만나보았는데 그것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갈릴리 분봉 왕의 신하인 이두매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 제4장에서 그 내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 살고 있는 헤롯 왕의 신하가 멀리 서쪽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집에 가셔서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믿고 헤롯의 신하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그 시간 즉시 아들이 나았다는 보고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집안 이방인 이두매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4:46-53).

(2)  의사 누가는 본문에서 로마사람인 백부장이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는 갈릴리 분봉 왕 헤롯의 신하의 이야기와 같은 사례입니다. 그 두 가지의 경우는 모두 예수님이 만민의 구속자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신 창조주이심을 믿는 자에게는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발생하게 된다는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이 시간에도 치유의 역사는 물론 영생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넷째로,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7:10);

(1)  갈릴리 분봉 왕의 신하가 집으로 돌아가서 이미 병이 떠나가고 치유가 되어 있는 아들을 만나게 됩니다(4:51-52). 마찬가지로 백부장의 친구들이 백부장의 집으로 돌아가보니 그 종이 벌써 치유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7:10).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그 믿음에 대하여 칭찬을 받은 그 순간에 이미 그 종의 병마가 떠나간 것입니다(7:9). 그것은 헤롯의 신하의 아들과 동일한 경우입니다.

(2)  그에 따라 여기서는 생략이 되어 있지만 그 백부장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 종은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분봉 왕의 신하 집안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과 동일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4:53). 그들 백부장들은 가나안 땅에서의 복무가 끝난 다음에는 본국 로마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3)  훗날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온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고린도에서 만났을 때에 로마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18:1-4, 16:3). 자생적인 교회가 로마제국의 중심인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7-8). 로마사람들에 의하여 생겨난 현지인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로마교회의 성립은 의사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본문의 사건과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 초석을 이미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본문에서와 같이 놓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만 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면 됩니다. 로마인 백부장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이며 세상의 주인으로 대접하면 됩니다. 자신의 종의 병 따위는 멀리서라도 한번만 말씀으로 예수님이 명령하시면 병마가 견디지를 못하고 떠나가고 말 것이라고 믿으면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신앙을 독점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와 같은 인식과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과연 다윗 왕의 후계자인 메시아로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들의 제국을 건설해줄 것인지를 두고 보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현세적인 복을 주면 믿을 것이고 그렇지 아니하고 만민구원이나 영생구원과 같은 소리를 계속 하나님말씀의 뜻이라고 전파할 것 같으면 그를 배척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아집적인 종교와 교리로써  온 세상을 구원하려는 창조주와 그리스도의 뜻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사람인 백부장이나 이두매 사람인 갈릴리 분봉 왕의 신하에게 있어서는 그와 같은 아집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구원자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창조주의 뜻과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막아설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8:38-39). 그 믿음을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고 계십니다(7:9).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렇게 순전한 믿음을 가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