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43강(눅4:24-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19. 13:58

누가복음 강해 제43(4:24-3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4 16()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신 사건에 대한 4복음서의 기술에 대하여;

 

예수님이 공생애 초창기에 고향을 방문하시고 회당에서 배척을 받으신 이야기는 유명합니다(13:54-57, 6:1-4, 4:16-30). 그래서 그 내용이 3권의 공관복음에 두루 실려 있으며 제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이 하신 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4:44).

그런데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성도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은 그 정확한 내용의 파악입니다도대체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바란 것이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응을 하셨기에 고향에서 내어 쫓기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측면에서 정확한 내용을 진술하고 있는 복음서가 중요합니다그 복음서가 바로 의사 누가에 의하여 저술이 되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는 복음적인 사건을 기술할 때에도 가능한 모든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열심입니다그저 한 사람의 말만 듣고서 글을 적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가 복음서를 저술하고 있는 시기는 주후 60년경입니다예수님의 공생애가 있었던 시점으로부터 약30년의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당시의 증인들이 제법 생존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건의 현지를 방문하여 그들을 두루 만나서 당시의 이야기를 청취합니다그리고 증언의 논리성과 현실적 타당성을 따져서 객관적으로 당시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노력의 결과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배척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그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말씀의 본래의 뜻은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고 만민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고향사람들에게 선포하시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4:24-30)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여 그곳 회당에서 엄청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4:23-27). 그 말씀은 오랜 세월 오만한 선민우월사상과 이방인 멸시사상에 젖어 있던 유대인들에게 치명상을 주고 있습니다.

고향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에서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며 다윗의 후계자로 불리게 되는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있습니다이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나사렛이 유명한 마을이 될 것이며 새로운 다윗 제국의 재건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의 대도시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와 장애자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신 이야기를 그들이 듣고 있습니다(4:23-24, 4:23). 이제 고향인 나사렛에서는 더 많은 치유의 능력을 행하실 것입니다그렇게 이기적이고 아전인수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고향사람들입니다그런데 그들 앞에 너무나 섭섭한 예수님의 말씀강론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를 동일하게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은혜의 시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시작이 되었다고 하는 선포입니다(4:17-19). 그러므로 선민이라고 하여 또는 고향사람이라고 하여 그 어떠한 특혜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4:23-24).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러한 강론을 버젓이 행하시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고향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예수님이 들고 있는 예화는 더욱 고향사람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그들의 큰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하고 있습니다선지자 엘리야나 엘리사 시대에 선민인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님말씀을 배척하고 선지자를 영접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오직 이방인들 가운데 몇 사람만이 하나님말씀을 따르고 선지자를 영접하여 치유와 회복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예화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4:25-27).

그와 같은 예수님의 강론을 들은 고향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기대가 컸던 만큼 그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굉장한 절망과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4:28). 마침내 나사렛 주민들은 예수처럼 고향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선지자나 메시아 따위는 자신들의 마을에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아예 동네 바깥으로 내치고 있습니다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멱살을 잡고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밀어버리려고 합니다(4:29).

그러한 위기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예수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동네사람들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도록 자위권이 발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갑자기 그들의 손을 벗어나고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유유히 고향을 떠나서 다른 마을로 발길을 옮기고 있습니다(4:30).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검토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또 이르시되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선지자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4:24); 예수님의 말씀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①하나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선지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②또 하나는 그렇지만 진리를 말하자면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그 말씀에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들어 있습니다모든 피조물을 공평하게 대하며 모두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와 같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 그 말씀 속에 깊숙하게 들어 있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생명구원의 깊고도 넓은 뜻을 이해하고 있는 선지자라면 자신의 고향사람을 편애하고 자신의 민족의 구원만을 호소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그와 같은 이기적인 신앙의 모습을 나먼저 청산하는 자들이 진정한 선지자라고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그렇지만 고향 나사렛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참으로 섭섭하기 그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 6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4:25-26); 자신의 진심 어린 충언을 고향사람들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이 두 가지의 예화를 히브리정경에서 발췌하여 그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그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입니다두 선지자의 행적이 이스라엘의 역사서에 고스란히 실려 있으므로 선민들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엘리야 시대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큰 흉년이 들고 있습니다무려 3년반에 걸친 오랜 가뭄이 있게 됩니다당시의 선지자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17:1). 아합 왕 시대에 그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임하게 된 것은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바알을 주신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왕상16:30-33).

(2)  아합 왕은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이방 신 바알을 섬기는 마음이 견고합니다그래서 비가 내리지 아니하는 세월이 3년 이상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물론 3 6개월 뒤에는 백성들의 고통이 너무나 심한 것을 보시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로 하여금 간절하게 기도하게 만들고 큰 비를 내려주십니다(왕상18:41-46, 5:17-18).

(3)  여기서 예수님이 예를 들고 있는 대목은 북조 이스라엘 땅에 오래 가뭄이 들고 있는 동안에 선지자 엘리야가 어디에 가서 생계를 유지했는가 하는 것입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선지자에게 위탁하시고 그 생계를 책임져주십니다따라서 북조 이스라엘 나라에 아무리 큰 가뭄이 오래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엘리야의 생계보장을 위하여 그가 머무르고 있는 집에는 먹을 것을 제공해주십니다.

(4) 세상적인 방법으로 양식을 줄 수가 없으면 하늘의 곳간을 열어서라도 주십니다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 가운데 만나를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16:14-30). 훗날 동일한 기적이 예수님에 의하여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발생하게 됩니다(14:13-21, 15:32-38).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고향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은 그와 같은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 집이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선민들이 멸시하고 있는 이방 땅 페니키아의 북쪽 도시 시돈의 근처에 살고 있던 사렙다(또는 사르밧왕상17:9과부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5)  참고로사르밧 과부의 집과 선지자 엘리야 모두를 살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그가 이르되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17:11-16).

셋째로, 또 선지자 엘리사 때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4:27);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 모인 고향사람들에게 만민구원의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설명해주기 위하여 들고 있는 두 번째의 예화는 선지자 엘리사의 것입니다엘리사가 아람 왕국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나병(고대사회에서는 문둥병근대사회에서는 ‘한센’병으로 불림)을 고쳐준 이야기입니다;

(1)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도 당시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습니다고대사회에서 나병은 불치의 병입니다몸에 있는 신경조직이 먼저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살점이 아픈 줄도 모르고 썩어서 떨어져나가게 되는 무서운 병입니다한국사회에서도 나병이 ‘퇴치’(인구의 0.01%미만을 말함)된 것이 1980년대이지만 2013년 자료를 보면여전히 한센병자가 200명남짓 남아 있습니다.

(2)  자신의 나병을 고치기 위하여 수리아 사람 아람 왕국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남하를 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이르고 있습니다(왕하5:1-9). 엘리사는 그를 예방하지도 아니한 채 다만 자신의 생도를 사자로 보내어 치유방법을 알려줍니다; 요단 강에 몸을 7번 씻으면 완치가 된다는 것입니다너무 쉬운 방법이라 나아만이 불신을 하지만 그래도 병이 나을 욕심에 꾹 참고서 순종을 합니다놀랍게도 강물에 7번 몸을 씻자 순식간에 나병이 떠나가고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이 됩니다(왕하5:14).

(3)  그와 같은 예화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선민이라고 하여 치유를 받으며 이방인이라고 하여 치유를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시며 그 적용에 있어서 선민 이방인 구별을 하시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이방인을 멸시하거나 구원에서 제외가 되었다고 오판하지를 마십시오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똑같이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따라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배출한 선민이나 고향사람이라고 하여 특혜를 바라지 말고 부디 선지자를 영접하고 하나님말씀에 순종을 한 그 옛날 이방사람 사렙다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행동하십시오그러면 살길이 열리며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4:25-27).

넷째로,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일어나 (예수님을동네 밖으로 쫓아내어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4:28-29); 그 말을 들은 고향사람들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4:28);

(1)  솔직히 자신들이 예수님에게 엄청난 특혜를 바란 것이 아닙니다그저 갈릴리의 대도시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실시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4:23).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며 장애자를 일으키는 예수님의 그 놀라운 역사를(4:23-24고향사람들이 자랑스럽게 한번 보고 싶어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신들의 회당 강대상에서 예수님이 이방인을 차별하고 있는 선민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해야만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풀이하면서 그렇게 만민구원과 생명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니 그 은혜를 사모하고 새로운 시대에 동참을 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4:17-21). 그것은 좀 이상한 내용이지만 새로운 말씀의 풀이인가 싶어 그런대로 사람들이 놀랍게 듣고 있습니다(4:22).

(3)  그렇지만 고향사람들이 정말 참을 수가 없는 그와 같은 모욕적인 발언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그것은 선지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고향사람들의 행실을 고쳐야만 한다고 예수님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4:24). 그것도 히브리정경에 적혀 있는 예화까지 동원하여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25-27). 고향사람들은 도저히 끝까지 참고서 듣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4)  그렇게 고향도 몰라보고 동족도 귀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방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시종 강변하는 것을 보니 예수의 앞날이란 그 싹수가 샛노랄 뿐입니다그렇게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어지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를 단상에서 끄집어 내어 회당바깥으로 쫓아버립니다(4:29a). 몇몇 과격한 젊은이들은 아예 예수를 끌고서 동네 바깥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4:29b). 그곳에서 절벽아래로 밀어버리고자 합니다(4:29c).

(5)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메시아라면 스스로 구원하여 한번 절벽에서 살아나와 보라는 심보입니다그와 똑같은 국면이 3년 후에 다음과 같이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23:35-37).

다섯째로,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유유히가시니라(4:30); 그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사람들의 힘을 무위로 만들어버리고 예수님을 구출해내시는 것입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의 힘은 실로 두려운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4:30)라고 의사 누가가 표현하고 있듯이 예수님을 에워싸고서 낭떠러지로 밀어버리고자 하던 사람들 사이가 갑자기 둘로 쪼개어지고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그 옛날 아브라함이 쪼개어 놓은 제물 사이로 하나님의 타는 횃불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15:17).

(2)  그것을 막아서는 자는 전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그래서 사람들의 동작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마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마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듯이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가실 뿐입니다(4:30, 10:10-11). 아버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장소가 이 세상에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선민 이스라엘 사회에는 기름을 부음 받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그 가운데 왕과 제사장은 세습입니다하지만 선지자는 세습이 아닙니다선민 가운데 누구라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임재가 있게 되면 예언활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신앙교육은 왕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실시를 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어째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별도로 성령충만과 임재를 통해서 선지자를 만들어 선민사회에 보내고 계시는 것일까요그 이유는 선민들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한 마디로선민들은 이기적인 선민우월사상과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리고 내세의 구원보다는 당장 현세적인 복을 얻기 위하여 우상을 섬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더구나 여호와 하나님마저 자신들의 현세적인 소원성취를 거들어 주고 있는 우상의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선지자를 보내고 계십니다부디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만민구원사상을 가지라는 외침입니다이방인까지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나아가서 현세적인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선지자들의 외침은 철저하게 고향사람에게 주는 특혜나 선민우월사상과 상반되고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선지자가 자신의 고향에서 존중을 받기는 어려운 법입니다(4:24).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에 대하여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서 정확하게 선포를 하시고 있습니다고향사람들의 실망과 분노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전해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입니다그렇게 고향과 친척과 형제자매를 떠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고난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추어오고 있는 본문의 내용입니다(12:1-5, 4:24-30).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수님의 제자답게 동일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실천해나가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