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42강(눅4:20-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19. 13:56

누가복음 강해 제42(4:20-23)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6 15()

 

이사야의 말씀을 아전인수(我田引水제 논에 물 먼저 끌어 대기)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고향사람들의 요구에 대하여(4:20-23)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의 차이가 무엇일까요그것은 개와 고양이의 습성의 차이와 비슷할 것입니다개는 주인을 따르기를 좋아합니다반면에 고양이는 집터를 따르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주인이 멀리 이사를 갈 때에 잘 챙기지 아니하면 고양이를 함께 데리고 오지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고양이와 비슷하게 땅에 속한 자는 주인을 따르기보다는 집터를 따르기를 좋아합니다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나 자기 출생지역이 우선입니다그곳에 토박이로 살고자 하며 자신의 영역이므로 우선적으로 돌보고자 합니다때로는 그 터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따라서 모든 피조세계의 주인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까지 배제하고서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묘한 주인의식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그와 달리 하늘에 속하고 있는 자는 개와 비슷하게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르고 있습니다자신은 주인을 따르며 그 명령을 준행하는 충직한 청지기입니다주인이 가는 그곳에 함께 가고자 합니다딴 살림을 차리고자 하지를 않습니다이 땅에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이 땅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낸 다음에는 얼른 주인에게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아침 일찍 바닷가에 나가보면 동네의 주민들이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작은 막대기를 바닷물이 있는 곳에 던집니다그리하면 그의 애견은 서슴지 아니하고 바다로 뛰어듭니다일렁이는 파도 가운데에서도 그 작은 막대기를 찾아서 입에 물고서 반드시 주인에게로 돌아옵니다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주인을 따르고자 하는 자가 가져야만 하는 청지기의 정신 세 가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1)  첫째항상 주인에 대하여 주목을 하고 있습니다주인이 막대기를 던지면 그것을 집어오는 자신의 사명을 즉각 실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둘째파도를 겁내지 않습니다주인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견딜 수 있는지 사전에 파악하고서 그 한계 안으로 막대기를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35-39). 따라서 서슴지 아니하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3)  셋째사명을 감당하고서는 반드시 주인에게로 돌아갑니다(23:46, 19:30). 막대기를 입에 물듯이 예물을 가지고 돌아갑니다(66:20, 14:24).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를 참조하면충직한 종은 주인이 맡긴 달란트을 잘 활용하여 갑절의 열매를 얻어서 돌려드리고 있습니다(25:19-23). 결코 그 달란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거나 회계할 주인이 오지 않는다고 여기고서 이 땅에서 영원히 누리고 살겠다는 생각을(20:9-15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하늘에 속한 자로서 창조주 하나님 곧 여호와의 종으로 신실하게 살아가고자 하시는(53:2-6예수님의 눈에 그의 고향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들은 땅에 속한 사람이며 마치 고양이와 같습니다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4:20); 히브리정경 두루마리를 맡아서 그 말씀을 파수하고 있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한 사람들과의 차이를 묘하게 대조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1)  유대인들의 회당에서는 선민들이 안식일마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랍비들이 하나님말씀을 읽고 그 내용을 풀어서 강론하고 있습니다고대사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양피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회당에서는 말씀 두루마리를 많이 비치하고 있습니다그것은 귀한 것이므로 관리를 잘 해야만 합니다물에 젖거나 축축해지면 안됩니다또한 햇빛을 많이 쐬어서 바스러져서도 안됩니다따라서 두루마리 정경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 회당에 있습니다(4:20a). 랍비가 그 일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왜냐하면그들은 두루마리를 평소에 통풍을 잘 시키고 그늘진 곳에 보관하며 자주 꺼내어서 읽고 묵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말씀을 잘 알고 제대로 실천을 해야 안식일 날 회당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강론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습니다그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두루마리 말씀을 그냥 읽고 보관만 하는 일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2)  말씀을 보관하고 묵상하는 자와 달리 회당에는 예배에 참석하는 청중들이 있습니다그들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회당에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4:20b). 그들은 예배에는 참석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보다는 랍비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는 청중들입니다그들의 삶에 유익한 말씀을 하시는지 아니면 동떨어진 말씀을 하는지 그것이 궁금한 사람들입니다특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말씀해석이나 자신들의 지역사회를 높이 평가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입니다반대로이방인을 구원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나 현세적인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는 신앙생활에 힘을 쓰라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닫아버리고 있습니다그와 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는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4:20). 바야흐로 그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십니다과연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둘째로,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이 글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4:21);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이제 성취가 된다는 말씀입니다누구에게 그 말씀이 적용이 될까요그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이제부터 발효가 됩니다그것은 마치 도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법의 효력의 발생시점의 원리와 같습니다;

(1)  자신들의 인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큰 행운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그 이유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예언의 성취이시므로(24:44-48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에 그 예언이 자신에게 적용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안식일 날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말씀을 읽으신 예수님이십니다그 내용은 메시아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의 해가 그들의 생애 가운데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61:1-2, 4:18-19). 한 마디로거듭난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땅에 집착하고 있던 육신적인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삶으로 바뀌게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2)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그런데 문제는 그 말씀의 뜻을 그렇게 알아듣고 있는 자가 매우 드물다는 것입니다특히 그곳이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흔히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고향을 관리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그 이유는 자신들이 배출한 국회의원이므로 자신들의 고향을 우선적으로 섬기고 이익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국회의원이란 자신의 출신지역을 대표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입법을 하고 국가정책과 예산을 결정하는 사람입니다그러므로 자신의 지역구만을 위해서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 그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입니다.

(3)  한 마디로예수님은 선민에게만 특혜를 준다거나 그들만을 고쳐주고 이 세상에서 잘 살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세상임금이 아닙니다기본적으로 예수님은 육신적인 삶에 젖어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여 거듭난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그렇게 하늘에 속한 자로서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세상임금이나 다윗 왕의 후계자가 아닙니다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사람들이 섭섭하게 들을지는 몰라도 땅에 속한 자로서의 기대감을 버리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십니다고향사람부터 그리고 친지들부터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으로 예수님을 쳐다보고 있는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셋째로,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이 사람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4:22); 고향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습니다왜냐하면선지자를 쳐다보는 것이 먼저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  이사야 선지자의 글인 대선지서 이사야는 신기한 글입니다전체가 66장으로 되어 있는데 39장까지는 마치 히브리정경 39권처럼 구약적인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제40장부터 끝까지의 27개 장은 신약정경 27권에 어울리는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이사야는 작은 성경’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2)  그런데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이 이사야 제61장의 말씀을 읽으시고 강론을 하십니다그 내용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어울리는 복음의 내용입니다구약시대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는 선민구원이나 현세구원적인 복의 개념이 아닙니다그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당에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백성들은 그들의 고정관념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  그래서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4:22b)라는 의사 누가의 기록 그대로그들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 곧 만민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복음적인 은혜의 말씀에 대하여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혹시 잘못 들었는가 싶어서 서로 수근 대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 (예수)를 증언하고(4:22a). 서로 의견을 나누어보아도 역시 예수는 그들이 알고 있는 고향사람이 맞는 것입니다.

(4)  결정적으로고향사람들이 회당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4:22c); 그들의 결론은 간단합니다역시 이러니 저리니 해도 자신의 고향사람 목수 요셉의 아들이 예수라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고향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게 선지자의 일을 할 것이며 나사렛 사람들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나아가서 다윗 왕의 위업을 달성하는 대 영웅 메시아가 자신들의 마을에서 탄생한 것이니 그것이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넷째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4:23);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나라의 소임에 대하여 재조명을 해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1)  제사장은 그 직무가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주는 것입니다(4:2-35). 물론 제사장 자신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죄 사함의 제사를 드리고 거룩한 기름을 사용합니다그러나 그 제사장 위임의 제사기간은 일주일에 불과합니다(29:35). 나머지 날들은 모두 백성들의 죄 사함과 화목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데 사용합니다.

(2)  제사장나라는 그와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제사장나라인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일을 수행해야만 합니다(19:5-6).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제사장나라로서의 직무를 수행한 적이 없습니다그 이유는 자신들을 압제하고 있는 이방인들을 미워하였으며 그들이 망하기를 여호와께 소원하였기 때문입니다(5:43). 그리고 여호와는 자신들 선민만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이라고 단정하고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이 선민우월사상에 물들어 있는 유대인들입니다그들은 그것이 이기적인 신앙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옛날 히스기야 왕처럼 현세적인 복을 풍성하게 주셔야 자신들이 섬길만한 하나님 여호와라고 믿고 있습니다(17:7, 39:8). 앗수르 대군을 신위적인 능력으로 물리쳐 예루살렘을 구원해주시고 히스기야 왕처럼 죽을 운명도 15년 목숨연장을 해주시는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37:36, 38:5).

(4)  따라서 나사렛사람들이 메시아 예수가 고향 나사렛에 먼저 복을 주고 고향사람들에게 더 큰 치유와 혜택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소문에 따르면갈릴리의 가장 큰 성읍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대단한 치유의 기적을 나타내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고향의 회당에서는 더 큰 역사를 이룰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4:23b). 쉽게 말하자면의사가 남도 고치고 살리는데 자신의 병이나 가족의 병이야 더 관심을 가지고 우선적으로 고치지 아니하겠습니까?(4:23a).

결론적으로본문에서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의 바램을 너무나 잘 아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4: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수렴해줄 수가 없습니다그 이유는 자신은 나사렛 고향사람만을 구원하고자 하는 메시아가 아니고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두를 구원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선민 또는 고향사람이라고 하여 그 어떠한 특혜도 줄 수가 없습니다원수나 이방인이라고 하여 그 어떤 불이익도 줄 수가 없습니다그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똑같이 사랑하고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란 그와 같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데 앞장을 서고 본을 보여야만 하는 자입니다그 점을 분명히 하시는 그리스도가 그의 고향과 동족들로부터 어떠한 고난을 당할지 미리 예상이 되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일찍이 예수님이 고향에서 당하신 그와 같은 어려움을 똑같이 당하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그렇지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여호와의 종답게 창조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계속해야만 합니다그것이 다 함께 영생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아무쪼록 그와 같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