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52강(눅5:27-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25. 17:50

누가복음 강해 제52(5:27-32)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6 25()

 

세관원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을 비판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5:27-32)

 

의사 누가는 본문에서 세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①첫째가버나움 세관에서 세리 일을 하고 있는 레위를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것(5:27-28). ②둘째레위의 집에서 벌어진 예수님 일행 초청잔치에 많은 세리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서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이를 비방하였다는 것(5:29-30). ③그 비난에 대하여 예수님이의사가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이자신은 의인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고 응대한 사실(5:31-32)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함께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유대인들이 어째서 세관에서 일하고 있는 세리들을 미워하고 있으며 죄인 취급을 하고 있는가?

(2)  세리 레위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어째서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로 따라 나서고 있으며 마치 그 옛날 엘리사처럼 잔치를 벌이고 있는가?

(3)  여기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듣기 좋게 답변하신 예수님이 어째서 제18장 제9-14절에서는 반대로 평가를 하시고 있는가?

그와 같은 질문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각 구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5:27-28);

(1)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 제5장 전반부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대대적으로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펼쳐나가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그러자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의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그들의 관심은 우려에 가까운 것입니다왜냐하면예수님의 말씀선포가 유대교가 주장하고 있는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만민구원사상이기 때문입니다따라서 바리새인들 가운데 율법학자인 서기관 그리고 백성들의 율법선생인 랍비들로 현지조사단을 구성하여 실태파악에 나서고 있습니다.

2)    따라서 의사 누가는 제5장 후반부에서 그들 바리새인들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신성모독죄를 운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5:21). 이어서 본문에서는 세관원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 집에서 여러 세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 일행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으므로 율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5:30).

3)    그와 같이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주제와 이슈에 충실하게 글을 체계적으로 적고 있는 저술가입니다그러한 맥락에서 본문의 첫 대목 그 후에(5:27a)는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에게 신성모독죄를 운운하던 바리새인들이 그 다음에는 어떠한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지에 관하여 기술을 하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2)  가버나움 세관에서 세리로 일을 하고 있는 레위를 예수님께서 보시고 제자로 부르시고 있습니다(5:27b);

1)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땅에는 로마의 총독부와 헤롯의 왕가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로마총독은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습니다그리고 갈릴리와 이두래 지역에는 각각 헤롯 왕가의 분봉 왕이 다스리고 있습니다그런데 국제간의 물동량 이동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세관은 로마총독부가 관할하고 있는 여리고 세관이 있고(19:1-2), 갈릴리 분봉 왕이 관할하고 있는 가버나움 세관이 있습니다(5:27).

2)    로마총독과 분봉 왕은 국내세와 관세를 모두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그렇지만 그 사용에 있어서는 다릅니다국내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관세는 모두 로마황제에게 바치도록 되어 있습니다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국내세는 자신들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세금이지만 관세는 그것이 아닙니다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의 값만을 비싸게 하면서 징수한 관세는 전부 로마황제에게 상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관세를 징수하고 있는 세리가 미움의 대상이며 매국노로 불리고 있는 죄인들입니다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서를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께서는 거리낌이 없이 가버나움 세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십니다(5:27-28). 예수님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실태파악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 조사단은 그 광경을 보고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습니다.

(3)  세리 레위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고 있습니다(5:28). 어째서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1)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마가복음에서는 가버나움 세관에서 세리 일을 하고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14). 그리고 세리 레위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레위가 아니고 마태’라고 적고 있습니다(9:9).

2)    의사 누가까지 세리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는데(5:27레위는 어째서 자신을 세리 마태’라고 적고 있을까요그 이유는 그 이름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레위’는 하나님과 연합(29:34) 하고 있는 레위 지파의 자긍심이 들어 있는 이름입니다(32:26-28, 3:12). 그런데 세리 레위는 그 자존심을 버리고 로마황제를 위하여 관세를 거두고 있는 세리입니다그 일이 마음에 들 리가 없습니다동족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어떠한 계기가 마련이 되면 그 일을 떠나야 되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3)    마가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14). 그 이유는 레위의 아버지 이름이 꽤 유명하다는 뜻입니다그러므로 레위는 레위 지파에 속하는 유력한 인물 알패오의 아들입니다집안이 넉넉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리고 그는 세관에서 일을 하고 있으므로 국제간의 물동량에 대하여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입니다그 의미는 당시 국제간 공용어로 사용이 되고 있는 헬라어에 능통하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세관업무를 처리하고 로마황제에게 보고서를 제출할 정도로 학문을 가진 젊은이입니다.

4)    하나의 계기가 마련이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있는 레위를 예수님께서 부르고 계십니다앞으로 레위가 마태가 되면 그 학문과 헬라어로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미리 내다보고 계시는 것입니다그 일이 레위의 인생 가운데 실현이 됩니다그는 사도 마태가 되고 훗날 마태복음을 저술하게 됩니다복음서를 저술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선물을 크게 받은 인생이라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의미에서 자신의 또 다른 이름 마태(하나님의 선물)가 참으로 마음에 들고 있습니다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의 복음서에서는 부끄러운 시절의 이름 레위’를 대신하여 마태’라고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29-30);

(1)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나서면서 레위는 너무나 기뻐서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5:29a);

1)    그러한 선례를 엘리야의 제자로 따라 나서고 있는 엘리사의 경우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그(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함께 묶인 2마리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왕상19:21).

2)    이스라엘의 역사서에 적혀 있는 그 놀라운 결단이 본문에서는 세리 레위에게서 발생하고 있습니다그만큼 레위는 동족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삶을 청산하고 동족들에게 유익하고 보람이 있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작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그러므로 레위는 자신을 제자로 불러주시는 예수님에게 감사하여 자신의 집에 예수님 일행을 모두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5:29a).

3)    그와 같은 레위이므로 그가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착복을 하거나 부정을 한 일이 없는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그와 유사한 사례로서 의사 누가가 제19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여리고 세관의 세관장인 삭개오의 경우를 보면 그러합니다그는 지나가시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한번 불러주신 그 사실이 너무나 고마워서 자신의 집에 모시고 식사대접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자신이 청렴결백(淸廉潔白정직하게 공무를 처리하고 부정을 멀리하는 깨끗한 관리의 삶)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8).

(2)  레위는 그 잔치자리에 이웃사람과 더불어 동료들을 많이 초청하고 있습니다(5:29b);

1)    그 모습을 보고서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5:30).

2)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의 관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선민들에게 불이익을 끼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들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외세의 앞잡이들도 모두 그러합니다그러므로 세관원들이야 말로 죄인들입니다.

3)    그런데 의사 누가는 여기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5:30)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그 의미는 어떻게 보면 국내세를 징수하고 있는 일반 세리와 관세를 징수하고 있는 세관원을 구별하고 있는 표현으로 보입니다국내세를 징수하고 있는 세리에 대해서는 사실 죄인으로 취급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다만 로마황제에게 전부 상납하고 마는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세관원들이 죄인으로 취급이 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말씀을 예수님이 벌써 듣고 계십니다제자들은 그 질문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못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차제에 자신의 만민구원사상에 대하여 정확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1)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인이며 건강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유대교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의 뿌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히브리정경이 바로 모세의 오경입니다그 주요사상의 원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축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그 내용은 제12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그대로 자손의 번성과 가는 곳마다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복이 전파가 된다는 것입니다(12:1-3). 하란의 아비 집을 떠나서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아브람은 자식이 없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였기에 8아들을 얻게 됩니다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로서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17:9-11, 26, 21:4).

2)    그렇지만 모세는 아브라함의 8아들 가운데 선민의 정통성은 약속의 아들 이삭에게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17:19). 모리안 산 번제(燔祭제물을 토막을 내고 완전히 태워서 바치는 제사)사건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자리에서 번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계자가 되고 있습니다(22:10-18). 그 다음에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둘째인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영적인 장자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28:13-15, 35:10-12).

3)    그로 말미암아 비록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할례를 받았지만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 그 직계가 아니면 모두 방계로 처리가 되고 선민의 지위에서 이탈이 되고 맙니다그것은 본질적인 모순입니다왜냐하면 선민들은 자신들의 할례를 하나님 백성이라는 징표로서 자랑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동일한 할례를 행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다른 자손과 이삭의 장자 에서의 자손을 전부 제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육체적인 할례가 선민의 유일한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그렇다면 혈통적인 의미 외에 무엇이 선민의 조건이 될 수가 있을까요그 조건이 출애굽기에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인도로 시내 산 앞에 도착을 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동시에 선민의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19:5-6). 그것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19:6). 그 뜻은 선민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신앙의 본을 보이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5)    그래서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성막을 세우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25:8-9, 40:34-38). 레위기에서는 속죄의 제사의 방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민수기에서는 하나님신앙과 우상문화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마침내 신명기에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라는 두 가지 가운데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30:19-20).

6)    그렇지만 모세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진심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이기적이며 교만한 선민사상과 현세주의 우상문화에 물들고 말 것이며 마침내 선민의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8:11-14, 9:5-6. 29:18-28). 그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는 모습을 히브리정경 가운데 이스라엘의 역사서가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왕하17:5-6, 20:16-19, 21:10-16, 25:1-7).

7)    선민의 나라가 망하였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의 선민사상은 여전합니다그 결과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바야흐로 복음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그런데 그 앞에서 유대교지도자들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서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계신다고 예수님을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죄인인 바리새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율법위반이라고 선민사상에 의지하여 정죄하고 있는 외람된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2)  그렇지만 참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십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에게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그래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

1)    너희들은 건강하고 의인들이라서 의사가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가 필요가 없는지 몰라도 이 사람들은 병이 들어 있고 죄인들이므로 그들을 치유해주고 죄를 사해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아니하겠느냐이 일을 위하여 내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기에 그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    그 말을 듣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심정은 어떠한 것일까요자신들을 건강한 신앙인이며 또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을 해주고 있는 선지자 예수의 말로 들립니다그러므로 세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대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아니하게 됩니다하지만 그 다음에는 왜 금식을 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탐하고 있는가라고 다른 이슈를 제기하고 있습니다(5:33).

3)    참으로 집요하게 예수님 일행을 정죄하고자 나서고 있는 바리새인들입니다그 이유는 자신들의 유대교적인 히브리정경의 해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어느 사이엔가 불행하게도 당시의 유대교의 율법선생과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율법적인 히브리정경의 해석과 이해가 그만 그들의 절대적인 가치체계가 되고 그 자체 진리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4)    환언하면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진리와 가치체계에 맞지 아니하면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러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관념과 행태가 계속 나타나게 되자 끝내 예수님께서는 온유하게 그들을 대하시지를 못하게 되고 맙니다그래서 그들의 외식하는 신앙행태에 대하여 엄중하게 질책하시면서 마침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18:9-14)까지 언급하시게 됩니다.

결론적으로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세리 레위의 신앙태도와 바리새인들의 신앙태도를 대비시키고 있습니다세상적으로 유대인들은 세리인 레위는 매국노이고 죄인이지만 바리새인들은 모두 의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평가는 다르십니다; 바리새인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자 결심하는 자를 도와주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반면에 스스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고 칭송을 받고 있는 자는 크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의 지적과 같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3:9-10).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이가 없습니다(10:1-3). 세리이거나 바리새인이거나 차이가 없습니다그러므로 빨리 그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해야만 합니다그것이 그리스도처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아무쪼록 그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